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디 살롱/서점에서 만난 사람'에 해당되는 글 105건

  1. 2013.03.25 [서점에서 만난 사람] 술을 맛보고, 이야기에 취하다 - 《스피릿 로드》의 저자 탁재형
  2. 2013.03.13 [서점에서 만난 사람] 시(詩)의 공동체를 상상하다 - 《에로스와 아우라》의 김행숙 시인
  3. 2013.03.05 [서점에서 만난 사람] 다른 너를 품는 생(生)의 온도 - 《숲의 대화》소설가 정지아
  4. 2013.02.25 [서점에서 만난 사람] 새봄을 맞듯 나를 읽어 주세요 - 《무국적 요리》의 소설가 루시드폴
  5. 2013.02.18 [서점에서 만난 사람] 평범한 행복을 그리다 - 《꽃피는 용산》의 저자 김재호
  6. 2013.02.12 [서점에서 만난 사람] 그때 떠나길, 떠나보내길 잘했다는 위로 - 소설가 이혜경
  7. 2013.02.05 [서점에서 만난 사람] 잃어버린 내 삶의 끝, 죽음을 찾아 -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저자 김형숙
  8. 2013.01.08 [서점에서 만난 사람] 바르트적 슬픔의 철학으로 안내하다 - 《애도 일기》의 번역자 김진영
  9. 2012.12.13 [서점에서 만난 사람] 삶을 위해 존재하는 도시를 꿈꾸며 - 《다시, 서울을 걷다》의 저자 권기봉
  10. 2012.12.03 [서점에서 만난 사람] 모두 나쁘고 모두 나쁘지 않다는 말 - 만화가 앙꼬

[서점에서 만난 사람] 술을 맛보고, 이야기에 취하다 - 《스피릿 로드》의 저자 탁재형

 

편집·정리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사진 제공 | 시공사

 

좋은 술자리에선 어떤 술이든 다 맛있다, 라는 것이 제 지론입니다. 좋은 술자리라 함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술자리를 뜻합니다. 그러니까 술자리에서 중요한 것은 술보다 술친구라는 말이죠. ‘누구랑 만나지?’에 비하면 ‘뭘 마시지?’를 생각하는 데는 소홀합니다. 골라 봐야 맥주 아니면 소주. 이들 술을 양껏 마시며 그동안 애주가를 자처했습니다. 헌데 우리나라 맥주나 소주가 썩 좋은 술이 아니랍니다. 진짜 맛난 술은 따로 있다나, 뭐라나. 그래? 뭔지나 알자 싶어 읽은 책이 《스피릿 로드》입니다. 하지만 술에 대해서는 그저 아는 걸로 끝나지지 않네요. 맛보지 않으면 이건 도저히 못 참겠어요. ‘못 참으면 뭐, 여행이라도 갈 텐가?’라고 물으신다면 네, 당장은 안 되겠죠. (흑!) 대신 아쉬운 대로 이야기를 들어볼 참입니다. 어쩌면 제 생각이 조금 바뀔지도 모르겠어요. 좋은 술자리에선 어떤 술이든 맛있기도 하지만, 좋은 술이 더 좋은 술자리를 만들기도 하다는 식으로요.

 

반디 | 저도 작가님만큼이나 술을 좋아하는 사람인데요. 그래서 《스피릿 로드》를 더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반면에 세상에는 ‘술맛’ 혹은 ‘여행의 맛’을 모르는 독자 분들도 많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이 책과 작가님에 관해 소개해 주신다면요?

 

탁재형 | 여행이 가진 가장 근본적인 속성은 내가 가진 일상의 짐을 벗어놓고 비일상 속으로 들어가는 게 아닐까 싶은데요, 술의 속성도 어찌 보면 이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뭔가 먹고 살만해졌을 때, 남아도는 식량을 가지고 만들어 낸 것이 바로 술이니까요. 이 책은 그렇게 떨어질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여행’과 ‘술’의 케미스트리에 대한 책입니다. 물론 제가 돌아다닌 것이 실은 여행이 아니라 출장이었던 것이 문제지만요. 저는 올해로 13년째 방송 일을 하고 있는 외주제작 다큐멘터리 PD입니다. 어쩌다 보니 해외 컨텐츠 쪽으로 방향을 잡게 되어 지금까지 49개국 정도를 취재했네요.

 

 

 

반디 | 아무리 작은 지역이라도 고유의 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것이 문화적 산물이라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그만큼 재미난 사연도 많고요. 책에 소개한 이십 여종의 술 가운데 특별히 애정을 가지고 계신 이야기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탁재형 | 빨링꺼를 처음 마셔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네요. 루마니아의 산골 마을에서 취재거리가 그렇게 많지 않아 이런 저런 소재를 모으다 찾아낸 것이 바로 그 지역의 증류주인 빨링꺼였는데요. 철이 많이 늦어서 증류의 원료가 되는 발효된 과일을 가지고 있는 농가가 드물었어요. 다행히 조금 게으르신(?) 한 할머니가 내일 아침 증류소로 자신의 술 원료를 가지고 갈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 집으로 아침 일찍 달려갔죠. 촬영을 시작하기에 앞서 할머니가 권하신 빨링꺼 한잔에, 카메라고 뭐고 집어던지고 술을 먹고 싶어졌던 기억이 나네요.

 

한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희미한 귀울음만 들려올 뿐. 빨링꺼를 접한 첫 느낌을 ‘한 대 맞은 것 같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다. 식도를 태우는 것으로는 부족한, 송두리째 둘둘 말아버리는 것 같은 고통. 비록 찰나이긴 하지만 그것은 분명 고통이다. 하지만 삽시간에 그 괴로움을 지우며 올라오는 것은 머리를 풀어헤친 발레리나의 광기 어린 춤 같은, 강렬하고 발랄한 과일향기. 0.5초 안에 극한의 자학과 보상을 오간 이 순간의 체험을 표현하기엔 아직 글 실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첫사랑 같이 아련한 스피릿의 이데아/루마니아-빨링꺼’ 중에서)

 

 

반디 | 술을 소개하자면, 그 술을 먹어 보라며 권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일 텐데요. 이걸 글로 쓰자니 맛을 묘사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온갖 단어를 동원해도 그때의 맛을 고스란히 전할 수 없잖아요. 제일 표현하기 까다로운 술은 무엇이었나요?

 

탁재형 | 모든 술이 다 죽을만큼 표현하기 힘들었는데요.(ㅎㅎ) 그 중에서도 죽력고는 맛이 워낙 섬세하고 복잡해서 더욱 신경이 쓰였던 것 같아요. 다행히 산지에 직접 내려가서 송명섭 장인을 만났을 때, 술의 맛에 대한, 그리고 그 맛이 나는 이유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잘 말씀해 주셔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무쪼록 이것을 드시는 분들도 만드는 사람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말았으면 좋겄소. 감기약을 먹어보니 몸이 개운해지는 것 같다고, 사흘치를 한꺼번에 먹어불면 그 사람은 어찌되겄소? 마찬가지로 이 술은 드시고 기분이 좋고 마음이 편안해지시라고 만든 것인데, 그것을 한꺼번에 너무 많이 드시고 괴로워불면 내 마음이 어떻겄냔 말이오.” (‘대나무를 닮은 장인의 마음/대한민국-죽력고’ 중에서)

 

반디 | 책은 세계 각국의 술을 다루는 반면에 우리나라 술 이야기는 극히 일부입니다. 작가님께서는 이 부분에 아쉬움을 표하셨고요. 마지막 순서로는 국내의 술로, 송명섭 장인 집안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다는 죽력고를 소개하고 계십니다. 마지막이 아니라, 이것을 시작으로 우리나라 술 여행기를 써 보실 생각도 있으신가요?

 

탁재형 | 물론이죠. 다만, 제가 방송이라는 본업이 있는지라 어떻게든 이것과 연관시켜서 풀어낼 방법이 있으면 좋겠어요. 생업을 제치고 술을 찾아 팔도를 떠돌기엔 아직 주력(酒歷)이 충분치 않은 것 같습니다.(ㅠㅠ) 그런데 한국에서 술을 가지고 방송을 만들기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에요. 다들 좋아하면서, 그렇기에 더욱 음지에 묻어두고 싶어 한다고 할까요. 조금은 그런 분위기가 있어요. 우리 전통 문화의 측면에서 전통주 이야기를 다큐 시리즈로 풀어낼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아요.

 

 

반디 | 한편, 국내에서 가장 흔하게 소비되는 소주와 맥주에 대해 “성분이 불분명한 희석식 소주와 정작 보리 함량은 얼마 되지도 않는 맥주”(298쪽)라고 일침을 가하기도 하셨는데요. 술을 좋아한다면서 아직도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조금 더 부연해 주세요.

 

탁재형 | 소주의 경우, 원래 우리 민족이 마시던 증류식 소주와 현재 대중적으로 보급되어 있는 희석식 소주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어요. 일단 재료 면에서 우리 민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열대의 뿌리 식물 카사바를 많이 쓰는데, 그것은 카사바가 현존하는 가장 저렴한 녹말 재료이기 때문이에요. 일제시대와 산업화 시기를 거치면서 소주의 재료는 쌀에서 보리로, 또다시 고구마에서 카사바로 좀 더 저렴한 재료를 찾아 변해왔는데요. 그 결과 점점 맛이 없게 되니 거기에 다시 조미료를 첨가해야 하는 상황이 된 거죠. 그런데 이렇게 들어가는 조미료는 회사마다 비밀이에요. 식품위생법으로 모든 성분을 표시해야 하는 다른 먹을거리들과는 달리 소주는 커다란 특혜를 받고 있는 거죠. 한국 하면 떠오르는 술 소주가 우리 민족과 별 상관없는 재료로 만들어진다는 것은 큰 아쉬움이에요. 기회가 되신다면 ‘화요’나 안동소주 같은 전통 증류식 소주를 드셔 보세요. 일반 소주에 비해 조금 독하긴 하지만, 쌀이라는 것이 얼마나 향기로운 곡물인지 새삼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맥주도 그래요. 독일은 맥아(싹이 튼 보리)를 100% 넣지 않으면 맥주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어요. (밀로 만드는 바이스비어는 예외) 하지만 우리나라는 10%만 넘기면 맥주라는 이름을 달고 시장에 나오죠. 물론, 제조사들 입장에서는 그것은 법규일 뿐이고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선 70% 이상 맥아를 사용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소비자들이 일반적으로 접할 수 있는 맥주의 맛이 다른 나라에 비해 밍밍한 것은 맞다고 생각해요. 한국 맥주를 접한 외국인들의 첫 반응이 ‘Watery'(밍밍하다)라는 것은 사실이니까요. 이렇게 된 데에는 소수의 회사들이 너무나 오래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었던 문제가 커요. 다행히 최근에는 시장의 진입장벽이 낮아지면서, 제 3의 맥주회사도 등장해서 한국 맥주의 맛이 다양해지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어요.

 

여러 나라를 방문하며 현지의 전통 증류주를 마실 때마다 나는 일종의 접신과도 같은 체험을 한다. 한 민족이 발전시킨 먹고 사는 문화의 피라미드 정점에 위치하는 것이 증류주이기에, 그리고 그 제조방법 역시 곡물이든, 과일이든, 벌꿀이나 동물의 젖이든, 그 지역의 자연이 가진 풍미의 정수(Spirit)만을 모으는 어려운 과정이기에. 따라서 증류주를 마시는 것은 그것을 만든 사람들의 오랜 체험과 역사를 담은 대용량 USB 메모리를 내 몸에 꽂는 것처럼 단시간에 주입하는 행위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네오가 단 몇 초 만에 가라테와 헬리콥터 조종법을 몸에 다운로드하는 장면처럼. (‘끝내 사라지지 않을 금단의 열매/수단-아라기’ 중에서)

 

반디 | 《스피릿 로드》의 출간으로 애주가임을 공식 인증하셨습니다. 가까운 술친구 사이에서는 이미 소문난 ‘꾼’이실 것 같습니다. 작가님을 ‘술벗’이라고 칭하며 추천사를 써준 메가쇼킹 만화가의 글도 보았는데요. 주로 어디에서, 어떤 벗들과 술을 나누시는지 궁금합니다.

 

탁재형 | 요샌 주로 집에서... (ㅎㅎ) 일단은 집에 있는 술들이 가장 퀄리티가 높아요. 전문적인 바에서 먹기엔 부담스러운 가격의 술도 남대문 수입상가나 면세점 등을 이용하면 그리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에 맛볼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먹다 보면 기분이 좋아지면서 바닥을 가까이(?) 하고 싶어지는 것이 사람 몸인데, 집은 그런 면에서 부담이 없잖아요. 주로 홍대 쪽의 지인들끼리 뭉치는 ‘학술회’라는 모임이 있는데, 바쁜 일이 끝나면 집으로 초청해서 제대로 된 출판 기념회를 해볼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반디 | 또 책에 관한 질문입니다. 책을 사랑하는 반디앤루니스 독자 분들에게 술 ‘땡기는’ 책, 혹은 《스피릿 로드》와 함께 읽으면 더 술술 읽히는 책을 추천해 주세요.

 

 

탁재형 | KBS ‘1박 2일’의 전속사진가인 전명진 작가가 군대 제대한지 4일 만에 떠난 세계일주 이야기 《꿈의 스펙트럼》을 추천해 드리고 싶어요. ‘스펙’이라는 것이 언제부터인가 젊은 세대에겐 자신의 존재 이유이자 인생의 품질을 가늠하는 지표로 통용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스펙’을 ‘Specification’이 아닌 ‘Spectrum’으로 해석하고 자기 꿈의 무지개를 찾아 떠난 똘끼 어린 여행담을 읽고 있다 보면 더욱 술이 당기실 거예요. 더불어 제가 전명진 작가와 함께 진행하고 있는 ‘벙커1특강’의 ‘탁피디의 여행수다’(▶바로가기)라는 팟캐스트도 《스피릿 로드》와 궁합이 잘 맞습니다. 많이 사랑해 주세요.

 

  

 

반디 | 다큐멘터리 PD라는, 그야말로 세계 각국의 술을 맛보기에 최적화된 직업을 가지고 계십니다. 나름의 혜택인데요. 하지만 대다수의 밥벌이처럼 고생하는 면도 적지 않을 텐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큐멘터리 PD라는 직업을 견디게 하는 힘이 있나요? (그 또한 술인가요.^^;;)

 

탁재형 | 사실 다큐 PD라는 것이 들리는 것처럼 고상하고 우아한 직업은 아니에요. 특히나 해외 현장에서 취재하고 있을 때면 일어나는 돌발 상황에 대처하다가 멘붕에 빠지는 게 일상이죠. 이런 저런 고비를 넘길 힘을 얻기 위해서, 그리고 고비를 넘긴 걸 자축하기 위해서, 그리고 고비를 함께 넘어 준 사람들과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라도 술은 빠질 수 없는 요소인 것 같네요.

 

반디 | 한해 중 삼분의 일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계절이 바뀌고 있고요. 이런 시기에 학생이 공부 계획을 짜듯, 애주가라면 나름의 음주 계획을 가지기 마련입니다. 누구와 함께 이 술을 먹겠다든가, 어느 지역에서 이 술을 섭렵하겠다든가, 혹은 술을 직접 담그겠다든가 하는 포부를 듣고 싶은데요.

 

탁재형 | 지금 바쁜 편집이 끝나면, 전북 태인으로 내려가서 송명섭 장인을 다시 찾아뵙고, 지난 번 취재 때 못다 한 술 이야기도 나누고 남도의 맛난 음식들도 먹다 오고 싶어요. 얼마 전에 아주 귀한 테킬라 파트론 프리미엄을 구하셨다고 문자를 보내셨더라고요.(ㅎㅎ) 좋은 사람과 좋은 술과 좋은 음식이 있는 곳인데, 하루라도 빨리 가야죠.

 

반디 | 술 냄새 폴폴 풍기는 질문 공세 끝에 마지막에 다다랐습니다. 역시 술에 관한 질문이 될 것 같네요. 이 인터뷰를 마치고, 오늘밤을 함께할 술을 정해 두셨는지요?

 

탁재형 | 4월 초에 방송되는 다큐멘터리 편집 땜에 요샌 술보다는 커피와 핫식스를 더 가까이 하며 살고 있어요. 이 편집이 끝나는 순간, 핫식스 큰 병을 두 모금 정도 마신 뒤, 거기에 아그와(Agwa)를 부어서 아그와밤 텀블러를 만들어 들이켤 예정입니다. 피로고 뭐고 싹 잊고 이틀정도 놀아제낄 수 있게요. (넘 과격한가... ㅠㅠ)

 

좋은 술이란 어떤 것일까? 많은 대답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이야기가 풍부한 술’이라고 말하고 싶다. 술이란, 어떤 지역에서 한 민족이 살아온 이야기의 정수이기 때문이다. 좋은 술일수록 더욱 풍부한 이야기와 묵직한 울림으로 마시는 이에게 말을 걸어온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때 가장 맛있는 술을 맛볼 수 있다. (‘에필로그’ 중에서)

 

탁재형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정훈장교로 군복무를 마쳤다. 더 이상 어디 틀어박혀 공부하는 게 신물이 나 외주제작사에 들어갔다가, 호랑이 같은 감독님을 만나 박박 기면서 방송을 배웠다. 때려치울까 싶은 순간도 많았지만 그때마다 술힘으로 버텼다는 소문이 있다. 2002년 ‘KBS 월드넷’을 시작으로 ‘도전! 지구탐험대’, ‘세계테마기행’, ‘EBS 다큐프라임 - 안데스’ 등 해외 관련 다큐멘터리를 주로 제작했다. 현재는 해외콘텐츠 전문 프로덕션 ‘김진혁공작소’에서 다큐멘터리 PD로 일하고 있다. 사람들은 ‘여행 많이 하니 좋겠다’며 부러워하지만, 사실 그의 정체는 시청률이라는 굶주린 양떼를 몰고 아이템의 초원을 찾아 떠도는 생계형 유목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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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만난 사람] 시(詩)의 공동체를 상상하다 - 《에로스와 아우라》의 김행숙 시인

 

 

 

편집·정리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희진
사진 제공 | 민음사

 

나는 20층 계단에서 울었던 사람들을 생각했다. (…) 그 계단을 다 내려온 나는 빌딩의 내장을 빠져나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거대한 감정의 구조물이 검은 숨을 내쉬는 것을 느꼈다. 너의 이름을 알고, 직업을 알고, 가족을 알고, 종교를 알고, ……나이를 알아도, 나는 너를 충분히 알았던 적이 없다. 반대로, 너의 이름을 모르고, 직업을 모르고, …… 나이를 몰라도 나는 너를 충분히 안다고 느낀 적이 있다. 그 앎이 가짜일지라도, 너의 20층 계단에서 위태롭게 깜박였던 라이터 불빛에 대하여 나는 쓸 것이다, 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69쪽)

 

시인의 세계는 무엇으로 이루어졌을까? 한 권의 시집을 펼쳐 놓고 생각해 봅니다. 일단은 ‘시’와 ‘나’가 있을 겁니다. 이것으로 시인은 하나의 세계를 이룰 테죠. 그런데 뭔가 허전합니다. 아! 저와 같은 독자를 잊었네요. 시인이 ‘너’라고 부르는 독자, 타인들이요. 그리하여 ‘시’와 ‘나’와 ‘너’가 만나는 그곳을 ‘공동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근래 《에로스와 아우라》를 내 놓은 김행숙 시인입니다. 타인들에 대해 “쓸 것”이라고, “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 시인의 글. 아무래도 우리는 읽을 것이고, 읽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공동체’는 그리하여 가능해지겠지요.

 

반디 | 《에로스와 아우라》는 지난 12월에 출간되었습니다. 책을 이미 읽은 독자 분들이라면 아마도 겨울의 한가운데에서 작가님의 글을 접했을 텐데요. 독자라는 타인이 특정한 계절에 자신의 새 책 혹은 시집을 읽는 일을 상상해 보신 적이 있으신지, 그것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지 들려주세요.

