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에 해당되는 글 33건

  1. 2014.12.10 《나의 사직동》 - 동네 한 바퀴
  2. 2014.12.09 신준모 《어떤 하루》
  3. 2014.12.09 《픽션들》 - 처음에서 영원으로
  4. 2014.12.09 가만히
  5. 2014.12.08 《YES!》 - 로맨틱한 사랑을 '제대로' 이야기할 줄 아는 뮤지션, 제이슨 므라즈
  6. 2014.12.05 다시, 소설
  7. 2014.12.05 《주홍글자》 - 난 내가 되겠어
  8. 2014.12.04 《노동자 쓰러지다》 - 산재를 신청합니다
  9. 2014.12.03 《눈먼 자들의 국가》 - 2014년 4월 16일
  10. 2014.12.02 서경덕 《당신이 알아야 할 한국사 10》

《나의 사직동》 - 동네 한 바퀴

 

 

한성옥, 김서정 | 《나의 사직동》 | 보림 | 2014

 

누구에게나 소중히 여기는 추억의 장소가 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따뜻해지거나 아련해지는 곳 말이다. 내겐 광화문이 그렇다. 아버지의 사무실이 있었던 광화문 거리를 지금도 나는 쉽게 지나치지 못한다. 나조차도 믿어지지 않을 만큼 긴 세월이 흘렀건만, 사무실이 있던 건물을 올려다볼 때면 여전히 가슴이 뭉클해진다.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건물이지만 내 시선이 머무는 곳은 젊은 아버지와 어린 내가 있던 그 시절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2, 3학년 무렵 아버지의 사무실이 궁금했던 나는 엄마나 고모를 졸라 아버지의 사무실을 간간이 찾았다. 아버지의 사무실에서 재미가 시들해지면 슬쩍 밖으로 나와 한 바퀴를 돌았다. 사무실이 있던 건물에서 조금 위로 올라가면 새문안교회가 있었다. 한 번도 들어가 본 적 없지만, 이웃집 같은 느낌의 작은 교회가 도심에 있다는 게 어린 마음에도 희한했던 것 같다. 그때 광화문에서 내가 걸었던 거리는 불과 백 미터도 채 되지 않는다. 오랫동안 머물렀던 것도 아니다. 잠깐씩 놀러 가 구경했을 뿐인데,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다.

 

 

한성옥이 그리고 김서정이 쓴 《나의 사직동》은 서울 종로구 사직동의 지난 시간을 살갑게 전하는 책이다. 사직동 129번지에서 나고 자란 어린 소녀 한성옥을 주인공으로 한 이 책은, 소녀의 입을 통해 그 시절 그 장소로 우리를 이끈다. 소녀가 제일 먼저 안내하는 곳은 일제시대 때 지어져 칠십 년 넘게 동네 한복판을 지켰다는 그녀의 집이다. 친정엄마가 어릴 적에 이사와 그녀가 열한 살이 될 때까지 살았다는 그 집은, 봄이면 라일락이 피고 가을이면 황금빛 은행나무를 볼 수 있었다. 담쟁이도 무성했다. 그곳에서 그녀는 자신의 유년을 찬란하게 보낸다.

 

 

사직동은 참으로 정겨운 동네였다. 아흔이 넘은 정미네 할머니와 나물 말리는 게 취미인 나물 할머니, 파마 약만 사 가면 공짜로 머리를 해주던 파마 아줌마, 날마다 골목길을 쓸던 스마일 아저씨가 계셨다. 해장국이 자식들을 먹여 살리고 가르쳤다며 자신에게는 해장국이 서방이라는 해장국 집 아줌마, 가끔 사탕을 쥐여주던 슈퍼 아저씨, 하나뿐인 팔로 온갖 일을 해냈던 재활용 아저씨와 아줌마가 계셨다. 참으로 소박한 행복이 넘실대던 곳이었다.

 

어느 날, 동네에 '도심재개발 사업시행인가득'이라는 낯선 현수막이 걸리며 사직동이 달라졌다. 부모님은 회의에 간다며 자주 집을 비우기 시작했고, 늘 웃던 슈퍼 아저씨와 말 없던 재활용 아저씨가 소리 높여 말다툼했다. 아이들은 예전처럼 뛰놀았지만, 동네는 전과 같지 않았다. 떡볶이를 팔던 문구점이 문을 닫자 금세 다른 간판이 걸렸고, 꽃집과 치킨 집은 부동산 사무실로 바뀌었다. 반장 할아버지 생일이 온 동네 사람이 함께하는 마지막 날일 줄은 아무도 몰랐다.

 

 

이사가 시작되고 다들 뿔뿔이 흩어졌다. 몇 년이 지나 다시 모이는 날이 되었다. 어린 소녀는 청소년이 되었고, 사직동 129번지는 모닝팰리스 103동 801호가 되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눈에 띄지 않았고, 옛날 동네 사람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노는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 곳, 개 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 여기는 사직동이지만, 나의 사직동은 아닙니다. 나의 사직동은 이제는 없습니다."

