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와 추천도서] 무엇이 ‘쓸쓸한 죽음’을 만드는가

인터넷이 대단하긴 대단한 것 같습니다. [“남는 밥좀 주오” 글 남기고 무명 영화작가 쓸쓸한 죽음]이라는 기사를 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최고은 작가 요절’이라는 키워드가 실시간 이슈 검색어에 올라와 있으니 말입니다. 인터넷을 타고, 컴퓨터 자판을 타고, 사람들의 입에서 입을 타고 어떤 이의 죽음이 ‘실시간 이슈’가 되는 사이, 그 짧은 사이에 사실은 우리 사회의 많은 것들이 함축되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선정적인 타이틀과 그에 대한 뜨거운 반응으로 반복재생되어 넘쳐나는 기사들. 독자들이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 정도의 ‘사실’들은 생략된 채, 그녀의 죽음을 통해 영화계 혹은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읽어내려는 제스쳐만 남아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찝찝함이 쉬이 사라지지 않거든요. 그 기사들의 안과 밖에서 죽음을 이슈‘화’하려는 의도를 읽는다면 제가 너무 지나친 걸까요. 

 

‘무명 영화작가 최아무개씨’가 ‘최고은 작가’가 되고, 사진과 동영상은 그녀의 얼굴을 드러내고, 그녀의 생전 작품들에 관심이 급증하며, 그녀의 길지 않는 삶이 ‘생활고’, ‘굶주림’, ‘지병’, ‘요절’이라는 몇 개의 단어로 거칠게 요약될 때, 그녀를 기억하는 누군가의 마음은 더 씁쓸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우리 사회의 어떤 욕망이 그녀의 죽음을 이슈‘화’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떠들썩해서 오히려 더 쓸쓸해진 죽음, 그 아이러니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그렇다면 타인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는 방법은 어때야 하는지, 타인의 사연을 소비하며 수많은 이들이 쏟아내려고 하는 건 무엇인지, 그 말들이 향하는 곳은 어디인지, 이 모든 게 혹시 우리 사회가 모두에게 남겨놓은 생채기를 드러내는 어떤 징후는 아닌지, 수많은 물음과 복잡한 생각들이 오고갑니다.

 

이런 혐의에서 저 또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제 안에서부터 질문을 시작해야 할 겁니다. 얼마간은 그렇게 고민해봐야겠습니다.

 

 

「거꾸로 읽는 법」

 

하루가 길게 저물 때
세상이 거꾸로 돌아갈 때
무슨 말이든
거꾸로 읽는 버릇이 내게는 있다

 

정치를 치정으로 정부를 부정으로 사설을 설사로
신문을 문신으로 작가를 가작으로 시집을 집시로

 

거꾸로 읽다보면
하루를 물구나무섰다는 생각이 든다
내 속에 나도 모를 비명이 있는 거다

 

어제는 어제를 견디느라
잊고 있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직성(直星)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넌 아직도
바로 보지 못하는 바보냐, 한다

 

거꾸로 읽을 때마다
나는 직성이 풀리지 않는다

 

나도 문득
어느 시인처럼
자유롭게 궤도를 이탈하고 싶었다

 

-천양희,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 창비, 2011

 

 

「이탈한 자가 문득」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김중식, 『황금빛 모서리』, 문학과지성사, 1993

 

삶에서 놓여난 그대, 부디 편안하시길.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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