'겨울'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5.02.09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전집』 - 겨울의 그림자
  2. 2015.01.27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달리기가 가르쳐준 삶의 의미에 대해
  3. 2015.01.20 《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 - 시나브로 겨울이 지나간다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전집』 - 겨울의 그림자

 




에브게니 스베틀라노프 |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전집』 | Aulos Media | 2010

 

 


차이콥스키의 교향곡으로 음반 녹음 역사에 길이 남게 될 러시아의 지휘자를 꼽으라면 대략 네 명으로 압축할 수 있다. 예프게니 므라빈스키(1903~1988), 겐나지 로제스트벤스키(1931~), 블라디미르 페도세예프(1932~), 그리고 예프게니 스베틀라노프(1928~2002)가 그들이다. 각자 서로 다른 오케스트라를 맡았고, 국제적으로도 조금씩 다른 장소-본국인 러시아는 기본이었고-를 배경으로 활동했다. 므라빈스키는 레닌그라드(현재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로제스트벤스키는 빈과 런던을 비롯한 서유럽, 스베틀라노프는 유럽은 물론이고 일본에서 굉장한 인기를 끌었었다.

이들 중에서 가장 확고한 위치를 점한 쪽은 므라빈스키일 것이다. 그와 레닌그라드 필하모닉의 차이콥스키 교향곡 4, 5&6번 음반(DG)은 두말할 나위 없는 위치에 올라있으며, 네 명 중 나이도 가장 많다. 로제스트벤스키는 냉전 시절부터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를 비롯해 꾸준히 서방세계의 미디어에 얼굴을 비춰왔고, 페도세예프는 80년대 후반의 내한공연과 백건우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전곡 녹음의 반주를 맡은 덕분에 국내 애호가들에게도 매우 친숙한 인물이다. 하지만 스베틀라노프의 경우는 국내에서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조금은 밀린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이었는데, 그가 국내에서 제대로 알려지게 된 것은 아마도 일본의 포니 캐년에서 발매된 차이콥스키 교향곡(1990년도 녹음)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이 그 시발점이었을 것이다. 서유럽, 미국은 물론이고 아시아의 오케스트라들은 흉내조차 내기 힘든 위력적인 포르티시모와 숨 막힐 듯 내달리는 템포를 자랑하는 이 녹음은 ‘러시아적인 힘’을 동경하던 한국과 일본의 애호가들을 단숨에 열광시켰고, 일본 제작반 특유의 훌륭한 음질까지 등에 업고 단숨에 므라빈스키의 그것과 어깨를 나란히 견줄 수 있는 아이템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90년대에 녹음된 이 음반들(4~6번이 낱장으로 담겨 있는 형태도 있고, 함께 묶어 발매된 형태도 있다)이 매우 훌륭한 음반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음반이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국내 음반사인 아울로스 뮤직에서 기획한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여섯 곡 전곡을 리마스터링한 네 장짜리 음반이다. 약 10년 전쯤 발매된 음반이기는 하지만 깔끔한 구성의 패키지에 담긴 훌륭한 연주를 매우 합리적인 가격에 장만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한 메리트를 가진 음반임에 틀림없다. 특히 마지막 세 개의 교향곡에 밀려 디스코그래피에서 소외당하기 쉬운 1, 2, 3번 교향곡들의 연주가 상당히 좋은 편이어서, 별생각 없이 ‘한번 들어나 볼까?’ 하는 마음으로 걸어놓으면 평소에는 잘 몰랐던 이 작품들의 매력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음반에서 가장 주목해야 하는 곡은 교향곡 4번이다. 스베틀라노프의 녹음은 앞서 언급한 므라빈스키의 DG녹음 보다 훨씬 강렬한 파괴력을 뽐내고 있으며, 1악장부터 귀를 찌르는 호른의 자극적인 포르티시모가 압도적이다. 또한 4악장의 종결부에서 들려주는 충격적인 아첼레란도(점점 빠르게)는 이 음악은 오로지 러시아인들에 의해서만 온전하게 구현될 수 있다는 것을 소리 높여 강조하고 있다. 5번 교향곡은 음질의 탓인지 파괴력은 다른 연주들보다 덜하게 들리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곡 전체를 뒤덮고 있는 쓸쓸함과 허무함이 더 잘 드러나고 있다.