 

바뀌어 버린 사직동에 소녀는 절망하고 만다. 함께 기뻐하고, 작은 것 하나라도 나눴던 시절은 이제 어디서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지난 시간을 함께 했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고, 그 흔적마저 사라진 곳에서 소녀가 발견한 것은 허탈감뿐이었다. 좋은 시설이 좋은 환경을 만들 거란 어른들의 생각이 틀리진 않았지만, 그들이 그토록 사랑했던 사직동은 이미 없는 곳이 되고 말았다. 마음 한구석이 시리다. 추억의 흔적이 사라진 곳이 결코 같은 사직동이 될 수 없을 테니.

 

아버지의 사무실이 있었던 작은 건물을 볼 때마다, 회상할 수 있는 장소가 남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사뭇 느낀다. 시간을 담아내고 세월을 견뎌낸 것은 외형이 어떠하든 그 자체만으로도 작은 역사가 되니 말이다. 만일 사직동에 예전을 느낄 수 있는 장소가 한 군데라도 남아 있었다면, 소녀가 느꼈던 상실감이 그토록 크진 않았을 테다. 아버지와 함께 식사했던 음식점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사실은 그래서 내게 큰 선물이 된다. 우리는 추억을 먹고 사는 존재고, 더듬을 추억이 많을수록 우리의 삶은 더 풍성해질 것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둘이서 랄랄라'님은?

평범한 아줌마입니다. 제게 간직한 꿈이 하나 있는데요. 3 층짜리 조그만 건물을 지어 1층은 작은 도서관으로, 2층은 작은 출판사로, 3층은 선교사를 위한 단기 게스트하우스로 만들어 멋지게 활용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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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준모 《어떤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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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들》 - 처음에서 영원으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 《픽션들》 | 민음사 | 2011

 

거울, 백과사전, 미로, 도서관, 무한, 알렙, 삐에르 메나르, 푸네스, 그리고 나침반. 이 정도면 짐작하셨으리라 봅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혹자는 말하지요. 그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고 20세기 현대문학을 이야기할 수 없다고. 보르헤스는 그처럼 많은 이들에게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친 ‘작가들의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알랭 로브그리예(lain Robbe-Grillet)부터 토머스 핀천(Thomas Ruggles Pynchon, Jr), 존 바스, 주제 사라마구(Jos? de Sousa Saramago), 살만 루시디(Ahmed Salman Rushdie)를 비롯해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와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 모리스 블랑쇼(Maurice Blanchot), 제라르 주네트(G?rard Genette) 또한 보르헤스라는 이름에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표했지요.

 

물론 저 같은 한낱 독자에게도 보르헤스라는 이름은 각별하고 소중합니다. ‘바벨의 도서관’이라는 저의 닉네임 역시 보르헤스의 단편소설 < 바벨의 도서관 〉에서 따온 것인데요. 도서관 사서 출신이라 그런지 보르헤스 하면, 저는 이 단편소설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바벨의 도서관, 거기에는 무한한 육각형의 방이 있고 각 방에는 두 면을 제외한 네 면마다 다섯 개씩, 모두 스무 개의 책장이 들어서 있다고 하지요. 이 방과 방 사이에는 거대한 통풍 구멍이 나 있는데, 덕분에 어떤 방에서든 끝없이 뻗어 있는 위층과 아래층을 훤히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상상해 보세요. 낭하와 층계, 육각형 모양을 한 방들이 무한하게, 영원히, 고귀한 책으로 가득 찬 채, 그러나 매우 비밀스러운 모습으로 감춰져 있는 세계를. 거기에는 쓸 수 있었으나 쓰지 않았던 책, 소실된 책이 보관돼 있습니다. 그리고 그 책들은 서로를 거울처럼 비추지요. 상대의 갈피에서 어느 한 줄을 인용하고, 참조하는 동시에 반론하고 지시하는 겁니다. 그 속에서 하나의 문장은 이전의 다른 문장을 기반으로 생산됩니다. 문장의 해석은 읽는 자에 따라 저마다 다른 의미로 개방됩니다. 문학비평가 헤럴드 블룸(Harold Bloom)은 보르헤스를 단적으로 이렇게 표현했지요. “체호프에게 셰익스피어는 《햄릿》의 저자이지만 보르헤스에게 셰익스피어는 모든 사람인 동시에 아무도 아니다.”

 

만약 우리가 그곳에 간다면 서가와 서가 사이를 거니는 것만으로 인생의 시간을 잘 탕진하고 낭비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책에서 저 책으로, 그 책에서 다시 다른 책으로. 완결되지 않은 여행을 할 수도 있겠지요. 궁극의 해답을 기록한 단 한 권의 책을 발견하기 위해서든 그저 영원한 순례 그 자체를 위해서든.