 

김행숙 | 눈과 얼음의 전문가 스밀라(페터 회,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는 겨울을 공동체를 위한 계절이라고 했어요. 한 번도 한 곳에 모인 적이 없는 공동체, 흩어진 채로 연결되어 있는 공동체, 책이 탄생시키는 작은 공동체를 상상해봅니다. 살살 봄이 오고 있는데, 오늘은 누군가의 시가 봄눈처럼 닿는 곳마다 제각각 신비하게 스며들었으면 좋겠네요.   

 

반디 | 이 책을 통해 작가님을 처음 접하는 독자 분들도 계실 텐데요. 책머리에서도 밝히고 있지만, 인터뷰를 통해 《에로스와 아우라》라는 책을 간단하게 소개해 주세요. 이렇게 읽어 주면 좋겠다는 당부가 있다면 덧붙여 주셔도 좋고요.

 

김행숙 | 글을 ‘쓰는’ 삶과 ‘읽는’ 삶이 주고받은 것들을 불러 모은 듯합니다. 새삼 모아 놓고 보니, 멀리서 가까이서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 같은 게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텍스트, 텍스트와 텍스트 ‘사이’에 실재하는 힘, 움직임, 그런 것을 환기하고 함께 경험하고 싶었습니다. ‘관계’의 가장 격렬한 운동이 일어나는 국면을 가리켜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여볼 수 있겠죠. 끌어당기고 다가가고 밀어내고 도주하는…… 그 모든 흐름에는 ‘에로스의 운동’이 작동한다고 생각합니다. 텍스트 자체가 그런 에로스의 운동을 불러일으켰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요.

 

책머리에서 한 말을 다시 한 번 해보죠. 문학은 혼잣말이 아닙니다.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고 싶다는 것, 문학은 당신을 향하여 있습니다. 문학의 에로스는 유전자 공동체가 아니라 대화의 공동체를 꽃피웁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대화는 화기애애한 것만이 아니고, 문득 길이 끊기고, 어둠에 잠기고, 싸움에 육박할 때도 많습니다. 친교든 싸움이든 당신이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당신과의 관계에 휩싸여 무언가 달라지는 것 같은 기분, 그 분위기, 그것을 문학의 아우라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독서에, 삶에 ‘에로스와 아우라’의 감각을 불어넣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수영이 시에 썼던 “사랑을 만드는 기술”을 자주 발휘할 수 있으면 좋겠지요.
 
반디 | 독자들에게 시는 종종, 그 속을 보일 듯 말듯한 새침한 연인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사랑하는 타인의 아우라는 내 손에 붙잡히지 않고 언제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빈 하늘만을 배경으로 남기”는 것처럼요. 그래서 시와 문학을 에로스와 아우라로 이야기해주신 내용에 더 공감하게 되었는데요. 작가님에게 이와 같은 첫 경험을 안겨준 시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김행숙 | 글쎄요. 이상하게 그런 ‘한 편’을 꼽기가 쉽지 않네요. 하지만 분명한 건 교과서에서 시를 배울 때는 아니었다는 거예요. 시를 ‘완전정복’하려고 할 때, 시의 에로스와 아우라는 압사당하는 것 같아요. 문학의 에로스와 아우라는 전적으로 문학 작품의 내적이고 절대적인 속성에 속하는 문제가 아니라, 독자와 작품 ‘사이’에서 매번 일어나는 사건을 통해 경험되는 것이죠. 다시 말해,  정의(定義)되는 것이 아니라 체험되는 것이죠. 그래서 문학의 에로스와 아우라는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디 | 시인이 되고 싶었던 당시를 떠올리시며 고교생 시절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때 쓴 글 중에 “시의 꼴을 가지고 있는 것들”도 있었다고 하셨고요. ‘시의 꼴을 가지고 있는 것’과 그 자체로 ‘시’인 것, 그 사이의 차이점을 일반 독자들은 잘 모를 것 같은데요. 처음으로 ‘이게 시’라고 자각하신 순간의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김행숙 | ‘시의 꼴을 가지고 있는 것’과 그 자체로 ‘시’인 것, 그 사이의 차이점은 저도 잘 모르겠는 걸요. ‘시의 꼴’을 가지고 있는 것이 ‘시’가 아닐 때도 있고, ‘시’가 ‘시의 꼴’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도 있지만, 일반론으로는 말할 수가 없어요. 시에 관해서는 모르는 것투성이예요. 점점 알아가는 게 아니라,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마저 점점 의심하게 되고 회의하게 되고 모르게 되어 버리는 게 참 많지요. ‘시란 무엇인가’라고 물을 때 대답 쪽으로 옮겨가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의 운동성을 잃지 않고 그 운동 속에 머무르는 것, 지금의 저로서는 그것이 성실한 문학적 태도입니다.  
 
반디 | 간혹 어떤 단어에 매혹되어 한동안 빠져 나오지 못할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치 그 단어를 중심으로 사고가 이루어지듯, 반복적으로 사용하게 되고요. 개인적으로는 최근 작가님의 글 속에서 ‘헛것’이라는 단어와 각별하게 만났습니다. 혹시 작가님의 요즘에도 이런 단어가 있으신가요?

 

김행숙 | ‘헛것’이라는 말을 통해 우리는 언어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군요.^^ 저는 ‘헛것’이라는 말을 중얼거리면, 이상하게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서시」)라고 썼던 윤동주의 마음을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고 ‘죽어가는 것’이라고 말할 때에야 사유할 수 있는 무엇이 있고, 그 ‘무엇’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부쩍 많이 하게 됩니다.   
 
반디 | 다종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책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란 어려운데요. 글 속에서 일관되게 느껴지는 시인님의 문학관은 이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문학이 곧 삶이 되는 것. 하나의 사랑으로 시 쓰기를 행하는 것. 책에서 “글을 쓸 수 없었던 때”(36쪽)에 대해서도 말하셨듯 이 태도를 유지하기 만만찮은 순간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김행숙 | ‘문학’도 ‘삶’도 ‘주체’를 초과합니다. ‘나’의 의식과 노력과 고통과 실패를 초과하여 ‘문학’이 작용하고 ‘삶’이 흐릅니다. 내가 어떤 태도나 관점을 유지하는가의 문제를 가로지르면서 ‘문학’은 침투하고 범람하고 달아납니다. 나는 나조차도 지배하고 통제할 수 없는 존재죠. 나는 시를 끌고 가는 주체라기보다는, 시와 부딪치고 시에 밀려가는 존재예요. 나의 수동성을 활성화하는 것, ‘수신기’의 감각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것, 시를 통해 그런 몸이 되려고 하는데, 그 몸이 어렵고 힘들 때가 종종 있지요.    
 
반디 | 타인을 상상하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은 모르는 시가 언제나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책에 수록된 산문에 다량의 독후감과 시론 등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그 상상과 사랑의 과정으로도 보입니다. 시인으로서도 그렇지만, 글 속에서 거론되고 있는 많은 시인들과 인간적으로도 각별할 것 같은데요.

 

김행숙 | 죽은 저자의 텍스트에 대한 글도 있고,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작가들의 텍스트에 대해 쓴 글들도 있어요. 사람과 만나는 것처럼 텍스트를 대할 수는 있지만, 그럴 때에도 텍스트의 저자를 향하고 있는 건 아니에요. 결국에 저자는 텍스트 바깥에 있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텍스트에 남는 것은 ‘타인’이죠. 텍스트의 매혹은 내가 아는 저자의 매혹이 아니라, 텍스트에 남겨지는 미지의 ‘타인’에의 매혹일 거예요.      

 

반디 | 새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시인님께서도 교단에서 대학생을 가르치며 분투하고 계신 줄로 압니다. 새내기 학생들에게 평소 어떤 책을 권하시나요? 《에로스와 아우라》를 통해 여러 시인의 이름과 시집의 제목을 알게 되었으니, 어떤 소설을 읽으시는지도 궁금한데요. 이 봄, 학생의 마음으로 진리를 찾아 헤매는 독자 분들에게 좋은 문학 작품을 추천해 주세요.

 

 

김행숙 | 딱히 새내기 대학생에게 권하는 책은 아니지만,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에  다시 읽게 될 시간들을 예감케 했던(그러니까 내가 나에게 권하는) 책 몇 권을 떠올려 보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모리스 블랑쇼의 『문학의 공간』,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로댕론 』, 배수아의 『바람인형』, 황병승의 『여장남자 시코쿠』……. 

 

김행숙

 

199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하여 시를 쓰기 시작했다. 시집으로 《사춘기》, 《이별의 능력》, 《타인의 의미》를 펴냈고, 그 밖에 《문학이란 무엇이었는가》, 《창조와 폐허를 가로지르다》, 《마주침의 발명》 등의 책을 썼다. 노작문학상을 받았으며, 현재 강남대 국문과에서 현대시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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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만난 사람] 다른 너를 품는 생(生)의 온도 - 《숲의 대화》소설가 정지아

 

 

편집·정리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자료 및 사진 제공 | 은행나무

 

지난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면 지금입니다. 역사도, 인간도, 나도 또 너도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찾아보면 어딘가엔 분명 있습니다. 말과 행동, 감정, 생각. 그 모든 지금의 근거들 말입니다. 그러니 지금의 나는 그 세월의 흔적에 꼭 맞는 웃음과 울음을 지니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거 아닌 걸 가질 수 없기도 하고요. 또 그러니 자연스럽게 그런 나를 미루어 너를 생각할 밖에요. 그런데 이게 참, 어렵습니다. 너는 언제나 나한테 그렇습니다. 누구도 공으로 살아온 세월 없으니, 꼭 그만큼은 나를 고집하고 싶어지니까요. 또 그런 내가 먼저 이해받고 싶어지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나는 아직, 나로서만 뜨거운 생(生)인 겁니다. 그런 채로, 이런 나까지 품는 《숲의 대화》를 듣게 된 거고요. 그 대화로 말할 것 같으면 말이죠...

 

《빨치산의 딸》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작가님이 가져가고 있는 것 혹은 바뀐 것이 있나요?

 

그때나 지금이나 제 관심은 역사와 인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숲의 대화》의 주제 또한 이전 소설집들과 크게 다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역사를 바라보는 거리, 정도가 아닐까 싶네요. 이전 소설들이 다소 근거리의 시선이었다면 이번에는 원거리에서 바라보고 있다고 할까요. 원거리의 시선에서 좀 더 다양한 삶의 모습을 소설 속에 담고 싶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좀 더 넓어졌다고도 할 수 있겠죠.

 

사실 20대 초반에 썼던 《빨치산의 딸》은 제 부모님의 역사였고, 밝혀지지 않은 역사였기에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저도 나이가 들었고, 더 많은 경험을 했고, 그사이 우리 사회도 여러 가지 변화를 겪었습니다. 변화를 겪고도 달라지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이죠. 더 넓어져야 한다는 게 제 바람이고 그 시절보다야 조금은 넓어지지 않았을까요? 그렇기를 바랍니다.

 

얼마 전 일간지에서 “이데올로기로만 갈라지지 않는 인생의 풍부함을 이해하게 됐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해가 이번에 출간된 소설집 《숲의 대화》 전체를 떠받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고요. 하지만 이 ‘인생의 풍부함에 대한 이해’가 비단 세월만으로 얻어지는 건 아닐 것 같습니다. 그간의 세월 안에 그 이해의 근거가 여럿 있으실 텐데요. 특별히 기억나는 일이 있다면 하나만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일단 이해하게 됐다는 표현은 좀 과장이고요.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정도가 적절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루하루 살아낸 그 모든 시간들이 이해의 근거를 제공했겠지요. 이를테면 이성적으로 절대 흐트러질 것 같지 않던 아버지가 늙음 앞에서 무너질 때,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친구의 어떤 행동에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는 걸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알게 됐을 때, 아무것도 학습하지 않은 어린 아들에게서 제가 좋아하고 또 싫어하는 제 모습을 발견했을 때…

 

이런 경험들이 쌓이다 보니 살아 있는 모든 존재의 행위에는 어떤 근거가 있다는 자연스러운 생각을 하게 되었겠지요. 설령 그게 유전자의 힘일지라도요. 유전자는 핏줄로 타고난 것이지만 그런 성향, 기질을 벗어난다는 건 어려운 일이잖아요? 저 역시 극복하고 싶지만 극복하지 못하는 성향 같은 것들이 있고요. 나를 보듯이 남을 보는, 이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은 사실 고대의 성현들이 이미 오래 전에 주창한 보편타당한 진리인 건데, 제가 아둔하여 세월의 교훈 앞에서야 겨우 겸손해진 것이죠.

 

소설집 《숲의 대화》 중에서 가장 아끼는 단편은 무엇이고, 쓰느라 힘들었던 단편은 무엇인가요? 또 작가님이 가장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단편은요?

 

음, 아끼는 단편은 <숲의 대화>, 가장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단편은 <혜화동 로터리>, 크게까지는 아니고 좀 힘들었던 단편은 <절정>입니다. <절정>은 노숙자로 전락하기 직전의 고통을 제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에 시간이 걸렸는데요. 진실로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는 게 아니라 희망을 놓으면 노숙자로 전락할까봐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그러한 분들의 삶이 아직도 제게는 어렵습니다.

 

가장 아끼는 단편으로 <숲의 대화>를 꼽으셨는데요. <숲의 대화>의 화자는 종의 신분과 가난, 평생 다른 남자(주인집 도련님)만 바라본 여자 등 자신의 삶에 주어진 것들을 죄다 안으로 품으며 그저 묵묵하게 살아온 인물 ‘운학’입니다. 노인이 된 그가 죽은 아내를 그리며 숲에 들어가 대화를 나누는 상대는 사랑하는 여자와 자신의 아이, 자신의 목숨보다 사상과 이념을 더 중요하게 여긴 ‘도련님’이고요. 이 소설의 화자를 ‘운학’으로 설정하신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뭣이 그리 답답했소? 내가 되련님맹키 새로운 시상을 맘에 안 품어서 그것이 그리 답답했소? 있는 시상 품기도, 나넌 고달팠소.
   고달픈 시상 품을라 말고 버리면 되는디, 니는 끝내 버리질… 못했니라.
   버리다니 무엇을? 종의 신분 물려준 부모를? 종놈에서 천형처럼 따라붙은 가난을? 그는 무엇 하나 버릴 생각 하지 못하고, 그것 품고 갈 생각, 오롯이 그것만,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도련님 아이 품은 여자도, 도련님 마음에 품은 여자도, 도련님과 여자의 아이도, 그는 품고 갈 생각, 그것 외엔 하지 않았다.
   버릴 것이 나는… 한나도 없었어라.

 

<숲의 대화> 중에서

 

일단 제가 참고 견디는 사람들을 좋아해서기도 하고요. 오랫동안 말없이 견디는 그 마음을 잘 알지 못했는데, 알고 나니 그들의 입장에서 보는 세상이란 어떤 것일까, 궁금해졌습니다. 도련님보다는 운학 같은 사람들이 세상에는 더 많을 테고요. 도련님은 혁명가였고, 세상을 바꾸는 것은 그런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왔는데, 혁명이 세상의 모순을 홍수처럼 단번에 뒤집는 것이라면 참고 견디면서 남을 품는 그 마음은 모순까지 품음으로써 인간의 삶을 정화하는, 늘 흐르는 조그만 시냇물 같은 것이 아닐까, 그런 고민의 결과가 운학을 화자로 선택하게 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숲의 대화>는 ‘운학’에게, <봄날 오후, 과부 셋>은 ‘에이코’에게 이야기의 무게중심이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자신이 사랑 받길 원하는 대상이 다른 이를 바라보고 있고 그래서 그 이에게 샘을 내고 질투를 느낀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운학’과 ‘에이코’에게 이와 같은 감정을 실어줌으로써 어떤 이야기를 더 이끌어내고 싶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운학의 경우와는 조금 다릅니다. 운학이 받아들이고 견디는 자인 반면 에이코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사람이라서 저지르는 인물입니다. <숲의 대화>는 받아들이고 견디는 운학을 통해 이미 죽은 도련님의 삶까지 포용하는 닫힌 구조의 소설이고, <봄날 오후, 과부 셋>은 늙었으나 아직 살아 있는 자들의 건강한 욕망을 보여주는 열린 구조여서 세 명의 인물 중 가장 역동적인 에이코를 화자로 선택했습니다.

 

 

‘운학’과 ‘도련님’이 그랬듯, 같은 시?공간일지라도 저마다 다른 삶을 일구어가는 게 ‘사람살이’고 그게 또 ‘인생의 풍부함’으로 연결될 텐데요. 《숲의 대화》를 읽으며 그 각각의 사정과 심정을 들여다보는 듯했습니다. 제각기 다른 삶들을 보듬고 있는 작가님의 따뜻한 시선도 느낄 수 있었고요. 그런데 ‘이 또한 삶이다’라고 무수히 많은 다른 삶들을 긍정하고 나서, 그럼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로 생각이 옮겨지고 나면 다시 또 길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의 가치관과 신념을 지켜나가는 것과 다른 것들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존중하는 태도, 그 사이에서 중심잡기가 어려운 거죠. 《숲의 대화》 속 이야기들을 경유해 이 고민에 대한 작가님의 조언을 들려주신다면요?

 

제대로 알면 누구라도 이해하게 됩니다.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게 문제겠지요. 그런데 사람을 제대로 안다는 게 어디 쉽겠어요? 운학도 도련님도 서로에 대한 애정은 있었으나 온전히 알지는 못했습니다. 눈먼 송아지 때문에 혁명에 몸담지 못하는 운학의 마음을 도련님은 몰랐고,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을 우선시했으나 사랑을 잊지 못해 그 여자 보낸 자리에 돌아와 죽은 도련님의 마음 또한 운학이 알지 못했지요. 긴 세월이 지나서야 그 다름의 한계를 어렴풋이 느낄 뿐입니다.

 

우리가 나와 다른 누군가를 이해하기 시작한다면 과연 단 하나의 어떤 절대적 가치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니, 그런 것이 가능할까, 이런 문제는 저 역시 고민 중입니다. 다만 다름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보편적으로 지향해야 할 여러 가치들은 있을 것이고, 그런 문제라면 다름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별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겁니다.

 

인간의 다름을 인정한다면 타인에게 반드시 그 보편적 가치를 지키라고 강요하기 전에, 인간이 그러한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지 못하게 만드는 여러 가지 모순들부터 해결하고 싶어지지 않을까요? 살인자가 처음부터 살인자로 태어난 건 아닐 테니까요. 살인자를 이 사회로부터 추방하기 전에 살인자로 살고 싶지 않았을 한 인간을 살인자로 만든 우리 사회의 어둠을 바라보고 변화시키려 노력하는 것, 진정으로 다름을 품는 자의 마음일 것 같습니다.

 

일상의 평범한 이야기 속에서 이야깃거리를 잘 건져 올리시는 것 같습니다. 이야기 소재는 어떻게 찾으시는지요?

 

그야말로 일상에서요. 저 역시 평범한 사람이고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친구, 선후배, 가족, 이웃집 아저씨, 동네 이장 아저씨, 이런 분들의 삶을 늘 지켜보며 살고 있습니다. 사실 누구나 그렇겠지만요. 때로는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들려오는 뒷좌석의 이야기가 제 마음을 끌 때도 있습니다. 미용실에서 아줌마들의 수다를 듣다가 어떤 말 한마디가 제 소설의 한 문장으로 탄생할 때도 있구요.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소설의 소재가 됩니다.

 

<봄날 오후, 과부 셋>이나 <혜화동 로터리>처럼 소설 속 인물들이 투닥거리며 나누는 대화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상대의 핵심을 찔러 비방하는 듯한데 그 바탕에 은근한 애정과 마음씀이 있다는 것도 느껴지거든요. 함께 보낸 세월과 끈끈한 정이 있지 않고선 불가능한 대화들인데요. 이와 같은 인물들의 대화는 어떻게 구상하시나요?

