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디 살롱/서점에서 만난 사람'에 해당되는 글 105건

  1. 2013.12.09 [서점에서 만난 사람] 우연과 선택이 만드는 인생의 무늬 - 《파이브 데이즈》의 소설가 더글라스 케네디
  2. 2013.12.03 [서점에서 만난 사람] 있는 그대로 서로를 받아들임으로 - 《우리 모두 틀림없이 다르다》의 저자 인터뷰
  3. 2013.11.05 [서점에서 만난 사람] 진짜는 힘이 세다 - 《어이없는 놈》의 시인 김개미
  4. 2013.10.08 [서점에서 만난 사람] 기생충도 사랑 받을 구석이 있다! - 《서민의 기생충 열전》의 저자 서민
  5. 2013.10.02 [서점에서 만난 사람] 기억되지 못한 삶을 기억함으로 - 《제7일》의 소설가 위화
  6. 2013.09.24 [서점에서 만난 사람] 닫히지 않는 이야기의 문 -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의 소설가 에트가르 케레트
  7. 2013.08.27 [서점에서 만난 사람] ‘명불허전(名不虛傳)’의 체험이 시작됐다! - 《허허 동의보감》 출간기념 간담회
  8. 2013.08.05 [서점에서 만난 사람]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 대신 - 《안녕, 내 모든 것》의 소설가 정이현
  9. 2013.07.03 [서점에서 만난 사람] 어떤 길에서 본 각자의 얼굴, 그 기록 - 《백 행을 쓰고 싶다》의 소설가 박솔뫼
  10. 2013.06.26 [서점에서 만난 사람]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는 대답 - 《여덟 단어》의 저자 박웅현

[서점에서 만난 사람] 우연과 선택이 만드는 인생의 무늬 - 《파이브 데이즈》의 소설가 더글라스 케네디

 

취재·편집·정리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희진
사진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인생의 모든 순간에서 끊임없이 선택의 기로에 섭니다. 이것을 먹을 것인가, 저것을 먹을 것인가. 저 버스를 탈 것인가, 다음 버스를 탈 것인가. 그 사람에게 전화를 해볼 것인가, 전화를 기다릴 것인가. 어느 쪽이든 선택을 해야 하죠. 헌데 이것은 또 우연의 영향을 받아 어디로 튈지 모르게 됩니다. 결국 선택의 앞날을 내다볼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는 정작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죽지 않고 살아야 할 만한 이유가 있다면 거기 무력한 어디쯤에서 끝나지 않으리라는 사실 때문일 겁니다. 우리를 기다리는 또 다른 선택지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이요. 더글라스 케네디는 그 가능성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파이브 데이즈》를 통해서요.

 

   환자 자신이 스스로를 한계 안에 가두고, 실망시키고, 원하지 않는 존재로 자신을 제한하더라도 모니터는 여전히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하고 있었다. 아무 이상 없다고. 이제 기회가 왔다고. 결국 그 기회를 변화의 거대한 물결로 이끌어내지 못하더라도 커다란 위로는 아직 남아 있었다. 그 커다란 위로는…….
   죽지 않고 살아갈 거라는 사실, 바로 그것이었다. (442쪽, 《파이브 데이즈》 중에서)

 

에디터가 묻다!

 

반디 | 《파이즈 데이즈》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이번에 한국을 처음 방문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더글라스 케네디 | 한국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을 읽었다. 한국이 역동적인 나라이고 분단국가라서 평소에 관심이 많았다. 현재 세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한국에 오게 될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매우 재미있는 방문이 될 것 같다.

 

 

반디 | 《빅 픽처》를 비롯해, 이후 출간된 모든 작품들이 한국에서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제 한국의 많은 독자들이 ‘더글라스 케네디’라는 이름만으로 망설임 없이 신작을 선택해 보고 있는데요.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뛰어넘어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요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더글라스 케네디 | 나는 55개국 정도를 여행 다녔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도 가봤고 가난한 나라도 가봤다. 당신이 어디에서 자랐든, 그 나라의 사회·경제·종교적 핵심 가치가 어떻든 인간의 조건은 변하지 않는다. 인간의 조건이 다르지 않다는 건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것이다. 《빅 픽처》를 비롯한 나의 소설들은 내가 큰 주제라고 생각하는 현대사회의 불안을 반영한다. 인간이 살아가고 선택하는 것이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원하지 않는 방향대로 살아가는 자기 자신과 소통하는 방법은 무엇인지에 관심이 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절망 속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나는 스스로 진지한 이야기를 쓰는 작가라고 생각하는데, 한편으로는 유명한 작가라는 게 매우 흥미롭다. 나는 유명하기만 한 소설, 반대로 스토리 라인이나 가독성을 잃을 수 있는 문학적인 소설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사실 이 두 가지를 소설 속에 잘 융화시키기 위해 노력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나는 내 소설이 독자에게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독자는 내 소설을 읽으면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
 
반디 | 《파이브 데이즈》는 목요일로 시작해, 월, 화, 수요일을 건너뛰고 다시 목요일로 끝을 맺습니다. 이러한 구성을 선택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왜 다른 요일이 아닌 목요일인가요?

 

더글라스 케네디 | 5라는 숫자에 관심을 가지고 있냐고 물어보는 것이 흥미롭다. 소설 제목으로 '5번가의 여인'이나 ‘파이브’를 썼고, 내가 1955년에 태어나긴 했다. 하지만 5라는 숫자에 크게 관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파이브 데이즈’가 아닌 ‘포 데이즈’가 될 수도 있었다.

 

《파이브 데이즈》에 대해 얘기하자면, 이 소설은 인생이 얼마나 빨리 변화될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어딘가에 줄 서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전화번호를 교환하는 사소한 일들에 의해 달라지는 인생. 많은 이야기들이 이 같은 구성을 사용하고, 이러한 일은 실제로 일어나기도 한다. 어제 한국에 도착해서 입국 심사를 받기위해 줄을 서 있는데 매우 매력적인 미국인 여성이 내 옆에 서 있었고, 우리는 기다리는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그녀의 직업을 물어보자 그녀는 유명한 패션 회사에서 일한다고 했다. 그녀가 뉴욕에 사냐고 물어와 내가 그렇다고 하자 잘됐다며 관심을 보여서 나는 결혼반지를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우연에서 모든 이야기가 시작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인생 또한 이와 같다.
 
《파이브 데이즈》가 재밌는 이유는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을 다루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what do you want’, 이 네 단어이다. 대부분은 이 질문의 답을 모른다. 두 번째는 삶이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임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스스로에 대해 발견하게 되었을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자신이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변하는 것은 왜 힘든가. 이 소설은 우연한 만남에 의해 발생하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지만, 변화가 당신 앞에 있을 때 당신은 그것을 받아들일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때때로 빠져나갈 방법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사람들이 왜 불행한 상태로 지내는지에 관한 문제가 나는 흥미롭다.

 

 

반디 | 소설 초반, 주요 인물을 설명하는 데 많은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인물을 구상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가 무엇인가요? 그 인물의 현실적 조건과 상황, 심리 등이 어떤 과정을 거쳐 구체화되는지도 궁금합니다.

 

더글라스 케네디 | 인물을 표현할 때, ‘devil has no detail’이라는 영국 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소설의 인물을 가능한 한 3차원적인 인물로 복잡하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투쟁의 한 지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살아있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살면서 가장 큰 투쟁의 대상은 자기 자신이다. 이것이 내가 인물을 구상할 때 하는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타인의 삶을 항상 관찰하려고 한다.
 
반디 | 《파이브 데이즈》에서 주인공인 ‘로라’는 영상의학과의 촬영 기사입니다. 삶의 끝을 볼 수도 있고 시작을 볼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그녀의 직업은 여러모로 중요한 인상을 남깁니다. 작가님은 특히 이 직업의 어떤 면을 소설에 반영하고 싶으셨는지요?

 

더글라스 케네디 | 《파이브 데이즈》의 ‘로라’는 삼 년 전에 떠올린 인물이다. 당시 병원에서 검사를 받은 적이 있다. 그때 사십대의 매력적인 검사관이 스캔을 진행했다. 나는 싱글이었기 때문에 그녀에게 관심이 갔다. (웃음) 시간이 지난 후에 그녀에 같이 앉아서 스크린을 보며 다른 사람의 암을 들여다보는 직업에 대해 생각했다. 그녀의 삶에서 암이란 아주 일반적인 것이지만, 소설에서는 암을 일종의 촉매제로 활용하려고 했다.

 

   방금 내 눈으로 암을 보았다. 암이 바로 내 눈앞에 있었다. ‘종말의 시작을 보고 있는 건가?’라고 깨달으며, 그때마다 늘 그렇듯이 나도 모르게 숨을 들이쉬었다. (7쪽, 《파이브 데이즈》 중에서)

 

반디 | 사랑이 없는 삶과 사랑이 있는 삶은 《파이브 데이즈》에서 대조적으로 그려집니다. 결국 사랑을 계기로 ‘로라’는 자기 자신을 되찾게 되기도 하고요. 이 소설을 통해 작가님은 사랑을 어떻게 정의하고 싶으셨는지요?

 

더글라스 케네디 | 우리에게 지금 시간이 충분한가? (웃음) 그 이야기에 답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주관적인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사랑에 빠진다. 종종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이유로.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가끔은 상대에게 내가 원하는 사랑의 모습을 투영하기도 했다. 실제로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고 하지 않고 말이다.

 

‘로라’는 첫사랑을 통해 사랑을 알았다. 이후 임신해서 결혼하게 됐다. 그것은 그녀의 결정이었다. 다 자란 아이 둘과 남편이 있는 결혼생활. 무난한 때가 온 거다. 하지만 그들의 미래에는 아이들이 없을 것이고, 그때에 ‘로라’와 남편은 서로 다른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한편, ‘리처드’는 중년의 보험판매원으로 특징이 없는 사람이다. 재미있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실제로는 매우 지적이고 감성적이고, 또 외로운 사람이다. 이 소설의 주제 중 하나는 외로움이다. 결혼생활 중에 느끼는 외로움은 정말 끔찍한 것이다. 그렇게 외로운 그들에게 사랑은 가능성의 감정이다. 서로에게 잘 맞는 사람을 만난 것이다. ‘리처드’는 ‘로라’와 함께하는 주말동안 매력적으로 변한다. 옷을 바꾸고 예전의 이미지를 버린다. 그리고 두 사람의 삶에 처음으로 희망이라는 게 생긴다. 사랑이 곧 희망인 것이다. 동시에 변화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포기하기도 할 것이다. 사랑이라는 것이 전형적일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사랑이 무엇이라는 정답을 갖고 있지 않다.
 
반디 | 첫눈에 반하는 사랑을 믿으시나요?

 

더글라스 케네디 | 나는 믿는다. 상대에 대해 전혀 모르고도 그 사람과 사랑에 빠질 수 있다. 나도 그랬다. 런던에는 오래된 농담이 있다. 사랑을 시작할 때는 길이 비어 있고 모든 것이 아름답다는 말이다. 삶의 경험 중 사랑에 빠지는 것이 가장 드라마틱하다는 거다.

 

반디 | 죽지 않고 살아갈 거라는 문장으로 소설을 끝맺고 계십니다. 《파이브 데이즈》가 삶에 대한 이야기라면, 한편으로 죽음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 듣고 싶은데요.

 

더글라스 케네디 | 16세기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는 살기 위해 매일 죽음에 대하여 조금씩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28일 후에 59세가 될 것이다. 60세가 될 것이라고 상상도 못했다. 그러나 나이를 먹었다.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았고, 흡연도 안 하고, 매일 운동을 하기 때문에 30년쯤 더 살 것 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운이 좋으면 35년쯤? 죽음은 필연적인 것이다. 40대가 지나면 죽음에 대하여 생각을 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죽음이 두렵고 사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언젠가 죽는 것은 사실이다. 결국 죽음에 대해 알아야 삶을 형성할 수 있다. ‘로라’의 경우, 40살이 지나고 시간의 변화를 느끼면서 삶에 대해 진지해졌다. 쉽지 않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질문이 시작된다.

 

 

반디 | 한국에서도 중년에 접어든 사람들이 삶에 대한 고민에 빠집니다. 《파이브 데이즈》가 그런 독자에게 많은 관심을 받을 것 같은데요.
 
더글라스 케네디 | 《파이브 데이즈》를 읽은 61살의 지인이 내게 말했다. ‘로라’는 아직 젊은 여자지만 자신은 나이가 들어 남편과 살 수밖에 없다고. 나는 소설을 읽고 그런 부담을 느끼지 말라고 답했다. (웃음) 사실 살다 보면 삶의 우선순위가 바뀐다. 그리고 삶에 대해 많이 안다고 여겼던 것들이 그렇지 않게 다가온다. 그 때문에 삶이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거나 타인에게 실망하더라도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선택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선택이다. 때로는 선택할 것이 없다고 하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 경우에도 선택할 것은 있다. 예컨대, 부모의 말을 잘 들을 수 있지만 그 반대를 택할 수 있다. 아버지는 아들이 변호사가 되길 바랐지만 나는 작가가 되었다. 이것은 선택이었다. 쉽지 않았고 많은 문제가 있었지만 선택한대로 되었다. 그 과정에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도 중요하다. 어떤 사람은 자식의 죽음을 경험했지만 살아남았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연인과의 결별을 극복하지 못했다. 심리적인 문제를 배제할 수 없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다 선택의 결과였던 것이다.
 
반디 | 소설에서 독서 클럽의 멤버이자 친구로 등장하는 ‘로라’와 ‘루시’의 대화가 인상적입니다.

 

   우리는 매주 한 시간 반 동안 소설에 대해 열띤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들의 대화는 딱 한 시간 반에서 멈추지 않았다. 세 시간쯤 이어지는 만남은 각자의 생활에서 끝없이 펼쳐지는 일들을 털어놓는 자리로 이어졌다. 루시는 우리 생활을 ‘우리의 현재 기상 상태’라는 말로 우아하게 표현했다.
   (…) 내가 말했다.
   “진짜 문제가 뭔지는 나도 알아.”
   “그럼 답도 알고 있어?”
   나는 다시 와인글라스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한참 동안 침묵한 끝에 마침내 내가 말했다.
   “답은 많기도 하고 없기도 해.”
   “나도 그래.” (83쪽, 《파이브 데이즈》 중에서)

 

더글라스 케네디 | 이 책은 소설인 동시에 읽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나는 종종 세상에 혼자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기 위해 책을 읽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실제로 비슷한 일들을 겪는다. 이것이 내 소설에 공감하는 이유일 것이다. 내가 결혼, 꿈, 개인적인 책임감과 긴장감처럼 사람에게 닥쳐오는 큰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기 때문에.

 

프랑스 사람들이 나에게 미국인은 책을 읽느냐고 물어보곤 한다. 그럼 나는 미국에 아주 지적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모든 곳에 똑같이 나타난다. 특히 '로라'와 '리처드' 같은 사람은, 소설에서 볼 수 있듯이 결혼생활에서 외로움을 느껴서 책을 읽는다. 이것은 그들이 여행할 수 있는 삶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로라'는 넉넉하지 않다. '리처드' 역시 돈이 많지 않다. 이들은 비행기를 버스처럼 타는 나와 달리 여행을 할 여유가 없다. 나는 항상 여기저기 옮겨 다닌다. 이것이 내 삶이고 난 이것을 사랑한다. 그러나 내 이웃을 비롯해서 한 번도 여행을 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그때에 책을 읽는 것은 삶의 중요한 부분이 된다. 책을 읽는 것은 항상 호기심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준다. 호기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사람은 늙기 시작한다.

 

반디 | 《빅 픽처》의 ‘벤’이 그랬고 《파이즈 데이즈》의 ‘로라’가 그랬던 것처럼, 누구나 자신의 진짜 모습과는 다른 가면을 쓰고 살아갑니다. 다양한 관계로 이루어진 사회 안에선 이 같은 가면이 필연적인 것이라 볼 수 있는데, 작품 속 ‘벤’과 ‘로라’ 뿐 아니라 실제 현실의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점점 더 버겁게 느끼는 듯합니다. 작가님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더글라스 케네디 | 여태까지 받아본 것 중 가장 좋은 질문이다. 사람은 가면을 쓰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가면을 쓰고 있고, 그래야만 한다. 실제 사람들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 슬픔, 분노, 상실감 같은 것들. 행복하지 않은 결혼을 유지하거나 불행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종종 살아남기 위해 가면을 쓰게 될 수 있다. 특히 그러한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경우에 말이다. 이때에 당신이 어떻게 할지 정한 후에는 가면을 벗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점에서 그런 결정을 한 것인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해 나는 소설을 통해 묻고 싶다. 《빅 픽처》의 경우, 어떤 레벨에서는 서스펜스로 읽을 수 있겠다. 하지만  자기 정체성을 가지는 것의 의미, 자기 정체성을 어떻게 그것을 재창조 하는지에 대한 소설이기도 하다. 자신을 찾았고, 그렇게 찾은 자신이 진정한 자신이 아닌 걸 발견하지만, 그것 또한 자신인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박스 안에서 끊임없이 다른 박스가 나오는 차이니즈 박스와 같다. 우리는 모두 가면을 쓰고 있고, 진실을 마주할 때 그것이 떨어져 나간다. 나에게는 이것이 흥미로운 주제고, 내 작품에서도 중요한 지점이라고 본다.

 

 

반디 | 작가님 소설을 설명하는 키워드로 ‘반전’이 많이 거론됩니다. ‘반전’의 효과는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그런 효과를 소설 안에서 극대화하는 노하우가 있다면요?

 

더글라스 케네디 | 《파이브 데이즈》에도 반전이 있다. '리처드'가 결정한 것은 좀 슬프긴 하지만. 나는 이야기를 하고, 모든 이야기는 문제를 다룬다. '아기 돼지 삼형제' 에서 늑대를 없애버리면 뭐가 남는가? 늑대가 없다면 그 이야기도 있을 수 없다. 내 소설에서 중요한 부분은 모든 것을 바꿔버릴 수 있는 무언가를 다룬다는 것이다. 꼭 부모보다 자식이 먼저 죽는다든가 아내의 애인을 죽이는 걸 말하는 것이 아니라도, 반전은 현실에서 종종 일어나기도 하는 일이다. 나는 그것을 극적인 장치로서 사용한다.

 

반디 | 꾸준히 소설을 발표하셨습니다. 그 동력 때문인지 작업 방식이나 소요 시간 등을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소설을 쓰기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의 과정을 묘사해주신다면요?

 

더글라스 케네디 | 난 어디에서나 글을 쓸 수 있다. 카페에서든, 택시에서든, 비행기나 기차에서든. 소음이나 음악이 있어도 상관없다. 어떤 상황에서든 매일 500자 정도의 글을 쓰려고 한다. 오늘도 점심 식사 후 한 시간 남짓 시간이 남았고, 시차 적응이 안 됐음에도 글을 썼다. 글쓰기는 예술이고, 또한 일(craft)이기도 하다. 이것이 나의 철칙이다.
 
반디 | 처음 소설을 쓰고자 했을 때 동기 부여가 된 작가나 문학작품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더글라스 케네디 |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책은 열권쯤 되기 때문에 특정한 책을 최고라고 꼽기가 어렵다. 각각의 책을 저마다 다른 이유로 좋아한다. 《위대한 개츠비》는 나에겐 완벽한 소설이다. 미국인들의 생활의 중심과 미국 자본주의에서 나타나는 끔찍한 슬픔에 대한 정말 훌륭한 이야기다. 《End of the affair》는 내가 읽은 최고의 책 중 하나이다. 사랑하면 왜 소유하려고 하는지, 사랑의 그런 구조적인 측면을 다루고 있다. 《마담 보바리》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이 소설은 1850년대에 발표된 플로베르의 작품이다. 외로운 가정주부의 불륜을 다루고 있는데, 인간의 외로움을 이만큼 중요하게 다룬 것은 거의 처음이었다. 외로움은 어디에나 있다.

 

이 외에도 나에게 중요한 작품은 많다. 그로 인해 어떤 것에 진실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이 독서의 재미라고 생각한다. 독서는 친구를 사귀는 것과 같다. 책으로 힐링 받고 내 자신의 경험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다.
 
반디 | 올해 개봉한 ‘파리5구의 여인’과 ‘빅 픽처’는 작가님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실제 시나리오 작가로도 활동하셨었는데요. 작가님에게 소설만이 줄 수 있는 고유한 기쁨이 있을까요?

 

 

더글라스 케네디 | '파리5구의 여인' 같은 경우는 각색 작업에 참여했지만 감독의 디렉션이 마음에 안 들어서 이름을 빼달라고 했다. 프랑스 영화인 '빅 픽처'는 아주 마음에 든다. 영화는 돈을 딸 수도 있고 잃을 수도 있는 카지노와 같다. 영화는 소설이 아니고, 소설은 영화는 아니다. 이것은 350 페이지 소설이고, 영화는 한 페이지에 1분인 100페이지짜리다. 그래서 소설을 영화에 그대로 반영할 수는 없다. 감독은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한다. 어떤 면에서는 소설을 존중하지만, 영화가 소설을 그대로 반영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파리5구의 여인'에는 좋은 배우들이 참여했지만 내 생각에 좋지 않은 영화이다. 러닝 타임이 85분으로 짧은데도 지루하다. 나는 감독의 의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내 이름을 빼달라고 하고 조용히 나갔다. 그래도 이에 대해 언론에 말하지 않았다. 프랑스 영화이기 때문에 특히 프랑스에서는. 그 외에 영화화된 '빅 픽처'를 비롯한 다른 영화는 괜찮게 보았다. 이런 영화보다도 소설을 쓰고자 하는 것은 잘하기 때문이다. 소설 쓰기는 공동 작업이 아니라서 나에게 큰 자유를 준다.
 
