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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14 청춘표류 - 실패 없는 청춘은 청춘이 아니다
  2. 2009.04.13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한여름에 마시는 맥주 같은 에세이

청춘표류 - 실패 없는 청춘은 청춘이 아니다


다치바나 다카시, <청춘표류>, 예문, 2005.


“너, 정말 하고 싶은 게 뭐야?”

누군가 내게 꿈을 물어본다.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왔다고 자부해온 나였다. 훌쩍 떠나온 길만큼 어느 새 몸뚱이도 머리도 훌쩍 커버린 나지만, 이 질문 앞에서는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간의 발자취를 슬며시 더듬어보니 무언가 이상하다. 그동안 ‘내가 진정 이루고 싶었던 것’에 대한 열정이 떠오르지 않는다. 부끄러웠던 기억이 없다. 좌절의 시간이 없다. 그래서 나는 내 청춘을 청춘이라 자신 있게 외치지 못하고 결국 우물쭈물해버리고 만다.

이 책에서 다치바나 다카시는 11인의 청춘들을 차례로 조망해간다. 자전거 프레임 빌더, 원숭이 조련사, 사진작가, 소믈리에 등 다양한 청춘들을 소개하면서, 그들이 진정 자신이 원하는 길을 찾기까지 겪은 좌절과 방황, 인고의 시간이 과연 어떤 의미였는지를 새삼 느끼게 한다. 물론 심심치 않게 출간되는 여타 성공담 중 하나이지만, 이 책이 부각되는 이유는 그것이 ‘나 자신’을 투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충 적당주의로 얼버무리고 살아가려는 나에게, 그들은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것일까.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으면서, 나는 그저 파도치는 대로 이리저리 쓸려 다니며 사는 것이 제일이라 믿었다. 그것은 머나먼 항해를 조금 피곤하게 할지는 몰라도, 최소한 다치지는 않을 거란 이유에서였다. 괜한 물벼락을 맞느니 차라리 멀미하고 말 일이지 싶었다. 남들에게는 뒤쳐지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하면서도, 한편으론 너무 튀지 않으려고 끓어오르는 피를 삭히고, 그렇게 적당히 타협하며 평균선만 막연히 넘나들었다. 아아, 나는 정말 멍텅구리 항해자였다. 이 얼마나 한심하고 비겁한 갈지자 선로인가. 최소한의 신기루도 갖지 못한 채 아무 목적 없이 표류하고 있다. 인생에서 가장 큰 회한은 자신이 살고 싶은 대로 인생을 살아가지 못할 때 생긴다고 했거늘.

어느 날, 거울을 보며 조용히 한숨을 내뱉는다.
“너, 나이만 먹었어.”

그것은 현실에 안착하고자 하는 심리, 좀 더 깊숙이 파고들자면 자아에 대한 불안감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혹자는 투쟁이 또 다른 분쟁을 야기한다고 했다. 불합리한 사회제도와 불만, 무관심, 그로 인한 분규와 끊임없는 전쟁, 살인, 가난의 세습과 이기주의의 연결고리 따위가 이제는 지긋지긋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들은 주장한다. 애당초 이놈의 불행한 시대에 잉태된 자체가 잘못이며, 아무리 뭐가 이렇다 저렇다 해봤자 처절한 울부짖음에 지나지 않으므로, 이제 그만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무념무상, 안빈낙도함이 제일이라고. 역사 속 뜻있는 사람들이 속세를 초월하여 초야에 묻혀 지낸 뜻이 여기에 있지 않느냐고. 더불어 제 좋고 남 좋은 게 편안한 인생 아니겠냐고. 그래도 굳이 투쟁하려 들고 싶다면 그 잘난 폐인정신으로 어디 혼자 콕 처박혀 제 밥 적당히 빌어먹고 살 정도의 필살스킬 하나 연마하면 그만이라고.

그러나 그리 살면 무엇 하겠는가. 우습기도 하지. 아무 어려움 없이, 과자공장 기계가 찍어내는 크래커처럼 손쉽게 반죽되고, 똑같은 옷을 입고, 뚝딱 구워져 이내 부스러질 그저 비슷비슷한 인생살이. 수많은 인생 중 ‘일련번호 0000’의 작은 표딱지 하나로 유통되다 저리 안타깝게 폐기되고 말 것을. 나, 그간 죽어도 평범하길 원해왔으나 이제는 도통 내가 정한 노말의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나는 내일 평균치 이상의 식사를 할 수 있고, 모레 누군가에게 벌레보다 못한 대접을 받을 수도 있다. ‘보통’의 범주란 것은 상당히 가변적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타인의 지명도에 반비례한다. 가령 오른손잡이는 보통이다. 보통의 경우(아이러니하지만) 누군가 내게 ‘당신, 오른손잡이군요?’라고 물어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물어준다면, 나는 매우 기쁠 것이다. 나는 그 사람에게 이미 ‘특별한’ 존재가 된 것이니까. 마치 어린왕자의 장미 한 송이처럼.

