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2'에 해당되는 글 27건

  1. 2015.02.05 테마에 어울리는 책을 살펴 보세요
  2. 2015.02.05 『도시의 시간』 - 도시의 멜로디
  3. 2015.02.04 『달콤한 로그아웃』 - 이제 좀 꺼져줄래
  4. 2015.02.03 레프 톨스토이『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5. 2015.02.03 『남자의 자리』 - 나는 아버지의 시간을 모른다
  6. 2015.02.02 내가 돌아왔다!
  7. 2015.02.02 『부모와 다른 아이들』 - 세상에는 이런 부모들도 있다

테마에 어울리는 책을 살펴 보세요

 

 

◆ '펜벗 큐레이션 Vol.3'를 만나보세요! ◆ 

 

 

안녕하세요.

반디앤루니스 에디터입니다.

 

반디앤루니스의 서평단 펜벗은

하나의 주제를 정해 책을 읽고, 글을 나눕니다.

이야기하고 싶어 근질거린다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이달에는 '그 남자 그 여자'라는 주제로

책을 고르고 서평을 작성해 보았습니다.


각기 다른 색채로 채워진

'펜벗 큐레이션 Vol.3, 그 남자 그 여자'를  만나보세요.


겨울의 끝자락 달달한 사랑 이야기, 잊히지 않는 그 남자, 혹은 그 여자에 대한 단상까지.

정성스레 고른 책과 여러 색깔의 서평을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 '펜벗 큐레이션 Vol.3' 페이지 바로보기

 

 

- 반디 에디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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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시간』 - 도시의 멜로디


박솔뫼 | 『도시의 시간』 | 민음사 | 2014


박솔뫼 작가의 『도시의 시간』을 읽으면서 내가 지나온 시간을 떠올려 본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나는 '서울 토박이'라고 말하지만 서울은 왠지 '토박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지 않는 도시다. 많은 사람이 그리는 '고향'은 없지만 서울을 떠나 다시 서울로 돌아올 때면 포근한 안정감이 느껴진다. 언젠가부터 서울이라는 도시를 떠올리면 전국 각지에서 올라오고 내려가는 '광장' 같은 느낌을 받는다. 같은 특색이 드러나지 않고 삼삼오오 모여 살지만 저마다의 색깔이 빛나는 곳.

서울의 이질적인 면을 깨닫게 된 것은 지방에서 살던 친척 오빠가 잠시 우리집으로 와서 대학을 다녔을 때였다. 아마도 내가 중학교에 다녔을 때였는데, 그때까지도 난 내가 살던 곳이 무척이나 익숙했고, 내가 사는 도시가 좋았다. 그러나 오빠의 입장은 달랐을지도 모른다. 대학교를 입학하기 이전에는 잘 올라오지 않았던 서울에서 부모와 형제들 없이 생활해야 했을 어려움과 익숙하게 살았던 그곳과 달라 도시의 이면이 싫었을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함께 이야기하던 중 '서울은 참 차가운 도시'라 했던 오빠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 엄마가 있고, 들어갈 집이 있는 나에게는 이 도시의 차가움과 흐린 빛이 느껴지지 않았다. 모든 것이 멀리 떨어져 있는 오빠에게는 도시의 시간이 삭막하고, 사람들이 어디든지 많은 곳이지만 고독하여 따스한 정을 느낄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 도시의 시간을 비로소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은 나와 우미, 우나, 배정이 보냈던 십 대 시절이 아닌 지금이다. 박솔뫼 작가가 느릿느릿 리듬의 속도를 내며 한창 순수했고, 발랄했고, 때론 감수성이 짙었던 시절에는 그 시간의 막막함을 몰랐던 것 같다. 어른이 된 후에 이 책을 읽으니 그들이 느꼈던 암흑과 그들이 함께 보냈던 제니 준 스미스의 음악이 위로가 되고, 꿈이 되었던 시절을 깨닫는다.

