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책/음반'에 해당되는 글 1500건

  1. 2009.05.11 아버지의 날개: 위기의 중년 가장을 위한 응원 메세지
  2. 2009.05.07 어루만지다: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
  3. 2009.04.30 가난뱅이의 역습 - 반란은 나의 것
  4. 2009.04.28 리더스 웨이: 세계는 지금 새로운 리더를 요구한다
  5. 2009.04.23 세상과 소통하는 지름길, 블로그 교과서
  6. 2009.04.21 루머의 루머의 루머 - 귀를 기울이며
  7. 2009.04.20 독신남이야기 - 키키봉씨의 일상, 아직도 여전한가요?
  8. 2009.04.17 고양이는 과학적으로 사랑을 한다-사랑과 과학의 신비한 조합
  9. 2009.04.14 청춘표류 - 실패 없는 청춘은 청춘이 아니다
  10. 2009.04.13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한여름에 마시는 맥주 같은 에세이

아버지의 날개: 위기의 중년 가장을 위한 응원 메세지


 
정우택, <아버지의 날개>, 휴먼드림, 2009


오월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이 있고 어버이날도 있다.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5/21)등 많은 날들이 우리를 기다린다. 오월은 또 결혼이 많은 달이다. 총각 처녀들이 하나의 가정의 가꾸어 나가는 그런 신비로운 달이기도 하다. 장미의 계절!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어느 누가 나를 사랑해줄까? 아내가? 자녀가? 직장의 동료가?  절대 아니다. 내가 나를 미워하는 만큼 그들도 나를 미워한다. 나만 외로운 길, 쓸쓸한 길을 홀로 가야 한다. (p 75)

이 책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내용들이 들어 있는 생활백서다. 어찌하면 사회에 잘 적응하고 가정에 잘 적응하여 살아갈 수 있는지 알려준다. 짧은 항목들 중에 필요한 것을 찾아 읽어보면 많은 도움을 준다. 부정적인 글이 아닌 희망을 노래하는 글이다. 자녀는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보는 대로 한다.” 맞아! 어른들은 무단 횡단을 하며 아이에게 횡단보도로 길을 건너라고 하는 것과 같은 말이다. 나는 자녀에게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부부간에, 가족 간에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모습을 보여주면 자녀도 그런 마음을 갖는다. 부모가 돈, 돈하고 다니면 자녀도 돈독이 오른다. 부모가 좋은 학교 타령을 하면 자녀도 학벌병에 걸린다.(p 269)

저자 정우택은 자신도 중년임을 알리며, 일명 ‘삼팔육’, ‘오륙도’의 아버지를 대변하는 글로 그들을 위로하고자 한다. 가족들을 위해 힘들게 살아 왔지만 가족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그분들의 이야기! 그 이야기는 내 부모, 내 신랑, 나의 이야기이다. 서로를 사랑하고 위로하는 그런 따듯함이 새삼 그리워진다. 따사로움 오월, 마음으로부터 전달되어지는 진실한 사랑이 그리워진다.

날개 꺾인 새

<아버지의 날개>. 책 속에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신랑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들어 있다.  내년이면 일흔이신 친정아버지, 쉰 살을 넘어 일명 ‘오륙도’ 세대인 신랑, 마흔을 넘겨 이제 중년소리를 듣는 나, 그렇게 글 속에서 들었던 말들이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로 들려온다. 술을 좋아하시는 아버지 젊은 시절 거의 매일 술로 사셨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때는 그런 아버지를 원망도 많이 했고 다섯이나 되는 자식들을 버려두고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나버린 엄마를 증오했었다.

무책임한 부모 밑에서 동생들을 거두어야했고 힘들게 공부를 가르쳤다. 내 자신은 뒷전으로 밀린 채. 내게는 남들 다 있는 십대가 없다. 바쁘게 부모의 역할을 대신하며 살아갔기에 사춘기를 몰랐고 이십대의 청춘도 없었다. 그래서 내게는 부모님에 대한 감사나 고마움을 간직할 기회가 부족하다. 내 나이 사십을 넘겨 그 시절 아버지 나이가 되었다. 이제 조금씩 이해를 한다면.

책에 나오는 많은 중년 가장들의 이야기가 가슴에 들어와 나를 울린다. 돈벌이기계로 전락했다고 느끼는 사람들,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가정에서 구박받는 사람들. 그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 다들 바쁘게 살아간다. 공부를 해야 하는 학생들도, 사회생활과 가정을 겸업하여 돌봐야 하는 엄마들도, 한 지붕 아래 살아도 각자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한 지붕, 세 가족’이 많다. 중년의 나이가 되면 남편도 아내도 변한다. 순한 양 같던 아내도 호랑이가 돼버리고, 마냥 친절할 것만 같은 신랑도 잡힌 고기에겐 미끼를 주지 않는다는 말 마냥 불친절하고 독선적으로 변해 간다.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그렇게 흘러간다는 것이다.

연탄불 사랑

많은 부분에 공감이 가지만 그중에서 연탄불 사랑이 더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연탄불은 자신을 태워 주위를 따듯하게 만든다. 자신을 희생하여 주변에 따듯함을 주는 그런 사랑을 배워 보련다. 내가 다른 사람이 붙여 놓은 연탄불에 불을 쬐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 자신이 연탄불이 되어 가족과 다른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전파해야 한다는 것. 여기서 설득력 있게 들려오는 말은 노후 대비는 철저히 하라는 것이다. 자녀에게 의지하려하지 말 것, 오히려 자녀의 생계까지 책임질 일이 생길수도 있다는 것이다. 내게는 딸 하나뿐이기에 딸을 꽃처럼 바라보며 키운다지만 나중에 나이가 들어도 그리 예뻐할 수 있을까?

노후를 대비하라는 소리에 공감은 하지만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투자하는 한국인의 특성상 말일뿐 실천하기 힘든 항목이다. 7남매라는 많은 자식을 두고도 쪽방에서 얼어 죽었다는 어느 노인의 말이 다름 아닌 내 부모를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더 슬프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도시에 살고 있고, 평생을 농촌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오신 분께서 도시 생활을 못 견뎌 하신다며 농촌에 홀로 남아 사시는 것을 보며 어떤 방도를 취해야 할지 사뭇 걱정스러워지는 중이다.

돈보다 중요한 것이 사랑이고 가족의 정이라고, 그래서 귀농을 꿈꾼다고 딸에게 이해를 구했다. 현재의 학교에서 낯선 시골로 이사를 가는 것을 반겨할지 걱정도 된다. 아이에게 상처를 심어주는 것은 아닌지. 모두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빈부격차 없이 돈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다면 자신이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난 꿈을 꾼다. 중년의 가장들이여! 힘을 내시라고, 가족들 모두 당신을 사랑한다고!  

 오늘의 책을 리뷰한 ‘우렁각시’님은?
자신의 얼굴을 책임져야 한다는 사십대. 딸 하나를 키우며 살림을 하는 전업주부. 아직도 오랜 꿈을 꾸고 있는 철없는, 아니 철들고 싶지 않은 마음만은 십대를 바라고 싶다. 오랜 시간 책을 읽어 왔지만 남는 것이 없어 책을 읽고 서평을 쓰며 글 솜씨를 다듬는다. 동화작가를 꿈꾼다. 딸이 어렸을 때 동화를 들려주며 함께 꿈꾸어 갔다. 아이들에게 다정하고 따듯한 동화를 들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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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루만지다: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

 

 

고종석, <어루만지다>, 마음산책, 2009

살풋이 어루만지는 말들의 향연

살풋이(살포시의 북한말) 연인의 품에 안겨 거리를 걷던 시절이, 아직도 문득문득 피어오른다. 신촌과 혜화동의 밤거리를 우리는 뚜렷한 목적도 없이 쏘다녔다. 분식집에서 대충 허기를 채우고 아는 친구가 일한다는 칵테일 바에서 근사하게 술 한 잔 한 후, 초가을의 밤거리를 걸었다. 서로를 꼭 껴안고서. 안에서 차오르던 뜨거운 멍울은 온 몸을 휘젓고 다녔고, 이내 곧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술 때문이었는지, 다른 이유 때문이었는지. 주위 눈치 보지 않으며 스스럼도 없이 키스하고 서로의 몸을 어루만졌다. 방통대에 몰래 들어가 불 켜진 강의실을 뒤로 한 채 어둑한 벤치에 앉아 나누던 입술과 입술, 홍대 안으로 들어가 길을 걷고 계단을 오르며 느끼던 서로의 다정스럽던 눈짓 그리고 손짓. 짧은 사랑은 어처구니없게도 아직까지 내 머릿속에 또렷하게 각인되어 있다.

