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책/음반'에 해당되는 글 1500건

  1. 2015.01.09 《포기의 순간》 - 먼저 이 추위에 맞서
  2. 2015.01.08 《米洲의印象》 - 1909년, 뉴욕의 김동성을 기리며
  3. 2015.01.07 《사포》 - 아슬아슬하게 아찔하게
  4. 2015.01.06 《그게 누구였는지만 말해봐》 - 겨울 바람 때문에
  5. 2015.01.05 David Guetta 《Listen》 - 전자음악의 거장, 소울의 향기와 함께 돌아오다
  6. 2015.01.02 《장서의 괴로움》 - 내 방엔 책이 너무도 많아
  7. 2014.12.31 《폴링 인 폴》 -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8. 2014.12.30 《50일 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 미술을 알면 즐겁지 아니한가
  9. 2014.12.29 《길 위의 철학자》 - 누구든 혼자 힘으로
  10. 2014.12.26 《빨간 집》 - 우리 가족을 소개합니다

《포기의 순간》 - 먼저 이 추위에 맞서

 

 

 

필립 베송 | 《포기의 순간》 | 문학동네 | 2011

 

포기의 순간이 구원의 순간이 될 수 있을까. 필립 베송의 소설 《포기의 순간》은 가장 비극적인 사고에서부터 오히려 구원의 빛을 얻게 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영국 해안의 작은 마을 팰머스에 그가 돌아온다. 토머스 셰퍼드, 아들을 죽인 살인자. 그가 5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5년 전 토머스 때문에 마을의 이미지를 훼손당하고 상처를 입었던 팰머스 사람들은 그의 귀향을 반기지 않는다. 대놓고 그를 무시하고 따돌린다. 하지만 토머스는 고향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 고향에서 누군가를 기다려야만 했다. 그는 묵묵히 하루하루를 견뎌낸다. 한편 마을에서 유일하게 토머스를 사람답게 대해주는 건 그와 마찬가지로 ‘이방인’ 취급을 당하는 파키스탄인 가게 주인과 어느 미혼모이다. 토머스는 그들을 신뢰하기로 하고 자신의 과거를 고백한다. 그리하여 5년 전에 일어났던 비극적 사건의 전말과 현재 토머스가 기다리고 있는 게 누구인지가 드러난다.

 

《포기의 순간》은 비극적인 상황에서 출발한다. 5년 전 토머스가 사람들에게 잡혀가는 순간부터 다시 돌아온 후의 상황이 어둡고 서늘한 해안 마을의 풍경과 맞물려 비장하면서도 비관적으로 그려진다. 독자들은 토머스가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지, 다시 사회에 녹아들 수 있을지를 궁금해한다. 하지만 소설은 독자들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끌고 간다. 사건의 전말과 함께 드러나는 건, 토머스가 이미 오래전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팰머스는 웅덩이에 고여 있는 물 같은 곳이다. 칙칙하고 냄새나며 어딘지 썩어 있는 모양이다. 팰머스의 남자들은 과묵하고 거칠다. 여자들 역시 매섭고 쌀쌀맞다. 팰머스는 한 번 태어나면 벗어날 수 없는 곳이다. 그곳 주민들은 거기서 평생 뱃사람으로, 평생 누군가의 아내로만 살아간다. 그것이 팰머스라는 마을을 이루는 중심이자 핵심이다. 하지만 토머스는 달랐다. 그는 늘 중심과 명확한 것을 경계했다. 토머스의 평생 연인이었다가 그와 결혼까지 한 메리앤은 사실 토머스 몰래 바람을 피웠다. 토머스는 자신의 아이인 줄 알았던 아들이 사실 메리앤이 바람을 피워 임신한 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미 기울기 시작했던 결혼 생활은 그 이후 최악의 상황을 달리기 시작한다. 토머스는 자신이 알게 된 사실을 메리앤에게 밝히지 않는다. 그들의 가정은 거짓말과 위선에 잠식당한다. 하지만 팰머스 사람들은 이혼하지 않는다. 아이가 있다면 더더욱. 어느 날 토머스는 이 모든 게 누군가 죽는다면 끝이 나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토머스는 절대 아이를 죽이지 않았다. 다만 그런 생각을 잠시 했었다. 그러나 아이를 보는 순간 토머스는 그런 생각을 접었다. 아이가 죽은 건 순전히 사고였다. 토머스는 과실치사로 5년형을 선고받았던 거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에게 토머스는 그저 아들을 죽인 살인자일 뿐이고, 토머스에게도 그 자신은 어찌되었든 마음의 죄를 지은 사람이다. 유죄이지만 사실은 유죄가 아니고, 무죄이지만 진짜 무죄는 아닌 것이다.

 

작가인 필립 베송은 다음처럼 말했다. "나는 비극적 사건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며 다루고 싶었다. 그리고 죽음이 인간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러니까 이것은 내 소설 중 가장 낙관적인 내용이 될 것이다." 토머스는 항상 아이를 마음에 안고 살아간다. 그러나 소설을 읽어갈수록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건, 토머스가 얼마나 불행하고 음울한 사람인가가 아니라 그가 얼마나 희망과 기대에 차 있는 사람인가, 이다. 필립 베송은 또한 이런 말도 했다. "틀에 박힌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쩌면 불의의 사건을 겪어야 하는 건 아닐까요?" 마음속으로만 경계를 좋아하던 토머스는 불의의 사건을 겪고 강제로 경계 밖에 내쳐진다. 하지만 그 경계 밖에 처하고서야 토머스는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깨닫고 그것을 받아들인다. 사람들은 중심 속에서 중심 밖에 있는 그를 욕하지만 그는 그 욕에 맞서 당당히 걸어가기로 마음먹는다. 그가 기다리는 사람은 감옥에서 만났던 루크라는 남자다. 토머스는 팰머스에 그가 찾아오리라는 확신 찬 기대를 가지고 하루하루를 기다린다.

 

국내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필립 베송은 프랑스에서 대중과 평단의 사랑을 고루 받고 있는 스타작가다. 그의 문체는 간결하면서 밀도는 높고 단단하다. "간결한 단어, 요동치는 문장, 그리고 폭풍주의보." (베르지옹 페미나)라는 말에 깊이 공감하는 바이다. 필립 베송의 가장 낙관적인 이 작품은 실로 사람들이 가장 비극적일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하는 상황 속에서 낙관을 얘기하며 독자들에게 놀라움을 안긴다. 소설 속 토머스가 무죄이면서 무죄가 아니듯이, 그에게 어떤 동정을 표하기란 조금 어렵다. 하지만 그 낙관, 중심을 벗어나 경계로 당당히 걸어가겠다는 그 의지에는 마음을 뺏긴다. 《포기의 순간》은 구원과 낙관이라는 것이 단지 환상이나 상상은 아니라고 얘기한다.

 

감옥에서는 눈이 오건 바람이 불건 얼얼한 추위가 살을 에건, 그 모든 요소로부터 보호를 받았다. 그곳에서는 한쪽만 문이고 나머지는 벽이다. 나는 바깥세상에, 이 바깥세상의 공격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시련에 맞서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한다는 걸 새로운 교훈처럼 깨닫는다. 그래, 먼저 이 추위에 맞서자. (50쪽)                               

 

오늘의 책을 리뷰한 '파수꾼'님은?

호밀밭을 뛰놀고픈 자유로운 영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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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米洲의印象》 - 1909년, 뉴욕의 김동성을 기리며

 

김동성 | 《米洲의印象》 | 현실문화 | 2015

 

김동성 선생이 쓴 ‘미주의 인상 (米洲의 印象)’ 을 읽었습니다. 선생은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넘은 그 당시, 약관의 나이에 미국이라는 나라를 여행하였습니다. 동양의 이방인으로서 서양문명을 겪었고, 영리한 양키들의 생활 모습을 정확한 판단과 안목으로 그려냈습니다.

 

선생이 살았던 당시 이 땅의 사정을 고려해보면, 심히 엄청난 일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수없이 봉우리 진 뉴욕의 시가지에서 선생은 자신을 ‘관청에 잡혀 온 촌닭’이라 하였으나, 선생의 글은 오히려 당당하고 냉철합니다. 나라 잃은 청년이 정상적으로 여행권을 구할 수 없어 밀항을 통해 영국을 지나 미국 동부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까다로운 입국심사 절차도 당당하게 거쳤습니다. 기지 넘치게 처리한 선생의 행동은 위기에 처한 조선 청년의 멋진 출발이었습니다. 중국인의 쥐 고기를 서양인의 개구리 다리 요리로 되받아치는 통쾌함이라든지, 자동차 산업의 눈부신 성장 이면에 담긴 난폭운전과 대형사고 등을 지적한 면은 훗날 언론인과 외교관, 정치가로서 선생의 활약상을 예견할 수 있었습니다.

