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에 해당되는 글 33건

  1. 2014.12.02 《미생》 - 내가 아주 처음이었을 때
  2. 2014.12.01 무지개 위에 눈이 있었구나!
  3. 2014.12.01 《글쓰기를 말하다》 - 왜 쓰는지 나도 몰라

《미생》 - 내가 아주 처음이었을 때

 

 

 

윤태호 | 《미생》 | 위즈덤하우스 | 2013

 

'처음'이라는 말은 왠지 설렌다. '첫사랑'은 풋풋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감정을, '첫아이'라는 작은 생명의 탄생은 따뜻함을 전해준다. 나의 인생에도 '처음'이라 표현할 수 있는 무수한 상황이 존재한다. 모든 것이 생소한 유아기부터 점점 책임이 뒤따르는 현재까지. 수많은 '처음'을 생각하다가 문득 나의 첫 회사 생활이 떠올랐다. 10여 년 넘게 회사에 다니고 있다. 회사는 나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경제적인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나이가 들면서 회사 생활에 점점 익숙해졌고, 타성에 젖어 나의 하루에 너무나 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던 중 《미생》을 읽었다.

 

누구든지 회사에 처음 다닐 땐 열심히 하려는 의욕으로 가득 찬다.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는 그러한 의욕과 더불어 비장함을 보여준다. 그에게 회사란 학교를 마치고 사회의 첫걸음을 내딛는 장소가 아니라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새로운 세계다. 그는 오로지 바둑에만 몰두해 왔기에 세상 물정을 모른다. 장그래에겐 신입사원의 길 자체가 바로 '미생'인 것이다. 그는 남보다 더욱 노력할 수밖에 없고, 어떠한 경우라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장그래의 모습은 내가 생각했던 신입의 모습보다 더욱 절박한 상황으로 묘사된다.

 

장그래를 보면 나도 모르게 응원을 보내게 된다. 그의 여정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이다. 장그래는 바둑을 두면서 배운 전략을 회사 생활에 적절히 활용하면서 성장한다. 상대의 꼼수에 정공법으로 대응하여 상대의 실수를 유도하거나, '환격(바둑에서, 상대편이 자신의 돌 하나를 잡게 놓아둔 뒤에 바로 그 자리에 다시 놓아서 상대편의 돌 여럿을 잡는 일.)'과 같은 바둑의 수를 회사 생활에서 발휘한다.

 

나는 장그래와 같이 절박한 상황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동기 장백기라는 인물에서 나의 회사 생활의 ‘처음’을 찾을 수 있었다. 계약직 사원인 장그래를 항상 의식하면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라든지, 어느 정도 회사 생활에 익숙해져서 이 작품에서 말하는 '회사 생활의 사춘기'에 접어든 모습까지.

 

장그래와 같이 일하는 상사인 오 과장과 김 대리, 신입 동기들, 대형 비리를 저지르고 사욕만을 추구하는 박 과장, 육아와 회사 생활을 병행하는 선 차장. 이들의 모습은 내가 지향할 직장인의 모습이라든지 버려야 할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이들도 결국 완생이 아닌 미생에 놓인 것 아닐까. 장그래의 회사 생활은 결국 미생과 미생의 만남이지, 완생 속에서 길을 찾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도 애환이 있다. 상사의 잘못된 지시에 갈등하고, 성과에 대한 빈약한 보상에 불만을 품는다. 회사 생활에 매진하기 어려워 육아와 가사에 부담을 가진다. 장그래가 새로운 세계에 들어서서 어려움을 겪는 것처럼 누구에게나 애로가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회사 생활에 익숙해져 가는 장그래의 모습은 오히려 불안해 보인다. 정직원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거의 없기에 의기소침해지는 것이다. 장그래는 이러한 불안함을 계속 표출하기 시작한다. 그를 바라보는 동료도 마음이 불편해진다. 나는 처음부터 정규직으로 시작했기에 그러한 불안함이 없었다. 그러나 장그래의 2년짜리 계약직이라는 상황을 확장해 보면,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나의 회사 생활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약 10년간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살아있는 상태가 아닌 '미생'의 장그래의 처음과 마지막은 곧 나의 직장 생활의 처음과 마지막과 일치한다.

