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재는 여기!'에 해당되는 글 657건

  1. 2014.08.18 [그들의 서재 한쪽] 천문학자 이명현이 선정한 '여름밤에 읽기 좋은 책'
  2. 2014.06.30  [접어놓은 구절들] 결혼, 여름, 휴가
  3. 2014.05.27 [접어놓은 구절들] 이옥, 《연경, 담배의 모든 것》
  4. 2014.05.13 [들리는 블로그] 잭 케루악 * 길 위에서
  5. 2014.03.07 [詩로 물드는 오후] 나희덕, '어둠이 아직'
  6. 2014.03.05 [접어놓은 구절들] 너새니얼 호손, 《주홍 글자》
  7. 2014.02.24 [접어놓은 구절들] 함민복, 《눈물은 왜 짠가》
  8. 2014.02.14 [들리는 블로그] 신중현과 엽전들 * 나는 너를 사랑해
  9. 2014.02.11 [요즘 뭐 읽니?] 김종갑, 《생각, 의식의 소음》
  10. 2014.02.07 [詩로 물드는 오후] 황병승, '앙상블'

[그들의 서재 한쪽] 천문학자 이명현이 선정한 '여름밤에 읽기 좋은 책'

 

[그들의 서재 한쪽] 천문학자 이명현이 선정한 '여름밤에 읽기 좋은 책'
셰익스피어 전집 1- 희극I
봄날은 간다

 

 

여름이 너무나 빨리 지나간 것 같습니다. 덥다는 핑계로 게을렀는데, 여름은 무슨 핑계로 이렇게 부지런했을까요? 아쉽다면, 천문학자 이명현 선생님이 고른 책 두 권과 함께 남아있는 여름밤을 지내보시기 바랍니다!

 

 

* 《한여름 밤의 꿈》
여름철이면, 한 번씩 다시 읽는 책이에요. 읽으면 읽을수록 되게 신이 나요. 거의 이맘때가 되면 소리 내서 읽어요. 진짜 무더울 때 밤중에 막 꿈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아요.

 

* 《봄날은 간다》
최창근 작가 희곡집이 2년 전쯤 나왔는데, 이 분 희곡이 굉장히 시적이에요. 이 분 작품은 연극으로도 올라가지만, 낭독회를 많이 해요. 배우들이 앉아서 낭독하는데, 그때 굉장히 멋있어요. 최창근 작가의 작품은 마치 옛날 셰익스피어 작품 같아요. 이 책도 여름밤에 소리 내서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 인터뷰 더 보기

[서점에서 만난 사람] ☆ 별의 별 이야기 - 천문학자 이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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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접어놓은 구절들] 결혼, 여름, 휴가

 

카뮈의 산문 「결혼」에서는 바다 냄새가 난다. 소금맛이 섞인 압생트의 독한 술 기운까지 짙게 풍기니 뜨거운 젊음이 따로 없다. 나는 카뮈의 『결혼, 여름』 곁에 오오타키 에이치(大瀧詠一)의 음반 『A LONG VACATION』을 두었다. 결혼, 여름, 그리고 '휴가'라고 길게 말하면서 이미 충분한 만족을 넘치게 하고 싶었다. 카뮈는 부드러움과 영광이 노란 빛과 푸른 빛 속에서 서로 만나는 곳에 있다. 그곳에서 "아무런 가면도 쓰지 않"고 있다. 오오타키 에이치는 바닷물에 녹아버린 종이처럼 "나는 내가 누구인지도 잊어"버렸다.(' カナリア諸島にて ' 중에서) 어떻게 됐든 둘 다 바다를 바라보다가 흠뻑 취했다.

 

열기가 이글거리는 요즘, 술과 길고 긴 휴가 생각만 간절하다.

그게 바닷가에서 마시는 압생트라면, 거기가 지중해라면 어디든 걷고 싶다. 

계속 헛디뎌도 좋겠다.