내 사랑은 실패한 혁명이었고, 되돌릴 수 없는 발걸음이었다. 일말의 오해와 소통 불가능 속에서 우리는 열정만으로 결실을 맺지 못한 채 짧은 사랑을 끝냈다. 한 번 떠나간 옷자락을 다시 잡을 수는 없었다. 차갑게 식어버린 열정은 내 주위를 청승맞게 떠돌아 다녔다. 그가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아니, 부러 듣지 않으려고 애썼는지도 모른다. 나 자신에 대해 실망하고, 연인에 대해 실망하고, 실은 내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이 허망하다고 느꼈다. 되돌아오지 않는 답장을 기다리다 끝내 길가에 주저앉아 버렸다. 말라버린 눈물을 닦지도 못한 채로 그냥 그렇게 굳어버린 사람 마냥. 그렇게 나는 첫사랑을 매조지었다.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휘감아 도는 별빛 같은 속삭임

고종석의 글은 스멀스멀 읽는 이에게 다가온다. 그러고는 몸과 마음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가열하게 휘감는다. 최근에 나온 고종석의 산문집 <어루만지다>를 두고 하는 얘기다. 마지막 쪽까지 정성들여 읽고 나니 내 몸과 마음은 이미 그의 글은 점령당한 후였다. 풍부한 언어학적 깊이와 남다른 감성 그리고 차분하고 은밀한 속삭임까지. 이 책은 읽는 이를 현실로부터 한 발짝 떨어뜨려 놓은 뒤, 온전하고 또렷하게 사랑의 밀어를 들려준다. 고종석은 역시 다르다. 그의 글은 일반적인 논설위원, 에세이스트와는 차원이 다르다. 언어, 말의 고수가 들려주는 사랑 이야기는 시종일관 읽는 이를 감싸 안는다. 로맨스와 에로스의 경계에서 맺어진 이 텍스트의 안감이 더 없이 포근하고 아늑하다면, 당신은 이미 그의 글에 감염된 것이다.

책은 사랑을 할 때 다가오는 거의 모든 것에 대해 다룬다. 사랑의 기슭인 입술, 은밀한 감추기, 교감의 메아리, 자유와 사랑을 오가는 그네, 꽃으로서 오롯이 빛나는 꽃값, 시샘하는 손톱, 꼼지락거리는 발가락, 애달픈 가냘픔, 온전함을 향한 켤레 그리고 사랑의 유토피아인 거품에 이르기까지. 이 책에서 다루는 글의 표제어는 모두 토박이말로 이루어졌다. 그래서일까. 우리 고유의 말들이 유난히도 착착 감긴다. 장을 넘기는 손가락에도, 글자를 따라가는 눈에도, 따라 불러보는 입술에도, 그 소리를 듣는 귓가에도. 때론 섹시하고, 때로는 순수하며 때로는 애달픈 사랑의 수없이 많은 느낌이 모국어 고수인 고종석에 의해 재해석된다. 얄팍한 연애서나 너무 진지하고 난해한 철학서에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는 지성과 감성의 조화로운 교감. 그런 걸 완성할 수 있는 글이, 책이 있다면 아마 이 책 <어루만지다>가 일말의 해답이 될 수도 있겠다.

네 앞에는 무지개가 있어

고종석의 글은 끊임없이 상상력을 자극시킨다. 닫혀있던 머리와 가슴은 겨우내 잠들었다 막 깨어난 곰처럼 어기적거리다가 그네에 올라탄다. 발을 허공에 차면, 고운 선 따라 움직이며 또 다른 세계와 접속한다. 너머의 이룰 수 없는 희망과 몽상. 언제고 우리 앞에 다가올 것만 같은 무지개까지. 이룰 수 없어 슬프다고? 걱정하지 마시라. 그런 떠밀림이 있었기에 우리는 좀 더 한 발 나아갈 수 있었다. 작가도 말하고 있지 않은가.

무지개나 무지개 너머가 상징하는 이 희망들은, 흔히, 이룰 수 없는 희망들이다. 무지개 추적자는 몽상가다. 그러나 희망의 그 어기찬 추구에 떠밀려 세상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본문 104쪽, <무지개>중에서)

누구나 살면서 사랑한다. 보듬고 아끼고, 그 때문에 울고 웃는다. 한동안 굳게 닫혀있던 싸늘한 마음이 이 책을 읽고 나서 조금은 열렸다. 주위를 둘러보면 내가 어루만져야 할, 또 날 어루만질 인연은 너무나 많았다. 왜 그토록 타인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무심하게 굴었을까. 내 손은, 내 입술은 왜 그토록 묵묵부답이었던가.

길어봐야 백 년 안에 썩어문드러질 제 손을, 제 볼과 입술을, 그런 멋진 일에 써보자. 한 시인의 표현을 훔쳐오자면,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본문 236쪽, <어루만지다> 중에서)

사그라지는 별빛을 맞으며 주름진 피부의 신사가 어둑한 새벽길을 노닌다. 벼락같은 비 무덤의 습격으로 흠뻑 젖은 몸을 이끌어 가면서. 소리 질러도 메아리는 돌아오지 않는다. 아스팔트와 빌딩, 가로등, 희뿌연 공간은 대답하지 않는다. 가녀린 육체는 짝 잃은 신발처럼 슬프고 애잔하다. 그 때, 실바람이 그의 귓가를 간질인다. 그 속삭임이 한 잔 술처럼 그를 녹인다. 길고 하얗게 뿜어내는 긴 한숨처럼 이 외로움과 서러움 가실 날이 오겠지만. 바람이 말한다, 그의 주름진 살결에다 대고. “네 앞에는 무지개가 있어. 굳이 천둥 번개를 헤치며 나아갈 필요는 없어.” 그건 위로이고 배려였으며 열정 그 자체였다. 그가 바람을 어루만진다. 무지개 너머로 해는 떠오른다. 그의 사랑은 다시 시작될 수 있을까. 

서럽고 또 서러워 정처 없이 우니 주위는 어느새 바다가 되어 있었다. 이제 그는 차갑게 식은 열정을 다시 꺼내들어 차분하게 한 발 한 발 다시 내딛는다. 고종석의 <어루만지다>는 살갑게 건네는 주름진 사랑의 말들이다. 기꺼이 받아들어 눈을 다시 감으면, 누군가가 어루만지는 살결의 떨림이 느껴진다. 다시, 사랑의 시작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자크'님은?

책을 한 꺼풀 한 꺼풀, 벗겨낼 때마다 어두운 방안의 스탠드는 더 환하게 빛납니다. 이 작은 직사각형의 종이뭉치들이 있어 밤이 외롭지 않습니다. 마지막 장까지 다 읽고 나면 차오르는 환희는 두서없이 머릿속을 맴돌다, 몽클 문자라는 기호로 아주 살짝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글의 보드라운 안감이 파르르 떨리는 손끝에서 느껴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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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뱅이의 역습 - 반란은 나의 것

마쓰모토 하지메, <가난뱅이의 역습>, 이루, 2009

세상에 처음부터 뭐든지 잘하는 사람은 없다. 기타를 잘 쳐보려면 기타를 일단 잡아야 하고, 춤을 잘 춰보려면 최소한 TV에 나오는 댄서들의 안무를 따라는 해봐야 한다. 그런데 세상에 참 많은 사람들이 해보지 않고 불가능하다고 한다.

물론 더 어처구니없는 경우도 있다. 해보지도 않았는데 “넌 경험이 없어서 안 돼.”라고 말하는 경우다. 요새 취업정보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요구하는 것은 죄다 경력직이다. 일도 안 해봤는데 할 수 없다고 하는 경우다. 일도 해봐야 잘 할 것 아닌가? 그런데 한편에서는 젊은이들이 힘든 일을 안 하려 한다고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일을 해본 사람만 뽑으려 한다. 그러면서 뒤에서 힐난할 따름이다. 단군 이래 가장 영어를 잘하고, 가장 많은 인턴을 했으며, 가장 많은 시간의 학업 노동을 수행해온 ‘88만원 세대’가 겪고 있는 상황이다. 문을 10분의 1로만 열어놓고 살아남아 보라 한다. 그래놓고 힘들면 ‘자기계발’이 부족해서라고 말한다. 다 거짓말이다.