 

《미생》에서는 장그래의 삶이 완생이라고 직접 말하지 않는다. 미생들이 모여서 완생을 이루는 바둑처럼 가능성을 내비칠 뿐이다. 나는 분명 이 책을 나의 회사 생활의 '처음'을 들여다보기 위해 선택했다. 그러나 곧 ‘끝’으로 순식간에 이어진 느낌을 받았다. '처음'은 어쩌면 '끝'에 이르기 위한 첫 단계라고 생각한다. '처음'이라는 단어가 주는 설렘과 기대를 어떻게 '끝'까지 이어갈 수 있는지 고심해볼 필요가 있다. 나도 여전히 '미생'으로 살아간다.

 

단 두 집만 이루어도 완생이 되는 바둑에서조차 승패가 갈린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완생의 길을 좇는 우리의 모습도 영원히 미생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완생이라고 생각한 삶이 덧없게 느껴질지 모른다.

좋은 책과 서평을 나누고자 반디앤루니스 '오늘의 책'을 펜벗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

펜벗이란 서평을 쓰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를 의미합니다.

매주 월요일, 성실한 서평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12월의 서평 주제는 '처음'입니다. 셀 수 없이 많은 각자의 '처음'을 책과 함께 떠올려 보세요.

'오늘의 처음'으로 생생히 떠오르길 바랍니다.

 

| 펜벗 일문일답

 

● 서평을 읽으면서 ‘이제 10여 년이 지난 회사 생활'이라는 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회사 생활 '처음'에 품었던 마음가짐과 지금이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하세요?


네. 아무래도 직장인이라면 공감하실 분이 많을 것 같은데요. 입사 시점에는 일을 배우면서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의욕적으로 일했던 것 같습니다. 잦은 야근과 특근을 하더라도 힘들다는 생각보다 조금씩 성장해가는 저의 모습에 만족할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11년 정도 같은 일을 하다 보니 거대한 벽에 부딪힌 것 같고 무언가가 제 발목을 잡는 느낌이 들었어요. 왠지 지치더군요. 입사 연수를 받던 시절, 동기들과 함께 타임캡슐에 보관하였던 저의 목표와 마음가짐이 이제 시야에서 가물가물 사라지는 듯합니다.

 

● 잊고 있던 목표가 무엇이었나요?


첫 번째 목표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 두 번째 목표는 바로 직장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평범한 목표인데도 시간이 흐를수록 목표로부터 점점 뒷걸음치는 것 같네요. 가정을 이루었지만, 회사 일을 핑계로 왠지 소홀히 한 건 아닐까, 의구심이 들어요. 회사에서는 나름 열심히 했다고 생각하지만, 그저 평범한 존재로 인식되는 것 같고요. 지금 생각하면 저 두 목표가 결코 평범한 게 아니었어요.

 

● '처음'이라는 단어가 주는 설렘과 기대를 어떻게 '끝'까지 이어갈 수 있는지 고심해 보겠다고 하셨는데, 어떤 답이 나오셨는지요.


《미생》을 읽으면서 정말 저의 과거 입사 시절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덕분에 회사 생활의 ‘처음’을 떠올리면서 마음을 다잡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더군요. 나름 의욕과 ‘처음’이 주는 열정을 갖고 새로 시작해 보려 했지만, 이미 저의 회사 생활은 짜인 틀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끝’까지 이어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2주 전에 회사에서 업무 개편이 있었습니다. 다시 ‘처음’의 순간을 맞이할 기회가 온 것입니다. 여기에 제가 뒤늦게 아빠가 됩니다. 2달 후에 아이가 태어날 예정이라 저에게는 좀 더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생겼어요.

 

부끄럽게도 저는 여전히 고심하는 중입니다. 업무의 변경, 아기의 탄생으로 ‘처음’이 주는 설렘과 기대를 다시 얻게 됐지만, ‘스스로’는 답을 아직 도출하지 못한 것입니다. 삶의 기본에 충실하면서 좀 더 고심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 요즘은 무슨 책을 읽으세요?


현재 읽고 있는 책은 《숨 막혀 죽겠거든, 철학하라》입니다.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잡기 위하여 고심하는 와중, 철학이라는 분야에서 해답을 찾고 싶어서 읽게 된 책인데요, 이 책의 저자는 아버지의 교통사고, 동생의 자살로 한순간에 인생의 나락까지 경험하고, 이후 철학에서 다시 길을 찾았다고 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도 모르게 인생의 지혜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철학자의 저서와 내용을 상황에 맞게 인용하여 철학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책입니다.
또 《이토록 철학적인 순간》이라는 책도 같이 읽고 있습니다. 이 책도 출생에서부터 죽음, 내세에 이르는 인생의 모든 상황을 철학에 비추어 이야기합니다. 딱딱하게 느껴지는 철학을 부드러운 시선으로 풀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책사랑!님은?