 

불가능하리라 믿었던 4년마다 나라 책임자 선출하는 일은 이미 오래전 선생께서 이 나라에 그 토양을 다듬었습니다. 경기장을 나서기 전에 벌써 경기 결과를 전해준다던 신문도 선생이 이 땅에 돌아와 창간하셨지요. 100여 년 전 깊은 인상을 받았던 그 야구장의 다이아몬드에는 이제 선생의 후손들이 던지고, 치고, 달리며 다이아몬드 대접을 받고 있소이다.

 

선생은 이 책에서 ‘성공한 신문명의 좋은 공기를 호흡한다.’ 하였습니다. 100년이 지난 지금 선생의 글을 읽고 ‘온고지신(溫故知新)’을 느낍니다. 선생의 새로운 이해와 인식을 돌이켜 보면서 21세기 오늘을 살피고, 내일을 예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고 선생의 선각자적 삶과 민족정신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생 또래인 16세 소년의 나이로 오늘날 고등학교라 할 수 있는 서원을 설립한 일이라든지, 일본인 고리대금업자에 크게 실망한 이후 일본 쪽으론 아예 등 돌리고, 중국과 미국의 새로운 문명을 받아들인 면, 그리고 1921년 세계신문기자대회에 조선 대표로 참석하여 부의장에 선출된 당당함은 나라 잃은 동포들에게 커다란 용기와 희망을 전해주었으리라 생각되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책의 원본이 1916년에 출판된 한국인 최초의 영문 단행본이라는 사실, 그리고 한국인 최초로 한영사전을 편찬한 일 등 선생의 뛰어난 업적을 알게 되면서 진작에 선생을 알지 못한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OH, East is East, and West is West, and never the twain shall meet” - Rudyard Kipling(러디어드 키플링)
: "오, 동양은 동양이고, 서양은 서양일지니 이 둘은 결코 만나지 못하리라"

 

“오, 동양과 동양, 서양과 서양 이 둘은 언제고 만나리라” - 김동성

선생이 키플링의 시 구절을 빌려 쓴 것처럼 나 역시 존경하는 마음으로 선생의 문장을 다시 모방해 봅니다.

 

오, 동양과 서양, 이 둘은 결코 떨어지지 않으며 거미줄처럼 엮여 있으리라.


 

오늘의 책을 리뷰한 '9'님은?

백 년 전에는 아마도 '허드슨 강변의 소란스러운 마을 (Noiseville-On-Hudson)'에서 살았을지 모르는, 서울시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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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포》 - 아슬아슬하게 아찔하게

 

 

 

 

알퐁스 도데 | 《사포》 | 예문 | 2014

 

《사포》에는 사랑에 대한 풍부한 묘사와 그 앞에 웅크리고 발가벗겨진 인간의 모습이 있다. 장과 파니에게서 예상치 못했던 사랑의 숨은 그림자들을 발견한다.

‘연애’보다도 ‘사랑’은 그 깊이를 가늠하기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진다. 언제나 쉽게 달라져 버릴 것을 알고도, 늘 사랑에 대해 정의하고 싶어 하는 연유 또한 이 때문이 아닐까. 사랑이란 그것의 본질적 속성 위에 유연한 형체들을 지닌 모습으로 어딘가에 놓여 있을 것만 같다. 다양한 문학 작품 속의 새로운 주인공과 그들이 알려주는 모든 것을 통해, ‘사랑’의 정의를 하나씩 보태어 본다.

알퐁스 도데의 《사포》에 그려진, ‘파니’에 대한 ‘장’의 사랑 또한 그러하다. 사랑은 때때로 이유를 짚어낼 수 없는 따스한 분위기와 찰나에 다가와 환락 같은 안온함에 사뿐히 자리한다. 선택과 결정을 위한 움직임을 알아차잖기도 전, 순간의 얕은 변화에 자리를 쉽게 내어 주는 것이 사랑의 시작일 뿐일지도 모른다. 다만, 순수한 열병과 같은 감정의 휩쓸림만이, 경외심과 찬탄과 아름다움, 희생과 헌신, 그것들만이 ‘사랑’을 그리지는 않는다. 사랑이라는 슬하는 이리도 깊고 넓다. 알량한 허세 의식, 진흙탕 같은 질투, 우둔함, 나약함, 동정과 연민, 광포한 충동, 우유부단함 속에서도 사랑은 미약한 숨을 내뱉는다. ‘장’이 그것을 알려주었다.

프랑스 남부의 명망가 자제인 장은 외교관 시험 준비를 위해 파리에 있었다. 그는 무도회에서 15살 연상의 파니를 만난다. 고지식하고 엄격한 편이지만 순진하던 장은, 파니와의 관계가 집안과 자신의 미래보다 중하지 않고 마뜩잖음을 느끼면서도 파니의 지속적인 구애와 질긴 숙명과도 같은 끈에 의해 점차 그녀에게로 이끌린다. 장은 곧 파리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신경 쓰며 그녀와 동거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지금 난 사랑에 빠진 걸까? 아니야, 그렇지 않아. 그렇지만 어쨌든 이처럼 나를 따스하게 둘러싸고 있는 분위기는 사랑어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만 가능한 게 아닐까? 어떻게 그토록 오랫동안 이러한 행복을 접어 두고 살아올 수 있었지··· ··· 타락이라든가 구속당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일까? 하지만 그 얼마나 우스운 얘기야··· ··· 이 세상에서 무엇을 더 바랄 것인가?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이 여자 저 여자와 어울리며 방탕한 생활을 하는 것보다 한 여자의 사랑을 받으며 편안하게 지내는 지금의 생활을 더 불결하고 추하다고 할 수 없지··· ··· (본문 중에서)

그는 외무부의 연수 기간인 3년 동안만 그녀와의 관계를 유지하면 될 거라고, 스스로 불안을 자위했다. 황홀감에 도취되어 신혼 같은 생활을 보내던 그때 의도치 않은 일들이 발생한다. 무도회를 주최했던 디셸레트와 유명한 조각가 카우달을 만나, 파리 사교계의 꽃으로 많은 예술가와 사랑을 거쳐 온 파니의 과거에 대해 듣게 된 것이다. 사랑의 경외심을 찬양하던 라구르너리 시의 사포가 파니였다니, 카우달이 조각한 브론즈 빛의 아름다운 사포가 파니였다니. 파리의 유명 예술가들의 뮤즈, 그녀가 '사포'였다. 그는 역겨움과 더러움을 느끼며 파니를 향한 경멸스러운 감정에 비틀거리면서도, 속마음에 생경한 목소리가 울린다.

생각이 이쯤 미치자 장은 당대의 프랑스를 뒤흔드는 위대한 예술가들이 거쳐 간 여자를 자신도 한번 안아봤다는 우쭐함과 그 예술가들이 자기더러 미남이라고 불러 주었다는 데 대한 묘한 자부심이 어이없게도 마음 한구석을 차지해 가는 걸 느꼈다. 그의 나이 때에는 무엇이든 확실한 게 없으며 더군다나 세상에 대한 이해라든가 삶에 대해서 아직도 방황과 모색을 시도하는 때라 남들이 조금만 부추겨도 세상이 다 제 것인 양 믿는 법이다. (···) 장 역시 그랬다. 라구르너리가 아름다운 운율로 시를 적어 노래하고 카우달이 심혈을 기울여 대리석과 브론즈로 조각한 사포의 모습이 후광에 싸여 그의 머릿속에서 자꾸 커져만 갔다. (본문 중에서)

파니의 곳곳에 새겨졌을 지난 사랑의 방탕한 흔적들과 함께 파니의 출생과 집안에 관한 사실들이 연달아 베일을 벗는다. 감추어 둔 것이 드러나기 시작한 후, 파니는 이전의 고귀함과 조심스러움을 버리고 장 앞에서 거침없고 난잡한 모습으로 돌변했다. 그즈음 도착한 고향의 편지를 빌미로, 장은 파니와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끝낼 결심에 이른다.

혼란스러움과 질척거리는 사랑놀음에 진이 빠져버린 장은, 고향으로 돌아와 평온함과 순수함에 젖어든다. 결국 그는 파니에게 이별을 고한다. 얼마 가지 않아 전원생활의 고루함과 나른함에는 싫증이 났지만, 행간에 녹아나는 애정이 애무와도 같은 파니의 편지는 계속되었다. 궁금함과 기다림은 애틋한 마음과 그리움으로 색칠되어 가고. 장과 파니는 다시 만나게 된다. 그러나 떨어져 있던 여백만큼의 새로움에도―새로움이 늘 그렇듯― 아주 짧은 행복이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겨우 지켜보았을 따름이다. 짧았던 새로움이 퇴색되고 장은 다시 허물을 벗겨내 벗어나야 할 구실을 들먹였다.