 

저는 민음사에서 나온 다섯 권짜리 보르헤스 소설 전집을 지니고 있습니다. 월급으로 산 첫 전집이었지요. 누군가에게 종속되어 한 달을 바친 대가를 보르헤스로 풀었던 셈입니다. 요즘 나오는 밀란 쿤데라나 로베르토 볼라뇨 전집, 이탈로 칼비노 전집에 비하면 보르헤스 소설 전집의 분량은 상당히 소박한 편에 속합니다. 압축과 함축을 중요시했던 보르헤스에게는 이마저도 많게 여겨질지 모르겠습니다. 보르헤스가 단편소설 〈 알렙 〉 첫머리에 햄릿의 대사를 옮겨놓은 까닭도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천만에, 나는 호두껍질 안에 웅크리고 들어가 있으면서도 나 자신을 무한하기 그지없는 어떤 공간의 ‘주인’으로 여길 수 있네. (207쪽, 보르헤스 소설 선집 제3권 < 알렙 > 중)

 

지름 2, 3cm의 작은 구체에 모든 각도에서 본 지구의 모든 지점이 존재한다는 '알렙'처럼 보르헤스는 동시적인 것에서 영원을 발견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은 영국 포병대 위치를 베를린에 교신하기 위해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을, 그 미로들의 미로를 헤매던 ‘유춘’과 같이 어스름 짙은 들판에 서서 “무한한 이야기들, 무한히 가지가 갈라지는 이야기들”(본문 중에서)을 흥미로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분명한 것은 그에게 글쓰기란 고통에 자신을 투신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거울과 백과사전으로 ‘우크바르’라는 상상의 지역을 발견해내는 일이란 매우 즐거운 유희일 수밖에요. 보르헤스는 환상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현실을 제게 처음 알려준 소설가였습니다. ‘텍스트’에 참여하고 그것을 만지며 또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기쁨을 말입니다.

 

 

 

좋은 책과 서평을 나누고자 반디앤루니스 '오늘의 책'을 펜벗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

펜벗이란 서평을 쓰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를 의미합니다.

매주 월요일, 성실한 서평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12월의 서평 주제는 '처음'입니다. 셀 수 없이 많은 각자의 '처음'을 책과 함께 떠올려 보세요.

'오늘의 처음'으로 생생히 떠오르길 바랍니다.

 

| 펜벗 일문일답

 

● 월급으로 산 첫 전집이 민음사에서 출간한 보르헤스 전집이라고 하셨죠. 첫 월급으로 샀던 책은 무엇이었는지 기억하세요?


이것저것 꽤 많이 구매했던 것 같은데 한강의 《내 여자의 열매》가 기억나요. 보르헤스 전집의 검은 표지 위에 한강 소설집의 오렌지빛 표지가 겹쳐 있던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걸까요. 《내 여자의 열매》에 나오는 “겨울에는 견뎠고 봄에는 기쁘다.”라는 문장이 좋아서 그걸 제목 삼아 짧은 리뷰 한 편을 썼던 기억도 납니다.

 

● 생각하고 계신 꿈의 도서관은 어떤 모습인가요? 이를테면, 도서관의 위치, 서재의 구성에 관한 구체적인 모습이랄까요?


만약 제 마음대로 장서 구성을 할 수 있는 도서관이 생긴다면, 십진법에 따른 분류 외에도 책 한 권 한 권마다 ‘보라 참조(see ~ )’나 ‘~도 보라 참조(see also ~)’ 목록을 표로 붙여 두고 싶습니다. 본래 ‘보라 참조’나 ‘~도 보라 참조’는 도서관에서 키워드를 통일하고 연관어를 안내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인데요. 이걸 이용해서 한 권의 책이 또 다른 책으로 이어지도록 설계하는 거죠. 그러면 특정 작가의 책을 파고드는 전작주의 외에도 다양한 방식의 독서가 가능하지 않을까 상상합니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막막한 독자라도 일단 그 도서관의 책 한 권을 집어 드는 순간,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간 책 지도를 발견하는 셈이 될 테고요.

 

● 프로필의 구절이 인상 깊습니다. '오랫동안 찾던 책을 발견하기를.' 아직 발견하지 못한, 마음속에 늘 품고 다니는 책은 무엇인가요?


오랫동안 찾던 책을 발견하고 싶다는 말은 그 책을 읽는 첫 번째 독자가 되겠다는 뜻입니다. 정말로 그 책을 찾아내 읽는 첫 독자가 될 수도 있고, 염치없게도 그 책을 씀으로써 제일 처음 그 글을 읽어나가는 이가 될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오랫동안 찾던 책을 발견한다는 건, 그 책을 만나는 순간 저절로 알게 될 것 같아요. 무수한 책들을 거쳐 이제 여기에 이르렀구나 하면서.

 

● 요즘은 무슨 책을 읽으세요?


피터 비에리의 철학 에세이 《삶의 격》과 여러 사상가의 에세이를 수록한 《우리는 매일 슬픔 한 조각을 삼킨다》를 최근 다 읽었고요. 지금은 돈 드릴로의 《마오 2》 초반부를 읽고 있습니다. 《리브라》를 읽다가 덮은 적이 있어서 이번에는 기필코 성공해 보려고요. 12월 중으로는 버지니아 울프와 플래너리 오코너의 몇몇 작품을 찬찬히 읽을 계획입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바벨의 도서관님은?