나는 나에 대해 별생각이 없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어떻게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정작 뭐가 되어 가는 것은 없었다. 뭐가 될 리가 없었다. 시간은 흐르고 나는 지금처럼 살아갈 것이다. 지금 같은 대학생이 직장인이 될 것이다. 그마저도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날 것이다. 그 이후는 알 수 없다. 되는 것 없이 변하는 것 없이 완성되는 것도 나아지는 것도 없고 깨닫고 나아가는 것도 없다. 그것만 꼭 그렇게 될 것이다. (46쪽)

박솔뫼 작가가 그리는 『도시의 시간』은 회색빛이다. 음울하고 차가운, 미래에 대해서는 전혀 기대감이나 들뜬 기운 없이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살아가는 아이들을 그리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인류는 대단한 미래를 그렸다. 그리고 정말 시간이 지나면 달나라에 갈 것처럼 더 발전되고, 안정된 사회를 생각했을지도. 그러나 시간은 무심히 흘러갔고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글 속에서 느껴지는 차가움과 무심함은 어쩌면 청춘이라면 누구나 느끼고 고민했을 흔적이자 동시에 회색빛 아래에서 사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나와 우나는 십 대인데 중고생은 아니고 이도 저도 아닌 사람들일 뿐이었다. 우리는 이어폰을 한쪽씩 나눠 낀 채로 타는 냄새를 지나쳤다. 우나가 가져온 음악은 도서관 휴게실보다 한밤의 미분양 아파트와 더 어울렸다. 밤이라 조용한 곳을 돌아다니기가 긴장되었지만 음악을 듣는 것은 좋았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을 잡은 채로 시멘트 덩어리 사이를 걸었다. 우나는 기타 하나가 중심이 되는 음악을 좋아했고 그 노래들은 모두 먼 곳을 노래하는 것 같았다. 연기가 향해 가는 곳, 웃음소리가 떨어지는 곳, 그보다 먼 곳을 노래했다. 우리가 어두운 밤과 음악에 집중하는 사이 우우우 우우우 시멘트는 그렇게 노래했을지도 몰랐다. (55쪽)

끝없이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네 명의 청춘들의 이이야기는 시작과 끝도 없이 도시의 시간 속으로 스며드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그들이 어떻게 무슨 일을 하며 삶을 살아가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저 책을 읽은 독자들이 스스로 그들의 삶을 유추할 뿐이다. 『도시의 시간』은 경장편에 속하는 짧은 소설이지만 호흡이 굉장히 느리다. 책 속에서 같은 말을 반복하며 그들을 그리는 것 같지만 세밀하게 한 글자 한 글자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그들의 삶이 비슷하면서도 다른 삶의 흔적들이 엿보인다. 동시에 그들의 감정선이 희미하게 드러난다. 무엇 하나 명확히 드러나지 않지만 같으면서도 같지 않은 청춘들의 내밀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명확한 고조가 드러나면서도 진중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다소 그 호흡이 느려 무엇을 이야기하기에 이처럼 모호하고 단조로울까 싶었다. 어느새 작가의 호흡으로 들어가 까마득했던 그 시간을 기억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물방울'님은?

책도 하나의 인연이라 생각하며, 매일 즐거운 마음으로 책을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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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로그아웃』 - 이제 좀 꺼져줄래

 

 


 


알렉스 릴레 | 『달콤한 로그아웃』 | 나무위의책 | 2013


“모두 그러라는 것은 아냐. 하지만, 적어도 한 집 정도는 조명을 끄고 지켜볼 수 있지 않을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말이야.” 이것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그늘에 대하여』의 맨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말이다. 이 책에는 또 이런 아름다운 문장도 실려 있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여기는 모든 것은 대부분 지극히 일상적인 삶 속에서 나온 것들이다.” (28쪽)