반디 | 작가님에게 당장 아무 계획이 없는 5일간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자신의 삶을 위해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

 

더글라스 케네디 | 나에게 그런 시간이 있다면 사람들이 없는 아름다운 해변가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 코스타리카에서 좋은 곳을 찾았다. 겨울이라면 캐나다 로키산맥에 크로스 스키를 하러 가고 싶다. 그리고 난 일 년에 세 번은 일주일에서 열흘 동안 핸드폰과 컴퓨터를 끄고 어디론가 간다. 누구와도 연결되지 않는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에이전트와 아이들뿐이다. 그 외의 사람들과는 연락이 안 된다. 인터넷은 아주 훌륭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어딜 가든 사람들이 스크린을 보면서 지낸다. 그래서 때때로 연결되지 않는 건 중요하다. 그 시간은 나에게 생각할 여유를 준다.

 

독자가 묻다!

 

독자 | 《빅 픽처》 이후 작가님의 책을 빼놓지 않고 보았습니다. 작가님은 이제까지 집필하신 작품 중 어떤 게 가장 애착이 가시는지요.

 

더글라스 케네디 | 딱히 없다. 모두 다른 방식으로 쓴 것이기 때문에 어떤 책을 가장 좋다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어떤 책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은 무엇이 왜 다른 것보다 좋은지에 대한 그릇된 판단을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 또한, 책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위험하기도 하다.

 

걸작을 쓸 거야, 하고 앉아 있어도 걸작을 쓸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소설을 쓸 때마다 문제가 생긴다. 잘 안 써질 때도 있고 확신이 안 설 때도 있다. 결국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되고, 오랫동안 관계를 맞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열정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쓴 것들이기 때문에 내가 쓴 소설들을 다 좋아한다.
 
독자 | 생각만큼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 그 중압감을 어떻게 해결하시나요?

 

더글라스 케네디 | 글 쓰다가 막히기도 하지만, 책임질 게 많기 때문에 글을 써야만 한다. 나에게는 좋은 일이다. 한 번은 1987년에 세 달 정도 글을 못 쓴 적이 있었다. 당시에 담배를 피웠는데 나중에는 담배 없이 글 쓰는 방법을 다시 배워야 했다. 보통은 글쓰기가 잘 안 되면 다른 것들을 한다. 영화를 보거나, 운동을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산책을 다닌다. 그리고 다시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글을 쓸 때는 항상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어느 정도의 의구심이 들기 마련이고, 그것은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 그 과정 속에서 전혀 성공을 예상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은 매우 행복하다. 이 또한 깨지기 쉽기 때문에 늘 존중을 표하려고 한다. 매우 성공한 작가처럼 글 쓰는 것이 아니라 그냥 단순하게 글을 써야 한다.
  
독자 | 혹시 작가가 안 되었다면 어떤 일을 하고 있을 것 같으신가요?

 

더글라스 케네디 |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되지 않았을까? 나는 클래식 음악에 많은 관심이 있다. 열다섯 살에 지휘자가 되고 싶었지만, 그랬다면 내 인생 전체를 다시 생각해야 했을 것이다. 지휘자는 사람들을 이끌어야 한다는 점에서 선장과 같다. 나는 사람들을 이끄는 것보다 사람들이 생각하게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들을 이끄는 건 내가 잘하는 일이 아니다. 아마 다음 생에 도전해볼 수 있지 않을까?

 

 

더글라스 케네디

 

1955년 뉴욕 맨해튼에서 태어났으며 다수의 소설과 여행기를 출간했다. 2010년 국내에서 출간된 《빅 픽처》는 최고의 화제를 끌어 모으며 국내 주요서점 최장기 베스트셀러에 등재되어 있다. 《파이브 데이즈》는 진정한 ‘나’를 찾는 5일간의 여정을 그린 소설이다. 잘못된 결혼이었다고 느끼면서도 23년 동안 결혼생활을 유지하며 지혜로운 아내이자 좋은 엄마로 살아온 로라는 정작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아간다. 영상의학과 학술대회에 참석했다가 우연히 만난 보험세일즈맨 코플랜드와 사랑을 경험하게 된 로라는 새로운 삶의 가치와 행복에 눈뜨게 된다. 주요작품으로 《더 잡》, 《리빙 더 월드》, 《템테이션》, 《행복의 추구》, 《파리5구의 여인》,《 모멘트》, 《빅 픽처》, 《위험한 관계》 등이 있으며 격찬을 받은 여행기로 《BEYOND THE PYRAMIDS》, 《IN GOD'S COUNTRY》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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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만난 사람] 있는 그대로 서로를 받아들임으로 - 《우리 모두 틀림없이 다르다》의 저자 인터뷰

 

편집·정리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희진
사진 및 도서 이미지 제공 | 한우리북스

 

저도 모르게 눈이 가버렸습니다. 어떤 때는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이유는 그저, 제 눈이 쫓아간 그들의 외모가 저와 너무 다르게 생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중에는 새까맣거나 거무죽죽한 피부의 외국인도 있었고 얼굴 전체에 화상을 입은 이도 있었습니다. ‘이러면 안 되는데’라고 스스로를 자책하며 ‘나쁜 의도는 없었어요’ 라고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부질없는 생각일 뿐입니다. 이미 누군가는 호기심 어린 제 눈빛에 상처받은 후일 테니까요.

 

지하철 앞자리에 앉은 다정한 커플이 서로의 귀에다 대고 무언가를 속닥거리며 피식피식 웃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사랑하는 사람끼리 밀담을 나누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가만 보니 건너편에 앉은 저를 두고 자꾸 힐끔거리는 겁니다. ‘뭐지? 왜지?’ 당혹스럽다가 ‘내가 김태희처럼 겁나게 예쁜 게 아니므로 저 속삭임은 분명 칭찬이 아닌 욕이다’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자 기분이 확 상하면서 ‘내가 왜 저런 시선을 받아야 하나’ 화가 났습니다. 그래도 뭐 달리 방법은 없었어요. 그 후에도 얼마간 지속된 그들의 시선을 무방비한 상태로 받아낼 밖에는요.

 

그렇게 여기에 살고 있는 많은 이들이 여전히, ‘인권’이라는 말은 머리에만 담아둔 채 무신경하게 그리고 빈번하게 서로의 인권에 상처를 입히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니까요.

 

반디 | 《우리 모두 틀림없이 다르다》는 ‘지식교양 모든’ 시리즈의 아홉 번째 책입니다. 책 표지를 통해“높은 학년 어린이를 위한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담은 읽기 시리즈”임을 알 수 있었는데요. 이 시리즈를 기획하시게 된 배경을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시리즈 안에 ‘어린이 인권’이라는 주제가 들어오게 된 이야기도 궁금하고요.

 

편집자 | 열다 에서 기획한 시리즈로는 가든(저학년 대상), 든든(중학년 대상), 모든(고학년 대상)이 있습니다. 모든은 우리의 시각을 좀 더 넓혀서 세계를 바라보는 지식을 담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권이라는 주제는 모든 시리즈에 적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권이라는 것은 나만 지킨다고 해서, 혹은 다른 나라의 누군가만 지킨다고 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세계를 하나의 연대로 생각하는 확장된 사고와 포용력이 있어야만 이해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독자에게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반디 | 《우리 모두 틀림없이 다르다》, 책 제목이 인상적입니다. ‘틀림없이’는 ‘반드시’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틀리지 않다’라고도 읽힐 수 있는데요. ‘어린이 인권’과 관련하여 이 제목을 통해 어떤 의미를 표현하고자 하셨는지요.

 

편집자 | 흔히 나와 다르면 틀린 것이라고 여기기 쉽지요. 그런 인권 차별은 그런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요. 우리는 모두 생김새뿐만 아니라 생각, 종교, 이념 등이 명백히 다른 존재이니 이것을 인정하자는 뜻에서 지어진 제목입니다. 서로를 인정하고 그대로 받아들여서 차별을 없애자는 희망을 담아 봤습니다.

반디 | 2장은 세계 각국에서 일어난 혁명을 하나씩 살펴보며 인권의 역사를 알아보는 부분입니다. 특히그 내용이 아드님과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어 자칫 어렵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역사 이야기가 흥미롭게 읽혔습니다. 평소에도 방학 때마다 아드님과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현장에서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신다고 하셨는데요. 이 책의 대화를 구성하시면서 어떤 점을 가장 신경 쓰셨는지요.

 

김현식 | 처음에는 아들에게만 들려주다가 몇 년 전부터는 다른 학생들과 함께 여행하면서 역사와 문화에 대한 수업을 했습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역사는 오늘 우리가 보는 문화유산이나 사람들의 생활과 서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었습니다.

 

반디 | 이 책을 통해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된 어린이 독자들에게 인권의 역사나 인권 운동가 등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볼 만한 책을 추천해주실 수 있을까요? 2장의 마지막 부분에 소개해주신 《노란 샌들 한 짝》 처럼 인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그림책을 추천해주셔도 좋고요.

 

 

 

김현식 | 사계절 출판사에서 나온 《인권변호사 조영래》를 추천합니다. 편안하고 좋은 길을 마다하고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살다간 조영래 변호사의 삶을 통해 인권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을 거에요.

 

반디 | 3장에서는 ‘세계 인권 선언’을 시작으로 자유, 평등, 연대 등 인권을 설명하는 데 중심이 되는 개념을 소개하고 계신데요. 특히 연대의 경우, 서로를 친구로 대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어린이 독자들도 이해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반려동물을 예로 들어주신 것처럼 책을 읽은 어린이가 자기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연대의 방법을 제안해주신다면요?

 

 

류은숙 | 무리에 끼지 못하고 혼자 있는 친구에게 다가가서 말 걸기, 말 걸기가 쑥스러우면 다른 방법 찾아보기(예를 들어 쪽지 전하기), ‘걘 원래 그래’ 또는 ‘쟤네들은 원래 그래’ 이런 식의 말과 태도를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지 않기, 충분하고 타당한 이유 없이 누군가를 헐뜯거나 수군거리는 것을 보면 그냥 받아들이지 않고 한 번 더 생각해 보기, 다른 사람에게 벌어진 고통이나 재난을 보면 나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생각해 보기, 내가 그런 고통에 대해 져야할 책임이 무엇인지를 찾아보기

반디 | ‘유엔 어린이 권리 협약’과 관련하여 야누슈 코르착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생전에 “어린이는 비로소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의 인간이다.”라고 말했던 폴란드 사람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자신이 돌보던 어린이들과 함께 죽음을 맞았다고요. 우리나라에도 그처럼 어린이를 하나의 인간으로 존중하고 사랑한 어른이 있었는지요? 그 중에서 인권 운동을 하는 선생님께 롤모델이 되는 인물이 있는지도 궁금하고요.

 

 

류은숙 | 이오덕 선생님입니다. 선생님께서는 한글과 어린이를 아끼셨고 유엔 어린이 권리 협약을 처음 한국에 소개하는 활동을 할 때 아낌없는 지지를 보내 주셨습니다. 제가 낸 책 중에 《아이들의 권리, 세계의 약속》(내일을여는책, 1997)이 있는데, 맨 뒤에 협약을 어린이 눈높이에 맞게 고쳐 써서 실었습니다. 지나친 영어 번역투로 쓰여진 그 책의 많은 잘못에도 불구하고 선생님께서는 맨 뒤에 실린 그 글을 보시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모든 것을 쓰고 말할 때 어린이도 이해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당부하셨습니다.

 

반디 | 인권, 하면 어렵고 심각한 분위기가 떠오르기도 하는데요. 선생님께서 4장에 소개하는 여러 가지 활동을 보니 우리 가까이에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장이 많더군요. 그런 장과 매개해주는 부모의 역할이 어린이 독자들에게는 중요할 텐데요. 이야기해주신 사례 외에도 부모와 아이와 함께 체험하기 좋은 인권 교육의 장이 또 있을까요?

 

 

전희정 | 요즘은 이주노동자, 결혼이민자, 다문화 가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인권 교육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박물관 체험 학습이나 과학관 견학처럼 또 하나의 스펙 쌓기로 인식하는 것이 아닌가 아쉽기도 합니다. 그래도 인권에 대해 무관심한 것보다는 좋은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모님과 아이가 함께 나들이를 겸하면서 인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장소로 안산 국경 없는 마을, 인천 차이나 타운, 이태원 이슬람 사원, 이문동 다문화어린이도서관 ‘모두’ 같은 곳을 찾아가 보면 어떨까요? 또 지역마다 열리는 다문화축제에 참가해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반디 | 청소년이 자유가 없다고 주장하면, 흔히 되돌아오는 것이 일단 대학부터 가고 나서 얘기하라는 식의 말이죠. 사람답게 살 권리를 대입보다 하찮게 취급하는 것이 우리나라 청소년 인권의 현주소입니다. 그래서 청소년 인권 단체인 아수나로의 활동이 더 반갑게 느껴지는데요. 선생님께서 아수나로를 비롯하여 인권 문제를 고민하는 청소년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전희정 |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대학 입시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청소년 인권 문제는 청소년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성숙한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고 미성숙한 어린 아이로 취급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청소년 인권 문제를 풀어 나가기 위해서는 어른들도 청소년 인권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지만, 우리 청소년들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부당하거나 불합리한 부분은 고쳐 나갈 수 있도록 의사 표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반디 | 어린이 독자를 위한 책이지만, 어른이야말로 읽어야 하는 이야기입니다. 어른으로서 같은 어른을 바라볼 때 인권에 무감각한 경우를 접한 적도 있으실 텐데요. 그런 문제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전희정 | 장애인 인권, 여성 인권, 이주노동자 인권, 노인 인권, 어린이 인권, 청소년 인권, 가난하고 소외받는 사람들의 인권에 무감각한 이유는 ‘나한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남일이니까’, ‘내 문제가 아니니까’라는 무관심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위를 둘러보고 주변의 작은 일에 관심을 갖고 주위 사람들의 기쁜 일, 슬픈 일, 힘든 일, 어려운 일에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공감이 인권의 시작이라 생각합니다.

 

류은숙 | 우린 너무 불안하고 스트레스가 많은 형편에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타인뿐 아니라 나 자신, 그리고 나와 가까운 사람을 제대로 돌보기가 힘들죠. 이런 조건이 모두의 공통조건이라 여기며 사람간의 관계를 다시 생각할 여유, 사람간의 관계를 조종하는 정치?경제?사회적 조건들에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너무 없습니다. 이런 불안과 압박감, 여유 없음을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다는 데 문제의 핵심이 있지 않을까요?

 

김현식 | 인권을 이야기하면 먼 나라 일인 듯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요. 서양뿐만 아니라 우리 역사에서도 인권을 지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싸워왔어요. 학교나 가정에서 인권에 대한 교육이나 훈련이 부족한 게 원인이라고 생각해요.

 

 

반디 | 나 자신에게 약속하는 인권 선언 한마디씩 부탁드립니다.

 

전희정 | 인권은 관심과 공감이다.

 

류은숙 | 누구나 사람답게 살 권리가 있다. 사람답게 사는 건 혼자선 안 된다. 사람들 사이에 있을 권리, 사람들 사이에서 인정받고 교류할 권리, 사람들과 더불어 더 나은 삶을 만들 권리가 있다.

 

김현식 | 나와 다른 사람을 인간답게 대접해야 나도 인간다운 존재로 대접받는다. 모든 사람을 하늘처럼 모신다.

 

 

글쓴이 김현식

포항에서 중학생들과 함께 사회를 공부하며 연극반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꽃과 채소를 가꾸는 것을 좋아하며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방학에는 청소년들과 아시아 문화 체험(Meet Asian People)을 떠납니다.

 

글쓴이 류은숙

1992년부터 현재까지 인권운동사랑방과 인권연구소 '창'에서 활동가로 일해 왔으며 두 단체의 창립 멤버입니다. 지은 책으로는 《인권을 외치다》《사람인 까닭에》 등이 있습니다.

 

글쓴이 신재일

대학에서 정치학을 가르쳤고 지금은 어린이 책과 청소년 책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정치와 인권, 민주 시민 등을 올바르게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열두 살에 처음 만난 정치》《둥글둥글 지구촌 인권 이야기》《세상을 바꾼 사람들》 등이 있습니다.

 

글쓴이 전희정

출판사에서 오랫동안 어린이 책을 만들었습니다. 여행하며 사진 찍고, 그림 그리며 글 쓰는 일을 좋아합니다. 함께 쓴 책으로 《만화보다 재미있는 민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린이 이광진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습니다. 고향 제주도에서 자연과 사람이 어울려 사는 세상을 꿈꾸며 잡지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쓰고 그린 책으로 생태 만화 《깡충거미 아차의 모험(전 3권)》이 있습니다.

 

그린이 창작 집단 도르리

도르리는 '밥을 고루 나누어 먹다'라는 뜻입니다. 도르리의 뜻처럼 세상 사람 모두가 평등하게 밥을 나누어 먹을 수 있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꾼답니다. 그린 책으로는 《너영 나영 구럼비에 놀자》가 있습니다.

 

그린이 홍선주

2000년 출판미술협회 공모전에서 동화 부분 은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림을 그리며 뒤늦게 세상을 알아 가고 있습니다. 그린 책으로는 《초정리 편지》《흰 산 도로랑》《우리 한옥》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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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만난 사람] 진짜는 힘이 세다 - 《어이없는 놈》의 시인 김개미

 

편집·정리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사진 및 도서 이미지 제공 | 문학동네

 

102호에 다섯 살짜리 동생이 살고 있거든
오늘 아침 귀엽다고 말해 줬더니
자기는 귀엽지 않다는 거야
자기는 아주 멋지다는 거야

 

- ‘어이없는 놈’ 중에서

 

어디서 이렇게 시작하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치면요. 누군가 싶어 고개를 들었다고 치면요. 목소리의 주인공은 어떤 사람일까요? 다섯 살짜리를 동생이라고 했으니 다섯 살보다는 많대도 열 살? 열한 살? 많아 봐야 제가 보기에는 역시 귀여운 아이일 듯합니다. 그런데요. 어른이랍니다. 진짜 아이보다 더 진짜 같은 목소리를 내는 이 사람, 김개미 시인이요. 그런데 내막을 다 알고 봐도 진짜가 아니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동시를 쓰는 그 순간만큼은 아이였으리라고 느껴지니까요. 아마도 저는 다시 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일까요?’가 아니라 ‘어떤 마음일까요?’라고. 진짜를 하는 사람이라면 마음에 답이 있을 테죠. 그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동시집 한 권을 막 펼쳐든 참입니다.

 

 

반디 | 안녕하세요, 김개미 선생님. 독자 분들에게도 소개드릴 겸, 실례가 안 된다면 이름 이야기로 말문을 열어보려고 합니다. 선생님의 성함을 접하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곤충인 ‘개미’가 연상되어 동시를 쓰는 분과 정말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는 어떤 뜻을 가진 이름인지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김개미 | 곤충 ‘개미’ 맞아요. 어렸을 때 산 중턱에 살았거든요. 학교 가려면 한 시간이 넘게 걸렸어요. 열심히 가야 했죠. 그래서 새까맣고 비쩍 마르고 쬐그맣고 그랬어요. 다큐 같은 거 보면 히말라야에 사는 아이들 나오잖아요. 산 넘고 물 건너 이슬 털며 학교 가는 아이들. 비슷했어요. 얼굴은 가무잡잡하고 눈은 반들반들하고.

 

장마가 지면 개울이 넘쳐 며칠씩 학교에 가지 못했어요. 학교에 가보면 반 아이들이 훌쩍 자라 있었어요. 수업 끝나고 혼자 남아 기말고사를 치고 그랬지요. 수줍음이 많아서 말을 거의 안 했어요. 누가 말을 걸면 어디가 가려운 것 같고 입술이 씰룩이는 것 같고 그랬어요. 친구들도 이상하게 생각했을 거예요. 말은 할 줄 아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디에 사는지.

 

그래도 친구들이 좋았어요. 놀리고 무시하고 그러지는 않았거든요. 대신 별명을 지어줬어요. ‘개미’라고. 친구들이 별명을 불러주면 기분이 괜찮았어요. “개미야, 개미야.” 부르는 소리가 듣기 좋았거든요. 어린이들은 별명 부르는 걸 좋아하잖아요? 그래서 별명을 필명으로 써봤어요. 만만해 하라고. 별명이 고릴라나 사마귀였다면 더 재미있었겠죠?
 
반디 | 지난 봄에 제1회 문학동네 동시문학상 대상을 수상하셨습니다. 그후 여름에는 수상작을 엮은 동시집 《어이없는 놈》이 출간되었고요. 여러모로 꽉 찬 2013년을 보내셨습니다. 이러한 상반기 활동이 하반기에도 영향을 끼쳤을 것 같은데요. 올 가을에는 주로 어떤 일에 집중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김개미 | 요즘은 노는 게 일이에요. 한껏 게으름을 피우죠. 작년까지가 바빴어요. 앞으로 이 년 정도 더 놀려고 해요. 스스로에게 주는 방학인 셈인데요. 방학답게 과제물도 있어요. 올 가을부터 내년 전반기까지 시집 원고를 살피는 거죠. 시집을 준비하고 있거든요. 그걸 마치고 나면 뭘 하고 있을까요? 저도 궁금해요.

 

반디 | 《창비 어린이》에 동시를 발표하신 것이 2010년이었죠. 사실 선생님께서는 그 이전인 2005년에 이미 《시와 반시》를 통해 시로 등단하셨습니다. 동시보다 시를 먼저 써오신 걸로 보여지는데요. 동시에 애정을 갖고, 동시의 길로 들어선 본격적인 계기가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김개미 | 2008년인가 어린이도서관에 근무한 적이 있어요. 그때 임길택 선생님의《산골 아이》를 접했는데, 그게 좋았어요.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최승호 선생님의 《말놀이 동시집》도 접하게 됐는데, 저한테는 충격이었어요. 최승호 선생님을 좋아했거든요. 최승호 선생님 시는 뭐랄까. 거침없고, 건조하고, 자신감이 넘치잖아요. 그런데 그런 분이 동시를 쓴다? 그것도 아주 재미있게. 동시가 궁금해진 거죠.

 

어린이도서관을 그만두고 아이들을 모았어요. 동시를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동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말이지요. 그러니 어쩌겠어요? 동시뿐만 아니라 동시 비슷한 것도 죄다 찾아 읽고 공부하는 수밖에요. 그때 2학년 아이들하고 공부를 했는데, 제가 주로 배웠어요. 아이들의 생각, 관심거리, 말법 등. 그 녀석들 지금 6학년쯤 됐겠네요. 진짜 말 안 들었는데, 그래서 더 궁금하고 보고 싶고 그러네요.

