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재는 여기!/요즘 뭐 읽니?'에 해당되는 글 94건

  1. 2014.02.11 [요즘 뭐 읽니?] 김종갑, 《생각, 의식의 소음》
  2. 2013.11.25 [요즘 뭐 읽니?] 강신주, 《감정수업》
  3. 2013.11.12 [요즘 뭐 읽니?] 조은, 《또또》
  4. 2013.10.30 [요즘 뭐 읽니?] 조셉 슈랜드?리 디바인, 《디퓨징》
  5. 2013.10.23 [요즘 뭐 읽니?] 오카노 유이치, 《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
  6. 2013.10.15 [요즘 뭐 읽니?] 박완서, 《그리움을 위하여》
  7. 2013.10.01 [요즘 뭐 읽니?] 아사다 지로, 《온기》
  8. 2013.09.25 [요즘 뭐 읽니?] 글렌 칠튼, 《이상한 조류학자의 어쿠스틱 여행기》
  9. 2013.09.17 [요즘 뭐 읽니?] 오마이뉴스 특별취재팀, 《마을의 귀환》
  10. 2013.09.10 [요즘 뭐 읽니?] 알베르토 망겔·자니 과달루피, 《인간이 상상한 거의 모든 곳에 관한 백과사전》

[요즘 뭐 읽니?] 김종갑, 《생각, 의식의 소음》

늘,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나와 관련되어 불명확하고 모호한 상태로 남아있는 것들을 없애나가야 한다고요. 이를 테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오래된 정체성의 문제를 꼽을 수 있겠죠. 혹은 지난날 무엇보다 나를 진지하고 심각하게 만들었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질문도 있겠고요. 하지만 이렇듯 정체성이나 사랑 등 거창한 주제가 아니래도 저는 늘 어떤 생각에서 어떤 생각으로 건너가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는 중입니다. 그 말은 무슨 뜻일까, 왜 그렇게 말했을까, 왜 나는 불쾌해졌을까,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까 등. “궁극적으로 보면 (…) 먹고살기 위해서, 그냥 먹고사는 것이 아니라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 (16쪽), 말하자면 행복한 삶을 위해서 ‘생각’이라는 ‘외로운 사업에 골몰’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 외로운 사업
생각은 생각을 낳는다. 한번 생각이 구르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그래서 거울의 방처럼 생각의 프레임에 갇혀 빠져나갈 수가 없다. 이상에게 거울은 자의식의 상징이었다. 그의 「거울」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잘은모르지만외로운사업에골몰할게요/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마는/또꽤닮았소” 외로운 사업이 생각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이 외로운 생각의 악순환!
= 르네 마그리트, 「금지된 복제」(1937)

 

지금 전, 생각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있습니다. “생각이 행복에 백해무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만났거든요. 그는 “외로운 생각의 악순환”에 빠져 있는 제게 “생각은 의식의 소음이다. 이것을 잡념이라고 말해도 좋다. (…) 생각의 8할, 아니 99%가 삶의 소음이다. 의학이 눈부시게 발달한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생각의 소음을 스트레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소음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봄에 황사를 뒤집어쓰듯이, 남들이 잠든 조용한 시간에도 생각의 소음을 뒤집어쓰고 있다.”고 말합니다. 또한 “불행에 대한 과민반응과 절대적인 행복의 요구가 결합”돼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생각! 생각! 생각!” 하도록 부추기는 현재의 사회에선 “행복과 불행의 드라마도 생각의 극장에서 상연이 되”“자칫하면 생각 스트레스의 무게에 다리가 꺾일 수도 있”다고 경고합니다. 그래서 진정 행복한 삶을 원한다면 이제는 생각 중독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요.

 

‘넌 너무 생각이 많아’ 주변 사람들로부터 제가 늘 들어온 말입니다. 조금 더 친분 있는 이에게는 ‘쓸데없는 생각 좀 하지’ 말라는 직언을 듣기도 여러 번입니다. 하지만 전 그 말을 듣고도 생각을 줄이지 못했습니다. 그때부터는 다시 제가 남들에 비해 생각이 많은 이유가 뭘까를 생각하기 시작했거든요. 그 이유를 알아야만 불어나고 비대해진 생각의 꾸러미를 줄여나갈 수 있다고도 생각했고요. 그런데 《생각, 의식의 소음》을 통해 “생각의 가장 큰 폐해는 거울의 방처럼 자기반영적인 생각의 악순환에 있다. (…) 중요한 것은 생각을 한 가닥 한 가닥 꼼꼼하게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통 크게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생각과 싸워 이기기 위해 생각의 링에서 생각과 격투를 벌이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는 말을 듣고 만 거죠.