이렇게 쓰고 보니 참으로 구태의연하지만, 나는 타인의 눈빛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일에 이미 넌덜머리가 난 상태이다. 나는 분명 모든 인생들에게 지나가는 에피소드 181이나 182쯤 될 것이다.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이대로 묻혀가는 것이 억울하고 배알 꼴려 애드리브라도 치고 가야겠다. 기억되고 싶다. 누군가의 인생에 있어 소중한 사람으로 각인되고 싶다. 그러므로 좀 더 투쟁적으로 살아가련다. 치열하게, 누군가의 말대로 더 아파해 보기도 하면서…

‘내가 좋으면 됐지 무얼’ 하고 쓰레기 같은 삶에 만족하는 이들과 늘 불만투성이에 끊임없이 욕심만 부리는 사람들에게도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겠다. 동시에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냐고 스스로 신해철이 되어 절규하겠다. 나, 축구는 헛발질에 바둑도 젬병이라 어깨 너머 눈알만 굴리고, 노래방에선 한껏 띄워놓은 분위기에 발라드 한 키 낮춰 부르는 대참사밖에 일으킬 줄 모르고, 술은 지지리 못하면서 진탕 마셔대다 꼴아박기 일쑤고, 인간관계 또한 그리 썩 좋지 못하며, 페이스나 경제적 여유, 무엇 하나 딱히 내세울 것 없는 못난 청년이지만, 그래, 나는 아직 젊으니까. 수없이 쓰러져도 오뚝이처럼 일어나 하니처럼 달리며 박카스를 벌컥벌컥 마셔댈 수 있으니까. 그게 청춘의 특권이니까.

순응하지 않고,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정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하고 싶은 건 다 하련다. 부끄러움 없는 청춘, 실패 없는 청춘은 청춘이 아니다. 더 부끄러워하자. 더 많이 실패하자. 아자! 내 인생은 이제 막 마알갛게 떠오르는 현재 진행형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최세훈'님은?

20대 청년. 고려대 재학. 제 잘난 맛에 사는 독서가.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전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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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한여름에 마시는 맥주 같은 에세이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문학사상, 2009.


하루키의 에세이는 항상 읽는 즐거움을 톡톡 던져준다. 그의 글은 소설보다는 에세이에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하지만 그 가벼움 속에 간간히 ‘아, 그런 건가’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적당한 무게감을 지니고 있다. 굳이 표현하자면 한여름 냉장고에서 꺼내 뚜껑을 막 연 맥주처럼, 목을 타고 내려가는 차가운 맥주처럼, 그의 글은 청량감이 가득 느껴지는 여름에 마시는 시원한 맥주 같다.

에세이에 관한 하루키의 절대 강점은 생각지도 못했던 다양한 소재이다 -누가 ‘모나미 볼펜’이나 ‘우동투어’를 가지고 에세이를 쓰겠느냐는 말이다- 그는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에세이를 쓰기 때문에 -때로는 이게 소재인가 싶을 정도로- 어떤 글이든 읽고 있으면 즐겁지만 한번쯤은 하나의 소재에 대해 제대로 정리한 글도 읽어보고 싶다.

이런 소망에 부합하듯이 하루키가 이번에 내놓은 책은 자신의 인생에 하나의 축이라고 할 수 있는 달리기와 관련된 글이다. 하루키를 압축해서 명함을 만든다면 ‘마라토너 소설가’라는 직함을 떠올릴 정도로 그의 인생에서 달리기란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고, 이런 요소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기회는 언제나 즐거운 법이다. 책의 제목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레이먼트 카버의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말하는 것들>을 차용한 제목이라고 본인이 스스로 밝혔다. 그야말로 ‘어쩐지’라고 말하고 싶어지는 부분이랄까.)