 

반디 | 선생님 글쓰기의 원천인 할아버지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수상 소감과 동시집의 머리말 등을 통해서 글쓰기와 독서의 재미를 알려주신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털어놓고 계신데요. 추억은 시간을 갉아먹고 힘이 세진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시인이 된 지금, 선생님 안에서 할아버지가 제일 힘이 세질 때는 주로 언제인가요?

 

김개미 | 여덟 살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매일 울었어요. 화장실에서 똥을 누다가도, 학교 갔다 오다가도, 멱을 감고 바위에 엎드려 있다가도. 그냥 눈물이 주루룩 떨어지곤 했어요. 늘 궁금했어요. 왜 내 머릿속에는 매운 연기가 꽉 차 있을까? 할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는데 십 년이 걸렸어요.

 

흔히, ‘가슴속에 살아있다’는 말을 하잖아요? 서른 살이 넘으니까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더라고요. 이제는 제가 웃을 때 할아버지도 함께 웃는 게 느껴져요. 저는 글을 써놓고 여러 번 소리 내서 읽는 버릇이 있는데요. 그때마다 할아버지가 살아나 제가 글 읽는 소리를 들어요.

 

무엇보다 할아버지가 가장 힘이 세진 건 《어이없는 놈》이 세상에 나왔을 때였어요. 할아버지가 살아 계신다면 저를 쳐다보지도 않고 방바닥을 더듬더듬 헤매고 다니시겠지요. 빨리 돋보기를 찾으려고 말이죠. 그래야 《어이없는 놈》을 읽을 수 있으니까요.

 


반디 | 《어이없는 놈》의 표제작인 ‘어이없는 놈’을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특히 인상적인 건 아이가 저보다 조금 어린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이처럼 아이에게 친절하게 뭔가를 이야기하는 어른 화자보다 톡톡 튀는 진짜 아이 목소리를 곧잘 들을 수 있었어요. 술술 읽힌대도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일 텐데요. 어른인 선생님께서 아이의 시점을 갖기 위해 무엇에서 영감을 받으시고 어떤 노력을 기울이시는지요?

 

김개미 |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는데요. 저는 제가 어른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어른이면서 동시에 아이이고 또한 노인이라고 생각해요. 어린이 목소리를 획득하기 위해서 특별히 노력하거나 그러지는 않아요. 아, 아주 없지는 않네요. 제가 그림책을 좀 좋아해요. 사람을 천진하게 해주거든요. 무장해제에 그만이죠.

 

그리고 이건 좀 복인 것 같은데요. 애들이 저를 좀 좋아해요. 군대에 있을 때 서예학원을 다닌 적이 있는데, 학원 애들이 놀러오고는 했어요. 삐뚤삐뚤한 글씨로 위병소에 이름들을 적어놓고는 장난들을 치며 장교숙소로 와요. 한번은 제가 사랑니를 빼 퉁퉁 부은 얼굴로 누워 있는데, 되게 불쌍해 보였나 봐요. 그 다음날 과자를 잔뜩 사갖고 왔더라고요. 이빨도 안 좋으니 살살 녹여먹으라고 그랬겠죠?
 
반디 | 동시집이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는 아이의 일상을, 2부는 아이의 내면을, 3부는 나와 다른 존재를 들여다보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이러한 흐름으로 엮은 배경을 선생님께서 조금 더 부연해주세요.

 

김개미 |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재미’예요. 제가 성격이 좀 급하고 인내심이 없어요. 소설을 자주 읽는 편인데, 처음 몇 장이 재미없으면 던져버려요. 어른인 제가 이러는데,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강요만 할 수는 없잖아요. 그렇다면 글을 쓰는 사람인 제가 명심할 것은 뭐겠어요?

 

그런데 재미있기 위해서는 어렵지 않아야 하잖아요?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하고. 그래야 속 깊은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고요. 그러다 보니 1부에는 비교적 아이들이 금방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2부에서는 속 얘기도 좀 하고, 3부에서는 다른 대상과의 대화도 시도해보고, 그렇게 된 거예요.

 

나한테 침과 담배꽁초
들끓는 모기떼뿐이라고?

 

얼굴 말고 가슴을 봐
난, 별을 껴안고 있어

 

- ‘웅덩이’ 전문

 

반디 | 저는 ‘웅덩이’가 참 좋았습니다. 아이와 어른을 통틀어 자신이 보잘것없다고 느껴본 누구나가 공감할 수 있는 동시였다고 생각해요. 이처럼 공감대가 넓은 동시를 보니 선생님께서 지향하시는 바가 궁금해집니다. 아이뿐만 아니라 《어이없는 놈》을 읽는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다면요?

 

김개미 | 저는 ‘보통 아이’에 관심을 두고 있어요. 고아이거나, 왕따이거나, 부모가 이혼을 했거나, 놀림을 당하거나, 아버지가 주정뱅이거나 등의 문제를 안고 있는 아이들은 물론 잘난 것도 못난 것도 특별한 것도 없는 그저 그런 옆집 아이, 윗집 아이, 친척 아이 혹은 그냥 ‘평범한 어른’도 위로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마음을 짚어주는 목소리도 있어야 되고요. 《어이없는 놈》이 그 목소리가 되었으면 좋겠고요. 더 욕심을 부린다면, 읽는 분들이 어떤 느낌을 받기를 원하는데요. 그게 ‘해방감’이라면 좋겠어요.   
 
반디 | 문학뿐만 아니라 다른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작가 분들을 종종 볼 수 있는데요. 선생님께서도 창작공연집단 ‘두목’의 명예단원이시고, 연극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글쓰기와 관련하여 연극에서 어떤 자극을 받으시는지 궁금합니다.

 

김개미 | 몇몇 시인들과 배우들이 함께 공연을 한 적이 있어요. 저같이 글밖에 모르는 사람이 연극을 하겠다고 나섰으니 어쩌겠어요? 경험도 재능도 없는데…… 내세울 수 있는 건 ‘진심’뿐이더라고요. 싸우는 대목에서는 진짜 싸우고, 흉보는 장면에서는 진짜 흉보고, 우는 장면에서 진짜 우는 수밖에요. 그러니까 연극이 ‘연극’이 아니라, ‘리얼’이 된 거죠. 그게 글 쓰는 데 전환점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진짜 내 감정, 내 느낌, 내 경험, 내 생각을 전면에 내세울 수 있게 된 거예요. 누구나 자기만의 ‘생각’이란 게 있는데, 생각은 부끄러운 게 아니잖아요? 자기 생각을 부끄러워하는 게 부끄러운 거죠. 연극은 표정과 말과 몸과 영혼과 행동 전체를 무대에 올리잖아요. 한눈에 다 보여요. 가짜인지 진짜인지. 글도 진짜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문창과나 국문과 이런 데도 안 나왔고요. 뾰족한 기술도 천부적인 재능도 없어요. 진짜를 보여주는 것 밖에 다른 전략이 없어요. 배우들, 같이 공연했던 시인들을 만나면 그걸 상기하죠. 진짜를 하자. 진짜를.   

 

반디 | 동시대 작가 분들에게 받는 자극도 상당할 것 같습니다. 소설이나 시에 비해 동시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소문내고 싶은 보물이 많을 것 같아요. 선생님을 자극한 좋은 동시집들을 독자 분들에게 소개해주세요.

 

 

김개미 | 저는 좋은 동시 중에서도 특히 간결하거나, 선명하거나, 다정한 동시에 끌려요. 제가 자주 읽는 동시집 10권을 소개할게요.  

 

1. 쉘 실버스타인 《폴링업》, 사계절
2. 유미희 《짝꿍이 다 봤대요》, 사계절
3. 김환영 《깜장 꽃》, 창비
4. 이정록 《콧구멍만 바쁘다》, 창비
5. 이안 《고양이의 탄생》, 문학동네
6. 김륭 《프라이팬을 타고 가는 도둑고양이》, 문학동네
7. 권오삼 《똥 찾아가세요》, 문학동네
8. 안도현 《나무 잎사귀 뒤쪽 마을》, 실천문학사
9. 박방희 《머릿속에 사는 생쥐》, 문학동네
10. 함기석 《숫자벌레》, 비룡소

 

반디 | 볼거리, 읽을거리, 즐길거리가 넘쳐나는 요즘입니다. 동시집을 비롯하여 책 자체를 멀리하기 쉬운 환경인데요. 이런 때에 아이가 스스로 찾아 읽지 않는다면 가운데에서 매개하는 어른의 역할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동시 읽기, 아이와 함께 즐기는 방법을 권해주신다면요?

 

김개미 | 그냥 책 읽기에 대해 이야기를 할게요.

 

저는 ‘책 읽어주기’를 권합니다. 많은 분들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데, 그게 무슨 소리냐 그러실 거예요. 대부분 부모님들이 미취학 아동에게는 책을 정말 많이 읽어줘요. 그런데 그 이후에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초등학생이 돼도 중학생이 돼도 고등학생이 돼도.

 

아기 때부터 읽던 책 있잖아요. 거기 동시집도 살짝 넣으면 좋겠지요. 초등학교에 들어가도 중학교에 들어가도 아기 때처럼 침대에 함께 누워서 읽는 거죠. 아이가 굉장히 차분해지고 편안함을 느껴요. 자신이 아기 때와 다름없이 여전히 보호받고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데, 그게 얼굴에 나타나요.

 

결국, 독서에 대한 행복한 기억을 주자는 얘기지요.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잖아요? 아이는 빠르면 초등학생 때, 늦으면 고등학생 때 스스로 책을 읽을 거예요. 행복해지고 싶으니까요. 이 때 중요한 것은 부모가 책 읽어주는 행위를 통해 행복을 느껴야 돼요. 그게 중요해요.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을 느끼니까요.

 

그러니까 아이가 중학생이 됐다고 그림책을 다 갖다버리거나 남한테 주면 안돼요. 아이가 좋아하는 책은 남겨두어야 합니다.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그 책을 대하면 위로를 받지요. 추억이 있으니까요. 그건 아무도 훔쳐가지 못하잖아요? 아이는 행복해지고 싶을 때마다 책을 찾게 되고, 결국 책 읽는 행복을 알게 되겠지요.

 

그 아이가 자라 아이를 낳으면 어떻게 기르겠어요?

 

 

반디 | 앞서 할아버지에 관해 여쭤 봤는데요. 그 기억이 특별하다 보니 왠지 한 번쯤은 자신의 경우도 그려볼 것 같습니다. 어떻게 나이 들어가게 될는지요. 선생님께서는 훗날 손녀나 손자에게 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으신가요?

 

김개미 | 귀촌하는 꿈을 꿔요. 할 거고요. 이 년 육 개월이 지나면 농촌마을 주민으로 살아갈 건데요. 느리게 느리게 굼벵이처럼 살 거예요. 그리고 혼자만의 숲 하나를 만들 거고요. 자작나무를 좋아하는데 그걸 잔뜩 심을 거예요. 자작나무 숲에 혼자 앉아있는 날이 많겠지요. 동네 꼬마들이 ‘자작나무 숲의 마녀’라고 할지도 몰라요. 으흐흐흐. 지금부터 괴상한 웃음소리를 연습해서 고놈들 간을 콩알만 하게 만들어줘야겠어요.

 

손자손녀를 자주 보기는 어렵겠지요. 하지만 가끔 찾아오기는 하겠지요. 그럼 신나게 놀아야죠. 자작나무 뒤에 숨기도 하고, 숨어서 나뭇잎을 건드리고 가는 바람소리를 듣기도 하고. 미친 듯이 뛰기도 하고, 뛰다가 구르기도 하고.

 

귀여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통통 튀는 할머니. 농담을 즐기는 할머니. 꽉 막히지 않은 할머니. 어린아이도 어른도 노인도 모두 들어있는 할머니. 만만한 할머니. 장난을 멈추지 않는 할머니. 무엇보다 천진한 할머니. 

 

아직 집에 있으면
따뜻하게 입고 학교 가거라
여긴,
암탉의 눈동자가
공깃돌처럼 달그락거리고
개밥그릇의 물은
시멘트처럼 딴딴해서
거꾸로 들어도 안 쏟아진단다
지겟작대기같이 키 큰 고드름이
지붕을 꽉 붙들고
차돌 같은 할미 이빨은 딱딱
북을 치고 야단이란다
그러니 우리 강아지,
단단히 입고 학교 가거라

 

- ‘추운 날 할머니 전화’ 전문

 

* 위 동시들과 삽화(오정택 그림)는 《어이없는 놈》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김개미

 

1971년 강원도 인제에서 태어났다. 2005년 《시와 반시》에 시를, 2010년 《창비 어린이》에 동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제1회 문학동네 동시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 《앵무새 재우기》와 동시집 《어이없는 놈》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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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만난 사람] 기생충도 사랑 받을 구석이 있다! - 《서민의 기생충 열전》의 저자 서민

 

편집·정리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사진 제공 | 을유문화사

 

기생충, 하면 사람들이 떠올리는 것들이란 대체로 부정적입니다. 해롭다, 더럽다, 징그럽다…… 이에 재난영화인 ‘연가시’가 흥행하면서 무시무시한 이미지까지 더해졌지요. 물론 그런 면도 없진 않을 겁니다. 인간의 목숨을 위협하는 기생충이 실제로 있으니까요.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미라에서 발견된 기생충 알은 인류 이동의 비밀을 밝혀주기도 하고요. 알레르기, 당뇨병, 크론씨 병 등의 치료 요법으로 활용되는 기생충도 있어요. 이들의 또 다른 면모는 인류와 오랫동안 동행해온 데서 축적된 결과일 겁니다. 인간의 역사에서 나름의 역할을 해온 셈이죠. 이만하면 불청객 취급 받는 게 좀 억울할 듯합니다. 그런 입장을 대변해온 서민 선생님은 말합니다. “기생충이 희망이다. 최소한 먼 훗날에는.”(64쪽, 《서민의 기생충 열전》)이라고요. 희망이라고 불릴만큼 사랑 받아 마땅한 이야기, 더 들어 볼까요?

 

 

반디 | 지난 7월에 책이 출간됐습니다. 그 이후로 꽤 바쁜 나날을 보내고 계십니다. 이전부터 방송 활동도 하고 계시고, 여러 매체와 저자 인터뷰도 하시고, 더불어 선생님의 블로그 방문자 수도 급증했을 것 같은데요. 《서민의 기생충 열전》에 쏟아지는 관심을 실감하시나요?

 

서민 | 저는 원래 출신이 글 쓰는 사람이라서 방송보단 글로 인정받는 게 좋습니다. 하지만 제 책이 나온 뒤에 그 책에 대해 제게 얘기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어요. 나름 4쇄까지 찍은 책인데도, 그리고 읽은 분들의 반응은 괜찮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은 ‘베란다쇼’나 ‘아침마당’ 같은 걸 얘기합니다. ‘괴물’을 비롯한 영화들은 좀 떴다 하면 1천만이고, 100만 관객이면 망한 거죠. 반면 책은 아무리 많이 팔려봤자 100만이 한계에요. 극장에 가는 것은 책을 사는 것보다 훨씬 번거로운 일일 수 있는데, 사람들은 책을 읽는 것보다 영화 보는 걸 훨씬 선호합니다. 아쉽죠. 꼭 제 책에 관심이 많아야 한다, 이런 건 아니어요. 제 책은 내용과 수준에 비해 지나친 관심을 받았거든요. 하지만 정말 좋은 책들이 이렇다 할 관심도 못 받고 사라지고 있는데요. 그런 면이 아쉬워요. 책 읽는 게 취미가 아니라 의무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반디 |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린 줄 알았던 기생충이 요즘 이 책을 통해 전에 없는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기생충의 세계에 새삼 호기심을 갖게 된 저 같은 독자 분들도 있을 텐데요. 기생충에 대해 잘 몰랐을 때, 선생님께서는 처음 무슨 계기로 어떤 면에 흥미를 느껴 기생충학에 뛰어들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서민 | 하하, 제 책이 계기가 된 건 아니에요. 이것 역시 영화의 위력이죠. ‘연가시’가 작년에 개봉했잖아요. 그러니까 저는 기생충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킨 게 아니라, 영화로 인해 형성된 분위기에 편승해 책을 낸 거죠. 기생충의 속성이 기회주의적이니, 저도 기생충 같은 행동을 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제일 처음 기생충을 하게 된 계기는 환자 보는 것에 비해 훨씬 멋져 보였기 때문이에요. 환자의 배를 가르거나 잘라진 손가락을 잇는 것 등을 어떻게 할까 생각하면서 괴로워하고 있었는데, 기생충이 제 구세주였죠. 그리고 사람들은 제가 기생충을 한다고 해서 ‘괴짜’라고 표현하던데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의과대학 나와서 의학의 한 분야인 기생충을 전공하고 현재 의과대학에 근무하는 제가 괴짜라니요. 의사 된 다음에 소극장 운영하는 분도 있고 영어학원 하는 친구도 있는데, 그런 분들이 훨씬 더 괴짜죠!

 

반디 | 보통 사람들에게 기생충은 사랑스럽기보다는 불쾌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책을 읽어 보면 기생충에게도 장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예컨대, 알레르기를 고치는 기생충을 설명하기도 하셨는데요. 욕을 먹거나 욕의 대명사가 되곤 하는 기생충을 대변하여 그들이 우리에게 끼친 이로운 영향에 대해 더 부연해 주신다면요?

 

서민 | 1994년, 한 환자가 배가 너무 아파서 병원에 왔어요. 내시경을 해보니까 십이지장에 궤양이 있었고, 그 궤양을 기생충 한 마리가 파먹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그렇게 아팠던 거죠. 근데 놀라운 점은 그 환자의 내시경을 하다가 위에 조기위암이 있는 걸 발견했다는 거예요. 조기위암은 별 증상이 없으니 기생충이 아니었다면 환자가 병원에 갔겠어요? 덕분에 환자는 살 수 있었죠. 꼭 기생충이 착해서 긍정적인 일들이 생긴 건 아닙니다만, 이런 식으로 기생충은 알게 모르게 이득을 줄 수도 있습니다.

 

반디 | 착한 기생충이 있는가 하면, 이상한 기생충도 있고 몸을 상하게 하는 위험한 기생충도 있죠. 그 감염원과 증상이 천차만별인 것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 영화에서의 묘사와 달리 실제로는 사람을 숙주로 삼지 않는 연가시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부분도 있고요. 이 외에도 구성 관계상 언급하지 못한 기생충이 많을 텐데요. 잘 알려지지 않은 독특한 기생충들을 소개해 주세요.

 

 

출처 : 국가건강정보포털(바로가기▶)

 

서민 | 광동주혈선충이라는 기생충이 있어요. 이 기생충은 감염원이 커다란 달팽이인데요. 이걸 덜 익혀 먹으면 그 안에 있던 유충이 사람의 뇌를 침범합니다. 왜냐면 이 기생충의 종숙주*는 쥐인데, 사람은 중간숙주*밖에 안되니까 유충이 적당한 곳을 찾아서 돌아다니다가 뇌로 가는 거예요. 그래서 뇌막염 같은 게 생겨요. 중요한 건 사람이 종숙주인 기생충에 걸려야 한다는 거죠. 그래야 별 탈이 없습니다. 그 기생충들은 오랜 기간 인류와 더불어 같이 살았던 기생충들이고, 인간을 괴롭히려는 존재가 아니니까요.

 

그밖에 포충이라는 병이 있어요. 이것 역시 개가 종숙주고 사람이 중간숙주인데요, 이 기생충은 세상에서 가장 느린 기생충이에요. 이 유충은 사람 몸에 들어오면 하얀 주머니를 만드는데, 그 주머니가 1년에 1센티 남짓 자랍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증상이 전혀 없어요. 그러다 5~7년 되가지고 10센티 가량까지 자라면 그때서야 증상이 생기는 거죠. 원래 간에 많이 생기는데 간에 10센티짜리 주머니가 있으면 소화불량 같은 증상이 나타나거든요. 근데 위치에 따라서는 20센티가 넘어도 증상이 없는 수도 있어요. 폐 근처에 생긴 게 33센티가 돼서야 증상을 나타낸 환자가 있습니다. 이 포충은 우리나라에는 유행하지 않는데요,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에서 굉장히 유행을 해요. 김태희가 밭을 맨다는 그 우즈베키스탄이요. 근데 거기서 우리나라로 근로자들이 오잖아요. 그분들이 여기 와서 증상이 생겨 수술한 경우가 좀 있는데, 가능성이 그리 높진 않지만 그분들이 우리나라에 포충을 전파할 수도 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저는 외국인 근로자가 들어올 때 웬만하면 기생충 검사 한번 하자, 이런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못 들어오게 하자는 게 아니라 미리 알면 약 한 알로 해결될 수 있잖아요.

 

* 종숙주와 중간숙주 : 다 자란 성충이 기생하고 새끼를 낳는 숙주가 종숙주, 유충이 기생하는 숙주는 중간숙주인데,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해서 모든 기생충의 종숙주가 되는 건 아니다. (17쪽, 《서민의 기생충 열전》 중에서)

 

반디 | 이 모든 기생충을 연구하기 위해 본인을 숙주로 삼으면서까지 몸 바치는 기생충학자 분들의 자세에 감동했습니다. 선생님께서도 동양안충을 자신의 눈에 넣은 적이 있다고 하셨어요. 올해 논문을 13편 쓰신다고 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밝혀주셨는데요. 근래에는 어떤 기생충 연구에 살신성인으로 임하고 계신지요?

 

당장 아픈 사람을 낫게 하는 건 아니지만, 성공하기만 한다면 수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것. 연구란 바로 이런 것이다. 페니실린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했는지 생각해 보면 연구라는 게 우리 삶에서 꼭 필요하다는 데 동의할 수 있으리라. 그래서 난 늘 말하곤 한다. “임상 의사는 눈앞의 환자 한 명을 고치지만, 기생충 연구자는 큰 거 한 방을 노린다”고. (41쪽, 《서민의 기생충 열전》 중에서)

 

서민 | 제가 사실은 연구를 그리 잘하는 편은 아니에요. 조교 때부터 거슬러 올라가도 연구보다는 잡스러운 일들에 관심을 더 많이 가졌던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한 연구를 깊이 파서 일가를 이룬다기보다 이거 조금, 저거 조금 이런 식으로 연구를 해요. 논문을 13편 쓰는 게 목표인 건 맞고, 현재 9편쯤 썼으니 목표에 거의 다가선 것도 맞지만, 그게 다 나름의 의미는 있을지언정 기생충학적으로 엄청 중요한 상을 받을만한 연구는 아니에요.