 

 

그래서 지금 전,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 책의 다음 장을 넘기고 있는 것이고요.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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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뭐 읽니?] 강신주, 《감정수업》

 

 

강신주 | 《감정수업》 | 민음사 | 2013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 또 오늘과 같이 반복되는 저간의 날들입니다. 꽤 많은 시간을 지나왔음에도 그 시간들이 남긴 흔적이랄 게 별로 없는데요. 이미 며칠 전에도 저는 그 날이 그 날 같고 저 날과도 같아 허망해죽겠다고 투덜거린 바 있습니다. 이쯤 되면 제 삶의 동어반복도 이만저만이 아니네요. 그도 그럴 게 주말 내 푹 퍼지고 축 늘어져 침대를 뒹굴거리다 다시 오 마이 갓! 월요일이 되어 부랴부랴 일어나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며 하루 빨리 금요일 저녁이 오길 손꼽아 기다리는 여느 직장인의 일상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을 그 날의 다짐대로 기록하자면 또 못할 것도 없으나 기록해보아도 이 동어반복의 지긋지긋한 굴레를 피할 길은 딱히 없어 보인다는 게 또한 함정이겠습니다.

 

그렇게 판에 박힌 일상 탓만을 하고 있는 제게, 시대의 철학자 강신주가 나타나 질문을 던지네요. “당신은 자기 감정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가?” 

 

무엇보다도 감정이 먼저 움직여야만 합니다. 그래야 어떤 사람, 어떤 사물, 그리고 어떤 사건이 우리 시선에 의미 있는 것으로 들어올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감정이 움직이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떤 것에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한 채 만났던 것들은 우리의 기억에 별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였나 봅니다. “감정이 움직이지 않”으면 기억에도 남는 게 없을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지금 이 순간 내 감정이 무엇인지, 부지런히 살펴야만 내가 비로소 내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요. 날 추워지고 건조해졌다고 얼굴에 수분크림이나 찍어 바를 줄 알았지, 이래도 흥 저래도 흥 하며 매사에 무던해야 평온할 수 있다 믿어온 저입니다. 그런 제 태도가 오히려 “모든 것을 무감각이나 무감동의 상태로 흘려보내” 스치듯 기억 없이 지나간 어제들의 원인이 되었을 줄은 정말로 알지 못했네요.  

 

어른이 된다는 것, 그것은 감정을 억누르거나 죽이는 기술을 얻었다는 것 아닐까요? 매사에 일희일비하면 너무나 피곤해지는 것, 혹은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면 불이익을 받기 쉬운 것이 사회생활이지 가정생활이니까요. 그래서인지, 어른이 된 다음부터는 별로 기억나는 추억이 없는 것 같습니다. 감정이 움직여야 기억나는 것도 있을 테니 말입니다. 그냥 모든 것을 무감각이나 무감동의 상태로 흘려보내 버린 겁니다.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더 나이가 들어 오늘을 되돌아보았을 때 기억나는 것이 하나도 없는 삶이 말입니다. 억압되다 못해 이제는 거의 박제가 되어 버린 감정을 회복해야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한 번뿐인 삶을 제대로 영위하기 위해서지요. (머리말, 5-6쪽)

 

이제껏 몰랐다면 이제라도 배우면 될 일입니다. 요즘의 제가, 철학자들 중 거의 유일하게 ‘감정의 윤리학’을 옹호한 “스피노자의 시선으로 문학 작품들을 깊게 독해하” (25쪽)며 진행될 강신주의 《감정수업》을 펼쳐든 이유이기도 하고요.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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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뭐 읽니?] 조은, 《또또》

조은 | 《또또》 | 로도스 | 2013

 

어떤 만남을 두고 우리는 곧잘 말합니다. 어떻게 연이 다 닿았나, 인연인가 보다, 하고요. 그런데요. 꼭 사람 사이에만 해당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저는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사람을 봐도 같은 생각이 듭니다. 저들도 다 연이구나. 인연이구나. 같은 종간에도 만나지지 않고, 만난대도 잘 맺어지지 않는 게 사람 일입니다. 헌데 사는 세계가 다르다고도 할 수 있을 만큼 서로 다른 종이 가족이 된다니요. 부부의 연에 버금간다고 해야 하지 않겠어요? 저는 이런 경험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만 주변에서 그런 경우를 보아왔습니다. 예를 들면 개와 사람, 고양이와 사람, 새와 사람을요. 그 중에서도 《또또》는 개와 사람 간의 연을 이야기합니다.