차이콥스키의 교향곡은 눈이 펑펑 내리는 한겨울에 들어도 좋지만, 겨울이 끝나가는 시점에 듣는 것도 나름 잘 어울린다. 그의 어둡고 쓸쓸했던 내면을 가렸던 현악과 금관의 두텁고 쩌렁쩌렁한 소리가 유독 공허하게 느껴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그의 교향곡을 박력과 웅장함이라는 한정된 키워드로 기억하고 있지만, 그 가면이 벗겨지고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이야말로 진정한 차이콥스키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스베틀라노프의 이 음반은 작품의 이면으로 숨어버린 그를 찾는 이들에게 큰 도움을 주게 될지도 모른다.

 

 

오늘의 음반을 리뷰한 '박현준'님은?

편견없이 음악을 듣고 편견없이 생각하고 싶어하는 음대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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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달리기가 가르쳐준 삶의 의미에 대해

 


무라카미 하루키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문학사상 | 2009


책을 추천하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독서를 워낙 즐기는 탓에 한꺼번에 여러 책이 아우성쳐서 골치가 아프다라고 말한다면 뻔한 거짓말이겠지만. 암튼 누군가가 공개적으로 추천한 책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내 경우엔 추천한 사람이 더 궁금해진다. 그래서 책을 추천한다는 건 어딘가 약간은 부끄럽고 겸연쩍은 일이 되어 버렸다. 이럴 때면 가급적 내가 하는 일과는 전혀 상관없는 보편적 성격의 책을 고른다. 아무래도 그런 편이 남 얘기 하듯 책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고 솔직하고 편하게 독자 입장에서 책에 대한 인상을 펼쳐놓을 수 있어서 좋다. 내겐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란 그런 책이다.

 

‘적어도 끝까지 걷지 않았다’라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책 말미에 써놓은 자신의 묘비명을 나도 달리기할 때마다 곱씹곤 한다. 그 말을 생각하며 달리면 희한하게도 어떡하든 계속 달리게 되고 지친 와중에도 기분이 상쾌해진다. 이 책을 읽고 이미 수많은 사람이 달리기를 즐기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아니, 사실 들은 바는 없지만 그럴 것이라고 충분히 확신하게 된다. 책을 읽다가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가 달리도록 만드니까. 스무 살 이후 동네 운동장 몇 바퀴도 뛰어본 적 없는 게으른 나 역시 달리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2009년 1월이었다. 무척 추웠던 휴일 아침, 아무도 없는 천변을 달리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알 턱이 없던 나는, 달리기를 하면서 스스로 감격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 느낌은 거창하게 말하면 어떤 내면적 ‘만남’ 같은 것이었다. 그날 이후 달리기를 시작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갑자기 긴 거리를 달리게 된 것은 아니었다. 틈나는 대로 달리면서 점차 거리를 늘려나갔다. 몇 달이 지난 후엔 10킬로미터를 편하게 달리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 해엔 하프코스를 완주하게 되었다.

 

내가 하는 일은 건축설계다. 이 일로 말하자면 알려진 만큼 멋있거나 폼 잡는 일이 분명히 아니다. 대신 알려진 것 이상으로 고되고 에너지를 많이 필요로 하는 일임엔 틀림없다. 하루키가 달리기를 자신의 고된 글쓰기 인생을 지속하게 해주는 숭고한 정신적 ‘의식’으로 삼은 걸 보며 나 역시 달리기를 내 고된 직업을 계속 이어나가게 해주는 ‘의식’으로 삼고 싶었다. 그리고 그처럼 달리기를 하며 글을 쓰고 싶었다. 그렇게 흉내내다보니 일을 하면서 달리고 글도 조금씩 쓰는 삶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6년이 흘렀다. 여전히 건축설계를 하고 틈나면 달리기를 한다. 글을 쓰다 보니 책도 몇 권 펴냈다. 지금의 삶을 모두 달리기를 시작한 탓으로 전제 할 수는 없겠지만 서른아홉이었던 그 해 1월, 이 책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조금 궁금하긴 하다.