남루해지던 생활이 이어지던 중 장은 급작스레 나타난 어린 소녀에게서 모든 것이 합당하고 정돈된 것만 같은 구원을 발견한다. 소녀는 좋은 집안의 자제였고 젊었으며 싱그러웠다. 그렇게 파니를 떨쳐 보냈음에도, 알 수 없는 잔영이 그의 온몸과 정신을 휘감았다.

모든 의욕을 잃어버린 채 혼자 사는 사람들 특유의 방향감각을 상실한 허전하고 괴로운 나날이었다. 그것은 끝나 버린 사랑에 대한 미련이라기보다는 갑자기 잃어버린 분신을 향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한솥밥을 먹고 잠자리를 같이하던 날들이 켜켜로 모여 보이지 않는 견고한 천이 한 올 한 올 짜지기 마련이며 그런 관계가 느닷없이 단절되었을 때 그 견고함은 고통으로 드러나는 법이다. (본문 중에서)

혼란과 방황의 시간을 꾸역꾸역 넘기며 새로운 소녀와의 그것이 사랑이자 행복이라고 다짐하던, 장은 그가 보냈던 편지들을 돌려받으러 파니를 찾아간다. 그러나 그곳에서 맞닥뜨린 파니의 옛사랑과 흐트러진 침대 시트에 장은 광포한 질투에 휩싸인다. 그날, 장은 파니를 떠나지 못했다. 그는 벗어나려고 발버둥 쳐도 곧 제자리로 돌아와 버리는, 늪에 머물기로 한다.

그러나 그녀는 영원히 장에게서 멀어지는 길을 택한다. 장은 저 멀리 사라지는 파니의 모습을 바라본다.

완전히 파멸해 버린 자신의 허망한 삶이 바위가 파도에 씻겨나가듯 그의 가슴속에서 천천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본문 중에서)

아름다움과 경외심으로 점철된 열정만이 사랑은 아니다. ‘파니’를 향한 ‘장’의 사랑은 질척했고 갑갑했지만, 처절할 만큼 순수하고 원색적이기까지 했다. '사랑'의 또 하나의 정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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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누구였는지만 말해봐》 - 겨울 바람 때문에

 

 

 

 

존 치버 | 《그게 누구였는지만 말해봐》 | 문학동네 | 2008

 

해마다 첫눈이 오면 어느 겨울밤이 생각난다. 예상치 못한 공포에 나는 봄 햇살 아래 놓인 눈사람마냥 무기력하게 녹아내렸다. 늦은 밤 벼락치기를 끝내고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학교 도서관을 나서는 길이었다. 도서관 정문 앞에서 누군가가 푸념을 늘어놓았다. “날씨가 단단히 미쳤군.”

 

 

창문 밖으로 시커먼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이까짓 겨울 날씨쯤이야.’ 집에 갈 생각에 부풀었던 나는 호기를 부리며 도서관을 나왔다. 몇 걸음이나 걸었을까. 엄청난 눈바람이 거대한 파도처럼 나를 덮쳤다. 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단순한 눈바람이 아니었다. 두려움, 암흑 속에서 시퍼런 칼날이 날아와 나를 수십 조각으로 베어버릴 듯이 섬뜩했다. 나는 도망치듯 도서관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영문을 알 수 없는 공포에 완전히 압도당한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매년 겨울이면 존 치버의 단편집 《그게 누구였는지만 말해봐》이 떠오른다. 책에 수록된 ‘다리의 천사’라는 매력적인 단편 때문이다. 이 소설은 그날 도서관에서 보낸 겨울밤의 추억을 아련하게 불러일으킨다. ‘다리의 천사’는 두려움에 관한 소설이다. 화려한 옷차림을 하고 스케이트장에서 왈츠를 추는 쾌활한 성격의 어머니는 비행공포증을 앓고 있다. 맏아들로서 언제나 가족들에게 의젓한 모습을 보였던 형은 사실 엘리베이터에 대한 극도의 두려움이 있다.

 

 

주인공은 형과 어머니의 모습에서 슬픔과 조소를 동시에 느낀다. 사소한 사물과 행위에 기겁하면서 무너지는 근엄한 가족들을 보고 우월감과 자존심의 승리를 맛보기도 한다. 그러나 주인공 또한 가족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아내와 딸들에게 든든한 가장이었던 그는 불현듯 천둥 번개가 내리치는 강가의 다리 앞에서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에 몸서리친다.

 

 

‘다리의 천사’가 매력적인 이유는 두려움에 대한 사려 깊은 성찰이다. 평범한 일상의 일부가 누군가에게 민감한 공포로 느껴질 때가 있다. 각자 가진 트라우마 때문이다. 저마다 겪은 고유한 유년시절의 기억과 관계에서 받아온 상처, 여러 경험에서 긁히고 베인 감정의 생채기는 각기 다른 형태의 두려움으로 형상화된다.

 

 

형상화된 두려움은 일상 곳곳에 움츠려 있다. 두려움으로부터 나약한 자아를 숨기기 위해 자존심과 허세로 한껏 무장하지만, 막상 근엄했던 타인이 두려움을 직면했을 때 몰래 손가락질을 하거나 코웃음을 터뜨린다. 나는 두려움 그 자체보다도 내가 두려움을 마주했을 때 나를 바라볼 잔인한 시선이 너무나도 무섭다.

 

 

소설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은 다리 위에서 딸을 태운 차를 세워두고 다시 절망과 공포에 휩싸인다. 그때 젊은 여자 한 명이 히치하이크를 시도하고 엉겁결에 그녀를 태운 주인공은 다리를 무사히 빠져나온다. 그토록 두려움에 떨던 그를 다리 밖으로 나올 수 있게 한 마법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주인공의 두려움 따위는 안중에도 없던 여자의 즐거운 노랫소리였다. 무던하리만치 자아도취적이고 긍정적인 삶의 에너지였다.

 

 

어느덧 도서관에 갇혀있던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어스름한 아침 햇살이 창문으로 새어 들어왔다. 동시에 밤을 새운 친구가 퀭한 눈을 하고 라면이나 한 그릇 먹자고 말했다. 나는 크게 한번 심호흡을 하고 도서관을 나섰다. 영원히 계속될 것 같던 눈보라가 그치고 어느새 세상은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두려움 위로 하얀 눈이 소복이 쌓였다. 친구와 나는 캠퍼스 저편에 있는 학생식당을 향해 조심스럽게 눈길을 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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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과 서평을 나누고자 반디앤루니스 '오늘의 책'을 펜벗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

펜벗이란 서평을 쓰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를 의미합니다.

매주 월요일, 성실한 서평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1월의 펜벗 서평 주제는 '겨울'입니다.

 

 

| 펜벗 일문일답

 

● 서평 한 편이 소설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펜벗 앨범에서도 평소 글쓰기에 관심이 많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부끄러운 질문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펜벗 활동이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에게 동기가 될 수 있을까요?

 

좋아하는 책에 대해 쓰는 글은 사랑하는 이에게 보내는 연서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연애편지를 쓰면서 좋아하는 사람의 환한 미소를 떠올리고 더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처럼, 좋아하는 책에 대해 서평을 쓰면서 어렴풋한 책의 인상과 감명 깊었던 구절을 어루만지면 그 책에 더 빠지게 됩니다.

펜벗 활동은 좋아하는 책에 대한 연애편지를 함께 쓰는 일입니다. 연애와 독서는 둘 다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이기에 때로는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공공의 연애편지를 써 보면서 얼마간 무뎌졌었던 독서에 대한 열정과 글쓰기에 대한 감각을 다시 깨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열정과 감각을 되찾은 것이야말로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에게 가장 큰 동기가 되지 않을까요?

