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책/음반/반디 음악 광장'에 해당되는 글 241건

  1. 2015.02.09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전집』 - 겨울의 그림자
  2. 2015.01.26 《Paint It Rock》 - 만화라고 우습게 보지 마라
  3. 2015.01.05 David Guetta 《Listen》 - 전자음악의 거장, 소울의 향기와 함께 돌아오다
  4. 2014.12.22 《Mahler - Symphony No.9》 - 모두가 울먹였던 그날 저녁
  5. 2014.11.24 《The Endless River》 - 아름답게 사라지는 전설의 밴드
  6. 2014.11.10 《스캔들》 - 젊은 시선으로 바라보다
  7. 2014.10.27 《ART OFFICIAL AGE》- 자타공인 음악 천재의 복귀작
  8. 2014.10.13 《Songs Of Innocence》 - 청년과 중년의 기로에서
  9. 2014.09.22 《Royal Blood》 - 잭 화이트와 뮤즈가 만났을 때
  10. 2014.09.10 《차이코프스키,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 얼음과 불의 바이올린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전집』 - 겨울의 그림자

 




에브게니 스베틀라노프 |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전집』 | Aulos Media | 2010

 

 


차이콥스키의 교향곡으로 음반 녹음 역사에 길이 남게 될 러시아의 지휘자를 꼽으라면 대략 네 명으로 압축할 수 있다. 예프게니 므라빈스키(1903~1988), 겐나지 로제스트벤스키(1931~), 블라디미르 페도세예프(1932~), 그리고 예프게니 스베틀라노프(1928~2002)가 그들이다. 각자 서로 다른 오케스트라를 맡았고, 국제적으로도 조금씩 다른 장소-본국인 러시아는 기본이었고-를 배경으로 활동했다. 므라빈스키는 레닌그라드(현재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로제스트벤스키는 빈과 런던을 비롯한 서유럽, 스베틀라노프는 유럽은 물론이고 일본에서 굉장한 인기를 끌었었다.

이들 중에서 가장 확고한 위치를 점한 쪽은 므라빈스키일 것이다. 그와 레닌그라드 필하모닉의 차이콥스키 교향곡 4, 5&6번 음반(DG)은 두말할 나위 없는 위치에 올라있으며, 네 명 중 나이도 가장 많다. 로제스트벤스키는 냉전 시절부터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를 비롯해 꾸준히 서방세계의 미디어에 얼굴을 비춰왔고, 페도세예프는 80년대 후반의 내한공연과 백건우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전곡 녹음의 반주를 맡은 덕분에 국내 애호가들에게도 매우 친숙한 인물이다. 하지만 스베틀라노프의 경우는 국내에서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조금은 밀린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이었는데, 그가 국내에서 제대로 알려지게 된 것은 아마도 일본의 포니 캐년에서 발매된 차이콥스키 교향곡(1990년도 녹음)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이 그 시발점이었을 것이다. 서유럽, 미국은 물론이고 아시아의 오케스트라들은 흉내조차 내기 힘든 위력적인 포르티시모와 숨 막힐 듯 내달리는 템포를 자랑하는 이 녹음은 ‘러시아적인 힘’을 동경하던 한국과 일본의 애호가들을 단숨에 열광시켰고, 일본 제작반 특유의 훌륭한 음질까지 등에 업고 단숨에 므라빈스키의 그것과 어깨를 나란히 견줄 수 있는 아이템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90년대에 녹음된 이 음반들(4~6번이 낱장으로 담겨 있는 형태도 있고, 함께 묶어 발매된 형태도 있다)이 매우 훌륭한 음반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음반이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국내 음반사인 아울로스 뮤직에서 기획한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여섯 곡 전곡을 리마스터링한 네 장짜리 음반이다. 약 10년 전쯤 발매된 음반이기는 하지만 깔끔한 구성의 패키지에 담긴 훌륭한 연주를 매우 합리적인 가격에 장만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한 메리트를 가진 음반임에 틀림없다. 특히 마지막 세 개의 교향곡에 밀려 디스코그래피에서 소외당하기 쉬운 1, 2, 3번 교향곡들의 연주가 상당히 좋은 편이어서, 별생각 없이 ‘한번 들어나 볼까?’ 하는 마음으로 걸어놓으면 평소에는 잘 몰랐던 이 작품들의 매력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음반에서 가장 주목해야 하는 곡은 교향곡 4번이다. 스베틀라노프의 녹음은 앞서 언급한 므라빈스키의 DG녹음 보다 훨씬 강렬한 파괴력을 뽐내고 있으며, 1악장부터 귀를 찌르는 호른의 자극적인 포르티시모가 압도적이다. 또한 4악장의 종결부에서 들려주는 충격적인 아첼레란도(점점 빠르게)는 이 음악은 오로지 러시아인들에 의해서만 온전하게 구현될 수 있다는 것을 소리 높여 강조하고 있다. 5번 교향곡은 음질의 탓인지 파괴력은 다른 연주들보다 덜하게 들리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곡 전체를 뒤덮고 있는 쓸쓸함과 허무함이 더 잘 드러나고 있다.

차이콥스키의 교향곡은 눈이 펑펑 내리는 한겨울에 들어도 좋지만, 겨울이 끝나가는 시점에 듣는 것도 나름 잘 어울린다. 그의 어둡고 쓸쓸했던 내면을 가렸던 현악과 금관의 두텁고 쩌렁쩌렁한 소리가 유독 공허하게 느껴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그의 교향곡을 박력과 웅장함이라는 한정된 키워드로 기억하고 있지만, 그 가면이 벗겨지고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이야말로 진정한 차이콥스키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스베틀라노프의 이 음반은 작품의 이면으로 숨어버린 그를 찾는 이들에게 큰 도움을 주게 될지도 모른다.

 

 

오늘의 음반을 리뷰한 '박현준'님은?