 

   “흐응, 잘도 그랬겠다. 늙어 꼬부라진 게 청승맞게 피붙이 그리워 울었겠지. 맞지? 삼류 빨치산?”
   “왜 이래? 토벌대 벌벌 떨던 남도부 부대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몸이야.”
   “흥, 그러니 삼류지. 오죽 못났으면 살아남았겠니? 좌나 우나 잘난 놈들은 다 먼저 갔어. 몰라 물어?”
   “그러는 너는 잘나 살아남았니?”
   “누가 뭐래니? 나도 삼류지. 같은 삼류니까 평생 어울려 놀았지.”

 

<혜화동 로터리> 중에서

 

구상이라기보다 제가 ‘촌년’이라서요. 시골이란 서울과 달리 싫으나 좋으나 동네의 모든 일들을 알 수밖에 없습니다. 맘에 안 든다고 안 볼 수도 없고요. 직장인들처럼 이직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요. 지어 먹고 살아야 하는 땅이 거기 있으니까요. 어제까지 멱살잡이를 하다가도 농번기가 되면 서로 품앗이를 해줘야 합니다. 그런 세월이 수십 년 흘러 같이 늙어가는 처지가 되면 서로의 바닥을 보고서도 그 바닥까지 품을 수밖에 없게 되는 게 아닐까요? 대부분의 가족이 그렇듯 말이죠. 시골에서 나고 자란 경험들이 그런 인물들, 인물들 간의 관계, 대화를 만들어내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사투리뿐 아니라 농촌의 생활 방식,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인물간의 정서가 소설 안에 많이 녹아 있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목욕 가는 날>에서 고향에 살고 있는 엄마와 언니 그리고 도시에 살고 있는 나 사이에 감지되던 경계가 ‘나’가 사투리를 쓰는 순간 허물어지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나’가 정말 ‘고향에 돌아왔’다는 느낌이 들었고요. 실제로 현재 작가님께서도 시골에 내려가 살고 계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고향’ 그리고 ‘귀향’, 작가님께는 어떤 의미인가요?

 

(…) 멀리 산다는 핑계로, 직장에 다닌다는 핑계로, 아이들 핑계로, 대학을 졸업한 후 나는 나날이 어머니로부터 멀어졌다. 어떠한 세월도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아웅다웅 서로 부대끼며 살아온 어머니와 언니의 지난 세월이 오늘 고스란히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었다. 나와 어머니의 세월도.

 

<목욕 가는 날> 중에서

 

앞의 답을 통해 어느 정도 말씀드린 것 같은데요. 유년의 원체험은 저뿐만 아니라 모든 작가들에게 있어 세계관, 인간관의 기초를 형성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30대까지만 해도 농촌에서 보낸 유년의 경험을 전근대적이라 치부했고, 근대성을 획득하고 싶어 안달을 냈습니다. 농사짓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이 전근대적인 삶의 방식인 것은 확실합니다만, 인간의 역사란 것이 꼭 직선만은 아니어서 과거의 삶이 미래의 거울이 될 수도, 혹은 새로운 시작의 첫걸음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요즘에야 듭니다. 더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제게 고향은 치르치르와 미치르의 파랑새 같은 게 아닐까 싶네요. 별것 아니라 생각하고 더 나은 것을 찾아 세상을 떠돌다 이제야 돌아와 별것 아니라고 치부했던 그 사소한 삶들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있으니까요.

 

실제 시골생활은 어떠신가요?

 

시골생활이야 당연히 불편하지요. 겨울에는 하루 두 번 아궁이에 불도 지펴야 하구요. 여름이면 온갖 벌레들과 전투도 치릅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 충분히 경험해서 면역력도 있는 데다 불편함이 주는 여러 가지 선물도 있죠. 고작 저 먹을 채소 몇 가지 키우는 수준이지만 오랜만에 몸을 움직여 노동을 하는 것도 즐겁습니다. 예전보다 단순하고 담백해지는 느낌도 아주 좋구요.

 

그런가 하면 소설 속 농촌 현실이 마냥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듯합니다. 피부로 느끼는 오늘의 농촌 현실에 대해 한마디 해주신다면요?

 

사실 시골에 와서 살긴 하지만 저 사는 곳이 인가 드문 산속이고 집밖 출입을 잘 하지 않아 시골의 현실을 속속들이 알지는 못합니다. 시골 내려온 지 겨우 2년이니까 아직은 외지인인 셈이죠. 그냥 눈에 보이는 현실이라고 한다면 어디를 가나 동남아시아에서 온 여성분들이 계시다는 것, 그분들이 중장년층만 남은 시골의 노동력을 상당 부분 감당하고 있다는 것, 그분들과 그 자손들에게 우리나라 농촌의 미래가 달려있다는 것, 뭐 이런 정도의 현실을 본 것 같습니다. 노인 문제야 다들 아시는 거구요.

 

소설에 등장하는 캐릭터가 노약자, 중증 장애인, 이민 여성 등 ‘겨우 살아가는 존재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천착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 이력이 붙으면 뭐든 견딜 만하다. 아버지는 병신자식 하나 낳아놓고 살 수 없게 됐지만,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사는 게 지옥이었던 그는 살다 보니 사는 일에도 그럭저럭 이력이 붙었다. 사는 일이 만만치 않은 것임을 제일 먼저 알려준 것은 아버지였다. (…)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그는 마음 한구석 거미줄처럼 질기게 엉겨 있던 아버지를 떨쳐낸다. 이곳은 아버지의 삶에는 허락되지 않았던, 아니 스스로 허락하지 않았던 그만의 천국이다.

 

<천국의 열쇠> 중에서

 

글쎄요. 왜 그럴까요? 생각해본 적이 없네요. 그냥 그런 분들의 이야기가 제 마음을 움직였던 건데요. 생각해보니 잘난 사람, 예쁜 사람, 돈 많은 사람들의 화려한 삶은 제가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누구나 부러워하고 있잖아요. 누구의 시선도 받지 못한 쓸쓸한 삶에 더 마음이 쓰이는 건 어쩌면 저 역시 그런 시간들을 보내봤던 경험 때문일 수도 있겠네요. 그냥 그런 것에 마음이 끌리는 성정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구요. 그런데 나이 들어 보니 꼭 겨우 살아가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화려하게 보이는 삶에도 반드시 아픔은 있더라구요. 누구에겐들 살아가기가 쉽겠어요. 살아 있는 한 고통이나 아픔, 슬픔은 피해갈 수 없죠. 어쩌면 아픔은 생명의 쌍둥이 형제인지도 모르지요.

 

작품을 쓰는 데 영향을 줬던 소설이나 책이 있으신가요?

 

특별히 어떤 작품, 어떤 작가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기보다는 평소에 이문구 선생님의 《관촌수필》과 박상륭 선생님의 《죽음의 한 연구》를 즐겨 읽습니다. 인간을 바라보는 그분들의 따스하고 깊은 시선에 늘 감탄하면서요.

 

 

고향에 내려가 사시면서 학생들에게 문학도 가르치고, 여타 문학 심사나 강의도 많이 하시는 걸로 압니다. 소설은 보통 언제 쓰시는지요?

 

마음속에 품고 있던 이야기가 무르익었을 때요. 어떤 일을 하고 있든 소설 쓸 시간은 반드시 있습니다. 어차피 과작이잖아요. (웃음) 새로운 이야기를 많이 만드는 것보다 하나의 소설을 통해 저 자신이 성장하는 느낌을 더 좋아합니다.

 

만약 소설을 쓰지 않았다면 무슨 일을 하고 있었을 것 같으세요?

 

별로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농부로 살고 있다면 좋겠네요. 저는 농부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정직한 노동으로 생명을 키워내고 그것으로 사람을 살리는 직업이잖아요? 한 톨의 쌀이 소설 한 편보다 아름다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앞으로는 어떤 소설을 쓰고 싶으신지요?

 

좋은 소설? 죄송합니다. 이런 질문이 제일 어려워서요. 어떤 작가나 작품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앞서 말한 것은 어떤 소설이 좋은지를 저 스스로 잘 모르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설령 어떤 소설이 좋은 소설인지를 안다고 해도 제 삶이 그렇지 않다면 그런 글이 나올 리 없구요. 그냥 저는 제가 따뜻하고 넓고 깊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고, 그런 글을 썼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분들께 한마디 해주세요.

 

음… 가능하다면 제 글을 천천히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밥도 천천히 오래오래 먹는 게 좋다잖아요. 글도 그렇지 않을까 싶어서요. 느릿느릿, 천천히, 산보하듯 읽어주신다면 참 좋겠습니다.

 

1965년 전남 구례에서 출생했다.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빨치산 부모님 이야기를 소설화한 《빨치산의 딸》을 펴내 큰 반향을 일으켰으나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판금 조치를 당하고, 이후 노동해방문학 관련 활동으로 수배생활을 했다. 199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고욤나무>가 당선됐고, 2004년 소설집 《행복》, 2008년 《봄빛》을 출간했다. 2006년 단편소설 <풍경>으로 이효석문학상을, 2008년 문화예술위원회 선정 올해의 소설상을, 2009년 소설집 《봄빛》으로 한무숙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빨치산의 딸》의 주 무대이자 고향인 구례로 내려가 소박하고 느린 삶을 살고 있으며,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전공전담교수로 출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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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만난 사람] 새봄을 맞듯 나를 읽어 주세요 - 《무국적 요리》의 소설가 루시드폴

 

편집·정리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사진 제공 | 나무+나무

협조 | 안테나뮤직

 

고요하게 어둠이 찾아오는
이 가을 끝에 봄의 첫날을 꿈꾸네
만리 넘어 멀리 있는 그대가
볼 수 없어도 나는 꽃밭을 일구네
가을은 저물고 겨울은 찾아들지만
나는 봄볕을 잊지 않으니
눈발은 몰아치고 세상을 삼킬 듯
이 미약한 햇빛조차 날 버려도
저 멀리 봄이 사는 곳 오, 사랑

 

눈을 감고 그대를 생각하면
날개가 없어도 나는 하늘을 날으네
눈을 감고 그대를 생각하면
돛대가 없어도 나는 바다를 가르네
꽃잎은 말라가고 힘찬 나무들조차
하얗게 앙상하게 변해도
들어줘 이렇게 끈질기게 선명하게
그대 부르는 이 목소리 따라
어디선가 숨 쉬고 있을 나를 찾아
내가 틔운 싹을 보렴 오, 사랑

 

내가 틔운 싹을 보렴 오, 사랑

 

겨울부터 봄, 그 사이는 다른 환절기보다 유독 오랜 시간 같습니다. 이 체감의 원인은 겨울이라는 계절보다 자신의 기다림이 깊은 쪽에 있을 겁니다. 홀로 사랑하는 우리들의 기다림이요. 헌데 이때 루시드폴은 노래했습니다. 그것이 곧 "어디선가 숨 쉬고 있을 나를 찾"는 시간이기도 하다는 것을요. 봄이 오기까지 듣곤 하던 '오, 사랑'의 노랫말입니다. 아름다운 선율도 선율이지만, 그의 음악에는 작고 초라한 것들을 소환하는 말의 감동이 있습니다. 이런 말이 어디론가 번져 가리라는 예감 때문이었을까요? 루시드폴이 소설을 쓴 것은 저에게 꼭 자연스러운 수순처럼 느껴집니다. 여러분도 오로지 말로 일군 그의 이야기가 궁금하실 텐데요. 봄 맞으러 가듯 느릿느릿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반디 | 《무국적 요리》의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이전에도 가사집 《물고기 마음》과 서간집 《아주 사적인, 긴 만남》과 같은 책을 내신 경험이 있으시지만, 소설집은 처음이신데요. 데뷔 앨범을 선보인 듯 기분이 남다를 것 같습니다. 소설을 읽은 주변 지인 분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루시드폴 | 아직 지인들의 반응을 많이 접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일부의 반응은 ‘재미있었다(전 이 말이 제일 좋더라고요)’와 놀랐다(어떤 의미인지는 모릅니다만)’였어요. 지인들의 반응은 아니지만 인터뷰를 하다 보면 인터뷰어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공통적으로 루시드폴의 음악과는 느낌이 또 다르다거나 기존에 많이 읽던 소설들과 다르다는 평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반디 | 포르투갈 소설 번역 중에 소설을 쓰고 싶어져, 두 달 만에 쓴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짧은 시간을 들인 편인데요. 사실은 오래 묵혀둔 이야기일 것 같습니다. 언제부터 이런 이야기들을 생각했는지, 본격적으로 소설 쓰기에 임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루시드폴 | 말씀하신대로 작년엔 제가 정말 좋아하는 브라질의 작곡가, 가수, 소설가인 쉬쿠 부아르키의 소설 《부다페스트》를 번역하고 있었어요. 원래는 수년 전에 하기로 마음먹은 일이었는데 그간 바쁘다는 핑계로 손을 놓고 있었던 일이었지요. 평소 소설을 많이 읽는 편이 아닌데 번역을 하면서 한 소설을 깊이 한 문장 한 문장 읽고 음미하게 되었지요. 그 과정도 재미있었지만 그러다 보니 내 이야기도 한 번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이야기를 상상하고, 시놉시스도 짜보고 하면서 장편소설 하나를 쓰고 있더랬습니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이번에는 또 짧은 이야기의 모티프들이 계속 떠오르더라고요. 그때마다 떠오르는 단상을 메모해 두곤, 단편으로 써봐야지,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글을 쓰고 싶어질 때 컴퓨터 앞에 앉아서 소설을 썼습니다. 그게 시작이었어요. 지나고 보니, 노래라는 틀 속에서 다 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소설이라는 (그 당시엔 이게 과연 소설이 될까 하는 의문도 있었지만) 다른 방식으로 쓸 수 있었으니, 어쩌면 필연이었겠구나, 싶기도 합니다.

 

반디 | 소설에는 여러 인물이 등장합니다. 인물들의 다양함 만큼이나 작명 또한 독특한데요. 일본이나 유럽 어디쯤을 연상케 하지만, 이야기의 무대를 한곳으로 종잡을 수는 없는데요. 인물과 그들이 사는 세계에 특별히 부여한 의미가 있다면요?
 
루시드폴 | 소설을 쓰면서 자연스럽게 전제가 된 것은, 소설을 쓰면서 구체적인 시공간의 제약을 만들지 말자, 였습니다. 그래야 더 자연스럽게 주인공들을 구상하고 배치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느꼈어요. 물론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도 없애고 싶었고요. 그래야 각각의 단편들이 다시 하나로 묶일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예를 들면, <탕>에 나오는 목욕탕인 '봉래탕'은 <싫어!>에도 다시 등장하지요. <탕>에서 주인공이 마신 소주의 광고 카피는 <기적의 물>의 주인공 목군이 마신 소주의 광고 카피와 같습니다. <싫어!>의 어린 두 아이는 제가 키우는 강아지 두 마리의 이름에서 착안했는데, 마지막 소설 <독>에는 목욕가방을 든 한 부부가 두 마리의 강아지를 데리고 걸어가는 장면이 나오고요. <똥>의 마을 이장이자 곰인 '하요'가 <독>의 배경이 되는 마을의 이장이기도 합니다. 시공간뿐만 아니라 사람과 동물의 경계도 모호하게 만들었어요.
 
반디 | 목욕탕이나 정수기가 등장하는 <탕>, <기적의 물>, <싫어!>의 공통점은 물입니다. 소설 속에서 물은 대개 무용하지만 때로는 소중한 것과 이어주는 끈처럼 보이는데요. 화학자 루시드폴님에게 물이 ‘H2O’라면, 소설가 루시드폴님에게 물이란?

 

루시드폴 | 제가 스웨덴에서 연구할 때 저희 교수님께서 수업시간에 농담 삼아, “'dihydrooxygen'와 'hydrogen monoxide'의 차이가 뭐냐”라고 어떤 학생에게 물었던 적이 있었어요. 답을 아는 사람은 키득거렸지만 막상 질문을 받은 학부 학생은 대답을 못해서 쩔쩔맸었지요. 그런데 교수님은 다시 “그럼 'water'와의 차이는 뭐냐”고 또 물으시더라고요. 세 가지 물질 모두 우리말로 하면 그냥 '물'입니다. 소금과 'sodium chloride (NaCl)'가 같은 물질인 것처럼 말이지요. 물은 단순한 분자지만 다른 어떤 비슷한 덩치의 분자들과는 정말 다른 성질을 띠지요. 그래서 이렇게 우리가 살 수 있는 거구요. 물은 분자량에 비해 안정적이고, 상온에서 액체 상태로 존재하고, 열용량도 크지요. 화학적으로도 정말 재미있는 물질입니다. 꼭 그래서만은 아니겠지만 저는 평소에 물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요. 실험을 하면서 때로는 물이 독이 되는 경우도 있었고, 그 물을 없애는 반응조건을 만들기 위해 거의 1년을 허비한 적도 있으니 사실은 웬수 같은 물질이기도 합니다. (결국 저의 실험은 실패로 돌아갔고요.)

 

다시 일상의 저로 돌아와서 보면, 어릴 적 늘 물이 접한 바닷가에서 자라서 그런지 큰 강이나 호수나 바다에 면해 있는 도시에 살 때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물은 언제나 낮은 곳에 있으면서, 시야를 확보해주고 걸리적거리는 풍경에서 우릴 해방시켜주지요. 또 조금 다른 이야기가 될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목욕탕도 정말 좋아합니다! 한숨 돌리고 쉬고 싶을 때, 머릿속이 복잡하거나 피곤할 때, 항상 찾는 곳이 목욕탕이에요. 어쩌면 제 사주에 물(水)이 생(生)하는 나무(木)가 많을지도?
 
반디 | <독>의 내용이 인상적입니다. 몸에 쌓인 독을 받아주는 마을 사당의 독이 사라지자 주인공인 우미와 사람들은 혼란에 빠지는데요. 섬뜩하게도 느껴지는 이 소설은 세상에 대한 비유로 읽히기도 합니다. <독>에 담고자 했던 이야기를 부연해 주신다면요?

 

루시드폴 | 이 세상을 살아가는 어느 누구나 살면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런 스트레스가 풀리지 못해서 마음 어딘가에 쌓이면 화가 됩니다. 특히 바쁘고 치열한 현대사회에 사는 우리는 항상 어떤 종류의 '화'로 가득 찬 채 살지요. 그게 '독'이라고 봅니다. '독'을 적절히 배출하고 비워낼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된 사회는 건강한 선순환의 고리를 보장해 주지만 '해독'의 출구가 막힌 사회에선 결국 개인의 독이 사회의 독이 되고 모두 파멸될 수밖에 없다고 봐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사회는 개개인의 '독'에 관심이 없지요. 그저 삭히고 참으라고 할 뿐입니다. 마음과 몸에 쌓인 독을 제대로 해소할 수 없는 곳. 우리가 그런 곳에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사회의 해독작용이 얼마나 원활한가 여부에 따라 똑같은 공간도 때론 유토피아가 때론 지독한 디스토피아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반디 | 모든 소설이 묵직하지만은 않은데요. 흔히 ‘스위스 개그’로 불리는 루시드폴님 특유의 재치가 돋보이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똥>과 <추구> 같은 소설에서의 풍자는 날카롭기까지 합니다. 이런 화법에 애정을 가지고 계시다면, 그 이유는요?

 

루시드폴 | 원래 장난기가 많아요. (물론 진지한 면도 많습니다. 꺄르르~)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은 일차적으로 저 자신이 재미있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일부 장난기 어린 표현들을 '용감하게' 쓰게 되었지 않나 싶어요. 요즘은 예능이 대세인 시대니 '개그'라는 코드로 받아들이는 것이 일반적이긴 하겠지만, 부족한 이 초보작가의 가소로운 '위트' 정도로 봐주면 좋겠다, 싶은 바람이 있습니다만.
 
반디 |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은 최초의 독서에서 비롯되기도 합니다. 틈틈이 많은 책을 읽으실 것 같은데요. 《무국적 요리》에 영향을 준 소설이나 소설가가 있었나요? 혹은 평소 즐겨 읽는 뮤즈 같은 책이 있다면, 독자 분들께 소개해주세요.