내 주변에는 하루키의 소설을 두고 20대가 공감할 수 있는 글이라고 하는 사람이 많다. 그의 글이 가볍기 때문인지 혹은 하루키 특유의 다소 허무주의적인 감성 때문인지 나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생각하는 건 그의 소설은 다른 세대가 공감할 수 없어도 에세이만큼은 나이와 상관없이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그의 이야기는 내용과 소재가 반이라면, 나머지 반은 특유의 문체가 즐거움을 준다. 어떤 에세이를 읽어도 ‘흠, 하루키로군’ 하고 생각되는 그의 일관적인 문체 때문인데, 이 문체엔 그를 처음 접한 사람도 긴장하지 않고 책을 읽게 하는 오묘함이 있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이 점이 십분 발휘된 에세이 모음집이다. 하루키 특유의 가볍지만 날아갈 정도는 아닌 어투로 글이 이어져 부담이 없다. 하지만 그의 글을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글이라고만 생각하는 건 곤란하다. 오히려 난 하루키의 글에서 곰곰이 곱씹을 수 있는 구절은 에세이에 더 많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이런 구절처럼.

“그 중에 한 사람은 형(그 사람도 마라토너)으로부터 배운 문구를 마라톤을 시작하면서부터 줄곧 머릿속에서 되뇐다고 했다. Pain is inevitable, Suffereing is optional 이라는 게 그의 만트라였다. 정확한 뉘앙스는 번역하기 어렵지만 극히 간단하게 번역하면 ‘아픔은 피할 수 없지만, 고통은 선택하기에 달렸다’라는 의미가 된다. 가령 달리면서 ‘아아, 힘들다! 이젠 안 되겠다’라고 생각했다고 치면, ‘힘들다’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이젠 안 되겠다’인지 어떤지는 어디까지나 본인이 결정하기 나름인 것이다. 이 말은 마라톤이라는 경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간결하게 요약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pp.8-9)

“강한 인내심으로 거리를 쌓아가고 있는 시기인 까닭에, 지금 당장은 시간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시간을 들여 거리를 뛰어간다. 빨리 달리고 싶다고 느껴지면 나름대로 스피드도 올리지만, 설령 속도를 올린다 해도 그 달리는 시간을 짧게 해서 몸이 기분 좋은 상태 그대로 내일까지 유지되도록 힘쓴다. 장편소설을 쓰고 있을 때와 똑같은 요령이다. 더 쓸 만하다고 생각될 때 과감하게 펜을 놓는다. 그렇게 하면 다음 날 집필을 시작할 때 편해진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아마 비슷한 이야기를 썼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계속하는 것, 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 일단 리듬이 설정되어지기만 하면, 그 뒤는 어떻게든 풀려나간다. 그러나 탄력을 받은 바퀴가 일정한 속도로 확실하게 돌아가기 시작할 때까지는 계속 가속하는 힘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pp.18-19)


1982년 처음 아테네에서 마라톤까지 마라톤 42.195Km(사실 진짜 42.195km는 아니었다고 하지만)을 완주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최근에는 마라톤에서 철인3종경기로 약간의 외도(?)를 했다는 이야기까지 그의 달리기와 관련된 이야기는 읽고 있노라면 한없이 즐거워진다. 그의 인생에 -적어도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렇다 - 한 축이라고 할 수 있는 달리기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일목요연하게 들을 수 있으니 좋고, 사실 무엇보다 너무나 오랜만에 출간된 하루키의 에세이라는 점이 또 좋다. 한여름, 앞에 맥주 한 잔을 놓고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이 기분은 하루키만이 줄 수 있는 느낌인 것이다.

달리기와 함께 한 그의 오랜 기억을 듣고 있노라면 ‘결국엔 살아가는 이야기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빈말이라도 쉽다고 할 수 없고, 일반인들은 엄두도 내지 않는 마라톤을 -정확하게는 달리기를- 그가 하는 이유에 대해서 듣고 있으면 ‘그렇군’ 하며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되니 말이다.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고 싶어서 달리기를 하기 보다는 지금 이 순간을 충실하게 살고 싶어서 현재를 달리고 있을 뿐이라는, 그리고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는 그의 이야기. 이는 살아가는 하나의 원칙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즐거운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하루'님은?

책에 대해 바라는 건 딱 2가지뿐이다. 책에 매몰되지 말 것, 생각하면서 살 것. 나름 소박한 바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시나 책을 읽을수록 책에 매몰되어 가는 자신을 느낀다. 책에 매몰되지도 말고 특히 책에 대한 소유욕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있다. 네이버 블로그에 둥지를 오래 틀고 있다.
(http://blog.naver.com/like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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