편견없이 음악을 듣고 편견없이 생각하고 싶어하는 음대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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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int It Rock》 - 만화라고 우습게 보지 마라

 

 


 

남무성 | 《Paint It Rock》 | 북폴리오 | 2014


한국 어른들은 만화책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고 다른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아니면서 만화책은 그저 아이들이 심심풀이로 보는 ‘유치한 것’으로 꾸짖기 일쑤다. 정치적으로 유독 피곤한 시대를 살아 그런지 우리 부모 세대는 상대적으로 정상적인 문화생활을 누리지 못했고, 문화를 받아들이는 태도와 사고가 경직된 탓도 있다. 문제는 그다음 세대가 어른이 되어서도 자신의 부모 세대 가치관을 그대로 물려받아 만화를 깎아내린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무지의 슬픈 대물림이다. 8년 전, 붐비기로 악명 높은 도쿄 지하철 안에서 전과 크기만 한 소년챔프를 정독하는 정장 차림의 일본인 회사원을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만화 보는 사람들을 한심하게 여기는 한국 어른들은 나를 더 한심하게 만든다. 그 어렵다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이나 칸트의 《비판》 시리즈, 《논어》와 《맹자》를 만화로 풀어내면 얼마나 이해하기가 쉬워지는지 모르는 것일까. 알면서도 천시하고 무시하는 건 알량한 지적 허영이자, 경험하지 않고 단정 짓는 편견과 선입견 이상 이하도 아닐 것이다.

북 치고 장구 치다

남무성의 《Paint It Rock》도 한국 ‘어른들’은 그저 코흘리개들이 좋아하고 환호하는 일개 만화책으로 여겼을지 모른다. 하지만 척 베리(Chuck Berry)부터 콜드플레이(Coldplay)까지 록의 60년 역사를 되돌아보는 이 책의 첫 권을 읽었거나 작가의 지난 작품 《Jazz It Up》을 읽어본 사람들은 그 비웃음들이 얼마만큼 어설프고 쓸데없는 것인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만화여서 쉽다는 게 얼마나 큰 장점이고 읽는 사람들에게 축복인지 저들은 아직 잘 모른다. 단지 그 만화를 그려낼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만 남을 뿐이다.

《Paint It Rock》이 좋은 건 글과 그림을 모두 음악평론가인 작가가 직접 쓰고 그렸기 때문이다. 이는 언뜻 가벼운 우연처럼 보여도 매우 중요한 사실인데, 한 장르의 통사를 살피는 과정에서 개인 사유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집필을 위한 자료 찾기와 정리는 누군가 도와줄 수 있겠지만, 생각은 온전히 개인의 몫이고 능력이므로 남이 해줄 수 없다. 생각한 이가 스스로 표현했을 때 더 논리적이고 설득력을 띠게 되는 건 당연한 일. 그런 면에서 남무성은 남들은 하나도 갖기 힘든 글과 그림이라는 두 재능을 모두 가졌고, 록 역사에 그것을 아주 잘 발휘해 내었다.

웃기니까 만화다?

이 책은 일단 웃기다. 무릇 역사란 어느 장르건 진지한 법인데 이 책은 진지함을 유머로 부드럽게 만든다. 다루는 내용은 의도한 과장과 개그 코드를 빼면 모두 사실(Fact)이어서 웃으면서 록의 지식을 하나하나 자신의 머릿속에 쟁여나갈 수 있다. 바로 여기에 만화책의 힘이 있는 것이다. 물론 《Paint It Rock》은 어쩌면 만화책을 가장한 ‘진짜’ 록 역사책일지도 모른다. 작가도 충분히 의식한 듯 “만화책에 글이 왜 이렇게 많으냐”며 “해골 아픈 이야기들”을 원망하는 독자들을 가정한 걸 볼 수 있는데 실제로 이 책은 만화책이라고 쉽게 덤벼들었다가 낭패를 볼 만큼 ‘글’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수많은 밴드와 뮤지션들이 얽힌 관계, 각종 상황을 한 자리에서 풀어내야 하니 어찌 그림으로만 가능했겠는가. 쥘 베른의 책에서 독자의 숨돌림을 도운 게 삽화라면, 남무성의 책에선 글이 그 역할을 했다.

듣기의 미덕

그림도 많고 글도 많아서 이 3부작을 읽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독자의 시간을 위협할 요소가 바로 음악이다. 작가도 책 속에 언급해두었듯 이 책은 록에 관한 이야기다. 당연히 음악이 먼저고, 이야기는 그 배경이 될 수밖에 없다. 이 책의 유일한 약점이랄까. 그것은 “자우지장, 두다다다”의 의성어로만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책이라는 매체의 한계와도 직결된다. 책이 다룬 뮤지션들의 대표곡이 담긴 컴필레이션 CD를 한 장씩 부록으로 붙여도 될 법했건만, 역시나 저작권 문제라는 큰 장벽 때문에 포기해야 했으리라. 이 난관은 독자 스스로 헤쳐나가야 한다. 방법은 하나, 책에서 언급한 앨범과 곡들을 직접 찾아 듣는 것이다. 요즘 같이 좋은 세상은 이럴 때 활용하라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CD를 구하기 힘들면 음원 사이트로 가면 되고 거기에도 없으면 유튜브라는 괴물에게 도움을 청하면 된다. 필자도 해봤는데 웬만한 앨범과 곡은 다 찾아 들을 수 있다. 작가가 이 책을 집필한 취지도 좋은 록 음악들을 함께 듣자는 데 있는 만큼 듣기는 《Paint It Rock》을 완전히 소화하기 위한, 어쩌면 읽기보다 더 본질적인 행위일지 모른다.