 

루시드폴 | 소설을 많이 읽는 편이 아니라 큰 영향을 준 소설이나 소설가는 없어요. 아마도 작년에 제가 꽤 많은 책을 읽었지만 그 중 소설책은 다섯 권이 채 안됐지 싶은데, 그나마도 바빴던 다른 해에 비해서는 많은 편이었습니다. 책을 고르는 과정은 주로 신문을 통하는데요. 매주 몇몇 신문들의 서평 기사를 꼼꼼히 보는 편입니다. 서평을 보다가 관심이 있는 책은 메모를 해두고 서점으로 가서 책들을 찾아 읽어보지요. 그리고 마음에 드는 책은 한 권씩 사서 읽는 편입니다. 꼭 한 권씩이라는 원칙!

 

 

음악활동을 쉬었던 작년에는 우연히도 '말'에 관한 책을 많이 만나게 되었어요. '말'과 '언어'에 대해 생각할 거리들도 많아졌지요. 번역하고 있는 《부다페스트》만 해도 그렇습니다. 어느 브라질 대필 작가의 이야기예요. 헝가리에 우연히 불시착한 인연으로 난생 처음 헝가리어를 접하고 결국 그 후 부다페스트로 가서 헝가리어로 시를 쓰는 시인이 된다는 그런 이야기거든요. 가늠할 수 없는 인생역정이지요. 마치 제가 소설을 쓰게 된 것처럼요.  노마 히데키의 《한글의 탄생》이나 니컬러스 에번스의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다》가 작년에 제가 읽은 가장 좋았던 책인데 우연인지 몰라도 다 말과 글에 대한 책입니다. 다른 책을 또 떠올려본다면, 연말 즈음 출간된 윤여일씨의 《여행의 사고》도 가슴 깊이 공감하면서 읽었던 책이고요. 문학 작품 중에서는 그나마 좋아하는 시인의 시집을 찾아 읽는 걸 좋아합니다. 마종기 선생님의 모든 시집은 물론이고요. 백석 시인의 시, 일본의 동요시인 가네코 미스즈의 시, 다니카와 ?타로를 좋아합니다.
 
반디 | 《무국적 요리》와 같은 작업은 ‘뮤지션이라면 음악을 해야지!’와 같은 인식을 허물기도 합니다. 루시드폴님이 소설을 써냈듯 어떤 사람도 현재의 영역에서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자 할 텐데요. 그런 분들에게 조언의 말씀 부탁드려요.

 

루시드폴 | 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건 그것만으로도 행복하고도 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과감하게 하는 것. 남들이 어떻게 보고 어떤 평가를 내리든 아랑곳 없이, 인생의 최우선 존재인 나를 위해 더 행복해지려는 적극적인 노력.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을까 싶어요.
 
반디 | 뮤지션, 화학자, 소설가. 대중 앞에 매번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계시지만 이 행보를 두고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뭔가를 만든다는 점에서 똑같다.”라고 어떤 인터뷰에서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앞으로의 관심사를 예고해 주신다면요?

 

루시드폴 | 2012년에는 단독공연도 하지 않았고 앨범 작업이나 곡 작업도 하지 않았어요. 올해엔 당분간은 곡 작업과 연주에 더 무게중심을 둘 생각입니다. 물론 다른 몇 가지 재미있는 구상들도 하고 있지만 아직 밝힐 단계는 아니에요. 새로운 것을 구상한다는 것. 입이 근질근질하지만 당분간은 참겠습니다. 상상만으로도 즐겁습니다.
 
반디 | 뮤지션으로서의 활동을 궁금해 하시는 팬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공연이나 앨범 등과 관련하여 올해의 계획을 간단하게 밝혀 주세요.

 

 

루시드폴 | 4월 한 달 간 종로의 '반줄 로프트 (Banzul loft)'라는 곳에서 공연을 합니다. 월요일만 쉬고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4주간 24회 장기 공연을 하지요. 2010년, 2011년 가을에 학전 소극장에서 하던 '목소리와 기타' 공연을 한 해 쉬고 올해 다시 하게 된 거예요. 2010년, 2011년에 비해 장소도 계절도 바뀌었어요. 하지만 여전히 매일 같은 곳에서 기타치고 노래할 겁니다. 노래 듣고 싶으신 분들 오세요. 재미있는 공간입니다. 공정무역 커피를 파는 근사한 카페도, 전시공간도, 나무데크와 푸릇푸릇한 풀이 자란 테라스 공간도 멋집니다. (힌트를 하나 드리자면 이런 공간은 공연을 안 보셔도 즐기실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4월 공연이 끝나면 앨범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에요. 루시드폴의 정규 앨범을 가을에 낸 적이 3집 <국경의 밤>밖에는 없어요. 그것도 11월 즈음, 하필 제가 외국에 있을 때 발매되었었지요. 이번에는 기어코, 이른 가을, 10월 전에는 앨범을 내고 싶습니다.
 
반디 | 《무국적 요리》를 제대로 맛보기 위해 필요한 것들, 무엇이 있을까요? 소설을 읽을 독자 분들에게 마지막으로 귀띔해 주세요.

 

루시드폴 | 이왕 책을 사셨거나,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신 분들께:
조금 느릿느릿 읽어주시길. 제가 조금은 더 잘 보이지 않을까, 도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루시드폴

 

1975년 3월생. 음악인, 화학자. 1998년 인디밴드 미선이의 첫 앨범 'Drifting'으로 데뷔했다. 2001년 루시드폴 1집을 시작으로 '오, 사랑', '국경의 밤', '레미제라블', '아름다운 날들' 등 5장의 정규 앨범을 냈다. 2008년 스위스 로잔의 EPEL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같은 해 미국 화학회지에 논문 「Micelles for delivery of nitric oxide」를 발표했다. 가사집 《물고기 마음》과 시인 마종기와의 서간집 《아주 사적인, 긴 만남》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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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만난 사람] 평범한 행복을 그리다 - 《꽃피는 용산》의 저자 김재호

 

편집·정리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도서 관련 이미지 제공 | 서해문집

 

[서점에서 만난 사람]의 인터뷰는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말 그대로 서점에서 접선하는 것이 아니냐! 하고 답하신다면 뭐, 그렇습니다. 첫 만남은 물론 서점이죠. 책과의 첫 만남이요. 이후 그 책을 진~하게 소개하고자 인터뷰를 추진하게 되는데요. 대부분은 서면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면(面) 대 면(面)으로 만나기보다 메일로 문답이 담긴 문서를 주고받는 식이죠. 보통 이렇다 보니 다른 통로를 생각해본 일이 없는데요. 웬걸, 이번에는 진짜 서면(書面)을 받았습니다. 《꽃피는 용산》의 저자 김재호님으로부터요. 이 책은 김재호님이 수감 생활 중 딸에게 보낸 만화편지를 엮은 것입니다. 모든 질문에 손글씨로 답해주신 정성. 가족을 향한 사랑은 이보다 더할 테지요. 지난 달 20일로 용산 참사 4주기를 지났습니다. 악에 받치고 눈물이 터지는 날들이었을 겁니다. 이것은 그 시간을 사랑의 힘으로 견디고 이제 평범한 행복을 꿈꾸는 한 사람의 인터뷰, 아니, 편지입니다.

 

 

반디 | 《꽃피는 용산》의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용산참사 이후 3년 9개월의 수감생활 동안 따님께 쓴 만화편지를 엮으셨는데요. 《꽃피는 용산》을 처음 접한 독자 분들을 위해 이 책과 선생님 자신에 대해 소개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재호 | 저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만화 형식의 그림은 한 번도 그려 보지 않았습니다. 그저 초상화 등 화집의 예쁜 그림을 따라 그리는 것이 전부였죠. 1974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잠시 쉬는 동안 충주에 있는 구 ‘아세아 극장’의 간판 그림을 볼 때마다 그쪽 일을 선망했습니다. 몇 달 동안 극장 간판을 따라 그리고 배운 적도 있어요. 하지만 학비를 지원해주시던 할아버지께서 지병으로 돌아가시는 바람에 저는 미대 진학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이듬해 군에 입대하여 박격포 부대에 배치되어 갔는데요. 그림을 그릴 줄 안다는 이유로 행정반에 차출되어 차트병으로 근무하며 제대를 앞둔 고참병의 추억록을 그려 주곤 했습니다. 제대 후에는 시계 기술과 세공 일을 배워 진로를 잡아 나갔고, 신림동과 상도동 등에서 기사 생활을 하다가 용산에 자리를 잡고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책을 처음 접하시는 독자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은 ‘용산’이라는 제목만을 보시고 선입견을 갖지는 마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제가 아쉬운 것 중 하나가 《꽃피는 용산》이 정치·사회 분야로 분류되어 딱딱한 느낌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책 내용은 한 가정의 이야기와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박한 이야기가 대부분인데 말이에요.

 

반디 | 그냥 편지도 아니고 만화 작업을 하기에는 열악한 상황이었을 것 같은데요. 그 와중에도 만화를 곁들인 편지를 쓰게 된 계기와 계속하게 된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

 

김재호 | 편지는 어린 딸아이와 소통하는 통로였습니다. 만화를 그리게 된 것은 어린 딸아이가 잘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고요. 처음 몇 달은 편지지에 글만 썼습니다. 그러나 딸아이가 편지에 대한 관심을 잃었고, 어떤 때에는 아예 읽지도 않으려고 한다는 아내의 말을 듣고 고민을 했습니다. 갑자기 생이별을 한 딸아이는 서서히 달라졌습니다. 그때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편지의 빈 곳에 한 컷씩 그림을 그려 보내는 일이었습니다. 지난 날 즐겁게 지냈던 기억을 딸아이에게 상기시켜주고 싶었습니다. 곧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딸아이는 그림을 그려 답장을 보내기도 했고, 더 많은 그림을 원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힘을 얻었죠. 컷 수를 늘려 6~7컷의 만화를 보내가다 아예 편지 한 장을 만화를 채우기 시작했어요. 이것을 행하게 한 원동력은 딸아이에 대한 제 마음, 편지로 인해 찾아온 변화들이었습니다.

 

 

반디 | 그림에는 별다른 도구 없이 컬러펜만이 사용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따뜻하고 풍성한 이야기를 그려내셨는데요. 평소 언제부터 만화 그리기에 관심을 가지고 계셨나요?

 

김재호 | 중학교 때부터 그림 그리기는 좋아했지만 만화를 그려 보기는 이번 감옥 안에서 그린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반디 | 책에는 아빠의 편지에 이어 엄마와 따님인 혜연이의 목소리가 담겨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가족 이야기”라는 제목 아래 다른 가족의 이야기도 그리고 계신데요. 상상해서 그리셨는지, 아니면 별도의 수집 과정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김재호 | 접견 때 아내가 들려주는 소식, 구속되기 전 딸아이와의 추억, 가슴 아팠던 일, 딸아이에게 바라는 희망사항, 감옥에 갇혀 있는 제 심정이 이야기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목차에서 다섯 번째 이야기인 ‘세상 모든 가족 이야기’에는 주변 수용자들이 들려주는 사연, 제가 그동안 읽은 글 중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이런 내용을 접한 딸아이가 삐뚤어지지 않고 착하게 살기를 바랐습니다.

 

반디 | 한 사람이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면 그 가족 모두가 힘들어지곤 합니다. 선생님께서도 그러한 상황을 지나오셨습니다만 그럼에도 가족과 함께하는 희망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희망을 향해 나아가자면 우리에게는 어떤 지혜가 필요할까요?

 

김재호 |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다 해도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누구에게나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앞에 놓인 모든 일이 부정적일지라도 생각을 바꾸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반디 | 용산참사 이후 그 이야기를 담은 만화가들의 작업을 서점에서 만날 수 있었는데요. 혹시 그 중 읽었거나 특별히 기억에 남는 책이 있다면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이와 더불어 평소 선생님에게 힘을 주는 책 한 권 소개해주세요.

 

 

김재호 | 지인들이 넣어준 책 중에 《내가 살던 용산》이 있었는데요. 철거민들이 살아온 삶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그려진 것입니다. 용산을 잘 모르는 이들의 이해를 돕는 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감옥에서는 책꽂이에 있는 《가슴 뛰는 삶》이라는 책을 보며 힘든 마음을 달래고 희망을 얻었던 기억이 납니다.

반디 | 지난 1월, 용산참사 4주기를 지났습니다. 시간이 흘렀음에도 매듭짓지 않은 문제들이 여전히 많은데요. 용산참사를 기억하고, 또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김재호 | 먼저 진상 규명이 이루어져 책임자를 처벌해야 합니다. 그리고 길거리로 쫓겨나는 철거민이 더는 없도록 강제 퇴거 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해 하루 빨리 법으로 제정되어야 합니다.

 

반디 | 계속해서 이와 같은 작업에 매진하는 만화 작가로 활동할 계획이 있으신지, 아니면 생업에 임하실지, 가족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는 근황과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김재호 | 제가 할 일은 만화 작가보다는 우선 용산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고, 가족과 함께 평범하게 지내는 것입니다. 모르죠. 세월이 지난 후에는 생각이 바뀔는지요. 현재는 아내가 운영하는 가게 일을 함께 도우며 딸아이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자 합니다.

 

반디 | 마지막으로 선생님의 가족에게, 세상의 모든 가족에게, 《꽃피는 용산》을 읽는 독자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김재호 | 그리던 가족을 만났으니 지난날에 소홀했던 부분을 고치고, 사랑을 실천해 가렵니다. 많은 분들이 어려움 속에서도 삶의 중요한 부분을 잊거나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을 읽는 분들의 가정이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김재호

 

1965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났고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습니다. 성년이 되어 서울로 올라와 시계 기술을 배우고 84년 용산에 터를 잡아 진보당이라는 이름의 금은방을 개업했습니다. 2007년 도시정비 사업으로 정들었던 가게가 부당하게 철거될 위기에 놓여 망루에 올랐지만, 특공대원들의 과잉진압 때문에 대참사로 이어졌습니다. 감옥에 수감되고 보니 가족에 대한 걱정과 그리움에 딸아이가 좋아하는 만화로 편지를 그려 보내기 시작했고, 출소 뒤 딸을 사랑하는 애틋한 마음을 전하는 소통의 통로였던 만화편지를 책으로 엮어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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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만난 사람] 그때 떠나길, 떠나보내길 잘했다는 위로 - 소설가 이혜경

 

편집·정리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도서 관련 이미지 제공 | 도서출판 강

사진 | 이혜경

 

위로, 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적어도 주변에서 이것에 대해 잘 안다는 사람을 저는 만난 적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살면서 위로를 받은 경험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분명 받아본 적이 있는데도 쉽게 정의내리거나 행하지 못하는 것. 그 이유는 위로의 상대성 때문일 겁니다. 누군가는 따뜻한 커피나 포옹 한 번에 기운을 차리는가 하면, 또 누군가는 지루한 고전소설이나 신랄한 독설에 힘을 얻기도 합니다. 저마다 지나온 삶의 결이 다른 만큼 사람들의 마음에 와 닿는 위로의 내용도 제각각이겠죠. 《그냥 걷다가, 문득》과 같은 산문집은 어떨까요? 이혜경 작가님이 소설가로 살아오신 지 삼십여 년 만에 첫 산문집입니다. 타인의 삶에서 종종 위로를 받곤 하는 제 경우, 이 책은 오래되고 편한 친구 같은데요. 여러분은 어떻게 읽으실는지요. 모쪼록 작가님 삶을 가까이에서 마주하는, 자신의 삶 또한 보다 가까이에서 돌아보는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산문집 교정을 보자니, 다시 그 해변에 선 듯하다. 그동안 만났던 인연, 머물렀던 순간들, 그럴 때 내 마음에 스친 무엇들…… 크고 작은 깨달음을 준 그 인연에 대한 고마움이 새록새록 밀려와 따뜻한 물처럼 발을 적신다. 물론 바늘 끝 하나 꽂을 자리 없이 딱딱하게 오그라들었던 순간들도 있었고, 그만 길에서 내려서고 싶은 순간도 없지 않았으나, 사람과 생은 내겐 여전히 경이롭다. 행복하기를 바라는 만큼 생명 있는 것들의 행복을 방해하는 것들에도 자주 눈길이 머물렀으나, 놀라운 장면을 본 아이가 저도 모르게 입을 헤벌리듯, 삶이라는 길을 걸어오며 그런 표정을 짓는 순간이 잦았음을 내가 쓴 글을 읽으며 새삼 깨달았다. 그건 다름 아닌 나 자신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4쪽)

 

반디 | 《그냥 걷다가, 문득》의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이번 책은 작가님의 첫 산문집입니다. 1982년에 등단하여 작품 활동을 해 오신 시간을 생각하면 다소 늦은 감도 있는데요. 지금에 이르러 산문집을 엮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이혜경 | 그동안 산문집 내자는 말씀은 몇 번 들었는데 그럴 마음이 없었어요. 소설과 달리 산문은 글쓴이가 그대로 드러나잖아요. 매체의 청탁을 받아 산문을 발표하면서도 그 매체의 다음호가 나오면 그냥 잊히는 거니까 부담이 덜했는데, 그걸 모아서 책으로 묶는 건 그대로 남는 거라서요. 그런데, 지난 몇 년,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제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을 전보다 좀 깊게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이 많다는 걸 깨닫고요. 쓰고 싶은 건 많은데, 욕심만큼 안 따라주니까 손도 못 대거나 중도에 그만두는 일이 있었거든요. 잘 쓰려고 하다가 끝내 못 쓰고 떠나면 저 자신에게 창피할 것 같았어요. 그러던 참에 소설 쓰는 후배가 산문집 이야기를 하기에 선뜻 그러자고 했어요. 산문집을 낼 생각이라면 원고를 잘 챙겨두었을 텐데 그게 아니라서 잃어버린 원고도 여럿이고······. 그래도 원고를 찾고 정리하면서 저 자신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묶어서 떠나보내길 잘했다, 싶어요.

 

반디 | 산문을 쓸 때는 아무래도 소설과는 다른 호흡을 갖게 될 것 같습니다. 주로 어떤 시간에 어디에서 어떻게 글쓰기에 임하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이런 풍경 속에서 나온 글이다, 라고 이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해 주신다면요?

 

이혜경 | 약력에 얼핏 썼지만, 오가며 들은 이야기, 읽던 글 속의 어느 한 대목이 제 마음을 확 잡아끌 때가 있어요. 그러면 그걸 메모해 두지요. 어떤 시간에 어디에서? 엔 명확하게 대답하기가 어렵네요. 대개 아침에 일하는 방으로 가서 글을 쓰는데, 때로는 도서관에서, 때로는 찻집에서, 때로는 여행지에서? 특히 맨 앞부분 여행에 관한 글은 여행지에서의 기록이 없었다면 쓰기 어려웠을 거예요. 프라하도 인상 깊었는데, 이상하게 프라하 여행 기록은 없어졌어요. 사진은 남아 있는데, 사진만 갖고는 글을 쓸 수가 없었어요. 여럿이 여행하면 제가 놓치는 것을 다른 사람을 통해 볼 수 있음을 알면서도 대개 혼자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여럿이 여행했을 때와 혼자 여행했을 때 기록의 양이 아주 다르기 때문일 거예요.

 

반디 | 여행, 혹은 이방에서의 경험이 많은 글에 묻어납니다. 작가님께 여행은 흔히 말해지는 일탈이 아니라 삶의 연속처럼 보이는데요. 그 중에서 지금도 작가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기억이 있다면 아직 책을 접하지 못한 독자 분들을 위해 특별히 소개해주세요.

 

이혜경 | 일시체류든 잠깐의 여행이든, 낯선 곳으로 떠난다는 것은 결국 자신과 좀더 긴밀하게 만나는 자리를 마련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기존의 관계들로부터 벗어나 오롯이 혼자인 자신과 맞대면하고, 한편으로는 그동안 엮여 있던 관계들을 좀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씨앗이 적당한 습도와 온도에서 발아하듯, 여행은 그런 역할을 하는 듯해요. 모든 여행이 생각의 싹을 틔워줬지만, 가장 깊이 남는 건 역시 이태 동안 머물렀던 인도네시아에서의 경험이었어요.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일시적이지만 그 안에 머물러 살았으니까요. 문화충격도 심했고, 한국을 벗어나 있으면서 우리 사회를 좀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어요. 상대적으로 가난한 나라에서 살면서, 삶을 지속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소유와 단순히 집단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한 소유의 차이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고요. 산문집에서, 그때 떠나길 잘했다, 라고 썼는데요, 고마운 경험이었어요.