나는 종종 2G 폰으로 오해받는 폴더 폰을 사용한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난생처음 휴대폰이라는 것이 생겼고, 그 휴대폰을 대학 졸업하고도 한참을 쓰다가 지금의 휴대폰으로 바꾼 지는 5년이 넘었다. 스마트폰 안 쓰는 사람 찾기가 힘든 세상이다 보니 “아직도 이런 폰 쓰는 사람이 있어요?”라며 가끔씩 ‘미개인’ 취급을 받기도 하고, “이제 그만 스마트폰 장만하지.” 하는 구슬림도 없지 않다. 스마트폰이 유용할 때가 있다는 건 안다. 그래도 이상하게 내키지가 않는다. 시대 변화를 역행하고픈 반항 심리 따위가 아니다. 소심하고 은근 모범생병이 있는 나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회사 출근하고 반나절이 지나서야 집에 휴대폰을 두고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예전 경험을 미루어 볼 때 휴대폰은 나에게 그리 중요한 물건이 아닌 듯하다. 지금 쓰는 휴대폰만 하더라도 와이파이 접속이 가능하고(실제로 접속해 본 적은 없지만), 음악, 게임이며 여러 기능을 내장하고 있다. 그런데도 통화하고 문자 주고받는 정도의 기본 중의 기본 기능만 충실히 쓰고 있으니, 이런 사람에게 스마트폰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스마트폰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시간과 끈기와 수고로움을 요구하지만 컴퓨터라는 기기가 있는 한 언제든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으니 스마트폰 없이도 당분간은 살아갈 수 있지 싶다. ……그런데 스마트폰은 차치하고 인터넷 없이도 살 수 있을까?

지금껏 잘 써 온 ‘블랙베리’를 휴대폰 가게 점원에게 맡겨둔 것도 모자라 회사와 집에서 쓰는 컴퓨터에 인터넷 연결 프로그램을 모두 삭제한 남자가 있다. 그의 직업은 신문기자. 최신 정보에 발 빠르게 대응해야 할 신문기자가 과연 휴대폰과 인터넷 없이 살 수 있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달콤한 로그아웃』은 아날로그 생활로 돌아간 한 남자의 182일간 기록이다. 제목과 달리 디지털 세계와 로그아웃을 선언한 남자의 생활은 솔직히 그리 달콤해 보이지 않다. 아날로그 생활에 적응하기까지 남자는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 시행착오를 겪고, 심지어 금단현상까지 보인다. 이런 남자 말고도 이 책에는 자유롭게 밖을 나다니지 못하는 것보다 스마트폰을 빼앗긴 것이 더 큰 고통이라고 호소하는 교도소 수감자, 아이들과 함께 물놀이 와서도 스마트폰 화면만 들여다보는 한 엄마, 남자가 무엇을 묻든 “구글에서 찾아봐!”라고 대답하는 직장 동료들이 등장한다. 내 모습을 연상시키는 인물들의 등장에 괜히 속이 뜨끔하다.

남자는 이 기록을 통해 거대 담론을 이야기하거나 지금 당장 디지털 네트워크를 끊으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남자 역시도 실험이 끝난 뒤 집에서만은 웹 브라우저를 설치하지 말자고 마음먹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으니 감히(?) 그런 주장을 할 수 없었으리라. (남자의 친구가 비밀번호를 몰래 바꿔놓는 바람에 웹 브라우저 설치는 순간 미수에 그치지만, 뒷이야기는 알 수가 없다.) 남자는 그저 몸소 아날로그 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느낀 매 순간의 감정을 솔직히 적고 있을 뿐이니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편리한 문명의 기기를 거부하고 굳이 아날로그 생활로 돌아가 보는 남자의 행동을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다가는 도태되고 고립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사회 시스템 역시 많은 부분을 디지털 네트워크에 의존하면서 인터넷 없이는 살기 어려운 구조로 변모해 버렸다. 아마도 우리 모두는 그런 이유 혹은 변명 한 가지씩은 가슴에 안고 문명 기기의 혜택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득 나는 책에 나온, 아이들과 함께 물놀이 왔다는 그 엄마에게 물어보고 싶어졌다. “아이들과 스마트폰 중 당신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하고. 그러면 그녀는 분명 (어쩌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아이들이요.”라고 답하지 않을까. 그녀 자신도 분명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그 순간이 둘도 없이 소중한 시간임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머리로도 알고 가슴으로도 아는 일인데 눈은 스마트폰 화면을 향하고 손은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리기 바쁘다. 참 이상한 일이다.