 

제목의 ‘또또’는 이 책을 쓴 조은 시인이 한 강아지에게 붙여준 이름입니다. 젊은 시절, 시인은 사직동의 개량한옥에 홀로 세들어 살았습니다. ‘또또’는 그 집 주인 가족의 강아지였습니다. 하지만 만 원에 산 것이라며 하찮게 여기고 때리는 것을 알게 된 시인은 자신이 거의 데려다 기르다시피 합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과거에 돌보던 개를 떠나보내야 했던 아픈 기억이 있는 데다, 사람으로서 제 한 몸 건사하기도 어려운 때였으니까요. 시인은 부러 “녀석에게 마음을 주지 않기 위해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19쪽)던 적도 있습니다. 헌데 결국은 사람에게 상처 입은 ‘또또’를 받아들이며 그것이 자신에게도 위안을 주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나는 점점 침울해졌고, 늘 시선이 나를 향해 있던 또또는 빠른 속도로 가라앉는 내 기분을 눈치챘다. 그럴 때면 녀석은 내 팔에다 얼굴을 문지르곤 했는데, 그처럼 시시각각 내 기분을 빠르고 정확하게 알아차리는 존재는 일찍이 없었다. (57쪽)

 

이처럼 교감했던 ‘또또’와 시인, 둘의 연이 영원하지는 못했습니다. 아마 그들에게도 이별의 때가 오는 듯합니다. 시인은 그 시간까지도 《또또》에 담아냈다고 해요. 길지 않은 책이지만 그리 빠르게 읽어내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인연이라 할 만한 만남과 이별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 같아서요.

 

사람들과 나누는 마음은 여러 이유로 변덕이 잦았지만, 또또만이 고른 마음으로 내 옆에 있었다. 잡종개였던 또또만이 내가 누구와도 나눌 수 없었던 슬픔도 묵묵히 덜어내 줬다. 또또는 한 번도 내게 싫증을 내지 않았고, 죽을 때까지 나의 시시한 면면을 누설하지 않았고, 인간을 통해서는 줄일 수 없었던 내 아픔을 조용히 나눠 가지면서도 불평 한 번 하지 않았다. (…) 또또를 기억하는 나의 친구들은 하나같이 또또가 “우리에게 너무도 큰 선물”이었고 나와 사는 동안 “정말로 행복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나도 그렇게 믿고 싶다. (10쪽)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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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뭐 읽니?] 조셉 슈랜드?리 디바인, 《디퓨징》

 

 

조셉 슈랜드, 리 디바인 | 《디퓨징》 | 더퀘스트 | 2013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그 사람이 제 어깨를 툭 치고 가버렸거든요. 미.안.합.니.다. 간단한 사과 한 마디 없이 휙 이요. 나 원 참, 왜 이렇게 예의가 없는 거야? 제가 그러거나 말거나 그 사람은 그냥 제 갈 길을 가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화를 삭이지 못한 저는 그 사람의 뒤통수에 대고 으르렁거리기 시작합니다. 밀쳐진 어깨와 함께 돌아선 자세 그대로 두 눈에 힘을 잔뜩 주고 ‘내가 너 때문에 화가 난 거 안 보여?’라고 시위하듯이. 물론 그 사람, 이런 제 모습을 볼 턱이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불러다 세워 놓고 한 마디 하고 싶은 화기가 강렬해집니다. 하지만 마음처럼 실전하진 않습니다. 싸우는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하는 제 소심함도 소심함이지만 이 정도쯤이야 하고 저 또한 뒤돌아 제 갈 길 가다보면 금방 잊어버릴 일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혹시 그 사람, 사이코패스일지도 모르고요. (실없는 농담 같지만, 요즘은 가끔 이런 생각 정말 하게 됩니다. 세상이 워낙에 흉흉하지 않습니까...^^;;)  

 

대개의 분들이 저와 비슷하지 않을까 합니다.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그 자리에서 즉시 화를 표현하기보다 갈등을 피해 홀로 삭이는 편을 택할 거라는 거죠. 게다가 저 정도의 일에 화를 참지 못하고 폭발해버린다면 오히려 화를 내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예전 사람들에겐 화를 표현하지 못하고 참아서 걸리는 ‘화병’이 문제였다면, 현대인들에겐 화를 조절하지 못하고 폭발하는 ‘분노 조절 장애’가 더 큰 문제이다. 개인주의가 강해지면서 자기표현이 강조되고 있지만 역으로 과잉보호와 과도한 스트레스로 자기 통제력은 약해지다 보니 분노 조절을 못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숭례문 방화사건이나 ‘묻지마 범죄’처럼 엉뚱한 방향으로 불똥이 튀기도 하고, 분노가 내부로 향하여 게으름이나 무력감의 큰 원인이 되기도 한다. 게다가 한 조사에 따르면, 성인기에 분노 점수가 높은 사람들은 낮은 사람들에 비해 관상동맥질환에 걸릴 확률이 4~5배가량 높고 사망률도 훨씬 높다. 이렇듯 분노는 관계, 커리어, 교육, 건강, 사회적 안전 등 우리 삶 모든 면에 영향을 끼친다. (6쪽, 문요한, ‘이 책을 권하는 이유’ 중에서)