 

"이 태양, 이 바다,젊음이 용솟음치는 이 가슴, 소금맛이 나는 나의 몸, 그리고 부드러움과 영광이 노란 빛과 푸른 빛 속에서 서로 만나는 장대한 무대장치가 바로 그것이다. (...) 여기서는 그 무엇도 내 본연의 모습을 그르치지 않는다. 나는 나 자신의 그 어느 부분도 버리지 않는다. 나는 아무런 가면도 쓰지 않는다." (「결혼」 중에서)

  

-

 

 

- 컨텐츠팀 에디터 정혜원 (hyewonjung@bn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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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어놓은 구절들] 이옥, 《연경, 담배의 모든 것》

 

 

이옥 지음, 안대회 옮김 | 《연경, 담배의 모든 것》 | 휴머니스트 | 2008

 

담배를 피우기 적절한 때
달빛 아래서 피우기 좋고, 눈이 내릴 때 피우기 좋다.
비가 내릴 때 피우기 좋고, 꽃 아래에서 피우기 좋다.
(…)
홀로 앉아 있을 때가 좋고, 친구를 마주 대하고 있을 때가 좋다.
책을 볼 때가 좋고, 바둑을 두고 있을 때가 좋다.
붓을 잡고 있을 때가 좋고, 차를 달이고 있을 때가 좋다.

 

흡연을 금하는 때
첫째, 어른 앞에서 피워서는 안 된다.
둘째, 아들이나 손자가 아버지나 할아버지 앞에서 피워서는 안 된다.
(…)
일곱째, 대중들이 모인 곳에서 혼자 피워서는 안 된다.
여덟째, 다급한 때 피워서는 안 된다.
(…)
열다섯째, 매화 앞에서 피워서는 안 된다.
열여섯째, 기침병을 앓는 병자 앞에서 피워서는 안 된다.

 

담배가 맛있을 때
기나 긴 겨울밤 첫닭 울음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이야기 나눌 사람도 없고, 할 일도 없다. 몰래 부싯돌을 두드려 단박에 불씨를 얻어 이불 속에서 느긋하게 한 대를 조용히 피우자 빈방에 봄이 피어난다.

 

담배 피우는 것이 미울 때
어린아이가 한 길이나 되는 긴 담뱃대를 입에 문 채 서서 피운다. 또 가끔씩 이 사이로 침을 뱉는다. 가증스러운 놈! (106~111쪽, 《연경, 담배의 모든 것》 중)

 

이백 년 전에 태어났다면, 나는 이옥에게 담배를 배우고 싶다. 함께 담배를 태우면서 찰나에 몰입하고, 마주 향하여 담배가 언제 맛있는지 구구절절 읊고 싶다. 조선시대 문신 이옥은 담배를 아주 좋아해서 ‘담배의 경전’이라는 책을 지었다. 흡연을 예찬하는 태도가 누구보다 진지하고 점잖다. 굳이 ‘흡연을 금하는 때’라는 법칙도 세웠다. 급하게 피워서는 안 되고, 매화 앞에서 피워서도 안 된다. 흡연의 고상함을 지키고 싶은 엄격한 마음이 보인다.

 

“흡연시 사진촬영 및 고발조치 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한국에서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경고문이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저렇게 ‘어마무시’한 경고문을 볼 때마다 민망하다. 흡연은 침묵과 완벽하게 어울리는데, 이처럼 금연을 권하는 자세에는 항상 소음이 낀다. 하지만 어쩌나, 여기는 ‘우리 모두의 건강을 위해 흡연을 삼가자는’ 곳인 것을.

 

- 컨텐츠팀 에디터 정혜원(hyewonjung@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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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는 블로그] 잭 케루악 * 길 위에서

 

 

《그러나 아름다운》을 읽고 나는 재즈처럼 글을 쓰고 싶다고 간절히 생각했었다. 맞춤법과 표준에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글을 마음껏 연주할 수 있다면. 습관을 따르는 이상 작가는 재즈를 할 수 없을 것이다. 잭 케루악은 기어코 재즈를 썼다. 《길 위에서》에는 갖은 방랑이 등장하고, 떠도는 이들이 돌려 마시는 술병과 같이 곳곳에 재즈가 떠든다. 부패한 세상에서 술렁이는 삶들은 모범에 애써 기대지 않는다. 하고 싶은 대로 움직일 뿐이다. ‘비밥(bebop)’처럼. 나는 《길 위에서》에 흐르는 재즈를 따라가며, 규칙을 따르지 않는 활자를 또 한 번 꿈꾼다.      