입문자용이 아니다

에필로그에서 남무성은 이 책이 “어린 음악 팬들에게는 정보를 주고 나와 동시대를 살았던 중년들에게는 향수를 드리고 싶었다.”고 했다. 이 책이 입문자용이면서 입문자용이 아닐 수도 있지만 말이다. 꾸준히 록 음악을 찾아 들어온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 좀 가벼울 수 있는 반면, 록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겐 매우 버거운 내용일 수도 있겠다. 우선 등장하는 뮤지션들 수가 엄청나고 그에 따른 앨범과 곡 수도 셀 수 없이 많다. 그래서 처음에 겨냥했던 독자층(=록 입문자)이 이 책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선 록에 관해 좀 더 아는 사람보다 몇 배는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할 것이다. 뮤지션 이름도 외워야 하고 그들의 관계도 파악해야 하고 앨범도 찾아야 하고 곡도 찾아야 한다. 찾으면 또 들어야 한다. 그나마 얼터너티브 록은 짧고 명쾌하지만 프로그레시브와 아트록 쪽으로 가면 듣는 것 자체가 보통 일이 아니다. 브릿팝은 감미롭지만 헤비메탈이 만만치 않은 것 역시 기나긴 아트록 러닝타임의 압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책은 단순한 입문자용이 아니다. 록에 관심이 있고 록을 사랑하는 사람 또는 앞으로 그럴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 자기가 아는 만큼 섭취하고 즐길 수 있는, 굳이 따지자면 ‘중급’ 정도 수준의 서양 록 통사라면 맞겠다. 뉴메탈이 빠진 것에 일부 사람들이 아쉬움을 느끼는데, 저자의 주관이다. 주관이 배제된 저작은 있을 수 없다. 매체가 가진 오래된 특징, 관행을 본다면 그리 큰 오점이라고는 볼 수 없다. 물론 콘과 시스템 오브 어 다운까지 나왔다면 더 재미있었겠지만 그에 비길 만한 재미와 감동이 《Paint It Rock》에 있으므로 더 이상 트집거리는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린 시절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삼국지》를 다시 읽는 기분이었다. 요코야마는 따분한 이문열의 《삼국지》를 내 기억에서 밀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다. 남무성도 마찬가지다. 록에 취하고 싶은 자들은 이 책을 집어라.

 

오늘의 책을 리뷰한 '돗포'님은?

버트란드 러셀을 좋아하고 도스토예프스키에 빠져 있으며, 록앤롤/ 재즈/ 블루스를 닥치는대로 섭취중인 30대 '음악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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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Guetta 《Listen》 - 전자음악의 거장, 소울의 향기와 함께 돌아오다

 

 

David Guetta | 《Listen》 | Warner | 2014

 

언젠가부터 EDM이라는 말이 하나의 장르 용어처럼 굳어진 채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 음악 관련 미디어/사람들에 의해 널리 사용되고 있다. 사실 EDM이라는 용어는 Electronic Dance Music, 즉 ‘전자댄스음악’을 뜻하는 말이다. 일렉트로니카(Electronica), 즉, 전자음악이라는 거대한 카테고리 안에서 ‘춤추기 좋은(danceable) 음악’ 혹은 ‘클럽 지향적인(club-oriented)’ 음악만을 따로 지칭하는 용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이 EDM이 포함하는 범위는 엄청나게 넓어질 수밖에 없는데, 일반적인 하우스(House)부터 트랜스(Trance), 덥스텝(Dubstep) 등 굉장히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가리킨다. 아예 전자음악 자체를 지칭하는 용어처럼 쓰이는 경우도 가끔 보인다. 마치 특정한 음악적/산업적 스타일에 바탕을 둔 음악만을 지칭하던 용어인 케이팝(K-pop)이 최근 들어서 한국 대중음악 전반을 말하는데, 쓰인 것처럼 말이다.

 

장르의 특성상 EDM 음악은 프로듀서/DJ의 이름이 전면에 나서게 되는데, 수많은 인기 DJ/프로듀서 중에서도 전자음악 장르 바깥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사람을 꼽으라면, 바로 데이빗 게타(David Guetta)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게타는 2000년대 초중반 이미 유럽 지역에서 큰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던 유명 DJ였다.

 

그러나 영국에서 성공을 거둔 앨범 [One Love](2009)을 통해 그는 좀 더 넓은 세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힙합 음악에서 전자댄스음악으로 전향한 블랙 아이드 피스(Black Eyed Peas)의 성공작 [The E.N.D.](2009)의 히트곡 ‘I Gotta Feeling’의 작곡자로 참여한 그는 미국에서도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하는데 성공했다. 전통적으로 전자댄스음악에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던 미국의 수용자들이 전자음악에 빠지게 된 것이 블랙 아이드 피스의 성공 이후인 것을 생각해보면, 그 성공에 큰 역할을 담당한 게타가 끼친 영향력은 굉장하다고 볼 수 있다.

 

이후 리한나(Rihanna), 핏불(Pitbull), 레이디 가가(Lady Gaga) 등의 앨범에 참여하며 여전한 감각을 과시한 그는 3년 만에 새로운 정규 앨범 [Listen]을 발매했다. 이미 ‘Lovers on the Sun’, ‘Dangerous’와 같은 싱글을 프랑스, 영국 등 유럽 각국 차트 정상에 올려놓으며 상업적으로는 괜찮은 반응이 예상되고 있지만, 전자음악의 팬들 및 몇몇 평론가들은 이 앨범에 대해 “이건 EDM이라고 부를 수 없다.”며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이에 대해 게타는 인터뷰를 통해 “나는 요즘의 EDM에 뭔가 ‘소울’이 빠져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최근 EDM 음악들은 너무 프로듀싱 잔재주에 의존하여 소리를 크게만 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나는 오케스트라나, 록밴드, 혹은 펑크 밴드까지도 연주하고 즐길 수 있는 그런 음악을 이 앨범에 담으려고 노력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음악을 들어본바, 확실히 게타는 자신의 음악에 감성을 불어넣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 것으로 보인다.

 

존 레전드(John Legend), 에밀리 산데(Emily Sande), 스크립트(The Script), 라이언 테더(Ryan Tedder), 버디(Birdy), 니키 미나즈(Nicki Minaj), 시아(Sia) 등 현존하는 최고 인기 DJ의 정규 앨범답게 본작에는 굉장히 다양한 장르에 걸친 유명 뮤지션들의 이름이 많이 보인다. 그리고 이들의 개성적인 목소리와 음악적 성격은 참여한 곡 속 곳곳에 녹아 앨범을 굉장히 풍성하게 만든다.

 

장르적 풍성함 및 스타일의 다양성 속에서도 게타는 앨범의 분위기가 두서없이 흩어지는 것을 막고 하나의 일관적인 흐름으로 진행되도록 잘 조절하고 있다. 거기다가 그의 정규 앨범을 언제나 관통하고 있던 대중성 가득한 접근법은 이 앨범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강화되었다. 단순한 싱글 모음집이 아니라 하나의 앨범으로 구성에 신경을 쓰고 만든 흔적이 역력하다. 단번에 귀에 들어오는 싱글은 없지만, 전체적으로 듣기에 상당히 좋다. 건너뛰고 싶은 ‘단순 앨범 채우기용’ 곡이 없다.