구글 창립자인 에릭 슈미트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컴퓨터와 휴대폰을 꺼라. 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라.” 그런데 나는 이 말을 이렇게 살짝 바꿔보려 한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컴퓨터와 휴대폰 때문에 놓치지는 마라. 남자가 하고 싶었던 말도 이것이 아니었을까.

 

오늘의 책을 리뷰한 '새벽하늘'님은?

나무에게 부끄럽지 않을, 좋은 책을 찾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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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 톨스토이『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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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자리』 - 나는 아버지의 시간을 모른다

 

 


아니 에르노 | 『남자의 자리』 | 열린책들 | 2012


영화 ‘국제시장’의 아버지를 떠올려본다. 윤덕수(황정민)는 피난길에 잃어버린 아버지와 여동생을 기억하며 스스로 가장이 된다. 그는 홀로된 어머니와 동생들을 보살핀다. 그게 자신의 의무라 여긴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학업도 포기한다. 남동생의 학비를 벌기 위해 파독 광부에 지원하고 여동생의 결혼 자금을 위해 베트남에 간다. 가족을 위해 희생한 그에게 남은 건 장애가 난 한쪽 다리와 계속 돌봐야 하는 가족뿐이다. 이러한 삶이 당연한 거라 믿으며 그는 의지를 꺾지 않는다. 시간이 흘렀고 그도 늙었다. 자녀들은 자라서 가정을 꾸렸고, 그에겐 손자들도 생겼다. 하지만 가족들은 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시장통의 오래된 가게를 왜 끌어안고 사는지, 왜 오래전 시간을 붙잡고 놓지 않는지를.

아니 에르노가 『남자의 자리』를 통해 아버지의 삶을 되짚으며 말한 것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녀의 고백 같은 아버지 이야기는 내가 알고 있는 주변의 아버지, 보편적인 개념의 아버지였다. 가족을 위해 애쓰면서도 애정을 쉽게 표현하지 못하는 무뚝뚝함, 점점 자신의 영역이 좁아지고 자녀가 자라면서 거리감이 생기는 순서까지 똑같았다. 저자는 그런 아버지가 죽고 나서 그를 기억하며 아버지의 역사를 적었다. 어떤 감정보다 지극히 객관적인 순서의 기록이었다. 작가가 직접 보지 못한 아버지의 모습까지 적을 수 있었던 건, 아버지의 어릴 적 이야기를 들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아버지와 딸 사이가 어떤 교감으로 이루어졌을 한때의 시간이 준 기억. 아버지가, 아버지가 된 순간부터 봐 왔던 모습. 늙어가던 아버지의 생활과 점점 이해할 수 없는 시간이 쌓이는 서로의 삶. 그렇게 아버지의 크기가 달라져 갔다.

이 무렵, 그는 벌컥 화내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증오감에 입가에 뒤틀릴 정도로 심하게 화를 냈다. 나는 어머니와 어떤 공모 의식으로 맺어지고 있었다. 달마다 찾아오는 복통, 골라야 할 브래지어, 화장품 같은 것들을 통해서였다. (…) 우리에겐 그가 필요 없었다. (91쪽)

투병생활을 하던 아버지는 조금씩 달라졌다. 얼핏 추측하기에 육체의 노쇠함보다 정신적인 피폐함이 더 삶을 짓눌렀을 듯하다. ‘나는 이제 상자 하나도 제대로 들지 못해.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가족들에게 어떤 권력도 행사할 수 없어. 나는 혼자야…… 그에 반해 자식들은 점점 자라 다른 세계로 편입하고 세상을 알게 되어 자주적으로 살아간다. 아버지는 관심 혹은 간섭의 기회까지 사라진 영역을 오롯이 혼자 지킨다. 늙고 나약해져, 그만의 세계를 산다.