하지만 이런 비판도 너무 흔하다. “그래서 어쩌라고?”라고 반문했을 때 “사회구조가 잘못되었다고!”라고 소리 지르는 것이 무력한 순간들이 꼭 오곤 한다. 착하게 엄마가 시키는 대로 공부하고, 대학가서 대기업이 원하는 대로, 공무원 채용시험이 원하는 대로 공부한 이들에게 펼쳐진 지옥을 어떻게 뚫어야 할까? 뭐라도 해봐야 한다. 기존의 질서대로 살 수 없다면 나름의 방식들로 돌파해야 한다. 마쓰모토 하지메의 <가난뱅이의 역습>은 무기력하게 당하고 있는 이들에게 한 바탕 놀아보자고 한다. 그게 어쩌면 세상에서 가난뱅이로 전락해 버릴 젊은이들의 살 길이라고 말한다.

우선 혼자서도 잘 살아남을 수 있어야 한다. 발가벗겨 서울역에 던져놔도 살 수 있는 능력을 알려준다. 집을 싸게 얻는 방법, 노숙하는 방법, 걸식하는 방법, 차를 공짜로 얻어 타는 방법 등등. 이런 걸 알아야 하는 이유는 거지가 되자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이 없어도’ 살 수 있어야 다른 뭔가를 해볼 여유가 생겨볼 것 아니냐는 거다. 대부분의 한국의 20대가 대학을 다닐 때까지는 부모가 주는 용돈을 받아쓰고, 직장을 잡고 결혼하기 전까지는 부모의 집에서 떠나려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원하는 직장과 자신의 소망이 뒤집혀 버리는 것은 아닐까? 혼자서 생활을 건사해보는 청년이 없기 때문에 동시에 자신의 삶들을 계획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혼자서 어떻게든 버틸 수 있게 되었다 치자. 이제 무엇을 해볼까? 그건 사회적인 문제가 되어버린다. 그는 헌옷과 재활용 센터를 창업한다. 왜 헌옷과 재활용 센터냐고? 계속 ‘신상’을 바라면 바랄수록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결국 더 많은 돈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그 돈을 벌기 위해 계속 노동의 강도와 시간만 증가할 따름 아닌가? 하지만 “자기 지역에서 물건이 돌고 돌 때 수리와 개조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중고품이 우리 손에 들어온 다음에는 어떻게든 우리 손으로 새롭게 태어난다는 말이다. 결국 물건에 관한 자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p.79)

놀아봐야 놀 줄 알지

하지메는 동네에서 빈둥거리는 젊은 가난뱅이들을 긁어모은다. 재활용 센터 <아마추어의 반란>은 ‘경쟁사회’가 강요하는 ‘모범생 노예’에서 탈출한 이들의 해방구가 된다. 장사를 안 할 때에 가게는 술집이 되고, DJ의 테크노 파티장이 되고, 영화관이 된다. 또한 지역사회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들을 관청의 ‘무료 복사기’를 이용해서 ‘찌라시’와 신문의 형태로 배포한다.

그리고 데모도 한다. 데모야 말로 가장 즐거운 놀이판이라고 한다. 여기서 잠깐 한국의 80년대 운동권들의 비분강개형의 전형적인 집회를 생각할 수 있겠으나, 아니다. 데모는 즐겁고 에너지가 분출되는 자리이다. 춤추고 노래하고 퍼포먼스를 일삼는다. 많은 이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이 아니라, 차량을 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라이브 밴드의 무대가 되는 거다. 작년 촛불 집회의 초기처럼 어디로 튈 줄 모르는 럭비공이 되어버리는 거다. 권력자들은 이런 것이 가장 무섭다. 심지어 선거에도 출마한다. 이기고 지고가 문제가 아니다. 지방선거에 등록된 후보자라는 점을 이용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쏟아내고 한바탕 축제를 벌인다. “‘혁명 후의 세계’가 고엔지에 출현해버린 것이다! 얼씨구!”(p.159)

물론 이건 일본 이야기다. 그리고 <아마추어의 반란>이라는 가게가 가능한 것도 그들의 지역에서의 ‘풀뿌리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는 데에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메트로시티의 현란함 뒤에 여전히 버티고 있는 소상인들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경쟁 사회’의 신화라는 것들이 ‘대규모 청년 실업’의 상태로 무너지고 있는 지금. 뭐라도 해야 하지 않는가? 어쩌면 ‘강남’의 현란함에 대한 환상만 깨뜨린다면 가장 쉽게 20대가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은 지역이 아닐까? 여전히 평상을 펼쳐놓고 함께 소주 한 잔을 건네고, 옆집 김장을 같이 도와주는 사람들이 아직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런 공간에 ‘잘나가는 아무개’로서가 아니라 같이 공존하고 서로 도울 수 있는 관계들의 소중함을 말하고 일궈가는 사람 몇 만 있어도 20대의 생존공간이 조금은 덜 퍽퍽해지지 않을까? 그리고 그 공간에서 놀아 보고 놀 줄 알게 된다면 그 때에는 이 세상도 조금은 변하지 않을까? 그 놀아본 경험들을 ‘배운’ 20대의 감성으로 지역에서 일구는 것이 아마 ‘주류사회’에서 다 늙어서 ‘배지’를 차고 하는 것보다는 쉽지 않을까? 놀아봐야 놀 줄 알지.

오늘의 책을 리뷰한 
'Hendrix'님은?

28살의 블로거. 고등학교 때 Radio PD가 되겠다고 생각해서 신문방송학을 공부하겠다고 대학에 갔는데, 그 학교에는 신문방송학과가 없었다. 그래서 대신 정치학을 공부했다. 덕분에 상상력은 감퇴되고 세상에 대해 까칠해지기만 했다. 그걸 피해보려고 노래하는 동아리에서 기타를 쳤지만, 늘라는 기타 실력은 안 늘고 술 실력과 노가리 푸는 실력이 늘었다. 요즘은 다시 그 상상력을 키우기 위해 생전 안 읽던 소설도 수필도 읽고, 영화도 좀 보고 연극도 종종 본다. <PD 저널>과 기독교 문화 매거진 <오늘>에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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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스 웨이: 세계는 지금 새로운 리더를 요구한다


달라이 라마, 세상을 이롭게 할 '비즈니스 리더십'을 말하다 

시장에서 손님과 장사꾼은 흥정을 하고 있다. 좀 더 깎자는 손님과 그럼 하나도 안 남는다고 버티는 장사꾼. 결국은 약간의 덤을 주면서 이렇게 말하며 흥정을 맺는다. “이러면 밑지고 파는 거예요, 정말이에요, 손님.” 돌아서면서 손님들은 “하여튼 장사꾼은 모두가 거짓말쟁이”라고 말한다.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그 거짓말쟁이 장사꾼을 다시 찾아간다. 정말 밑지고 판 것을 안 건지, 다른 장사꾼보다는 덜 거짓말을 한 지는 모른다. 어쩌면 한 움큼의 덤 때문인지도 모른다. 늘 욕먹으면서도 “안녕히 가세요, 또 오세요.” 장사꾼은 고개를 깊이 숙인다.

우리나라의 상업은 사농공상 중 맨 꼴찌였다. 흥정 붙고, 속인다는 이유였다. 장사꾼이 종교를 믿는 것도 우습다고 여겼다. 한편으론 종교를 믿고 사죄 받아야 매주 새로운 거짓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냐 말하는 사람도 있다. 경제에서 말하는 ‘부가가치’는 때로 ‘부당한 이익’으로 불린다. 아무렴 어떠랴. 소비자가 그렇다는데... 거짓말쟁이로 욕을 먹을지언정 내가 그렇지 않으면 된다. 욕을 바가지로 먹더라도 자주 와서 많이만 팔아주면 좋겠다. 이것이 장사꾼, 비즈니스맨들의 딜레마요, 비애다.

불교와 비즈니스라... 처음엔 어딘가 모르게 물과 기름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인생의 의미라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깊은 산중에 들어가 참인간을 위한 수행을 하는 종교인께서 비즈니스를 말한다니 과연 가능할까 생각이 들었다. 반면 철저하게 제3자가 되어 객관적으로 비즈니스를 관찰할 수 있을 것도 같고, 사람의 삶에 대해 고민하는 종교인 불교는 근본적인 사람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오히려 더 깊이가 있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다. 비즈니스맨들이 행복하고자 돈을 버는데 노력을 다한다면, 수행자들은 삶의 깨달음을 얻어 행복하고자 수행을 한다. 흥미로운 두 관계가 대조를 이룰 것인지 조화를 이룰 것인지 사뭇 궁금해졌다. <리더스 웨이>를 펼친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원제목은 ‘The Leader's Way: Business, Buddhism and Happiness in an Interconnected World’이다.



이 책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이며, 티베트 망명정부의 영적 지도자이고 ‘살아있는 부처’라 칭송받는 달라이 라마(Dalai Lama)와 세계적인 경영 컨설턴트 레우렌스 판 덴 마위젠베르흐가 비즈니스 리더의 면면에 대해 의견을 내어놓고, 서로를 보충해 결론을 맺어가는 방식으로 서술한 특별한 형식의 책이다.