오랫동안 찾던 책을 발견하기를, 그 일로 주어진 인생의 시간을 잘 탕진하고 낭비할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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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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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 - 로맨틱한 사랑을 '제대로' 이야기할 줄 아는 뮤지션, 제이슨 므라즈

 

 

제이슨 므라즈 (Jason Mraz) | 《YES!》 | Warner | 2014

 

‘The Remedy(I Won’t Worry)’와 ‘Geek in the Pink’로 주목받을 때만 해도 제이슨 므라즈(이하 ‘므라즈’)는 포크록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경쾌하고 감각적인 면모도 겸비한 ‘재기 넘치는 젊은 뮤지션’의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나 3집 《We Sing, We Dance, We Steal Things》(2008)에 실린 싱글 ‘I’m Yours’가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이후 그의 이미지는 낭만적이고 달콤한 사랑 노래를 만드는 뮤지션으로 굳어진 것 같다. 국내에서도 큰 사랑을 받으며 팝음악 팬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음악팬들에게까지 므라즈의 이름을 널리 알린 이 노래는 분명 그 정도 인기를 얻을 만한 매력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We Sing, We Dance, We Steal Things》의 후속작이었던 4집 《Love Is a Four Letter Word》(2012)가 매력적이지만 비슷비슷한 분위기의 낭만적인 사랑 노래들로 채워져 있는 것을 보며, 초창기에는 분명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므라즈라는 뮤지션의 음악 색채가 한 방향으로 굳어진 듯한 아쉬움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2년 만에 발매된 5집 앨범 《Yes!》은 전작과 비슷하면서도 제법 다르다. 사실 이 음반에서도 ‘The Remedy’나 ‘Geek in the Pink’ 시절의 재기발랄함을 찾을 수 없다. 대신 이 앨범은 더없이 부드럽고 낭만적이며 때로는 나른하기까지 하다. 즉 《Yes!》는 ‘I’m Yours’의 연장선에 있었던 전작 《Love Is a Four Letter Word》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갔다고 할까.

 

이 작품에서 므라즈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사랑 노래의 전도사’라도 된 듯, 처음부터 아예 작정하고 듣는 이의 가슴을 어루만진다. 첫 싱글로 발매된 ‘Love Someone’은 멈포드 & 선즈(Mumford & Sons)나 루미니어스(The Lumineers) 같은 ‘요즘 인기 있는’ 풍성한 사운드의 포크록을 들려주는데, 므라즈의 목소리와 시원한 편곡 덕분에 이 노래는 그들의 음악과 다른 남쪽 나라 푸른 바다의 정서를 물씬 풍긴다. 낭만적인 어쿠스틱 팝 음악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을 ‘Hello, You Beautiful Thing’‘Long Drive’, ‘Out of My Hands’, ‘You Can Rely on Me’, ‘A World with You’ 같은 노래들은 얼핏 들으면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발라드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최근 주류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뮤지션들 중 이런 스타일의 매력적이고 달콤한 포크 발라드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도 사실이기에 ‘평범’이라는 단어로 뭉뚱그리기엔 많이 아쉽다.

 

게다가 이 앨범의 수록곡은 기타, 피아노, 목소리, 드럼/퍼커션의 단출한 구성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우쿨렐레와 같은 다양한 악기의 지원을 받는 것은 물론 레게를 비롯한 다채로운 중남미 음악의 리듬감을 다루거나(‘Back to the Earth’, ‘3 Things’), 경쾌한 록비트를 집어넣고(‘Everywhere’), 유명한 노래를 리메이크하거나(보이즈 투 맨(Boyz II Men)의 곡 ‘It’s So Hard to Say Goodbye to Yesterday’), 극적인 전개의 곡을 앨범 마지막에 배치하며 (‘Shine’) 듣는 이들이 쉽게 질리지 않도록 다채로운 변주를 가하며 한층 여문 자신의 음악 세계를 풀어 놓는다.

 

뻔한 사랑 노래? 이번 므라즈의 앨범은 분명 사랑 노래가 맞다. 그렇지만 뮤지션들이 그렇게 끊임없이 사랑에 관해 이야기해 온 이유는 ‘사랑’이라는 것이 그만큼 끝도 없이 말해도 질리지 않을 세상의 보편적인 가치 중 하나이기 때문이 아닐까? 므라즈의 《Yes!》는 음악과 가사를 통해 슬픈 사랑, 혹은 열정과 욕망으로 불타오르는 사랑이 아닌 편안하고 낭만적이면서 여유로운 분위기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흔치 않은’ 매력을 발산하는 앨범이다.