● ‘두려움에 대한 사려 깊은 성찰’이라는 말로 존 치버의 단편 ‘다리의 천사’를 말끔하게 말 해주셨죠. 존 치버의 소설 말고도 단순한 극복 이상으로 나를 반성하고 살펴본 계기가 된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 그리스인 조르바 >를 읽고 마음속에 큰 불길이 일었던 적이 있습니다. 제도권이 만들어 놓은 성공의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평생을 노력해 왔던 제게, 소설 속 조르바가 보여준 자유의 외침은 충격과 부러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사실 모두가 꿈꾸는 진정한 자유는 지금보다 훨씬 더 동물적이고 실존적인 삶의 방식에서 가능한지도 모르겠습니다. TV를 틀면 쏟아져 나오는 소모성 웃음과 허황된 미적 기준, 물질적 풍요를 보면서 늘 그러한 가치에 길든 자신을 반성하고 다짐합니다. ‘모든 형이상적인 근심의 언어에서 나 자신을 끌어내고 헛된 염려에서 내 마음을 해방시킬 것. 지금 이 순간부터 인간과 직접적이고도 확실한 접촉을 가질 것.’ (니코스 카잔차키스, < 그리스인 조르바 >, 96쪽)

 

 

● 펜벗 앨범에서 ‘매주 토요일 구립 도서관에 들러 책을 빌린다’고 말씀하신 기억이 납니다. 최근엔 무슨 책을 빌려 읽으셨어요?

 

공공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일은 백화점 세일 기간에 쇼핑하는 것 같습니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잘 나가는 신상품은 순식간에 동나고, 하는 수 없이 저는 동묘 앞 벼룩시장을 기웃거리는 패션피플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명작과 고전을 물색할 때가 많습니다.
운 좋게도 최근에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김영하의 < 보다 >를 빌려 봤습니다. 총 4부로 구성된 산문집입니다. 자본주의와 개인의 관계, 영화와 문학작품에 대한 비평까지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작가의 독특한 시선과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었던 책이었습니다. 공공도서관에서 신상 베스트셀러를 빌리다니! 모처럼 쇼핑의 승자가 된 것 같은 치졸한 승리감에, 대여한 지 하루 만에 책을 다 읽고도 몇 번이고 다시 들추어 봤습니다. 만기일을 꽉 채워 반납했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김이온'님은?

요리와 음악을 애호하는 독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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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Guetta 《Listen》 - 전자음악의 거장, 소울의 향기와 함께 돌아오다

 

 

David Guetta | 《Listen》 | Warner | 2014

 

언젠가부터 EDM이라는 말이 하나의 장르 용어처럼 굳어진 채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 음악 관련 미디어/사람들에 의해 널리 사용되고 있다. 사실 EDM이라는 용어는 Electronic Dance Music, 즉 ‘전자댄스음악’을 뜻하는 말이다. 일렉트로니카(Electronica), 즉, 전자음악이라는 거대한 카테고리 안에서 ‘춤추기 좋은(danceable) 음악’ 혹은 ‘클럽 지향적인(club-oriented)’ 음악만을 따로 지칭하는 용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이 EDM이 포함하는 범위는 엄청나게 넓어질 수밖에 없는데, 일반적인 하우스(House)부터 트랜스(Trance), 덥스텝(Dubstep) 등 굉장히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가리킨다. 아예 전자음악 자체를 지칭하는 용어처럼 쓰이는 경우도 가끔 보인다. 마치 특정한 음악적/산업적 스타일에 바탕을 둔 음악만을 지칭하던 용어인 케이팝(K-pop)이 최근 들어서 한국 대중음악 전반을 말하는데, 쓰인 것처럼 말이다.

 

장르의 특성상 EDM 음악은 프로듀서/DJ의 이름이 전면에 나서게 되는데, 수많은 인기 DJ/프로듀서 중에서도 전자음악 장르 바깥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사람을 꼽으라면, 바로 데이빗 게타(David Guetta)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게타는 2000년대 초중반 이미 유럽 지역에서 큰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던 유명 DJ였다.

 

그러나 영국에서 성공을 거둔 앨범 [One Love](2009)을 통해 그는 좀 더 넓은 세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힙합 음악에서 전자댄스음악으로 전향한 블랙 아이드 피스(Black Eyed Peas)의 성공작 [The E.N.D.](2009)의 히트곡 ‘I Gotta Feeling’의 작곡자로 참여한 그는 미국에서도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하는데 성공했다. 전통적으로 전자댄스음악에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던 미국의 수용자들이 전자음악에 빠지게 된 것이 블랙 아이드 피스의 성공 이후인 것을 생각해보면, 그 성공에 큰 역할을 담당한 게타가 끼친 영향력은 굉장하다고 볼 수 있다.

 

이후 리한나(Rihanna), 핏불(Pitbull), 레이디 가가(Lady Gaga) 등의 앨범에 참여하며 여전한 감각을 과시한 그는 3년 만에 새로운 정규 앨범 [Listen]을 발매했다. 이미 ‘Lovers on the Sun’, ‘Dangerous’와 같은 싱글을 프랑스, 영국 등 유럽 각국 차트 정상에 올려놓으며 상업적으로는 괜찮은 반응이 예상되고 있지만, 전자음악의 팬들 및 몇몇 평론가들은 이 앨범에 대해 “이건 EDM이라고 부를 수 없다.”며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이에 대해 게타는 인터뷰를 통해 “나는 요즘의 EDM에 뭔가 ‘소울’이 빠져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최근 EDM 음악들은 너무 프로듀싱 잔재주에 의존하여 소리를 크게만 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나는 오케스트라나, 록밴드, 혹은 펑크 밴드까지도 연주하고 즐길 수 있는 그런 음악을 이 앨범에 담으려고 노력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음악을 들어본바, 확실히 게타는 자신의 음악에 감성을 불어넣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 것으로 보인다.

 

존 레전드(John Legend), 에밀리 산데(Emily Sande), 스크립트(The Script), 라이언 테더(Ryan Tedder), 버디(Birdy), 니키 미나즈(Nicki Minaj), 시아(Sia) 등 현존하는 최고 인기 DJ의 정규 앨범답게 본작에는 굉장히 다양한 장르에 걸친 유명 뮤지션들의 이름이 많이 보인다. 그리고 이들의 개성적인 목소리와 음악적 성격은 참여한 곡 속 곳곳에 녹아 앨범을 굉장히 풍성하게 만든다.

 

장르적 풍성함 및 스타일의 다양성 속에서도 게타는 앨범의 분위기가 두서없이 흩어지는 것을 막고 하나의 일관적인 흐름으로 진행되도록 잘 조절하고 있다. 거기다가 그의 정규 앨범을 언제나 관통하고 있던 대중성 가득한 접근법은 이 앨범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강화되었다. 단순한 싱글 모음집이 아니라 하나의 앨범으로 구성에 신경을 쓰고 만든 흔적이 역력하다. 단번에 귀에 들어오는 싱글은 없지만, 전체적으로 듣기에 상당히 좋다. 건너뛰고 싶은 ‘단순 앨범 채우기용’ 곡이 없다.

 

‘전자댄스음악의 미래’, 혹은 좀 더 강렬하고 본격적인 전자음악을 기대한 사람은 만족하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게타도 내년이면 우리 나이로 49세가 되는 장년 아저씨다. 언제까지 그가 유행의 최전선에 설 수는 없지 않을까? 2000년대 후반 이후의 게타는 ‘최신’보다 ‘대중적인 전자댄스음악 프로듀서’에 더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접근하면 이번 앨범은 상당히 만족스러울 것이다. 대중성을 잔뜩 갖추고 있되 여전히 세련된, 괜찮은 앨범이다.


 

오늘의 음반을 리뷰한 '이규탁'님은?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스스로 글을 굉장히 잘 쓴다고 믿고 사는 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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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의 괴로움》 - 내 방엔 책이 너무도 많아

 

오카자키 다케시 | 《장서의 괴로움》 | 정은문고 | 2014

 

네이버의 ‘지식인의 서재’를 보고, 언젠가 나 역시 저런 큰 서재를 가지고 싶었다. 서재가 있는 방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예전에 살던 방엔 책을 둘 공간이 없어 항상 이불 옆에 책이 몇 권씩이나 쌓여있었다. 서점에 들어가면 항상 기분이 좋았다. 책 냄새가 잔뜩 나는 곳. 내가 읽을 책이 많은 곳. 《장서의 괴로움》을 읽으면서 그 괴로움이 너무나 부러웠다. 삶을 위협할 정도로 많은 책을 가지고 인생을 꾸리고 있다니 놀랍고도 신기했다.

 

새 책은 계속 나오는데, 만약 책을 더 놓을 공간이 없을 정도로 도서관이 가득 차면 어떡하지? 이러다 도서관이 무너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가끔 도서관에 올라갈 때면 그런 생각을 했다. 《장서의 괴로움》에는 실제로 그만큼 책을 많이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나온다. 집이 흔들리고, 집의 모양이 기울만큼 건물 가득 책을 가지고 있다.