인류의 평화를 위한 노력과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해 애쓴 공로를 인정받아 1989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은 바 있고, 지금은 티베트 정부의 독립을 위해 세계를 돌며 노력하시는, 다시 말해 큰일을 하며 바쁘게 활동하시는 종교지도자가 비즈니스를 논하신 이유가 뭘까 하는 게 책을 펼치기 전에 내가 가진 의문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어나가면서 좀 더 근본적인 곳을 건드려야 더욱 쉽게 널리 퍼질 수 있다는 마케팅 원리를 깨닫게 되었다. 달라이 라마는 대단한 마케팅 전문가였다. 사회를 평화롭게 하기 위해서는 비즈니스 리더와 지도자들을 먼저 변화시켜야겠다는 것이 달라이 라마의 헤아림으로 비춰졌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말이 아닐까? 지극히 올바르신 판단이다.

불교는 인간적 가치관을 강조한다. 전일론(全一論)적 시각, 즉 세상 만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하나의 완전한 전체를 이룬다는 사상은 불교가 비즈니스의 세계에도 기여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부와 노동, 소비와 행복을 대하는 불교의 철학은 우리가 소유하거나 성취하느냐와는 달리 ‘만족할 때’ 비로소 생겨난다. 이는 물질적이고, 욕망의 충족을 이야기하는 서구의 그것과는 좀 다른데, 욕망을 채우고자 하는 본능은 끊임없는 욕심이기에 결코 만족시키지 못하는 끝없는 순환고리이고, 행복은 혼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좋은 관계에서 비롯된 상호적인 것이라는 불교의 가르침은 올바른 비즈니스의 방향에 절묘하게 들어맞았다. 특히 달라이 라마는 비즈니스를 주관하는 ‘리더’에 주목했다. 이 책은 독자와 지도자들이 제대로 리더십을 발휘할 때 그 파장과 영향력이 얼마나 미칠 수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전체적인 구성은 독자 스스로 비즈니스 리더가 되고 지도자가 되어 불교의 뜻이 담긴 마인드로 우선 자신을 수양하고, 조직을 이끌고, 나아가 세상의 주된 이슈들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여 비즈니스와 사회가 좀 더 올바르고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최근 한 나라의 지도자가 친분 있는 경영인으로부터 뇌물을 받아 불명예를 얻고 있는가 하면 투자자의 자금을 최우선으로 보호하는 직업적 윤리관을 가져야 할 금융업계의 수장들이 방만한 경영을 해 기업을 무너뜨리고, 투자자에게 손해를 입히는가 하면, 대량감원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은 어마어마한 퇴직금을 챙기는 악덕 기업인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그들이 일으킨 부도덕과 범죄도 밉지만, 이런 결과가 나오기 전에 그를 훌륭한 지도자라고, 훌륭한 비즈니스 리더라고 믿음을 준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입힌 것이 더 미워진다. “결국 당신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었다”는 체념은 세상엔 믿고 본받을 사람이 없다고 판단하게 만든다. 도덕적 헤이(모럴 헤저드 Moral Hazard)는 이래서 생긴다. 그들이 벌을 받아야 한다면 더 가중한 벌을 받아야 함은 그 이유에서다.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다”고 믿게 만든 죄 때문이다.

자신의 ‘사리사욕’에 우선한다면 그 순간부터 리더가 아니다. 진정한 리더는 침착하고, 평온하며 마음의 중심을 놓치지 않는다. 부정적인 생각이나 감정에 흔들리지도 않아야 한다. 달라이 라마는 진정한 리더란 변화는 피할 수 없으며 보편적인 책임감이 절실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경제와 도덕적 가치를 조화시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아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일을 그르치거나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이제라도 변하고자 한다면 고칠 수 있을까,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불교에서는 사람의 지금까지 그가 행한 모든 일의 축적물로 본다. 가르카(業)의 이치란 선한 이을 행하면 좋은 사람이 되고, 악한 일을 행하면 나쁜 사람이 된다. 악행을 저질렀더라도 선을 행하면 악행의 영향을 줄일 수 있다. 변화는 곧 개선을 뜻한다. ‘점점 더 나아지는 것’, 이것은 경영의 핵심인 혁신(innovation)과 닮았다.

이 책에서 내가 주목한 내용은 ‘리더의 여섯 가지 수행’과 ‘비즈니스 리더를 위한 일곱 가지 마음수련법’이었다. 달라이 라마는 불교용어로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반야에 해당하는 육바라밀(보살이 수행하는 여섯 가지 바라밀법)을 나눔, 도덕적 원칙 지키기, 인내, 열정 다하기, 집중, 참지혜 깨닫기로 풀어 리더들이 먼저 스스로를 정화시키기를 권하고 있다. 이를 돕기 위해 제안된 걷기, 숨쉬기, 앉아 있기, 집중하기, 분석하기, 마음으로 그리기, 만트라 외기 등의 일곱 가지 마음수련법은 자정(自靜)을 위한 방법론으로 삼을 만했다.

사람은 누구나 고민이 있다. 이들을 아우르면 모두 여덟 가지로 압축된다. 모욕이나 무시를 당하면 괴롭고, 칭찬을 받으면 마음이 들뜬다(심하면 고민이 된다). 실패를 경험하면 우울해지고, 상공을 경험하면 행복해진다(행복을 잃을까 고민된다). 또 가난해지면 낙심하고, 부를 얻으면 기뻐한다(얻은 부를 잃을까 고민된다). 마지막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화가 나고, 명성을 얻으면 즐겁다(즐거움이 곧 사라질까 고민된다). 리더 역시 늘 고민 속에 살아간다. 이 책에서 달라이 라마는 그에 대한 해결책도 제시해 주었다.

오늘날을 일러 ‘승자독식사회(Winner takes all - society)’라고 한다. 승자는 마땅히 박수와 찬사를 받아야 하지만, 사회는 승자를 등에 업어 그 명성을 함께 누리려 쏠리게 되고, 경쟁과 암투가 치열해져 그에 따른 비리와 부정, 그리고 승리감을 오래도록 누리려고 하는 욕심은 어울려 결국 ‘명예롭지 못한 승자’들로 전락하고 있다. 기업의 존재 가치는 소비자를 보다 행복하게 하는데 있다. 리더의 존재 가치는 이해관계자들을 모두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데 있다. 제일 앞에 선 리더는 반대로 가장 뒤에서 행복감을 누려야 한다. 자신의 주위에 있는 이해관계자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행복해 할 수 있어야 진정한 비즈니스 리더이고, 지도자가 아닐까? 그 때가 그들이 행복할 때가 아닐까?

달라이 라마가 보여주는 바람직한 ‘리더의 길’을 읽는 동안 세상의 리더들을 반추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내 떠오른 인물은 ‘마츠시타 고노스케’였다. ‘난 학력도 짧고, 몸도 약한 모자란 사람이다. 하지만 이 부족한 사람이 만들어낸 물건을 사랑해주는 소비자들을 위해 목숨 바쳐 더 훌륭한 제품을 만들려고 애쓰고 있다. 세상의 많은 제품 중 내 제품을 사랑하는 소비자는 나의 왕이다. 그 분들이 있어 내 회사가 있고, 내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소비자를 위해 물건을 만드는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는 비슷한 내용으로 자신의 자서전에 쓴 바 있다. 항상 자신을 낮추고 ‘장사꾼’으로 살아온 그는 소비자의 사랑을 알고, 소비자에 대한 사랑의 보답을 안 사람이었다. 그것을 행복으로 안 경영인이었다.

존경하기 보다는 존경받기에 익숙한 경영인이나 지도자들이 읽어야 할 책이다. 그리고 지금 현존하는 비즈니스 리더나 지도자들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젊은이가 있다면 이 책은 그들을 위한 책이다. 저보다 세상을 먼저 이롭게 하겠다고 마음먹기가 사람이기에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겠다고 마음먹는다면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런 사람들, 보다 나은 인간이 되려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달라이 라마의 목소리는 자기계발서들 그 누구의 것보다 “진중하고 무거운 말씀”이 될 것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Richboy'님은?

거의 매일 리뷰를 쓰는 북로거. 특히 책의 핵심을 짚어내고 정리하는 경제경영서 리뷰에 강하다. 인생의 모토가 '하기 싫은 일은 안 하는 자유인'이나, 리뷰 쓰기에선 누구보다도 뜨거운 열정을 보여주는 천상 북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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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소통하는 지름길, 블로그 교과서


블로그는 무엇일까 ?