 

오늘의 음반을 리뷰한 '이규탁'님은?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스스로 글을 굉장히 잘 쓴다고 믿고 사는 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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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소설

 

 


 

다시, 소설 

 

지난 2일이었습니다. 서울 동숭동에서 특별한 기획을 알린 행사가 있었습니다. 내용인 즉 이렇습니다. 한국 문학 100년을 재조명하고자 시대를 대표하는 100인의 배우가 소설을 낭독한다는 것이죠. 소설은 근대문학의 태동기인 1910년부터 제5공화국 시기까지 발표한 것 중 문학적 가치를 엄선하여 100편을 선정한답니다.

 

모처럼 반가운 소식입니다. ‘우리 문학’을 재조명하기 위한 이런 소소한 시도가 얼마 만인지요. 금번 반디앤루니스에서도 우리 문학, 그중에서도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서평을 나누며 책 이야기 하는 친구, 펜벗’과 함께 한국 소설의 첫 문장을 곱씹어 보았죠. 잠자고 있던 어느 소설이 이번 기회에 한 번 더 들추어지는 장면을 상상해 봅니다.

 

펜벗과 함께 며칠 동안 모아본 한국 소설의 첫 문장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소리 내 읽어 보고 싶어집니다. 첫 문장만 추리니 단어가 더 도드라져 보임은 물론이고요. 문장의 힘이 느껴집니다. 한자씩 읊조리며 문장을 씹는 재미도 느낄 수 있습니다.

 

왕들의 상여는 능선 위로 올라가다. 김훈,『현의 노래』
초록빛으로 가득한 들녘끝은 아슴하게 멀었다. 조정래,『아리랑』
열차는 눈먼 물고기처럼 인천을 빠져나와 북쪽으로 달려갔다. 김애란,「자오선을 지나갈 때」(『침이 고인다』)

 

이참에 다 같이 소설 얘기하며 ‘소설이 왜 좋은지.’ 저마다의 이유도 되짚어보았는데요. 각자의 이유가 소설의 존재, 소설의 필요성을 역설적으로 말해줍니다.

 

“제가 살아보지 못하고 겪어보지 못한 세상을 경험합니다.” -한량의 독서 님

“소설을 덮은 직후 잠깐 동안 내가 익숙하게 알던 세상이 조금 다르게 보이는 순간을 좋아합니다.” -syongg 님
"소설은 픽션이지만 현실을 압축적으로 반영하고 있고, 철학적인 질문도 갖추고 있습니다. 작가가 글로 만든 장치를 파악하면서 동시에 행간을 저의 상상력으로 채워가며 읽는 행위 자체에도 흥미를 느낍니다.” -북찬희 님

“이해라는 말 앞에서 한없이 무력해지는 우리들에게 소설이란 것이 희망이 되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Rootbeer 님

“한국 문학에 대한 애정이 큽니다. 우리네 삶과 가장 많이 닮은 분야가 아닐까 싶어요. 소설을 통해 함께 아파하고, 위로받을 수 있어 좋아합니다.” -선인장 님

 

다시, 소설. 어쩌면 지금 이때 개인에게 가장 적절한 ‘매체’는 소설인지 모르겠습니다. 소설 같은 현실 말고 진짜 소설 말이죠. 걸출한 작가들이 날을 세웁니다. 한국 문학이 들려줄 이야기가 기대됩니다. 소소한 행사를 빌어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이 소설(小雪)에 분다는 ‘손돌바람’만큼 무지막지한 위력은 아니어도 잔잔한 바람이 되어, 지금. 계속. 소설을 쓰고 있을 누군가에게 ‘애정’이 전해졌으면 합니다. 첫 문장을 읽으며 생각해봅니다.

 

“느리게 쓴다는 것은 문장을 공들여 쓰고 플롯을 좀더 흥미진진하게 구성한다는 것,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거기에는 소설이란 인간이 겪는 고통의 의미와 구원의 본질에 대해서 오랫동안 숙고하는 서사예술이라는 인식이 숨어 있다.” (김연수, 《소설가의 일》, 문학동네, 2014)


한국 소설의 첫 문장을 만나 보세요.

 

연관도서

 

      

 

|Editor_김민경

mins@bn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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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글자》 - 난 내가 되겠어

 

 

너새니얼 호손 | 《주홍글자》 | 민음사 | 2007

 

1642년,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영국을 떠난 메이플라워호가 매사추세츠에 첫발을 디딘 지도 20년이 흘렀다. 이상 국가를 향한 초기의 흥분은 가라앉고 경직화된 청교도 신정(神政)체제가 굳건히 자리 잡았다. 자유보다는 속박이, 포용보다는 편견이 보스턴 식민지사회를 짓누르던 시기였다.