 

‘전자댄스음악의 미래’, 혹은 좀 더 강렬하고 본격적인 전자음악을 기대한 사람은 만족하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게타도 내년이면 우리 나이로 49세가 되는 장년 아저씨다. 언제까지 그가 유행의 최전선에 설 수는 없지 않을까? 2000년대 후반 이후의 게타는 ‘최신’보다 ‘대중적인 전자댄스음악 프로듀서’에 더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접근하면 이번 앨범은 상당히 만족스러울 것이다. 대중성을 잔뜩 갖추고 있되 여전히 세련된, 괜찮은 앨범이다.


 

오늘의 음반을 리뷰한 '이규탁'님은?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스스로 글을 굉장히 잘 쓴다고 믿고 사는 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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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hler - Symphony No.9》 - 모두가 울먹였던 그날 저녁

 

 

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 | 《Mahler - Symphony No.9》 | DG | 2014

 

2013년 8월, 말러 교향곡 9번의 연주를 준비하던 서울시향의 정명훈 예술감독(이하 정명훈)에게 비보가 전해진다. 문화교류 차 정명훈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은하수악단 단장인 바이올리니스트 문경진이 정치적인 이유(를 빙자한 숙청)로 총살을 당했다는 소식이었다. 문경진은 폐쇄적인 북한 사회의 특성상 훌륭한 실력을 갖췄음에도 크게 알려지지 못했던 예술가였다. 정명훈 역시 그를 매우 아꼈고, 특히 자신이 이끄는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이 은하수 오케스트라와 파리에서 합동 연주회를 했을 때를 비롯해 기회가 될 때마다 다양한 방법으로 세계무대에 그를 소개했다. 그렇게 아꼈던 후배 음악가를 허망하게 잃은 정명훈은 매우 큰 슬픔에 잠겼고, 하필 당시 서울시향과 준비했던 말러의 교향곡 9번은 그의 영혼을 위로하는 진혼곡처럼 되어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서울 시향 단원 중에는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과의 합동 연주 때 문경진과 함께 연주했던 사람들도 있었기에 그들 역시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몇몇 단원들은 합동 연주 당시 함께 맞춰 입었던 티셔츠를 연미복에 속옷처럼 덧입고 나왔다. 연주회 시작 전부터 단원들에게는 애통함과 비장함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말러의 교향곡 9번은 말러 자신이 작곡 당시 느꼈던 심리적, 육체적 고통과 죽음에 대한 공포, 지나온 인생에 대한 회한, 체념 그리고 미련이 전부 녹아있는 작품이다.
1악장을 지배하는 'F#-E'의 짧은 모티브는 이승을 떠도는 망령과도 같다. 그에서 파생된 모티브들은 절규하듯 울부짖거나 꺼져가는 목숨처럼 헐떡거리며 사라지기도 한다.   
2악장과 3악장은 곡의 전체적인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활발하거나 산만해서 냉소적인 웃음 혹은 파국을 향해 달려가는 폭주와 같이 느껴질 정도다.

 

흡사 '세상은 나를 위해서 술 한 잔 사주지 않았어!' 라고 소리를 지르다 갑자기 껄껄 웃는 말러가 거기에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끝에 모든 것을 체념하기라도 한 듯 길고 긴 한숨과도 같은 4악장이 기다리고 있다. 힘들었던 삶이 비로소 끝나가는 것을 직감한 작곡가가 자신의 마지막 남은 한 방울의 힘을 쥐어짜듯 써내려간 악상으로 가득 차있는 부분이다. 그러다보니 연주하는 지휘자와 단원들에게는 더욱 높은 수준의 몰입과 집중력을 요구한다. 어설프게 연주하려거든 아예 연주하지 않는 편이 차라리 나을 수도 있다.

 

2013년 8월, 정명훈과 서울시향 단원들은 연주 직전에 그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곡을 연주하는 평범한 일상과 죽음의 공포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몇 발자국 차이로 늘 곁에 있고 언제든 우리를 덮칠 수 있다는 생각 말이다.
어찌 됐든 이날의 연주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이렇게 음반으로도 제작되어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앞서 말러의 9번 교향곡에 대해 설명하면서 '죽음의 공포'라는 단어를 썼지만, 거의 울음에 가까운 감정으로 흐느끼며 연주에 참여했던 지휘자, 단원, 스태프들 그리고 거대한 '음악적 현상'에 기꺼이 동참한 관객들은 그 공포를 넘어 새로운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인간으로서 어찌할 수 없는 공포에 정면으로, 그것도 매우 치열하게 맞선 뒤 생겨나는 의지와 감사함을.

 

그리스인이 비극을 사랑했던 이유가 비극의 정화(淨化) 효과 때문이라고 들었던 것 같다. 이 음반은 2013년 8월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느낀 그 감동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그동안 DG가 작업한 서울시향 음반에 대해 공통으로 제기되었던 답답한 음질, 음색의 블렌딩 문제도 상당히 해소되었고, 섹션마다 강조되어야 할 부분이 충실하게 강조되어있다. 음색의 변화 또한 민감하게 잡아내 상당히 만족스럽다. 한국 관현악 연주사에 한 획을 그었던 그날의 기록이 한층 정성스레 담겨있는 이 음반을 꼭 들어보길 권하고 싶다.


 

오늘의 음반을 리뷰한 '박현준'님은?

편견없이 음악을 듣고 편견없이 생각하고 싶어하는 음대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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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ndless River》 - 아름답게 사라지는 전설의 밴드

 

 

 

 

Pink Floyd | 《The Endless River》 | Columbia | 2014

 

기우였다.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는 20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로저 워터스(Roger Waters)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뭐라 하든, 《인디펜던트(Independent- 영국의 일간 신문)》가 이 앨범에 별 한 개를 던지고 그 어떤 논리를 펼치든, 나는 이 앨범에 만족한다. 단 한 곡을 뺀 모든 곡이 연주곡이라는 것도 내가 이 앨범을 지지하는 이유다.

 

이 앨범은 6년 전 가을, 세상을 등진 릭 라이트(Richard Wright)에게 바치는 추모 앨범이라는 사실이 공공연하다. 조금 어색하다. 릭 라이트는 이 앨범에서 추모 되는 객체가 아니라 스스로 추모하는 주체로서 건재하기 때문이다. 가령 나는 많은 이들로부터 욕먹었던 앨범인 《The Division Bell》을 좋아한다. 오르간과 키보드를 넘나들고, 앨범 표지의 구름 위 청년처럼 엠비언스의 끝장을 들려주는 릭의 플레이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죽어서도 싸웠다는 신해철처럼 그는 죽어서도 연주하고 있다.