블로그(Blog)
  web(웹)과 log(일지)의 합성어로 웹에다 기록하는 일기나 일지를 뜻한다. 이 책의 저자는 IT문화원(dal.kr)의 원장인  김중태님으로 저자 역시 오래된 파워블로거라 할 수 있다. 2003년에 <나는 블로그가 좋다>라는 책을 처음 집필한 후 그가 두 번째로 다시 블로그에 대한 이야기를 집필했다. 책은 아주 기초부터 처음 블로그를 시작하려는 블로거에게 블로그에 대한 정의를 내려주면서 댓글, 트랙백, rss 등 기초적인 이야기에서 후반부 블로그 마케팅, 해외 블로그 사례, 파워블로그, 기업블로그, 블로그 저널리즘 등에 대한 이야기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았다.

블로그를 처음 접하는 초보 블로거부터 이미 좀 익숙해진 중급 블로거까지 읽기에 편한 안내서이다. 저자는 친절하게도 책속의 내용과 그 외의 내용은 IT문화원에서 Q&A도 받고 있다.

1인 미디어 블로그는 결국 사이트를 운영하는 블로거의 추억 지식 그리고 경험을 보관하는 기록창고 입니다. 따라서 블로깅은 사람들이 일기를 쓰고 사진을 찍어 앨범에 정리하는 행위와 같습니다. 일기에서 중요한 것이 작성자인 것처럼 블로그에서도 웹에 기록된 게시물보다 블로거 자신이 중요합니다.

이 책은 블로그[각주:1], 블로깅[각주:2], 블로그스피어[각주:3] 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블로그 저널리즘, 블로그가 세상에 미치는 영향, 가끔씩 말이 많은 블로그 스피어의 마케팅과 블로그의 상업화와 FAKE 마케팅(거짓마케팅) 등 블로그 상업화에 대한 문제점과 해외 사례도 이야기하고 있다. 한국형 블로그 서비스의 특징과 해외 사례에 공감 가는 내용도 많고 블로그를 오래했다면 처음 시작부분은 건너뛰고 중간부터 읽어도 무방하다. 책은 부분부분 골라서 읽어도 된다. 책 개요 부분은 이미 블로그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너무 쉬워서 그냥 넘어가도 될 내용이지만 한번 되짚어 본다는 의미에서 읽어봐도 괜찮지 않나 싶다. 1인 미디어로서 블로거의 역할, 그것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 등이 후반부에 나온다.

책은 블로그라는 문화와 블로깅을 하는 도구의 기술적인 부분이 처음 인터넷에서 어떻게 시작했나부터 현재까지 블로그의 진행 과정과 발전과 ! 미래를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단순히 블로그를 시작하려는 블로거에 대해 이렇게 하라는 것이 아닌, 읽어보고 생각해 볼 문제도 블로거에게 던져주며 이야기하고 있다. 다양한 국내외 블로그 사례들도 읽어보면 재미가 있다.


블로그사이트를 위해서 블로깅하지 마세요. 자신을 위해 블로깅하세요. '이래야 블로그'라는 생각은 버리세요. 블로그의 정의보다 중요한 것은 블로거가 부여한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의미와 행복에 맞추어 블로깅 하세요. 저자가 책에서 이야기하는 블로거의 초점 참 마음에 드는 이야기다.

블로그 스피어에서 우리가 흔히 보는 포스팅들 블로그로 수익을 내는 방법 어쩌고~ , 파워블로그가 되는 방법 어쩌고, 또는 블로거는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블라~블라~
, 상품 하나 받고 장점만 죽 늘어놓고 '지름신이 왔어요'하는 리뷰 등 처음 블로그를 접하시는 분들은 저런 포스팅을 따라하게 되는 경향이 있는데 (저런 포스팅이 다 나쁘거나 그런 건 아니니 오해마시길) 자신만의 색을 만들기 위해 책은 블로거를 중심으로 블로그 그리고 블로깅, 블로그 스피어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해주고 있어서 읽는 재미가 있었든 책인 듯하다. 처음 블로그를 접하는 초보자라면 읽어보라 권하고 싶고 중급자가 읽어봐도 괜찮은 듯하다.

굳이 책을 읽지 않더라도 블로그를 하고 있다면 한 번 쯤은 자신의 블로그에 대해 생각해 보고 왜 블로그를 하는지 누구를 위한 블로깅인지를 생각을 하고 이야기해 보는 것도 좋을 거 같아 권해드리고 싶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Fallen Angel'님은?
카메라, 애니메이션, 영화, 사진 새로운 물건들, 낯선 곳 방문, 블로그에서 대화, 고양이 가르릉 소리 등을 좋아하는 블로거. Fallen Angel님의 블로그 'Ballad of Fallen Angel'에서는 직접 키우는 고양이 등 주인장의 잡다한 세상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
http://rayca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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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머의 루머의 루머 - 귀를 기울이며

 

 제이아 셰르, <루머의 루머의 루머>, 인생의책, 2009


# 이야기는 단순하다. 연속된 루머들에 의해 그녀는 죽었다. 그녀가 죽은 이유가 밝혀진다.

'최민수는 어떻게 괴물이 되었나', '고 최진실씨 자살사건', '고 장자연씨가 자살까지 결정할 만큼 고민했던 일' 등의 사건을 바라보면 사람들은 타인의 평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공통점이 보인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라는 속담과 '모든 일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말은 오해에서 빚어졌던지, 타인의 악의에서 벌어졌던지 간에 당사자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깊은 마음의 상처를 남긴다.

제목만 봐도 루머에 관한 이야기겠구나 연상이 가능하다. 그 루머들이 보이지 않는 끈이 되어, 그녀의 숨을 조이고 잘못된 선택의 디딤돌이 된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살아있는 자를 위해 고인과의 추억은 재구성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생을 마감했던 해나는 달랐다. 그녀는 자신의 죽음과 연관된 의도와 관계없이 연루된 이들에게 7개의 카세트 테이프와 지도를 남긴다. 그녀가 제시한 명령은 단순하다. 일단 듣고, 다음 순서의 사람에게 카세트를 남길 것. 지도에 표시된 그녀가 루머와 연관된 장소에서 그녀의 메시지를 들으면 된다. 그녀와 첫키스를 나누었던 그녀와 더욱 가까워질 수 있었던 순간에, 그녀가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여 멀어졌다고 느낀 화자는 카세트를 받고 당혹스러움을 느낀다. 그녀를 많이 아끼고, 멀리서 오래 짝사랑했지만, 그녀의 루머를 듣기도 했지만, 그녀와 깊은 대화를 하지 못했던 화자 클레이.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제서야 클레이는 그녀가 오래 고민하고, 방황했던 이유를 알게 된다. 너무 늦었다고 생각되었을때, 새로운 기회가 찾아오는데...

# 희망을 잃은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소하지만 진실된 관심.

자살을 결심한 이에게는 다섯 가지 전조증상이 있다고 한다. 머리를 자르던가, 헤어스타일 등의 변화가 나타나기도 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다른 이들에게 선물하기도 한다. 자신에게 나쁜 루머들이 쌓여가는 괴로움과 불운이 겹치면서 해나는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어나가고, 루머의 루머의 루머들에 의해 잘못된 선택을 결정한다. 죽기 직전까지 그녀가 원했던 것은, 사소하지만 진실된 관심과 자신의 외침을 귀 기울여 줄 사람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우연과 오해의 연속으로 무너지는 해나를 사랑했던 화자는 그녀가 그런 상황이었다는 점을 전혀 알지 못한다. 진실을 뒤늦게 알게 된 클레이의 안타까움은 책을 읽는 내내 전해진다. 저자가 말하고 싶었던 건, 모두가 해나를 죽이는데 동조했다는 비난이 아니라, 사건과 연루된 13명, 아니 그녀의 주변에 있던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면, 잘못된 선택을 막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재환기시키는데 초점을 맞춘 듯 보인다.

루머에 의해 그녀는 죽었고, 죽은 줄 알았던 그녀가 테이프를 통해 살아나 그동안의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한다. 단순한 구조이지만 하나씩 이야기가 벗겨질수록, 더욱 관심과 흥미에 쏠리게 된다. 그녀를 힘들게 했던 사건은 엄청 큰 사건이 아니라, 장난으로 여길 수 있는 사소하고 미묘한 사건들이었다. 불운이 조금씩 쌓여가며 그녀는 무기력해져 갈 뿐이었다. "괜찮아. 루머일뿐이야, 해나, 너를 믿어"라는 한 마디를 듣고 싶었지만, 누구나 그런 말을 전하지 않았다.