 

 

1. 덱스터 고든과 워델 그레이의 《더 헌트》

   (Dexter Gordon & Wardell Gray, 《The Hunt》, Live 1947)


 

 

 

 

- 1947년에 녹음했고, 1977년에 처음 발매된 앨범 《The Hunt》. 격렬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기로는 1등인 딘이 듣고 분명 좋아했을 음악이다.


 

 

 

─ 그들이 게걸스럽게 먹어 대는 동안 딘은 샌드위치를 손에 들고 고개를 숙인 채 거대한 축음기 앞에서 펄쩍펄쩍 뛰면서 내가 얼마 전에 산 《더 헌트》라는 격렬한 비밥 음반을 들었다. 소리 지르는 청중 앞에서 공연장이 떠나가라 불어 젖히는 덱스터 고든과 워델 그레이의 환상적이면서도 폭발적인 연주가 담긴 음반이었다.

 

 

2. 빌리 할리데이의 ‘lover man’ (billie holiday ‘lover man’)


 

- 《길 위에서》는 재즈의 여러 장르 중에서도 비밥이 제일 많이 등장한다. 기성에 따르지 않고 좋아하는 것을 굽히지 않는 딘과 샐이 비밥의 리듬과 닮았다. 그 와중에 테리와 샐의 사랑은 비밥이 아니다. ‘lover man’을 부르는 빌리 할리데이의 목소리가 테리의 비운한 삶을 더욱 슬프게 울린다.


 

 

─ 그들은 쓸모없는 남편을 버리고 조니를 자기들에게 맡겨둔 채 LA로 가 버린 테리를 창녀라고 욕했다. 노인네가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위대한 농경민족이라면 세상 어디서나 그러하듯 우울하고 뚱뚱한 갈색 피부의 어머니가 나서자 모두 조용해졌고, 결국 테리는 집에 돌아와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오빠들이 흥겹고 빠른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춥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속에서 몸을 웅크린 채로 10월의 슬픈 포도원 너머의 계곡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지켜보았다. 내 마음은 빌리 할러데이가 불렀던 저 위대한 노래 ‘사랑하는 남자’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수풀 속에서 나만의 음악회를 가졌다. “언젠가 우리 만나면 그대 내 눈물 모두 마르게 해 주겠죠. 내 귓가에 달콤한 얘기를 속삭이며 나를 안고 키스해 주겠죠. 오, 우리가 잃어버린 건 무엇인가요. 사랑하는 남자여, 오, 그댄 어디 있나요… ….” 노래 가사보다는 탁월한 화음과 부드러운 전등 빛 아래서 애인의 머릿결을 쓰다듬는 여인 같은 빌리의 창법이 멋진 곡이었다. 바람이 울부짖었고 추위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3. 조지 시어링

 

 

 

- 조지 시어링은 딘과 샐이 시카고에 처음 도착한 날, 밤에 비밥을 들으러 갔을 때 신처럼 등장한다. 《길 위에서》의 모든 줄거리에서 비밥이 가장 강력하게 울리는 대목이다.

 

 

 

 

─ 갑자기 딘이 무대 건너편 코너의 어두운 곳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샐, 신이 강림했어.”
나는 보았다. 조지 시어링. 언제나처럼 눈먼 머리를 창백한 손에 기대고, 두 귀를 코끼리 귀처럼 활짝 열고, 미국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영국의 여름밤처럼 호흡을 하고 있었다. 얼마 안 있어 모두 제발 연주를 해 달라고 졸랐고, 그는 응했다. 무수한 코러스를 경이로운 코드로 연주하자, 그것은 점점 위로 올라가 마지막에는 땀이 피아노 전체에 튀어서 모두 전율과 공포 속에서 귀를 기울였다. 그는 한 시간 후 사람들의 손을 빌려 무대를 내려갔다. 신 같은 시어링이 어두운 코너로 돌아오자 녀석들은 저러고 난 뒤에는 아무것도 못 하겠어.” 하고 말했다.

 

* 발췌한 문장은 모두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 중에서.