 

 ‘Side 4’라는 과감한 대분류, 그 안에서 또 나누는 섬세한 소분류. 마치 로저 워터스가 주도했던 《The Wall》의 강박감이 떠오른다. 하지만, 'Things Left Unsaid’‘It’s What We Do’로 시작하는 앨범이 《Meddle》과 《Wish You Were Here》에서 우리를 사로잡은 데이빗 길모어(David Gilmour)의 깊은 음악적 사유, 바로 그것이다. 다른 멤버에 비해 평가가 덜 되어 온 닉 메이슨(Nick Mason)은 ‘Skins’에서 존재가 새삼 드러나 'Time’ 이후 가장 드라마틱한 타악을 들려준다. 핑크 플로이드를 잘 모르는 사람도 반길 ‘Anisina’의 감성과 ‘Run Like Hell’이 떠오르는 ‘Allons-Y (1)’, ‘Autumn ’68’의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 소리는 마니아와 대중에게 고루 인정받는 이 밴드가 세상에 다시 한 번 일으킬 또 하나의 반향처럼 느껴진다.

 

셔플 트랙 ‘Surfacing’에서 릭과 데이빗이 주고받는 서사와 ‘Louder Than Words’의 기타 솔로를 모른 척할 수 있는 팬이 과연 있을까. 그럼에도 이 앨범에 등을 돌리겠다면, 나는 딜럭스 에디션에 수록된 보너스 트랙인 ‘Nervana’의 하드한 그루브를 건네고 싶다. 《On An Island》의 연장이었을지도 모를 데이빗 길모어의 음악 세계가 앞으로 어떻게 진화해 갈지에 대해 작은 힌트가 될 곡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돗포'님은?

버트란드 러셀을 좋아하고 도스토예프스키에 빠져 있으며, 록앤롤/ 재즈/ 블루스를 닥치는대로 섭취중인 30대 '음악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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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들》 - 젊은 시선으로 바라보다

 

 

 

알리스 사라 오트, 프란체스코 트리스타노 | 《스캔들》 | DG | 2014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음악가들의 고민은 대개 ‘오랫동안 존재해온 대상’을 다뤄야 한다는 데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클래식 음악 애호가라는 사람들은 중요한 작품들 정도는 이미 줄줄이 외우고 있고, 새로운 녹음이나 연주자들을 대할 때면 기대감보다 ‘그래, 한번 해봐라’ 하는 식의 귀찮음을 전제로 한 채 듣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현상은 예전부터 지속적으로 연주된 작품들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새롭게 창작되고 초연되는 음악에 대해서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의도적으로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 100년 전만 해도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새롭게 발표되는 작품에 관심을 가졌고, 매우 활발하게 서로의 의견과 생각을 주고받곤 했다. 물론 지금이라고 그러한 ‘피드백’ 과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공연장에서는 애호가보다 전공자들(대부분 억지로 끌려온 학생들)이 더 많고, 졸다가 박수를 반복한 뒤 아무 생각 없이 집으로 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또한 이전보다 사회·문화적으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킬 만한 파급력을 가지고 있는 작품을 보기도 쉽지 않다. 논쟁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스스로를 적극적으로 변호하고 싸우려는 것이 아니라 ‘감히 나에게? 내가 교수인데?’ 따위의 마인드로 논쟁 자체를 몹시 불쾌하게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건전한 의미의 자극과 음악적 충격은 사라졌다. 옛 레퍼토리를 진부한 형태로 연주하거나 새로운 레퍼토리를 아무 재미도 없이 의무적으로 초연하는 경우만 남아버렸다. 말로는 늘 ‘새로운 것(혹은 음향?)을 추구하고 관객과의 소통을 중요시한다지만, 현실은 그러한 소통의 대상이 되어줄 정도로 치열한 문제의식을 지닌 관객이 아예 자리에 없다는 것이다.

 

관객은 왜 없는 걸까?

 

사실, 관객은 정말 좋은 음악이 있으면 당연히 오게 돼 있다. 그런데 그들을 잡을만한 쇼킹한 무언가도 없고, 이슈를 만들어낼 만한 뜨거운 것도 없다. 현대의 창작자들은 ‘순수예술’에 강박적으로 집착한 나머지 관객과의 거리가 멀어 질대로 멀어진 상황까지 오게 되었고, 과거 세대에 비해 그 어떤 충격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여도 그것을 봐줄 만한 사람마저 없게 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결국 창작자들이 제아무리 혼자서 혁신을 외쳐봤자 아무 소용없다. 창작자는 관객과의 거리를 지금보다 좁힌 상태로 만든 다음에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 그때 관객들은 그에 맞게 반응할 것이다.

 