픽션을 거부하는 그녀의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으로 써지고 있지만, 그 개인적인 경험이 그녀만의 기억은 아닌 것 같다. 애틋했던 부모와 자녀 사이도 시간이 흐르면서 무덤덤하고 건조해진다. 살아가는 방식과 시간이 달라 서로 얼굴을 보기도 힘들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늘어나고 벽이 쌓인다. 보통의 가족이 이런 시간을 거친다. 내가 알고 있는 주변의 아버지와 자식들 사이의 모습이다.

나도 다르지 않았다. 아니, 아버지와 나 사이는 그 '보편적'인 범주에조차 속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게 맞겠다. 아버지와는 대화다운 대화를 해본 기억이 없다. 대화로 시작된 말은 싸움으로 끝나기 일쑤였다. 자동으로 차단되는 마음. 서로에게 타인이 되어 살아가는 게 자연스러운, 아버지와 나 사이에 '우리'라는 표현은 없다. 아버지에 관한 이러한 책은 나에게 늘 넘어야 할 거대한 산으로 자리한다. 보편성을 이해하기 위해, 내가 모르는 시간을 알기 위해 부딪혀야만 하는 전쟁 같은 도전이다. 나는 아버지의 시간을 모른다. 그가 어떤 시간을 통과해 어른이 되었고, 어떤 마음으로 부모가 되었으며, 어떤 바람으로 늙어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나는 아니 에르노가 하는 말들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시간을 그녀의 글을 통해, '이런 걸 어떻게 알고 있지?' 하는 물음표를 띄우며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 사이에 오갔을 대화를 그려봤다. 아버지의 유년기를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듣고 있을 딸의 눈빛, 몰랐던 시간이 오고 가며 쌓였을 애틋함과 이해, 아직 멀어지기 전인 부녀의 관계. 나는 바람 같은 시선을 던지며 이 짧은 소설을 꾸역꾸역 삼켰다.

아버지가 화두가 되는 이야기 앞에서 나는 늘 답답하다. 애써 피해가고 싶고, 쉽게 건너가지 못하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다행이었던 건, 그녀가 이 글을 참 담담하게 썼다는 점이다. 감정의 파도가 지극히 일렁일 것 같은 사건 앞에서도 아니 에르노는 기록 의무자처럼 객관적이다. 이게 가능할까 싶지만, 그래야 쓸 수 있었던 그녀의 마음이 보이는 듯하다. 기억, 정리, 기록이 차례차례 가능해지는 순간에 비로소 찾아오는 안도감과 같이. 언젠가 나의 아버지를 더는 볼 수 없는 시간이 오면 나도 이런 기록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지 않고서는 내 가슴속 말, 이해, 정리를 만날 수 없을 것 같다.

그를 멸시한 세계에 내가 속하게 되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그의 가장 큰 자부심이요, 심지어는 그의 삶의 이유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1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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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과 서평을 나누고자 반디앤루니스 '오늘의 책'을 펜벗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
펜벗이란 서평을 쓰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를 의미합니다.
매주 월요일, 성실한 서평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2월의 펜벗 서평 주제는 '그 남자, 그 여자'입니다.


| 펜벗 일문일답

● ‘그 남자’를 아버지로 생각한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 책을 읽는 것이 '전쟁 같은 도전'이라고 했는데, 전쟁을 마치고서 아버지의 거대한 산은 좀 작아 보이던가요?