 

 

* 영화 < On The Road>, 2012

 

 

 

   △ < on the road > OST, 2012 

 

- 컨텐츠팀 에디터 정혜원 (hyewonjung@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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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물드는 오후] 나희덕, '어둠이 아직'

 

 

 

나희덕 |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 문학과지성사 | 2014

 

어둠이 아직

 

 

얼마나 다행인가

 

눈에 보이는 별들이 우주의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은 암흑물질이
별들을 온통 둘러싸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그 어둠을 아직 뜯어보지 못했다는 것은

 

별은 어둠의 문을 여는 손잡이
별은 어둠의 망토에 달린 단추
별은 어둠의 거미줄에 맺힌 밤이슬
별은 어둠의 상자에 새겨진 문양
별은 어둠의 웅덩이에 떠 있는 이파리
별은 어둠의 노래를 들려주는 입술

 

별들이 반짝이는 동안
눈꺼풀이 깜박이는 동안
어둠의 지느러미는 우리 곁을 스쳐가지만
우리는 어둠을 보지도 듣지도 만지지도 못하지

 

뜨거운 어둠은 빠르게
차가운 어둠은 느리게 흘러간다지만
우리는 어둠의 온도도 속도도 느낄 수 없지

 

얼마나 다행인가
어둠이 아직 어둠으로 남아 있다는 것은

 

 Stargazing at Sokcho, #19, 1999, 권부문(www.boomoon.net)

 

지금 시각, 오후 3시 21분. 해가 떠 있을 시간이며, ‘어둠이 아직’이다.
어느 작가의 고백처럼 *나는 밤을 사랑한다. 어둠이 언제 올지 모르지만, 매일같이 어둠이 깔리는 밤을 기다린다. 올 때까지 기다리고야 마니, 열렬한 사랑이다. **우리 대부분은 혹시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고 명상할 여유도 없이 그저 존재하기 위해 애쓰며 산다. 어둠은 온도에 맞춰 속도를 갖추듯 시간과 공간의 틀에서 벗어나 있다. 다행히도 어둠만은 인간에게 명상할 여유를 허락한다. 별의 입술을 통해 노래를 들려주고, 별의 손잡이를 통해 캄캄한 세계의 문을 열어놓는다. “보지도 듣지도 만지지도 못하지”만, 결국, 오늘도 사랑을 바쳐가며 어둠을 기다리기로 한다. 어둠이 오면, 어둠 속으로 달려가 “어둠의 상자”를 꺼내보고, 낮에 했던 말들을 돌아볼 것이다. “어둠이 아직 어둠으로 남겨져”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93쪽
**크리스토퍼 포터, 《당신과 지구와 우주》, 60쪽

 

- 컨텐츠팀 에디터 정혜원(hyewonjung@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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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어놓은 구절들] 너새니얼 호손, 《주홍 글자》

 

 

너새니얼 호손 | 《주홍 글자》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

 