 

나는 절대 《장서의 괴로움》에 시달리지 않을 것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주로 빌려보는데, 이상하게 내가 가진 책보다도 가지고 있지 않은 책에 더 흥미가 생긴다. 분명 같은 책이 집에 있더라도 어쩐지 안 읽고 있다가 결국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해 읽는다든가 하는 식이다.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하지만 읽기 위해서는 기한이 필요하다. 반드시 며칠 내에 읽어야 한다는 그 기한이 책에 더 집중하게 해 준다. 게다가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책과의 연이라는 것이 좋다. 내가 찾아 헤맨 것이 아니라 책이 나에게로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늘 어디에 살더라도 집 근처에 도서관이 있으면 좋겠다고 바란다.

 

헌책방에 책을 꽤 많이 팔아 보고, 중고책도 많이 사봤는데, 《장서의 괴로움》에 나오는 일화처럼 엄청나게 많은 양의 책을 판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책을 팔 땐 역시 마음이 쓰리다. 방이 좁아서 어쩔 수 없이 가진 책 중에서 더 읽지 않는 책을 모아 팔았다. 책들은 헐값에 팔려 나갔다. 한번은 1권과 2권을 같이 팔려고 헌책방에 갔다. 책의 상태 때문에 2권은 팔지 못하고, 1권만 팔았다. 남은 2권을 가지고 돌아오는데, 순간적으로 1권이 없어진 2권이라니, 안타까웠다. 헌책방에서 아주 낡은 책을 산 기억도 있다. 누군가 책에 낙서한 것을 발견하면 기분이 묘하다. 마치 같은 책을 읽고 있던 어떤 사람의 순간을 엿본 듯하다. 어떤 책에는 누군가에게 보낸 편지가 적혀 있었는데, 그것이 꽤 낭만적이라 책 자체에 대한 운치가 풍겼던 기억이 난다. 내가 판 책들도 어딘가를 헤매고 있겠지.

 

책만큼 시대가 지나도 그 가치가 여전히 고마운 것이 있을까. 책을 좋아하고, 자랑하면서도, 한편 고통스러운 저자의 모습이 재미있다. 비슷한 구성이 반복되는 바람에 굉장히 색다른 재미를 주는 책은 아니었지만, 한 번쯤 나도 이런 괴로움을 알아보고 싶다. 언젠가 산더미 같은 책들에 쌓여.

 


오늘의 책을 리뷰한 '라미'님은?

책에서 행복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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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링 인 폴》 -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백수린 | 《폴링 인 폴》 | 문학동네 | 2014

 

‘자신의 글이 소설이라 명명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아 괴로웠다’는 백수린 작가의 소설집 《폴링 인 폴》을 읽었다. 남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인물들의 감정과 심리가 세밀하게 묘사돼 있었다. 특별히 걸리는 부분은 없었다. 오히려 쉽게 읽혔다. 그게 잘못이었을까. 나는 빠르게 읽기에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정확하게 읽는 데는 분명 실패했다. 아홉 편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하나의 메시지를 발견해내기까지 너무도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것이 불가능의 영역이었다 할지라도, 나는 찾고 싶었고, 나름의 방식으로 명명하고 싶었다.

‘감자의 실종’으로 시작돼 ‘꽃피는 봄이 오면’으로 끝나는 9편의 소설에는 각기 다른 인물이 등장한다. 소설에는 저마다의 시간과 계절이 있고, 갈등과 고민이 존재한다.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한국이 주 무대이기는 하나, 때로 미국과 독일 또는 프랑스에서도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각각의 삶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상상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지극히 평범한, 그래서 상투적이지만 동시에 보편적이기도 한, 개별적인 삶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내뱉는 문장들은 어쩌면 그렇게 상투적이었을까. 한두 문장으로 요약된 타인의 삶이 얼마나 진부해질 수 있는가를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그와 나 사이에 있었던 무수한 시간들이, 기억들이, 몸짓들이, 지극히 통속적인 한 문장으로 완결되었다. 나는 소음 속에서 입을 굳게 닫았다. (‘거짓말 연습’, 190쪽)

‘거짓말 연습’은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남편의 외도로 평온했던 결혼생활의 단꿈이 깨져버린 주인공 ‘나’는 예정에 없단 프랑스 유학을 떠난다.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해방돼 고요함이 절실했던 ‘나’에게 어찌 보면 유학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떠나왔지만, 그렇다고 그곳에 제대로 정착한 생활을 이어가는 것도 아니다. ‘나는 내가 한 달 후 어디에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어떤 주소를 적어 내야 하는지 망설여졌다.’

잠시 머무는 거처인데다, 언제 다시 만날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기에 ‘나’는 어학원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솔직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이 묻는 말에 대한 대답의 목적은 진실보다는 스킬에 있었기 때문이다. 도리어 다채로운 거짓 상상이 언어적 소통에는 득이 됐다.

이곳에 온 지 몇 달 만에 깨닫게 된 사실은 떠나기로 예정되어 있는 사람들은 상대에게 모든 것을 드러낼 필요가 없다는 점이었다. 떠날 사람들은 보여줄 수 있는 만큼, 아니 보여줘도 되는 만큼, 아니 보여주고 싶은 만큼만을 드러낸 채로 제한된 삶을 살았다. 그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곳에 온 이래 나에게는 거짓말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 (‘거짓말 연습’, 182쪽)

한국에서 온 ‘내’가 어떤 사람이었고, 어떻게 살아왔으며,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지는 결코 중요치 않았다. 어차피 잠시 머무르다 곧 떠날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래서 거짓말을 하기 시작한다. ‘이곳에 진실한 것이 하나라도 존재했다면 그것은 다만 우리가 끊임없이 서로에게 말을 건네고 있는 행위, 그것뿐이었을 것이다.’ 물론 절대 이해하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엄마를 이해하게 되는 지점도 주인공 ‘나’가 거짓말을 하게 되면서부터다.

엄마는 이 세계가 그럴듯한 거짓말들에 의해서 견고히 다져질 수 있다는 것을 나에게 알려주려 했던 것이었는지도 몰랐다. 처음으로 엄마를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어쩌면 거짓말이야말로 엄마가 나에게 가르쳐주려 했던 가장 건전한 소통방식이었는지도. (‘거짓말 연습’, 196쪽)

경계에서 ‘거짓말’로 삶을 지탱한 반면, ‘밤의 수족관’의 주인공 ‘나’는 어느 누구도 믿어주지 않는 자신만의 진실을 지켜내려다 그만 삶을 잃어버린다. 스타와의 사랑, 그것은 사랑을 사랑이라 말할 수 없는, 너무도 비현실적인 진실이었다. 그것을 선택하고, 지키기 위해서 ‘나’는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고, 포기하고, 단념하고, 당연하게 감수해야 했다.

당신이라는 사람의 사랑을 홀로 독차지한다는 것은 날카로운 칼날을 몰래 삼키는 것과도 같지. 아무와도 공유할 수 없는 섬뜩한 고통이 가끔씩 내 안을 찢기라도 하듯, 훑으며 지나가. 당신을 내 사람이라 말할 수 없고, 내가 당신의 사랑이라 밝힐 수 없다는 데서 기인한 고통. 당신이 우리의 결혼 사실조차 비밀로 하고 싶다 했을 때, 나는 그것마저도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했어. 스타의 뒤에서 사는 그림자 같은 삶. 역사 속 유명한 스타를 사랑한 여자들은 모두들 숙명처럼 그런 삶을 짊어지고 살아갔잖아. 당신은 언제나 때가 되면 우리의 결혼의 결혼사실을 밝히겠다고 약속했지. 그런데, 당신. 그때는 대체 언제 오는 거야? (‘밤의 수족관’, 132쪽)

세상에 감출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사랑’이라는데, 그리고 가끔은 그 ‘사랑’이란 것이 누군가에게 말하면서 더욱 선명해지고, 커지기도 하는 법인데. 아무리 ‘사랑’이 둘만의 은밀한 감정이라 하더라도 말할 수 없는 그것이 정말 ‘사랑’일 수 있을까. 만인의 스타이면서 나만의 유일한 남자인 그의 아이를 잃어버리고, 확신했던 자신의 사랑마저도 잃어버리는 주인공 ‘나’를 보면서, 어쩌면 이 모든 상황이 그녀의 삐뚤어진 집착과 오해가 만들어낸 허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림자 같은 삶을 살면서도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되묻는 그녀가 애처롭고 가여웠다. 앞뒤 맥락과 자초지종을 알 수도, 알 필요도 없지만 어쨌든 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지나가는 다람쥐에게조차도 들켜서는 안 되는 것이 자신의 사랑이었다.”고 말한 여배우가 떠올랐다. 삶에서 사랑이 전부인 사람에게, 그 사랑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면, 그 말할 수 없는 상황 자체를 철저하게 지켜내야만 했을 것이다. 그래야 자기 존재도 증명될 수 있으니까. 더욱 철저하게 고립되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주인공 ‘나’가 아이를 놓아버린 건지, 정신을 놓아버린 건지 스스로 모를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것은 너무도 예견돼 있었다.