‘그 남자’를 주제로 여러 책의 주인공을 떠올려 봤는데 연인 같은 남자가 많더라고요. 그 많은 남자 사람을 뒤로하고, 언젠가 한번은 마음 다잡고 덤벼 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책이 아니 에르노의 『남자의 자리』였어요. 펜벗 주제가 아니었더라면, 이 책을 다시 책장 구석에 넣어둘 것만 같아서요. 아버지를 소재로 한 영화나 책은 늘, 저를 힘들게 하거든요. 가까이 가기 위해 아주 노력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늘 제자리에 서 있다가 되돌아가곤 합니다. 평소의 저라면 그런 경우 관계 유지를 포기하는데, 가족이라는 이유로 그 단절이 ‘단절’이 되지 않더군요. 이 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아, 그 거대한 산이 이제는 작아 보이냐고 물으셨죠? 아니요. 작아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마지막에 어떤 모습으로 서로 마주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힘들어도 다시 산에 오르자 다짐하고 언젠가 또 이런 이야기를 선택할 것 같아요.

● 평소 다양한 장르를 신중하게 소화하는 캔맥주 님의 모습을 보고 노력하는 ‘다독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책은 언제부터 즐겨 읽으셨어요?


저 정말 책을 안 읽고 사는 대한민국 사람이었거든요. 대학에 다닐 때도 전공 서적 외 책을 읽어본 적이 거의 없다고 말하면, 지금 제 주변의 책 지인들이 놀라시더라고요. ‘정말?’ 하면서요. 네, 정말요. ^^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는데, 책을 즐기기 시작한 건 한 5년쯤 된 것 같아요. 우연히 모교 구내서점에 갔다가 『냉정과 열정 사이』를 잠깐 읽었는데요. 서서 읽다 보니 재미있어서 바로 사 들고 나왔어요. 그때부터였어요.
지금도 저는 책을 편식하고 많이 읽지도 못하지만, 책을 옆에 두고 늙어가고 싶은 소박한 바람이 있어요.


● 요즘은 무슨 책을 읽고 계세요?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와 하이타니 겐지로의 『상냥하게 살기』를 같이 읽고 있어요. 내키는 대로 두 책 중 손에 잡히는 책을 읽고 있는데요. 『스토너』는 한 남자의 평범한 일생을 담았어요. 심심한 듯 들릴 수 있는데, 오히려 그의 평범한 삶이 너무 와 닿아요. 이 책의 홍보 문구에서 ‘사는 모습은 달라도, 우리는 누구나 스토너다.’라고 하는데요, 딱 그거였어요. 우리 사는 모습과 너무 닮았어요. 그래서 뭉클하게 공감하게 돼요. 『상냥하게 살기』는 하이타니 겐지로가 사십 대에 발표한 육십사 개의 산문집이에요. 나중에 그가 아와지 섬으로 이주한 후의 일상도 들려주는데, 진지하면서 재미있어요. 문득, 하이타니 겐지로가 좀 엉뚱한 아저씨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제가 학교 다닐 때 이런 선생님을 만났다면 조금은 즐거운 학창 시절을 보내지 않았을까 상상해 보게 돼요.


● ‘펜벗’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펜벗에 선정되고 나서 궁금했어요. 매달 어떤 주제로 새로움을 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처음부터 선정된 주제가 저의 기대만큼 새롭거나 신선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말이죠. 그게 반전이었어요. ‘처음’, ‘겨울’, ‘그 남자 그 여자’ 이런 주제가 어떤 책을 떠올리는데 상당한 고민과 관심을 두게 하더라고요. 어떤 책을 골라 볼지 이렇게 많이 고민해본 적이 정말 오랜만이에요. 어떻게 보면 참 평범한 주제일 수 있잖아요. 일상에서 늘 떠올릴 수 있는 주제인데, 이 평범함이 비범함을 만들고 있었어요. 책에 대한 느낌과 의미가 달라지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의 펜벗이 좋아요.
굳이 소박하게 바라는 점 한 가지라도 말해보라면, 펜벗의 주제가 조금 더 친근해져도 좋을 듯해요. 예를 들어, ‘이 주인공만 보면 욕이 나온다.’ 같은 주제요. ^^


오늘의 책을 리뷰한 '캔맥주'님은?