 

《디퓨징》은 “가장 자연스럽고 인간적”일 뿐 아니라 “인간의 생존과 자기 보호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적인 감정”인 “분노가 일어나서 끓어오르기 시작할 때 우리의 뇌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왜 그렇게 되고 이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뇌과학에 근거한 분노 해소의 기술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외부 상황과 타인에 그 원인이 있다고 여겼던 분노가 사실은 자기 안에 있는 질투심과 의심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이야기였는데요. 다행히 우리의 몸에는 그 분노를 이해하고 조절할 수 있는 내적 장치가 이미 마련되어 있다니, 불쑥불쑥 화가 나 어찌할 바를 몰랐던 분들도 크게 걱정하진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대신, 분노에 대한 공부는 좀 하셔야겠지만요.

 

생존을 위해서 우리 뇌 속에 굳게 자리잡은 분노는 짧은 시간 안에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강력한 감정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온전히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우리는 생각보다 분노를 잘 통제할 수 있다. 특히 자신의 분노를 알아차리고, 분노에 귀를 기울이고, 분노에 대해 생각할 때 좀 더 잘 통제할 수 있다. 화가 난 기분에 반응하여 어떤 길을 따를 것인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자신의 분노를 다스리고, 다른 사람들의 분노에 대처하는 것은 바로 이렇게 분노를 ‘느끼는’ 데에서 분노에 대해 ‘생각하는’ 것으로 관점을 옮김으로써 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디퓨징이다. (20쪽)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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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뭐 읽니?] 오카노 유이치, 《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

 

오카노 유이치 | 《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 | 라이팅하우스 | 2013

 

치매, 혹은 알츠하이머. 드라마나 영화에서 많이 묘사되는 이 병은 별로 실감나지 않습니다. 그런 식으로만 접했을 뿐 가까이에서 겪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겠죠. 갖은 증상이 있겠지만 걔 중에서도 기억을 잊어버리고 과거에서 살게 된다는 게 잘 상상되지 않기도 하고요. 이 사람, 오카노 유이치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어머니가 당사자가 되기 전까지는요.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부터 서서히 치매가 오기 시작합니다. 결국 요양원에 어머니를 맡기고 일주일에 두세 번씩 들락거리는 생활을 하는데요. 《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는 그 일상을 담은 만화입니다.

 

 

처음에는 허둥거렸을 겁니다. 어머니가 어린아이처럼 행동하고 자신을 잊어버리는 것이 안타깝기도 했을 테고요. 하지만 그는 곧 "살아있기만 하면 다 잊어버려도 괜찮아!"(29쪽)라고 생각합니다.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어머니의 이야기를 기록해 갑니다. 농가에서 태어나 나가사키에 시집온 그녀는 '나가사키 원폭'을 겪고 남편의 술버릇에 시달리며 두 아들을 어렵게 키워냈다고 해요. 이제 그녀는 그 시절에, 그보다 더 먼 시절에 머물 때가 많습니다. 오카노 유이치는 그런 어머니를 억지로 현실로 불러들이기보다는 옛날로 돌아가는 길을 함께 걸어갑니다. 그리운 유년을, 어머니의 추억을, 아버지의 또 다른 모습을 마주하게 하는 이 시간 여행은 자기 자신을 위로합니다. 지나갔대도 잊었대도 죽었대도 마음속에 살아 있는 것들이 비로소 느껴지는 것이죠. "그저 '조금씩 건망증이 심해지는 어머니'와의 일상을 우습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담담히 그려냈을 뿐"(208쪽)이었다는 이 만화는 또한 그가 다가올 어머니와의 이별에도 담담할 수 있는 연습이 되었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족의 시간 속에"(207쪽) 있는 우리에게도요.

