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새의 노래'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12.02 [나감책 No.2] 책과 사람, 그리고 반디&루니스(반디) (2)
  2. 2009.09.16 대립항으로서의 인간 ⓛ
  3. 2009.08.26 아름답기에 더 비극적인 - <검은 새의 노래>

[나감책 No.2] 책과 사람, 그리고 반디&루니스(반디)

나감책 두 번째 주자는 바로 반디입니다. 반디 가족을 빨리 만나고 싶은 마음에, 제가 먼저 쑥 끼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많은 분들과 많은 얘기를 나누고 싶은 날이기도 하고요. 나감책의 열기가 두 번째 순서에서 식지 않기를, 부탁드립니다.ㅋㅋ. 자 그럼, 고고씽! ~~~/(^0^)/

달력 한 장 남겨놓고 한 해를 돌아보면 의미 없는 해는 없습니다. 07년에는 바르고 열정 넘치는 영화기자를 꿈꿨고, 08년에는 오리무중 현실에서 10년 이후의 미래를 ‘처음’ 상상했습니다. 앞의 두 해 모두 소중한 시간이지만, 2009년은 조금 더 특별합니다. 생명이 움트는 계절 사월, 반디앤루니스에 입사를 하게 됐고, 그때부터 책과의 인연은 더욱 소중해지기 시작했습니다.  

2009년을 시작하며 ‘책을 열심히 읽자’고 마음먹었습니다. 1월부터 매달 10권 이상의 책을 읽으며 미래의 어느 순간을 꿈꿨습니다. 입사 후 ‘반디앤루니스 오늘의 책’을 담당하는 북에디터로서 매달 10권 가량의 책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4월 전후의 독서 모습은 좀 다릅니다. 이전에는 ‘공부’에 초점을 맞춰 인문, 사회, 철학, 경제 책을 읽었다면 이후에는 (복합적 의미로서) ‘재미’를 위해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예전에 알지 못하던 책 읽는 재미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알게 된 건 책 읽는 재미뿐만이 아닙니다. 책을 통해 세상을 만나고, 사람을 만나게 됐습니다. 기계치임을 별로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던 반디는 입사 후 처음 블로그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거, 생각보다 재밌습니다. 내가 쓴 글을 남이 봐주는 것도 즐겁고, 이웃 블로그를 찾아가 좋은 글을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또 힘든 일이 있으면 서로 위해주고, 용기를 불어줍니다. 이렇게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가면서 한편으로는 내가 줄 수 있는 게 무언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주는 기쁨’이란 거,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즐거움이 폭발(?)한 게 카페 ‘책을 좋아하는 사람(책좋사)’ 정모였습니다. 모두가 처음 만나는 사람들, 처음엔 어색하기도 했지만, 모두 반갑고 또 반가웠습니다. 다른 공간에 있지만 같은 시간 책을 읽는 사람들은 따뜻했습니다. (북크로싱에서 오우아님이 선물해주신 ‘도(스또예프스)끼’의 <죄와 벌> 지금 숨넘어갈 정도로 엄청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만남은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그날을 계기로 서울이 아닌 부산, 전주, 대구 등에서 새로운 만남을 약속합니다. 평생 만나지 못할 사람들, 가보지 못할 곳들이 책을 통해 소중한 인연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런 책에게 하고 싶은 말, 반디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분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고맙다는 말밖에 없네요. “고맙습니다.”

글 휴게소! 반디앤루니스 오늘의 책을 보시면 ‘컨텐츠팀 에디터 안늘’이라고 나오는데, 그거 접니다. 제 성이 ‘안’(安)이고, ‘늘’은 필명(?)쯤 되는데, ‘늘’은 시골집에서 키우는 개 이름입니다. 어머니가 ‘늘아~ 늘아~’하면서 부르는 소리가 좋아, ‘늘’로 했습니다. ^^;

[나를 감동시킨 책 5]

 

 


<책과 노니는 집>, 이영서, 문학동네, 2009
- 동화라 생각하고 가볍게 책장을 열었다가, 책을 덮을 때 즈음 가슴이 묵직해진 작품입니다. ‘필사쟁이’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를 일찍 여위고, 책을 통해 세상을 배워가는 소년 장이. 그는 책을 통해 운명을 넘어선 사람에 대한 사랑을 배웁니다. 책방을 배경으로 해서 그런지, 작가의 책 사랑이 각별해서 그런지, 책장 사이사이 책 향기가 가득합니다.

