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스 비벤디> - 유동하는 세계 속, 흔들리는 당신에게


 

  

지그문트 바우만 | <모두스 비벤디> | 후마니타스 | 2010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 그 위에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칼날이 번뜩이고 있다. 순식간에 끊어져버릴 것 같은 불안이 엄습해오고,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닿는 불온한 상상이 이어진다. 언제 어떻게 끝날지,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는 ‘유동하는 근대’,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처지와 다르지 않다. 실업, 전쟁, 테러 등 도처에 산재하고 있는 위험은 번뜩이는 칼날과 같이 팽팽히 당겨진 현대인의 목숨 줄을 노리며 삶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동하는 공간과 시간 속의 삶의 양식, <모두스 비벤디 Modus Vivendi>. 지그문트 바우만는 이와 같은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 조건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현대인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의 실체를 파헤치고 이로부터 유동하는 세계 속, 흔들리는 당신을 향해 조언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그 메시지는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새로운 생활환경의 양상을 분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에 따르면, 근대성은 이전의 ‘견고한’ 국면에서 ‘유동하는’ 국면으로 바뀌었으며, 국민국가의 단위에 머물러 있던 권력과 정치의 영향 범위가 달라지며 권력의 상당 부분이 정치적으로 규제 받지 않는 전지구적 공간으로 이전된 반면 정치는 여전히 지역 차원에만 머물러 있어 정치적 통제가 존재하지 않는 해방된 권력이 생겨나고 이것이 또한 불확실성의 근원이 된다고 말한다. 게다가 이는 과거에 국가 차원에서 이루어졌던 개인에 대한 보호의 역할을 약화시켜 개인에게 일어난 불행은 ‘선택하는 자유인’으로서의 개인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세계는 점차 경계를 뚫고 해체하는 ‘지구화’의 방향으로 흘러가고, 물질적·지적으로 개방되어 있는 사회에서의 개인은 ‘유연하게 대처하는 능력’만을 무기로 삼아야 한다. 다시 말해, 개인은 “무역과 자본, 감시와 정보, 폭력과 무기, 범죄와 테러 등의 선별적 지구화가 낳은, 계획에도 없었고 예상치도 못한 부작용”이라는 ‘부정적 지구화’의 불의와 혼란에 맞서 스스로 ‘유연하게’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실패나 패배의 책임을 떠안고 곧장 사회의 생산 영역 밖으로 밀려나 ‘잉여 인간’도 되지 못한 영원한 ‘쓰레기’로 전락하는 수밖에.

 

쓰레기가 되는 삶, 그것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일상의 근저에서 현대인들을 위협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끊임없이 형성되는 과정에 놓여 있는, 미완성 상태의, 취소될 수 있고, 폐기될 수 있는 순간들의 모음”으로서의 ‘유동하는 근대’에 살고 있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국경 없는 시장과 경계 없는 지구는 권력을 쥐고 흔드는 소수 엘리트들에게 더 넓은 행동 범위를 제공해줄 뿐, 본질적으로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다. 힘없는 개인에게 전지구화는 오히려 사회로부터 배제된 ‘인간쓰레기’가 되어 떠돌고 흘러 다녀야 할 불안정한 공간이 늘어난 것을 의미할 뿐이다. 지금, 이곳이 바로 지옥인 것이다. 그렇게 불확실성의 시대, 지옥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남겨진 바우만의 메시지가 들려온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지옥은 미래의 어떤 것이 아니라 이미 이곳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지옥에서 살고 있고 함께 지옥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지옥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방법은 많은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옥을 받아들이고 그 지옥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것의 일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끊임없는 경각심이 필요하고 불안이 따르는 위험한 길입니다. 그것은, 즉 지옥의 한가운데서 지옥 속에 살지 않는 사람과 지옥이 아닌 것을 찾아내려 하고, 그것을 구별해 내어 지속시키고 그것들에 공간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이탈로 칼비노, <보이지 않는 도시들, 민음사, 2007, 207-208쪽)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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