나는 정말 묻고 싶었어. 도대체, 실체란 것은 무엇이야?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봐. 그때, A라는 사람은 오로지 B라는 사람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B라는 사람이 A라는 사람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듯이. 그것은 당연한 거지. 그러니까 만약, 누군가가…… 그래, 어떤 영화에서처럼, B에 대한 A의 기억을 다 지워버리면, 그러면 B는 A에게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눈을 감으면 눈앞의 모든 것이 사라지듯이 말이야. ('밤의 수족관‘, 136쪽)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건 ‘폴링 인 폴’의 주인공 ‘나’ 또한 마찬가지다. 자신보다 한참 어린 남자아이를 짝사랑하게 되는 그녀는 그것이 애초에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앞서는 마음을 붙잡지 못한다. ‘그렇지, 넌 미국을 선택하지 않았지. 나를 선택하지도 않았고. 무슨 이야기를 들어도 생각은 자꾸만 한쪽으로 흘렀다.’

폴의 부족한 어휘력과 부정확한 발음으로 인한 커뮤니케이션의 오해를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은 그녀 자신뿐이라고 생각해보아도, 그것으로 폴의 마음을 붙잡을 수 없다는 것 또한 그녀는 안다. 폴이 한국에 온 목적은 한국인 누군가와, 혹은 아버지와 대화를 하기 위해서가 아닌 까닭이다.

나는 결코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 한국에 온 것이 아니었어요. 내가 한국말을 배우려고 결심한 것도 아버지와 communicate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어요. 나는 나를 이해하고 싶었어요. 내가 벗어던지려 해도 절대, 절대 벗을 수 없는 내 피부색의 역사를 말이에요. (‘폴링인폴’, 80쪽)

그 순간, 그녀는 폴을 잃고 있다고 실감했다.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가장 절실한 사연이 타인 앞에서는 한없이 진부해지는’ 것이 삶이고, 또한 ‘삶이란 신파와 진부, 통속과 전형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말해질 수밖에 없는 것들에 지속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녀 자신이 폴의 정체성과 존재에 대한 고민을 들은 유일한 상대였다는 것에서 위안을 얻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수많은 문장들에 밑줄 긋던 나는 ‘자전거 도둑’과 ‘감자의 실종’을 다시 읽으면서 어렴풋하게나마 아홉 편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나름의 단어를 찾을 수 있었다. 다양한 에피소드에서 공통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결국 ‘존재’와 ‘이해’라고 보았다. 진부하고, 평범한 개인적 삶이지만, 그럼에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나의 존재를, 나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이해받고 싶어 하는 이야기. 언어에 의해 삶이 규정되는 한, 이해받기 위해서는 일단 오해하더라도 말해야만 한다는 것. 그러고 보니 작가는 소설마다 끊임없이 존재와 이해를 언급하고 있었다.

당신도 들었지? 물고기들은 기억력이 삼 초밖에 안 된다잖아. 아닌가? 금붕어만 그런 거던가? 갑자기 헷갈리네. 어쨌든 기억력이 단 삼 초뿐인 생명체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 불현듯 궁금해져. 삼 초 후면 소멸될 것이 자명한 불안과 두려움이라면 삶은 훨씬 수월해질까. 아니, 어쩌면 지금의 행복과 짜릿함이 삼 초 후면 또다시 흔적도 없이 사라질 거라는 불안에 삶은 고통의 연속이 되어버릴지도. 분명한 것은 기억이 오직 삼 초밖에 지속되지 않는다면 그 생명에게 역사 같은 것은 존재할 수 없으리라는 거야. 그렇지? 결국에는 사랑도, 슬픔도, 아니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확신마저도. 그것들은 모두 기억에 의해 지속될 수 있는 것일 테니까. (‘밤의 수족관’, 121쪽)

그녀는 술에 취해 하천으로 뛰어드는 사람의 마음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었다. 그러나 비단, 이해할 수 없는 것이 그것 하나뿐일까. (‘부드럽고 그윽하게 그이가 웃음짓네’, 114쪽)

우리는 서로의 처지를 너무 잘 알았다. 잘 나가는 친구들에게 손 벌리기 민망할 때, 우리는 서로의 주머니를 털었다. 세상으로부터 미끄러진다는 느낌을 더 이상 받지 않기 위해 서로에게 뿌리를 내렸다. 어둠을 움켜쥐고 자라는 음지식물처럼. ‘우리’라는 견고한 껍질 안에서 우리는 그 누구보다 안전했다.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었고 모든 것은 공유되었다. 가족보다도 가깝고 서로를 분신처럼 아꼈던 우리. 우리의 공동생활은 삼 년 팔 개월 동안 아무 탈 없이 지속되었다. ('자전거 도둑‘, 36쪽)

문득, 아무에게도 호명되지 않는 내 이름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아아, 안나. 너는 왜 이렇게 빛나는 것일까. 나는 너를 미워하고 싶지 않은데. 불현듯, 이 모든 것이 그놈의 자전거 때문이라는 데 생각이 다시 미쳤다. 자전거. 자전거만 안나에게서 빼앗아버린다면. 그렇게만 하면 원인을 알 수 없는 이 부당한 억울함도 사라지고 말 것만 같았다. 한번 떠오른 생각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자전거 도둑’, 53쪽)

언어가 사고의 집이듯 이해받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결국 언어로 파악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동시에 언어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비언어, 즉 태도와 행동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잊었던 그것을, 나는 너무도 직접적으로 박힌 한 문장 덕분에 오래도록 상기시킬 수 있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곰자'님은?

사람들의 사소한 일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알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이 제 안에 내재돼 있는 것인지 보고, 듣는 것을 좋아하고요. 언젠가 제가 마음으로 전해들은 무수한 이야기를 잘 엮어,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과 세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기를 꿈꾸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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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일 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 미술을 알면 즐겁지 아니한가

 

 

 

이주헌 | 《50일 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 | 학고재 | 2010

 

그러니까 이 책이 출간된 해는 1995년이다. 잘 만들어진 책 한 권이 20여 년이라는 시간 동안 여러 세대에 걸쳐 끊임없이 사랑받고 있다니 정말이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내가 이 책을 친구에게 처음 선물 받은 1998년의 책 표지가 이제는 좀 더 세련되게 변했지만 말이다. 고리타분한 이야기지만 이 책이 나온 후 20년 동안 미술계는 정말이지 많은 것들이 변했다.

그간 서울은 아시아에서 가장 '핫' 하다는 예술 도시로 자리 잡았다. 조용히 전시 관람만 하던 미술관 또한 많은 변화를 꾀했는데,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관람객을 적극적으로 맞이하는가 하면 몇몇 전시는 엄청나게 긴 줄을 서지 않으면 들어가지 못하는 진풍경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 어느 때보다 청소년과 대학생 관람객이 부쩍 많아진 것도 주목할 만한 변화 중 하나다.

이제 미술관의 모든 정보는 스마트 폰을 이용해 국내외 가리지 않고 빠르고 쉽게 얻을 수 있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도서관에서나 빌릴 수 있던 화보집, 잡지나 달력에 실린 이미지만으로 미술 작품을 감상해왔는데…. 그때 내게 처음으로 예술 작품을 직접 마주하게 하고 '미술관에서 온전히 하루를 보내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행복한 상상을 심어준 책이 바로 이주헌 씨가 쓴《50일 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이다.

지금이야 특별할 것 없는 배낭여행이지만《먼 나라 이웃 나라》를 읽고 자란 나는, 막연하게나마 유럽 문화를 동경하곤 했었다. 그러던 내게 50일 동안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으며 지도 한 장 들고 찾아 나선 서른 개의 미술관 체험기는 큰 설렘을 안겨 주기 충분했다. 당시 미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이십 대 초반의 내게 번역체로 쓰인 예술 서적이 아닌 기행문 형식의 이 책은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유럽의 역사적인 배경 설명부터 작품의 숨은 뒷이야기, 기존에 볼 수 없던 작가의 위트가 담긴 설명과 세상에 없는 작가들과의 인터뷰 등 예술사조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는 작품을 쉽게, 그리고 더 깊게 알고 싶다는 열정을 갖게 하였다. 더불어 작가가 유스호스텔이나 현지 민박을 이용하면서 겪은 재미있는 문화 체험은 또 하나의 읽는 즐거움을 더해 주었다.