 

 

<푸코 & 하버마스 광기의 시대 소통의 이성>, 하상복, 김영사, 2009
- 철없고 객기도 없던 시절, 철학을 공부하겠다고 도서관을 들락거릴 때가 있었습니다. 이 책을 들었을 때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났습니다. 책은 푸코와 하버마스의 철학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으며, 그들의 철학이 지금 여기에 어떻게 살아 숨 쉬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김영사의 ‘지식인마을’ 시리즈로, 시리즈의 다른 책들도 무척 기대가 됩니다.

 

 

<검은 새의 노래>, 루이스 응꼬씨, 창비, 2009
- ‘내’가 사랑하는 그녀는 바로 저기 있는데, ‘나’는 그녀에게 가까이 갈 수 없습니다. 얼굴이 까만 ‘나’는 그래서는 안 되는 거지요.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사랑을 했고, 사람들은 나를 ‘강간범’이라 부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흑인의 비참한 삶과 작가가 묘사하는 아름다운 사랑이 극렬한 대비를 이뤄 더욱 슬픈 소설입니다.

 

 

<내 인생의 만화책>, 황민호, 가람기획, 2009
- ‘애냐? 만화 보게?’라고 말하는 어른들의 필독서입니다. 만화 주인공들은 사랑받기 전에 먼저 독자들을 웃게 하고,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또 민중의 대리인이 되어 부정한 권력을 꼬집습니다. 이런 만화의 재미를 모르는 건 무조건 손해입니다. 저자의 각별한 만화 사랑은 절로 따뜻한 미소를 짓게 만듭니다.   

 

 

<고등어를 금하노라>, 임혜지, 푸른숲, 2009
- ‘바닷가에 살지 않으니 고등어를 먹지 않겠다’고 말하는 당찬 가족. 처음에는 그들의 환경 사랑, 에너지 절약 정신에 ‘나와는 다른 사람들’이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돈, 물질보다 가족과의 시간을 택한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다르게 사는 삶’에 대해 꿈꿀 수 있게 됩니다. 특히 주체적이면서도 몹시 따뜻한 자녀들의 풍경은, 눈물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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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 하버마스 광기의 시대 소통의 이성> 리뷰 보기(클릭)]

[<검은 새의 노래> 리뷰 보기(클릭)]

[<내 인생의 만화책> 리뷰 보기(클릭)]

[<고등어를 금하노라> 리뷰 보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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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tayClose 2009.12.15 20:13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푸코&하버마스... 은 전부터 읽어봐야지 하면서 못읽어보고 있는 책이네요...
    이번 겨울에 다시 한번 읽기에 도전해봐야겠습니다 ㅎ

    • 반디앤루니스 2009.12.16 11:36 신고 address edit & del

      아주 어렵지도 쉽지도 않은데 읽는 재미가 쏠쏠해요.^^
      이 사회를 보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고요..^^
      꼭 읽어보세요~ ^-^

대립항으로서의 인간 ⓛ

 

Various, <퍼블릭 에너미 OST>, 유니버설, 2009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의 책과 음악 이야기 No. 6 - 대립항으로서의 인간 ⓛ

「Bye Bye Blackbird」

Pack up all my cares and woes
feeling low here I go
Bye Bye Blackbird
근심과 괴로움을 가방에 채워 넣고
콧노래를 부르며 나는 떠날 거야
블랙버드여 안녕

