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보는 논리 - 논리야 세상을 구해줘!


 

김찬호, <사회를 보는 논리>(개정판), 문학과 지성사, 2009


논리. ‘말이나 글에서 사고나 추리 따위를 이치에 맞게 이끌어 가는 과정이나 원리’ 혹은 ‘사물 속에 있는 이치. 또는 사물끼리의 법칙적인 연관’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최근 우리사회를 보면 ‘이 땅에 논리는 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언제, 어느 사회에 완벽한 논리가 통용됐겠냐마는 조금만 귀를 기울이면 현재진형형인 논리의 위기를 확인할 수 있다. 진보와 보수, 정부와 국민간의 불협화음만을 말하는 건 아니다. 일상생활 깊숙이 침투해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증오 또한 심각한 문제다.

논리는 어디에 있을까? 답을 찾기 위해 <사회를 보는 논리>를 집어 들었다. 공교롭게도 이 책을 읽는 동안 아침, 점심, 저녁으로 하루에 세 번,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싸우는 광경을 목격했다. 논리가 필요한 시기다.

<사회를 보는 논리>는 ‘제1부 세상 보는 눈을 다시 보자’, ‘제2부 사람과 사람 사이’, ‘제3부 유연하게 소통하는 언어로’, ‘제4부 삶이 깃드는 자리는’으로 구성돼 있다. 각 장은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 인간에 대한 고찰, 새로운 사회로 가기 위한 방법, 그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각각 제시하고 있다. ‘사회’, ‘논리’라는 말 때문에 책이 딱딱할 거란 편견은 갖지 말자. 현실에서 드러나는 구체적인 양상들은 글을 쉽게 이해케 하며, 저자의 단호한 어조는 글 읽는 속도를 배가시킨다.

뒤흔들고, 자유하라!

책은 먼저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을 뿌리에서부터 파헤치기 시작한다. 그 첫 번째 대상은 근대사회 이후 만연하고 있는 ‘과학주의’이다. 저자는 토머스 쿤의 ‘패러다임’ 이론을 언급하며, 과학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며, 과학의 역사는 투쟁의 역사임을 밝힌다. “진리는 비판과 논쟁을 통해서 거듭난다. 그 과정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참여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p. 71) 개방성은 비단 과학이란 학문에 머물지 않는다. 저자는 통계학의 허구를 구체적으로 명시하며 ‘생활 세계’의 복원을 말한다. “전문가 시스템에 의해 생산되는 정보와 지식에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우리는 그 객관성을 높여갈 수 있”다. (p. 89)

기초는 무너졌다. 이제 모든 것은 불안정하다. 그럼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딛고 일어설 초석은 무엇인가. 바로 ‘다양성’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한 사회에서 정상으로 여겨지는 사람이 다른 사회에서는 완전히 비정상일 수 있고, 그 반대도 가능하다.”(p. 98) 결국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회, 사회와 문화 사이에 경계를 치고,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을 때 권위와 복종이 출현하게 된다. 반대로 수많은 타자를 인정할 때에만 논리가 등장할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된다. 이는 한 개인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체면’, ‘자존심’으로 인해 자아를 끊임없이 억압한다. ‘나’의 못난 모습도 인정하고 솔직하게 표현할 때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다.

논리적 사회를 만드는 재료(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 구성원)는 마련됐다. 이제 어떻게 요리하느냐가 문제다. 그 요리법은 재료를 유심히 살펴보면 얻을 수 있다. 다양성이 재료라면 그 다양성을 구현할 수 있는 방향으로 뱃머리를 돌리면 된다. 한 사람이 피라미드 꼭대기에 앉아 사회를 좌우하는 관료제 사회는 이미 유통기한이 다한 것 같다. 저자는 변화와 구조조정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지금 불확실성의 시대로 규정한다. 그리고 불확실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유연성과 다원적인 소통구조가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정보는 상하좌우로 교차하는 통로를 신속하고 자유롭게 흐르면서 조직을 끊임없이 쇄신해야 한다.” (p. 151) 이제 핵심은 ‘커뮤니케이션(소통)’이다.

삶이 깃드는 자리는

이제 끝이 보인다. 저자는 마지막장에서 대안적 생활양식을 모색한다. 대량 생산 대량 소비의 습관에서 벗어난 ‘인간과 자연의 공존’, 어느덧 스트레스가 몸의 일부가 된 현대인의 ‘우리의 몸을 진짜 사랑하는 방법’, 걷고 싶은 길, 살고 싶은 집 등의 ‘사람 중심의 공간 디자인’, 그리고 살면서 배워가는 ‘일상 속에서 이뤄지는 교육’ 등이 그것이다. 이 모두가 함께 생각해볼 문제이다. 그런데 ‘12장 몸의 소리를 듣자’는 유독 눈길을 끌었다. 

지금 우리는 ‘꽉 찬’ 사회를 살고 있다. 많이 먹고, 많이 일하고, 많은 걸 보고 듣고, 많은 걸 말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비움’이다. “생명은 ‘비어 있음’을 지향하고 그 속에서 순환한다. 그런데 인간의 욕망은 반대로 그것을 자꾸 채우려고 한다. 채움은 막힘을 가져온다. (…) 우리가 추구하는 생활양식은 그러한 막힘을 뚫고 잃어버린 ‘비어 있음’을 되찾자는 생명 본연의 운동이어야 한다.”(p. 238)

혹자는 <사회를 보는 논리>를 보면서 ‘새롭지 않다’고 평가할지 모른다. 맞다. ‘다양성’, ‘생명’, ‘소통’, ‘비움’ 등은 그리 낯선 것만은 아니다. 이 책의 나이도 만만치 않다. 그 출발은 <사회를 본다 사람이 보인다>가 출판된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그 수정보완본이 2001년 출판된 <사회를 보는 논리>의 초판으로 오늘 소개한 책은 7년 만에 새로 나온 개정판이다. 하지만 저자의 논리는 여전히 생명력 넘치며,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기이다. 안다고 자만하지 말자. 머릿속 논리만으로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삶이 깃드는 자리가 바람에 실려 날아오지 않듯.

듣는 것으로는 잊어버리고 만다. 눈으로 보면 기억한다. 그러나 실제로 해보면 이해한다. - 중국의 격언 (p. 264)

 

Trackback 0 Comment 0
prev 1 ··· 495 496 497 498 499 500 501 502 503 ··· 507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