경제고와 자신의 상황을 절망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가 늘어나고 있다. 나약한 사람의 비겁한 변명이라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있고, 내가 구할 수 있었는데, 자책하는 사람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누군가의 자살을 한 사람이 온전히 막아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단지 자살의 순간을 뒤로 유예할 수 있을 뿐이다. 혼자가 아닌, 많은 이들이 사소한 관심을 더 기울인다면, 그들이 잘못된 순간을 하는 시간이 늦춰질 것이고, 그러는 와중에 생을 살고픈 희망의 기회도 돌아온다. 희망을 잃은 그들이 필요한 건, 돈과 실제적인 도움이 아니다. 시간을 조금 내면 충분히 귀 기울일 수 있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해주는 작은 시간이다.

자살에 대한 통계를 검색하던 중, 아침 기사로 할리우드 톱스타 데미 무어의 훈훈한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데미무어는 블로그 사이트에 접속해 팬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 샌디가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블로거의 "죽고 싶다"는 대화내용을 보게 된다. 이후 "지금 칼을 꺼내고 있고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한 번에 끝내겠다"는 또 다른 메시지를 받은 그녀는 "농담이길 바란다"는 답메시지를 보내며 네티즌과 대화를 통해 시간을 끌기 시작했다. 같은 시간 남편인 에쉬튼 커쳐는 사이트에 포스팅을 해 도움을 요청했고, 글을 본 다른 네티즌들은 자살하려는 샌디가이가 사는 경찰서로 연락을 취해, 경찰이 그녀의 집에 방문하게 만들었다. 다행히 경찰은 상처를 입기 전에 그녀를 발견했고, 그녀는 48세의 나이로 직업을 구하려다 삶에 행복을 느끼지 못해 자살을 시도하려 했었다고 경위를 설명했다. 죽고 싶다는 작은 메시지를 받고 신속하게 대응한 데미무어와 남편, 네티즌과 경찰의 힘으로 하나의 생명이 잘못된 선택을 하는 일을 멈출 수 있었다.

타인에게 희망을 기대기보다, 자신이 스스로 강해져야 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힘든 세상도 나를 지지해주는 한 사람이라도 존재한다면 그 길이 힘들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주는 존재, 어려운 일이지만, 대단히 큰 부와 권력 혹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건 아니다. 사소한 루머, 장난으로 보이는 루머가 누군가에게는 치명적인 피해가 될 수 있다는 것, 누군가를 살리는 힘은 돈과 직업이 아니라, 그의 말을 주의 깊게 들어주는 사소한 관심이라는 사실을 책을 통해 다시 느끼게 되었다. 지쳐버린 이에게 작은 힘을 건넬 수 있는 힘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누구에게나 존재하기에 주변의 사람이 생을 잃은 선택을 했을 때, 더 많이 자책하게 되나보다. 지금도 주변에서 힘들다며 보이지 않는 신호를 보내는 이가 많을 것이다. 내가 힘들다고, 때론 나약한 생각이라며 외면했던 마음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기회를 제공한 소설이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님은?
 ‘책 속에 엄한 스승과 두려운 벗이 있다. 읽는 사람이 진부한 말로 보아버리는 까닭에 마침내 건질 것이 없을 따름이다’ (정민,「영단」,『죽비소리』, 마음산책). 막힌 눈과 귀를 열기 위해, 책의 바다에서 열심히 물장구치는 초보 독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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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신남이야기 - 키키봉씨의 일상, 아직도 여전한가요?

조한웅 저/이강훈 그림, <독신남이야기>, 마음산책, 2008

키키봉씨의 일상, 아직도 여전한가요?

불타는 고구마. 이건 초등학교 6학년 때의 담임선생님 별명이다. 그리고 이 별명은 선생님께서 스스로 알려주신 것이다. 그래서인지 기억에 참 오래 남는다. 뜬금없이 왜 선생님의 별명을 들먹이냐고? 지은이에겐 정말 미안하지만, 기억 속의 선생님과 지은이가 닮아있기 때문이다. 날 믿고 아껴주시고 내가 좋아했던 사람을 닮았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좋은 인상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그렇다. 두 번째 만남이다. 지은이 조한웅은 <낭만적 밥벌이>라는 책을 먼저 냈었다. 제목이 꿈만 같아 보고 싶어졌고 그리 낭만적이지 않은 내용을 유쾌하게 써 낸 글 솜씨에 많이 웃었다. 책을 덮을 무렵엔 ‘조한웅=위트 가이’라는 공식이 만들어졌다. 카피라이터여서 평소에도 글을 써왔던 사람답게 그는 평범한 일상도 시트콤처럼 풀어내는 재주가 있었다. 카페사장이 되어 향긋한 커피를 마시고 음악을 들으며 우아하게 카피를 쓰는 환상에 젖는다. 그래서 정말 카페를 만드는데 처음부터 돈 문제를 시작으로 온갖 문제에 부딪힌다. 이런 사정도 그의 재주아래선 만화 같은 일상이 되어버린다.

이런 매력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책을 읽게 됐을 때 기뻤다. 표지만 들춰도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제목을 보니 온전히 자기 자신에 대해, 연애에 큰 비중을 둔 자신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 할 것임을 알았다. 서문을 보니 이 책은 카페 창업기를 쓴 <낭만적 밥벌이>보다 후에 출간됐지만 시간적 배경은 그 이전이라 한다. 독신생활에 대한 환상을 갖지만 실제로는 전혀 달랐던 외롭고 고달픈 생활이다. 그렇게 프리랜서 카피라이터라는 명함을 달고 있는 독신남 키키봉(작가의 닉네임)은 부풀다 못해 터져버린 독신생활을 자신의 재주를 마음껏 사용해 털어놓았다. 당연히 이번에도 웃음이 가득하다.

글이 재미있는 것도 좋지만 아주 평범한 사내의 속마음과 생각이 솔직하게 드러나 있어 더욱 좋았다. 같은 남자라면 공감하는 수준일지 모르지만 여자의 눈에서는 다른 종의 생각과 생활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볼거리이다. 시작부터 키키봉은 최고였다. 그저 젊은 파출부를 원했건만 예쁜 파출부가 오자 안절부절 못하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옆집 여자에게 첫눈에 반하고 그녀와 편지를 주고받다 그녀가 권한 책을 끙끙대며 읽는데 그 사이 이사가버리더라는 고백도 들어있다. 그 책 제목은 육식의 종말이라고. 책 제목인줄 모르고 무슨 이야기일까 상상하다가 이런 사정을 알고는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간간히 나오는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로 감동도 곁들여주니 책을 손에서 놓기가 어려웠다.

어느 샌가 나는 키키봉의 세 번째 책을 기다리고 있었다. 더욱이 그는 책머리에 기대하라고 했다. 이 책이 출판사와의 관계를 불편하지 않게 할 만큼 팔리면 창업기 이후의 내용도 뻔뻔스럽게 낼 야심이 있다고 말이다. 그게 언제일지 모르지만 그의 글을 읽으며 항상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나는 다시 한 번 기대하고 있다. 다음엔 꿈에 그리는 신부를 만나 유부남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본다. 평범한 한 사람의 일상이 이렇게 유쾌하게 표현될 수 있다면, 내 일상도 어쩌면 생각보다 더욱 재미있고 즐거운 것인지도 모른다. 이것만으로도 그에게 고맙다. 혼자 있어도 웃고 싶다면 키키봉의 책을 권하겠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하니엘'님은?

경품카페를 돌아다니다 책을 받은 후로 한 달에 한 권은 읽자는 생각이 가소롭다는 것을 깨달음. 침대와 마주보고 있는 책장에 액자처럼 세워둔 <오바마 이야기>의 표지를 보며 매일 아침 ‘안녕’ 하고 인사한다. 최대한 다양하게, 자유롭게 책을 읽는 것이 목표인 아직은 2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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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과학적으로 사랑을 한다-사랑과 과학의 신비한 조합

다케우치가오루외 , <고양이는 과학적으로 사랑을 한다>, 살림, 2008

 하나의 책이 두 가지 요소를 잘 믹스할 수 있을까? 가령 ‘사랑’과 ‘과학’ 같은. 왠지 안 어울릴 것 같은 조합이다. 사랑이라 하면 달달한 이야기가 펼쳐져야 할 것 같고, 과학이라 하면 왠지 딱딱한 이론서의 느낌이 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두 가지를 제대로 믹스한 책이 나왔다. <고양이는 과학적으로 사랑을 한다>, 제목부터 심상찮다.