 

새 식민지를 건설한 사람들은 처음에는 인간의 덕성과 행복에 찬 어떤 유토피아를 꿈꾸었는지 몰라도 으레 처녀지의 일부를 묘지로, 또 다른 일부를 감옥터로 떼어 두는 것이 실제적으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7쪽)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 글자》는 17세기 중반 미국 청교도 사회의 편협성과 부조리를 죄와 벌, 구원과 양심이라는 주제로 담아낸 역작이다. 지금에야 아이들도 아는 유명한 고전이지만, 1850년 출간 후 64년 호손 사망 전까지 판매량은 7,800부에 지나지 않았다. 청교도, 크게 기독교 교리를 폄훼하고 간음을 옹호했다는 이유로 오랜 기간 금서로 묶여있기도 했다. 그러나 작품은 D.H 로렌스, 허먼 멜빌 등 당대 문학가들로부터 최고의 찬사를 받았으며 많은 평론가로부터 《모비딕》(1851년 출간)과 더불어 19세기 최고 미국소설로 뽑혀왔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장문의 설명이 가능하나 공통되는 해석, 이른바 죄와 벌-죄의 본질과 교정의 의미-에 대한 질문, 페미니즘 소설의 효시, 상징주의 문학으로서의 가치를 살펴보며 글을 이어가고자 한다.

 

서평가이자 고전평론가 이현우는 《아주 사적인 독서》에서 “죄가 먼저 있었기 때문에 벌이 있는 게 아니라 벌이 있기 때문에 죄가 있습니다. (50쪽)”라며, 죄와 벌에 대한 작품의 함의를 멋지게 짚어냈다. 이는 소설 초반 감옥에서 나온 헤스더 프린이 종교적 지탄과 비난에 당당하고 초연할 수 있던 이유다. 세상의 시선에서 그녀는 외간 남자와 정을 통하고 아이까지 낳은 불륜녀였지만 본인 내부에선 욕망 앞에 솔직하고 양심 앞에 떳떳한 진취적 여성이었다. 자신을 책망하고 부끄러워하지 않기에 수인(囚人)은 되었어도 죄인은 되지 않았다. 주홍 글자는 치욕이 아닌 순교의 상징이 될 수 있었고, 교정의 장치가 교정의 대상으로 바뀔 수 있었다.

 

‘죄는 짓는 것이 아니라 지워지는 것’이라는 소설의 주제는 헤스더의 숨겨진 연인 딤스데일 목사의 고뇌를 통해 명확해진다. 그는 고결한 품성을 지닌 명망 높은 종교인이었지만, 그것이 멍에가 되어 과오를 숨기고 헤스더의 고난을 모른 척했다. 양심의 가책과 죄책감으로 영혼은 파괴되어 갔고 고백을 통해 마지막 구원을 얻었으나 결국 숨을 거두게 된다. 그는 수인이 되지 못했기에 죄인이 된 인물이었다. 가슴속 주홍 글자는 내어 보일 수 없고 떨쳐 낼 수 없었기에 더 큰 치욕이 되었다. 한편, 헤스더의 전남편이자 복수에 눈이 먼 로저 칠링워스는 심판자가 되려 했지만, 오히려 심판을 받게 되는 인물이다. 타인의 삶을 괴롭히는 것으로 자신의 삶을 벌충하려던 그는 깊은 파멸에 이르게 된다. 복수의 대상이자 삶의 의미였던 딤스데일이 소멸하자 자신의 인생 역시 소각되는 운명에 처한다.

 

19세기 중반, 전통적 성 관념이 굳건하고 순종적·수동적 여성상이 여전히 장려되는 시기, 헤스더 프린이라는 주체적 여성의 창조와 진취적 삶의 묘사는 여러모로 페미니즘의 기치를 보여준다. 그녀는 신정체제의 청교도이건 가부장적 사회질서이건 누구의 명령이나 권유로 움직이는 인물이 아니다. 스스로 각성하고 정화하는 의지를 지녔고, 꺾이지 않는 신념과 자기 철학을 가졌다. 죄의식으로 고뇌하는 딤스데일이나 복수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칠링워스의 나약하고 편협한 남성성과 대치된다. 건실하고 현실적인 여성이다. 말년에 그녀는 오두막으로 돌아와 여생을 보내며 동네 여인들의 상담사로 자신의 경험과 삶의 혜안을 전하는데, 이는 여성 연대에 대한 좋은 시사점이 된다. 또한 그녀의 분신이자 희망인 딸 펄은 틀에 박히지 않은 사고와 행동을 구가하며 미래의 여성상을 제시한다.

 

또한, 헤스터는 숨 막히는 종교적 계율과 사회적 규범이라는 인위성의 대척점에 서 있었다. 그녀는 육체적으로 아름답고 건강하며 정신적으로 자유롭고 유연했다. 그녀는 주홍 글자라는 형벌을 숲 속 오두막집에서 자연을 벗 삼아 홀로 사는 삶으로 대체했다. 관습과 편견에 구애받지 않고 인류애와 헌신으로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했다. 권위자와 통치자들 앞에서 당당했고 힘없고 가난한 이들과는 동화되었다. 끌려가지 않고 끌어내는 삶을 원한 헤스터의 적극성은 죄악의 징표인 ‘A'를 금실로 화려하게 수를 놓는 모습으로 상징화된다. 이는 주홍 글자의 의미 변화와 자연스레 연결되는데, 원래 간통(Adultery)을 의미하는 A는 능력 있는 여성(Able)을 거쳐 천사 같고(Angel), 경탄할만하며(Admirable), 사랑스러운(Amor), 예술적(Art) 여인으로 나아간다. (411쪽 해설 부분 참조)

