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번 산 고양이> - 고양이의 방식


  

사노 요코 | 100만 번 산 고양이 | 비룡소 | 2002년

애완동물, 하면 양대 산맥처럼 떠오르는 동물이 둘 있죠. 바로 고양이와 개입니다. 개와 고양이가 아니라 고양이와 개라고, 굳이 고양이를 앞에 둔 것은 고양이에 대한 ‘동경’ 때문인데요. 애정이 아니라 '동경'이라고 말한 이유는 고양이와 함께 살아본 적이 없어서입니다.

 

이사간 주인을 끝까지 찾아온다는 감동적인 속설과는 달리 집을 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던 황갈색 진돗개와, 나 한 입 너 한 입 하고 정답게 아이스크림을 함께 나눠 먹던 백구, 어딜 가도 잘 생겼단 소리를 들었던 시추와 새로 시트를 깐 침대 위로 후다닥 달려가 잽싸게 오줌을 갈기고 도망가던 말티즈 까지 오랜 시간, 다양한 종의 개를 길렀지만 고양이는 단 한 번도 길러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 연유에는 '고양이는 영물'이라던 어른들의 으름장과 함께 어둠 속에서 번뜩이며 빛을 내는 눈, 사람 아기 같은 ‘응앙응앙’ 울음 소리도 한몫을 했죠. 아마 스무 살 무렵까지 고양이에 대한 공포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 손을 씻기 위해 뒷마당에 마련된 화장실을 가던 길이었습니다. 손바닥만한 아기고양이가 위태롭고도 앙증맞은 걸음으로 제 발 옆에 다가와 머리를 비비는 겁니다. 이쪽에서 아무리 애타게 불러봐도 제가 내키지 않으면 결코 사람 곁에 오지 않는 쌀쌀맞은 동물이라고 여겨왔던 생각이 사르르 녹아버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때부터 고양이에 대한 짝사랑이 시작됐죠. 언제나 허겁지겁 달려와 반기고, 시도 때도 없이 짖고 까부는 개와 달리 자신의 의지로, 자신이 원할 때에, 자신이 원하는 상대에게만 걸음을 옮기는 도도한 고양이에게는 마치 나쁜 남자와도 같은 매력, 아니 마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겁니다. 그런 고양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백만 년이나 죽지 않은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백만 번이나 죽고 백만 번이나 살았던 것이죠.
정말 멋진 얼룩 고양이였습니다.
백만 명의 사람이 그 고양이를 귀여워했고, 백만 명의 사람이 그 고양이가 죽었을 때 울었습니다.
고양이는 단 한 번도 울지 않았습니다. (2쪽)

 

백만 번이나 죽고, 백만 번 다시 살아난 멋진 얼룩 고양이가 있습니다. 무려 백만 번, 백만 년을 사는 동안 고양이는 임금님의 고양이가 되기도 하고 뱃사공, 서커스단 마술사, 도둑, 홀로 사는 할머니, 어린 여자아이의 고양이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백만 번 동안 모두 '누구의 고양이'였던 거죠. 고양이는 단 한번도 '누구'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죽음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단 한 번도 울지 않았습니다.

 

한때 고양이는 누구의 고양이도 아니었습니다.
도둑고양이였던 것이죠.
고양이는 처음으로 자기만의 고양이가 되었습니다. 고양이는 자기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16쪽)

 

지난한 시간을 지나 드디어 ‘자기만의 고양이’가 된 얼룩 고양이는 자신의 마음을 얻기 위해 애쓰는 암고양이들을 거들떠도 보지 않습니다. 고양이는 유일하게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하얀 고양이에게 다가가 “난 백만 번이나 죽어봤어, 난 서커스단에도 있었다고” 라며 말을 걸어봅니다. 하얀 고양이는 그저 “그러니”하고 대답할 뿐이죠. 그러자 고양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네 곁에 있어도 괜찮겠니?” 그 뒤로 하얀 고양이와 얼룩 고양이는 아기 고양이도 낳고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

 

어느 날 하얀 고양이는 고양이 곁에서 조용히 움직임을 멈췄습니다.
고양이는 처음으로 울었습니다. 밤이 되고 아침이 되도록.
또 밤이 되고 아침이 되도록 고양이는 백만 번이나 울었습니다.
아침이 되고 또 밤이 되고, 어느 날 낮에 고양이는 울음을 그쳤습니다.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 곁에서 조용히 움직임을 멈췄습니다.

그러고는 두 번 다시 되살아나지 않았습니다. (28, 30쪽)

 

덮어놓고 덥석 마음을 안기는 것이 아니라, “네 곁에 있어도 괜찮겠니?”라고 조심스레 양해를 구하는 것이 고양이의 방식인가 봅니다. 그래서 아주 드물게 고양이가 저 스스로 다가와주면 감격스러워져 온 마음을 다해 응답하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관계없는 타자에게는 완벽히 무심하다가도 ‘단 하나의 누구’에게는 밤이 되고 아침이 되도록 백만 번이나 울어줄 수 있는, 백만 한 번째의 삶을 원치 않는 그런 고양이의 방식이 고양이를 동경하게 만듭니다.

 

- 컨텐츠팀 에디터 료(fololy@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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