 

제가 잘하는 건 이런 거예요. 엄청난 실험으로 좋은 데이터를 뽑아내는 게 아니라, 평범한 데이터를 가지고 논문을 쓰는 기술이 뛰어난 것 같습니다. 근데 연구란 게 꼭 실험만 잘해서 되는 건 아니고 논문을 잘 쓰는 게 거의 절반이거든요. 그거라도 잘하면 먹고살 수 있죠. 학생들한테 늘 말하는데요, 과학을 잘하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게, 책을 읽으면 논문을 잘 쓰게 돼서 하는 말이에요.

 

반디 | 기생충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처럼 재밌게 책을 쓰시는 분들이 또 있는지 궁금한데요. 기생충과 더 친해지고 싶은 독자 분들에게 선생님의 책을 비롯하여 관련 도서들을 추천해 주세요.

 

 

서민 | 국내에 기생충 대중서는 다섯 권이 있습니다만, 그 중 두 권은 제가 쓴 거긴 해도 좀 한심한 책이에요. 나무가 아까운 수준이고요. 그거 빼면 세 권이 남아요. 그 중 하나는 칼 짐머가 쓴 《기생충 제국》이고, 국내학자가 쓴 건 《서민의 기생충 열전》과 정준호 선생이 쓴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이하 ‘동반자’)가 있어요. ‘동반자’는 기생충을 진화적 관점에서 풀어쓴 건데요, 정준호 선생이 저처럼 기생충을 가지고 대중적 소통을 하려는 분이에요. 글도 아주 탁월하게 잘 쓰고, 책도 아주 훌륭합니다. 제가 안 그래도 다음 달 잡지에 기생충 대중서 세 권을 비교 분석하는 리뷰를 쓰기로 했답니다. 아무튼 국내에 정준호 선생이 있어서 참 다행이에요. 그분은 책으로만 소통하는 게 아니라 블로그(바로가기▶)에도 글을 아주 많이 쓰시더라고요. 거기에 대항해 제가 주도하는 ‘기생충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란 카페를 개설했습니다만, 여러모로 정준호 선생의 블로그에 미치지 못합니다. 최근에는 페이스북에도 기생충 사이트를 개설했고요.

 

반디 | 기생충학은 사실 결코 만만한 학문이 아니죠. 의학 중에서도 보다 전문적인 경험이 요구된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럼에도 사람들이 ‘재미’를 느끼고 다가갈 수 있었던 데는 선생님의 재치 있는 필력도 한몫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의 글을 쓰기까지 주로 어떤 책을 읽어 오셨는지 말씀해주세요.

 

 

서민 | 저는 주로 소설을 읽었어요. 위화라는 중국 작가도 소설을 읽고 상상력이 발달됐다는 얘기를 책에 썼는데요, 자기계발서 같은 것보단 무조건 소설을 읽는 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나이 서른에 《인물과 사상》이라는 정치서적을 계기로 책을 읽게 됐는데요, 시작이 그렇더라도 그 책을 읽다보니 그 안에 다른 책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더라고요. 그로부터 한 15년간 매년 100권씩 읽었고요, 대부분이 소설이었답니다.

 

반디 | 기생충뿐만 아니라 사회 다방면에도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서민의 기생충같은 이야기’라는 블로그에 시사 칼럼을 쓰신 것도 읽었습니다. 선생님께서 풍자하시듯 세상에는 위험한 기생충과 거의 동급의 사회악 같은 사람이 꽤 많지요. 이들을 박멸하는 구충제가 있을까요?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기생충학자로서의 소견을 듣고 싶습니다.

 

서민 | 앗, 이런 질문을! 회충 같은 구충제를 예로 들면, 기생충을 굶겨죽이는 게 원리거든요. 아무리 나쁜 사람도 그렇게 죽이면 안 되죠. 그런데 인생을 살다보면 나쁜 사람에 대한 정의가 좀 바뀌더라고요. 어릴 적엔 사람을 죽이고 남의 것을 훔친 사람이 나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커가면서 보니까 큰 집에 살고 돈도 많은 사람들 중에 오히려 절도범보다 훨씬 더 나쁜 사람들이 꽤 있더군요. 그분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지금도 고민거리입니다. 거세, 이런 것도 사람한테 할 건 아니라고 봐서요.

 

반디 | 근황과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합니다. 《서민의 기생충 열전》을 시작으로 보다 많은 독자 분들과 소통하는 자리를 가져도 좋을 것 같은데요. 연구를 하거나 책을 쓰는 일 말고도 기생충학을 위해 계획하고 계신 일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서민 | 제가 대중강연 같은 건 잘 거절하지 않는 편이에요. 안 그래도 이 책 나오고 강의 무지 많이 했습니다. 기생충을 위해 계획하는 건, 역시 기생충 박물관이지요. 애들한테 과학에 대한 호기심을 일깨워주는 것으로 기생충만한 게 없다니까요. 제대로 만들어진 기생충 박물관만 있다면 우리나라에서도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저 혼자 힘으론 안 되고 다른 학자들도 많이 도와야겠죠.

 

반디 | 이 분야에 막 발을 들여 놓은 독자 혹은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서민 | 아무리 어려워도 한 달에 책 두 권은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책을 읽는 게 취직에 도움을 주진 못할지라도, 과학 분야는 물론이고 일반 회사에 들어가더라도 자기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게 해주는 게 또 책이거든요. 어릴 적부터 독서를 너무 강조하다보니 애들이 반발심으로 인해 책을 더 안 읽게 된 것 같은데요, 차라리 열두 살 전에는 책을 절대로 읽을 수 없게 만드는 건 어떨까 싶기도 해요. 이 분야든 다른 분야든, 책에 길이 있습니다.

 

반디 | 이대로 책을 덮기는 아쉽습니다. 《서민의 기생충 열전》 2탄을 기대해도 될까요?

 

서민 | 원래 1탄에 재미있는 걸 다 쏟아 붓기 마련이지요. 그래서 2탄이 1탄에 비해 평가를 못 받는 것이고요. 하지만 기생충은 숫자가 많고, 1탄에서 못 다룬 것들이 꽤 된답니다. 그러니 2탄이 꼭 나와야겠지요. 1탄이 10쇄쯤 나가면 그 시기가 빨라질 수가 있겠는데...^^

 

이 책에 실린 내용들의 절반 이상은 네이버캐스트 ‘오늘의 과학’에 연재된 바 있는데, 연재를 할 때 달렸던 수많은 댓글들도 나로 하여금 기생충 책을 내도록 용기를 불어넣어 줬다. 댓글로 격려해 주신 분들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이 책을 포함해도, 그리고 내가 낸 함량 미달의 책 두권을 포함해도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기생충 대중서는 겨우 다섯 권에 불과하다. 인터넷에 “기생충 질문입니다. 급해요!” 같은 글이 범람하는 것도 다 기생충 대중서가 없기 때문. 이 책이 그간 대중과의 소통에 관심이 없던 다른 기생충 학자를 자극시켜 더 많은 기생충 대중서가 출간될 수 있기를 바란다. (12쪽, 《서민의 기생충 열전》 중에서)

 

서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본과 4학년 때 선택의학 과목으로 기생충학을 선택했다가 어릴 적 못생긴 외모로 인해 고생했던 자신의 모습처럼 외모로 인해 탄압받고 있는 기생충에 관심을 갖게 됐다. 단국대에서 기생충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못생긴 외모를 콘셉트로 삼아 방송계 진출을 끈질기게 시도한 끝에 결국 MBC ‘컬투의 베란다쇼’ 고정패널 자리를 따냈다. 기생충을 주제로 한 두 권의 책이 망하고 난 뒤 절필을 선언했다가 절필 선언 사실 자체를 사람들이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에 용기를 얻어 다시금 기생충 책을 썼다. ‘경향신문’에 글을 연재했고 그 밖에 여러 신문과 네이버캐스트 등 인터넷 매체, KBS ‘과학콘서트’, KBS 프라임 ‘지식 기부 콘서트’, CBS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EBS 다큐프라임 ‘PARASITE 기생 寄生’, KBS ‘아침마당’ 등 여러 방송과 대중 강연을 통해 기생충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으며, ‘기생충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이 최종 목표이다.

 

서민 블로그(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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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만난 사람] 기억되지 못한 삶을 기억함으로 - 《제7일》의 소설가 위화

 

취재·편집·정리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희진

사진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빈자와 부자, 사람과 삶이 둘로 쩍 갈라져 있다. 그 사이를 자본의 칼이 날카롭게 지나간다. 날에 베이고 피 흘리는 건 안 됐지만 빈자들의 몫. 먹고 살겠다 아등바등 거리던 몸부림의 끝에 고독해서 서글퍼진 죽음들이 남았다. 따뜻한 피 돌고 비릿한 땀냄새 그득한 이 생의 흔적마저 애도해줄 이 없는 이들이 죽음 이후에도 안식에 이르지 못한 채 희뿌연 안개 속을 헤매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엿샛날까지 하시던 일을 다 마치시고, 이렛날에 다 이루셨다. 이렛날에는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셨다 ? 창세기

 

그렇게 이승과 저승 사이에 있는 《제7일》에 모여들었다. 그렇게 위화는 죽음 이후의 시간에 다시금 삶을, 현실을 들여다 놓았다. 부조리한 사회에서 깨지고 망가져 너덜거린 채로 죽음으로 내몰린, 말해지지 않고 기억되지 않으나 결코 망각해선 안 되는 인생사들을 움켜쥐고. 고요하고 적막한 사후에야 비로소 기억을 곱씹고 추억을 되새겨 삶을 정리할 수 있게 된 이들로부터 그와 다르지 않은 현실에서 그와 다르게 않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로, 7일의 시공을 전하기 위해 지금-여기에 그가.

 

 

 

항상 현실과 밀착된 이야기를 써오셨는데요. 이번 소설은 사후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후세계가 배경이긴 하지만 이야기 자체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같은 이야기를 현실의 시점에서 썼다면 한 각도나 한 단면만을 다루게 되었을 텐데, 사망 이후의 시점을 선택해 사회 전체를 보다 객관적이고 다채롭게 그리고자 했습니다.”

 

흔히 죽음 이후에는 평등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는데요. 《제7일》은 사후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의 빈자와 부자, 그 불평등한 처지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특히, 죽은 후에 찾은 화장터에서 그 모습이 두드러지게 드러나 있고요.

 

   대기실 오른쪽에는 쇠틀에 고정된 플라스틱 의자가 줄줄이 놓여있고, 왼쪽에는 푹신한 소파가 둥글게 몇 겹의 원을 이루며 놓여 있었다. 소파 구역의 중앙 탁자에는 플라스틱 꽃까지 꽂혀 있었다. 플라스틱 의자에는 화장을 기다리는 대기자가 무척 많았지만 소파 쪽에는 다섯 명뿐이었다. 그들은 전부 성공한 명사들처럼 느긋하게 다리를 꼬고 앉았고, 플라스틱 의자 쪽 사람들은 하나같이 옷깃을 여민 채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귀빈 구역의 화제는 수의와 유골함이었다. 그들이 입고 있는 것은 모두 최고급 명주 수의로, 손으로 직접 수를 놓은 화려한 무늬가 눈에 띄었다. 그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수의의 가격을 말했는데, 여섯 명 모두 2만 위안이 넘었다. (…) 이어서 그들은 자신의 유골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모두 장미목 재질에 정교한 무늬가 조각되어 있으면 6만 위안이 넘는다고 했다.
   우리 쪽에서도 수의와 유골함에 관해 이야기가 오갔다. 플라스틱 의자에 앉은 사람들은 인조 견사에 천연 면사가 섞인 1천 위안 이하의 수의를 입고 있었다. 유골함은 측백나무나 잡목 재질에 조각은 없었고 가장 비싼 게 8백 위안, 가장 싼 게 2백 위안이었다. (17-20쪽)

 

“현재 중국에는 경제 발전의 폐해인 불평등 문제가 불거지고 있고, 그 점을 소설 속에서 부각시키고 싶었습니다.”

 

《제7일》에선 화장터에서 화장된 후 유골함에 안치되는 것도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수의와 유골함, 묘지 등을 마련할 만한 경제적 여력이 있고, 죽은 이를 애도해줄 누군가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니까요.

 

“죽고 나서 ‘안식의 땅’으로 가지 못한 사람들은 현실세계에서 잊힌 고독한 사람들입니다. 가족이 있다 해도 그 사람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생사를 알지 못하니, 스스로가 직접 자신을 애도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고요.”

 

   걸음을 옮기려다가 뭔가 잊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어 흩날리는 눈송이 속에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상장(喪章)이 떠올랐다. 나는 외톨이라서 애도해줄 사람이 없으니 스스로 애도하는 수밖에.
   다시 셋집으로 돌아가 옷장에서 검은 천을 찾았다. 한참을 뒤졌지만 검은 천은 보이지 않고, 대신 검은 셔츠가 눈에 들어왔다. 오래된 탓에 검은색에 희끄무레한 색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소매 일부를 잘라 하얀 잠옷의 왼쪽 소매에 끼웠다. 스스로 애도하는 모양새라 부족한 감이 있지만 그것만으로 이미 만족스러웠다. (16쪽)

 

 

소설 속 모든 이야기는 화자인 ‘양페이’를 통해 전해집니다. 그리고 그는 이승에서의 자신의 삶뿐 아니라 사후세계에서 만난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을 차분한 어조로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제7일》의 서사가 그를 통해 진행되는 만큼, 이 인물의 성격이나 태도 등이 무엇보다 중요했을 것 같습니다.

 

“‘양페이’가 차분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건 그가 이미 죽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소설의 배경이 사후세계인 것과 마찬가지로, 이야기 속 상황들을 더욱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한 장치이고요.”

 

   앞으로 걷고 또 걸어 시청 앞 광장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2백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강제 폭력 철거에 항의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현수막도 걸지 않고 구호도 외치지 않았다. 그저 각자의 불행을 이야기할 뿐이었다. 모여 있는 사람들을 헤치고 지나가면서 나는 그들이 서로 다른 강제 철거의 피해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나는 그 폐허를 바라보았다. 콘크리트 사이로 옷가지들이 듬성듬성 보였다. 옆으로 지게차 두 대와 트럭 두 대, 경찰차 한 대가 정차해 있고 따뜻한 차 안에 경찰 네 명이 앉아 있었다.

   빨간색 오리털 점퍼를 입은 여자아이가 부러진 철근이 양옆으로 구불구불 튀어나온 시멘트 판에 혼자 앉아 있었다. (…) 아침에 집을 나서 학교에 갔다가 오후에 수업을 마치고 돌아왔더니 집이 사라진 것이다. 집도 부모도 보이지 않아, 폐허에 앉은 채 부모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칼바람에 덜덜 떨면서 숙제를 하고 있었다. (‘첫째 날’, 30, 34쪽)

 

(…)
“저쪽에서 우리 딸을 보신 적이 있나요?”

 

(…)
“두 분 딸을 보았습니다. 정샤오민이죠.”

 

(…)
나는 그들이 말하는 딸이 누구인지 알았다. 빨간 오리털 점퍼 차림으로 콘크리트 폐허 위에 앉아, 그 차가운 바람 속에서 숙제를 하며 부모를 기다리던 여자아이였던 것이다. (…) 아이는 부모가 바로 밑 폐허 속에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
“샤오민은 두 분 위에 앉아 있었어요.” (‘다섯째 날’, 204, 207, 209쪽)

 

그가 전해준 저마다의 사연에 화가 나고 눈물도 나고 미소가 번지기도 합니다.

 

“소설로 옮기면서 재구성된 면이 있지만, 실제로 모두 중국에서 일어났던 일들입니다.”

 

‘샤오민’의 부모는 야근 후 새벽에 돌아와 아이를 학교에 보낸 후 잠들어 있었습니다. 강제 철거가 이미 진행된 후에야 잠에서 깨어나고요. 그래서 그들이 무너지는 건물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채 폐허 속에 묻히게 된 것이고요. 하지만 이들의 죽음은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습니다. 권력에 의해 “그들 부부가 업무 중에 함께 순직했다는 이야기로” 엄폐되었으니까요. 소설 안에는 이 같이 사건의 진실을 은폐하고 왜곡된 뉴스를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가 여실히 드러나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문학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작가로서 현실을 직시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세대 작가들이 다들 그런 것처럼 저 또한 제 작품을 통해 실제 현실을 일관되게 다루어왔는데요. 요즘은 이 일에 다소 어려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실제 중국사회가 소설보다 더 황당한 경우가 많거든요. 말하자면, 지금 중국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으면 ‘이거 그냥 현실 이야기지.’ 정도로 받아들인다는 거죠. 하지만 이 소설을 미래의 독자들이 다시 읽는다면 그때는 비로소 ‘우리가 정말 황당한 시대를 살았었구나’ 생각할 수 있겠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소설이 중국 현실을 따라갈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소설보다 황당한 중국사회, 이 현실을 제대로 알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할 텐데요. 언론의 자유, 실제 중국 상황은 어떤가요?

 

“중국 정부는 매체와 문학에 대한 통제와 검열을 계속 해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방식이 조금 달라졌죠. 소설의 경우, 독자들이 직접 찾아서 읽어야 하기 때문에 TV나 신문 등의 다른 매체에 비해 영향력이 크지 않다고 봅니다. 그래서 현재 문학은 출판사 사장이 그 소설을 출간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고요. 반면에 매체에 대한 통제는 여전히 강한 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 매체를 통해, 놀고 싶어서 문학을 시작하게 됐다고 밝히셨습니다.

 

“일단 ‘논다’는 것은 자유와 관계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그 외의 일은 하지 않는 것이죠. 지금도 물론 그 생각은 유효하고요.”

 

놀려고 문학을 한다고는 하셨지만 창작의 고통이 있을 것 같은데요. 작품 쓰시다가 스트레스가 생길 때 어떻게 해소하시는지요.

 

“처음에 글쓰기를 시작했을 땐 굉장히 스트레스가 심했습니다. 무엇을 쓴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지기도 했고, 점점 더 글 쓰는 게 재미있어졌습니다. 가장 좋은 건 내가 무엇을 쓰고 있는지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몰입해서 글을 쓰는 건데, 지금은 거의 내 존재를 잊을 만큼 몰두해서 쓰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렇게 한참 글을 쓸 때는 뇌가 각성 상태여서 잠을 잘 못 잡니다. 반면, 글쓰기가 잘 안 될 때는 잠이 솔솔 쏟아지고요. 필요할 때 자고 필요 없을 때 안 자야 하는데 그게 바뀌어있어 고민입니다.(웃음)”

 

 

작가로서 앞으로의 목표가 있으실 텐데요.

 

“단순합니다. 내가 계속해서 스스로 만족할 만한 작품을 써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이죠.”

 

 

위화(余華)

 

1960년 중국 저장성에서 태어났다. 1983년 단편소설 〈첫 번째 기숙사〉를 발표하면서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세상사는 연기와 같다〉 등 실험성 강한 중단편 소설을 잇달아 내놓으며 중국 제3세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첫 장편소설 《가랑비 속의 외침》으로 새로운 글쓰기를 선보인 위화는 두 번째 장편소설 《인생》을 통해 작가로서 확실한 기반을 다졌다. 《인생》은 장이머우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으로 '위화 현상'을 일으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1996년에 출간한 장편소설 《허삼관 매혈기》로 세계 문단의 극찬을 받으며 명실상부한 중국 대표 작가로 자리를 굳혔다.

 

1998년 이탈리아 그린차네 카보우르 문학상, 2002년 중국 작가 최초로 제임스 조이스 기금, 2004년 프랑스 문학예술 훈장 및 미국 반스 앤 노블의 신인작가상, 2005년 중화도서 공로상, 2008년 프랑스 꾸리에 엥테르나시오날 해외 도서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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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만난 사람] 닫히지 않는 이야기의 문 -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의 소설가 에트가르 케레트

 

 

취재·편집·정리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희진

사진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주변에 하나쯤은 이야기를 참 맛갈나게 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똑같은 사건과 줄거리일지라도 그 사람의 입을 통해서라면 이야기가 더 흥미진진해지고 쫀득쫀득해집니다. 살을 더하거나 빼고 강약과 완급을 조절하면서 같은 이야기를 다르게 말하는 재주가 있기 때문이죠. 그러니 그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의 입장에선, 다음은, 그 다음은? 하고 성마르게 이야기를 재촉할 수밖에 없는데요. 이런 이야기꾼에게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려, 강도처럼 이야기를 요구한다면 어떨까요? “이야기 하나 해봐.” 라며 권총으로 위협하고 윽박지르면서 말이죠. 

 

“평소처럼 하면 되잖아.” 수염은 투덜대며 권총의 공이치기를 당긴다. “이야기를 하느냐, 두 눈 사이에 총알이 박히느냐야.”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 수염은 농담하는 게 아니다. 나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11쪽,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중에서)

 

‘나’가 시작한 그 이야기가 궁금하시다고요? 그렇다니까요. 바로 그거거든요.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에 담긴 모든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다음은, 그 다음은?’이라는 마음의 소리를 반복하게 만들고, 그렇게 기발하고 통통 튀는 상상력으로 현실 안에서 초현실을 꺼내고, 초현실 안에서 현실이 떠오르게 하는 재주가 바로, 낯선 나라 이스라엘에서 건너온 작가 ‘에트가르 케레트’의 매력이라는 거죠. 그의 이야기,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요?

 

 

 

반디| 작품은 그것의 태생적 배경, 즉 작품이 쓰인 시기의 역사적 상황, 작가의 성장 환경 등을 지니게 됩니다. 작가님의 작품 또한 이스라엘의 현대사라는 배경과 연관해 독해되곤 하는데요. 2013년, 한국 현대사의 자장 안에 있는 독자들에게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로 묶인 작가님의 “주관적인 이야기”가 어떤 “생각과 느낌”으로 다가가길 바라시는지요?