“여태까지 엄마는 제 딸에게 일편단심으로 애정을 쏟으면서도 그 애한테서 4월의 춘풍 같은 변덕스러움 그 이상을 바라지는 않으려고 애써왔다. 봄바람 같은 아이는 유쾌하게 노닐며 시간을 보내다가도 갑자기 종잡을 수 없는 정열을 뿜어낸다. 또 제법 기분이 좋다가도 별안간 성을 내기도 하고, 포옹을 해줄 때면 저도 같이 안아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쌀쌀맞게 대하기 일쑤다. 이렇듯 제멋대로 굴다가도-무슨 속셈인지 알 수 없지만- 이따금 부드럽게 볼에다 입을 맞춰 주고 머리칼을 귀엽게 어루만져 주면서 가슴속에 꿈결 같은 쾌감을 안기고는 이내 딴전을 피우며 한가로이 다른 일에 몰두하곤 한다. 이것은 딸의 성격에 대한 엄마의 평가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라면 상냥하지 못한 성미만을 알아 보고서 그 아이의 성격을 실제보다 훨씬 더 어둡게 관찰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즈음, 유달리 조숙하고 예민한 펄이 엄마의 어엿한 친구가 될 수 있고 엄마의 슬픔을 있는 그대로 말해도 엄마에 대한 존경심을 잃지 않을 나이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헤스터의 머릿속에 뚜렷이 떠올랐다.” (236~237쪽, 《주홍 글자》15장 '헤스터와 펄' 중)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게 되는 건 엄마의 미소다. 미소의 형상을 정확히 생각해낼 순 없다. 다만, 인간이 지을 수 있는 미소 중에 가장 보배로운 미소가 어떨지는 그려 볼 수 있다. 엄마는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난 ‘어른’이었다. 처음으로 웃어주고 손을 잡아준 어른. “일편단심으로 애정을” 쏟아주었기에 나는 당신이 올바른 어른인지 아닌지 가늠하지 않아도 된다. “별안간 성을 내기도 하고”, “같이 안아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쌀쌀맞게 대하기 일쑤”일 때도 변하지 않으셨던 분. 엄마에겐 엄마라서 아는 것, 당신만이 아는 것이 있었다. 오늘 우산을 갖고 가야 할지, 소금을 얼마나 넣어야 맛있는 요리가 될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엄마에겐 많았다. 또한, 엄마가 다른 사람도 아닌 ‘우리 엄마’라서 아는 것도 있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훨씬 더 어둡게 관찰했을” 자식의 성미를 당신의 자랑으로 기꺼이 받아들이셨다. 내가 언제 “어엿한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여겼는지, “슬픔을 있는 그대로 말해도” 된다고 믿었는지 엄마께 묻고 싶다. 학교에서, 사회에서 오만 잡동사니를 배워와도 엄마 앞에서는 또 모르는 게 생긴다. 당신도 내가 처음이었다는 건 아는데.

 

- 컨텐츠팀 에디터 정혜원(hyewonjung@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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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어놓은 구절들] 함민복, 《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 | 《눈물은 왜 짠가》 | 책이있는풍경 | 2014

 

 

나는 한동안 멈춰 서 있다가 그냥 집에서 먼 곳으로 가자고 마음을 내지릅니다. 다시 멈춰섭니다. 마음만도 무거워 어디로 갈지 방향이 서지 않는데 발목을 잡고 그림자가 질질 끌려 옵니다. 그림자를 만만히 봐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림자가 날 미행하는 것 같아 휙 뒤돌아서면, 그림자는 어느새 내 앞에 서서 나를 끌고 가는 포즈를 취합니다. ‘이놈 봐라, 제깟 놈이 한번쯤 뒤돌아보겠지.’ 여기고 뒷걸음치면 그림자도 따라서 뒷걸음을 칩니다. 뒷걸음치는 그림자를 넘어뜨려 보려고 그림자의 뒷무릎을 노리며 살짝 주저앉으면 영악한 그림자도 따라 앉아 버립니다. 나는 부아가 치밀어 누워 있는 그림자를 자빠뜨려 일으켜 세워 보려고 한 발로 겅중겅중 뛰어 봅니다. 그림자도 따라서 뛸 뿐 한 발이라고 쉽사리 넘어지지 않습니다. 나는 그림자 떼어놓기를 포기하고 맙니다.

(128~129쪽 '새소리에 그림자와 외출한 어느 날' 중)

 

나는 혼자 참 열심히 뭘 한다. 자화자찬이 아니라 혼자 꾸준히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그걸 의무처럼 생각한다. 시간과 마음만 있으면 집을 나섰다. 가자고 정한 곳이 확실할 땐 어딜 가든 발걸음이 가벼웠다. 발걸음처럼 그림자도 명랑해 보였다. 빛에 비쳐서 그림자가 커질 땐 내 모습이 근사해 보일 정도였다. 영화 <해롤드와 모드>에서 모드 할머니가 꽃을 보며 했던 말이 기억난다. “자라는 걸 보고 있는 게 좋아.” 스스로 정한 ‘할 일’이 분명하고, 계획대로 살았던 날엔 커졌다가 작아졌다 하는 그림자를 보고 있는 게 좋았다. 마음과는 다르게 척척 잘 안 되는 날도 있다. 그런 날엔 뭘 해도 안 된다. 가려 했던 곳은 하필 휴무거나, 더한 경우, 지갑을 놓고 나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거나.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이 거리 저 거리 쑤시다가 뭐라도 걸려라, 하면서 돌아오는 거다. 하필이면 그림자도 근사하게 쑥쑥 자라긴커녕 아메바처럼 “질질 끌려” 다닌다. 나는 그림자를 내 마음처럼 본다. 마음이 확고할 땐 그림자를 또렷하게 만들고 가만히 바라봤다. 흡족해하면서. 걸어 다니면서 접하는 모든 것들이 하나같이 얄궂은 날, 머리에 모래주머니를 찬 것처럼 마음을 들고 다니는 게 무거웠다. 마음 한번 참 한결같지 못하다. 가장 만만치 않은 것이 내 마음이고 내 그림자다.