이후 나는 처음으로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을 찾아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보며 하염없이 서 있을 때, 유럽에서 미술학도가 되어 여러 미술관을 방문할 때에도 늘 이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우리에게 익숙한 고흐나 로댕, 피카소의 작품들은 책을 통해 또 다른 아름다움과 친근함 그리고 행복한 기억으로 내게 다가온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세월이 변한 만큼 현재 미술의 흐름도 많이 변했다. 책 속에 나와 있는 런던 테이트 갤러리는 테이트 브리튼으로 명칭을 바꾸었고, 테이트 모던, 테이트 리버풀 등 덩치가 엄청나게 커졌다. 런던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 시장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미술관 큐레이터로 일하면서 항상 동시대 미술의 변화에 촉각을 맞춘다. 그러다 보니 매번 새로운 경향과 작가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즐기기보다 어쩔 수 없이 분석적으로 접근하곤 한다. 그럴 때면 가끔 그림 한 점이 나에게 주었던 감동, 위로, 행복한 감정들을 잊을 때가 많다.

그때마다 이 책을 꺼내어 보곤 한다. 10년의 유학 생활을 함께하고, 또 몇 번의 이사를 거쳤음에도 나의 서재에 여전히 그대로 꽂혀있는 이 책은 내게 처음으로 예술작품이 전하는 설렘을 느끼게 해주었고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길에 길잡이였음을, '처음'을 빌어 많은 이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다.


좋은 책과 서평을 나누고자 반디앤루니스 '오늘의 책'을 펜벗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

펜벗이란 서평을 쓰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를 의미합니다.

매주 월요일, 성실한 서평으로 찾아뵙겠습니다.

12월의 서평 주제는 '처음'입니다. 셀 수 없이 많은 각자의 '처음'을 책과 함께 떠올려 보세요.

'오늘의 처음'으로 생생히 떠오르길 바랍니다.

│ 명예 펜벗 일문일답

대림 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권정민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소개 한마디.


저는 대림미술관 수석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어요. 현재 폴 매카트니의 아내이자 모든 뮤지션들의 뮤즈였던 사진가 린다 매카트니(Linda McCartney)의 회고전 ‘생애 가장 따뜻한 날들의 기록’을 선보이고 있죠. 내년 여름에 선보이게 될 덴마크 패션 디자이너 헨릭 빕스코브(Henrik Vibskov)의 전시를 준비 중이기도 해요.

《50일 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을 읽으며 특별히 기억 남는 부분은?

작가가 대영 박물관에 가서 전시물을 소개한 부분이 기억 남아요. 이집트 장지 예술의 대가, 임헤티프와 앗시리아 파르테논 신전의 미술감독 페이디아스가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고대 예술품들을 설명한 부분인데 자칫 따분할 수 있는 고대 예술을 생생하고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게 했죠.

하고 있는 일과 책과의 관계. 책을 통해 어떤 도움을 받는지.


대개 전공 서적 위주로 많은 연구가 이뤄지지만, 제가 일하는 대림미술관의 모토 ‘일상이 예술이 되는 미술관’이라는 비전에 맞춰 폭넓은 전시 연구를 위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있어요. 책에서 만나는 내가 알지 못했던 정보들을 통해, 생각지 못했던 전시 콘텐츠를 찾기도 하고 또 전시 구성을 하는 데 도움을 받기도 해요.

기고 활동이 활발한데, 책 읽기뿐 아니라 글쓰기 자체에도 관심이 많은지.


현재는 예술과 디자인에 관련한 글이나 큐레이터의 경험을 소개하는 종류의 원고를 청탁받아 글을 써요. 사실 공부 하던 시절에는 한 달에 짧게나마 전시 평론을 10개 정도 쓰던 때도 있었죠. 물론 지금은 그 정도 양의 글을 쓸 수 있는 시간도 없지만, 시간이 허락하는 한 열심히 글을 쓰려고 노력 중이에요.

요즘 읽고 있는 책은?


일하지 않는 시간에는 보통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요. 주로 소설을 읽죠. 다양한 문화권에서 어떠한 신간들이 소개되는지 눈여겨보는 편이고, 틈틈이 서점을 다니면서 소설 구역을 어떻게 구성하는지 자세히 살펴보는 편이에요. 현재는 영국 드라마 ‘셜록’을 재미있게 시청한 후, 아서 코난 도일의 책《셜록홈즈》를 작가의 목소리로 다시 읽고 있어요.

추천 도서로《창조의 제국》《미학 오디세이》《영혼의 미술관》《사진 이상한 예술》을 선정한 이유가 있다면.


제게 처음으로 예술에 관심과 열정을 불러준 책이 이주헌의 《50일 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이었다면 선정한 책들은 현대미술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던 책이에요. 학생 때 가장 중요하게 꼽히는 영국미술을 이해하고 다양한 각도로 현대 미술을 즐길 수 있게 발판을 마련해 준 책들이죠. 때문에 현대 미술과 가까이하고 싶으신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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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철학자》 - 누구든 혼자 힘으로

 

 

에릭 호퍼 | 《길 위의 철학자》 | 이다미디어 | 2014

 

뒤늦게 에릭 호퍼라는 매력적인 인물을 알게 되었다. 지금 이 세상엔 그가 없지만, 그가 남긴 글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국가, 인종, 문화의 차이를 뛰어넘어 사람들에게 감동과 통찰을 선사한다. 그는 평생 장사 생활과 식당 보조 웨이터, 야적장 인부, 사금채취공, 부두노동자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그가 남긴 삶과 세계에 대한 이야기는 풍미가 가득하다. 어렸을 때 시력을 잃었다가 다시 회복된 것이 계기가 되어 시작된 광적인 독서 습관은 에릭 호퍼의 사상이 형성되는 데 크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의 글에서 생생한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이와 같은 에릭 호퍼의 인생과 독서 습관 덕택이라 생각한다. 《길 위의 철학자》는 에릭 호퍼가 남긴 자서전으로 그가 썼던 다른 책들에서보다 떠돌이 철학자로서의 모습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그가 경험했던 가난과 굶주림은 그의 생을 빚어가는 양분이 되었다. 젊은 시절 노동과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보다가 이른 결론은 자살이었다. 그는 수산염을 사서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 자살을 시도했다. 삶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길이라는 생각이 떠오르며 자살이라는 결론은 방랑하는 삶으로 변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에릭 호퍼는 방랑자로 살게 되었다. 그는 샌디에이고 엘센트로 임시수용소에서의 경험이 자신의 모든 사상을 세워나가는 데 기초가 되었고, 그곳에서 한 달여간 낯선 사람들과 지내며 인간의 속성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 책에서 인상적인 사건은 스틸턴 박사와의 만남이다. 독학으로 지식을 쌓았던 에릭 호퍼는 토마토 모종의 성장을 관찰하다가 식물학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리고 웨이터로 일하던 식당에서 그는 독일어로 된 책을 어렵게 읽고 있던 스틸턴 교수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만남은 계속 이어졌고, 에릭 호퍼는 스틸턴 교수가 고민하고 있던 문제를 같이 고민하기도 했다. 스틸턴 교수의 연구소에서 일할 수 있는 제안까지 받았지만, 그는 다시 떠돌이 노동자의 삶을 택했다. 스스로 이러한 지식의 경지에까지 이를 수 있는 사람이 어째서 궁핍하고 비참해 보이는 삶을 산 것인지 나는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다독으로 철학적, 사상적 토대를 마련했던 에릭 호퍼에게 인생의 책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그의 대답은 몽테뉴의 수상록일 것 같다. 그는 이 두꺼운 책에서 자신과 마주쳤다고 표현했다. 몽테뉴가 마치 자신의 내면에 깊숙이 잠재된 생각에 관해 쓴 것 같다고 한다. 나 또한 마치 읽은 느낌이 드는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어보고 싶었다. 수상록에 어떠한 내용이 실려 있기에 에릭 호퍼라는 한 인간을 이렇게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인지 무척 흥미로워졌다.

 

이리저리 떠돌며 일하고 책만 읽었을 것 같은 에릭 호퍼에게도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다. 그는 캘리포니아 버클리의 한 식당에서 일하던 중 만났던 헬렌이라는 여인에게 한눈에 반했다. 50년이 지나 그는 자서전에 그녀와의 추억을 쓰는 순간에도 손을 뻗어 그녀를 만져 보고 싶을 정도로 생생하다고 말한다. 헬렌과 진정으로 즐겁고 행복한 그였지만, 그녀의 기대를 정당화하는 데 자신의 여생을 소비하는 것이 불행하다고 느껴 그는 다시 떠돌이 노동자로 살아갔다. 어째서 그는 그녀와 함께 정착하지 않았을까? 한때의 감정이라 생각했던 것일까? 그는 그녀와 함께 살면 한순간의 평화도 얻지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자격지심은 아니었을까.