 

여행할 때 대개 현지인 민박집을 선호하는데요, 그러면 그들이 사는 모습을 조금 가까이 볼 수 있어요. 두브로브니크의 민박집 딸이 저녁내 현관의 거울에서 매무새를 단장하고 나갔는데, 새벽에 살금살금 부엌으로 들어오는 거예요. 전 그때 식탁에서 기록하고 있었는데. 이 아가씨, “우리 엄마한테, 내가 이 시간에 들어왔다는 거 비밀로 해줄래?” 하는데 어찌나 귀엽던지. 말이 다르고 언어가 달라도 공통적인 어떤 모습에 공감하고, 다른 점에 눈뜨는 것, 여행하며 누리는 즐거움의 하나겠죠.

 

반디 | 기억이 소중한 것은 기억 속의 그 대상이 소중하기 때문일 텐데요. 그들을 기억하는 또 하나의 방식으로 글쓰기 외에도 사진 찍기를 즐기시는 것 같습니다. 표지에 쓰인 사진과 책에서 간간이 볼 수 있는 서너 장의 사진에 얽힌 사연이 궁금합니다.

 

이혜경 | 사진은 그 순간이 아니면 스러지는 어떤 느낌을 오래 되새길 수 있게 해주고 한편으로는 묘사하는 데 도움을 주죠. 눈으로 보고 지나는 것엔 한계가 있으니까요.

 

 

표지 사진은 초등학교 6학년때로 기억하는데 성묘하러 가거나 성묘를 마치고 오는 길이에요. 오빠 중의 하나가 내 뒤에서 오다가 셔터를 눌렀나 봐요. 사진 뒷면에 다른 사람의 필체로 ‘추석날’과 ‘헬리콥터’라고 쓰인 걸 보니, 그날 들판에 헬리콥터가 지나간 모양이에요.

 

각 장의 앞에 실린 나머지 사진들은 여행중에 찍은 것이에요. 본문에 나온 디엥 고원의 이른 아침 산책길에 만난 그곳 주민들의 뒷모습. 열대지만 고산지대라 때로 서리 앉은 걸 볼 수 있는데, 얇은 사롱으로 한기를 가린 여인 둘이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가는 뒷모습이 다정해서 찍었어요. 다른 하나는 크로아티아 스플릿의 민박집으로 가는 골목인데 정다운 느낌이라서······. 마지막은 북해도에 갔을 때 오타루 다리 위에서. 그 사진을 찍고 있는데 지나가던 커플이 자기들 사진을 찍어 달래요. 사진을 찍고 카메라를 돌려주었더니 제 사진도 찍어주겠다고요. 여행지의 풍경이나 주민 사진은 많아도 정작 제 사진은 없는데, 그 덕분에 오타루 다리 위에서 찍은 사진을 갖게 되었어요.

 

 

반디 | “사람과 생은 내겐 여전히 경이롭다.”라고 쓰고 계십니다. 경이의 근원은 사랑, 즉 “저 사람의 아픔이 나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리라고 짐작해 봅니다. 《그냥 걷다가, 문득》과 같은 책이 그러한 사랑의 결과라고도 볼 수 있을까요?

 

이혜경 | 사람들이 다 다르다는 것, 그러면서도 어떤 면에선 공통점이 있다는 건 여전히 제게 신기한 일이에요. 개인의 본성이 환경과 만나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하는지, 거기엔 수많은 변수가 작용하잖아요. 그걸 바라보면서 그때그때 느꼈던 무엇들을 모아놓은 것이니, ‘사랑의 결과’라기 보다는 내 안에 있는 사랑이 말라죽지 않도록 물주고 가꾸는 과정에서 나온 어떤 것이 아닐까요. 교정을 보면서 저 스스로 위안을 받았던 게, 나를 채웠던 내가 많이 묽어졌다는 느낌, 그러니 다른 것들이 들어올 여지가 좀 많아졌으려니, 하는.

 

반디 | 한편, 작년 가을에는 《너 없는 그 자리》를 출간하셨습니다. 6년 만에 선보이는 소설집이었는데요. 평소 다작을 하지 않으시는 편입니다. 그래서 소설집을 세상에 내는 기분은 더 남다를 것 같습니다. 소감을 들려주신다면요?

 

이혜경 | 어느 인터뷰에선가 제가 그 시기를 ‘무도한 시절’을 건넌 느낌이라고 말하더군요. 말과 사실 사이의 거리가 아주 많이 벌어져 사회 전반적으로 단어의 오용이며 남용이 아주 심각한 데에서 오는 무력감 같은 거에 잡힌 발목을 제가 떨치지 못했어요. 한편으로는, 이전까지 써오던 방식에서 벗어나려 나름대로 이것저것 시도해 보기도 했고요. 소설집 원고를 정리하면서 다시 깨달은 건데, 다른 건 몰라도, 생각하고 느낀 바를 말하고 싶은 욕망만은 제 안에 끈질기게 남아 있더라고요. 저 스스로 ‘뒤끝 작렬’이라고 별명을 붙일 정도로. 그랬더니 글 쓰는 후배가 ‘그건 뒤끝 있는 게 아니라 뒷심이 있는 거’라고 위로해주더군요. 다 말하고 갈 순 없겠지만, 최소한 ‘못다 한 말’이 덜 남게 하고 싶어요. 그러니 쓸 수밖에요.

 

반디 | 소설을 쓰는 동안은 스스로 “약풀이 절실히 필요한 영혼”이었다는 말씀이 인상적입니다. 때론 소설 속 인물들이 작가님께 “약풀”이 되어 줄 것도 같은데요. 그런 면에서 어떤 삶에 공감하고, 어떤 인물을 소설 속으로 불러내시나요?

 

이혜경 | 제가 불러낸다기보다는 인물들이 저를 부르는 거 아닌가, 어쩌면 인물들과 제가 서로 감응하는 거 아닌가 싶어요. 제 소설 속 인물은 대개 길에서 마주치는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에요. 그 평범한 모습 속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품고 사는 걸까, 생각하면 아득해지죠. 가령, 며칠 전 오전 마을버스에서 들은 통화 내용 같은 것. 뒷자리의 여자가 통화하고 있더군요.

 

엄마, 이번 설에 아무개네는 못 들러. 설에도 일한대. ㅇㅇ아빠? 일하러 갔다가 땅이 얼었다나 그래서 그냥 돌아왔어. 술 마시고 속이 아프다고 난리 버거지를 치더니 자. 아니, 집에서 마신 게 아니고 마시고 왔다니까······.

 

그 통화에서 삶의 고단함이 뚝뚝 묻어나는 듯했어요. 일하러 갔다가 허탕치고 아침부터 술 마시고 돌아오는 남편의 마음에 어렸을 무늬, 쓰라린 속을 부여안고 쓰러져 잠든 남편을 보는 아내의 심정, 결혼한 딸 어쩌면 며느리일지도 모르는 그녀의 전화를 받는 할머니의 마음이 어떨까 싶지요. 명절날에도 일하느라 고향에 가지 못한다는 아무개의 마음은? 정말 일 때문에 못 가는 걸까, 아니면 말 못할 다른 사정으로 일 핑계를 댄 걸까. 궁금해지고요. 그렇게 스친 장면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으면 어느 순간 그게 우주선이 도킹하는 것처럼 다른 일화와 연결되고, 그렇게 서로 다리를 놓아가며 하나의 소설로 이어지지요.

 

반디 | 글을 쓰는 책상만큼이나 궁금한 것이 작가님의 서재인데요. 봄이 오는 즈음에 작가님께서 아껴 읽곤 하는 산문집이나 소설, 작가가 있다면 책을 “약풀” 삼아 살아가는 독자 분들에게 추천해주세요.

 

이혜경 | 살아가다가, 내가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누군가에게 묻고 싶을 때 자주 집어 드는 책은 영국 작가 존 버거 선생님의 글들이에요. 소설도 그렇고 산문도 그렇고. 나약하고 허물어지기 쉬운 인간들을 감싸는 따스한 시선, 존재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듯한 문장들을 읽다보면 누군가가 제 가슴을 가만히 다독거려주는 듯해요. 글쓰기의 본질에 대해서 돌아보고 싶을 땐 알베르 까뮈의 일기들을 읽고요. 글과 삶을 일치시키려 한 작가의 한 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요. 얼마 전, 저보다 몇 살 더 드신 독자 분을 만났는데, 그분이 요즘 젊은 작가들 작품은 못 읽었다며 추천해 달라고 하셔서 윤성희 씨 소설을 권해드렸어요. 감상이 배제된 긍정성? 읽고 나면 오래 닫아놓았던 문이며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시킨 듯한 느낌이에요. 최근엔 먼저 사신 분들의 기록을 읽으며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들을 되새기고 있고요.

 

 

반디 | 그동안 선보인 책을 역순으로 살펴보면, 최근에 출간된 《너 없는 그 자리》를 비롯하여 소설집 몇과 장편소설로는 유일하게 《길 위의 집》이 있는데요. 작가님의 단편들을 읽고 있자면 독자로서 장편도 만나고 싶은 욕심이 듭니다. 앞으로 집필 계획이 있으신지요?

 

이혜경 | 몇 해 전 문예지에 연재를 마친 장편*이 있어요. 그때 바로 손질해서 냈어야 했는데, 뭔가 객관적인 거리를 확보한다고 뜸들이다가 아직······ 이러다 밥 아닌 숯이 될까봐 조만간 손질을 마치려고요. 그리고 작년부터 연재하던 또 다른 장편*도 마치면 바로 손을 보려고요. 최근 좋은 장편들을 읽으면서, 나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으니, 이 마음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지켜봐야죠.

 

* 편집자 주 : 연재를 마친 장편은 <사금파리>로 계간 문예지 ‘문학과사회’에 게재되었고, 또 다른 장편은 <사소한 그늘>로 계간 문예지 ‘세계의문학’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반디 | 입춘을 막 지났습니다. 봄이라는 계절을 기다리거나 자신의 인생에 봄이 오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요. 그런 분들에게 《그냥 걷다가, 문득》을 권한다면 그때 함께 건네고 싶은 말 한 마디, 마지막으로 부탁드립니다.

 

이혜경 | 일본 작가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 속 한 구절인데요, “비교할 대상이 없으면 누구나 정상이다.”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 온전하고 그 자체로 선물인데, 남들과 비교하면서 불행이 시작되는 것 같아요.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에 힘입어 다른 존재도 있는 그대로 존중할 수 있기를. 그리고 그걸 방해하는 온갖 시선이며 말, 관습들에 대한 경계와 싸움을 게을리하지 말기를. 이건 제가 저 자신에게 늘 들려주는 말이기도 해요.

 

 

이혜경

 

소설가. 가만히 들어앉아 있기와 낯선 곳 쏘다니기를 두루 좋아한다. 오며 가며 보고 들은 이야기, 스치듯 잠깐 만난 사람들의 영상 가운데 더러 씨앗처럼 마음에 발을 내리는 무엇, 그걸 만지작거리다가 글로 풀어나가는 일이 여전히 신기해서 혼자 웃는다. 장편 《길 위의 집》과 소설집 《그 집 앞》, 《꽃그늘 아래》, 《틈새》, 《너 없는 그 자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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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만난 사람] 잃어버린 내 삶의 끝, 죽음을 찾아 -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저자 김형숙

 

편집·정리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죽음을 읽습니다. 스스로 죽거나 누군가에 의해 죽임을 당한 사람들에 관한 기사입니다. 양미간을 찌푸리고 혀를 끌끌 차며 원인과 결과 사이에 놓인 간략한 사실 관계를 확인합니다. 그러고는, 그만입니다. 사건?사고가 된 죽음이 잠시나마 내 삶을 스쳐가는 방식입니다. 사람도 삶도 이야기도 없는 타인의 죽음입니다. 죽음을 봅니다. 재빠르고 위생적으로 죽음이 처리되는 장례식장에서입니다. 정확히는 죽음 이후의 광경이고, 구체적으로는 낯설고 불편한 타인의 슬픔입니다. 이렇듯 죽음은, 아직 내 것이 아닌 채로 타인의 것으로만 머물러 있습니다.

 

그렇게 삶의 끝에 가서야 나는, 나와 무관해진 내 죽음을, 내가 잃어버린 내 죽음을, 비로소, 눈치채게 되겠지요.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이 찬찬히 말해주듯이 말이죠.

 

저녁

 

 

새의 그림자가 길게 끌고 가는 것은 누구일까

 

땅거미가 야금야금 갉아 먹는 것은 무엇일까

 

붉은 옷의 승려가 사는 서녘에서는

 

마지막 시체가 연기를 피워 올리고

 

떠난다거나 다시 돌아온다는 것도

 

이미 먼 세상의 일이다

 

서른세 번, 망자를 거두는 종이 울리면

 

어렵사리 네가 붙잡은 나마저 사라진다

 

- 송기원, 《저녁》, 실천문학사, 2010

 

반디 |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먼저,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 출간을 축하 드립니다. 이 책에는 오래도록 중환자실 간호사로 일하셨던 그간의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데요. 그런 만큼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에 대한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어떠신가요?

 

김형숙 | 개인적으로는 책을 쓰는 과정이 간호사 생활 전반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간에 산발적으로 오고 가던 여러 가지 문제의식을 확인하고 통합할 수 있었고, 간호사로 일하는 동안 쌓인 상처를 스스로 치유 받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어린 아이를 오래 업어주는 꿈, 누군가(아마도 남매의 아버님이었을 듯)의 무덤 앞에 고개 숙이고 서있던 꿈을 꾸게 했던, 오랜 죄의식에서도 좀 자유로워진 것 같고요.

 

그러나 출판 사실은 여전히 부끄럽고 부담스럽습니다. 저 자신을 너무 적나라하게 내보인 것 같고, 또 짧은 소견으로 내가 이런 글을 써도 괜찮을까,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는 글은 아닐까 하는 염려를 떨쳐버리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출판 후에도 사람들이 몰랐으면, 되도록 책이 알려지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가까운 이들 몇 분 외에는 출판사실을 알리지도 못했죠.

 

다행히 책을 읽은 분들이 각자 가까운 이들을 보내면서 느낀 점을 말씀해주시며 필요한 책이었다고 격려해주셔서 조금씩 용기를 내고 있습니다.

 

반디 | 책을 읽으며, 때마다 저자 님의 어린 시절과 그 기억을 마주하는 듯했습니다. ‘병원에서 맞이하는 현대의 죽음’과 대비되는 ‘자연스러웠던 죽음’의 추억에서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환자와 보호자, 의료진을 이해하려는 저자 님의 마음 씀씀이에서 특히 그러했고요. “이제 삶의 내용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 마을의 그것과 더 가까워지기를 기다리며 삶을 돌볼 작정”이라고도 말씀하셨는데요. 저자 님께 어린 시절은 어떤 의미로 남겨져 있나요?

 

김형숙 | 저는 중학교 진학을 위해 읍내로 나가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어린 시절 그 고향마을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생각을 분명히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듯이 제겐 그 시절이 단순히 기억이 아니라 늘 현재와의 연장선 상에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부모님께서 그곳에 살고 계신 덕택인지, 친구나 선후배, 사제 관계 외에 도시에서 맺기 힘든 일상의 관계들은 여전히 그곳을 통해 보고 있었던 것 같고요. 그곳을 떠난 후 제 삶은 늘 도시와 그곳,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고 있었다는 기분이 듭니다. 일상에서 수시로, 걷거나 하늘을 볼 때, 현재의 삶이 무거워 도망가고 싶을 때, 현재의 문제를 확인하고 싶을 때,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거나 다음을 준비할 때 등 저는 습관처럼 그곳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때로 너무 과거에 고착되어 있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들 때도 있죠.^^

 

어쨌든 제게 그곳은 출발점이면서 현재와 미래를 관통하는 어떤 기준선 같기도 합니다. 

반디 | 어린 시절 경험하신 ‘자연스러웠던 죽음’이 있었기에,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의 실상을 더욱 잘 보실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그 둘 사이에는 과거와 현재, 시골과 도시라는 시?공간의 차이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현대의 죽음이 이전의 그것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과거 고향 마을의 어떤 점을 이어가야 할까요?

 

김형숙 | 굉장히 중요한 질문 같아서 분명히 답하기는 부담스럽습니다만, 저는 ‘죽음에 직면하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든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자연스런 삶의 과정이라는 것. 과거 고향 마을에서 죽음은 누구에게나 일상의 곳곳에서, 수시로 부딪힐 수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느닷없이 들이닥치든 혹은 서서히 예고하고 다가오든 사람들은 피할 방도가 없었기에 늘 죽음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어른들뿐 아니라 아이들까지, 사람들은 수시로 죽음을 생각하고 준비할 기회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현대 의학의 발달로 사람들은 그 기회를 잃어버린 게 아닌가 싶습니다. 요즘 우리는 죽음을 피하거나 유예할 가능성, 혹은 죽음이 병원으로 격리되어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유로 자꾸 임박한 죽음조차 외면하거나 부정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병원 안에서는 정확히 언제 사망할 지 모른다는 이유로 또 자명한 죽음을 입에 올리기를 꺼리고요. 고향에서 저절로 가능했던 ‘죽음에 직면하기’가 이제는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 가능한 일이 되었고, 그래서 ‘죽음준비교육’, ‘웰 다잉 운동’ 같은 노력들이 생기지 않았을까 합니다.

 

최근 들어 나이 들고 약해지는 것을 반드시 질병이나 문제로 봐야 하나? ‘정상’적인 삶의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팔순이신 저희 아버지께선 최근까지 과중한 농사를 감당하시느라 발목관절이 심하게 상하셨는데요. 통증도 심하고 잘 걷지도 못하셨죠. 수술 여부를 결정해야 할 때 저는 두 가지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통증과 예전같이 농사일을 감당하실 정도로 잘 걸으시는 것. 통증은 해결해야 할 문제지만, 더 이상 예전처럼 일을 하실 수 없다는 것은 정상적인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죽음에 있어서도, 피해갈 방법을 찾을 때와 불가피하게 받아들이고 직면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죽음에 대한 제 주장은 모두 후자를 전제로 하는 것이고요.

 

반디 | 현대인에게 죽음은 기피와 터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죽음에 대한 경험은 병원, 장례식장 등, 특화된 공간에 한정되어 있고요. 말하자면 죽음이 일상적 공간으로부터 내쫓긴 것인데요. 병원에서 오래도록 근무하시면서 이에 대한 고민이 없지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김형숙 | 저는 여전히 가능하다면 일상적인 삶의 공간 안에서 죽음을 맞는 것이 가장 자연스런 마지막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생활하던 가정에서 죽음을 맞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여러 가지 제도적, 인적 지원방안이 마련되기를 희망하고 있고요. 호스피스 케어도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시점에 이런 희망이 너무 꿈 같이 느껴지는 게 사실이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생각으로 가정 호스피스 활성화에도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죽음을 맞는 병원에서조차 죽음이 기피와 터부의 대상이 되어 서둘러 처리할 문제로 다루어지는 데 있다고 봅니다. 중환자실에서 환자가 사망하거나 임종이 예상되는 경우 간호사로서 가장 난감한 점은 바로 옆 병상 환자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 사망한 환자의 가족들이 소리 내어 울지 못하도록 제지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반병동에서 다인실 환자 중 사망이 임박하여 ‘처치실’이라고 하는 곳으로 이동해 사망을 기다리는 경우를 보면 그야말로 죽음이 ‘은폐되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병원에서 죽음이 기정사실이 된 환자조차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돕지 못하고, 환자의 죽음을 확인하는 절차로서 가족의 마지막 면회가 이루어지는 현실입니다. 중환자실이나 암병동뿐 아니라 일반병동에도 큰 비용 부담 없이 임종환자와 가족들이 마지막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격리방을 준비하는 등 병원 안에서 죽음을 대하는 태도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반디 | ‘연명치료 중단’과 ‘존엄사’ 논쟁은 오래 전부터 있어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간혹 병원과 보호자 사이에 벌어지는 법정투쟁이 기사화되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일반으로까지 확대되지 않고 있습니다. 저자 님께서는 그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김형숙 | 잘 모르겠지만, 죽음에 대한 우리사회의 태도와 맥락을 같이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좀 불순한 생각이지만) 강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논의를 전개시킬 만한 당사자들은 모두 사망했고, 살아있는 이들에게 죽음은 자신의 문제로 여겨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각자 살아내기도 벅찬데 ‘먼 훗날에나 잠깐 거쳐갈 삶의 마지막’에 대해 신경 쓸 여유가 없었던 것은 아닐까요?