 

에트가르 케레트| 지리적으로 멀리 사는 독자들이 최고인 것 같아요. 이스라엘이라는 특정 나라에서 살고 있는 저자신도 인식하지 못했던 것들을 그 분들이 소설에서 발견하시거든요. 저는 독자들한테 이스라엘의 어떤 면을 가르치고 싶은 게 아니라, 스토리를 같이 나누고 공감하고 싶을 뿐입니다.

 

반디 | 표제작인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는 작가의 집에 괴한들이 들이닥쳐 이야기를 해 보라며 종용하는 내용의 소설입니다. 이 소설을 첫 번째 순서로 하여 나머지 각각의 소설들이 배치된 점이 흥미롭습니다. 꼭 ‘천일야화’ 같기도 하고요. 다른 점이라면 책에 실린 이 소설들은 서로 연결되지 않은 개별의 이야기라는 것이겠죠. 그 중에서도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는 이 이야기들의 시작에 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 모든 이야기들을 시작하게 한 작가님의 동력은 무엇이었나요?

 

에트가르 케레트| 이 책이 쓰여진 때는 개인적으로 제 삶에서 매우 특별한 시기였습니다. 소설을 쓰는 사이에 결혼도 하고, 담보대출로 아파트도 얻고, 아이도 생겼거든요. 이로써 이전과는 다른 삶의 스타일을 갖게 되었고, 이와 동시에 글을 쓰는 새로운 방식을 찾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마찬가지로 제가 써나갈 이야기가 과연 독자들에게 충분히 다가갈 지를 확신하는 데에도 시간이 조금 걸렸고요. 

 

표제작은 그 모든 것을 가능케 했던 계기가 된 이야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는 인물이 처한 환경적인 부분이 아니라 그 인물의 복잡미묘한 감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거든요. 말하자면, 객관적인 사건은 중요하지 않다는 거죠. 객관적인 사건일지라도 사람들은 그것을 주관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니까요. 동일 사건이 어떤 사람에게는 트라우마로 남는 반면, 어떤 사람은 신경조차 쓰지 않고 살게 되는 것처럼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삶에서 특정 사건이 일어나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그 사건을 통해 주인공이 어떤 강렬한 감정을 느꼈느냐에 더 주목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글에서 사냥을 하는 사람보다 아파트를 파는 부동산 중개업자들의 삶이 훨씬 흥미로울 수도 있고요.  

 

제목인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는 삶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은유합니다. 이 변화가 인물의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고요. 예컨대, 잘 살아가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제 삶의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겁니다. 그런데 그게 누구인지는 몰라요. 그저 문을 여는 순간 눈앞에 또 다른 삶이 펼쳐지는 거죠. 개인적으로는, 제가 부모가 되면서 다른 생명에 대한 책임감을 갖게 되었는데, 그러한 변화가 이 책에도 반영되었다고 봅니다. 

 

반디| 그런가 하면, 모든 이야기의 시작에는 이야기 자체가 지닌 힘에 대한 믿음이 전제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야기는 누군가의 삶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미치게 될 테니까요.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를 읽으며 무엇보다 강하게 남은 인상 또한 그것이었는데요. 직접 이야기를 만들고 쓰시는 작가님께서도 이 이야기의 힘을 느끼신 경험이 있을 것 같습니다. 기억에 남은 일화가 있다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에트가르 케레트| 사실 저는 작가로서 책을 출판하기 전부터 이야기에 힘이 있다고 믿어왔습니다. 어렸을 때의 일인데요. 거리에서 어떤 여자가 주먹으로 남자를 때리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몰랐지만 저는 그 상황에 대한 저만의 이야기를 지어냈습니다. 얼굴을 맞은 남자가 여자의 이복동생이었는데 어머니가 죽고 화가 나서 때린 거라는 식으로 맥락을 만들면서요. 이야기를 지어냄으로써 폭력을 중화시켰던 경험이죠.

 

 

반디|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의 단편들에선 일상이 재기발랄하게 묘사되는 상황에서도 삶의 비의가 드러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삶이란 땀을 흘리는 것, 삶이란 지랄맞게 잊을 수 없는 아픔”(190쪽, <치핵>)이라고도 말씀하셨는데요. 하지만 인물들은 이런 삶일지라도 거부하지 않고 희망에 좀 더 가까이 가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아픔을 “살아 있는 느낌”(58쪽, <아침을 건강하게>)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도 보이고요. 아픔 자체인 현실에서 문학의 역할, 작가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에트가르 케레트| 사람들은 보통 기쁨과 고통, 두 가지로 감정을 구분하곤 하는데, 저는 뭔가를 느끼는 상태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한 상태로 구분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놀이공원을 갔다가 그곳을 나서면서, 누군가는 기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아무 감정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의 시간으로 아무것도 느낀 게 없다면 티켓을 낭비한 게 되겠고요. 물론 저 또한 삶에서 기쁨을 느끼는 편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어떤 일로부터 고통을 느낀다고 해서 제 삶 전체를 고통이 지배하는 것은 아닙니다. 고통에서 기쁨만을 따로 분리해 살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아들한테 늘 하는 이야기가 ‘네가 원하지 않는 음식은 먹을 필요가 없지만 항상 모든 것을 맛보도록 하라’는 겁니다. 음식의 다양한 맛을 느끼듯, 삶이 가진 다양성을 충분히 활용하라는 의미죠.

 

반디| 많은 단편들에서 ‘거짓말’이 나오는데요. 기본적으로 허구인 소설 속에 거짓말로 이야기를 꾸며내는 인물이나 그 거짓말로 만들어진 또 다른 세계가 등장하는 순간, 독자의 입장에선 허구인 이야기와 거짓말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야기와 거짓말에 대해, 작가님께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에트가르 케레트| 저에게 있어 소설(fiction)은 진실에 도달하기 위한 이야기(story) 혹은 거짓말을 하기 위한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거짓말이 있는데요. 어떤 상황을 모면하고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거짓말이 있는가 하면, 동정이나 연민 같은 인간적 감정이 작용해 타인을 보호하기 위한 거짓말도 있습니다.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우리가 언제나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면, 누군가에게 그 삶은 지금보다 조금 더 쉬워질 수 있지만 진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에게는 삶이 더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저도 살면서 거짓말을 하지만 의도는 거의 선한 것이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허구인 이야기는거짓말로 점철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는데, 제가 가장 진실해질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제가 쓰는 이야기 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때 거짓말과 진실, 좋은 것과 나쁜 것 사이의 경계를 두기보다는 그 뒤에 있는 의도가 무엇이었는지-선한지 악한지에 대해 더 중점을 두는 편이고요.

 

반디| 개인적으로 <거짓말 나라>나 <문예 창작> 같은 경우는 결말에 이르러 아쉬울 만큼 더 보고 싶은 소설이었습니다. 이야기가 끝나지 않고 이어질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는데요. 그만큼 이야기 내에 또 다른 이야기가 가지를 치는 식으로 쓰인 것이 꽤 있습니다. 특히 이것을 아주 짧은 단편 소설 안에서 시도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아무래도 단편소설은 형식상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기에 한계가 있을 텐데, 그럼에도 단편소설 쓰기를 선호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에트가르 케레트| 개인적으로 ‘선호’한다는 말은 쓰고 싶지 않아요. 저도 기꺼이 장편소설을 쓸 용의가 있긴 합니다. 출판업자도 좋아하고, 제 은행잔고에도 도움이 될 테니까요. (웃음) 하지만 단편소설을 쓰는 이유는 그것이 제가 이야기를 쓸 줄 아는 유일한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이야기의 결말은 작가인 제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이야기 스스로가 결정한다고 느끼는데요. 예컨대, 어떤 문을 향해 가고 있는데 갑자기 그 문이 제 앞에서 닫히면서 소설이라는 형식 안에 있는 이야기가 끝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다다르는 거죠. 이렇듯 저는, 소설이 끝나도 끝나지 않는 이야기의 느낌을 갖는 게 독자들에게는 좋다고 생각하는데요. 쓰기-읽기가 작가와 독자의 지성이 만나는 관계라고 본다면, 독자 나름대로 다음의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스스로 생각해보는 게 엄격한 틀에서 쓰여진 이야기를 접하는 것보다 좋을 테니까요.

 

반디| 이야기를 쓰는 게 어떤 방식으로든 진실에 다가가는 작업이라면, 그 이후의 이야기를 상상하는 독자가 글로 쓰인 소설을 경유해 작가님께서 전하고자 하는 진실에 다가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시나요?

 

에트가르 케레트| 독서는 작가와 독자가 매우 친밀해질 수 있는 시간인 것 같습니다. 제가 타인에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민다면 사람들은 그 경험을 저마다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처럼(작가님께서 실제로도 이 말씀을 하실 때 통역해주시는 여성 분의 얼굴에 본인의 얼굴을 아주 가까이 들이미셨더랬습니다^^) 독자들 또한 자신만의 상황이나 감정을 갖고 책을 읽을 겁니다. 그래서 같은 책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독자마다 달라질 수밖에 없고요. 예를 들어, 제가 쓴 한 편의 이야기를 두 명의 감독이 각각 로맨스와 호러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같은 이야기인데도 로맨스 영화를 만든 감독은 흥미롭고 재미있게 느꼈고, 호러 영화를 만든 감독은 무서웠다고 해요.

 

그러니까 제가 말하는 진실은 외부에서 보는 객관적인 진실이 아니라 독자들 각자가 자기 삶과 관련해 질문을 이끌어내고 그로부터 얻어지는 진실인 거죠. 

 

반디| 소설집 안에는 작가님의 번뜩이는 상상력이 가득합니다. 평소에도 상상이나 공상을 많이 하실 것 같은데요. 불시에 찾아든 어떤 상상이 한 편의 소설로 완성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작가님만의 작업 방식을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소설 쓰실 때의 습관이라든지, 작업하시는 공간의 분위기 같은 것도 궁금하고요.

 

에트가르 케레트| 저는 항상 다른 것들에 대해서 상상합니다. 시간이 될 때마다 다른 이미지를 상상하기도 하고요.어떤 장소에서 무엇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하는 생각들이요. 어릴 때도 공상이 많은 편이었는데, 제가 공상한 것들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면 불편해하거나 당황스러워 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그래서 은행을 턴다든지, 누군가와 사랑을 나눈다든지 하는 공상들은 점점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지 않게 되고, 제 사적인 감정으로만 남게 되었죠.

 

글쓰기 규칙 같은 걸 따로 정해 놓지는 않습니다. 매일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글을 쓰려면 저 혼자만의 장소가 필요합니다. 아들이나 아내가 있으면 글쓰기에 집중하기 힘들어서요. 장소만 있다면 그곳이 깔끔한 곳인지 지저분한 곳인지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더운 나라다 보니 속옷 차림으로 쓸 때도 있고, 소설을 쓰면서 관련된 것들을 큰소리로 중얼거리기도 합니다. 한 가지 일화를 말씀드리자면, 예전에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외부 지원금을 받고 작가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 작업을 한 적이 있습니다. 창밖에 숲이 보이고 경관이 매우 아름다운 곳이었는데요. 한 번은 그곳에 초대된 친구가 저한테 묻더라고요. ‘네가 글쓰기를 할 때 창밖의 아름다운 숲은 보지 않고 변기를 쳐다보더라. 왜 그랬니?’ 그 질문을 받고 제가 ‘의식적으로 그런 건 아닌데 글을 쓸 때는 물리적인 실제 장소가 아닌 다른 장소에 와 있는 것 같다’고 대답한 적이 있습니다. 글을 안 쓸 때는 저도 아름다운 경관 안에 있는 것을 좋아하지만, 글을 쓸 때만큼은 물리적인 장소가 그리 중요한 것 같지 않습니다.

 

 

반디| 이스라엘은 세계에서 가장 뜨겁고 민감한 곳 중 하나라고 생각되는데요. 그래서 타국의 사람들에겐 이스라엘의 문학작품보다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사건이 더 많이 알려져 있는 것도 같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오늘날 이스라엘에서 소설가로 산다는 것이 작가님께 어떤 의미일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에트가르 케레트| 이스라엘이 분쟁과 갈등이 많은 지역이긴 하지만, 살기에는 나쁘지 않은 곳이고 글쓰기에는 더없이 좋은 도시라고 생각합니다. 본질적으로 이야기는 갈등관계와 다양성에 기반을 두고 쓰여지는데, 이스라엘만큼 갈등관계가 많은 곳도 없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이야기를 쓰려고 하는 사람에게 이스라엘은 천국과도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가끔 상상을 하게 되는데, 공항에서 여권 검사를 할 때 좋은 이야깃거리가 있는지를 보고 통과를 시켜주는 겁니다. (웃음)

 

반디| 살만 루슈디, 아모스 오즈, 조너선 사프란 포어, 얀 마텔 등 동시대 각국의 작가들에게 호평을 받으셨습니다. 작가님께도 한 사람의 독자로서 호평을 보내고 싶은 작가가 있을 텐데요. 동시대에 주목하고 있는 작가가 있다면, 해당 작품과 그 이유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에트가르 케레트| 동시대 유대계 작가들과 매우 인상적인 대화를 한 적이 있습니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와 ‘마이클 샤본’ 등인데요. 이들에게 중요한 문제는 정체성입니다. 상대적으로 이스라엘 작가들에게서는 이와 같은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별로 없는데, 저의 경우는 오히려 외국에 사는 유대계 작가들에게 더 친밀감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반디 | 정체성의 문제를 말씀해주셨는데요. 자국 내 작가들이 느끼는 정체성과 이주한 작가들-디아스포라-이 다른 나라에서 고민하는 정체성은 그 본질에 있어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다. 작가님께서 관심을 가지고 계신 정체성 문제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을까요?

 

에트가르 케레트| 디아스포라 유대인에게는 정체성의 문제가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질문을 항상 하게 되니까요. 만약 내가 유대계 미국인이나 유대계 프랑스인이라면 어느 쪽 정체성에 더 가까운지, 자신을 규정하는 그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문학에서도 자연스럽게 그런 주제를 쓰게 됩니다. 반면에 이스라엘에서는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죠. 이스라엘인이 곧 유대인이니까요. 그래서 이스라엘 문학에서는 개인적인 정체성 문제보다 집단적인 이슈, 어떤 것이 국가에 이해득실을 가져오는지를 고민하는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제 경우에는 심리적으로 디아스포라 유대인을 더 가까이 느끼는데요. 굳이 정체성을 구분하자면 제 자신이 이스라엘인이라기보다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을 더 강하게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늘, 어떤 그룹에 속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이스라엘에 속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어떤 측면에서 나와 맞지 않고 또 어떤 측면에서는 동질감을 느끼는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반디| 어떤 상황이나 사건에서 비롯되는 개인의 감정을 중요시한다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정체성 문제에 대한 작가적 관심이 국가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문제의식과 이어진다고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에트가르 케레트| 대개의 사람들이 국적에 따른 정체성을 당연시하지만, 제가 쓰는 이야기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국적이 본질적으로 내재적으로 설정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늑대는 그저 한 마리의 늑대로 살아갈 뿐, 자기가 어떤 군락에 속해 있는지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요. 사실상 국가라는 형태가 역사에 등장한 지는 얼마 안 됐고, 그 전까지 인류는 아주 오랫동안 부족 형태로 살았잖아요. 이 국가라는 개념을 아파트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파트에 사는 세입자들이 공용 구역 청소를 얼마나 자주 하고, 침입자로부터 어떻게 사람들을 보호할 지 다같이 고민하는 것처럼, 국적을 선택하는 일도 같은 식으로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거죠. 유대인은 꼭 이스라엘계가 아닌 경우도 많기 때문에 이와 같이 국가와 연관된 자기 정체성 문제에서 보다 자유롭지 않을까 생각하는데요. 제가 디아스포라 유대인에 대해 감정적으로 동질감을 느끼는 것도 그들의 문화가 개별 국가의 경계를 넘어선 코스모폴리탄적 성격을 지니기 때문이고요.

 

반면에 이스라엘처럼 국적을 중요시 여기는 나라에 사는 것은 심리적으로 부담이 됩니다. 제가 ‘텔아비브’의 작은 동네에서 살았는데요. 여섯 살 때 축구 토너먼트 경기를 보러 간 적이 있습니다. 그게 태어나 처음 보는 축구경기였는데, 저희 동네 팀과 다른 동네 팀이 겨루는 경기였습니다. 그런데 한참을 보다 보니 다른 동네 팀이 신사적인 태도로 경기를 더 잘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쪽을 응원했는데, 선생님이 왜 다른 쪽을 응원하느냐고 해서 반발심을 느꼈었습니다.

 

또 제게는 형 한 명과 누나 한 명이 있는데, 형은 무정부주의자에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건국이 정당화될 수 없고, 그래서 아랍 국가들 사이에서 소수인종으로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누나는 신앙심이 굉장히 깊어서 종교지도자가 곧 정치지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믿고, 열한 명의 아이와 열 명의 손자를 갖고 있는 분이죠. 그런데 이렇게 형제 자매와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고 해서 그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제 형제 자매는 모두 친절하고 따뜻하고 똑똑한 사람들이니까요. 오히려 제가 정치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이 개인적으로는 제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은 거짓말을 하고 탈세를 하기도 하니까요. 말하자면, 사람을 볼 때 개인을 바라보지, 이데올로기나 사상을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는 거죠.

 

반디| 소설뿐 아니라 영화도 연출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작가님의 상상을 구현하는 데 있어, 소설과 영화 각각의 매력이 무엇인가요? 

 

에트가르 케레트| 영화의 매력은 여러 사람이 협업한다는 데 있습니다. 애초에 제가 글쓰기를 시작한 것도 다른 사람들에 대한 애정에서 시작한 것인데, 글쓰기 자체는 작가가 혼자서 해야 하는 외로운 작업이잖아요. 그래서 다른 사람과 함께 작업할 수 있는 연극이나 영화에 관심이 생기고 좋아하게 된 것 같습니다. 본질적으로 저는 다른 사람과 일하면서 느끼는 연대감을 원했고, 그런 측면에서 영화가 큰 매력으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영화는 일하는 사람들과 연대감을 갖을 수 있저는 일하는 사람들과 연대감을 느낄 수 있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사람과 일하기를 선호하는데, 재능이 부족하더라도 착하고 친절한 사람들과 일하고 싶습니다. 

 

반디|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계시는 만큼 다양한 영역에 관심을 갖고 계실 것 같습니다. 한국의 소설이나 영화, 혹은 그 밖의 문화를 접해보셨나요?

 

에트가르 케레트| 부끄럽게도 한국에 대해 거의 모른다고 말씀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 책을 읽은 적은 없지만, 굉장히 훌륭하고 유명한 한국영화 제작자들이 만든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 한국을 방문하면서 호기심도 생기고 한국문화에 대해 배워야 할 필요성을 느껴져 앞으로 한국에 대해 더 배워볼 생각입니다.

 

에트가르 케레트(Etgar Keret)

 

이스라엘 젊은 세대의 가장 큰 지지를 받는 단편의 귀재이자 <뉴욕 타임스>로부터 '천재'라는 찬사를, 살만 루슈디, 아모스 오즈, 얀 마텔, 조너선 사프란 푸어 등 동료 작가들의 극찬을 받은 동시대 가장 독창적인 작가. 1967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태어났다.

 

1992년 소설집 《파이프》로 데뷔했다. 두번째 소설집 《미싱 키신저》로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후 정체성과 사랑에 대한 고뇌, 고독감 등을 초현실적으로 그려낸 단편들을 발표해 카프카에 비견되었다. 《신이 되고 싶었던 버스 운전사》를 비롯해 《냉장고 위의 소녀》《네 편의 이야기》 등 문학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여러 소설집이 35개국 32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는 여덟번째 소설집으로 기발하고 독창적인 스타일이 무르익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이스라엘에서 성공을 거두었고, 2012년 미국에서 여섯번째로 번역 출간되어 그해 아마존 '올해의 책'에 선정된 것은 물론, 전 세계 22개국에 판권이 팔리는 등 세계적인 작가의 입지를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밖에도 몇 권의 만화책을 공동 집필하고 어린이책을 썼으며 본인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텔레비전 영화 시나리오를 집필했다. 다른 예술인들에게도 영감을 주어 몇몇 단편이 그래픽 노블 《시차증》《가미카제 피자집》으로 묶여 나왔고, <리스트 커터스―어떤 사랑 이야기>의 원작인 중편소설 〈크넬러의 행복한 캠프 생활자들〉을 비롯해 40여 편의 작품이 영화화되었다. 그 자신도 영화에 조예가 깊어 아내와 공동 연출한 <젤리피시>가 2007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했고 지금까지 영화 작업을 계속해오고 있다.

 

이스라엘 출판협회에서 수여하는 플래티넘 상, 총리상 문학 부분, 문화부장관상 영화 부분을 수상했고 프랑스 문화예술 공로훈장 슈발리에를 수훈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미란다 줄라이가 수상하기도 한 국제적 권위의 단편문학상 프랭크 오코너 국제 단편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현재 네게브의 벤구리온 대학교와 텔아비브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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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만난 사람] ‘명불허전(名不虛傳)’의 체험이 시작됐다! - 《허허 동의보감》 출간기념 간담회

 

 

취재·편집·정리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이미지 제공 | 도서출판 시루

 

명불허전(名不虛傳: 名 이름 명, 不 아닐 불, 虛 빌 허, 傳 전할 전) 이름은 헛되이 전(傳)해지는 법이 아니라는 뜻으로, 명성(名聲)이나 명예(名譽)가 널리 알려진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理由)가 있음을 이르는 말

 

여기, 우리에게 전해진 두 개의 이름, ‘허준’과 ‘동의보감’이 있습니다. 허준 선생이야 부나 명예에 연연하지 않고 병자를 치유하는 데 성심과 성의를 다했던 강직한 의원이라, 모 연예인이 주인공으로 분한 드라마를 통해 익히 접한 바 있고, 동의보감은…… 글쎄요. 드라마는 허준 선생의 일대기와 활약상만을 보여줄 뿐, 그가 만든 ‘동의보감’의 내용까지는 세세히 다루어주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니까 우리는 ‘동의보감’이라는 이름만 알고 있지, 그것이 지금과 같이 널리 알려진 데 어떠한 이유가 있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누군가는 ‘허준’ 선생이 자신의 의술을 집약해 “의사 없이도” 누구나 무병장수할 수 있도록 만든 책이라고, 어디선가 주워들은 바를 읊어댈 수도 있겠는데요. 하지만 무병이란 걸 우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꾀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사용해 실제로 병을 예방한 경험이 있기는 한지를 재차 묻는다면, 아마도 열에 아홉은 더 이상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입을 다물 것입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아직 2009년 유네스코가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한 ‘동의보감’을 두고 ‘명불허전’이라 소리 높이며 자신 있게 자랑할 만한 처지가 못 된다는 거죠.