독일의 피아니스트 알리스 사라 오트와 룩셈부르크의 피아니스트 프란체스코 트리스타노(Francesco Tristano Schlim?)가 최근 내놓은 「Scandale」 음반은 이러한 상황을 정면으로 마주해야만 하는 이 시대 음악인의 고민을 그대로 담아낸다. 이 음반은 과거의 일처럼 취급되는 스캔들을 다시 끄집어내어, 그것이 지금 시대 음악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재해석할 수 있는지 질문한다. 질문의 근원은 20세기 초반 무대 연출가인 세르게이 디아길레프(Sergei Diaghilev)의 작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흥행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치밀한 수단으로 ‘예술’을 흥행에 이용했다. 그는 온 유럽을 뒤흔들어 놓을 위력을 발휘했다. 디아길레프가 초연을 총괄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은 초연무대에서 충격을 받은 관객들에게 온갖 야유와 비난을 당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그 이후 유럽 문화계에 큰 파장을 불러와 훗날 장 콕토에게 “온갖 스캔들이 벌어졌던 장소”로 회고되기도 하였다. 또한 「셰헤라자데」는 디아길레프가 위촉한 ‘발레 뤼스’가 파리에서 첫 공연을 할 때 무용음악으로 선택했던 작품이다. 당시 화려하고 이국적(당시 서유럽인들의 시각에서)인 무대연출로 매우 화제가 됐던 작품이고, 상당히 큰 성공을 거두었다. 마지막으로 실린 라벨의 「라 발스」 역시 디아길레프의 제안으로 시작된 작품이며 온갖 현란한 음향효과와 화사함의 극치를 보여주며 미래 오케스트라의 음향을 예견하는 듯한 혁신을 보여주었던 작품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우리가 듣게 될 첫 번째 곡인 「A Soft Shell Groove」는 트리스타노가 직접 작곡한 작품이다. 21세기에 등장한 댄스음악의 리듬들을 차용한 이 작품은 새로운 시대의 아티스트가 생각하는 ‘혁신적인 음악’이다. 실험적이고 재미있다. 물론 트리스타노가 작곡에만 매진하는 음악가가 아니기 때문에 구성(특히 다이내믹)의 측면에서 다소 일차적이고 단편적이다. 하지만 ‘클래식’이라는 딱지를 달고 새로운 형태의 음악을 과감하게 첫 곡에 선보인 트리스타노와 음반사의 모험심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특히 팝을 연상시키는 표지 디자인과 “Scandale”이라는 단어를 크게 뽑아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포인트 역시 매우 흥미진진하다. 더 이상 클래식 음악이라는 분야가 배 나온 할아버지 지휘자나 머리가 벗겨진 아저씨 피아니스트들만의 영역이 아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클래식을 듣지 않는 사람을 잡아끌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라 고깝게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음악은 끊임없이 변화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하는 트리스타노의 외침이야말로 시대를 불문하고 항상 앞서가고 변화했던 음악가들의 몸부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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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없이 음악을 듣고 편견없이 생각하고 싶어하는 음대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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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OFFICIAL AGE》- 자타공인 음악 천재의 복귀작

 

 

프린스 | ART OFFICIAL AGE》 | Warner | 2014

 

프린스의 오랜 팬으로서 그의 최근 행보를 보고 있으면 (음악 스타일은 제법 차이가 있지만) 노장 뮤지션 닐 영(Neil Young)이 생각난다. 우선은 데뷔한 지 한참이 지난 중견/노장 뮤지션임에도 왕성한 창작력으로 신작을 꾸준히 발매하고 있다는 점이 비슷하다. 그리고 일반적인 ‘전설급 뮤지션’들과는 달리 이들은 나이가 들고 내공이 쌓였다고 굳이 음악적으로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기 보다는 여전히 들쑥날쑥한 퀄리티의 음반을 발매하며 팬들을 헷갈리게 하고 있다는 점 역시 비슷하다. 이러한 점들은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이나 밥 딜런(Bob Dylan) 같은 뮤지션들이 띄엄띄엄 내놓는 신작들과 프린스와 닐 영이 쉬지도 않고 계속 내놓는 신작들을 비교해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러나 2010년 잡지 부록 형태로 공개되었던 정규 앨범 [20Ten] 이후 프린스는 (그로서는 이례적일 정도로 긴) 4년 간의 공백기를 가졌다. 그러던 와중 프린스는 그와 흥망성쇠를 함께 한, 그러나 계약 조건에서의 이견으로 인해 대립각을 세우며 오랫동안 좋지 않은 사이를 유지해 온 대형 레이블 워너 뮤직(Warner Music)과 15년 만에 드디어 ‘화해’를 하며 다시 손을 잡았다(2000년대 프린스의 화려한 복귀작이었던 [Musicology](2004)나 [3121](2006)은 워너가 아닌 소니(Sony)나 유니버설(Universal) 뮤직을 통해 발매된 바 있다). 이번 재계약을 통해 프린스는 그의 과거 앨범에 대한 리마스터링 및 디럭스 에디션 재발매 등에 대한 권리를 모두 받았으며, 따라서 팬들이 오랫동안 기다려 온 [Purple Rain](1984)의 리매스터 버전이 그의 손을 직접 거쳐 나올 것 같다(올해가 이 앨범 발매 30주년인지라 리마스터링 버전 재발매에 대한 이야기가 끊임 없이 나왔었다).

 

그리고 프린스는 워너 뮤직과의 재결합 기념으로(?) 두 장의 정규 앨범을 한꺼번에 발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사실 그가 두 장의 앨범을 한꺼번에 낸 것은 이번이 처음도 아닐 뿐더러 (2009년에 [MPLSound]와 [LotusFlow3r]라는 두 장의 정규 앨범을 같이 묶어서 낸 바 있다), 더블 앨범으로 정규작을 내놓은 것도 아닌지라 팬들에게는 그렇게 놀랄 만한 소식은 아니었다 (80년대 프린스를 대표하는 명반 [Sign 'O' the Times](1987)은 더블 앨범, 워너 뮤직과의 다툼 끝에 결국 그들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EMI를 통해 나왔던 [Emancipation](1996)은 CD 3장짜리 앨범이었다!).

 

다만 이번에는 예전처럼 1년, 혹은 2년 만에 나오는 것이 아닌 4년 만에 나오는 작품이라는 것, 그리고 새로 발매하는 정규 앨범 2장 중 한 장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발매되지만 다른 한 장은 여성 3인조 백밴드인 3rdEyeGirl을 대동하고 그들의 이름으로 발매된다는 점에서 충분히 화제성이 있었다. 그리고 이따금 공개된 새로운 음원들은 오랫동안(?!) 기다려온 팬들을 들뜨게 할 정도의 괜찮은 음악들이었다. 이에 많은 이들이 이 두 장의 앨범을 기다렸고, 예상보다 많이 늦은 9월 말에야 드디어 이 앨범들이 세상에 공개되었다.

 

(앨범 발매의 배경 설명이 너무 길었다. 하지만 25년 프린스 팬의 “빠심”으로 생각하고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그 중 이 [Art Official Age]는 프린스 개인의 이름을 걸고 발매된 작품이다. 앨범을 재생하면 가장 먼저 펑키한 기타 연주가 주도하는 디스코 스타일 곡이자 앨범의 타이틀인 ‘Art Official Cage’가 흘러 나오는데, 정말 어찌도 이렇게 변한 것이 없으신지 듣고 있다 보면 웃음이 다 나올 정도다. 앨범은 전반적으로 펑키한 댄스 음악과 끈적한 발라드를 생각나게 하는 악기 편곡과 더불어 희한하게 변조된 목소리가 군데군데 섞여 나오는 80년대 프린스 음악, 그리고 랩과 현대적인 편곡을 약간 집어 넣으며 젊은 감각을 추구한 90년대 초중반 프린스 음악의 중간 정도 위치에 있다. 좀 쉽게 설명하면 [Sign 'O' the Times]와 [The Love Symbol Album](1992)를 적절하게 섞어 놓은 듯한 사운드랄까? 어찌됐든 2010년대의 스타일과는 10만 광년 정도 떨어져 있는 것이 분명한 그런 음악이다.