 

또 우리사회가 워낙 급격히 변하는 중이라 몇몇 사건을 계기로 불거진 문제들이 학계에서 논쟁이 되는 것과 일반인들의 경험으로 체화되는 데 시간 차가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사실 연명치료중단과 존엄사 논쟁을 불러일으킬 만큼 첨단의학의 발달이 가져온 문제들이 우리사회에 불거지기 시작한 것도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체감하기로는 그래도 최근 들어 전문가집단을 중심으로 이러한 문제의식을 확산하기 위한 움직임이 꽤 활발해지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반디 |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은 경험에서 비롯된 사례를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독자가 직접 경험해보기 전까진 알기 어려웠던 ‘중환자가 된다는 것’과 ‘중환자실에서 죽는다는 것’의 구체적인 실상을 보다 가깝게 느낄 수 있었고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쓰시는 동안 어려운 점도 있으셨을 것 같은데요. 책을 쓰면서 특히 염려되거나 마음이 쓰이셨던 부분이 있었나요?

 

김형숙 | 책을 쓰면서 뿐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마음 쓰이는 부분이 있습니다. 많이 일반화시켰다고는 하지만 구체적인 사례를 사용하고 있고, 대부분 가슴 아픈 경험을 사례를 쓰다 보니 (환자와 가족뿐 아니라 연관된 의료진들까지 포함하여) 당사자들이나 유사한 경험을 한 분들의 상처를 건드리면 어떡하나, 독자들에게 등장하는 상황이나 사람들에 대하여 엉뚱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면 어쩌나 하는 것. 또한 민감한 이슈들이 많은 의료현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보니 제 주제와 능력을 벗어나는 것까지 논의가 확대되는 것은 아닌지…… 등등

 

다행히 출판 후 만난 분들이 구체적인 사례에 집중하기보다는 전반적인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이를 확산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주셔서 안심하고 있습니다.

 

반디 | 자신의 죽음으로부터 주변화되어 있는 현대의 죽음과 관련하여, 그 문제의식과 고민을 이어가는 데 참고가 될만한 책이 있을까요?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처럼 일반인들도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으로요. 더불어 그 동안 읽으신 책 중, 책이 전하는 마음과 생각이 참 좋더라, 하는 책이 있다면 몇 권만 추천해주세요.

 

김형숙 | 먼저 제가 이 문제에 대한 전문가도 아니며, 일반인들에 비해 독서량이 많은 편도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두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참고로 이 주제와 관련하여 제가 재미있게 읽은 책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먼저, 간호사로서 대학과정에서 ‘퀴블러로스의 죽음의 5단계’에 대하여 들은 적이 있었고, 《인간의 죽음》(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분도출판사, 2000)을 읽은 것이 ‘죽음을 앞둔 이들의 심리상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에서는 대부분의 환자들이 자신에게 임박한 죽음을 알지 못하고 사망하였기에 책의 내용이 우리 현실의 구체적인 환자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지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내 삶의 마지막이 어떠했으면 좋겠다, 혹은 나는 어떤 자세로 죽음을 맞고 싶다는 생각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되었던 책으로는 너무나 유명해서 모두들 한번쯤 읽어보셨을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미치 앨봄 ·모리 슈워츠, 살림, 2010),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헬렌 니어링, 보리, 1997)

 

그리고 우리는 왜 이렇게 죽음을 터부시하나, 다른 사회에도 마찬가지였나 하는 의문으로 재미있게 읽은 책들은 《죽음 앞에 선 인간》(필립 아리에스, 동문선, 2006), 《춤추는 죽음》(진중권, 세종서적, 2005)이 있는데 사진과 그림이 많아 모두 두 권짜리인데도 쉽게 읽혔습니다.

 

 

고전 작품에선 죽음이 어떻게 그려졌나 했을 때 《이반일리치의 죽음》(톨스토이)을 다시 읽었고, 한 여성 철학자인 시몬느 드 보부아르가 어머니의 마지막을 지켜보면서 쓴 《편안한 죽음》(함유선 역, 아침나라, 2001)*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현대적 의료환경에서 죽음을 맞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죽음과 함께 춤을》(베르트 케이제르, 마고북스, 2006)을 인상에 남습니다. 저자는 안락사가 합법화된 네덜란드의 한 요양원에서 일하는 의사랍니다. 의학, 죽음, 인간에 대해 그렇게 건조한 시선으로, 유머러스하게 관조할 수 있는 눈이 부러웠습니다.

 

* 편집자 주 :《편안한 죽음》는 현재 《죽음의 춤》(성유보 역, 2010)으로도 번역되어 한빛출판사에서 출간되었습니다.

 

반디 | 최근 서점에선 셸리 케이컨의 《죽음이란 무엇인가》이란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죽음의 존재론’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심이 사전의료지시서나 호스피스 등, 실제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어떤 연결고리가 필요할까요?

 

김형숙 | 의료인, 일반인들, 학생들을 위한 죽음준비교육이 필요하다는 등의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조금 막연하게 들릴 수도 있는 이야기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제 생각에는 죽음에 관한 관심이 일반적인 죽음, ‘다른 누군가의 죽음’이나 ‘막연히 언젠가 닥칠 죽음’이 아니라 ‘나의 죽음’에 초점을 맞추어야만 실제적인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것은 무엇이고, 내가 가족들과 더불어 미리 준비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가 분명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사회적, 제도적인 준비에 대한 논의와 준비가 함께 이루어져야만 사전의료지시서나 호스피스 케어와 같은 개인적 선택이 왜곡되지 않고 인간다운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충분한 준비가 없는 상태에서는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전의료지시서가 병상이 부족한 급성기병원과 의료비를 부담하는 가족의 이해관계에 맞물려 대책 없는 치료중단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없지 않습니다.

 

저의 경우, 내가 살던 곳에서 마지막까지, 최대한 (도움을 받아가며) 독립적으로 일상을 유지하다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소망에 비추어 보자, 의료인으로 20년 가까이 살면서도 막연하던 의료시스템의 문제가 보이기도 했습니다. 말기상태에서 집에서 의료적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일상(정상)의 범위를 확장시켜 주고, 마지막까지 나를 일상의 공간에서 돌봐주는 의료나 제도는 없는가? ‘나의 죽음’, ’나의 죽음준비’에 대해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이런 사회적 준비, 사전의료지시서나 호스피스 등 실질적인 문제가 논의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디 | 어린 시절 ‘할머니 같은 이야기꾼’, ‘글을 쓰는 사람’에 대한 꿈을 키우셨다고 했는데요. 그래서인지 이 책은 독자가 친근한 누군가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처럼 문장을 따라 유연하게 흐르도록 인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자꾸만 듣고 싶어지고요. 혹시 아직 풀어내지 않은 이야기를 또 다른 책에서 들려주실 계획은 없으신가요?

 

김형숙 | 지금까지는 특별히 생각해둔 다른 출판 계획이 없습니다.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도 계획하여 쓴 글이라기보다는 좀 급작스런 결정이었습니다. 제가 뒤늦은 공부를 시작한 학생인 만큼 우선은 공부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혹시 마음 속에 차오르는 말들이 있으면 글을 쓰는 건 그때 생각해 보겠습니다.

 

반디 | 마지막으로 반디앤루니스 독자 여러분께 한 말씀 부탁 드립니다.

 

김형숙 | 책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진한 부분은 논의를 통하여 함께 채워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인간다운 마지막, 준비된 죽음을 맞는 데 장애가 되는 것들이 너무나 많고, 특히 병원에서의 죽음에는 의료기관, 혹은 의료인들이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보니 그들의 전문적인 의견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의 경험상 ‘나의 죽음’에 대하여 전문가들이 말할 수 있는 부분도 그리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이 책이 의학적 판단이나 전문가의 의견 이전에 내가 어떻게 죽음을 맞을 것인지, 그를 위해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할 수 있는지 활발하게 의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김형숙

 

1966년 경남 거창의 가난한 산골에서 태어나 소를 몰고 산을 누비며 자랐다. 1986년 학비가 낮고 취업이 잘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떨결에 서울대 간호학과에 진학했다. 졸업 후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 취직하여 중환자실 간호사로 일하면서 의외로 자신에게 잘 맞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연명치료나 장기이식 등의 문제를 둘러싸고 발생하는 윤리적 딜레마를 경험했고, 답을 찾아 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에 진학했다. 거기에서 생명윤리학을 공부하고 「의료상황에서 가족중심 의사결정의 문제점 고찰」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썼다. 신경외과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다 보면 의식이 저하된 뇌·척추질환자들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하여 그들의 팔다리에 통증을 가하는 일을 종종 하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환자에게 통증을 주는 일이 너무 괴로워 간호사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결국 이직을 결심하고 19년 만에 병원을 떠났다.

 

지금은 간호사로 일하면서 겪은 일들을 돌아보고 정리할 겸 지방 도시로 이주해 간호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이제 삶의 내용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 마을의 그것과 더 가까워지기를 기다리며 삶을 돌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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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만난 사람] 바르트적 슬픔의 철학으로 안내하다 - 《애도 일기》의 번역자 김진영

 

편집·정리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글쓰기에 비해 나는 너무 크며, 또 너무 연약하다.”

 

《사랑의 단상》을 통해 롤랑 바르트는 말합니다. 《애도 일기》를 읽고서 이 말을 다시 보니 너무 큰 나는 ‘슬픈 나’, 너무 연약한 나는 ‘그것을 감당해야 하는 나’ 같기도 한데요. 《애도 일기》가 그러한 슬픔의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롤랑 바르트라곤 겨우 두 권의 책으로 접했을 뿐인 저의 오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모든 저작을 통틀어 ‘글쓰기’가 그의 철학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녔음은 분명합니다. 슬슬 어렵게 느껴지시나요? 이쯤 되면 우리에게는 안내자가 필요하겠죠. 《애도 일기》의 번역자 김진영 선생님과 함께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자신을 ‘글 쓰는 사람’으로 명명한 선생님을 통해 또 다른 ‘글 쓰는 사람’이었던 롤랑 바르트를 만나 보아요.

 

반디 | 최근 롤랑 바르트(이하 바르트)의 《애도 일기》를 번역 출간하셨습니다. 이 책으로 처음 바르트를 접하는 독자 분들도 있을 겁니다. 선생님께서도 바르트 철학과의 첫 만남의 경험을 가지고 계실 텐데요. 그 기억과 더불어 바르트라는 철학자에 대해 소개해주신다면요?

 

김진영 | 바르트와의 만남은 제게 세 갈래 길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하나는 당연히 지적인 회로를 통해서입니다. 독일에서 저는 아도르노와 벤야민의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프랑스 후기 구조주의와도 지적인 인연을 맺었는데 그 인연 안에 바르트도 들어 있었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아도르노와 바르트 사이에서 읽혀질 수 있는 비판적 지성의 친화성에 대해서 특별한 관심이 있었습니다. 물론 더 많은 점에서 (방법론이나 이론적 태도) 차이가 있었지만요.  또 하나의 길은 저 자신의 취향입니다. 특히 바르트의 단장적인 글쓰기 방식은, 문학적 글쓰기에 대한 제 자신의 오래 된 관심과 일치하는 것이어서 친족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 자신의 사적인 상처가 있습니다. 저는 가족 중에서도 아버지와 특별한 사랑의 관계가 있었는데 (물론 누구나 그렇겠지만요), 유학 중에 아버지지가 돌아 가셨습니다. 공항으로 가기 전에 저는 한 권을 책을 샀는데 그것이 《밝은 방》이었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그 책을 읽으며 저는 깊은 위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 누군가에게 책을 선물할 때면 늘 《밝은 방》을 선물하는 버릇이 한 동안 생기기도 했었죠.

 

 

바르트의 철학은 한마디로 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의 사유가 전방위적이고 (기호이론, 문화 비평, 문학 비평, 회화, 사진, 음악, 연극 등에 대한 예술론, 역사 비평 등) 또 항상 지적인 변화를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바르트는 자신의 지적인 이력을 문화비평의 시기, 기호시스템 구축의 시기, 표현적 시기로 구분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또 하나의 시기가 있는데, 그건 《카메라 루시다》*와 《애도 일기》가 씌어졌던 말년의 시기입니다. 저는 나름대로 이 시기가 바르트적 슬픔의 철학과 ‘말년의 양식’이 자리 잡는 시기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 편집자 주 : 《카메라 루시다》는 현재 국내에서 《밝은 방》으로 번역되어 동문선 출판사를 통해 출간되었습니다. 《카메라 루시다》와 《밝은 방》이 동일한 저작임을 독자 분들께 밝혀 둡니다.


반디 | 널리 알려진 《사랑의 단상》 외에도 바르트는 다양한 저작물을 남긴 사람입니다. 그 중에서도 《애도 일기》를 택하여 국내 독자 분들에게 선보인 계기가 있을 것 같습니다. 번역을 하기까지의 과정을 듣고 싶습니다.

 

김진영 | 번역은 우연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인문학 강의를 개설하는 ‘아트앤스터디’에서 《밝은 방》 강의를 했었는데, 그때 강의 준비를 하다가 《애도 일기》가 출간되어 있음을 알았고, 독일어본으로 구입해서 읽었습니다. 그리고 《밝은 방》도 이미 그렇지만, 《애도일기》는 이전의 바르트를 전혀 다른 얼굴로, 즉 ‘말년의 양식’이라는 형식적 내용적 새로움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주었습니다. 저는 이 텍스트을 면밀하게 독해하는 강의 욕망이 생겼고, 그를 통해서 바르트 이해의 영역을 넓히는데 분명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마침 《애도 일기》를 출간한 출판사의 편집자가 제 강의록을 출간하기 위해서 녹취를 하는 중이었는데, 저는 가능하다면 《애도일기》를 번역하고 싶다는 제안을 했고, 꽤 어려운 협상을 거쳐서 저작권을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불어본을 참조하면서 독일어본으로 번역을 했는데, 반드시 중역이라는 이유만은 아닌 다른 문제들로 출간이 난항을 겪어야 했습니다. 어쨌든 문제들이 해소되어 출간이 성사될 수 있어서 기쁩니다.     

 

반디 | 어머니의 사망 이후 바르트가 거의 날마다 기록한 메모를 엮은 책입니다. 그 제목이 《애도 일기》이고요. ‘애도’와 ‘일기’는 이 책을 이루는 내용과 형식이랄 수 있겠는데요. 선생님은 ‘애도’와 ‘일기’가 바르트에게 각각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김진영 | 상당히 어려운 질문이네요. 일단 ‘애도일기’는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으로 잃어버린 슬픔을 날마다 기록한 사적인 글이라는 점에서 누구나 그런 경우 쓸 수 있고, 쓰게 되는 기록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르트에게는, 아주 세밀하게 응시하면, 말씀하신대로 ‘애도’와 ‘일기’가 바르트만의 내밀한 관계성을 지닙니다. 우선 ‘애도’는 바르트에게 이 전문용어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프로이드 (《애도와 멜랑콜리》)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닙니다. 프로이드의 애도가 다른 사랑의 대상으로 대체될 수 있는 슬픔이라면, 바르트의 애도는, 그 자신이 말하듯, ‘대체할 수 없는 슬픔’, 즉 죽은 사랑하는 사람을 결코 떠날 수 없으므로 마지막까지 해소될 수 없는 슬픔입니다. 바르트는 이 슬픔을 ‘일기’라는 형식 안에 담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 오래 고민을 했고, 그 불가능성에 대해서 강연을 한 바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바르트는 대체할 수 없는 애도는 결코 일기로 기록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죠. 때문에 이 텍스트를 ‘일기’라고 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애도 일기》의 기록들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일기’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기록들은 오히려 사진을 닮았습니다. 일기와 사진의 궁극적인 차이가 주체성의 문제, 즉 주체가 있고 없음이라면, 이 기록들은 주체적 글쓰기인 일기가 아니라 탈주체적인, 따라서 사진적 글쓰기의 결과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르트라면 아마도 이 기록들을 ‘애도 일기’라고 표제를 달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면 뭐라고 제목을 달았을까요? 글쎄요, 과연 출간을 했을까요? 아닐 것 같네요.    

 

반디 | 책에서 애도의 대상인 어머니를 ‘어머니’보다 ‘마망(maman)’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더 많은데요. ‘마망(maman)’은 불어로 어머니를 부르는 아이들의 말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원전에서도, 번역시에도 이렇듯 지칭 간에 차이를 둔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김진영 | 바르트는 슈만에 대한 에세이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슈만의 음악들 안에는 어머니를 욕망하고 그리워하는 어린 아이가 있다”라고. 바르트와 어머니의 관계는 말하자면 프루스트와 어머니와의 관계와 다르지 않습니다. 프루스트가 자신을 어머니를 욕망하는 유아적 주체라고 여겼듯이, 바르트 또한 자신을 늘 어머니를 ‘마망’이라고 부르는 어린 아이라고 생각했었을 겁니다. 물론 이런 유아적 주체성은 말 그대로 유아성이 아니라 또 하나의 주체, 바르트 식으로 말하자면 ‘사랑의 주체’, 나아가 ‘도덕의 주체’라는 성숙한 주체성의 가장 본질적인 성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망’이라는 어머니에 대한 애칭은 일종의 기의 없는 기표, 환유적 기표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다시 탈권력적 주체, 부유하는 주체의 기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군요. 바르트가 늘 자신의 주체성을 그렇게 이해했듯이.

 

반디 | 또한 ‘마망(maman)’을 비롯하여 부분적으로 이텔릭체로 표기되고 있는 구절 혹은 단어들도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어떤 의도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독자 분들이 어떤 관점으로 읽으면 될지 살짝 안내해주세요.

 

김진영 | ‘마망’이라는 단어가 앞서 말씀드린 이유들로 늘 특별한 의미로 강조되고 있는 것처럼, 이탤릭체로 강조되고 있는 단어나 문장들은 저마다 특별한 지시관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예컨대 바르트가 “결국 나는 슬픔이라는 구멍으로 굴러 떨어진다”라는 문장에서 ‘구멍’을 강조했을 때, 그 독해는 아마도 이중적으로 읽혀져야 할 겁니다. 말하자면 이 경우, ‘구멍’은 추락의 공간이지만 동시에 열림의 공간이고, 그 이중성을 통해서 슬픔의 이중성, 즉 극복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오로지 그 안에서만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애착이 살아있는, 그래서 역설적으로 껴안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슬픔의 변증법적 관계가 읽혀져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반디 | 《애도 일기》라는 글쓰기도 바르트에게 일종의 (자기 슬픔의) 번역이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그것을 번역한 선생님께서는 “여전히 번역이 안 된 채로 마음 안에 남아 있는 단어”(268쪽)가 ‘슬픔’이라고 그 소회를 밝혀주셨습니다. 조금 더 부연해주신다면요?
 