 

특별한 다짐을 위해 며칠간 하루 20킬로미터 이상을 걸었던 2010년 12월 겨울 지리산에서도 이 책은 나와 함께 있었다. 아테네의 폭염을 이기고 마라톤 풀코스를 처음 완주했던 대목을 읽으며 살을 에는 눈보라를 뚫고 산길을 걷는 내 상황이 재밌어 혼자 웃었던 기억이 난다. 트래킹을 마치고 민박집에 몸을 뉘여 책 몇 꼭지를 읽다보면 기다리고 있는 다음날 행군이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았다. 외려 마음이 훈훈해지면서 금새 잠이 들었다. 어디선가 훈풍이 불어오는 듯한 그의 후끈한 이야기가 지쳐있는 심신에 무척이나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하루키의 언어는 종종 소재로 삼는 이야기를 훌쩍 넘어서서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을 이야기 하곤 한다. 하루키의 그런 면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적잖은 공감과 위로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리드미컬하게 팔과 다리가 움직이고 중력을 이기며 땅을 밀어내어 몸이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정신을 집중해서 알아간단 건 어떤 삶의 비밀 하나를 이해하는 것과도 같다. 5킬로미터든 10킬로미터든 21킬로미터든 한 발자국씩 달리고 나면 소진된 육체와 정확하게 반비례되는 정신적 충만함이 채워지는 것이다. 긴 거리를 천천히 달려간다는 행위가 신체단련의 차원을 넘어 자기수양의 도구가 된다. 책을 읽으면 누구라도 그런 도구가 하나쯤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지금, 겨울의 한복판에서 다가오는 봄을 기다리며 책을 다시 펼친다. 봄을 기다리는 시점에서 새로운 내면의 다짐과 사색이 필요할 때 아주 제격이다. 엊그제도 호수 공원을 달렸다. 어느덧 이렇게 달린 지 6년이 되어가는구나 생각하면서. ‘젊은 날의 믹재거는 마흔다섯이 된 자신을 상상할 수 없었다’라는 책의 구절을 되뇐다. ‘누구든 나이를 먹으며 상상할 수 없었던 세계 속에 몸을 두고 살아가고 있다. 그 세계에 있는 것들을 받아들이면서 일단 살아가야 한다’고 하루키는 말했다. 그러고 보니 어느덧 나도 마흔다섯이다. 강물을 생각하며, 구름을 생각하며 그저 소박하고 아담한 공백 속을, 정겨운 침묵 속을 계속 달려온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은 여간 멋진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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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과 서평을 나누고자 반디앤루니스 '오늘의 책'을 펜벗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
펜벗이란 서평을 쓰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를 의미합니다.
매주 월요일, 성실한 서평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 명예 펜벗 일문일답


 


최준석 | 건축가. 건축사사무소나우대표
건축사. 건축사사무소 NAAU를 운영하면서 주택, 어린이집, 기숙사, 기업사옥 등 다양한 건축설계를 진행 중. 서른여덟 살 때 집이나 글이나 ‘짓는’ 건 매한가지라는 소소한 깨달음을 얻은 후, 본업인 건축설계 틈틈이 글짓기에도 즐겁게 공을 들이고 있다. 건축은 ‘삶을 담는 그릇’이라는 정의를 여전히 신뢰하기에 겉모양이 현란한 외향적 건축보다는 삶을 위해 소소한 배경으로 존재하는 내성적 건축을 좋은 건축이라 믿는다.

첫 책 《어떤 건축》이 2010년, 두 번째 책 《서울의 건축》이 2012년, 그리고 작년에 《서울 건축 만담》이 나왔다. 주기상으로 보면 2년에 한 번 책을 내는 셈이다. 우연한 작업 결과인가. 모종의 ‘자신과의 약속’인가.


자신과의 약속까진 아니지만 첫 책을 내고 대략 2년마다 한 권씩 책을 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 했었다. 하지만 사무소 운영하면서 책을 쓴다는 게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고 그렇게 하고 싶다고 될 일도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2년 주기로 책이 나오고 있는데 특별히 지키려고 애를 쓴 적은 없다. 우연히 그렇게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취미 이상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정신적인 소모가 많은 일이다. 좋은 글에 대한 욕구가 클 때면 더 할 테다. 밥벌이를 위한 노동 이후, 시간을 쪼개 글을 쓰고 있다. 당신은 왜 글을 쓰려 하는가.


처음엔 글쓰기를 노동과 다른 종류의 일로 생각했다. 그렇다고 취미로 여기지도 않았다. 글쓰기를 통해 건축실무에서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생각들을 표현하면서 스스로 위로받고 싶었던 것 같다. 쉽게 말하면 일종의 대리배설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글쓰기 자체를 통한 자기정화의 의미가 좀 더 큰 것 같다. 글을 쓰고 돈을 받는 일이 많아지면서 글쓰기가 점점 노동으로 느껴지고 있다는 게 조금 유감이다.