 

근처의 작은 횡단보도 앞에 도착하면 어머니는 건너편을 가리키며 "네 아버지, 저기 서있어." 하고 중얼거리시는데 물론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는 벌써 십여 년 전에 돌아가시고 이 세상에 없는데. (…) 건너편으로 가버렸어도 한 사람 한 사람, 이쪽에서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고 이렇게 서로 접하며 말을 나눌 수 있는 한, 정말로 돌아가신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153쪽)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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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뭐 읽니?] 박완서, 《그리움을 위하여》

 

 

박완서 | 《그리움을 위하여》 | 문학동네 | 2013

 

어떻게 나이 들고 있는 걸까. 뭉텅, 하고 한꺼번에 인생의 시간이 떨어져나간 듯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지금 이대로 정말 괜찮은 건지를 따져 묻는 불안한 스스로와 마주하곤 하고요. 허투루 흐르는 세월 없다고도 하고, 그러면 흘려보낸 세월만큼 무언가는 분명 남겨져 있어야 할 텐데요. 어쩐지 그 말이 저에게만큼은 해당되지 않는 것 같은 거죠. 그도 그럴 게, 작게는 어제와 오늘 사이, 크게는 작년과 올해 사이에 변화라고 부를 만한 것이 과연 있었나 싶거든요. 눈에 띄게 늘어난 나잇살 빼고, 아무리 머릿속을 헤집어 봐도 헛일이기가 다반사고요. 

 

그래, 지난 시간들을 빠짐없이 건너오며 나는 내 삶의 무엇을 더하고 덜하였나, 그리하여 오늘에 남은 것은 무엇이고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나, 소득 없는 질문만 메아리처럼 반복하기 일쑤입니다. 그마저도 지치고 짜증스러워지면 당장에 마음 편해질 구석 찾아 소망으로 완성된 먼 훗날의 나로 냅다 도망쳐버리고요. 그렇게 먼 훗날의 나를 두고, 된 사람이라 부를 만한 이모저모의 덕목을 갖다 붙여놓습니다. 존경할 만한 어른의 형상을 만드는 거죠. 그런데 오늘, 이《그리움을 위하여》를 읽다가 그 어른이 박완서 선생님과 같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단편소설에서 감지된 사람과 삶과 세상에 대한 시선이 갖가지 인생을 두루 품는 큰 사람, 어른다운 어른의 모습으로 이어졌거든요. 

 

“선생의 손바닥 위에 올라가면 모든 게 다 문학이 되었다. 그 손으로 선생은 지난 사십 년 간 역사와 풍속과 이간을 장악해왔다. 그 책들을 읽으며 우리는 살아온 날들을 부끄러워했고 살아갈 날들 앞에 겸허해졌다. 선생이 남긴 수십 권의 책들은 앞으로도 한국사회의 공유 자산으로 남아 우리들 마음공부의 교본이 될 것이다.” _신형철(문학평론가)

 

물론 뭐, 해가 가고 나이 들수록 온통 싫은 것만 많아지는 통에 성 내는 일도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도 늘고 있는 저로선 언감생심 오르지 못할 나무라는 판단이 앞서긴 합니다만. 그래도 그곳에 지향을 두고 살고 또 살다보면 지금보다는 쬐끔, 더 나은 사람이 돼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른 한편, 지금의 저와 먼 훗날의 제가 선생님의 저 소설들 안으로 슬며시 들어가 앉아, 그래, 이 또한 삶이고 그런대로 괜찮은 거다, 조용히 위로받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그립다는 느낌은 축복이다. 그동안 아무것도 그리워하지 않았다. 그릴 것 없이 살았음으로 내 마음이 얼마나 메말랐는지도 느끼지 못했다. (44쪽, 〈그리움을 위하여〉중에서)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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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뭐 읽니?] 아사다 지로, 《온기》

 

 

아사다 지로 | 《마음이 머무는 온기》 | 을유문화사 | 2013

 

"따뜻한 게 따뜻해." 얼마 전, 친구의 손에서 새삼스레 온기를 느끼고 했던 말입니다. 그때는 딱 그 말만이 제가 느낀 감정을 표하는 데 적합하다 생각했었는데요. 조금 지나 다시 생각하니 그 친구, 늘 제 곁에서 따뜻해왔었습니다. 다만, 그 체온을 다르게 느낀 때마다의 제가 있었을 뿐인 거죠. 36.5도,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리고 특별히 아픈 데 없는 평소라면 언제나인 그 체온이 어느 날엔 사무치게 그립고 애틋하다가도 또 어느 날에는 징글맞게 뜨겁고 짜증스럽게 느껴지곤 하니까요.