* Album from 다이애나 크롤, 『Public Enemies O.S.T』「Bye Bye Blackbird」 중

새처럼 자유롭고 싶었던 이들

<검은 새의 노래>는 담고 있는 내용만큼이나 많은 음악을 떠올리게 한 작품이었다. 책날개에 적힌 루이스 응꼬씨의 출생지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보는 순간 재즈 피아니스트 압둘라 이브라힘이 케이프타운에서 연주한 실황 앨범 『Cape Town Revisited』이 떠올랐다. 머릿속에서 「Someday Soon Sweet Samba」의 리듬이 넘실거렸다. 하지만 책을 한두 장 넘기면서 넘실거리는 리듬이 사라지고 재즈 보컬리스트 빌리 할러데이가 노래한 「Strange Fruit」의 선율이 입안에 맴돌았다. 나무에 매달린 흑인들의 시체를 이상한 과일에 비유한 노래였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서는 ‘검은 새’의 노래라는 제목 그대로 「Bye Bye Blackbird」가 떠오를 뿐이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인종차별이 가장 지독하게 행해졌던 나라 중 하나다. 유색인종에게 투표권을 준 것이 1984년이며 이로부터 7년이나 더 지난 1991년이 되어서야 인종차별 정책의 근간이 되었던 인구등록법이 폐지되었다. 더욱이 흑인이 투표권을 갖게 된 것은 1993년, 미국에서 인종분리법이 폐지(1956년)된 이후 37년이나 흐른 뒤의 일이다. 이제는 적어도 법적으로는 씨비야처럼 백인 여자를 사랑한 죄로 사형을 당하는 이는 없다(물론 ‘강간’이라면 당연히 죗값을 받겠지만). 

「Bye Bye Blackbird」에서의 블랙버드는 찌르레기 과의 새이며 흑인들을 빗대어 부르는 속어이기도 했다. 길고 긴 고통의 역사 속에서 그들은 “여기서는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고 이해하지도 못하지 게다가 내가 듣는 것은 불행한 이야기뿐”이라며 한탄한다. 하지만 그들은 좌절하지 않았다. “근심과 괴로움을 가방에 채워 넣고 콧노래를 부르며 나는 떠날거야”라고 노래하며 긍정적인 삶을 택했다. 씨비야 역시 검은 새가 되어 긍정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택한 것은 아닐까?

콧노래를 부르며 나는 떠날 거야

영화 <퍼블릭 에너미>에서는 다이애나 크롤이 부른 「Bye Bye Blackbird」가 이별의 복선이자 사랑의 메시지가 되어 흐른다. 여기서의 ‘Bye Bye Blackbird’는 흑인뿐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백인이 아닌 이들이다. 빌리는 프랑스인 아버지와 인디언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혼혈으로 백인과의 대립항에 속해 있다. 백인이 아니라는 사실은, 그녀의 삶을 더 불행하게 했던 것이다.  

영화에서는 다이애나 크롤의 모습도 잠깐 볼 수 있는데 존 딜린저와 빌 리가 처음 만난 날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이가 바로 다이애나 크롤이다. 영화에 대해서는 딱히 할 말이 없지만(개인적인 취향은 아니었지만 아주 나쁜 영화도 아니었다) 영화가 시작된 지 40분이 지나서야 크리스찬 베일과 조니 뎁을 구분할 수 있었다. 내 이야기에 모두들 ‘어떻게 크리스찬 베일과 조니 뎁을 구분하지 못하느냐’는 반응이었지만 어쨌거나 백인 얼굴은 비슷한 면이 있다. 주인공 한 사람쯤은 흑인이어도 좋을 텐데. 물론 흑인만 나쁜 편이어서는 안 된다. 절대.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 [<재즈피플> 보러가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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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기에 더 비극적인 - <검은 새의 노래>

 

아름답기에 더 비극적인 - <검은 새의 노래>

 

현기증이 날 정도로 눈부신 하늘. 날개를 세차게 퍼덕이며 나는 새들. 그 중 한 쌍은 생의 축복을 온몸으로 느끼듯 아름다운 사랑 놀음을 한다. 그러다 욕정을 참지 못한 수컷은 암컷에게 씨앗을 전하려 하지만, 암컷은 몸을 비틀어 수컷의 노력을 수포로 만든다. 그리고 미친 듯이 웃어젖히는 암컷. 하지만 수컷은 언젠가 다시 그 은밀한 노력을 재개할 것이다. 그들의 날개는 어디에도 묶여있지 않으며, 눈부신 하늘은 그들의 사랑을 관대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원주민 청년 씨비야는 이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 또한 한 여성(버로니카)을 가슴 속에 품고, 그녀에게 다가가 사랑(혹은 욕망)을 드러었다. 하지만 암컷이 그랬듯 버로니카는 씨비야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씨비야가 바라본 새들과 같은 것은 여기까지다. 그는 다시 그녀에게 다가갈 수 없다. ‘감히’ 피부색이 다른 버로니카를 탐한 씨비야는 강간범으로 체포되고, 좁디좁은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에게 다시는, 버로니카를 처음 만난 해변을 수놓던 눈부신 햇살은 허락되지 않는다.