프로필 중, 집이나 글이나 ‘짓는’ 건 매한가지라는 표현을 했다. 좋다.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매칭이다. 지금껏 지은 3권의 책에 대한 리뷰를 한다면. 글이 원하는 설계대로 잘 지어졌는가.


‘짓는다’는 표현이 좋다. ‘만든다’는 그 자체로 완결의 의미가 있고 만드는 사람이 더 중요한 느낌이지만 ‘짓는다’의 의미는 밥이든 집이든 글이든 짓고 나서 그것을 먹고살고 읽는 사람까지를 포괄한다고 생각한다. 책들이 잘 지어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건 독자들의 몫이 아닐까.

과거 어떤 책을 읽었고, 현재 어떤 책을 읽고 있는가. 분야든 상세한 제목이든 관계없다.

건축 관련 책부터 소설, 실용서 가리지 않고 보는 편이다. 한꺼번에 여러 권을 보는 스타일이라 일이 바빠지면 마무리가 잘 안 되는 문제가 있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세상물정의 사회학》과 《논어》다.

 

추천 책에 대한 한마디.

행동하게 하는 책들이다. 《빵굽는 타자기》를 읽고 무슨 글이든 써야겠다고 마음먹었고, 《여행의 기술》을 읽고서 생각만 하던 먼 여행을 실행했다. 《집을 생각한다》를 읽으면 내 가족을 위한 집을 짓고 싶어진다. 최근에 읽은 《건축과 감각》은 건축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주었다.

일반적인 서평이라기 보다, 주제를 정해 책을 고르고 글을 쓰는 작업이었다. 어땠는가. 독자들이 ‘겨울’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작성한 서평을 둘러보았다면,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개인적으로 겨울이라는 계절의 다면성을 좋아한다. 겉으론 추워서 움츠려있는 듯 보이지만 속에는 곧 다가올 봄을 기다리는 열망이 있다. 겨울은 다른 계절보다 사람마다 다양한 느낌으로 기억되고 표현되는 것 같다. 서평을 몇 개 읽으며 겨울이 새삼 참 복잡한 계절이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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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 - 시나브로 겨울이 지나간다

 



윤대녕 | 《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 | 푸르메 | 2010



겨울에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열심히 지내온 한 해를 돌아보는 일은 겨울에만, 그것도 12월이 다 지나간 시점에만 할 수 있다. 지금껏 읽어온 작가들의 산문집은 어딘가 겨울을 닮았다. 그들의 산문집은 아마도 겨울에 시작해서 다음 해 겨울 혹은 다다음 해 겨울에 끝냈으리라. 무덥고 뜨거운 여름에 이렇듯 느리게 음미하며 읽어야 하는 책들은 쉬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그럼에도 이 책이 ‘2011년 국립중앙도서관 사서가 추천하는 ‘휴가 중 읽기 좋은 책 80선’에 선정됐다. 휴가 중 읽기 좋아 여름에 이 책을 샀지만, 가슴 깊이 한기가 파고드는 겨울이 되어서야 이 책이 다시 떠올랐다.

산문집은 자기 고백적이다. 윤대녕 작가의 소설을 끝까지 읽어 본 적은 없었다. 어디서든 만나면 조금씩 읽어 볼 뿐이었다. 산문집으로 처음 만난 그는 인간미 넘치는 이웃 글쟁이 아저씨 같지만, 소설가로서 그는 짧고 담담한 문체 때문인지 우울한 분위기와 날이 선 차가운 얼음이 떠오른다. 작가의 성장배경과 생각의 변화, 작가로서 생활하는 모습 등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그만의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적어 내려가면서 보통사람들도 겨울에 느낄 법한 인생 돌아보기를 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산문집은 작가가 스스로 적는 자서전이라는 느낌이 든다. 한때, 소설보다 산문집을 더 좋아했던 시절이 있었다. 소설은 허구적이라 나에게는 읽어야 할 당위가 없었다. 진심과 사실이 가득 담겨있던 산문집이 좋았기에 더욱이 산문집 작가를 꿈꾸기도 했었다.