 

모든 파도가 잦아든 후 노년의 헤스더는 옛집 오두막을 찾아 스스로 주홍 글자를 다시 가슴에 달았다. “세상 사람들의 조소와 멸시를 받는 낙인이 아니라, 함께 슬퍼하고 두렵지만 존경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그 어떤 상징”(311쪽)으로 주홍 글자를 완성해내기 위함이었다. 결국 헤스더의 비명(碑銘)은 검은 바탕에 주홍 글자 ‘A’로만 남게 되었다. A는 하나의 가치로만 규정할 수 없는 복잡하고 신비로우며 진취적인 여성성의 상징, 헤스더 그 자체가 될 것이었다.

 

죄와 벌에 대한 깊숙한 함의와 페미니즘·상징주의 문학으로서의 진지한 고찰 모두에서 책은 잊히지 않는 각인이 되어 독자들 가슴 속에 선명한 ‘주홍 글자’를 남긴다. 내면의 왕국에서 도덕률의 창조자는 나라는 것, 개인의 양심과 의지를 초월하는 시련은 없다는 것 등 《주홍 글자》가 주는 가르침은 16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는 다시 50년 전 고전으로 이어지는데,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 속 문구가 좋은 공명을 만들어낸다. 고전은 고전으로 이해된다는 점, 고전을 읽는 또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기 전에 나 자신과 같이 살아야만 해. 다수결 원칙에 따르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바로 한 인간의 양심이야. (200쪽, 《앵무새 죽이기》 중에서)


오늘의 책을 리뷰한 '준솔파파님은?

서양사학과 경영학을 전공했으나 진짜 공부는 이제부터라는 열혈 독서가 중년입니다. 금융회사에서 홍보와 연수업무를 담당하나, 사내 책 동아리와 도서관 운영에 더욱 열심입니다. 서평 블로그 ‘준솔파파의 북북긁기’(blog.naver.com/tyworld76)를 운영하며 오늘도 열심히 읽고 쓰고 있습니다. 언젠가 서평집을 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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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쓰러지다》 - 산재를 신청합니다

 

 

희정 | 《노동자 쓰러지다》 | 오월의봄 | 2014

 

내 이야기이다. 유리컵을 깨뜨리는 바람에 손을 다쳤다. 일을 못하는 일주일 치 시급은 날아갈 테지만 병원비는 내 지갑에서 지급되지 않았다. 병원에 가서 손을 세 바늘 꿰맨 뒤 카드를 하나 받았는데 뒷면에 '勞'라는 도장이 찍혀 있다. 노동자 재해보상 보험. 한국의 산재보험에 해당하리라. 그 후로 약 일주일간을 매일같이 병원에 드나들며 소독하고 붕대를 새로 감아 나왔다. 몇 년 전쯤 일본에 있을 때 벌어진 일이다. 부러운 건 솔직히 부럽다고 말해야겠다.

 

당시 손에서 피가 나자 동료들이 밴드를 가져와 붙여주었고 그래도 멈추지 않자 지배인은 병원을 수배한 뒤 스스로 택시를 잡아 나를 태웠었다. 《노동자, 쓰러지다》를 읽으면 딴 나라이자 별세계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러나 무대는 한국이다. 뉴스와 신문에서 단신으로 처리되곤 하는 산재 말이다. 페인트칠 하다 코가 헐고 콧속에 혹이 생기며 진상 손님을 응대하고는 마음을 다친다. 시간이 없어 쓰레기 수거차에 매달려 아슬아슬하게 이동하는가 하면 실제로 어딘가 다쳐도 산재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기가 힘들다.

 

산재보험이란 일단 개인 비용으로 치료비를 부담한 뒤 신청하게끔 되어 있기 때문이며, 산재로 인정받기 힘든 까닭에 그마저도 신청할 엄두를 못 낸다. 산재보험이 아닌 건강보험으로 때운다. 그리고 상처 난 몸에는 파스가 덕지덕지 붙는다. 오늘날 전태일의 바보회는 없는 한국이다. 10만 원짜리 안전펜스가 없어 용광로 쇳물에 빠져 죽고, 감시원 하나가 없어 선로 보수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열차에 치인다.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리고 타이어 공장의 벤젠에 중독되어 사람이 쓰러진다.

 

2012년 조선소에서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는 46명. 1년에 광고비로 10조를 넘게 쓰는 대기업의 안전관리 비용은 천억 안팎. OECD의 최저임금 권고는 평균임금의 50%인데 비해 한국은 35% 수준. 한 해 평균 80만 명이 일하다 다친다는 독일에 비해 한국은 8만 명 정도에 그친다. 그러나 OECD 가입국 중 한국의 산재사망률은 1위다. 왜? 한국의 노동자들은 '덜 다치지만 많이 죽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사람이 죽는 것은 감출 수 없다 해도 부상당한 것 정도는 얼마든지 감출 수 있다. 건강보험은 적자를 면치 못하지만 산재보험은 5조 이상의 흑자를 기록하는 나라이므로. 더군다나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비해 이렇다 할 호소를 하기도 어렵다. 그들의 고용구조가 하청에 하청 또 하청인 탓에 그렇다. 산재처리를 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는 순간 다음 계약은 없을지도 모르며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변모하는 것 또한 요원하다.