 

- 컨텐츠팀 에디터 정혜원(hyewonjung@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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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는 블로그] 신중현과 엽전들 * 나는 너를 사랑해

 

 

신중현과 엽전들 「나는 너를 사랑해」

 

 

 

해아좋를 너는나 (나는 너를 좋아해)
해랑사를 너는나 (나는 너를 사랑해)
해아좋를 너는나
해랑사를 너는나
해아좋를 너는나 (나는 너를 좋아해)
해랑사를 너는나 (나는 너를 사랑해)
해아좋를 너는나
해랑사를 너는나

 

또 발렌타인데이입니다. 어렸을 적 두근거렸던 마음은 한두 살 먹어 가면서 초콜릿처럼 딱딱히 굳어버렸지만요. 발렌타인데이가 오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초콜렛을 만들지는 못해도 온 우주를 통틀어 단 하나뿐인 편지를 쓰고자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할 말은 딱 두 개였는데 말이죠. ‘좋아해’와 ‘사랑해’. 편지를 채운 건 「나는 너를 사랑해」의 가사처럼 좋아한다는 말과 사랑한다는 말뿐이었습니다. ‘좋아해’를 이렇게도 말해보고, ‘사랑해’를 저렇게도 불러보고.

 

발렌타인데이의 올바른 한국어 표기법은 ‘밸런타인데이’입니다. 어떻게 부르든 2월 14일은 사랑하는 사람끼리 선물이나 카드를 주고받는 날입니다. 연인 사이에 ‘발렌’인지 ‘밸런’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올해 2월 14일엔 거꾸로 말 해보세요. 뜻은 같으니까요. “해랑사를 너는나”

 

- 컨텐츠팀 에디터 정혜원 (hyewonjung@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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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뭐 읽니?] 김종갑, 《생각, 의식의 소음》

늘,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나와 관련되어 불명확하고 모호한 상태로 남아있는 것들을 없애나가야 한다고요. 이를 테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오래된 정체성의 문제를 꼽을 수 있겠죠. 혹은 지난날 무엇보다 나를 진지하고 심각하게 만들었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질문도 있겠고요. 하지만 이렇듯 정체성이나 사랑 등 거창한 주제가 아니래도 저는 늘 어떤 생각에서 어떤 생각으로 건너가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는 중입니다. 그 말은 무슨 뜻일까, 왜 그렇게 말했을까, 왜 나는 불쾌해졌을까,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까 등. “궁극적으로 보면 (…) 먹고살기 위해서, 그냥 먹고사는 것이 아니라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 (16쪽), 말하자면 행복한 삶을 위해서 ‘생각’이라는 ‘외로운 사업에 골몰’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 외로운 사업
생각은 생각을 낳는다. 한번 생각이 구르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그래서 거울의 방처럼 생각의 프레임에 갇혀 빠져나갈 수가 없다. 이상에게 거울은 자의식의 상징이었다. 그의 「거울」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잘은모르지만외로운사업에골몰할게요/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마는/또꽤닮았소” 외로운 사업이 생각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이 외로운 생각의 악순환!
= 르네 마그리트, 「금지된 복제」(1937)

 

지금 전, 생각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있습니다. “생각이 행복에 백해무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만났거든요. 그는 “외로운 생각의 악순환”에 빠져 있는 제게 “생각은 의식의 소음이다. 이것을 잡념이라고 말해도 좋다. (…) 생각의 8할, 아니 99%가 삶의 소음이다. 의학이 눈부시게 발달한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생각의 소음을 스트레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소음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봄에 황사를 뒤집어쓰듯이, 남들이 잠든 조용한 시간에도 생각의 소음을 뒤집어쓰고 있다.”고 말합니다. 또한 “불행에 대한 과민반응과 절대적인 행복의 요구가 결합”돼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생각! 생각! 생각!” 하도록 부추기는 현재의 사회에선 “행복과 불행의 드라마도 생각의 극장에서 상연이 되”“자칫하면 생각 스트레스의 무게에 다리가 꺾일 수도 있”다고 경고합니다. 그래서 진정 행복한 삶을 원한다면 이제는 생각 중독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요.