잃어버렸던 독서의 즐거움을 뒤늦게 깨닫고, 꾸준히 책을 읽으려고 노력중인 직장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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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위에 눈이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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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말하다》 - 왜 쓰는지 나도 몰라

 

 

오스터 | 《글쓰기를 말하다》 | 인간사랑 | 2014

 

“왜 글을 쓰는가?”라는 질문은 내게 “왜 사는가?”라는 질문과 같다. 자신이 왜 태어났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내게 글이 그렇다. 왜 쓰는지 알 수 없을 때부터 나는 어설픈 동시를 끄적였고, 독서감상문 쓰기는 내겐 놀이와 같았다. 폴 오스터 또한 마찬가지였던 듯하다.

 

그는 《빵굽는 타자기》에서 말한다. 글쓰기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 ‘받는’것이라고. 우리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 선택 받았고,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돈이나 나이, 생김새 따위는 상관없다. 그저 쓰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쓰는 것뿐이다. 아니라면, 쓰고 싶지 않은데 쓰고 있다고 곰곰이 생각해보길 바란다. 글을 쓸 때 두 가지 이상의 동의어를 놓고 고민한 적이 있는지, 한 문장을 잘 쓰기 위해 하루 이상 고민한 적이 있는지, 잘 썼다는 생각이 들면 누군가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스스로 자랑스러운 마음이 드는지. 이 중 하나라도 해당된다면 당신이 글쟁이로 지어진 것은 아닌지 고민 해봐도 좋겠다.

 

물론 위 세 가지 경우에 해당하더라도 누구나 노후가 보장된 유명한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얻는 거라곤 마음의 평화 정도인데, 그 평화마저도 글을 쓰기 시작하면 망가질지 모른다. 제목에 가장 부합하는 장은 단연코 5장 ‘손으로 쓴 원고’다. (책 내용이 길어서 일부분만 읽고 싶은 사람에게 5장을 추천한다) 글쓰기에 대한 그의 생각을 알 수 있으며, 여러 가지 참고할 만한 방법도 얻을 수 있다. 그렇지만 《글쓰기를 말하다 ? 폴 오스터와의 대화》의 전체 내용이 여기에 강조점을 찍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재미있게도 이 책의 꽤 많은 분량이 ‘폴 오스터의 영화’를 얘기 하는데 할애된다. 시나리오는 당연히 폴 오스터의 몫이고, 그가 감독 또는 투자까지 겸하는 영화도 있다. 그가 투자하는 영화에서 그의 활약은 대단하다.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카메라 감독과 동선을 체크하고, 역에 적합한 배우들을 캐스팅하며, 미술감독과 소품을 사러 다니기도 한다. 그 작업을 즐거워하면서도 영화의 한계를 지적하고, 결국 글이 더 오래 갈 것이라 예언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카메라 렌즈가 인간의 눈을 뛰어넘을 수 없는 것처럼, 영화 산업도 상상력보다 높이뛰기는 힘들다.

 

혹자는 “오독의 권리를 남용했다.”고 말할지 모르나, 책을 읽는 동안 글쓰기야말로 문화산업의 ‘원천’이라고 생각했다. (할리우드는 작가들이 파업하면 마비될 정도라지 않은가!) 소설이나 시 등은 물론, 영화, 연극, 뮤지컬로 각광받는 문화 산업도 결국 ‘글’에서 출발한다. 폴 오스터의 작품이 그렇듯 모든 이야기는 영화와 연극, 뮤지컬로 변신할 수 있다. 글쓰기는 ‘마술봉’이다. 언제 어디로든 갈 수 있고 누구라도 될 수 있다. 앞으로의 세상은 지식산업사회, 문화산업사회라 하니 나에겐 마술봉을 제대로 휘두를 일만 남았다. 휘두를 능력이 없다는 게 함정이지만!

 

오늘의 책을 리뷰한 'YAMUYAMUBOOKS'님은?

감동도 잘 받고 상처도 잘 받고, 칭찬도 잘 하고 욕은 더 잘 한다. 창조적 언어체계 형성에 일조하고 싶으나 언제나 마음뿐이다. 소설창작에 관심이 많고, 시나 칼럼 쓰기도 좋아한다. 언젠가 ‘작가’라는 꼬리표를 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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