 

마음이 머무는 《온기》, 이 책의 제목을 보고도 그랬습니다. "따뜻한 게 따뜻해." 따뜻함이 그리운 계절을 마침하여 사람과 사람, 그 인연의 온도를 글로 담아온 아사다 지로가 그간의 소설과 에세이, 대담 그리고 인터뷰 내용 중 특별히 '인간의 인연' 부분을 발췌해 한 권의 책을 내놓았는데요. 짧지만 진중하게, 인생과 신뢰, 스승, 사랑, 감사, 충(忠), 부모와 자식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글들이 사이사이 여백을 두고 그 자리에 독자를 불러다 앉힙니다.

 

"독서 습관이 없었다면 내 인생은 마치 게임 속의 캐릭터처럼 끊임없이 밀려오는 악연에 농락당했을 것이다. 인간의 인연은 참으로 불가사의하지만, 책을 통한 인연은 결코 독이 되지 않는다."는 말로 머리말을 마감하고 있는 그의 《온기》. 그 안에서 저는 생각지도 못한 인생의 표정들을 '해후' 또는 '조우'하면서 곰곰 들여다보는 여유의 시간을, 이미 마련해 음미하고 있습니다. 이를 테면, 이런 문장들을 곱씹으면서 말이죠. 

 

   지금까지 다양한 사람을 만나 왔는데, 공통점은 하층 계급인 사람일수록 밝다는 거야. 사람은 밑바닥으로 갈수록 밝아지지. 반대로 위로 올라갈수록 신기하게도 사람이 어두워져.

   무엇이 어두운가 하면, 다들 영원한 도련님 같아. 먹고 사는 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으니까 미래를 생각하지 않지. 이게 어두운 거야. '이 사람, 물질적으로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데 왜 이렇게 어두운 걸까?' 하는 생각이 들지. 남을 웃기는 것도 서툴러서 말이지, 우스갯소리를 해도 재미가 하나도 없어. 그래도 주위 사람들이 예의상 "하하하" 하고 웃어 주긴 하지만 말이야. 그에 비해서 하층 사회의 농담은 훨씬 재미있지.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말하자면 현실 도피니까. 현실 도피이자 현실 호도야. 웃지 않으면 울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으니까.
   웃음은 천성적인 것이기는 해. 하지만 상류 사회에는 진짜 웃음이 없어. 눈물을 모르거든. 그래서 웃음도 몰라. 그리고 울지도 않지. 눈물은 명백히 경험이야. 그래서 사람은 대체로 나이를 먹으면 점점 눈물이 많아지지(웃음).

 

- 『기다리는 여인』(인터뷰)-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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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뭐 읽니?] 글렌 칠튼, 《이상한 조류학자의 어쿠스틱 여행기》

 

글렌 칠튼 | 《이상한 조류학자의 어쿠스틱 여행기》 | 메디치미디어 | 2013

 

새, 하면 저는 모험의 서사가 떠오릅니다. 새를 타고 어딘가로 떠나는 이야기를 어릴 적부터 많이 접하잖아요. 그 중 기억에 남는 건 셀마 라게를뢰프의 소설 《닐스의 이상한 모험》입니다. ‘닐스’라는 말썽쟁이 소년이 요정을 괴롭히다가 그 벌로 손바닥만큼 작아지고, 이후 거위와 함께 기러기 떼를 따라다니며 갖은 일을 겪게 되는 내용인데요. 그야말로 고생길이 따로 없죠. 그런데도 거위의 등에 올라 하늘을 나는 ‘닐스’가 부러웠어요. 고생을 하더라도 그 모험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어쩌면 소설에서 그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상한 조류학자의 어쿠스틱 여행기》를 쓴 글렌 칠튼 정도라면 ‘닐스’에 근접한 사람이 아닐까요?

 

소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글렌 칠튼이 함께하는 새는 살아 있는 새가 아니라 오래 전에 멸종된 까치오리와 알의 표본이라는 겁니다. 그가 죽은 새의 길을 따라가게 된 계기는 한 식품회사에서 차와 커피에 끼워 팔았던 수집용 카드입니다. 어린 시절에 그는 열성적인 수집광이라 그 카드도 모았다고 해요. 1970년에 카드의 주제는 ‘위기에 처한 북미 야생 생물’이었는데 1번부터 4번이 멸종 조류였고, 바로 그 1번이 까치오리였답니다. 그때 이미 멸종된 지 80년을 넘어선 시점이었으니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이 지난 다음의 모험이 결코 쉽지는 않았을 겁니다. 둥지나 알의 표본을 통해 까치오리의 흔적을 확인하려는 노력은 때로 무효가 되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까치오리의 흔적을 찾으려던 내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다. 나는 래브라도 지역까지 갔지만, 오듀본의 아들이 까치오리 둥지를 발견했을 리 없다는 심증만 굳어졌다. 게다가 까치오리가 낳지도 않은 알을 찾느라 영국을 헤맸다. 이제는 운이 바뀔 때도 되었다. 나는 까치오리 박제들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과연 얼마나 많은 까치오리 박제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출판물을 살펴보니, 전 세계의 자연사박물관 곳곳에 50여 개의 표본이 흩어져 있지만 그중 일부는 소문일 뿐 실제로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었다. 하나는 이쪽에 있고 또 하나는 저 멀리 떨어져 있고 열두 나라이거나……, 열세 나라……,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나에게도 생활이라는 게 있고 생계를 꾸려나가야 하니, 시간깨나 걸릴 터이다. (61쪽)