 

 

 

그래서 또 하나의 이름, 만화가 ‘허영만’이 나섰습니다. ‘각시탈’, ‘비트’, ‘타짜’, ‘식객’ 등 수많은 히트작을 통해 대중의 폭넓은 사랑을 받아온 그가 이제껏 부질없이 이름만 널리 알려진 ‘동의보감’을 직접 펼쳐, 그 안에 빼곡히 담긴 건강 지혜들을 누구나 쉽게 접해볼 수 있도록 만화로 재탄생시킨 것인데요. 총 14년을 걸쳐 25권으로 정리한 허준 선생의 《동의보감》이 세상에 나온 지도 어언 400년, 그 ‘명불허전’의 체험이 지난 40여 년간 배우고 관찰한 것들을 꾸준히 만화로 옮겨온 허영만 선생님의 귀한 손을 거쳐 《허허 동의보감》이라는 이름을 달고 이제 막, 시작된 참입니다.

 

이번에 출간된 《허허 동의보감》 1권은 매주 수요일 선생님께서 한의사 세 분과 《동의보감》을 2년 동안 공부한 결과라고 알고 있습니다. 《허허 동의보감》 이 완간될 때까지 이 공부 모임은 계속될 텐데요. 어떻게 모이게 되셨나요?

 

 

 

허영만 | 제일 처음에는 제 고등학교 15회 후배인 황인태 원장과 《동의보감》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렇게 6개월을 공부하다 임상 경험 같은 경우, 한 사람보다는 더 많은 사람에게서 재미있는 얘기가 나올 것 같아 오수석 원장님과 박석준 원장님을 모시게 됐죠. 오늘 이 자리(8월 21일, 대치동 ‘다솜 한의원’에서 있었던 《허허 동의보감》 출판간담회)에 참석하진 못했지만, 박석준 원장님은 《식객》 그릴 때부터 한의학 쪽으로 의문이 생기면 자문을 구하던 분이시고, 우연찮게 세 분 모두 고등학교 동문을 인연으로 최강의 멤버들이 모이게 된 겁니다.

 

《동의보감》은 처음부터 순서대로 공부하고 계신가요?

 

허영만 | 허준 선생도 고심해서 만들어낸 순서일 텐데, 그 순서에 입각해 공부해나가는 데 혼란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생각입니다. 후반부에 재미있는 얘기들이 많이 나온다고 하는데, 앞의 기본도 모르고 재미 있는 것부터 이야기하면 되겠나 싶기도 하고요.

 

오수석 | 보통 의학 서적은 증상부터 다루는 게 대부분입니다. 이번에 1권으로 출간된 게 《동의보감》 중 신행 편에 해당하는데, 허준 선생께서 나는 앞으로 우주와 자연과 인간을 이렇게 바라보겠다고 전제하는 논문의 서론이라 볼 수 있습니다. 총론을 정해 뼈대부터 세운 후 이야기를 시작하는 건데, 이런 구성은 다른 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데다 그래서 철학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같이 《동의보감》이 일관된 체계를 가지고 완성될 수 있었던 데에는 당시의 역사적 상황, 전쟁이나 귀향 등이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시에 많은 사람들이 피난을 가면서 허준 선생이 자기 소신껏 편재를 하고 귀향 가 있는 동안 집필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을 테니까요.

 

공부하다가 선생님께서도 직접 맥을 잡히기도 하고 그러시나요?

 

허영만 | 잽히죠. 누구나 손을 잽히죠. (웃음) 맥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보시는 분이 또 있거든요. 그 분이 두 주 정도 와서 강의를 하셨고요. 기공 같은 경우도 진짜로 잘 아시는 분 모시고 공부를 했는데, 그 분들 이야기는 두 번째 권에 나올 겁니다. (신민식 | 취재 후기 형태로 매권별로 두 분 정도씩 우리가 취재하거나 모셨던 분들의 이야기가 들어갈 예정이예요.)

 

오수석 | 《동의보감》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증상이 다 있습니다. 저도 동의보감 위주로 진료를 하지만 완벽하게 모든 분야에 잘 할 수는 없거든요. 그런데 《동의보감》을 알리는 취지에 공감하는 한의사 동료들이 아무 대가 없이 와서 강의를 해줬어요. 앞으로도 공부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부족한 게 있다면 그 분야의 전문가를 초빙해 모실 생각입니다. 이게 또 우리 자산을 발굴하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양방에서 각각 영역별로 전문의가 따로 있지만 한방은 그렇지 않죠?

 

오수석 | 학문 자체가 그래요. 예를 들어, 허리가 아프면 허리 자체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자궁이나 위장, 콩밭 등에 같이 문제가 있을 수 있거든요. 말하자면 한의학적 관점에선 인체의 모든 부분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연결되어 있다는 거죠. 그래서 한 사람이 다 볼 수밖에 없는 거고요. 지금은 돌아가신 제 은사님하고 공부할 때 있었던 일화인데요. 자주 가는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평소보다 음식이 짜요. 그러니까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 ‘저 안에 있는 주방장 허리가 아플 것이다’라고 하셔서 가보니까 정말 허리가 아프다는 거예요. 그러면 선생님께선 허리가 아픈 걸 어떻게 아셨느냐, 이건데, 짠 맛은 콩팥하고 연관되어 있으니까 자연히 허리가 아플 수밖에 없다는 거죠.

 

원래부터 한의학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동의보감》을 만화로 그리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허영만 | 우리 어렸을 때는 한의학이 일상에 늘 같이 있었어요. 잘 아는 동네 할아버지가 한의원을 하셨는데, 거기 갈 때마다 계피를 주셔서 자주 갔었지. 그땐 군것질 거리가 없었으니까 그거 야금야금 깨먹고 돌아다니고 그랬고. 그리고 어릴 때 내가 약했어요. 학교에서 한 여름에 운동장에 세워 놓으면 비실비실 쓰러지고 그랬다고. 그래서 우리 할아버지가 ‘저 놈, 부지런히 먹여라. 부실해서 어디 쓰겠냐.’ 말씀도 많이 하시고 그래서 한약 무지하게 많이 먹었어. 지금 그 힘으로 버티는 지도 모르겠는데, 한약의 맹점이 먹고 바로 효과가 나타나는 줄 모른다는 거야. 그래서 급한 요즘 사람들은 결과가 눈앞에 안 나오니까 한의학을 좀 멀리하는 경향이 있는 거고.

 

 

오수석 | 실제로 급성 전염병이나 감기, 여자들이 심하게 하혈을 하는 경우, 한약도 효과가 되게 좋습니다. 그런데 한의학 쪽으로 치료 기회가 오지 않는 거죠. 일단 병에 걸리면 병원부터 들리고 그 후에 안 되면 한의원을 찾아 오니까 그때는 이미 환자 몸이 뒤죽박죽된 상태여서 한의사들이 그 실타래를 풀어가려면 치료 기간도 많이 걸리고요. 말하자면 한의학이 진단계 시장을 장악하지 못하니까, 애초에 한방으로 치료해볼 수 있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게 지금의 현실입니다.

 

또 요즘 가장 안타까운 게 한의원에서 아이들이 사라졌다는 점입니다. 앞서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어렸을 때부터 한약을 먹고 그 효과를 본 사람들은 한방에 애착을 갖고 있겠지만 지금 아이들은 그런 경험이 없다는 겁니다. 더 문제는,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됐을 때 과연 자기 자녀들을 데리고 한의원에 오겠냐는 거고요. 그래서 무엇보다 한의학의 저변 확대가 시급하고도 중요한데, 선생님께서 그림으로 《동의보감》의 양생 사상을 표현해주시니까 저희로선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신민식 | 제가 《동의보감》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우리가 쓰는 언어 중에 그 영향을 받은 게 굉장히 많다는 걸 알고부터예요. ‘이 쓸개 빠진 놈’이란 말이 있는데, 쓸개가 오장육부의 밤낮을 구별해, 쓸개가 빠지면 밤낮을 구별하지 못해 실 없는 소리를 하게 된다는 거죠.

 

오수석 | 소장, 위장, 대장, 방광 등 우리 몸은 오장육부가 구성이 되어 있는데, 쓸개의 역할은 낮에는 육부 편에 붙어 있다 저녁이 되면 오장 편에 붙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쓸개가 밤낮을 가름질하면서 조정을 하고요. 그런데 이 쓸개가 빠지게 되면, 사람이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지조가 없다는 얘기를 듣는 거죠. 그런데 실제로 요즘은 쓸개 빠진, 즉 쓸개를 드러낸 사람들이 많은데요. 양방에서는 쓸개가 단지 담즙을 분해하는 기관일 뿐이지만, 한의학적으로 봤을 때는 쓸개 빠진 사람들한테 이 쓸개 역할을 대행해주는 침과 약을 쓰면 되는 겁니다. 양방이 보지 않는 정신적인 영역을 보는 거죠. 예를 들어, 《동의보감》에서는 눈밑이 거무티티하고 눈빛이 자신이 없으면서 편도가 잘 붓는 얘들을 쓸개가 약하다고 보는데요. 이 아이들의 경우, 한의사들이 맥을 짚어 ‘엄마 치맛자락을 잘 놓지 않죠?’ 물어보고 쓸개를 강화시키는 약을 주는데, 그러면 얘가 실제로 대범해집니다.

 

 

허영만 | 제가 《동의보감》 원전을 만화로 옮기는 어려운 작업을 시작했는데,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하고 있어요. 나중에 이 작업이 점점 더 설 자리를 잃고 있는 한의학이나 이 공부를 하시는 분들이 자리를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을 합니다. 《꼴》 같은 경우도, 실제로 관상을 공부하는 분들이 만화를 보고 혹이 다 후련하다고 하더라고. 그 동안은 한문으로만 된 데다 그림도 이상하게 그려진 걸로 공부를 하니까, 다른 사람들한테 설명해주기 애매한 것들이 많았었는데, 그게 만화를 보면서 해결됐다는 거지. 《허허 동의보감》도 한의학 분야에 있어 우리가 모르는 여러 가지 상식을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공부하신 내용을 그림으로 녹여내기까지의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고 싶습니다.

 

오수석 | 제가 책을 한 번 읽고 그걸 설명합니다. 허영만 선생님은 그걸 적으면서 가만히 듣고 계시고요. 그러면 한의사 분들이 틀린 게 있는지 없는지 한마디씩 거들어주시고, 그 이후에는 한의학에 문외한인 신민식 대표님과 편집자 김미란 씨가 위문 나는 점들을 질문합니다.

 

 

 

허영만 | 설명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이런 걸 그러야겠다’ 메모를 하고, 그린 후에는 이렇게 그리면 되는 건지 한의사 분들께 감수를 부탁합니다. 이를 테면, 어려운 한자를 나 나름대로 독자들한테 쉽게 전달한다고 했는데 이게 틀릴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게 카카오 페이지에 연재됐던 걸 수정한 것도 있고 다시 최종적으로 감수를 거쳐 나온 게 이번에 출간된 《허허 동의보감》 1권.

 

이번에 《허허 동의보감》 1권 내시면서 스토리 구성이라든지 메모하신 게 몇 권이나 되세요?

 

허영만 | 메모는 책 빈 칸에 나만 아는 글씨로 써놓는데, 그러면 상황 같은 걸 따로 쓰지 않고도 그 자리에 바로 글을 집어 넣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만화적인 아이디어는 생각날 때마다 들고 다니는 대학 노트에 날짜 쓰고, 그 날짜에 무슨 공부를 어떻게 했는지 써놓지. 《동의보감》 책에도 써져 있으니까 그거랑 비교하면서 다시 보고. 그래서 작업할 때 내 책상에는 《동의보감》 하나, 노트 하나, 황인태 원장이랑 공부했을 때의 녹취록, 두 분 더 모시고 공부했을 때의 녹취록, 이렇게 네 개를 펼쳐 놓고 날짜를 봐가면서 빠지지 않게 확인하지. 그래서 이건 절대로 건들면 안 돼.

 

황인태 | 저희들이 공부하면서 같이 이야기한 거 있잖아요. 《허허 동의보감》 1권에는 그 절반 밖에 안 될 거예요. 책 내용의 나머지는 선생님이 순수 창작하신 것들이죠. 이번 책을 보면서 우리가 언제 이런 이야기를 했지, 하는 것도 진짜 많았어요. 그만큼 선생님이 공부를 하신다는 거죠.

 

허영만 | 그러니까 밥 벌어 먹고 살지 (일동 웃음)

 

 

 

1권 중에서 가장 그리기 어려웠던 게 뭔가요?

 

허영만 | ‘정기신’이예요. 그러 배우는 데 총 1년이 걸렸고, 지금 두 번째로 배우고 있는데, 난 아직도 구별을 잘 못하겠어. 이게 이건 것 같고 저게 저건 것 같고. 그래서 이걸 제일 알기 쉽게 그려놓자고 한 게 정은 초고, 기는 촛불이고, 신은 빛이다, 거든. 그런데 좀 안다는 사람들이 이게 아니라고 얘기를 또 하더라고. (황인태 | 그 대목은 동의보감에도 있는 내용입니다) 더군다나 신 같은 경우는 보이질 않는 거니까, 독자들을 이해시키기가 쉽지 않죠. (오수석 | 아우라죠) 그러니까 신이 뭐냐 하면, 한 십 분을 신에 대해서 얘기한다고. 그럼 이걸 어떻게 요약할 수도 없고, 전혀 이해가 되질 않아. 제일 어렵죠.

 

만약 내가 《동의보감》을 혼자서 공부했다면, 제일 어려웠을 게 한자를 우리말로 푸는 거예요. 심지어는 그 어려운 한문을 갖다가 그래도 쓰고 뒤에 접속사만 붙인 것들이 되게 많더라고요. 아마 사전 찾느라고 시간 많이 보냈을 거예요. 그런데 같이 공부하시는 분들 중에 《동의보감》 편찬한 분도 계시고 하니까 그 자리에서 즉시 해결이 돼서 좋죠. 그래도 나 혼자 다시 공부하다가 의문 나는 점이 많이 생겨 용어 사전 같은 걸 샀어요. 그걸 보면서 하니까 많이 도움이 되더라고.

 

오수석 | 말씀하신 것처럼, 예전에 썼던 용어와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가 많이 다른데요. 그래서 독자들이 낯설게 느끼는 용어들을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게 우리의 숙제인 거죠. 예전 선비들이야 ‘정기신’ 하면 웬만큼 이해가 되겠지만, 요즘은 그게 안 되니까 촛불과 같은 그림으로 표현하게 된 거고요. 게다가 어릴 때부터 서구 과학에 의해 사고체계가 형성된 상태에서, 《동의보감》처럼 도가 철학에 근거하고 있는 내용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의학 공부할 때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요. 초중고 총 12년을 공부하고 한의대 들어오면 이 때를 벗는 데 24년이 걸린다는 거죠.

 

선생님께선 굉장히 오랜 시간 집중해서 작업을 하시기 때문에 에너지 소모도 많을 것 같는데요.방송이나 인터뷰를 보면서 저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궁금하곤 했습니다.

 

허영만 | 내가 지금도 만화를 그리는 이유가 만화를 그리는 거 외에는 할 일이 없어서예요. 인터뷰 10일 후에 잡혔다 그러면 그게 계속 신경이 쓰여, 그래서 잘 안 하는 거고. 그런데 기왕 날짜를 잡아서 한다고 했으면 제대로 해야 할 거 아니야.

 

그런데 요즘은 나도 내 나이를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지금 이 상태로 얼마나 갈까, 점점 에너지를 아껴야 할 텐데 하지. 그런데 내가 노는 시간을 용납하질 못하니까. 유일하게 노는 게 술 먹는 거고. 어디 여행을 가더라도 노트에 일 삼아서 손으로 계속 뭔가를 그려야 돼. 일기이자 이걸 다듬으면 또 책이 될 테니까. 천상 뭐 이 짓 하다가 가는 수밖에 없어.

 

요즘 사람들, 아프면 대개 병원을 찾습니다. 한방은 약을 먹어도 한 번에 효과를 볼 수 없고 양방에서처럼 내시경이나 엑스레이를 통해 내가 지금 어떤 문제가 있는지 눈으로 보여주질 못하니까 불안한 마음이 들거든요.

 

오수석 | 의료법 상, 한의원은 의료기기를 못쓰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한의사는 전통에 따라 손으로 맥을 짚어 병을 진단하라고 되어 있고요. 그런데 환자들은 눈으로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길 원해요. 불안하니까. 그래서 큰 돈을 들여 CT나 내시경 검사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요. 말하자면 현재와 한의학이 대중들과 멀어진 데에는 우리가 객관적인 진단 데이터를 기반으로 설명하는 도구를 잃어버린 데 그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환자가 병원에서 찍은 CT랑 MRI 등을 가져오면 학교에서 양방 의학도 배우기 때문에 한의사들도 자료를 보고 치료에 참조할 순 있는데, 진단 의뢰서 비용은 못 받게 되어 있습니다. 국민 건강을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의료법 상의 차별을 없애고 과감하게 개방하는 게 옳다고 보지만 이게 결국 밥그릇 싸움이니까, 현실적으론 힘이 들죠.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각종 의학 정보들을 누구나 쉽게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허허 동의보감》을 읽다 보면 기존의 상식에 반하는 내용들도 등장합니다. 400년 전의 《동의보감》을 현대의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데 특별히 신경 쓰신 부분이 있을까요?

 

오수석 | 일반 독자들이 가지고 있는 건강 상식과 한의학에서 쓰는 용어 등을 어떻게 매칭시켜 독자들에게 제대로 전달할까를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동의보감》을 같이 공부할 때 신민식 사장님이나 편집자, 허영만 선생님이 일반 독자들의 수준에서 의문 나는 점을 질문하고, 한의사 세 분이 함께 이야기하면서 의견 통일을 볼 수 있도록 했고요. 예를 들어, 대개 운동이 건강에 좋다고들 생각하는데, 《동의보감》에선 운동을 많이 하는 게 오히려 건강에 안 좋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는 운동도 자기 몸에 맞춰 적절하게 해야 한다는 말인데, 한의학에서 기본적으로 여자의 땀은 피가 세는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여자들이 지나치게 운동을 하면 골다공증이나 조기 폐경이 올 수도 있다고 하고요. 또 한의학적으로 저녁에 땀을 빼고 운동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는데, 모든 기가 모이는 시기인 저녁에 헬스 가서 땀을 뻘뻘 흘리는 건 안 좋다는 거죠. 이럴 때, 현실적으로 저녁밖에 시간이 없는 직장인은 어떻게 하냐,를 질문하면서 이야기를 맞춰 나가는 거고요.

 

 

 

《동의보감》에선 사람과 자연이 함께 움직여 나간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예전과 달리 한경도, 사람도 많이 바뀌었고 이와 같은 차이가 이전에 만들어진 의학적 지침들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궁금합니다.

 

오수석 | 그 부분도 공부하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요. 일단 《동의보감》에 나와 있는 진단 방법은 현재의 시점에 적용하기에 무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약의 경우는 오늘날과 당시 18세기 이전에 살던 사람들의 섭생 자체가 다르거든요. 과거의 사람들은 80% 이상이 태어난 곳에서 백 리 밖을 벗어나지 못한 채 죽었다고 하는데, 씨족과 같은 공동체 단위의 생활이 제한된 환경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얘기죠. 그런데 지금은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마음만 먹으면 전 세계 어디든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됐고, 기술적으로도 컴퓨터와 같은 기기가 생겨나면서 다른 차원의 정신 노동 또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변화의 요소들을 고려해 《동의보감》의 방법론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이걸 해결하는 게 우리시대의 숙제가 되겠죠.

 

사람도 그렇지만, 약재로 쓰이는 식물도 토양이나 날씨 등, 환경적인 요인에 많은 영향을 받을 텐데요. 혹시 《동의보감》에 약재가 그 본래의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하는 성장 조건들이 따로 명시되어 있기도 한가요?

 

오수석 | 《허허 동의보감》에서 구체적으로 그 부분까지 논하지는 못하지만 임상가에서 고민을 많이 하고있습니다. 언제가부터 ‘신토불이’를 강조하면서 우리 것이 우리 몸에 제일 좋다고들 말하는데, 모든 경우가 그렇진 않아요. 중국 약 중에 훨씬 좋은 게 많습니다. (일동 웃음) 단지 수입하는 사람들이 싸구려를 들여와서 그렇지.

 

 

 

황인태 | 아까 약이라는 게 자연이라고 했잖아요. 히말라야에 가면 하루만에 히말라야를 건너는 기러기가 있습니다. 이 기러기의 심장 구조나 혈액 등을 연구하면 협심증과 같은 질병에 맞는 약재를 뽑아낼 수 있겠죠.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이런 기러기가 없잖아요. 그래서 약에 있어서 만큼은 절대로 신토불이가 아니라는 거죠.

 

요즘 젊은 친구들, 웹툰으로 만화를 많이 보잖아요. 선생님도 혹시 보시는 웹툰 있으세요?