책을 좋아하고 싶어서, 책을 읽어요. 내일도 그럴 수 있기를 바라면서, 오늘도 한 페이지를 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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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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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다른 아이들』 - 세상에는 이런 부모들도 있다

 

 


 


앤드루 솔로몬 | 『부모와 다른 아이들』 | 열린책들 | 2015


 

장애는 질병일까요? 정체성일까요? 어쩌면 우리는 장애가 질병이라는 사고방식에 익숙해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저자는 장애를 정체성으로 규정하는 것이 더 나은 사회를 이루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듯 합니다. 이를 위해 저자는 먼저 수직적 정체성과 수평적 정체성에 대해 말합니다. 부모와 동일하게 물려받은 민족성, 피부색 유전, 언어, 종교 등은 수직적 정체성입니다. 반면에 부모와 구별되는 속성, 이를테면 게이, 신체장애, 천재성, 정신병, 자폐, 지적장애 등은 수평적 정체성입니다. 그러니까 이 책 제목 『부모와 다른 아이들』의 그 '부모와 다른'이 바로 수평적 정체성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장애가 정체성이라는 사실이 당사자들을 온전히 위로해줄 수는 없는 일입니다. "겉으로 명백히 드러나는 자식의 장애는 부모의 자부심을 욕보이고 그들의 사생활을 침해한다." (49쪽)라는 저자의 말처럼 장애가 있는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마음은 그렇지 않은 부모의 그것에 비해 이루 말할 수 없이 무겁겠지요. 심지어 저자는 이렇게도 말합니다. "아무리 폭력적인 아버지도 자신의 외모를 닮은 자식한테는 상대적으로 덜 폭력적이다. 혹시라도 불량배의 자식으로 태어났다면 부디 아버지와 닮은 외모를 가졌기를 빌어야 할 것이다." (24쪽)

 

그런데 사실 저자 자신부터가 수평적 정체성으로 고민하고 상처받았던 사람입니다. 저자는 '게이'라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내 놓습니다. 그러니까 이 책의 '아들'이란 제목의 1장은 저자 자신의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열일곱 살에 한 남자와 성관계를 했다는 사실도 숨기지 않습니다. 미국 사회가 여전히 동성애에 적대적이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저자의 용기에 박수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저자는 이 책 1권에서 청각 장애, 소인증, 다운증후군, 자폐증, 정신분열증, 장애에 관해 다룹니다. 어느 것 하나 가볍지 않고, 쉽게 말할 수 없는 소재입니다. 저자는 자신이 직접 취재해 장애를 지닌 자녀를 둔 부모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실 저는 청각 장애와 소인증, 다운증후군을 각각 다루는 2장과 3장, 4장을 읽을 때만 해도 평정심을 유지하며 읽었습니다. 그렇지만 5장 자폐증 이야기부터는 계속 마음이 흔들리더군요.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한숨을 쉬었던 적이 많았습니다.

 

자폐증 아이들에 관해 말한다면, '부모가 준 사랑에 반응하기 어려운 아이들'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우리는 부모님 주신 사랑의 극히 일부도 갚지 못하지요. 하지만 자폐증의 경우에는 그 정도가 심합니다. 치료를 통해 증상이 완화될 수는 있지만, 어느 부모나 그것을 참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폐증 아들을 살해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한 데브라 윗슨은 경찰에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그 아이가 '엄마, 사랑해요.'라고 말해 주기를 기대하면서 장장 11년을 기다렸어요." (525쪽) 이 책에는 자폐증 자녀를 살해한 사례가 너무도 많이 열거돼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는 일은 아마도 세상에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일 것입니다. (물론 그 역도 마찬가집니다.) 저자는 자폐증 자녀를 살해한 부모 중 절반가량이 이타적인 행동이었다고 주장한다면서, 법정이 이런 범죄에 대해 관대함을 보이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합니다. 저도 저자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렇지만 '자폐증 자녀를 두었다면 과연 끝까지 참는 부모가 될 수 있는가'란 질문이 제게 주어진다면, 쉽게 대답하진 못할 것 같습니다.