 

따라서 이 음악은 새로운 젊은 팬을 끌어들이기 위한, 혹은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따라가려는 노력의 산물도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간단하고 담백한 사운드에서 내공이 철철 흘러 넘치는 전설적 뮤지션들의 신작과 같은 스타일도 아니다. 오히려 이 앨범은 단번에 귀를 확 잡아 끄는 곡과 평범하고 재미 없는 곡이 이렇게 저렇게 뒤섞여 있는 ‘참으로 프린스스러운’ 작품으로, 프린스의 기존 팬이라면 도저히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종류의 음악들을 한 가득 담고 있다. ‘U Know’의 멜로디 라인과 리듬감, ‘Breakfast Can Wait’의 세련미 넘치는 그루브는 ‘그렇지, 이것이야 말로 프린스지!’라는 감탄을 절로 나오게 하며, ‘This Could Be Us’의 낭만적인 끈적함이나 ‘Clouds’의 달콤함, 그리고 제목처럼 락의 에너지가 넘치는 ‘Funknroll’ 같은 곡 역시 그만의 색깔이 묻어 나오다 못해 뚝뚝 흘러내리는 것 같은 느낌마저 준다.

 

이 앨범이 [Purple Rain]이나 [Sign 'O' the Times]와 같은 별 다섯 개짜리 작품이냐고 물으면 아니라고 하겠다. 그리고 [The Love Symbol]이나 [Gold Experience](1995)처럼 기존 팬 외에도 다양한 취향과 연령대의 팬을 모두 사로잡을 만한 작품이냐고 묻는다면 역시 아니라고 하겠다. 그러나 ‘좋은 앨범이냐’라고 묻는다면,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렇다!’를 외치겠다. 2000년대 그의 귀환을 알린 작품이 [Musicology]였다면 2010년대 그의 부활을 알리는 작품은 이 앨범이 될 것 같다.


 

오늘의 음반을 리뷰한 '이규탁'님은?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스스로 글을 굉장히 잘 쓴다고 믿고 사는 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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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gs Of Innocence》 - 청년과 중년의 기로에서

 

 

U2 | Songs Of Innocence》 | Island | 2014

 

유투(U2)의 신보를 거저 들었다. 물론 그것은 밴드와 애플사 사이 엄청난 ‘딜’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 지금껏 내가 아는 가장 파격적인 앨범 발매 이벤트는 “내고 싶은 만큼 내고 가져가라” 했던 라디오헤드(Radiohead)의 것이었는데, U2의 이번 앨범 발매는 나에게 두 번째로 파격적인 행사였다. 그러나 밴드에게 가장 중요한 건 팬들과 주고받는 감성의 ‘딜’일 것이다. 무료로 다운로드 한 이 음반이 그래서 어땠단 말인가. 중요한 건 늘 음악이다.

 

U2의 신보는 과거를 그리워하는 중년을 닮았다. 중년의 과거는 개인적이다. 이번 음반은 첫사랑과 부모의 죽음, 친구와의 우정, 그리고 라몬즈(The Ramones)와 클래시(The Clash)를 사랑했던 젊은 시절을 비롯 멤버들의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덕분에 언제부턴가 밴드의 이미지가 되어버린 ‘인류 평화’는 잠시 뒷전이 된 셈인데, 그 가치를 중시하는 매체들은 호평과 혹평 사이 어딘가에 이 앨범을 두고 팔짱을 끼고 있는 눈치다. 그러나 중요한 건 역시 음악이다. 커트 코베인(Kurt Donald Cobain)의 말처럼 “가사보단 음악이 먼저”여야 하는 것이다.

 

첫 느낌을 말해볼까. 이 음반은 U2의 지난 음반들을 차례차례 관통하고 있다. 한 음반에서 ‘With Or Without You’와 ‘Walk On’, ‘Vertigo’와 ‘New Year’s Day’를 모두 들을 수 있다는 말이다. 파격은 없다. 과거를 바라보는 중년처럼 신보는 구보들을 아름답게 되부른다. 나는 U2의 이 판단을 전적으로 지지하기에 그것을 안주가 아닌 안정이라 부르고 싶다. 이 앨범에 담긴 음악은 쉽게 가려는 안주가 아니다. 도리어 안정을 되찾은 음악이 진실에 더 가까울 거라 믿는다. 비트가 강조되어 조금은 들뜬 느낌이지만 엣지와 보노(Bono)의 기타 톤, 목소리는 여전하다. 맑거나 탁하며 또한 로맨틱하다. U2의 음악을 들으며 더 무엇을 바랐던가. 어떤 면에선 매닉 스트릿 프리처스(Manic Street Preachers)와 콜드플레이(Coldplay)가 만난 것 같은 U2의 신보. 청출어람이라는 말도 때론 역으로 써야 할 때가 있음을 이 앨범을 듣고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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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yal Blood》 - 잭 화이트와 뮤즈가 만났을 때

 

 

로열 블러드(Royal Blood) | Royal Blood》 |  Warner | 2014

 

잭 화이트 또는 메튜 벨라미의 목소리, 화이트 스트라입스식 듀오 편성, 퀸스 오브 더 스톤 에이지와 레드 제플린 그러니까 뎀 크룩트 벌처스의 환영. 이 정도가 현지 평단이 로열 블러드에 내린 평가다. 확실히 그렇다. 이들의 리프는 제플린처럼 야성적이고 한편으론 잭 화이트처럼 광적이다. 더불어 “Little Monster” 같은 곡에선 톰 요크의 시린 섬세함까지 느껴진다. 결국 스토너와 블루스, 개러지록을 표방하면서도 브릿팝적인 요소를 도처에 깔고 있다는 얘긴데 “Come On Over”는 정말이지 뮤즈를 듣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놀랍고도 중요한 건 지금 이 밴드가 ’2인조’라는 사실이다. 기타는 없다. 거기엔 베이스를 잡은 프론트맨과 드러머 뿐이다. 드럼 소리를 뺀 나머지가 모두 베이스에서 나오고 있다는 얘기다. 톤의 두터운 질감을 위해 더블 트랙킹 정도를 한 건 사실이지만 정말 이 사운드 속엔 기타가 없다. BBC 소개 영상에서 마이크 커(Mike Kerr)는 리프 메이킹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 이펙터를 찰지게 먹인 네 줄짜리 베이스로, 그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베이스라는 악기의 한계를 넘어보려는 심산인 듯 보였다. 베이스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그가 선택했다는 악기다. 언제나 우직하게 백킹에만 머물렀던 한 악기의 해방에서 목격한 록 음악의 해방. 로열 블러드가 우리 앞에 나타난 이유고 그들이 우리 앞에 계속 머물러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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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코프스키,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 얼음과 불의 바이올린

