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투를 빈다> - 불친절한 남자의 뜨거운 손


  

 

김어준 | <건투를 빈다> | 푸른숲 | 2008

 

 

회사(물론 반디앤루니스)에 입사 지원을 할 때 이력서, 자기소개서와 더불어 제출하는 서류에 ‘사전 질문’이란 것이 있었다. 말 그대로 사전에 간단한 인터뷰를 서면으로 하는 것이었는데 첫 질문이 이것이었다. ‘최근 3개월 동안 읽은 책 중 기억에 남아 있는 책과 그 이유를 쓰시오.’ 세 권의 책을 썼었는데 그 중 당당히 첫 번째를 차지한 책이 바로 김어준의 ‘건투를 빈다’였다.

 

올해 초, 육춘기쯤 되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었다. 누구도 답해줄 수 없는 문제들이 산적해 있었고 정해져 있지 않는 답을 찾느라 신경이 온통 곤두서 있는 나날들이었다. 그러던 중 자주 가던 북카페에서 나란히 꽂혀 있는 책등을 쭉 훑다가 이 책에 손이 멈췄다. 고민상담, 하면 어쩐지 고운 목소리를 가진 아나운서 DJ가 심야 라디오에서 별 고민 없이 내뱉는 무해하지만 유익하지도 않은 뻔한 답변을 떠올리게 한다. 김어준의 고민상담이 고깝게 보이지 않았던 건 그에 대한 기본적 호감보다도 서문에 쓰인 말 때문이었다.

 

몰랐다, 정말. 내가 이런 책 내게 될 줄은. 책임 못 질 남의 인생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거, 무례이자 반칙이라 믿는 작자가 상담이라니. (…) 다행히 허투루 응대한 사연은 하나도 없더라. 진심으로 대했더라. 다만 글이 불친절하다. 뭐 거야 워낙 곰살궂게 생겨먹질 못했으니. 그 점 죄송하다. 꾸벅.

 

비틀거리는 청춘들에게 힘을 주고 싶었어요, 따위의 낯간지러운 말(김어준이 그런 말을 할 리도 없지만)로 포장했다면 바로 거기서 이 책을 덮었을 게다. 불친절하지만, 김어준만의 방식으로, 김어준만의 진심으로, 허투루 대하지 않고 열심을 다해 응했다는 걸 그의 투박한 말에서 읽을 수 있었다.

 

'대한민국 고민 일반의 최소공배수'를 모은 이 책은 5개의 파트로 나뉘어 있다. 나, 가족, 친구, 직장, 연인. 우리가 평소 누구나 하나씩 가지고 있는 고민들은 대부분 이 범주에 해당이 될 것이다. 그런 만큼 평범하고 보편적이지만 그래서 꼭 들어맞는 해법들을 찾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나 역시 오래 묵혀두었던 문제들을 불친절하고 단호하지만 명쾌하고 공정한 말을 총채 삼아 먼지 떨어내듯 얼마간 날려보낼 수 있었다. 고민해결 뒤 덧붙이는 P.S.도 압권이다. 하나만 옮겨보자면,

 

사람이 나이 들어 가장 허망해질 땐, 하나도 이룬 게 없을 때가 아니라 이룬다고 이룬 것들이 자신이 원했던 게 아니란 걸 깨달았을 때다.

 

 

툭,하고 뱉은 것 같은데 턱,하고 마음에 와 닿는다. 사탕발림 같은 현란한 말이 아니어서 더 잘 들리고, 더 잘 깨닫게 된다. 김어준 특유의, 운문의 리듬을 가진 어투(문체)와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귀여운(?) 욕설들은 볼수록 정겨워진다.

 

그의 고민해결법에는 몇 개의 기본적인 기준 같은 것이 있는데, 첫째는 '나'에 대해 탐구하고,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이기적이 되라는 말이 아니라, 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이다. 더불어 나를 '온전히' 사랑하라는 것.

 

 

자존감은 자신감과는 또 다르다. 자신감이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라면, 그건 우울했던 20대 초반의 몇 년간에도 부족하지 않았다. (…) 자존감이란 그런 거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부족하고 결핍되고 미치지 못하는 것까지 모두 다 받아들인 후에도 여전히 스스로에 대한 온전한 신뢰를 굳건하게 유지하는 거. 그 지점에 도달한 후엔 더 이상 타인에게 날 입증하기 위해 쓸데없는 힘을 낭비하지 않게 된다. 누구의 승인도 기다리지 않고 그저 자신이 하고 싶고, 재밌어 하는 것에만 집중하게 된다.

 

다른 하나는 반드시 '행복'해지라는 것. ‘세상사 결국 다 행복해지자는 수작’이니까 말이다. 그가 말하는 ‘행복’을 찾는 방법은 결국 그의 첫 번째 원칙과도 겹쳐진다.

 

많은 이들이 자신이 언제 행복한지 스스로도, 모르더라. 하여 자신에게 물어야 할 질문을 남한테 그렇게들 해댄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그런 자신을 움직이는 게 뭔지, 그 대가로 어디까지 지불할 각오가 되어 있는지, 그 본원적 질문은 건너뛰고 그저 남들이 어떻게 하는지만 끊임없이 묻는다. 오히려 자신이 자신에게 이방인인 게다. 안타깝더라.
행복할 수 있는 힘은 애초부터 자기 안에 내재되어 있다는 거, 그러니 행복하자면 먼저 자신에 대한 공부부터 필요하다는 거, 이거 꼭 언급해두고 싶다.

 

인간과 인생에 대한 진정한 응원은 무작정 ‘힘내세요’, ‘잘 될 거예요’ 같은 관성적 언어가 아닌 뚝뚝하지만 힘주어 잡아주는, 쓸쓸한 등을 두들겨주는 손에 있다. 김어준이라면 누구보다 더 크고 두툼한 손으로 그렇게 해줄 것이다. ‘다들, 건투를 빈다, 졸라.’

 

-컨텐츠팀 에디터 료(fololy@bandinlunis.com)



 

Trackback 0 Comment 0
prev 1 ··· 2263 2264 2265 2266 2267 2268 2269 2270 2271 ··· 3094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