작품 속에서 씨비야는 세 번의 소외를 느낀다. 첫 번째는 피부색으로 인한 운명적 소외다. 그는 원주민 치고는 많은 교육을 받지만 운명의 그리 관대하지 않다. 그는 백인 정착촌을 위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났고, 대학에서는 흑백 분리 수업을 받았다. 또 바닷가에서는 ‘백인전용’ 팻말을 넘어설 수 없었다. 그런 그에게 두 번째 소외는 백인 여성을 강간했다는 낙인이다. 사람들은 사건의 진위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그저 백인들에게는 ‘금기에 도전한 쳐 죽일 놈’이고, 원주민들에게는 ‘호기심의 대상’일 뿐이다. 여기에 씨비야라는 존재는 없다. 그냥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강간범’만 존재한다.

세 번째 소외는, 앞의 것들보다 사태가 심각한데, 자기감정으로부터의 소외다. 해변을 걷던 씨비야는 ‘마치 고대도시의 유적에 있는 아름답고 부서진 황금 상 같은’ 영국인 소녀 버로니카를 본다. 그녀의 몸에 붙잡힌 그는 가던 길을 멈춰, 그녀의 매혹적인 매력에 빠져든다. 그리고 혼자 마음을 졸이고, 며칠 동안 그녀를 기다리면서 겉잡을 수 없는 내적 충동에 휩싸인다. 그런데 세상이 손가락질 하고, 버로니카가 그 일을 ‘악몽’이라고 하면서 씨비야는 자기감정에 대한 확신을 잃어간다. 사랑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인가.

결국 그 사랑은 백인에 대한 분노, 운명의 저주, 일시적인 욕정 가운데 방향을 잃는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마저 박탈당한다. 남은 건 자신을 관찰 대상으로 보는 스위스계 독인인 범죄학자 에밀 뒤프레와 희망이었던 자식이 절망으로 변한 슬픔에 사로잡혀 눈물범벅이 된 어머니뿐이다.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한 쪽은 사랑이고, 다른 한 쪽은 아니라고 하는데, 이를 사랑이라 명명할 수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특히 한 쪽이 ‘폭력을 당했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것이 어찌 사랑일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씨비아의 기억은 ‘사랑’스럽다. 이는 온전히 작가 루이스 응꼬씨의 정교한 감정 묘사에 기인한다. 그는 씨비야가 버로니카에게 처음 마음을 빼앗겨 열병을 앓고, 우연히 마주쳐 느끼게 되는 환희의 순간 등을 을 더없이 매혹적으로 그려낸다.

버로니카와 나는 그저 단순하게 마주친 것이 아니라 우연한 포옹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서로가 서로의 몸을 향해 거의 쓰러지듯 충돌했다. (…) 그녀가 입은 씰크 옷의 감촉은 물론이고 그녀의 맨팔의 감촉을 느꼈을 때 나는 내 혈관을 타고 흐르는 피가 노래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 그때 나는 말했다. “죄송합니다! 용서해주세요!” 그리고 떨어진 물건을 집으려 몸을 굽혔다. 그녀는 낮은 어조로 공손하게, 그리고 백인 여성이 원주민에게 하는 것치고는 아주 부끄러운 듯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 그것은 그녀가 오래전부터 마법에 걸린 내 심장에 감아온 모든 욕망의 실타래를 풀어낼 만큼 강령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p. 134 - 136)

이 쓰라린 비극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답은 멀지 않다. 그가 ‘검은 새’이기 때문이다. 근대 백인들은 말했다. 인간은 하늘을 나는 새와 같이 자유롭다고. 단 검은 새는 예외. 백인들은 검은 새의 노래를 듣고자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씨비야와 버로니카의 이야기에 결말만 있을 뿐, 그에 앞서 펼쳐진 이야기가 없다. 물론 씨비야의 이야기에는 모든 감정이 다 들어있다. 그는 금기에 도전할 생각도, 누군가를 해칠 마음도 없었다. 만약 그들이 이 마음을 들었다면, 그리고 그 후회도 지나치게 늦지만 않았다면 비극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신이 새에게 검은 색을 주었다면, 노래는 허락지 않는 게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반디(ak2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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