김진영 | 말씀드렸듯이 바르트의 슬픔은 ‘대체할 수 없는 슬픔’입니다. 말하자면 시니피에가 없는 시니피앙이죠. 도착할 곳이 없기 때문에 그 슬픔은 그 어떤 고정적인 의미로 규정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의미가 될 수 없는 그런 슬픔은 욕망이 그렇듯이 수 없이 많은 의미들로 전개되고 확장될 수 있을 뿐이죠. 사실상 《애도 일기》에서 ‘슬픔’을 둘러싸고 포진하는 단어들은 매우 다양합니다. 고통과 절망, 근심걱정과 외로움, 사랑과 자유, 연민과 도덕 등등이 그것들예요. 하지만 그 모든 의미항들이 마지막으로 집결하는 곳에는 ‘새로운 인생 (Vita Nova)'라는 궁극적 사건이 있습니다. 애도의 슬픔이 새로운 생으로 전복되는 슬픔의 사건, 사랑의 사건이 그것이죠. 이에 대해서는 제가 책의 뒤에 붙인 <바르트의 슬픔>이라는 작은 에세이에서 상세히 논했습니다. 읽어보시면 참고가 되실 거예요.    

 

반디 | 평소 소설 읽기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애도’를 주제로 이 책과 더불어 읽으면 좋은 소설을 몇 추천해주세요. 간단한 소개도 부탁드립니다.

 

 

김진영 | 글쎄요. 무엇보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특별히 제목을 달아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소돔과 고모라》 안에 포함시킨 <마음의 간헐>이 대표적인 애도의 텍스트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프루스트가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슬픔의 무의지적 기억이라는 특별한 애도의 방식으로 다시 만나는 이 텍스트는 여러 가지 점에서 바르트의 기억작업과 일치하고 있습니다. 어떤 점에서는 바르트의 애도작업이 다름 아닌 프루스트의 텍스트에 대한 팔림프세스트적 글쓰기라고 볼 수도 있을테고요. 그 밖에 애도를 주제로 하는 소설들은 당장 생각나는 게 없군요.

 

반디 | 번역 외에도 인문학자로서 인문학 아카데미 등을 통해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롤랑 바르트, 벤야민, 아도르노 등과 관련한 철학 강좌도 진행하셨는데요. 그러한 활동이 선생님 개인의 연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합니다.

 

김진영 | 인문학자인 저로서는 자신이 쌓아 온 지적 교양들을 토대 삼아 이런 저런 텍스트 혹은 테마에 대하여 강의를 진행한다는 건 당연한 일이겠죠. 그런데 사실 저는 일정 기간 강의 활동을 하고난 뒤에 심각한 고민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건 일종의 매너리즘적 권태였는데, 그러한 위기 의식 속에서 나름 곰곰이 ‘강의란 나에게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맞서야만 했었습니다. 그 결론으로 얻어낸 것이 ‘강의는 콘서트다’라는 나름대로의 강의관입니다. 저는 강의 준비를 성실히 하지만 막상 강의에 들어가면 준비된 내용들을 많이 잊어버립니다. 말하자면 강의 중에 새로운 관심영역들이 열리고 새로운 주제들이 연결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건 강의 중에 예기치 않게 만나게 되는 우발적 계기들인데, 저는 그러한 우발성들이 강의 주제와 접목되어 강의 내용을 심화 시키고 확장시키기를 바랍니다. 말하자면 저는 제 강의가 단순히 객관적 지식의 매개나 전달이 아니라 그와 더불어 제 자신조차도 짐작치 못했던 자신의 부분들이 표현될 수 있는, 그러니까 객관성과 주관성이 별자리처럼 연결되는 그런 강의를 하려고 합니다. 당연히 그런 강의의 경험들이 새로운 지적 관심들을 발견케 하고 더불어 새로운 연구에 대한 열정과 만나는 계기가 되는 것이기도 하고요.      

 

반디 | 서점가에는 연일 다양한 인문학 서적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철학이 삶의 길잡이로 주목 받고 있지만, 한편 도구적으로 소비되는 측면도 적지 않은데요. 이런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시는지요?

 

김진영 | 언젠가부터 인문학 열풍이라는, 제가 보기에는, 일종의 유행현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유행은 사실 이중적 코드를 지니는 현상이죠. 그건 시장주의가 만들어 내는 일종의 지적 상품화 과정일 수 있고, 그 결과는 소비를 통해서 자의식을 충족시키는 지적 소비주체일 겁니다. 하지만 유행 안에는 또 다른 코드, 즉 그 사회가 자기를 현 상태 그대로 유지 강화하기 위해서 무엇을 무력화 시키려고 하는가라는 숨은 함의를 읽어낼 수 있는 코드가 들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비판정신’이라고 일찍이 생각해 왔습니다. 철학을 포함해서 인문학은 제게 감각성과 합리성이라는 인간의 두 가능성을 무기로 하는 비판 정신과 다른 것이 아닌데, 한 사회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 역시 이 비판정신일 것입니다. 때문에 그 사회는 비판정신을 가장 첨예한 신경세포로 지니는 인문학 영토를 시장화 하고 유행화 하면서 중화 시키고 무력화 시키려고 하지요. 저는 오늘날 인문학 열풍의 유행이 이러한 문화정치 안에서 일어나는 비판정신의 중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비판정신을 무력화 시키는 그러한 인문학 유행의 핵심 코드는 소위 ‘긍정적 사고’라는 개념입니다. 둘러보면 저마다 다른 인문학의 영역에서 저마다 다른 이론과 담론들이 각축을 벌이고 있지만, 사실상 그 다양성들은 모두가 ‘긍정성’이라는 핵심코드로 수렴되고 있습니다. 긍정은 최종적으로 승인되어야 하는 것이지 처음부터 상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긍정은 모든 부정태들이 엄중한 비판 정신을 통해 바닥까지 해부된 다음에 비로소 발견되는 미지의 것이지, 미리 상정하거나 목적으로 삼아 담론 행위가 수행되는 그런 예정된 결과물은 아닙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시대의 인문학 정신이 가장 필요로 하는 건 긍정의 정신이 아니라 유보 없는 부정의 정신, 즉 비판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관점으로 보자면, 개인적으로는 오늘날의 인문학 현상이 반드시 고무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비판 정신 없는 인문학 유행의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 또한 심층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분명한 건, 그 이유가 소비층위만이 아니라, 그보다는 더 더욱, 생산층위에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문제는 매우 첨예하게 논구되어야 하는 문제이므로 이 자리에는 적절치 않은 것 같군요.     

 

반디 | 마지막 질문입니다. 앞으로도 여러 범위에서 선생님을 만나 뵐 수 있으면 좋겠는데요. 책 출간 및 관련 강좌 개강 등 새해 계획, 그리고 그 일들에 임하는 마음가짐을 듣고 싶습니다.

 

김진영 | 현재 몇몇 출판사와 출간 계약이 설정되어 있습니다. 주로 그동안 해왔던 강의록을 중심으로 하는 책들인데, 년 내에는 두어 권 소개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사실 저는 저 자신을 강의하는 사람보다는 글 쓰는 사람으로 더 많이 이해하고 있고, 그래서 제 자신의 글을 발표하고 싶은 욕심에 늘 붙들려 있습니다. 나름의 원고들도 있으니 올해에는 출판계획을 가져볼까 하는데, 글쎄요, 워낙 조심스럽네요. 새로운 강의 계획으로는 멜랑콜리 개념을 회화와 더불어 살펴보는 강의, 사드에 대한 강의, 아도르노의 《미학이론》 강의, 프루스트 완독 강의, 애도의 철학 강의 등등이 있습니다. 물론 수년째 진행해 오는 소설 읽기 강의는 계속되어야 할 것이고요. 그러고 보니 계획이 너무 많네요. 열심히 살아야겠죠. 마음가짐이라면 그런 자기 성실성 말고 다른 무엇이 더 있겠어요. 감사합니다. 

 

김진영

 

고려대학교 독문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았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과 그중에서도 아도르노와 벤야민의 철학과 미학을 전공으로 공부했으며, 그 교양의 바탕 위에서 롤랑 바르트를 비롯한 프랑스 후기 구조주의를 함께 공부했다. 특히 소설과 사진, 음악 등 여러 영역의 미적 현상들을 다양한 이론의 도움을 빌려 읽으면서 자본주의 문화와 삶이 갇혀 있는 신화성을 드러내고 해체하는 일에 오랜 지적 관심을 두었다. 보편적 비판정신의 부재가 이 시대의 모든 부당한 권력들을 횡행케 하는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믿고 있다.

 

홍익대, 서울예술대, 중앙대, 한양대 등에서 예술과 철학에 관한 강의를 해왔으며, (사)철학아카데미를 비롯한 여러 인문학 기관에서 철학과 미학을 주제로 하는 강의를 하고 있다. 지금은 (사)철학아카데미에서 상임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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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만난 사람] 삶을 위해 존재하는 도시를 꿈꾸며 - 《다시, 서울을 걷다》의 저자 권기봉

 

편집·정리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어린 시절부터 서울을 동경했습니다. 남쪽 소도시 출신의 꿈 많은 소녀에게 그곳은 하나의 상징 같은 곳이었죠. 꿈의 중심? 그 정도까지도 기대했을 겁니다. 대학 졸업 후 상경하여 꿈의 무대보다도 삶의 터전으로 서울을 받아들였을 때, 제 눈에는 다른 것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번화한 거리를 메운 인파나 번쩍거리는 야경 같은 것들이 아니라 너무 사소하고 때론 하찮아서 지나친 길과 그 위에 남아 있는 소수의 얼굴들을요. 비로소 궁금해졌습니다. 저것은 다 무얼까? 무엇이었을까?

 

《다시, 서울을 걷다》는 답합니다. “‘역사적인 장소’라는 것은 그냥 눈에 보이는 장소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기억의 창고’이며 ‘문화적인 전통과 가치의 저장소’다.”(309쪽)라고요. 서울은 지금 이에 마땅한 대우를 받고 있나요? 우리가 이 도시에 삶을 의탁하는 방식은 옳은가요? 이어서 답을 해주실 분은 이 책의 저자, 권기봉 선생님입니다.

 

 

 

반디 | 작가님께서 《다시, 서울을 걷다》는 4년 만에 선보이신 책입니다. 2008년에도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라는 책을 출간하셨는데요. 이 책은 그 후속편이라고 보아도 될까요? 처음 접한 독자 분들에게 두 책의 차이를 소개해주세요.

 

권기봉 | 2008년에 낸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가 주로 일제강점기 당시의 서울을 다루고 있다면, 이번 《다시, 서울을 걷다》는 해방 뒤의 서울 그리고 한국을 다루고 있습니다. 《다시, 서울을 걷다》는 전작에 비해 우리의 일상생활과 더욱 밀접한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기에 "아! 이곳에 이런 의미가 숨어 있었구나!"하며 무릎을 탁 치게 될 겁니다. 지난 4년간 끊임없이 변화해온 서울의 면면을 확인하실 수 있고, 동시에 문화나 역사 등과 관련하여 오랜 시간이 흘러도 잘 바뀌지 않는 우리네 현실에 대해서도 따끔한 충격을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제목에 "다시"라는 말을 넣은 이유, 서울을 더욱 지긋하게 더욱 세밀하게 답사했기에 가능했습니다.

 

반디 | 고전연구회 연구원으로, 라디오 디제이로, 칼럼니스트로 여러 단위에서 활약하고 계신데요. 그 틈에 책까지 쓰셨습니다. 서문의 말미에도 많은 분들의 이름을 밝혀 주셨듯 혼자 힘으론 어려운 작업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 과정이 어땠는지 말씀해 주신다면요?

 

권기봉 | 서울 답사를 시작한 것은 14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대학에 입학한 뒤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서울을 직접 걸을 수 있고 이곳저곳을 다닐 수 있다는 것은 새로운 행복의 원천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답사가 14년여 동안 이어졌고 이렇게 책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학계와 관계의 여러 전문가들을 인터뷰하며 서울의 이면, 우리 근현대사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에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거리와 답사 현장에서 만난 수많은 시민들과의 인터뷰가 이 책의 뼈대를 잡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또한 서울에서는, 아니 한국에서는 등록문화재임에도 갑작스럽게 철거해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여러 경로를 통해 제보를 해주시는 시민들이 있었기에 이 책을 쓸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반디 | 이 책은 특히 서울이라는 도시의 역사성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근현대사적 맥락에서 다루고 계신데요. 서울의 지난 100년 역사를 이야기하는 키워드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작가님의 관점에서 세 가지 정도를 말씀해 주신다면요?

 

권기봉 | '자기 부정'과 '취약한 안목', 그리고 '성급함'이 아닐까 합니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세계에 비슷한 예를 찾기 힘들 정도로 오래되고 깊은 역사를 구가해 왔습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와 군사독재정권기를 거치며 우리네 마음속에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이 일상처럼 자리 잡고 말았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 나아가 대한제국의 흔적들을 지우기 위해 의도적으로 서울의 모습을 변화시켰고, 군사독재정권기에는 자신들의 부족한 정통성을 메우고자 서울을 캔버스로 활용했습니다. 사람들의 기억과 한국사의 기억이 녹아있는 현장들을 '성급하게' 밀어버린 뒤 고층건물들을 짓거나 곳곳에 고가도로 등을 설치해버린 겁니다. 그 결과, 사대문 안을 비롯한 서울 전역이 마치 오합지졸들을 모아놓은 듯 난삽한 모습으로 변모하고 만 듯합니다. 그렇게 급속한 변화 과정에서 그나마 미적 안목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속도'와 '효율'이 최고의 미덕으로 통용되던 시절이었기에 부수적인 것으로 취급되어 버렸지요.

 

반디 | 소공동 차이나타운, 서울시청, 피마길 등 사라졌거나 혹은 사라져가는 장소들에 대한 아쉬움을 자주 표현하고 계십니다. 작가님께서 그런 마음을 둔 장소가 책을 통해 밝힌 것보다 더 많을 것 같은데요. 못 다 풀어낸 이야기를 살짝 들려주세요.

 

권기봉 | 소공동 차이나타운 이야기를 하면서 화교와 같은 한국 내 소수자 문제에 대해 풀어냈습니다. 하지만 화교들만 있는 건 아니죠. 광진구 쪽에 가면 몽골인들이 많고 광희동 쪽에는 중앙아시아 사람들이 많이 살지만, 그네들에 대한 관심이나 관용 역시 아직은 보잘 것이 없습니다. 양육은 물론이거니와 학력 인정이나 취업 문제 등에 대해서도 차별 아닌 차별을 받고 있지요. 이 책에서는 일단 화교를 비롯해 중국 동포 등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앞으로는 또다른 이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써내려갈 생각입니다. 거주하는 외국인의 수로 치면 서울이 국제적으로 '열린 도시'가 맞지만, 그들과의 관계와 관련해서는 아직 '닫힌 도시'가 아닌가 합니다.

 

반디 | 서울에 대한 이해를 위해 많은 자료를 참고하셨을 텐데요. 이런 작업을 하는 데에 길잡이가 된 책이나 특별히 롤모델이 된 작가가 있었나요? 독자 분들에게 소개해 주세요.

 

 

권기봉 | 경제개발시대에 서울시청에서 일했던 손정목 선생의 《서울도시계획이야기》 시리즈는 서울의 과거와 오늘 그리고 미래를 가늠하는 데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접근하기 힘든 서울시 내부문서 등을 토대로 기술한 책이었기에 둘도 없는 도움이 되었죠. 손 선생의 단행본 외에 여러 논문들도 우리가 잊고 지낸 서울의 비밀을 찾아가는 데 더 없이 중요한 길잡이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반디 | 동대문운동장 문제, 구 서울시청 및 신청사 건축 문제, 도시 미관을 해치는 크고 작은 리모델링 공사 문제 등이 ‘디자인’이라는 미명 아래 불거졌습니다. ‘디자인’은 현재 서울의 도시 계획 키워드인데요. 이것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권기봉 | 단순히 눈에만 좋은 것은 좋은 디자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디자인은 겉모습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비전,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가고 그것을 사용하는 이들의 편의성을 전제로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컨텐츠가 없어' 개관일을 미루고 있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나 위압적이며 조악한 모습 때문에 빈축을 사고 있는 새 서울시청사는 반면교사로 삼을 만하지요. 소수의 머릿속에서 뚝뚝 결정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공공의 논의를 거쳐 틀을 잡고 결정해 가는 프로세스를 만들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최근 서울시가 발주하는 건축 사업에 대해 턴키방식*을 지양하겠다고 밝힌 건 괄목할만한 변화입니다. 턴키는 관의 입장에서는 편한 방식이지만 들어가는 비용이나 결과물의 질을 담보하기에는 문제가 많은 방식이거든요.

 

* 턴키방식: 완성품을 인도하는 방식. 플랜트 수출 또는 시설 건설공사 등에서 일괄 수주하는 계약 방법.

 

반디 | 책에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권력은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한다.”(126쪽)라는 구절이 인상 깊었습니다.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를 뽑는 날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차기 대통령에게 ‘흔적’을 남길 거라면 이런 ‘흔적’을 남겨 달라고 말하고 싶은 바가 있다면요?

 

권기봉 | 제발 '흔적을 남기지 않는' 대통령이 되어달라고 주문하고 싶습니다. 그 동안 권력자 개인의 정치적인 욕망을 위해 허투루 쓰인 세금이 얼마입니까. 그마저도 권력을 잃는 순간 퇴물 취급을 받곤 하지요. 서울광장이나 서울역 앞 등 교통 요지에 있다가 나중에 교통 소통에 방해가 된다며 남산에 '치워 버린' 무수한 동상들도 한 증거입니다. 크루즈선을 띄운다고 그 오랜 기간 많은 세금을 투입해 공사했지만 불편만 가중시켰을 뿐 결국 그 사업은 없던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무언가 으리으리한 기념물을 남기는 권력자가 아니라 공공의 공간, 나아가 서울이라는 도시가 권력자가 아닌 시민들의 삶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면 좋겠습니다.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흔적을 남기는…….

 

반디 | 《다시, 서울을 걷다》 출간 이후, 독자 분들과 함께 서울 답사도 다니셨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유사한 계획이 있으신지, 서울뿐만 아니라 다른 도시로 발을 넓혀 볼 계획(혹은 진행 중인 것)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권기봉 | 독자들을 모시고 3차례의 답사를 진행했고, 조만간 남영동 대공분실과 남산 등을 답사할 예정입니다. 한국의 과거 권력과 현재 권력이 교차하는 곳들입니다. 두 권의 책에서 다룬 곳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서울이라는 메트로폴리스는 정말 깊고 또 넓습니다. 다른 도시로 발을 넓히기 전에 더 세밀하게 서울을 걸어야 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현재 중건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숭례문이나 서울 한양도성 등에 대해서도 한 번 깊이 들여다볼 생각입니다. 과연 현재 '복원'이라 칭하는 이 사업들은 필요한 것인가, 과연 그러한 역사의 현장들이 '현재의 우리들'과 어떤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 고민의 결과를 1~2년 안에, 책으로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반디 | 요즘 서점에 가면 《다시, 서울을 걷다》처럼 특정 도시에 얽힌 이야기를 재조명하는 책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 가운데에서 도시 탐사에 임하는 나름의 마음가짐이 있다면요?

 

권기봉 | 도시를 다룬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단순히 소비의 공간이나 향유의 공간으로만 바라보는 풍조가 있는 듯합니다. 카페나 음식점, 걷기 좋은 길들을 소재로 하는 책들은 많지만, 정작 그 안에 숨어 있는 진정한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고 고민하는 책들은 많이 없는 듯해 아쉽습니다. 그곳에서 살아가거나 삶의 공간으로 이용하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고, 건물의 외양이나 그곳에서 파는 상품들에 대한 관심만이 과도한 듯합니다. 대상이 주로 서울에만 국한되어 있어 다른 도시들은 홀대받고 있는 듯한 상황도 우려스럽고요. 한국의 다사다난했던 역사를 오롯이 품고 있는 서울의 진면목을 독자들에게 알리고자, 그리고 그러한 고민들을 함께 고민하고자 더 열심히 걸을 생각입니다.


반디 | 산골소년으로 태어나셨다고 들었습니다. 서울 태생이 아닌 터라 스무 살에 처음 만난 서울은 “원더랜드”였다고 하셨는데요. 현재 작가님에게 서울은 어떤 의미를 갖는 곳인지 듣고 싶습니다. 마지막 질문으로요. 나에게 ‘서울’이란?