한 쪽 눈은 금색, 다른 쪽 눈은 진한 파란색을 띤 민트빛 고양이 한 마리가 책 위에 사뿐히 앉아 있는 표지도 인상적이다. 두 눈은 보는 이를 가만히 응시한다. 마치 어딘가로 읽는 이를 데려갈 심산인 듯 보인다. 뭐, 이렇게 매력적인 고양이가 안내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가보고 싶은 맘이 들기도 하는데…

어느 날 강가에서 찾은 한 여자 ‘샨린’과 사귀고 있는 물리학 전공자 ‘도오로’. 모든 문을 잠갔다고 생각한 어느 날 밤, 한 마리 고양이가 난데없이 그의 삶에 등장한다. 유일하게 열려 있던 것은 슈뢰딩거의 고양이 일러스트가 있던 책. 그리고 있어야 할 그림 속엔 고양이가 없다. 결국 그는 책 속에서 고양이가 나왔다고 받아들이게 된다.

슈뢰딩거 고양이. 양자론에 있어 절대적 수식인 슈뢰딩거 방정식을 고안한 슈뢰딩거가 했던 사고 실험에 등장하는 고양이다. 상자에 두 칸을 만들어놓고 한 쪽에는 고양이를, 한 쪽에는 분열하는 방사성 물질을 넣어둔다. 이 물질이 방사선에 의해 붕괴되면 독가스가 나와 고양이는 죽게 된다. 이 때 붕괴 확률은 50%. 즉, 상자를 열어 확인하지 않는 이상 고양이는 반은 살고, 반은 죽은 상태이다. 즉, 양자에 있어서도 이론만을 강조하는 것은 반 쪽짜리 사고방식일 뿐임을 설명한 이론이다.

어쨌거나. 마치 양자와도 같이 그들을 과거의 세계로 이끄는-그것도 현재의 시간 변화 없이-고양이와 함께 도오루와 샨린은 역사 속의 위대한 과학 장면과 마주치게 된다. 그렇다면 이 책은 과학사의 중요한 부분을 통해 그 이론을 설명하고자 한 책일까?

아니다. 단지 과학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뿐.

위대한 발명품 안티키테라의 기계 설계도, 위대한 일본 수학자의 봉납될 산액, 아인슈타인의 사라진 특수상대성이론의 자필 초고를 그들이 가져온다는 설정은 어디서 본 듯하지만 참신하다. 그 물건들이 지금 남아있지 않은 이유를 소설 속에 녹여내면서 ‘그럼 실제로는?’에 이르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 과거로 이끄는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이 책은 우리를 지식의 세계로 이끈다.

한편으론 과학 역사 속 유명한 인물들의 일화를 통해 호기심을 일으키기도 한다. 동물과 의사소통을 했다는 콘라드의 깃발 일화, 퀴리 부인의 스캔들, 갈릴레이와의 만남을 위한 모험까지. 이야기는 때로 과대망상적이고 허황돼 보이지만 그만큼 쉽고 재미있다.

무엇보다 술술 읽힌다. 누군가는 이 책을 인문서로 분류할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달콤하고 애틋한 사랑 이야기였다. 소설의 한 장면을 훔쳐온 듯한 결말과 소소하지만 현실적으로 가까워지는 두 사람의 일상. 이런 지루하지 않은 이야기 덕분에 그 안에 숨겨진 과학 이야기도 쉽게 내 마음을 건드렸던 게 아닐까 싶다.

흔히 과학이라고 하면 손부터 설레설레 내젓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을 그런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그저 샨린과 도오루의 일상에 빠져들다 보면 저도 모르게 그들을 따라 인터넷을 켜고 상대성 이론을 검색하는 스스로를 발견할지 모를 일이다. 아니, 굳이 그럴 필요까지도 없다. 이 책만으로도 어디 가서 과학에 대해 센스 있게 말할 한 마디쯤은 준비할 수 있을 테니까.

왠지 오늘 밤에는 똑똑한 고양이가 나오는 책 한 권쯤 베개 옆에 슬쩍 놓아두고 잠들어야 할 것 같다. 슈뢰딩거 고양이가 나오는 책이면 더 좋지 않을까.

오늘의 책을 리뷰한 '굼실이'님은?

항상 책을 끼고 사는 못 말리는 북홀릭 청춘.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책 읽고 글을 썼으면 하는 소원을 매년 빌고 있다. 글로 먹고사는 것을 최고 행복으로 치는 꿈 많은 책바보. 네이버 카페 '책을 좋아하는 사람' 외 활동 중. 2008 네이버 파워블로그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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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표류 - 실패 없는 청춘은 청춘이 아니다


다치바나 다카시, <청춘표류>, 예문, 2005.


“너, 정말 하고 싶은 게 뭐야?”

누군가 내게 꿈을 물어본다.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왔다고 자부해온 나였다. 훌쩍 떠나온 길만큼 어느 새 몸뚱이도 머리도 훌쩍 커버린 나지만, 이 질문 앞에서는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간의 발자취를 슬며시 더듬어보니 무언가 이상하다. 그동안 ‘내가 진정 이루고 싶었던 것’에 대한 열정이 떠오르지 않는다. 부끄러웠던 기억이 없다. 좌절의 시간이 없다. 그래서 나는 내 청춘을 청춘이라 자신 있게 외치지 못하고 결국 우물쭈물해버리고 만다.

이 책에서 다치바나 다카시는 11인의 청춘들을 차례로 조망해간다. 자전거 프레임 빌더, 원숭이 조련사, 사진작가, 소믈리에 등 다양한 청춘들을 소개하면서, 그들이 진정 자신이 원하는 길을 찾기까지 겪은 좌절과 방황, 인고의 시간이 과연 어떤 의미였는지를 새삼 느끼게 한다. 물론 심심치 않게 출간되는 여타 성공담 중 하나이지만, 이 책이 부각되는 이유는 그것이 ‘나 자신’을 투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충 적당주의로 얼버무리고 살아가려는 나에게, 그들은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것일까.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으면서, 나는 그저 파도치는 대로 이리저리 쓸려 다니며 사는 것이 제일이라 믿었다. 그것은 머나먼 항해를 조금 피곤하게 할지는 몰라도, 최소한 다치지는 않을 거란 이유에서였다. 괜한 물벼락을 맞느니 차라리 멀미하고 말 일이지 싶었다. 남들에게는 뒤쳐지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하면서도, 한편으론 너무 튀지 않으려고 끓어오르는 피를 삭히고, 그렇게 적당히 타협하며 평균선만 막연히 넘나들었다. 아아, 나는 정말 멍텅구리 항해자였다. 이 얼마나 한심하고 비겁한 갈지자 선로인가. 최소한의 신기루도 갖지 못한 채 아무 목적 없이 표류하고 있다. 인생에서 가장 큰 회한은 자신이 살고 싶은 대로 인생을 살아가지 못할 때 생긴다고 했거늘.

어느 날, 거울을 보며 조용히 한숨을 내뱉는다.
“너, 나이만 먹었어.”

그것은 현실에 안착하고자 하는 심리, 좀 더 깊숙이 파고들자면 자아에 대한 불안감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혹자는 투쟁이 또 다른 분쟁을 야기한다고 했다. 불합리한 사회제도와 불만, 무관심, 그로 인한 분규와 끊임없는 전쟁, 살인, 가난의 세습과 이기주의의 연결고리 따위가 이제는 지긋지긋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들은 주장한다. 애당초 이놈의 불행한 시대에 잉태된 자체가 잘못이며, 아무리 뭐가 이렇다 저렇다 해봤자 처절한 울부짖음에 지나지 않으므로, 이제 그만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무념무상, 안빈낙도함이 제일이라고. 역사 속 뜻있는 사람들이 속세를 초월하여 초야에 묻혀 지낸 뜻이 여기에 있지 않느냐고. 더불어 제 좋고 남 좋은 게 편안한 인생 아니겠냐고. 그래도 굳이 투쟁하려 들고 싶다면 그 잘난 폐인정신으로 어디 혼자 콕 처박혀 제 밥 적당히 빌어먹고 살 정도의 필살스킬 하나 연마하면 그만이라고.

그러나 그리 살면 무엇 하겠는가. 우습기도 하지. 아무 어려움 없이, 과자공장 기계가 찍어내는 크래커처럼 손쉽게 반죽되고, 똑같은 옷을 입고, 뚝딱 구워져 이내 부스러질 그저 비슷비슷한 인생살이. 수많은 인생 중 ‘일련번호 0000’의 작은 표딱지 하나로 유통되다 저리 안타깝게 폐기되고 말 것을. 나, 그간 죽어도 평범하길 원해왔으나 이제는 도통 내가 정한 노말의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나는 내일 평균치 이상의 식사를 할 수 있고, 모레 누군가에게 벌레보다 못한 대접을 받을 수도 있다. ‘보통’의 범주란 것은 상당히 가변적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타인의 지명도에 반비례한다. 가령 오른손잡이는 보통이다. 보통의 경우(아이러니하지만) 누군가 내게 ‘당신, 오른손잡이군요?’라고 물어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물어준다면, 나는 매우 기쁠 것이다. 나는 그 사람에게 이미 ‘특별한’ 존재가 된 것이니까. 마치 어린왕자의 장미 한 송이처럼.