 

 

정경화 , 앙드레 프레빈 | 차이코프스키,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 Decca | 2010

 

어느 바이올리니스트의 고백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고 싶어 했던 한 소년이 있었다. 음악적 재능이 풍부했던 소년은 바이올린을 통해서 머릿속에 갇혀있던 세계를 현실로 끄집어내곤 했다. 작곡에도 소질이 있었지만 소년의 마음을 가장 들뜨게 하고 주체할 수 없는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단 하나, 바이올린뿐이었다. 열정만큼 연주 실력 역시 상당히 뛰어난 편이어서 학생 시절에는 공식 연주회의 무대에 올라가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두 악장(옛날의 콘서트는 이런 식으로 작품 일부만 연주하는 경우도 많았다)을 연주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무대에 올라가면 지나친 긴장 탓에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었고, 무대에서 내려오면 실수와 정신력에 대한 자책으로 괴로워했다. 지나친 엄격함과 내성적인 성격이 스스로 발목을 잡았던 것이다. ‘바이올린을 좀 더 일찍 시작했어야 했나’, ‘난 비르투오소 연주자가 되기엔 너무 늦은 것이 아닐까’ 같은 생각에 사로잡혀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게다가 가족들은 소년이 직업 음악가가 되는 것을 반대함은 물론,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음악대학이 아닌 법학대학으로 진학하기를 원했다. 바이올린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를 난처한 상황에 부닥쳤던 소년은 결국 고민 끝에 가족들의 바람대로 법대에 진학했다. 하지만 입학 첫해를 완전히 채우지도 못하고 소년은 법대를 중퇴해버렸다. 그 길로 음악대학에 달려갔다. 음대에서 바이올린을 계속 공부한다 하더라도 이제는 훌륭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될 수 없겠다고 판단한 소년은 작곡 전공으로 등록했고, 그 학교에서 5년간 공부한 뒤 베를린과 빈에서 유학생활을 이어나갔다.

 

졸업 이후 전업 작곡가가 되어 음악계에서 활동하던 소년은 30대 후반으로 접어들었다. 당시 발표했던 교향곡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널리 이름을 알릴 수 있게 되었지만, 갑작스레 찾아온 건강 악화는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되었다. 또한 친척과 가족의 불행(그의 처제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은 그로 하여금 도저히 마음 편히 곡을 쓸 수 없게 만드는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정말 좋아서 시작했던 음악이 자신을 옭아매고 있었다. 현실의 벽은 너무 높고 냉혹했다. 그때 그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아마 음악을 처음 시작했던 때가 떠오르지 않았을까.

 

가슴 설레게 하고, 음악이라는 꿈을 꾸게 하였던 어린 시절. 겁도 없이 세계 최고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게 했던 그때의 소리. 소년의 마음으로 되돌아가고 싶었던 처절한 중년 작곡가는 그 소리를 위해 협주곡을 쓰기 시작했다. 절벽 끝에서 마지막으로 칼을 벼리는 심정으로.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바로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얼음 속에서 피어오른 불꽃

 

앞선 설명이 조금 길긴 했지만, 아무튼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이렇게 위태로운 상황에서 탄생했다. 작품 활동은커녕 삶의 기반이 흔들리는 절박한 상황에서 자신이 못다 이룬 어릴 적 꿈을 되새기며 처절하게 써 나간 느낌이랄까. 이 곡 전반에는 겨울 해 질 녘의 스산하고 어두운 기운이 감돈다. 낭랑하게 노래하던 바이올린이라는 악기가 이 정도로 끈적끈적하고 어두우며 절규하듯 '달라붙는' 협주곡이 또 될 수 있을까. 하지만 자를 때는 어찌나 무 자르듯 잘라내는지, 뜨겁게 달군 칼로 얼음을 베어내는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특히 솔로 바이올린이 오케스트라 파트와 한참 치열하게 맞서다가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듯 단칼에 정리해버리는 패시지는 일품이다. 전체적으로 어둡고 음산할지 모르지만, 형식과 구성에서는 상당히 응축되고 단단한 모습을 보여준다. 사실 이러한 부분은 1903년에 작품이 초연되었을 때 많은 비난을 받고 수정을 거듭하며 얻게 된 것이다. 주제의 변용에 대한 보다 직설적인 접근법이 감성적인 선율과 멋진 조화를 이루는 현재의 모습은 1903년 오리지널 버전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지금은 매우 드물게나마 1903년 버전을 연주하지만(카바코스와 오스모 벤스케의 레코딩처럼) 이미 우리가 흔히 들을 수 있는 1905년 개정판의 인상이 워낙 강하고 또 정식 버전으로 완벽하게 자리를 잡아 애써 연주를 많이 하진 않는 편이다. 국내에서는 시벨리우스의 작품이 「핀란디아」나 「교향곡 2번」 정도를 제외하면 이상하리만치 인기가 없어서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 역시 차이콥스키나 멘델스존의 협주곡에 밀린다는 인상을 주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또한 주선율이 확실하게 귀에 들어오는 두 협주곡에 비하면 다가가기 쉽지 않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정말 훌륭한 작품은 아무리 감추려 해도 드러나기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해서 유명해진 음악만을 반복해서 듣는 것이 나쁘다고 할 순 없지만, 그보다는 조금 덜 연주가 됐다거나 국내에서 다가가기 힘든 작품이라 하더라도 작곡가의 내면이 담긴 진지한 작품에 귀 기울여 보는 것도 가치 있는 감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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