 

권기봉 | 두 책의 제목에 '서울'이라는 말이 나오기는 하지만, 이 책들은 결국 서울이라는 범위를 넘어 우리네의 과거와 현재를 짚고 미래를 가늠해 보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저는 단순히 서울을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현재 한국인의 삶의 근원은 무엇인지를 찾아보고자 했고, 그러한 결과를 독자 여러분과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러한 이야기들을 위해 저는 서울을 택해야 했습니다. 서울은 하나의 도시를 넘어 한국의 모든 것을 응축하고 있는 '역사와 문화의 만물상'과도 같은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권기봉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 시민기사를 거쳐, 2005년부터 2008년까지 SBS 기자로 현장을 누볐다. 지금은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연구원으로 고전연구회에 참여하고 있으며, 근현대 문화유산 답사를 다니고 있다. YTN 라디오 ‘권기봉의 걸으며 생각하며’와 MBC ‘도시탐험M’을 진행하고 있으며, <메트로>에 ‘권기봉의 도시산책’을 연재하고 있다. 나라 밖으로도 눈을 돌려 지금까지 50여 개국을 여행한 그는 최근에는 러시아 사할린과 베트남, 중국 동북지방과 일본 등 한국근현대사와 관련이 있는 나라로 여행을 이어가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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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만난 사람] 모두 나쁘고 모두 나쁘지 않다는 말 - 만화가 앙꼬

 

편집·정리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도서 관련 이미지 제공 | 창비
사진 제공 | 앙꼬·comicinema

 

“나쁜 친구랑 어울리지 마.”라는 말. 어린 시절에 한 번쯤 들어본 말일 겁니다. 하지만 알지 못했습니다. 누구부터 누구까지가 나쁜 건지, 나는 과연 나쁘지 않은 친구인지, 왜 나쁜 건 나쁜 것인지, 나쁘다는 건 무엇인지. 어른이 되고서야 알았습니다. 이 중에서 내가 알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요. 어떤 친구에 대해, 나에 대해 그저 “그땐 그랬지.”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요. “나쁜 일이었다.”라는 식의 확실한 판단은 유예될 것입니다. 대신 기억의 필름이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나빴을까, 우리는?”이라고 자문해 봅니다. 무수한 장면들을 응시하는 만화가 앙꼬처럼요.

 

총 다섯 작품을 선정한 ‘2012 오늘의 우리만화상’에서 《미생》과 더불어 좋은 상을 수상한 《나쁜 친구》는 이러한 질문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시종일관 진지하게 자기의 괴로운 과거와 마주하여 독자들까지 그 안으로 끌어들이는 흡입력과 더불어, 스타일 면에서도 강렬함과 섬세함이 공존하는 흑백대비로 자기만의 만화 화법을 만들어냈다.”라는 심사평을 받은 이 만화의 주인공, 앙꼬 작가를 만나 보았습니다.

 

반디 | 《나쁜 친구》는 《열아홉》과 《앙꼬의 그림일기》 이후 작가님의 세 번째 작업입니다. 특히 《나쁜 친구》로 우리만화상을 수상하기도 하셨습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요. 주변 반응이나 개인적인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앙꼬 | 오랜만에 발표한 만화였어요. 《열아홉》 이후 처음이니까 4~5년만이에요. 그동안은 살북이나 잡지들을 통해 조금씩 발표하고는 했는데 작업을 했다고 말하기 힘들었던 기간이었어요. 정말 오랜만에 낸 책이죠. 그동안 주변 사람들은 제가 뭘 하는 사람인지 잘 몰랐어요. 이번 출간을 하게 되고 또 수상까지 하게 되니 (아버지께서 동네에 “앙꼬 2012 오늘의 우리만화상 수상” 이라고 플랜카드를 걸어주셨습니다.) 동네사람들과 슈퍼아저씨와 두부공장 사람들이 아! 저 백수같던 여자는 만화가였구나! 아시더라고요. 책 출간의 기쁨과 같은 크기의 기쁨이었습니다.  

 

반디 | 《나쁜 친구》는 그간 단편이나 일기 형식의 작업을 통해 조금씩 보였던 자전적인 이야기를 처음으로 전면에 드러낸 장편입니다. 본인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픽션을 지어내는 것보다 쉽지 않은 일인데요. 이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었다면요?

 

앙꼬 |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언젠가는 꼭 해야 하는 거였어요. 기억력이 좋은 편인데 많은 상황들을 기억해놔요. 가끔은 누워서 뭔가를 기억하고 싶을 때 비디오 꺼내보듯이 기억을 뽑아 머릿속에 틀어놓고 혼자 감상을 합니다. 이런 습관들이 만화를 그리는 원동력이에요. 상상하는 것은 집중하는데 힘도 들고 매번 틀리기도하고 상상하고 있을 때 방해도 받게 되니 그것들을 만화로 옮겨놓으면 그릴 때는 힘들기도 하지만 그 시간을 참으면 계속해서 볼 수 있거든요. 인생의 전환점이기도 했던 그 시절을 만화로 만들어서 보고 싶었어요. 우선 제가 제일 보고 싶었던 게 만화를 그리게 된 계기였어요. 그리고 독자들도 함께 봐야 하니 이야기를 집어넣었죠. 내 아픈 과거를 끄집어내겠다 뭐 이런 결정보단 내 기억을 만화로 보고 싶다는 이유가 가장 컸는데 만화를 내고 보니 일이 좀 커졌다 느끼게 되었죠.

 
반디 | 이야기는 철저하게 진주의 시선을 따라 전개됩니다. 그래서 정애가 마지막으로 하려던 얘기나 어른이 된 이후의 삶은 추측이나 미지수로 남겨집니다. 이런 대목에서 작가님은 독자 분들이 무엇을 읽었으면 하셨나요?

 

앙꼬 | 솔직히 1년 반 동안의 작업이 끝나고 나니 작품에 대해서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졌습니다. 돌이켜서 ‘걔가 왜 그랬을까’나 ‘지금 뭘 하고 있을까’는 지금은 나도 독자의 입장에서 같이 생각해야 할 처지가 되었어요. 어떤 두 여자의 지나온 삶을 이야기했어요. 그 과정이 괴팍하고 조금은 남다르지만 그렇지 않았던 사람들의 삶도 사실은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해요. 얌전한 듯 아무 일 없는 듯이 살아 온 사람들의 속에도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더 오묘하거나 이상한 일들을 겪으며 살아왔다고요. 그런 것들이 우리의 10대이고 한 사람이 만들어지는 과정일 테니까요.

 

이 두 아이들은 유별나게 밖으로 드러났던 십대를 겪었죠. 하지만 사람은 모두 그렇게 성장해가고 또 어른이 되니, 정애와 진주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들도 우리 주변의 누군가로 아무렇지도 않게 한 사람이 되어서 살아가고 있겠죠. 우리가 자연스럽게 느끼며 사는 앞으로의 막막함을 이 두 아이를 통해 한 번 더 생각해봤으면 하는 게 지금 생각해 본 거지만, 사실 만화를 만들고 있을 때는 그런 걸 생각해 본 것 없이 두 여자의 삶의 토막을 온전히 그려낸 것이라 어떤 것을 읽고 느낄지는 사람들의 몫입니다. 정애도 평범한 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평범한 우리 주변 누군가가 되어 있겠죠.    

 

반디 | 나무 위에 걸려 있는 냄비를 보며 진주가 “바로 문만 열어도, 알 수 없는 것들 투성이다.”라는 서술하는 대목이 이야기의 도입입니다. 후반부에서 그 위에 올라 밥을 먹는(?) 고양이가 등장하는데요. 앞 서술과 관련하여 특별히 암시하신 바가 있다면요?

 

 

앙꼬 | 처음 만화 이야기를 만들 때 글로 시나리오를 짜다가 집어치우고 아무 이야기도 없는 상태에서 만화를 시작했습니다. 앞에 있는 ‘알 수 없는 일들’ 여섯 페이지는 사실 우선 그날 새벽에 느낀 것을 한 번 그려 보자 해서 만든 단편인데 그것으로 힘을 받아 ‘나쁜 친구’ 마지막까지 그리게 되었어요. 만화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내가 또 성장을 할 테고 그 때 이야기를 주욱 그려가다 보면  그 ‘알 수 없는 일들’ 에 대해 알 수 있을 지 않을까 하는 기대하는 마음으로 만화를 그려나갔는데 작업을 하며 1년이 지나고 그 풀려야 할 부분에 다다랐을 때에도 모르겠더라고요. 사실 그 부분은 모든 것을 알게 된 30년 삶의 통찰을 말하고 싶었거든요. 어른이 된 지금 그 시절을 돌아보며 나름대로 정의를 내리든지 뭔가를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 시절 우리가 왜 그래야 했을까. 왜 정애와 진주가 만나야 했고 그것들을 겪으며 살아가야 했을까! 그것을 설명할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그저 어설픈 추측만 할 수 있었어요. 그것이 고양이가 되었습니다.

 

반디 | 삶에 찾아드는 불행에 대해 이야기는 딱히 세상을 탓하지 않습니다. 흡연과 음주, 폭력, 가출, 그리고 정애로 대표할 수 있는 사춘기를 지나 어른이 된 진주도 오히려 그저 “댓가”였다는 표현을 쓰고 있고요. 이 부분에 대해서 부연해 주신다면요?

 

 

앙꼬 | 진주는 정애와 달리 그 폭력과 어둠으로 일그러진 삶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거기에 껴있는 자신에 대해 우월감과 재미를 느끼고 있었어요. 진주에겐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해진 삶이 아닌 선택 할 수 있는 삶이었죠. 그 우월감과 선택에 있어 진주는 댓가를 치러야한다고 생각했어요. 그 상황에 처해져 당연한 듯 살아가고 있는 친구들에 대해서, 선택할 수 있는 자신의 환경에 대해서도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어요. 진주에겐 모든 것이 자신의 선택이고 그것을 얻기 위한 어떤 희생이니 모든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죠.    

 

반디 |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아직도 그곳에 살고 있는” 정애를 본 진주는 고개를 푹 숙이고 맙니다. 정애 역시 진주를 보았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정애에게 진주라는 친구는 어떤 존재로 남아 있을까요?

 

 

앙꼬 | 위 질문처럼 진주에겐 한 때 자신의 선택으로 처해졌던 어떤 삶이, 추억처럼 여길 수 있는 자신 한 토막의 과거가, 여전히 어떤 이들에겐 피할 수 없는 굴레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진주를 끔찍하게 만들었습니다. 세월이 지나는 동안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던 그 시간이 누군가에겐 벗어지지 않는 삶이 라는 것이 진주에게는 과거의 죄책감을 다시 일으키며, 정애를 모른 척 하게 만들었어요. 정애가 진주를 봤는지 보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정애는 진주라는 아이를 기억하지 못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반디 | 곱씹을수록 만화의 제목이 아프게 다가옵니다. ‘나쁜 친구’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특정 인물을 가리키고 있나요? 아니면 모든 인물을 전제하고 있나요? 이 제목을 붙이신 작가님 나름의 의도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앙꼬 | 제목은 200개 정도 후보가 있었는데 처음에는 ‘알 수 없는 일들’로 시작해 여러 번을 바꿨어요. 책을 찍기 일주일 전에 ‘나쁜 친구’로 확정이 되었습니다. 처음 소제목 ‘알 수 없는 일들’은 이문열 단편집의 한 작품이었는데 내용도 연관도 아무 것도 없지만 새벽에 알 수 없는 일들을 느끼고 돌아오는 길에 책장에 꼽힌 그 책이 눈에 띄어서 그렇게 제목을 짓게 되었어요. 중간에 소제목들도 전부 만화의 제목이었다가 쫓겨나서 소제목이 되었어요. 그 만큼 만화의 제목을 짓는데 큰 의미를 두고 싶지 않았어요. ‘나쁜 친구’처럼 모조리 ‘나쁜 친구가 누군가!’를 찾는 일에 집중 되지 않기를 바랐거든요.

 

하지만 ‘나쁜 친구’가 제목이 되니 만화 중에 그 지점에서도 이야기가 될 수가 있더라고요. 거기 있는 모든 사람은 나쁜 사람이고 나쁜 친구예요. 또 누구도 나쁜 사람과 나쁜 친구가 아니죠. 그 부분은 한 인간으로 제가 살아가며 집중하는 지점이기도 해요. 별로 길지 않은 삶이지만 저는 나쁜 사람과 나쁜 친구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제 대부분의 지나온 날들은 사람들이 말하는 ‘나쁜’ 쪽에 껴있었어요. 무리 중에도 그런 냄새가 난다면 저는 발 빠르게 ‘나쁜’ 쪽으로 뛰어가는 본성을 갖고 있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달려가도 내가 그 속에 한 사람이 된다 해도 거기에는 흔히 말하는 나쁜 사람이 없어요. 오히려 더 인간적이고 실수가 많고 계산적이지 않은 사람들의 집단이라는 걸 많이 느꼈죠. 의도하진 않지만 제 지난 만화들은 줄곧 나쁜 쪽에 서서 그렇지 않다는 걸 말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다른 것들보다 큰 부분이기에 200개의 제목 중에 ‘나쁜 친구’라는 제목으로 결정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반디 | 그림 그리는 건 어릴 때부터 좋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많은 갈래 중에서도 만화가의 길을 택하게 된 이유가 있을 텐데요. 특히 어떤 만화가(들)에게 영향을 받으셨나요?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이 있다면 독자 분들에게도 소개해주세요.

 

앙꼬 | 어린 시절부터 만화란 생각을 하지 않고 그려오던 그림이 만화란 것을 늦게 알았어요. 특별히 만화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더더욱 없었고 얼마 전엔, 어렸을 때 어떤 잡지에서 만화가들은 어렵게 살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절대 만화가는 되지 말아야지 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말도 안 되는 우연으로 대학을 만화과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친구들이 진짜 만화를 그리고 있어서 놀랐어요. 20살이 되어서 처음 진짜 만화같이 그리는 사람들을 봤거든요. 한참을 친구들 몰래 그렸던 것 같아요. 만화를 많이 보지 않아서였겠지만 소년만화나 순정만화가 만화의 전부인지 알았어요. 그러다 학교를 다니며 이희재 선생님의 《간판스타》와 오세영 선생님의 《부자의 그림일기》를 보게 되었는데 참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나요. 아! 이게 만화구나! 이희재 선생님의 《김종팔씨 가정소사》는 중에서도 제일 좋아하는 만화예요.

 

 

반디 | 작업실 풍경이 궁금합니다. 평소 작은 수첩을 가지고 다니며 낙서 등 그림을 일상적으로 그리신다는 걸 한 인터뷰를 통해 접했는데요. 이 외에도 작업을 하는 방식이나 작업을 하지 않을 때의 평상시 모습 등 일상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앙꼬 | 작업실은 성남 변두리 동산 밑 허름한 건물 조경회사와 공장건물 2층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작업하며 살아간 지 6년이 되어 가요. 사람들을 좋아해서 여행 삼아 이곳으로 놀러오는 사람들을 위한 까페와 작업을 하는 공간으로 분리되어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상한 곳에 살고 있어요. 제 맘대로 만들어놓은 사무실에서의 삶이 거의 전부입니다. 예전에는 수첩을 가지고 다니며 이것저것 풍경들을 그리러 다녔는데 점점 밖에 나가는 게 힘들게 되다보니 이 사무실에서 이것저것을 그립니다. 물건마다 색칠을 하거나 뭘 만들거나 당장 하고 싶은 일들을 해요. 유화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만화를 그리기도 하고 음악을 만들기도 해요. 그냥 계속해서 만들고 싶은 것을 마음껏 만드는 것이 삶의 원동력입니다.

 

서른 살이 되기 전에는 정말 멋대로 살아서 하루에 세 시간을 자거나 며칠 밤을 세서 그림을 그리고는 했는데 이젠 이러다가 죽겠다 싶었습니다. 일 년 전부터는 낮에 일어나고 밤에 자는 생활을 하고 있는데 10년 만에 바뀐 밤낮이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아요. 그래도 오랫동안 만화 그리고 살려면 똑바로 살아야 된다는 걸 많이 느낍니다. 10년을 멋대로 살았더니 나이가 50살은 된 것 같습니다.    

 

반디 | 《내가 살던 용산》의 작업에도 참여하셨습니다. 3년이 지난 현재에도 유사한 문제들이 곳곳에 산재하고 있는데요. 평소 이러한 사회 문제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지요? 특히 최근 주목하고 있는 이슈가 있다면요?

 

앙꼬 | 《내가 살던 용산》 작업은 제가 하던 방식 중 새롭고 어려운 작업이었어요. 사회 문제에 직접 발을 담고 어느 정도의 의견을 담아 만들어야 했는데, 이런 작업은 아직도 제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당시에 이런저런 책을 보고 유가족들과 사람들을 만나서 취재를 했는데 그 사건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하기 위해 더 큰 부분을 이해하고 정리하기는 턱도 없었습니다. 이야기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보여주기에는 제가 많이 부족했어요. 그게 두 번째 책에 참여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어느 쪽에 치우치지 않도록 노력하며 때마다 이슈 되는 문제들을 관심 있게 바라보고 나름대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다시 만화로서 해야 할 몫이 있을 때 좋은 안목으로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최근엔 대통령을 뽑는 과정을 관심 있게 보고 있습니다.

 

반디 | 2003부터 활동하셨으니 9년째 만화를 그리고 계십니다. 10년째가 되는 해의 계획이 궁금한데요. 만화가로서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지, 더 나아가 어떤 인간으로 살고 싶으신지,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앙꼬 | 내년이면 정말 만화 그린 지 10년이 되네요. 2003년에 데뷔를 했는데 2013년이니 그래도 오랜 시간 만화를 그려온 것 같습니다. 10년 전에는 스무 살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참 어린 나이에 시작했어요. 그 때에는 주변 동료 만화가들이 서른 살, 마흔 살이신 분들이었는데 뒤늦게 만화를 시작하며 다른 곳에서 했던 많은 경험들을 통한 눈으로 깊은 만화를 그리셨어요. 나는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이였기 때문에 그 경험들이 내가 앞으론 가질 수 없는 것이고 매일 마감에 치여 일상이 없어진 나에게 경험이 부족한 것은 이야기 하는 사람으로 아주 치명적일 것이라 생각하며 매일을 불안하게 살았던 것 같아요. 내 계획이었는지 아니었는지, 다행인지 불행인지 10년 중 반을 만화 말고 다른 삶에 살았습니다. 만화가를 가장한 백수, 주정뱅이, 가수, 까페 주인(성남 사무실) 등이었어요.

 

28살에 다시 만화를 그리겠단 각오를 하고 2년 준비를 해서 서른 살에 다시 데뷔했어요. 그동안 잃은 것도 많았지만 얻은 것은 더 값집니다. 내 속에서는 진심으로 이제 만화가가 되었어요. 새로운 각오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넘칩니다. 《나쁜 친구》를 작업하며 봤을 때 한 편의 작업을 하는 데에 1년 반이 걸리는데 앞으로 쉬지 않고 그려도 과연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없겠구나 생각합니다. 또 건강해야 많은 만화를 그릴 수 있겠다 생각하고요. 어느 순간 나는 만화를 그리고 있고 나도 모르게 만화가 내 삶의 전부가 되어서 뭔가를 이야기 하지 않으면 속이 터져서 살 수가 없는 사람이 되었어요. 이야기를 만들고 좋은 그림을 그리는데 온전히 삶을 집중하며 되도록 다른 것에 눈을 돌리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만들고 싶은 이야기가 많습니다.

 

 

앙꼬

 

1983년 경기도 성남에서 최양길 씨의 셋째 딸로 태어났으며, 언니 둘과 남동생 하나가 있다. 노래를 부르고 뭔가 만드는 것을 좋아하며, 작은 수첩을 갖고 다니면서 이런저런 스케치들을 한다. 2003년부터 이곳저곳에 단편만화와 그림일기를 발표했다. 《앙꼬의 그림일기》(1,2)와 단편집 《열아홉》을 펴냈고, 다섯 명의 만화가와 함께 《내가 살던 용산》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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