이렇게 쓰고 보니 참으로 구태의연하지만, 나는 타인의 눈빛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일에 이미 넌덜머리가 난 상태이다. 나는 분명 모든 인생들에게 지나가는 에피소드 181이나 182쯤 될 것이다.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이대로 묻혀가는 것이 억울하고 배알 꼴려 애드리브라도 치고 가야겠다. 기억되고 싶다. 누군가의 인생에 있어 소중한 사람으로 각인되고 싶다. 그러므로 좀 더 투쟁적으로 살아가련다. 치열하게, 누군가의 말대로 더 아파해 보기도 하면서…

‘내가 좋으면 됐지 무얼’ 하고 쓰레기 같은 삶에 만족하는 이들과 늘 불만투성이에 끊임없이 욕심만 부리는 사람들에게도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겠다. 동시에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냐고 스스로 신해철이 되어 절규하겠다. 나, 축구는 헛발질에 바둑도 젬병이라 어깨 너머 눈알만 굴리고, 노래방에선 한껏 띄워놓은 분위기에 발라드 한 키 낮춰 부르는 대참사밖에 일으킬 줄 모르고, 술은 지지리 못하면서 진탕 마셔대다 꼴아박기 일쑤고, 인간관계 또한 그리 썩 좋지 못하며, 페이스나 경제적 여유, 무엇 하나 딱히 내세울 것 없는 못난 청년이지만, 그래, 나는 아직 젊으니까. 수없이 쓰러져도 오뚝이처럼 일어나 하니처럼 달리며 박카스를 벌컥벌컥 마셔댈 수 있으니까. 그게 청춘의 특권이니까.

순응하지 않고,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정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하고 싶은 건 다 하련다. 부끄러움 없는 청춘, 실패 없는 청춘은 청춘이 아니다. 더 부끄러워하자. 더 많이 실패하자. 아자! 내 인생은 이제 막 마알갛게 떠오르는 현재 진행형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최세훈'님은?

20대 청년. 고려대 재학. 제 잘난 맛에 사는 독서가.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전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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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한여름에 마시는 맥주 같은 에세이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문학사상, 2009.


하루키의 에세이는 항상 읽는 즐거움을 톡톡 던져준다. 그의 글은 소설보다는 에세이에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하지만 그 가벼움 속에 간간히 ‘아, 그런 건가’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적당한 무게감을 지니고 있다. 굳이 표현하자면 한여름 냉장고에서 꺼내 뚜껑을 막 연 맥주처럼, 목을 타고 내려가는 차가운 맥주처럼, 그의 글은 청량감이 가득 느껴지는 여름에 마시는 시원한 맥주 같다.

에세이에 관한 하루키의 절대 강점은 생각지도 못했던 다양한 소재이다 -누가 ‘모나미 볼펜’이나 ‘우동투어’를 가지고 에세이를 쓰겠느냐는 말이다- 그는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에세이를 쓰기 때문에 -때로는 이게 소재인가 싶을 정도로- 어떤 글이든 읽고 있으면 즐겁지만 한번쯤은 하나의 소재에 대해 제대로 정리한 글도 읽어보고 싶다.

이런 소망에 부합하듯이 하루키가 이번에 내놓은 책은 자신의 인생에 하나의 축이라고 할 수 있는 달리기와 관련된 글이다. 하루키를 압축해서 명함을 만든다면 ‘마라토너 소설가’라는 직함을 떠올릴 정도로 그의 인생에서 달리기란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고, 이런 요소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기회는 언제나 즐거운 법이다. 책의 제목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레이먼트 카버의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말하는 것들>을 차용한 제목이라고 본인이 스스로 밝혔다. 그야말로 ‘어쩐지’라고 말하고 싶어지는 부분이랄까.)

내 주변에는 하루키의 소설을 두고 20대가 공감할 수 있는 글이라고 하는 사람이 많다. 그의 글이 가볍기 때문인지 혹은 하루키 특유의 다소 허무주의적인 감성 때문인지 나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생각하는 건 그의 소설은 다른 세대가 공감할 수 없어도 에세이만큼은 나이와 상관없이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그의 이야기는 내용과 소재가 반이라면, 나머지 반은 특유의 문체가 즐거움을 준다. 어떤 에세이를 읽어도 ‘흠, 하루키로군’ 하고 생각되는 그의 일관적인 문체 때문인데, 이 문체엔 그를 처음 접한 사람도 긴장하지 않고 책을 읽게 하는 오묘함이 있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이 점이 십분 발휘된 에세이 모음집이다. 하루키 특유의 가볍지만 날아갈 정도는 아닌 어투로 글이 이어져 부담이 없다. 하지만 그의 글을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글이라고만 생각하는 건 곤란하다. 오히려 난 하루키의 글에서 곰곰이 곱씹을 수 있는 구절은 에세이에 더 많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이런 구절처럼.

“그 중에 한 사람은 형(그 사람도 마라토너)으로부터 배운 문구를 마라톤을 시작하면서부터 줄곧 머릿속에서 되뇐다고 했다. Pain is inevitable, Suffereing is optional 이라는 게 그의 만트라였다. 정확한 뉘앙스는 번역하기 어렵지만 극히 간단하게 번역하면 ‘아픔은 피할 수 없지만, 고통은 선택하기에 달렸다’라는 의미가 된다. 가령 달리면서 ‘아아, 힘들다! 이젠 안 되겠다’라고 생각했다고 치면, ‘힘들다’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이젠 안 되겠다’인지 어떤지는 어디까지나 본인이 결정하기 나름인 것이다. 이 말은 마라톤이라는 경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간결하게 요약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pp.8-9)

“강한 인내심으로 거리를 쌓아가고 있는 시기인 까닭에, 지금 당장은 시간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시간을 들여 거리를 뛰어간다. 빨리 달리고 싶다고 느껴지면 나름대로 스피드도 올리지만, 설령 속도를 올린다 해도 그 달리는 시간을 짧게 해서 몸이 기분 좋은 상태 그대로 내일까지 유지되도록 힘쓴다. 장편소설을 쓰고 있을 때와 똑같은 요령이다. 더 쓸 만하다고 생각될 때 과감하게 펜을 놓는다. 그렇게 하면 다음 날 집필을 시작할 때 편해진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아마 비슷한 이야기를 썼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계속하는 것, 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 일단 리듬이 설정되어지기만 하면, 그 뒤는 어떻게든 풀려나간다. 그러나 탄력을 받은 바퀴가 일정한 속도로 확실하게 돌아가기 시작할 때까지는 계속 가속하는 힘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pp.18-19)


1982년 처음 아테네에서 마라톤까지 마라톤 42.195Km(사실 진짜 42.195km는 아니었다고 하지만)을 완주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최근에는 마라톤에서 철인3종경기로 약간의 외도(?)를 했다는 이야기까지 그의 달리기와 관련된 이야기는 읽고 있노라면 한없이 즐거워진다. 그의 인생에 -적어도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렇다 - 한 축이라고 할 수 있는 달리기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일목요연하게 들을 수 있으니 좋고, 사실 무엇보다 너무나 오랜만에 출간된 하루키의 에세이라는 점이 또 좋다. 한여름, 앞에 맥주 한 잔을 놓고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이 기분은 하루키만이 줄 수 있는 느낌인 것이다.

달리기와 함께 한 그의 오랜 기억을 듣고 있노라면 ‘결국엔 살아가는 이야기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빈말이라도 쉽다고 할 수 없고, 일반인들은 엄두도 내지 않는 마라톤을 -정확하게는 달리기를- 그가 하는 이유에 대해서 듣고 있으면 ‘그렇군’ 하며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되니 말이다.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고 싶어서 달리기를 하기 보다는 지금 이 순간을 충실하게 살고 싶어서 현재를 달리고 있을 뿐이라는, 그리고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는 그의 이야기. 이는 살아가는 하나의 원칙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즐거운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하루'님은?

책에 대해 바라는 건 딱 2가지뿐이다. 책에 매몰되지 말 것, 생각하면서 살 것. 나름 소박한 바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시나 책을 읽을수록 책에 매몰되어 가는 자신을 느낀다. 책에 매몰되지도 말고 특히 책에 대한 소유욕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있다. 네이버 블로그에 둥지를 오래 틀고 있다.
(http://blog.naver.com/like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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