 

젊은 시절 떠돌이 노동자로 살아가던 에릭 호퍼는 2차 세계대전 중 샌프란시스코로 이동해 부두노동자로 여생을 보낸다. 하지만 에릭 호퍼는 길 위에서의 삶과 부두에서의 삶이 극적인 변화는 아니라고 했다. 그 불안정성은 독특하게 비슷했다고 말한다. 그는 이곳에서 노동자와 노동조합에 관하여 경험하고, 그것이 운영되는 독특한 구조에 대해서도 깊은 인상을 받은 듯하다. 시대와 성격이 다르지만, 내가 노동의 현장과 노동조합에서 받았던 충격이 에릭 호퍼가 경험했던 것과 유사하다. ‘보통 사람들이 교육받은 사람보다 나눔에 더 여유가 있다는 생각은 감상적’이라는 에릭 호퍼의 표현이 마음에 와 닿는다.

 

에릭 호퍼의 아주 짧은 생의 순간들을 마주하니 ‘길 위의 철학자’라는 제목이 그의 삶과 아주 잘 어울린다. 떠돌이, 방랑자라는 에릭 호퍼의 자기 인식은 삶에 대한 정직한 대면에서 온 것이리라. 수년 전부터 안정적인 삶을 살아온 나는 그의 삶, 그가 남긴 글들에 힘찬 자극을 받는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초원위의양'님은?

어쿠스틱 기타 선율과 책 읽기를 좋아하는 연구원입니다. 파란 하늘 아래, 푸른 들판에서 뛰어놀던 어릴 적 기억을 우리 아이들에게도 선물해 주고 싶어서 환경 관련 기술에 관심이 많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가 점점 더 깨끗해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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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집》 - 우리 가족을 소개합니다

 

 

 

 

마크 해던 |《빨간 집》 | 비채 | 2014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내 편을 꼽으라면 대부분의 사람이 가족을 말하지 않을까. 내게도 가족은 내가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의미로 자리한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가족을 떠올린다. 하지만 가족이란 울타리가 짐이 되는 사람들도 있다. 위로받고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부터 오히려 더 많은 상처와 고통을 안겨 주는 가족…. 분명 어떤 이는 도망치고 싶어질 것이다. 마크 해던의 《빨간 집》이 곧 폭발할지 모르는 불안정한 가족의 모습을 담고 있진 않을까. 책 제목부터 내게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서로의 존재를 외면하고 싶었던 남매가 어머니 장례식을 통해 너무나 오랜만에 재회한다. 서로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금전적, 육체적으로 나누어 돌보았다고 생각하는 두 사람. 하지만 그들 서로의 속내는 달랐다. 한편 서로 엇갈린 기억을 공유할 수밖에 없는 남매와 그들의 가족은 불현듯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가족여행을 떠나는데….

 

여행이란 게 그렇다. 마음이 잘 통하는 친구와 함께한다 해도 꼭 한 번은 싸우기 마련이다. 그만큼 쉽지가 않다. 하물며 남보다 못한 가족인 누나 안젤라와 남동생 리처드, 그들의 배우자와 여행 자체를 내켜 하지 않는 아이들이 함께한 여행은 어떨까. 이들의 가족여행은 처음부터 삐거덕거렸으며 위험천만하다.

 

안젤라와 리처드는 서로 부모님에 대한 기억 자체가 다를 정도로 거리가 있다. 리처드는 가족 곁을 떠나 당당히 의사로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졌지만 동생을 바라보는 안젤라의 마음은 꽤 복잡하다.

 

옆 좌석의 안젤라를 곁눈질했다. 그 옛날, 대학 술집에 앉아 있던, 어깨가 드러난 푸른색 원피스를 입은 소녀는 이제 온데간데없었다. 뚱뚱해지고 살갗도 처지고 장딴지에 정맥이 불거져 나와서 할머니가 다 된 모습에 그는 넌더리가 났다. (13쪽)

 

안젤라의 남편 도미니크는 아내가 불의의 사고로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이다. 이들의 부부생활은 엉망이다. 그들에겐 자식들이 있다. 알렉스, 데이지, 벤지…. 첫째아들 알렉스는 리처드의 딸(아내의 딸) 멜리사의 아름다운 외모에 반하게 되고 그녀를 향한 마음을 서슴지 않고 드러낸다. 데이지는 종교에 심취한 소녀로, 멜리사와 친해지면서 자신의 종교에 대한 믿음이 시험대에 처하는 상황에 놓인다. 막내 벤지는 나이 차이가 있는 형과 누나, 여기에 부모님까지 저마다 자신들이 가진 문제와 생각들이 벅차기에 가족들의 제대로 된 보살핌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

 

리처드의 가족 문제 역시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현재 리처드를 괴롭히는 것은 법정까지 갈지 모를 의료사고다. 그의 잘못이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분명 연관은 되어 있다. 리처드는 수시로 환자를 떠올리며 찾아가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이러한 상황에서 리처드는 아내 루이자를 통해 안정을 얻으며 좋은 관계를 이어 나간다.

 

한데 여행을 하면서 생각지도 못한 위기가 리처드와 루이자 앞에 나타난다. 그녀의 딸 멜리사는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아름다움과 매력을 지녔는데 다른 사람의 약점이나 아픈 곳을 본능적으로 잘 알아챈다. 교묘하게도 자신이 유리한 방향으로 상황을 이끌기도 한다. 솔직히 멜리사가 내 딸이라면 무서울 거 같기도 하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죄책감 없이 행하는 멜레사의 모습은 선뜻 예뻐하기 어려우니까. 멜리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장 두려운 문제를 데이지에게 털어놓지만 데이지의 반응에 마음이 상하고 만다. 데이지 역시 무엇인가 이끌리듯,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하며 양쪽 부모 모두를 긴장시키고 만다.

 

엄마도 사람이었구나. 이 당연한 사실을 어째서 그토록 모르고 지냈던 걸까. 당장이라도 손을 내밀어 엄마를 붙잡고 다 잘될 거라고 말해주고 싶어졌다. 그런데 불현듯 지난 세월이 백일몽처럼 밀려오면서 데이지는 시내로 장 보러 가는 엄마를 따라온 다섯 살짜리 어린애로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129쪽)

 

딸과 엄마 사이는 특별하다. 이 특별한 사이에도 서로에 대한 벽을 치는 일이 흔하디 흔하다. 사춘기 딸이 갑자기 심취해 버린 종교와 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은 편치가 않다. 자신이 가진 고통스러운 기억이 더 크기에 사춘기 딸의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볼 마음의 여유가, 엄마 안젤라에게는 없는 것일지 모른다.

 

이러한 가족끼리의 여행이 애초부터 순탄할 리 없었다. 수시로 삐거덕거리는 일이 생겼고, 그들은 나름의 해결 방식을 찾으며 또 서로에게 접근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부딪히고 마음이 상해 더 깊은 골이 생기기도 했지만 위로를 경험하기도 한다.

 

책을 읽으며 가장 아픈 이야기는 기형아를 사산한 안젤라가 수시로 아기를 떠올리며 힘든 상황에 놓인 부분이다. 사산아로 인해 그녀 스스로 더 고립되고 가족들과 멀어진 것은 아닌지. 안젤라는 자신의 아픔을 껄끄러운 올케 루이자에게 털어놓으며 루이자는 안젤라의 아픔과 고통, 상실 등의 복잡한 감정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깔끔하게 정리되는 해결책을 얻어야만 여행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여행이 끝난 후에도 그들은 각자의 생각과 고통 속에 놓여 있다. 하지만 처음에 만날 때와는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에 변화가 생겼다. 현실 속 우리 가족의 모습도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까. 우리 역시 큰 문제가 아니더라도 가족과 소소하게 갈등을 겪을 수 있기에 충분히 이해된다.

 

여덟 명의 가족이 8일간의 여행을 통해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어느 한 사람의 시선이 아닌 각자의 눈에서 바라보기에 어쩌면 더 냉철하고 비판적이다. 그럼에도 서서히 변화가 일어난다. 다음에 그들이 다시 만난다면, 지금과는 조금 더 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 작가의 작품은 처음인데 가족을 바라보는 저자의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어 좋았으며 이야기를 통해 내 가족, 그리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한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라떼12'님은?

책을 좋아하는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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