 

허영만 | 없어요. 난 내 거 찾아보기도 바빠. 남의 걸 들여다볼 여유가 없어요. 내가 이번에 남해안에서는먹지도 않는 걸 동해안에서 먹고 있는 ‘비단멍게’라고 스토리를 쓴 게 있는데 중간에 잘못 쓴 게 있어, 가만히 생각해보다 바꿔 썼어. 그런데 어젯밤에 집에서 또 가만히 생각해보니 다르게 쓰면 좋겠다, 싶은 거야 그래서 바꿨어요. 바꾸고 났는데 안 바꿔도 괜찮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어 또 원래대로 바꿨어요. 그러니까 완전히 끝날 때까지는 계속 그 생각을 하는 거야.

 

 

 

말씀하신 것처럼 선생님께서 일에 굉장히 집중하시잖아요. 사모님이나 자녀분들이 불평하진 않나요?

 

허영만 | 내가 결혼해서 30대 중반까지 단독주택에 살았는데, 집 앞에 있는 가로등이 우리 방문을 비치는 거야. 내가 전화국에 전화해서 이거 옮겨 주시오, 그랬어. 그걸 옮겼는지 안 옮겼는지 지금은 기억이 나질 않는데, 가로등 때문에 내가 잠을 못 자겠더라는 거지. 그래서 사진 인화할 때 빛 안 들어오게 하는 두꺼운 커튼을 쳐야겠다고 하니까 마누라가 질겁을 해서는, ‘사람 사는 방에 그런 걸 어떻게 치냐’고. 그런데 나는 조금만 밝아도 잠이 깨는 거야. 그 정도로 예민했던 거지. 그래서 여러 사람이 불편했고. 결국은 내가 밥 벌어 먹이려고 한 일인데 나만 나쁜 놈이 되는 거야. (일동 웃음)

 

그러던 게 소위 작업실을 얻어 밖으로 나와서는 많이 달라졌지. 집 생활하고 완전히 구분이 되니까. 그래서 어지간히 급한 일 아니면 작업할 걸 집으로 갖고 들어가지 않아. 집에 들고 가면 뭐해. 그러니까 낮에 최대한 일 보고 저녁 때 술 한 잔 먹고 집에 가고 그러지.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아는 걸 실천하는 게 어렵습니다. 선생님께선 작업하시는 동안 계속 스트레스를 받으실 테고요. 혹시 《동의보감》을 공부하시면서 실천하게 된 건강 지혜가 있으신가요?

 

허영만 | 자전거 탈 때 숨이 턱에까지 차고 이러다 숨이 멎을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동의보감》에서는 적게 먹고 움직이지 말라고 하잖아. 내 나이도 있고 이제는 버거운 운동은 하지 말아야지. 또 무엇보다 소식이 좋은데, 실제로 해보니까 소식하고 술 안 먹는 다음 날은 굉장히 편해요. 술을 안 먹더라도 밥을 많이 먹은 다음 날은 기분이 영 불쾌하고. 그런데 사실 이거 하나는 실천하고 있다, 하는 건 딱히 없어. 잘못됐다는 걸 알았으면 이걸 고쳐야 하는데 안 고쳐지는 것 때문에 오히려 더 스트레스를 받아요. (일동 웃음) 술 먹고 맨날 후회하고 그러지.

 

다음 작품으로 어떤 걸 구상 중이신가요?

 

허영만 | 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게 실버만화였는데, 중요한 건 실버들이 만화를 안 본다는 거예요. 그래서나 혼자 그냥 연재 하다 그만 둘 수도 있지만, 한 번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다른 건 커피 만화. 상당히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커피가 체계적으로 발전할 수 없었던 데는 생산자가 아주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거든. 최근에 알아본 바로는 커피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게 불과 20년 밖에 안 됐다고 그래요. 그런데 애당초 기본적인 자료가 많으면 그림 그리기가 수월한데, 커피 만화 그리려면 거의 전 세계를 싸돌아 다녀야겠구나, 생각이 들어요. (웃음)

 

 

허영만

 

1955년 1월 175cm에 깡마른 19세 허영만은 이불 한 채 메고 서울역에 내렸다. 여수에서 서울까지 비둘기호 야간 열차로 9시간이 걸렸다. 1974년 한국일보 신인만화공모전에 《집을 찾아서》가 당선되며 만화가로 공식 데뷔했다.

 

1974년 《각시탈》, 1981년 《무당거미》, 1989년 《날아라 슈퍼보드》, 1994년 《비트》, 1999년 《타짜》, 2003년 《식객》 등 40년간 수많은 히트작을 낸 허영만은 10대부터 60대까지 폭넓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으며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만화가로 손꼽힌다. 특히 철저한 사전조사와 취재를 통해 탄생한 콘텐츠의 힘 덕분에 허영만의 작품은 '믿고 보는' 만화로 통한다. 더불어 드라마·영화·애니메이션·게임 등으로 제작된 많은 작품이 큰 성공을 거두며 흥행 보증수표로 자리매김했다.

 

작품 연재에 들어가기 전 끊임없이 배우고 관찰하고 4~5년씩 '과외 수업'도 불사하는 그가 2011년부터 매주 수요일 밤을 '과외 시간'을 못 박았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동의보감》을 정보와 재미를 섞어 교양 만화로 재해석한 《허허 동의보감》을 집필하기 위해서이다.

 

그는 앞으로 《허허 동의보감》의 완간까지 열정을 쏟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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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만난 사람]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 대신 - 《안녕, 내 모든 것》의 소설가 정이현

 

편집·정리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사진 제공 | 창비

 

소설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 지구에 있는 소설가만큼이나 무수합니다. 추측컨대, 그 답은 결코 ‘시간’과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이 순간에도 사람은 흘러가는 ‘시간’ 속을 살고, 그런 삶에 대해 쓴다는 것은 결국 ‘시간’에도 응답해야 한다는 뜻이니까요. 《안녕, 내 모든 것》은 정이현 작가님의 지난 ‘시간’을 담고 있습니다. 세상에 내보낸 소설들에게 안녕이라고,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는 작가님에게는 이 소설도 그러할 텐데요. 어쩌면 그 말을 전하기 이전에 인사는 이미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시절을 떠나보내는 방식으로 쓰인 소설입니다.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대신하는 그 응답을 이제 우리도 접할 수 있게 되었네요. 자, 책의 첫 장을 펼쳐 볼까요?

 

 

반디 | 《안녕, 내 모든 것》의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작년 봄부터 올해 여름까지 ‘내 모든 것’이라는 제목으로 계간 《창작과비평》을 통해 연재되었던 소설이죠. 연재시기에 맞춰 써 나가셨다면 차후에 마지막 원고를 탈고하셨을 때의 심경이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 원고 전체를 다시 모아 책으로 만드는 과정도 그렇고요. ‘작가의 말’을 통해서도 밝혀 주셨지만 그 시간들을 조금 더 부연해 주신다면요?

 

정이현 | 《안녕, 내 모든 것》은 계간지 창작과비평에 2012년 여름호부터 2013년 봄호까지 4회에 걸쳐 연재되었던 작품입니다. 2012년 봄 알랭드보통과 함께 쓴 소설 《사랑의 기초》의 마지막 작업을 마치자마자 잠시도 쉬지 않고 곧바로 연재 준비에 돌입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로부터 일년 여가 넘도록 이 작품에 꼼짝없이 붙들려 있었고요. 그동안 계절이 어떻게 왔다 갔는지, 이 세상에 무슨 큰 사건이 터졌는지도 잘 모를 정도로 소설의 세계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았습니다. 저의 하루는 ‘소설을 쓸 수 있는 시간’과 ‘그렇지 못한 시간’으로 양분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꼭 해야만 하는 일상의 일들을 수행하는 동안에도 어서 책상 앞에 가 앉고 싶어 애가 타기도 했어요.

 

반디 | ‘프롤로그’를 지나 두 번째 챕터인 ‘노란 뚜껑의 작은 유리병 속에’는 “김일성이 죽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김일성이 죽었던 1994년 즈음을 살았던 아이들이 소설의 전면에 등장하고 있는데요. 90년대는 작가님의 다른 소설에서도 종종 이야기되는 시절이죠. 작가님의 개인적인 경험이 반영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자신의 삶에서 90년대를 어떻게 기억하고 계시나요?

 

정이현 | 저는 1991년에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90년대는 제 이십대라는 생물학적 연대기와 거의 일치하는 시간이지요. 개인적으로 ‘지금 나라는 인간의 팔할은 구십 년대가 만들었다’고 할 만큼 그 시간에 빚진 것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잊지 못하는, 구십 년대 적인 상징적인 장면은, 대학 입학식을 마친 다음날 첫 수업에 들어갔을 때 십여 분만에 강의가 끝나고 학생들이 모두 뿔뿔이 어디론가 흩어지던 풍경입니다. 캠퍼스 한가운데 섰는데 굉장히 외롭고 쓸쓸하고 허무했어요. 어, 청춘드라마에서 본 대학생활은 이렇지 않았는데, 어, 어, 혼잣말만 반복했던 기억이 납니다. 남들은 다 어디론가 갈 곳이 있나보다, 라는 추측이 혼자인 저를 더 비참하게 했지요. 어쩌면 그때 어디론가 바삐 사라지던 그들이 실은 하나하나 다 갈 곳이 없었다는 것, 나름대로 어딘가에 ‘짱박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이상하게도 문학이라는 곳에 마음이 이끌리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모든 해는 각각 다른 방식으로 기억된다. 공통의 합의가 쉽게 이루어지는 해도 있다. 1979년은 대통령이 총 맞아 죽은 해, 1988년은 서울올림픽이 개최된 해라는 명명에 보통 한국인이라면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 어떤 해는 그렇지 않다. 이를테면 1994년. (101쪽)

 

반디 | 《안녕, 내 모든 것》 뿐만 아니라 영화와 드라마 등 여러 매체를 통틀어 90년대가 회자되는 시기입니다. 90년대만의 분위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어느 때나 현재로 소환되는 과거란 있다고 봐야 할까요? 작가님께서는 일련의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정이현 | 90년대가 이런 저런 문화 장르에서 소환되고 있을 뿐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이론적으로 정리하려는 성숙한 노력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비단 90년대와 관련해서만은 아니지만, 문화 텍스트 안에서 하나의 시대가 다만 소재주의적 입장에서 호명되고 소비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반디 | 90년대와 더불어 소설의 키워드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서울입니다. 소설 속 서울의 풍경은 조악합니다. 그럴싸하지만 부서지기 쉬운 과자집을 다닥다닥 세워 놓은 곳 같아요. 어른들은 그런 서울을 닮아가고 있고요. 하지만 세미, 준모, 지혜는 어른들과 달리 그곳에서 저마다의 단단함을 가지고 살았는데요. 이들 삶의 무대를 서울로 정한 이유가 있다면요?

 

정이현 | 저는 한국사회의 90년대가, 여러 가지 면에서 십대 후반의 시간과 닮아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미숙하지만 열정과 에너지로 부글부글 끓던 시기였다는 면에서도 그렇고, 그럼에도 불길한 어떤 징후들이 곳곳에 나타났다는 면에서도 그렇고요. 제 인물들을 그 세속의 한복판에 놓아두고 싶었습니다.

 

반디 | 세 아이는 결말에 이르러 비밀의 공모자가 됩니다. 이것을 공유하게 된 데에는 단순한 우정 이상의 공감대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예컨대, 더 이상 (삶에) 모욕당하지 않겠다는 마음 같은 것이요. 물론 저의 오독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작가님께 여쭙고 싶습니다. 삶에 대한 세미, 준모, 지혜의 마음이 교차하는 대목을 읽어주신다면요?

 

정이현 | 그렇게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는 모욕당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들 무언가를 직접  한다는 것. 그 의지가 중요한 것이겠죠. 원하시는 것과 가까운 답일지는 모르겠지만, 이 문장들이 떠오릅니다.  

 

“내가 끔찍이 두려워 한 것은 혼자 남겨지는 게 아니었다. 이 세상에 혼자인 사람이 오직  나 혼자 뿐인 거였다.” (228쪽)

 

   스무살이 되는 해는 1997년이다. 가깝지만 머나먼 숫자였다. 유리잔 밑바닥에 남은 우유 찌꺼기처럼 희뿌옇고 탁했다. 1998년에는 1991년이, 1991년에는 1994년이 그렇게 느껴졌었다. 시간은 늘 체력장 오래달리기 같았다. 눈을 감고 뛰다보면, 저 앞에 도무지 내가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은 속도로 달리던 아이가 어느 순간 내 뒤로 처져 있는 거다. 늙어간다는 건 따라잡을 아이가 점점 줄어들다가 결국 아무도 없어진다는 거겠지. 앞만 보고 뛰는 일도 뒤를 돌아보는 일도 두려울 것이다. 그러면 좀 쓸쓸할 것 같기도 하다. (63쪽)

 

반디 | 작중인물은 어른이라면 제 속에 아이를 가지고 있거나, 아이라면 제 속에 어른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의 ‘성장’을 바라보는 작가님의 가치관이 소설에 반영되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안녕, 내 모든 것》을 성장담으로 볼 수 있고, 그 ‘성장’이 여러 가지를 뜻할 수 있다면, 작가님께서는 ‘성장’을 무엇이라고 정의하고 싶으신지요?

 

정이현 | 네. 저는 기본적으로 모든 소설은 인간(들)의 성장에 대한 기록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기에서 성장이란, 마음의 키가 확 자란다거나 ‘성숙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요. 저에게 ‘성장’은 어떤 변화를 뜻합니다. (사실 저는 비관주의자에 가까운 편이라, 인간은 본질적으로 크게 변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만) 그래도 출근길에 나무가 있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휙 지나던 사람이 소설의 말미에서 ‘아 저기 나무가 있었구나. 잎이 다 졌네’라고 혼자 생각하게 되는 만큼의 변화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면에는, ‘성장’이란 세상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비밀을 갑자기 이해하게 되는 한 순간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반디 | 소설과 소설 사이. 모든 작가는 그러한 공백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 시기가 작가님께는 요즈음일 것 같은데요. 한 편의 소설을 마무리하고 다른 한 편의 소설을 시작하기 전의 공백을 어떻게 보내실지 궁금합니다. 《안녕, 내 모든 것》을 출간한 이후의 근황을 들려주신다면요?

 

정이현 | 공백이기는 한데, 사실 완전히 빈 상태는 아니에요. 《안녕, 내 모든 것》과 관련된 이런 저런 인터뷰나 행사들이 아직 남아 있어서요. 이미 내 손을 떠난 작품에 대해, 특히 그 내용에 대해 이런 저런 자리에서 자꾸 이야기하게 되는 것이 어쩐지 민망하기도 하고 간혹 힘들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또 자꾸 객관적으로 이야기하고 타인에게 설명하는 과정을 통해, 한 작품을 떠나보낸 뒤에 필연적으로 들이닥치는 어떤 슬픔과 허망함을 잊게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8월 중순에 휴가를 다녀온 뒤로는 정말로 칩거하며 일상인의 생활에 충실할 계획입니다. 읽고 싶은 책들이 산처럼 쌓여 있기도 하고요. (집에 정말로 산처럼 쌓아놨어요 ㅎ)

 

반디 | 소설을 쓰지 않을 때는 책을 읽기도 하실 텐데요. 90년대의 어느 날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즐겨 보고 여전히 영향을 받는 책이 있는지요? 그것은 작가님의 스테디셀러라고도 말할 수 있겠는데요. 독자 분들에게 몇 권 소개해주신다면요?

 

 

정이현 | 이성복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남해 금산》, 《그 여름의 끝》
그리고 오정희, 이청준 선생님의 모든 소설들.

 

반디 | ‘작가의 말’을 통해 살기 위해 소설을 쓴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한때는 소설을 쓰기 위해 산다고 믿던 때도 있으셨다고요. 지난 십여 년 동안 작가님께 삶이 갖는 의미가 보다 묵직해졌다는 느낌입니다. 소설 쓰기를 통해 그것이 가능했을 텐데요. 계속해서 소설을 쓰는 작가님의 삶을 그려본다면 10년 후, 20년 후, 30년 후의 모습은 또 어떨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정이현 |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모습들입니다. 그러고 보니 어릴 때부터, 미래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관심이 없는 편이었습니다. 제 관심은 언제나 현재 뿐입니다. 10년, 20년, 30년 후에도 그 각각의 현재를 충실히 살고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한때는 소설을 쓰기 위해 산다고 믿었다. (…) 그런데 나는 어느 때보다 열심히 썼다. 쓰기 위해 산다는 선언이 얼마나 오만했는지 뒤늦게 알게 되었다. 수많은 작가들이 더 치열하게 살아간다는 것도, 내가 운이 썩 좋은 편이며, 어떤 소설도 삶보다 귀하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가 쓰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것 또한. 그렇다. 나는 살기 위해 쓰는 사람이었다. 아직 모르는 게 더 많다. (251쪽, ‘작가의 말’ 중에서)

 

반디 | 지금까지 한 이야기보다 앞으로 할 이야기가 더 많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작가님의 차기작을 궁금해 하는 독자 분들이 많을 텐데요. 일종의 ‘업무기밀’이겠지만 살짝 들을 수 있을까요? 근래의 관심사나 구상 중인 소설에 관한 이야기, 혹은 별도의 연재 계획 등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정이현 | 장편 계획은 아직은 전혀 없습니다. (심지어 출판계약도 없어요^^) 지금껏 네 편의 장편을 내놓았는데 하나하나 다 애정을 가지고 있지만, 착상을 조금 더 묵히지 못하고 이런 저런 사정에 의해 서둘러 집필에 들어갔다는 아쉬움이 공통적으로 있습니다. 이번에는 이런 아쉬움이 들지 않도록, 아주 천천히 움직여 볼 생각입니다. 무엇보다 제 마음이 가는 방향대로 몸을 맡겨볼 작정이에요.

 

대신 당분간은 단편 작업에 충실할 계획입니다. 개인적으로 단편 쓰기도 좋아하고 남의 단편 읽기도 좋아하는데 그 좋아하는 일을 오랫동안 하지 못해서 힘들었거든요. 빠르면 내년, 아니면 후년 쯤 지금부터 새로 쓸 단편들을 모아 단편집을 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너의 아이가 살고 있는 아침의 집에 너는 꿈에도 들어가지 못하리라.’
   서른을 며칠 앞둔 어느날, 책에서 이런 구절을 읽었다. 나는 나직하게 중얼거려보았다. 안녕, 아침의 집. 안녕, 내 모든 것. (228쪽)

 

반디 | 나이가 들면서 그 숫자만큼 더해지는 것도 있지만 시시각각으로 떠나보내야 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이를 아는 독자 분들이 《안녕, 내 모든 것》에 감응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언젠가 작별한 것들을 떠올리면서요. 작가님의 그것은 소설에 담겨 있을 텐데요. 마지막 질문을 통해 직접 듣고 싶기도 합니다. 지금, 작가님께서 ‘안녕’이라는 전언을 보낸다면 그 대상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정이현 | 그럴 수 있다면, 세상에 내보낸 제 소설들에게, 안녕, 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이’와 ‘바이’의 의미가 함께 담겨 있는 안녕일 거예요. 미안하고 또 고맙다는 말도 괄호 안에 담아서요.

 

 

정이현

 

서울에서 태어나 2002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에 단편소설 <낭만적 사랑과 사회>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으로는 《낭만적 사랑과 사회》와 《오늘의 거짓말》, 장편소설로는 《달콤한 나의 도시》, 《너는 모른다》, 《사랑의 기초: 연인들》이 있다. 이효석문학상,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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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만난 사람] 어떤 길에서 본 각자의 얼굴, 그 기록 - 《백 행을 쓰고 싶다》의 소설가 박솔뫼

 

 

편집·정리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이미지 제공 | 문학과지성사

 

어느 날은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길 위에서도 서로에게 접어들 수 있다면, 의미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이 사람과 사람의 만남일 텐데요. 사실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수많은 지나침이 무의미하다는 것을요. 같은 길 위에 있다 해도 만나지지 않을 것을요. 하지만 단지 보았을 뿐인 얼굴들을 떠올려 볼 수 있을 겁니다. 만남의 순간을 그려 볼 수 있을 겁니다. 이야기는, 어떤 소설은 때로 그렇게 태어납니다. 이 상상의 기록을 통해 우리는 더 가까이 만나지기도 할 테죠. 《백 행을 쓰고 싶다》가 그것을 확인시켜줄지도 모르겠네요. 소설을 쓴 박솔뫼 작가님부터 만나 볼까요?

 

 

반디 | 《백 행을 쓰고 싶다》가 출간되었습니다. 작가님의 두 번째 책인데요. 첫 번째 책인 《을》과 동일하게 장편소설입니다. 두 편의 장편소설이 쌓였다는 건 소설집과 또 다른 무게감으로 다가올 듯합니다. 탈고하고 책을 접한 소감이 어떠신지요?

 

박솔뫼 | 네. 사실 첫 번째 두 번째 책 모두 장편이라 소설집이 새로 나온다면 그게 좀 새삼스러운 기분일 듯합니다. 책을 내기까지 이런 저런 일들과 시간들이 있어서 나왔구나 결국 드디어 이런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책이 손에 들어오는 느낌이 좋았습니다.

 

   "좋아해."
   규대의 입술 사이에서 더운 바람이 나왔다. 오아애의 입 모양으로 흘러나온 바람은 천천히 유유히 내 귓가로 들어갔다.
   "어떻게? 얼마나?"
   "책 한 권이 다 끝나고 나서 다음 책을 쓰는 만큼 사랑해."
   "자세히 설명해봐."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야."
(68쪽, 《백 행을 쓰고 싶다》 중에서)

 

반디 | 《백 행을 쓰고 싶다》는 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소설에서 '책이 된다'라는 것은 삶의 완성을 말하는 비유로도 느껴집니다. 뭔가를 '쓴다'는 것이 '산다'와 겹쳐 보이기도 하고요. 이 말을 빌리자면 대부분의 인물이 자신의 책을 잘 써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단지 그들의 탓만은 아닌 것 같아요. 책이 될 수 없는, 그들이 사는 세계는 어떤 곳인가요?

