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려도 좋아, 달라도 좋아> - 유쾌한 가족의 오블라디 오블라다


 

선현경 | <느려도 좋아, 달라도 좋아> | 웅진지식하우스 | 2009

 

어렸을 때 누구나 그런 가정을 한 번씩은 해봤을 거예요. “우리 집이 000이면 좋겠다.” 이 000은 슈퍼, 문방구, 중국집 등등 나이와 취향의 변화에 따라 다양하게 바뀌어갔는데요.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는 아이스크림을 실컷 먹을 수 있는 슈퍼 집 딸이 되고 싶었고, 고학년이 되어서는 문방구 집 딸이었던 단짝이 몹시도 부러웠습니다.

 

이런 단순하고 무구한 이유가 주였던 어린 시절과 달리 제법 머리가 굵어진 후에는 “우리 집이 ‘자유방임주의’를 표방한 자녀 양육을 하는 집이었으면”하고 바랐습니다. 그 바람은 성인이 된 지 한참이 지난 지금에도 변함이 없는데요. 그런 면에서 부럽다 못해, 뜨거운 마그마 같은 질투를 불러 일으키는 남들과는 조금 ‘다른’ 한 가족을 알고 있습니다.

 

동화책 작가이자 만화가인 엄마 선현경과 도날드 닭, 노빈손 시리즈를 그린 만화가 아빠 이우일, 그리고 학원에 다니지 않는 아이 은서와 은서의 형제 자매인 고양이 카프카, 비비가 함께 사는 집. <가족관찰기>라는 이름의 책에서 처음 엿보게 된 그 가족은 바로 이런 모습의 가계도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마우스로 그린 그림인지라 찌그러진 감자 같이 보이는 점 양해해주세요.)

 

 

엄마와 아빠, 아이 세 사람이 친구처럼 ‘수평적이고, 동등한’ 관계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각기 ‘개인’으로 인정받고 존중받는 모습이었죠. <가족관찰기>에는 그런 조금 독특하고도 재미있는 이 가족의 생성(?)에서부터 소소한 일상 생활까지, 선현경의 눈으로 면밀히 관찰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그 뒤 이 가족에 대한 애정과 호기심은 홈페이지인 www.saybonvoyage.com 까지 수시로 들락거리며 그들의 생활을 염탐하게 만들었답니다. 그리고 2009년 연말 즈음, <가족관찰기>의 2탄 격이라고 할 수 있는 <느려도 좋아, 달라도 좋아>가 나왔습니다. 여전히 그 가족은 ‘달라서’ 즐겁고 행복해 보였습니다. 조금 달라진 게 있다면 한층 자란 은서와, 은서의 성장에 대한 선현경의 고민이 엿보인다는 거였습니다. 하지만 그 고민들도 그들 가족답게 명쾌하고 심지어는 상쾌하게 해결해나갑니다.

 

 

적정 시기가 되면 해야 할 적당한 일들이 있다고 어른들은 이야기 한다. 그리고 나도 이제 그런 말을 내 딸아이에게 해주어도 좋을 그만한 어른이 되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적정 시기란 건 없는 것 같아서 그 이야기를 딸아이에게 해줄 수가 없다. 말을 늦게 배운다고 말을 하지 못하는 어른으로 자라는 건 아니다. 오줌을 늦게 가린다고 바지에 오줌을 싸는 어른으로 자라지도 않는다. 다 자기만의 시간으로 세상을 배우고, 또 자기만의 세계를 살아가는 것이다. 남들과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고, 남들처럼 시기를 놓쳤다고 아쉬워할 일은 세상에 없지 않을까? (…) 나만의 세계가 남들과는 달라 조금 늦게 어른이 되고 조금 더 늦게 철이 든다면 그만큼 남들보다 더 긴 젊음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게 바로 젊게 살 수 있는 비결인지도 모른다.

 

 

확고한 꿈이 생길 때까지는 충분히 놀고, 충분히 쉴 수 있다. 그래야 진짜 꿈이 생기면 달려갈 수 있을 테니까. 아무것도 모른 채 달리다가 진짜 가고 싶은 곳이 생겼는데, 힘이 없어 달릴 수 없다면 그보다 더 슬픈 일은 없을 것만 같으니까.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그 아이가 진정으로 원하는 꿈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그래서 아직도 신나게 놀 수 있다. 틈틈이 꿈을 생각하며 맘껏 놀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남들 보기에 그럴 듯한 것으로 자신을 증명해 내야 하고, 세상의 시계에 맞춰 살길 바라는 부모가 대부분인 세상에 이렇게 넉넉한 마음으로 아이의 성장을 바라봐줄 수 있는 부모가 있다니! 은서가 학교 숙제로 가져온 부모님이 바라는 장래희망에 ‘행복하게 일하는 사람’, ‘뭐가 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무슨 일이든지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한다고 말해주는 엄마, ‘너 자신’, ‘누가 되는 게 아니라, 너 자신’이 되길 바란다는 아빠. 이미 더 이상 어른일 수 없을 만치 나이를 두둑하게 먹었지만 어렸을 적 문방구 집 딸을 시샘하듯, 이런 엄마 아빠와 함께 사는 은서에게 부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세계 곳곳을 같이 여행하고, 뷔요크의 공연장에 함께 가며, 모여 앉아 우디 앨런의 영화를 보고, 비틀즈의 노래를 들으면 ‘너무 흥분’하여 다같이 아주 격렬한 춤을 추는 이 가족의 신나는 삶이 오블라디 오블라다(life goes on) 하길 바랍니다.

 

 

 

 

-컨텐츠팀 에디터 료(fololy@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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