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도> -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윤영수 | 귀가도 | 문학동네 | 2011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생각한다. 정신없이 지나온 하루. 스쳐간 순간들, 말과 표정, 사람들을 되짚어본다. 구태여 기억을 헤집을 필요는 없다. 점이라도 미리 찍어놓은 양, 머리는 마음이 떠나지 못한, 그때 그 자리로 잘도 되돌아간다. 흐르지 않고 멈춰 선 마음의 웅덩이, 거기에 아물지 않는 상처가 그대로 남았다. 얄궂은 기억이 자꾸 뒤를 보는 걸 막을 길이 없다. 곱씹을수록 아파도 마주하는 것 외에 달리 방도가 없는 것이다. 몸은 집으로 돌아가지만 마음은 상처로 되돌아간다. 상처에 갇힌 내가 길 위에 있고, 집에 당도하지 못한 마음은 아직도 그 길을 걷는 중이다. 집은 멀고 돌아가는 길은 고되다. 사는 게 뭐 이러냐.

 

윤영수의 소설집, <귀가도>에는 그렇게 삶의 상처와 슬픔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인간 군상의 모습이 담겨 있다. 어릴 시절 재벌집 도련님의 모습과는 달리 허름한 집에서 수조 속의 잉어 한 마리를 키우며 사는 ‘석형’. 그는 위선과 위악에 찬 이죽거림으로 “층층의 높이와 칸칸의 경계가 엄연한 이 사회”에 어울리지 못하고 밀려난 자신을 방어한다. 그리곤 사각의 틀 수조 속에 갇혀 사는 잉어를 빗대어 “산다는 게 원래, 누군가로부터 어떤 식으로든 속박받는 일”이고, 이 세상과 가족과 자신에 갇혀있는 거라고 말하며,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고 고립된 자신의 삶을 변명한다.

 

석형 뿐만이 아니다. 딸의 죽음으로 남편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여자, 일찍 부모를 여의고 하나 있는 언니마저 요양원에 있는 여자, 학교 폭력과 돈만 아는 아버지에게 상처 입고 방안에 틀어박힌 남자, 그런 쌍둥이 남동생을 지켜만 봐야 하는 여자, 시도 때도 없이 바람 피는 남편도 모자라 거동도 못하는 시어머니 병수발까지 들어야 하는 여자 등. 상처 없고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언제부터 뒤틀렸는지 기억하기조차 힘든 해묵은 관계들과 거대한 자본주의의 그늘 아래서 오늘 하루도 마음속에 작은 생치기 하나 없이 온전히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되냔 말이다.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석형을 옆에서 지켜보며 그의 아픔을 알아봐주고, 그 대신 사각의 수조를 벗어나 유유히 황허를 헤엄치는 잉어의 꿈을 꾸는 친구, 푼수 없이 온종일 웃고 떠들어 간혹 주위사람들을 피곤하게 하지만 그렇게 밝은 모습으로 오히려 타인의 어두운 마음까지 달래주는 이웃, 버스 옆자리에 우연히 앉았을 뿐이지만 짧은 순간에 사람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게 해준 낯선 여자가 그들의 삶 속에 들어와 이야기를 채운다. 그리고 이들이 있고서야 <귀가도>는 제 모습을 갖출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동행이 되어준 그들이 있어 귀갓길의 무거운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진 듯 보인다.

 

누구에게나 상처는 있고, 그 상처를 홀로 품어야 한다는 외로움도 있다. 그렇게 자신에게 갇히는 순간들이 있다. 하지만 각자가 지니고 있는 그 상처와 외로움이 있기에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자신의 상처를 마주하듯, 타인의 아픔을 함께 하는 것, 그 ‘공존의 윤리’가 쓸쓸하고 외로운 길 위의 시간을 견뎌 마침내 집으로 돌아가게 하는 힘이 돼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을 갖고 세상에 나설 때야 비로소 체념과 비관을 넘은 긍정과 이해의 언어로, “사는 게 다 그런 거지”라고 기쁘게 읊조릴 수 있을 터이다.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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