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꽃이 돌아왔다 - 시와 자연과 나의 교감

 

김선태, <살구꽃이 돌아왔다>, 창비, 2009


살구꽃이 돌아왔다. 꽃은 어디로 갔길래 다시 돌아왔을까.

“죽으면 살구나무 아래 묻어달라던 계집아이는 이내 파리한 얼굴로 병마를 따라갔다 살구꽃 이파리들이 혈담처럼 지던 봄날이었다 살구꽃 필 때 낳았다 하여 행화, 그래서인지 유독 살구꽃을 좋아했던 아이, 행화야 부르면 이름 대신 살구꽃을 내밀며 환히 웃던 아이는 결국 다시 살구나무 아래로 돌아갔다 (…) 해마다 어김없이 살구꽃이 필 때면 마을 사람들은 언덕을 바라보며 말했다. 행화가 돌아왔다고” (p. 19, ‘행화’)

김선태 시인의 <살구꽃이 돌아왔다>는 이렇듯 삶과 죽음, 정(靜)과 동(動)의 교차에서 시작된다. “삶과 죽음이 한통속”임을 목격한 티베트 여인의 장례식(‘조장’), 벌새의 움직임 속에서 발견한 “꽃과 새가 서로의 몸과 마음을 황홀하게 드나드는 저 눈부신 교감”(‘벌새’)은 세상 만물이 둘이 아닌 하나임을 알려준다. 이처럼 시인은 세상과 자연을 응시하며 이치(理致)를 하나둘 체득한다. 

시인의 눈은 다시 세상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눈은 먼 곳으로 달려가지 않는다. 시인이 바라본 것은 ‘굴곡진 해안선’, ‘가난한 선원들이 모여사는 목포 은금동’, ‘쌀 한톨 나지 않는 서해 어느 섬마을’이다. 물론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혹은 지인들과 소주 한 잔 비우기 위해 찾은 횟집도 시인의 말 놀이터다. “살이 귀하던 시절, 죽기 전 흰쌀밥 한 그릇 먹어보길 소원한 아비에게 대신 지어올려 효도했다는 쭈꾸미 쌀밥”(‘쭈꾸미 쌀밥’) “저 화사한 꽃잎 한점씩 따먹으면 / 입안 가득 싱싱한 맛 다디단 맛 / 그러나 뼈만 남은 꽃받침 보면 / 왠지 마음도 쓰린 // 숭어회꽃이다.”(‘숭어회꽃’)

시인과 말, 사유놀이를 하다 보면 ‘관능적인 저릿함’을 느낄 수 있다. ‘개불’, ‘조개 야담’ 시리즈, ‘관음’ 시리즈가 그 대표적인 예다. 

“삶을 때 우러나는 뽀얗고 시원한 국물과 담백하고도 쫄깃한 육질은 그만이지요. 게다가 벌어진 가랑이 사이로 그러나는 발그레한 명기(名器)와 예봉(銳鋒)에 터까지 수북하게 돋아 있으니 뭍 사내들이 군침을 흘릴 수밖에요.” (p. 67, ‘조개 야담 1-홍합’) 

“인적 드문 무더운 여름밤 / 홀딱 벗고 섬진강에서 낚시를 하다, 얕은 물속에 드러누워 꼿꼿하게 낚싯대를 세우고 유유자적하다, (…) 그때 마침 물고기까지 물고 늘어져선 낚싯대가 팽팽하게 휘어지며 끄덕, / 끄덕거리던 일이여” (p. 74, ‘관음3’)

어물전 한 편에서 벌어진 술판에서나 나올 법한 농이다. 하지만 지천명(知天命)의 사내가 이런 농 한 번 못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많은 ‘나’(독자) 앞에서 노래하고, 한 판 웃자는 시인은 순수하고, 건강하다. 또 ‘아마추어 낚시꾼 김씨’를 통해 들려주는 시인의 유머는 유쾌하다.

“감성돔 30쎈티미터였다 야호, 1등이다 감격에 겨운 김씨, / 은빛 감성돔을 두 손에 움켜쥐고 펄쩍펄쩍 뛰는데, / 이게 웬일, 아까부터 나뭇가지에 앉아 있던 물수리 한 마리가 / 쏜살같이 날아와 홱, 낚아채 사라지는 것 아닌가, 저런 // 1등을 도둑맞고 졸지에 꼴등이 된 김씨, / 한동안 우두커니 선 채로 허공만 바라보며 쓴 웃음을 짓더니 / “허허, 오늘 낚시도 허사로구만” / “오늘 1등은 허사도 물수리야” / 글쎄, 이렇게 투덜거리는 것이었다” (p. 86, ‘낚시 이야기1’)

시인은 서해 바다를 이리 저리 거닐며 생명의 경이로움을 노래하기도 하고, 짓궂은 상상력으로 농을 던지기도 한다. 그런데 시인과의 여행은 가볍지도, 그리 험하지 않다. 시인의 시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시인이 어디에 앉아(혹은 서) 무엇을 응시하고 있는지 대충 짐작이 간다. 시인의 시선과 ‘나’의 시선이 일치에서 오는 짜릿함은 시인이 ‘나’의 손목을 잡고 서해 바다 어딘가를 여행하는 기분이다. 언젠가 시인과 소주 한 잔 들이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이는 아마 시인과 세상, 자연이 교감하는 방식이 그런 터이다. 삶과 죽음을 관통한 시인이 주저할 게 무엇이랴. 세상, 자연 - 시인- ‘나’의 교감은 이렇게 완성된다.

달빛 쟁쟁한 밤
천관산 정상 너럭바위에
너를 눕히고
혼신을 다해
절정에 도달하는
순간,

달빛과 별빛
풀잎이며 나뭇잎
다도해 잔물결까지도
바르르
몸을 떤다

문득
삼라만상이
저토록 짜릿짜릿하다
(p. 76,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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