얼마 전 김연수 작가도 산문집으로 처음 만났다. 소설가인 그의 성향을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산문집 속 그는 본인이 잘생겼다고 생각하는 웃긴 탐정사무소 주인 같았다. 폴 오스터도 마찬가지다. 《겨울일기》를 읽은 후 다른 산문집 《빵 굽는 타자기》와 《선셋파크》를 읽어보았다. 요즘은 산문집만큼이나 소설을 마땅히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인간성을 들여다보는 재미만큼 작가의 능력과 노력이 마음껏 담긴 창작물을 읽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더러는 소설을 먼저 읽고 그 후에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면 산문집을 읽는다.

삶을 먼저 살아본 이가 해 주었던 이야기 중 가장 많이 공감했었고, 읽을 때마다 새롭게 다가왔던 이 책의 내용처럼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하여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여러 번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올겨울은 길었던 것일까, 혹은 짧았던 것일까. 그건 잘 모르겠으나 중요한 것은 누군가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이고 바야흐로 봄이 문밖에 당도했다는 것이리라. 곧 온 세상이 꽃과 함께 푸르러지리라. 이제는 더 이상 길을 잃지 말고 살아야지, 라고 생각하며 나는 밥을 먹고 있는 아내의 얼굴을 슬그머니 훔쳐 보았다. (1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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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과 서평을 나누고자 반디앤루니스 '오늘의 책'을 펜벗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
펜벗이란 서평을 쓰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를 의미합니다.
매주 월요일, 성실한 서평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1월의 펜벗 서평 주제는 '겨울'입니다.

| 펜벗 일문일답

● 매우 춥지만, 겨울은 ‘따뜻하다’는 감정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계절이에요. Thinkthings 님이 <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을 겨울마다 들추게 되는 이유도 ‘따뜻하려고’ 보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올겨울에 또 어떤 책을 읽으셨을지 궁금해져요.

춥고 시린 겨우내의 고민이 끝난 뒤 윤대녕 작가의 산문집을 읽으면, 봄을 웃으며 맞이할 수 있는 용기를 받습니다. 올겨울에는 특히 철학 서적을 동시다발적으로 읽고 있는데, 그중 피터 비에리의 《삶의 격》이라는 책이 기억에 남습니다. 현실의 존엄성에 대해 작가는 확신이 담긴 모범 답안을 이야기해 주지 않습니다. 독자들이 문제를 한 번쯤 생각해 보고 고민할 기회를 준다는 점이 고마웠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난 뒤, 인간의 존엄성을 편협하고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저의 생각과 입장을 다시금 돌아보고 재정립할 수 있었습니다.

● 펜벗 앨범을 읽고, 자기계발서와 교양서와 같은 직접적인 가르침을 주는 책보다 ‘문학’에서 삶의 지혜와 자세를 얻는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Thinkthings 님과 같은 고민을 겪고 있는 친구가 있다면, 어떤 문학작품을 추천해주고 싶으세요?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권하고 싶습니다. 《마음》은 강상중 작가의 《고민하는 힘》과 《살아야 하는 이유》에도 많이 등장하죠. 일차적으로는 작가에게 더불어 독자에게 의문과 해답을 적절히 던져줍니다. 주인공과 함께 선생님의 비밀을 궁금해하며 이야기를 읽다 보면, 어지러웠던 마음도 안정됩니다.
문학은 자신을 탐구해 가는 과정을 동행해 주는 친구 같습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원하는 결론을 얻지 못했더라도, 결국엔 이야기를 읽어온 일련의 과정을 통해 피해왔던 본인의 고민을 마주할 힘을 얻기도 합니다.

● 펜벗 활동의 가장 두드러진 성격은 ‘추천받은 책’이 아니라 ‘추천하고 싶은 책’을 쓴다는 것입니다. 지금 ‘펜벗’은 Thinkthings님의 독서 습관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나요?

읽었던 책을 다시 들추어보는 일은 좀처럼 드뭅니다. 읽어야 할 새로운 책들은 좀처럼 줄어들지 고요. 하지만 펜벗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는 책들의 제목이 떠오릅니다. 책장 앞에서 즐거운 고민을 하며 서성이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또한 혼자 하는 독서가 익숙한 저는 다른 펜벗의 책 안목과 훌륭한 서평을 보고 감탄합니다. 펜벗은 성실한 독서가가 되어야겠다는 바람을 되뇌도록 만듭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Thinkthings'님은?

철학하는 농부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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