 

"정신분열증은 다른 수평적 정체성과는 달리 늦은 사춘기나 성인 초기에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부모에게는 더 큰 아픔으로 다가옵니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자기 자식을 영원히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529쪽) 저자는 심지어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보기에 그들(정신분열증 환자와 그 부모)의 고통은 끝이 없으며, 특이하게도 그 어떠한 보상도 없다." (630쪽) 정신분열증 환자 해리의 어머니 키티의 말을 들어볼까요. 아들 해리를 보살피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심력을 소모하는지 묻는 저자에게 키티는 이렇게 진술합니다. "내게 있는 전부요, 모조리 다요. 정말 이렇게까지 말하고 싶지 않았어요." (541쪽) 자신의 전부를 자기 자식을 위해 소모해버리는 부모 앞에서, 저는 부모로서 자식에게 어떤 보상을 바랐던 적은 없었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세상에는 비유적 표현에서가 아니라 정말 자신의 전부를 불태워 자식을 돌봐야 하는 부모도 있습니다.

 

가슴을 치는 이야기들이 수없이 많이 나오지만, 특히 7장의 '장애'에서 '중도 중복 장애'의 사례가 가장 마음을 울리더군요. 중도 중복 장애의 '중도'는 정도가 심하다는 의미고, '중복'은 말 그대로 장애가 겹쳐진 상태를 말하지요. 그러니까 중도 중복 장애는 그 두 상태를 포괄하는 말입니다. 다음은 이러한 중도 중복 장애 아이를 두 명이나 낳았던 데이비드와 세라 해든의 이야깁니다. 첫째 아들 제이미는 지적 장애에다 전신마비 상태입니다. 다행히 둘째 딸 라이자는 건강하게 태어나지만, 아뿔싸! 셋째 샘이 제이미와 같은 증후군을 앍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어머니 세라는 샘의 진단명이 나온 지 이삼 개월이 지났을 때 자신의 상태를 이렇게 회고합니다. "나는 주방 바닥에 주저앉아 갈등했어요. 그대로 제이미와 샘을 데리고 차고로 가서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다 같이 일산화탄소를 마시고 죽고 싶었죠." (641쪽) 막내 샘은 몇 년 후 욕조에 잠겨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서 마음이 먹먹해지지 않기란 불가능합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저는 '너무도 쉽게 부모가 되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다 보니 부모가 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겠네요. 장애를 지닌 자녀들을 위해 끝까지 버티고, 끝까지 사랑해준 부모들에 견주면 제 사랑은 정말이지 왜소한 것이었더군요. 책을 읽으며 계속 제 아이들을 생각했습니다. 제가 자식에게 한 수많은 실수 가운데 부정적 영향을 끼친 것들이 얼마나 많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네요. 이런 저에게 저자는 이렇게 말해줍니다. "부모는 완벽하지 않고 수많은 실수를 범한다. 그리고 나는 선의가 부모의 실수를 감쪽같이 지워 주는 것은 아니지만, (...) 적어도 실수의 무게를 줄여 준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받는 일은 끔찍한 경험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당신을 도와주려고 그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끔찍함이 줄어들 것이다." (700쪽)

이 말이 그나마 위로가 되긴 하지만, 저는 확실히 진짜 부모가 되려면 아직도 멀었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부모들처럼 비록 자녀들이 나와 다르고, 내 기준에 미치지 못해도, 끝까지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라도 이 절실한 이야기들을 오래도록 기억해두고 싶습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캐러웨이92'님은?

바쁘다는 핑계로 책읽기를 미루고 미루다가, 독서하지 않는 자는 평생 무언가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뒤늦게 깨달은 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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