 

그럼에도 글렌 칠튼은 포기하지 않고 까치오리 박제를 모두 조사하고 측정하는 모험에 나서기로 합니다. 이제는 볼 수 없는 새의 불완전한 역사에 살을 붙이기 위해서, 더불어 그 새를 멸종시킨 “전쟁과 파괴성과 밀반입, 사생아들, 영국의 가장 부유한 사람과 미국의 가장 부유한 살인범”(21쪽)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요. 이 모험의 끝이 어떻게 될는지 궁금해집니다. 거위 등 위에서 겪은 일은 ‘닐스’를 철들게 했습니다.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못살게 굴던 소년은 그들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워 나갔죠. 이 이상한 조류학자의 모험은 오늘날의 ‘닐스’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주게 될까요?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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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뭐 읽니?] 오마이뉴스 특별취재팀, 《마을의 귀환》

 

오마이뉴스 특별취재팀 | 《마을의 귀환》 | 오마이북 | 2013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 있는 큰집으로 가면”으로 시작하여 “밤이 깊어 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르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 깨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하고, 이렇게 화디의 사기방 등에 심지를 몇 번이나 돋우고 홍게닭이 몇 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릇목싸움 자리 싸움을 하며 히드득거리다 잠이 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츰 시누이 동세들이 육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으론 샛문틈으로 장지문틈으로 무이징게 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로 끝나는 시 ‘여우난 곬족’을 아시나요? 백석이 그린 이 풍경은 요즘 명절날에 찾아보기 힘든 것이 되었죠. 저마다의 일상을 먼저 챙기는 데다, 가족을 다 합한다고 해도 몇 안 되는 터라 백석의 시절만큼 북적거리지는 않을 겁니다.

 

가족 단위가 이러하니, 그들이 모여 사는 ‘마을’도 예전 같지는 않습니다. 우리 삶의 모습은 ‘마을’보다 아파트를 구획하는 ‘단지’ 개념에 더 익숙할 정도로 변화했어요. 이 변화가 꼭 나쁘다고 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좋다고도 할 수 없어!’라며 ‘단지’와 ‘마을’ 사이를 잇는 공동체의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을의 귀환》은 그들을 취재한 기록입니다.

 

서울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윗집, 아랫집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살아간다. 먹고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집’은 ‘잠자는 곳’과 동의어, ‘이웃’은 의미 없는 2음절의 단어가 되었다. 이런 곳에서 과연 마을공동체 만들기가 가능할까? (5쪽)

 

이 책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사례를 1부와 2부에 걸쳐 이야기합니다. 1부의 취재 지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표적인 대도시인 서울인데요. “2012년 8월 당시 취재팀이 집계한 주민중심·민관협력 마을공동체는 92개”에 이르렀다고 해요. 종류도 다양합니다. 마포구 성미산마을이나 관악구 임대아파트 공동체 같은 주거 중심 종합형이 주를 이루는가 하면, 용산구 용산생활협동조합 같은 상업·협동조합형과 성북구 정릉생명평화마을 같은 문화·예술형 공동체도 적지 않습니다. 이제 막 발동한 이들은 2부에서 소개하는 영국의 성공 사례를 훗날의 청사진으로 삼을 수 있을 겁니다. 어쩌면 그보다 더 포용력 있는 운동으로 발전할 수도 있겠고요. ‘마을의 귀환’이 필요한 데가 어디 서울뿐이겠어요? 전국에서 21세기 판 ‘여우난 곬족’을 마주하는 것도 그리 먼 일은 아닐 겁니다. 이들 사례가 서울 밖으로 흩어져 또 다른 마을공동체의 씨앗이 된다면요. 그리고 우리가 움직인다면요.