 

‘넌 너무 생각이 많아’ 주변 사람들로부터 제가 늘 들어온 말입니다. 조금 더 친분 있는 이에게는 ‘쓸데없는 생각 좀 하지’ 말라는 직언을 듣기도 여러 번입니다. 하지만 전 그 말을 듣고도 생각을 줄이지 못했습니다. 그때부터는 다시 제가 남들에 비해 생각이 많은 이유가 뭘까를 생각하기 시작했거든요. 그 이유를 알아야만 불어나고 비대해진 생각의 꾸러미를 줄여나갈 수 있다고도 생각했고요. 그런데 《생각, 의식의 소음》을 통해 “생각의 가장 큰 폐해는 거울의 방처럼 자기반영적인 생각의 악순환에 있다. (…) 중요한 것은 생각을 한 가닥 한 가닥 꼼꼼하게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통 크게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생각과 싸워 이기기 위해 생각의 링에서 생각과 격투를 벌이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는 말을 듣고 만 거죠.

 

 

그래서 지금 전,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 책의 다음 장을 넘기고 있는 것이고요.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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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물드는 오후] 황병승, '앙상블'

 

황병승 | 《육체쇼와 전집》 | 문학과 지성사 | 2013

 

앙상블

 

골방의 늙은이들은 우물쭈물하지
죽음이 마치 올가미라도 되는 양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며 울음을 터뜨리는 아가들
인생이 마치 가시밭길이라도 되는 양

 

알약을 나눠먹고 밤거리를 배회하는 소녀들
환각이 마치 지도라도 되는 양

 

편지를 받아든 군인들은 소총을 갈겨대지
이별이 마치 영원이라도 되는 양

 

술에 취해 뒹굴며 자해하는 노숙자들
육체가 마치 실패의 원인이라도 되는 양

 

각별하고 깊은 감정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침묵이 마치 그 해답이라도 되는 양

 

놀람 속에서 바라보는 시인들
순간이 마치 보석이라도 되는 양

 

집으로 가던 중 내려야 할 정거장에 부러 안 내릴 때가 있다. 너무 많이 먹어서 바지 단추조차 버거운 날, 소화라도 시킬 겸 한 정거장 전에 기어코 내린다. ‘몇 키로 걸었으니 몇 그램이라도 빠지겠지’ 하는 위안 삼아 걷는다. 체중계에 올라 서 보진 않지만, 마음의 무게만은 던다. 내려야 할 정거장에 ‘못’ 내리는 날도 있다. 과격하게 머리를 흔들며 자다가 놓칠 때, 온몸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지쳐버린 날. 걸어간다. 불량한 손님 같았던 나 자신에게도 사과한다. 그러니까, 한 정거장 더 걷는 건 그 날 내가 연주하고 싶은 “앙상블”이다. 지치면 지친 대로, 버겁다면 좀 유연하게.

 

"가시밭길" 위에 터뜨려 놓는 아가들의 "울음", 소녀들의 몽롱한 배회, 군인들의 갈김도 어쩔 수 없는 그 날의 앙상블. 그들과 리듬이 같아 한 멜로디로 울리는 날이 있다. 그럴 땐 한 정거장 일찍 내린다. “각별하고 깊은 감정”들은 종종 묵묵한 걸음에서 왔었다. 걷다 보면, 어긋난 앙상블을 감싸줄 제 박을 찾는다. 세상에 꼭 필요한 시를 쓰는 시인처럼, 실패한 자태들을 안아주고 싶어진다. 

 

- 컨텐츠팀 에디터 정혜원 (hyewonjung@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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