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어놓은 구절들] 김지운, <김지운의 숏컷>


 


김지운 | <김지운의 숏컷> | 마음산책 | 2008

 

 

결국,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비극성은 천재와 범인이 한데 묶일 수 없는 범주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관심과 무관심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예를 들어 살리에리가 모차르트가 끼적거려둔 악보를 보고 "아니, 이럴 수가? 이 자식은 천재가 아닌가……? 음…… 그건 그렇고 오늘 저녁은 뭘 먹지?"하고 시큰둥했다면 어땠을까? 적어도 살리에리의 삶이 그렇게 비루하진 않았을 거란 생각이다. 여기에서 나는 타인의 재능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 지독한 자기혐오와 타인 부정을 동시에 가져올 수 있다는 것에 섬뜩해지는 것이다.

 

- 네 이웃의 재능에 관심 갖지 마라

어떤 일을 잘 하고자 하는 열망은 크나, 그에 대한 재능이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면 어김없이 자괴감이 밀려든다. 더불어 그 분야에서 '천재'라는 소리를 들으며 나로서는 감히 마주볼 수도 없는 찬란한 재능을 뽐내는 이들을 떠올리게 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자괴감의 강도는 한층 더 강해진다. 그러다보면 내가 정말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나 역시 그런 일련의 과정에서 비껴나 있지 않았다. 해보고 싶은 일이 많았던 만큼, 잘하고 싶은 욕심도 컸다. 어떤 날은 손톱 만큼의 재능을 발견하고(혹은 착각하고) 조금은 자만했고, 어떤 날은 비교하는 것 자체가 자존심 상할 정도로 월등한 이를 보고 끙끙 앓기도 했다. 앓는 날이 길어지면 불면의 밤과 날카로운 짜증을 불러왔다. 자신을 신뢰할 수 없는 인간은 삶의 뿌리가 쉽게 흔들리고 검은 구덩이에 자꾸 굴러 떨어진다.

 

이런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이른바 '쿨'한 태도다. 깨끗하게 자신의 재능 없음을 인정하는 그런 쿨함이 아니라, 그냥 그 상황 자체를 초월해버리는 쿨함이다. 그런 쿨함은 아마도 약간의 유머에서 오는 것 같다.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보며 "아니, 이럴 수가? 이 자식은 천재가 아닌가. 난 결코 그를 따라갈 수 없을 거야."가 아니라 "아니, 이럴 수가? 이 자식은 천재가 아닌가. 아 근데 왜 이렇게 등이 가렵지.(긁적긁적)"하고 유연하게 마음먹을 수 있었다면 평생 뒤처진 자의 슬픔 속에서 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부디 '네 이웃의 재능'에 관심을 끊고, 유연하고 묵묵하게 자신을 연마해 나가면 되는 것이다. 중요한 건 '재능'이 아니라 '하고 싶다는 마음' 그 자체일 테니까.

 

 

- 컨텐츠팀 에디터 료(fololy@bandinlunis.com)

 


 

Trackback 0 Comment 0
prev 1 ··· 2268 2269 2270 2271 2272 2273 2274 2275 2276 ··· 3094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