 

박솔뫼 | 결국에 이러저러한 장면들과 시간들이 있지만 슬프고 쓸쓸하면서 거친 곳이었으면 혹은 그런 글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디 | 그들의 세계는 기도의 학교, 바다, 도시, 수도 등으로 구체화 됩니다. 《백 행을 쓰고 싶다》를 이루는 이들 장소는 낯설고 멀게 느껴지다가도 우리 사는 곳과 닮은 데가 있어요. 서울, 부산, 인천 등지가 떠오르기도 하고요. 실재하는 배경을 참고하셨는지 궁금한데요.  참고하셨다면 그곳의 어떤 정서를 가져오고자 하셨나요?

 

이곳은 바닷가 큰 도시로 도시의 어디에서나 짠냄새가 떠돌았다. 짠냄새, 바다냄새, 바닷가냄새, 해초와 모래가 섞인 냄새였다. 학생들은 옷가게에 가듯, 카페에 가듯 바다에 갔다. 시험이 끝나거나 방학이 시작되기 전날이면 나는 대형 쇼핑몰에 갔다. 쇼핑몰은 인공섬에 있었다. (…) 이상하게도, 연못 길에서는 바다냄새가 나지 않았다. 1년에도 몇 번씩이나 그곳에 가서 바다냄새가 나지 않는구나, 바다냄새가 나지 않네 하고 혼잣말을 했다. 도시에서 유일하게 짠냄새가 나지 않는 곳에 서서 바다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바다는 언제나 깊고 무섭고 크고 이국적이었다. 어느 바다건 바다는 모조리 이국적이었다. 모든 이국적인 것들은 사람을 초조하게 한다. 어디에서나, 어딘가가 있구나 하는 것을 알려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언제까지나 이곳에 서 있을 것 같다. 언제까지나, 시간의 끝을 늘리고 늘려서, 언제까지나의 언제까지나 이곳에 서 있을 것 같았다. (21쪽, 《백 행을 쓰고 싶다》 중에서)

 

박솔뫼 | 다 어느 정도는 영향을 주었겠지만 직접적으로 구체적인 장소를 떠올리진 않았습니다. 부산이냐는, 부산과 비슷하다는 질문은 받았지만 딱히 부산을 생각하며 쓰지는 않았습니다.  평소 바다가 있는 도시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바다 냄새가 나는 도시들을 자주 생각해서 여러 곳들이 겹쳐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서울 도시사 관련 책을 읽으며 밤섬에 관해 읽었던 것이나 고베에 갔을 때 보았던 쇼핑몰 같은 것도 그 중 하나이고요. 물론 서울은 바다가 없지만요.

 

 

반디 | 소설 속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규대'입니다. 무기력한 인물들 사이에서, 그런 세계에서도 거의 유일하게 바깥과 싸우고 있다고 느껴지는 사람이에요. "백 행을 쓰고 싶다."로 시작하는 이 소설에서 "책 한 권이 다 끝나고 나서 다음 책을 쓰는 만큼의 사랑"을 약속하는 사람이기도 하고요. 작가님께서 바라보는 '규대'는 어떤 사람인가요?

 

박솔뫼 | 어떤 거리에서 지나칠 것 같은데 규대는 계속 거리를 헤매다가 가끔 집에 있고 다시 거리로 나가고 그러다 다시 또 지나칠 것 같은 이미지가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떠올리며 쓴 것 같습니다.

 

반디 | '규대'뿐만 아니라 '원대'와 '윤희' 등 여러 인물의 이야기가 맞물려 전개됩니다. '규대'가 '나'에게 들려주는 긴 이야기에는 '규오'와 '대니얼'이라는 허구의 인물들이 나오고, 후반부에는 잠깐이지만 강한 인상을 남긴 '연주'와 '창희'가 등장합니다. 그런 만큼 소설을 탈고하고도 미련이 남고, 다른 소설에서 더 쓰고 싶은 인물이 있다면 누구인가요? 그것은 어떤 이야기가 될까요?

 

박솔뫼 | 창희에 대해 좀 더 쓰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창희가 아주 잘 사는 이야기일 듯 합니다.

 

원대와 같은 병실을 쓰는 환자는 열다섯 살짜리 남자애였다. 그 애는 작은 동그라미를 무서워했다. 남자애의 쌍둥이 남동생은 심장병이었나 백혈병이었나 아니 어쩌면 들어보지도 못한 희귀병으로 신생아 때부터 병원에 드나들었다. 엄마와 매일같이 남동생을 지켜야 했던 그 애는 병실에서 시작된 기억들뿐이었다. 커다랗게 부풀어 오른 또래 아이들의 반투명한 머잇속 종양들과 친절한 의사가 현미경에 눈을 대보라고 해서 본 암세포를 그 애는 잊을 수가 없었다. 그 애의 이름은 창희였다. (235쪽, 《백 행을 쓰고 싶다》 중에서)

 

반디 | 동시대에도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많은 이야기 중 무엇을 접하고 계실지 궁금합니다. 이야기라면 소설뿐만 아니라 시도 빼놓을 수 없죠. 작가님은 왠지 시와 가까이 지내실 것 같습니다. 특히 《백 행을 쓰고 싶다》의 어떤 대목들은 한 편의 시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가능하다면, 훗날에 자신의 소설에 꼭 한 번 등장시키고 싶은 시가 있으신지요?

 

박솔뫼 | 이전에 《뿔바지》라는 시집을 번역한 김태용 님이 저에게 저의 문제점은 시를 읽지 않는 것이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아주 좋아하는 시집들이 몇 개 있고 시인들도 몇 분  계신데 시집을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읽지는 않습니다. 가끔 오래 읽는 것들이 있고요, 시를 좀 더 읽고 이런 질문에 대답해야 할 것 같습니다.

 

글을 읽고 눈앞의 세계가 대체 어떤 것인지, 당신이 느끼고 있는 것이 진짜인지, 아니라면 무엇인지를 묻게 만드는 것, 그렇게 흔드는 것, 나아가게 하는 것, 나는 그런 글에 영향을 받고 그런 글의 도움을 받는다. 뭐 당분간은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444쪽, 《세계의 문학 2011년 가을호》 중에서)

 

반디 | 독자와는 주로 지금까지 출간된 장편소설을 통해 만나 오셨습니다. 더 관심이 깊은 분들이라면 '젊은작가상'이나 '웹진문지문학상' 등의 수상작품집, 문예지, 또 다른 경로에서 작가님의 단편소설을 접했겠지요. 발표하신 단편소설이 꽤 되는 줄 압니다. 그 중에서도 어떤 소설에 애정을 갖고 계신지 궁금하고요. 첫 소설집 출간은 언제쯤이 될지도 듣고 싶습니다.

 

박솔뫼 | 목표는 올해 출간입니다. 그렇게 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게 다 나름대로 다른 의미에서의 애정이 있어서 하나를 꼽기가 힘드네요. 쓰면서 재밌었던 것은 <안해>와  <너무의 극장>입니다.

 

현재 우리가 극장 밖에 있다면 그러니까 셰익스피어의 세계 밖에 있다면 나는 아주 가볍게 종이를 찢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여전히 몹시 셰익스피어 안에 있다면 나는 트로피를 뺏는다. 혹은 뺏는 것이 늦어 죽임을 당합니다. 아, 정녕 그뿐이란 말인가 탄식하며 고개를 흔듭니다. 그뿐이 아닌 것 또 다른 방법 그 모든 것을 뒤집을 만한 것. 중얼거리며 고개를 계속 흔듭니다. 그리하여 결국 결정을 내린 나는 너무하지 않은 것을 향해 달려나가며 발?을 살피고 남자애의 어깨 너머를 주시해. 그러다 그곳에 다다르면 언제고 종이를 찢을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렇게 뛰어가다가 죽지도 죽이지도 않았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곳에 닿으면 말이야. 그러니까 계속 달린다. 계속 빠르고도 빠르게 할 수 있는 가장 너무한 것을 향해. 동시에 가장 너무하지 않아서 너무 너무하지 않은 것을 향해. 달린다. 달려 나간다. (110쪽, 《제3회 웹진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 <너무의 극장> 중에서)

 

반디 | 연수차 독일 베를린에 가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가시는 만큼 글쓰기나 책 읽기의 계획을 따로 가지고 계실 것 같은데요. 그런 것이 꼭 아니라도 작가님께서 앞으로 서너 달이 될 긴 여름을 어떻게 보내실지 '시시콜콜하게' 들려주세요.

 

박솔뫼 | 온 지 한 달 되었네요. 저도 잘 보내고 싶은데 주변에서 가기 전부터 잘 보내라 좋겠다 부럽다 이런 이야기를 하도 많이 해서 뭘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을 온 직후로는 많이 했는데요. 이제서야 제가 어딜 가든 특별히 뭘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오래전부터 아주 잘 알고 있던 사실을 다시 깨달았네요.  그냥 걷고 좀 읽고 멍하게 있는 시간들을 보냈고 보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름사람이라 여름이면 대체로 즐거운 기분으로 보냅니다. 여름은 최고!

 

 

반디 | 소설의 도입에 작가님은 "세상 어딘가에서 백 행을 쓰는 사람이 있을까? 있다면 어떻게 쓰고 있을까."라고 쓰셨습니다. 《백 행을 쓰고 싶다》를 읽은 독자라면 '백 행을 쓰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 같은데요. 세상 어딘가에서 백 행을 쓰는 사람, 소설처럼 긴 이야기를 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박솔뫼 | 어느 거리에서도 우리는 절대로 만나지 않겠지만 어떤 길에서 우리는 각자의 얼굴을 보기도 합니다. 건강히 지내세요.

 

오늘도 내일도 모든 거리와 골목에는 사람들이 입을 벌리고 손으로 이마를 짚고 달려가기도 한다. 화를 내기도 하는 것처럼. 이제 그만두고 싶다. 이제 그만두고 싶다고 쓰고 싶다. 이제 그만두고 싶다고 쓰는 사람을 본다. 나는 모든 것을 본다. 그 모든 것을 본다. 어제처럼 오늘도. 내일처럼 어제도. (242쪽, 《백 행을 쓰고 싶다》 중에서)

 

박솔뫼

 

2009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을》과 《백 행을 쓰고 싶다》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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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만난 사람]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는 대답 - 《여덟 단어》의 저자 박웅현

 

 

편집·정리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이미지 제공 | 북하우스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첩첩산중인 매일에 짓눌려 터져 나오는 외침입니다. 이렇게 저렇게 살아야 한다는 말은 이미 너무 많은데 그 말들이 암암리에 강요하는 기준에 자기를 꿰어맞추자니 숨은 턱에 차고 삶의 낙 또한 있을 리 만무입니다. 아슬아슬 간당간당 또 하루가 가긴 하는데 보내놓고 보니 내가 삶을 산 건지 삶이 나를 산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이 시대가 열심과 노력이라는 말의 주어와 목적어를 잃었고, 인생이라는 말 앞에서 어쩔 줄 모르고 허둥거리고 있는 그대들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이제 막, 그대들에게 이 《여덟 단어》가 주어졌습니다.

 

반디 | 지난 해 두 달여 간 20여 명의 젊은이들과 함께 한 이야기가 《여덟 단어》라는 이름을 갖고 세상에 나왔습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한동안, 이 ‘여덟 단어’를 머리와 마음에 품게 될 듯한데요. 다시, 한 권의 책으로 독자와 만나게 된 소감을 부탁 드립니다.

 

박웅현 | 망설이던 책입니다. 《책은 도끼다》 이후 많은 사람들을 만나 보니 사람들이 인생에 대해 어떤 확실한 답을 기대하는 것 같았습니다. 멘토 열풍이 왜 부는 지 알 것도 같았어요. 그래서 이 책을 시작하면서 저도 그 시류에 합류해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인생이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라는 거였습니다. 인생이 회로도는 아니니 답은 없는 것이죠. 이렇게 하고 싶다고 꼭 그렇게 되는 건 아니니까요. 그러니 멘토는 답이 아니라 참고 사항으로 가져가는 것이고요. 그런 의미에서 《여덟 단어》도 하나의 참고 사항으로 보시면 될 겁니다. 읽는 분들의 삶에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기여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귀 기울여 주시되 큰 기대는 하지 않길 바랍니다. 인생은 강의 몇 번, 책 몇 권으로 변하지 않으니까요. 만약 강의 몇 번으로 여러분의 인생을 정리해주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의심해봐야 합니다.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단언컨대 이 여덟 번의 강의도 여러분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유는, 여러분과 이 여덟 가지 단어에 대해 함께 나누고 생각해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8쪽, 저자의 말 중에서)

 

반디 | 《인문학으로 광고하다》와 《책은 도끼다》 출간 이후, 인문학 강연을 많이 해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경청하는 사람을 눈앞에 두고 말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강연과 보이지 않는 독자를 머리에 두고 글로 이야기를 전하는 책, 소통의 방식이 다른 만큼 선생님이 느끼시는 각각의 매력이 있을 것 같습니다.  

 

박웅현 | 개인적으로 직접 이야기하는 걸 선호합니다. 눈빛이나 분위기, 그런 것들로도 상대의 반응이 바로 전해집니다. 그리고 또 제가 거기에 바로바로 대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습니다. 반면 책은 독자들의 반응을 체감하기까지 시간이 걸리죠. 하지만 제가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까지 전해지고 오래 남는 다는 점에서 매력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디 | 책은 여덟 개의 키워드를 통해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생각하게 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모든 단어는 결국 연결이 되면서 하나의 방향으로 나가”고요. 그런데 사실상 첫 번째 단어인 ‘자존’부터 ‘돈오(頓悟)’할 지라도 ‘점수(漸修)’하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자존이 중요한 건 알겠는데 남의 기준에 얽매인 나를 피하기 어렵고, 남을 뺀 내가 무엇인지조차 손에 잡히지 않거든요. 책을 읽으면서 이런 어려움에 부딪힌 분들에게 조언의 말씀을 해주신다면요?

 

박웅현 | 물가에 심어진 나무처럼 흔들리지 말기 바랍니다. 물론 사람이기 때문에 흔들리는 것이 당연하고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점수(漸修)는 흔들림 속에서도 꾸준히 나아가는 겁니다. 그러니 흔들리지 않겠다는 자신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자신의 길을 무시하지 않는 것, 바로 이게 인생입니다. 그리고 모든 인생마다 기회는 달라요. (…) 그러니까 아모르 파티, 자기 인생을 사랑해야 하는 겁니다. 인생에 정석과 같은 교과서는 없습니다. 열심히 살다 보면 인생에 어떤 점들이 뿌려질 것이고, 의미 없어 보이던 그 점들이 어느 순간 연결돼서 별이 되는 거에요. 정해진 빛을 따르려 하지 마세요. 우리에겐 오직 각자의 점과 각자의 별이 있을 뿐입니다.” (33쪽, 1강 ‘자존’ 중에서)

 

 

 

“여러분, 답은 저쪽에 있지 않습니다. 답은 바로 지금, 여기 내 인생에 있습니다. 그러니 그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스스로를 존중하는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39쪽, 1강 ‘자존’ 중에서)

 

반디 |  삶의 목표가 “개처럼 살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일을 위해 현재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현재에 집중하며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인데요. 그래서 질문 드립니다. 선생님의 오늘은 어떠셨나요? 또 무엇 무엇에 최선을 다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오늘을 홀린 책이나 음악이 있다면 그 이야기를 들려주셔도 좋고요.

 

박웅현 | 진행 중인 프로젝트와 만나는 사람들, 오늘 주어진 일들에 순간순간 집중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특히 새벽 수영을 마치고 나왔을 때 맞이한 아침 풍경이 좋았고요. 요즘은 책이나 음악이 아니더라도 꽃이며 나무, 바람 같은 것에 잘 홀립니다. 하루하루 변하는 그 모습에 놀라곤 합니다.

 

“스님도 도를 닦고 있습니까?”
“닦고 있지.”
“어떻게 하시는데요?”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잔다.”
“에이, 그거야 아무나 하는 것 아닙니까? 도 닦는 게 그런 거라면, 아무나 도를 닦고 있다고 하겠군요.”
“그렇지 않아, 그들은 밥 먹을 때 밥은 안 먹고 이런저런 잡 생각을 하고 있고, 잠 잘 때 잠은 안 자고 이런 걱정에 시달리고 있지.” (135쪽, 5강 ‘현재’ 저자 인용문 중에서)

 

“지금 이 순간, 현재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행복은 삶이 끝나갈 때쯤에나 찾게 될 겁니다. 순간에 의미를 부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의미 없는 순간들의 합이 될 테니까요. 만약 삶은 순간의 합이라는 말에 동의하신다면, 찬란한 순간을 잡으세요. 나의 선택을 옳게 만드세요. 여러분의 현재를 믿으세요. 순간순간 의미를 부여하면 내 삶은 의미 있는 삶이 되는 겁니다.” (149쪽, 5강 ‘현재’ 중에서)

 

 

반디 | 각 장에는 선생님의 실제 삶과 그 삶에 영향을 끼친 예술 작품, 생각을 깨운 도끼 같은 책, 그로부터 나온 광고 이야기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습니다. 그래서 책은, 인생을 대하는 여덟 가지의 태도를 말하는 동시에 그 단어를 화두로 삼았던 선생님의 지난 시간을 말해주고 있는데요. 무엇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고, 무엇 하나 쉽게 얻어지는 게 없어 보이지만 그 중에서 혹시, 선생님을 제일 아프고 힘들게 했던 단어가 있을까요?

 

박웅현 | ‘권위’라는 단어입니다. 예전에 아랫사람이었을 때에는 나에게 강요된 권위 때문에 힘들었고, 윗사람이 된 지금은 혹시 나 역시 또 남에게 권위를 부리지 않는지 늘 조심스럽습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강자에게는 강해지려고 하고 약자에게는 약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 제 강의를 들으러 오신,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대부분 저에 대한 호감이 있을 텐데 감사한 일이고, 저도 잘 하고 싶어요. 여러분께 좋은 샘플이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무조건적으로 저를 믿지 마세요. 책 한 권 읽고 사람을 알 수는 없습니다. (…) 박웅현이라는 사람이 생각보다 후진 사람일지도 몰라요. 내가 옳다는 게 다 옳지 않아요. 어떤 부분에서는 잘하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잘못도 해요. 또 어떤 부분은 신뢰할 만하지만 어떤 부분은 허술하기도 해요. 그러니 이걸 나눠서 볼 줄 알아야 하는 겁니다.” (156-157쪽, 6강 ‘권위’ 중에서)

 

반디 | “동의되지 않는 권위에 굴복하지 말고 불합리한 권위에 복종하지 말”라는 책 속 메시지는 애초에 이 책 자체를 빗겨가지 않습니다. “이 책의 모든 내용을 단지 하나의 의견으로 받아들이”고 “박웅현의 말이 얼마나 옳은지 보고, 옳은 부분은 좋아하되 그렇지 않은 부분은 반면교사로 삼으”라고 하셨는데요. 사람들이 선생님의 말에 귀를 기울일수록 이렇게 말씀하시는 게 어려운 일이 될 텐데요. 자기 안에 자리잡는 권위의식과 이 권위의식을 경계하는 자의식 사이에 긴장관계가 생길 때, 어떻게 대처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박웅현 | 사람의 감정은 늘 기복이 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그 순간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도록 마음속 올바른 재판관과 상의합니다. 지금 제 생각과 행동이 권위를 부리는 것은 아닌지,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묻고 답합니다.

 

“권위에 굴복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나이 먹어 윗것이 되었을 때 권위를 부리지 않는 태도도 중요합니다. 권위는 우러나와야 하는 거예요. 내가 이야기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상대가 인격적으로 감화가 돼서 알아줘야 하는 거예요. 그게 권위입니다.” (166쪽, 6강 ‘권위’ 중에서)

 

반디 |  ‘사람을 향하’는 인문학을 바탕에 두고 요리하는 사람, 기업하는 사람, 정치하는 사람 등 사회구성원 모두가 저마다의 자리에서 ‘사람다움’의 방향성을 놓지 않는다면, 그것만큼 좋은 것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인문학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인문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요즘에도, 그 방향이 ‘사람’ 자체가 아닌 경쟁에서의 승리, 물질적 성공 등을 가리키고 있는 듯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문학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서도 한 말씀 해주신다면요?

 

박웅현 | 인문학의 본질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인문학은 사람에 대한 이해입니다. 문사철이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을 인문학으로 보면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궁극적으로 사람과의 소통이기 때문입니다. 《책은 도끼다》 때에도 말씀 드렸지만 인문학은 ‘수원지’라고 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 백두산 천지처럼 큰 산 위에 물이 고여 있는 겁니다. 그 물줄기가 광고라는 분야로 흐르면 인문학으로 광고를 하는 것이고 경영이라는 쪽으로 흐르면 인문학으로 경영을 하는 겁니다. 

 

반디 | 6월입니다. 앞으로 강연이나 책 출간 등 어떤 계획이 있으신지 여쭤보고 싶은데 계획이 없다고 줄곧 말씀해오셨으니 그럴 수가 없네요.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를 통해 만나게 될 반디앤루니스 독자 여러분께, 전인미답의 인생을 함께 헤쳐나가는 사람으로서 한 말씀 부탁 드립니다.

 

박웅현 | 모든 인생에 정답은 없습니다. 정답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현명한 판단을 신중하게 하고 그것을 자신의 답으로 만들어가세요. 인생은 몇 권의 책이나 몇 번의 강의로 바뀔 만큼 시시하지 않습니다. 이 책도 하나의 의견으로 받아들이시고 자신에 대한 존중을 잃지 않고 자신만의 인생을 걸어가길 바랍니다.

 

 

“모든 선택에는 정답과 오답이 공존합니다. 바보처럼 단순하게, 자신의 판단을 믿고 가길 바랍니다. 답은 여기에 있습니다. 아니면 없습니다.”

 

박웅현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뉴욕대학교에서 텔레커뮤니케이션 석사 학위를 받았다. 제일기획에서 광고일을 시작해 지금은 TBWA KOREA에서 ECD로 일하고 있다. 칸국제광고제, 아시아퍼시픽광고제 심사위원을 맡기도 했다. 대표적인 카피 또는 캠페인으로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속으로 들어왔다> <넥타이와 청바지는 평등하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생활의 중심> <사람을 향합니다> <생각은 에너지다> <진심을 짓는다>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책은 도끼다》《인문학으로 광고하다(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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