 

차에 치일 위기에 처한 아이를 위해 내 한 몸 던지는 일은 분명 자애로운 행동이지만 지속가능하지는 않잖아요. ‘이타심(Selflessness)’이 한쪽에 있다면 그 반대편에는 ‘이기심(Selfishness)’이 있어요. 그리고 그 중간에 ‘자신의 관심(Self-interest)’이 있고요. 자기 스스로 관심이 가고 중요하다고 여기는 일을 직접 해보는 거예요. 마을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어떻게 개인의 욕구를 사회적 욕구로 만들 것인가’라고 생각해요. (332쪽)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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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뭐 읽니?] 알베르토 망겔·자니 과달루피, 《인간이 상상한 거의 모든 곳에 관한 백과사전》

 

알베르토 망겔·자니 과달루피 | 《인간이 상상한 거의 모든 곳에 관한 백과사전》 | 궁리 | 2013

 

지도는 인류에 편리를 가져왔습니다. 교통수단이 여러 가지로 발달했고, 지구상의 모든 땅이 보다 긴밀해졌으며, 내가 있는 여기뿐만 아니라 네가 있는 거기가 어디쯤인지도 이제는 단번에 알 수 있죠. 이 무수한 편리의 요지는 무엇보다 길을 잃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개미의 더듬이, 고래의 초음파, 개의 코 같은 내비게이션을 타고나지 않은 인간에게 지도는 그것과 같은 역할을 하는 발명품이니까요. 그런데요. 달리 생각하면 지도 때문에 길 잃을 가능성이 사라졌다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구글 어스 덕분에, 이제 우리는 지구의 구석구석을 컴퓨터 스크린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 그 결과 우리는 더 이상 율리시스처럼 미지의 나라로 돛을 달고 떠나갈 수 없게 되었다. 단테가 율리시스의 입을 빌어 말하는 저 “미친 듯한 질주(folle volo)”(지옥편 제 26곡 125행)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아무것도 인간의 눈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9쪽)

 

《인간이 상상한 거의 모든 곳에 관한 백과사전》은 이런 인간의 지도에 대항하여 만든 지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구글 어스로 측정할 수 없는 또 다른 세계, 바로 상상의 장소를 담아낸 것이지요. 이 책을 만든 두 친구 알베르토 망겔과 자니 과달루피는 “기묘한 역사책들(특히 “만일 그랬다면 어땠을까” 하는 식의 가상 역사, 가령 만일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쟁에서 이겼다면, 한니발이 패배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등등)과 도감(圖鑑)류에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었”(10쪽)던 독서가였다고 합니다. 하루는 평소처럼 책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는데요.

 

어느 날, 자니는 내게 자기가 발견한 소설에 대해 이야기했다. 폴 페발의 《흡혈귀 도시》라는 작품이었는데, 자니는 그 흡혈귀 도시에 대한 일종의 관광안내서를 써보면 재미있겠다는 것이었다. (…) 우리는 즉시 작업에 착수하여, 페발의 도시에 가는 여행자를 위한 네댓 페이지의 안내서를 만들어냈다. 여기서 그만두라는 법이 어디 있어? 자니가 물었다. 다른 상상 도시들에 대해서도 안내서를 만들어볼 수 있지 않겠는가? 도시만이 아니라 나라들, 대륙들까지 넣지 말라는 법은 또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생각나는 대로 상상 속 장소들의 목록을 만들기 시작했다. 항목 수는 금방 수백 개에 이르렀다. 이 책은 그렇게 해서 시작된 것이었다. (10쪽)

 

참으로 탐나는 결과물 아닌가요! 이 책을 펼치자마자 저는 몹시 흥분하여 시험 삼아 이것저것 찾아보았습니다. “남쪽의 산맥과 북쪽의 황무지 사이에 펼쳐져 있는 땅.”(103쪽)이라는 ‘나니아’랄지, “미들어스 남동부의 황량하고 광대한 지역.”(307쪽)이라는 ‘모르도르’랄지, “직사각형의 큰 나라로, 동쪽의 먼치킨 나라, 서쪽의 윙키 나라, 남쪽의 콰들링 나라, 북쪽의 길리킨 나라로 나뉘어 있고, 이 네 나라가 만나는 한복판에 에메랄드 시가 있다.”(698쪽)라는 ‘오즈’랄지…… 물론 여기 인용한 내용은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이야기가 더 듣고 싶으실 테죠? 숨겨왔던 덕력이 꿈틀꿈틀 하실 테죠? 그렇다면 이 책 한 권을 가져버리는 수밖에, 다른 방법은 없답니다. 백과사전이란 게 원래 소장용이잖아요.ㅎ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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