 

2013년 2월, ‘알바연대’는 소위 '알바 오적'을 선정했다. GS25, 파리바게트, 카페베네, 롯데리아, 고용노동부. 「해당 기업들은 매출 규모가 급성장해 당기순이익이 수백억에서 수천억에 달하는데 알바들은 여전히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 영세 가맹점을 양산해 알바들의 노동조건을 취약하게 만드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334쪽, 이 오적에 고용노동부를 넣은 것이 눈에 띈다) 책을 펼치자마자 나오는 추천사와 서문만으로도 머릿속이 뜨거워져 열이 뻗친다.

 

학교에서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배우지만 학교를 벗어나자마자 그 논리는 박살이 나며 실제로 계급사회 밑에 있는 노동자의 이야기는 잘 들려오지 않는다. 사람들은 알지만 모르며(모른 척하며) 모르고 있지만(모르는 척하지만) 다 알고 있다. 그리고 숨기거나 눈을 돌리고 귀를 막는다. 내 이야기가 아니니까.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내 아버지도 노동자이며 할아버지도 노동자였고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또한 노동자였을 것이다. 나 또한 노동자가 될 수 있으며(아니면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나보다 어린 사람들도 머지않은 미래에는 노동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며 당신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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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국가》 - 2014년 4월 16일

 

 

김애란, 박민규, 황정은 외 | 《눈먼 자들의 국가》 | 문학동네 | 2014

 

"인간의 인간다운 세상을 위해 인간에게 기여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숭고하고 보람스러운 일이 어디 있을까. 진정한 문학, 참된 문학은 역사를 변혁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 길을 따라 남은 인생을 살고자 노력하는 작가 조정래 작가의 말씀입니다.

 

역사상 유례없는 해양 참사가 일어난 지 여러 날이 지났건만, 아직도 그 슬픔과 상처의 흔적은 몸속 깊이 만연해 있습니다. 잘못과 죄는 일어났는데, 책임을 지려고 하는 이 없는 이 사회에 문인들이 슬픔과 진실을 외칩니다. 이 책은 계간 문학동네 여름호와 가을호에 게재된 김애란, 김연수, 황정은 등 12명의 글을 묶은 것입니다. 김훈 작가가 팽목항에 내려갔을 때 유가족들 모두에게 준 책이 있는데, 바로 이 작품이었습니다. 저는 바로 그때 이 책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박이 침몰한 ‘사고’이자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 라고 쓴 박민규 작가의 표제작 ‘눈먼 자들의 국가’는 읽는 내내 심장을 두들깁니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눈을 떠야 한다.’는 말이 크게 울립니다. 책의 판매 수익금은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자 하는 다양한 움직임’에 기부될 예정이라니 더 눈길이 갑니다.

 

재일 학자 강상중은 ‘문학의 힘’에 관하여 여러 번 말했습니다. 그는 2010년에 갑작스럽게 아들을 잃었고,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목격했습니다. 그가 느낀 삶과 죽음의 의미를 담은 소설이 《마음》입니다. 그는 한국에서 문인들이 해야 할 일이 많다고도 재차 강조했습니다.

 

“마음의 상처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는 것, 그리고 상처받은 이들을 치유하는 일이 문학이 해야 할 일”

 

앞으로 ‘바다’를 볼 때 이제 우리 눈에는 바다 외에 다른 것도 담길 것이다. ‘가만히 있어라’는 말 속엔 영원히 그늘이 질 거다. 특정 단어를 쓸 때마다 그 말 아래 깔리는 어둠을 의식하게 될 거다.”라는 김애란의 글에서 세월호가 남긴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알겠습니다. 소설가 황정은은 이렇게 말합니다. “얼마나 쉬운지 모르겠다.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세상은 원래 이렇게 생겨먹었으니 더는 기대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은. 내가 이미 이 세계를 향한 신뢰를 잃었다고 말하는 것은.” 그녀는 우리의 무기력을 고백하는데, 정말 가슴속 깊은 곳을 뜨겁게 찌릅니다.

 

세월호는 고도성장과 눈부신 발전 이면에 숨은 거품과 안개의 단상을 여과 없이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지겹다고, 잊고 싶다고 말합니다. 한쪽에서 진상 규명을 외치면, 다른 쪽에서 그만하자고 외치죠. 처칠은 ‘역사는 반복된다. 다만 비극으로….’라고’라고 말했습니다. 같은 사건이 다시는 반복되어선 안 된다며 문인들이 한마음으로 만든 이 책은 곁에 두고 항상 봐야 할 우리의 현주소입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이쁜뚜영이님은?

좋은 책을 읽고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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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덕 《당신이 알아야 할 한국사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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