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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9.19 [단편소설의 맛] 백가흠, <더 송(The Song)>

[단편소설의 맛] 백가흠, <더 송(The Song)>

삶이 휘청거릴 때가 있습니다. 그런 순간은 ‘○○○의 기습공격’처럼 갑자기 닥쳐옵니다. 사람들은 망연히 넋을 놓고 생각합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언제부터였을까. 그 원인을 알면 지금의 실패를 바로잡을 수 있다는 듯이, 불행을 비껴갈 수 있다는 듯이 말입니다. 인과(因果)라, 글쎄요. 실제로는 과거가 미래의 원인일 리도 없고, 미래가 과거로부터의 결과가 될 리도 없습니다. 삶에는 오로지 ‘나’라는 사람의 현재만이 존재할 뿐이지요. 그러거나 말거나, 어제를 후회하고 내일을 겁내는 존재 또한 사람입니다. 개개의 삶이 특정한 법칙대로 굴러가지 않음을 알면서도, 이들은 종종 얄팍한 인과율에 기대곤 합니다.

 

그런 사람을 한 명 알고 있습니다. ‘그’는 교수입니다. 하지만 학생을 성추행한 혐의로 파면 위기에 처해 있죠. 일터뿐만 아니라 어디에서도 ‘그’를 반기는 이 없습니다. 아내가 주도하는 이혼 소송이 진행 중이고, 은사의 장례식장에서는 누구도 반겨주지 않으며, 하루는 술김에 이웃집 문 앞에 소변을 누기까지 합니다. ‘그’는 자신의 삶에 너무너무 화가 납니다. 엉뚱하게도 “이 모든 일이 삼십 년 전 그 개 때문”이라고 확신합니다. 무슨 사연일까요? 백가흠의 단편소설, <더 송(The Song)>의 이야기입니다.

 

봄비치곤 꽤 큰 비가 내리고 있었다. (243쪽)

 

그는 속으로 ‘미현을 꼭 찾아서 가만두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270쪽)

 

《세계의문학 2011년 가을호》중에서

 

대학시절, ‘그’는 우연한 사정으로 ‘미현’의 개를 대신 돌본 적이 있습니다. 억지로 떠맡게 된 터라 (원래도 좋지 않았던) ‘미현’과의 관계는 날로 악화되었습니다. 결국 거리에 개를 버린 ‘그’는 며칠 후, 그 개가 동네 사람들한테 잡아먹혔다는 걸 알게 됩니다. 개의 이름은 ‘정구’인데요. ‘그’는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사라지지 않는 정구에 대한 부채감, 그것이 지금 자신을 망치고 있다는 생각”에 ‘미현’을 찾고자 합니다. 지난 밤, 은사의 장례식장에서 자신이 술에 잔뜩 취해 ‘미현’이 재작년에 죽었다는 사실을 들었음을 까맣게 잊은 채 말이죠. 이 모든 것이 비가 내리던 하루 사이의 일입니다.

 

“개건 사람이건 혼자 살아야 한다는 것은 자기 파괴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분열의 시간인 셈이다.”라는 말처럼 홀로 사는 이 삶에서 ‘그’를 망친 것은 실상 ‘그’일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잘못한’ ‘나’보다 ‘잘못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미현’ 혹은 ‘개’와 같은 대상을 어떻게든 개입시킵니다. 참 힘들게들 산다 싶죠? 어쩌면 더 힘든 것은 따로 있을지도 모릅니다. ‘나’를 마주보는 일, 그런 자신이 삶의 주체라는 걸 인정하는 일이요. 사람이라면 이 “분열의 시간”을 안고 살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런 삶이 계속되는 한, 백가흠도 넋 놓고 있는 독자들을 기습하듯 <더 송(The Song)>과 같은 소설을 써 나갈 테지요.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 백가흠
1974년 익산 출생. 200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등단. 소설집 《귀뚜라미가 온다》, 《조대리의 트렁크》, 《힌트는 도련님》, 장편소설 《나프탈렌》이 있음.

 

* 현재까지 발표작
<더 송(The Song)>
| 《세계의문학 2011년 가을호》에 게재
《나프탈렌》 | 현대문학 | 2012
《힌트는 도련님》 | 문학과지성사 | 2011
《조대리의 트렁크》 | 창비 | 2007
《귀뚜라미가 온다》 | 문학동네 |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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