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와 추천도서] 이 나라를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길 위에서」

 

우는 아이를 업고
낯선 길을 한없이 헤매었다

길 위에 던져진 무수한 신발들 중에
내 신발 찾다 찾다 잠이 들었다

붉은 황톳물 넘치는 강을 내려다보며
해가 지도록 울었다

그렇게, 한 해가 갔다

 

 

 

 

 

 

 

 

-권지숙, 『오래 들여다본다』, 창비, 2010, 52쪽

 

 

한 해가 갔습니다. 이제 묵은해는 툴툴 털어버리고 산뜻하게 새해를 시작해야겠습니다. 그런데 새해를 맞는 마음이 그리 즐겁지만은 않습니다. 2010년의 마지막 날과 2011년의 첫 날 사이에, 사실상 달라진 것이라고는 말(言)과 숫자밖에 없으니까요.

 

원하는 대학에 입학한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원하는 직장에 취직한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일한 만큼 더 잘 살게 된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내 집을 마련하게 된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임금이 인상된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많은 나라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말을 주고받으며, 그 복에도 빈익빈부익부, 양극화가 있는 게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

 

언제부턴가 우리의 인생은 무한경쟁의 달리기 대회가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무리와 지난해의 패배자(?)들이 1월 1일을 기점으로 자신만의 출발점을 다시 만들어봅니다. 그리곤 그 출발점에서 서서, 실패에 대한 불안으로 머뭇거리게 됩니다. 불안을 증폭시키는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단 하나의 쉼표도 없는 <임금 인상을 요청하기 위해 과장에게 접근하는 기술과 방법>을 읽는 것처럼, 우리는 새해 복 많이 받아 원하는 일을 성취하기 그날 그 순간까지, 쉼 없이 배회하고 달려야 합니다. "낯선 길을 한없이 헤매"고 배회하는 우리의 영혼이 서서히 증폭되는 불안에 잠식당하고 있습니다. 

 

<불안 증폭 사회>는 이러한 불안의 심리를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는 심리 보고서입니다.

 

심리학자인 저자 김태형은 G20 정상회담 주최, GDP 증가, 경제규모 세계 10위권 도달, OECD 가입 등 성공적인 지표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한국인의 어두운 그림자에 주목합니다. 행복지수는 세계 50위권에 불과하고 OECD 국가 중 남녀 소득 격차, 국채 증가율, 세부담 증가율, 저임금 노동자 비율, 근로 시간, 노동유연성(해고의 용이성), 산재 사망자, 비정규직 비율, 이혼율, 자살률, 사교육비 비중 등이 1위인 대한민국.

 

이와 관련하여 그는 현재 한국인의 심리 상태를 ‘불안’, 즉 생존위협에 대한 만성화된 공포라고 규정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의 병이 생기게 된 일차적 원인이 한국사회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우리가 느끼는 불안과 우울, 무기력과 분노는 당사자의 이상 심리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며, 이에 대한 문제 해결 또한 사회적 원인 분석을 병행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저자는 ‘한국사회가 한국인의 마음을 어떻게 망가뜨려왔고 병들게 했는지, 또 오늘을 살아가는 한국인의 불안의 실체는 무엇이고 한국인들이 왜 유독 불안 요소에 취약한지’ 등을 점검하며, 불안을 증폭시키는 9가지 심리 코드(이기심, 고독, 무력감, 의존심, 억압, 자기혐오, 쾌락, 도피, 분노)를 분석합니다. 그리고 이와 함께 우리 민족의 심리적 강점을 다시 한 번 일깨우며 사람답게 살아가는 공동체 만들기를 제안합니다. 개인이 각자의 자리에서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점검하고 바꾸어나가야 할 대안을 제시해줍니다.

 

 

■ 골라 보는 재미가 있다?

 

12월 31일 2010년을 마무리하는 깜놀(?) 뉴스. 방송통신위원회는 종합편성 채널사업자로 씨에스TV(조선일보), 제이티비씨(중앙일보), 채널에이(동아일보)와 매일경제TV(매일경제)를 선정하고 보도전문채널 사업자로 연합뉴스TV(연합뉴스)를 승인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종편 심사 과정에서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동아일보>가 '방송의 공정성·공익성의 실편 가능성' 부분에서 각각 218.21점, 215.79점, 212.54점을 받아 1, 2, 3등을 차지했다는 것인데요. 이른바 '조중동 방송'이 출현하게 된 것이죠. '미디어 활성화를 위한' 미디어법이 통과된 이후, 본격적으로 미디어의 활성화를 꾀할 모양입니다. 현 정부의 지행합일(知行合一) 정신, 아는 걸 실천에 옮기는 행동력이 돋보입니다.  

 

기존에 3개(KBS, MBC, SBS)이던 종합편성 채널이 7개로 늘어났으니, 시청자들은 '누워서 떡 먹는' 격으로 좀더 다양해지고 질적으로 향상된 프로그램을 골라 보기만 하면 되겠네요. 서로간의 경쟁은 각자의 성장과 발전을 불러오는 법이니까요. 이미 심사 과정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방송의 공정성과 공익성' 면에 있어서도 '누가 누가 더 공정하고 공익한가', 하는 경쟁이 일어나겠죠? 이명박 대통령이 지향하는 '공정한 사회'로 가는 길이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냐"고 화내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방송사의 존패를 좌지우지하는 좁디 좁은 광고시장에 무더기로 종편 방송사업자를 허가했으니, 제한된 광고시장에서 피 튀기는 싸움이 벌어질 건 불 보듯 뻔한 일이고, 이러한 무한경쟁 속에서 각 방송사가 살아남은 길은 너나 나도 할 거 없이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거나, 광고주(정부나 기업 등)의 비위를 맞추려 입 속에 혀처럼 굴어야 할 거라고요. '공정한 사회'? 택도 없는 소리!라고요.

 

골라 먹는 재미가 있는 아이스크림을 먹어본 일이 있습니다. 선택하는 게 꽤나 어려웠죠. 이것도 저것도 다 맛있어 보이니까요. 경험에서 배운다고 했던가요. 골라 보는 재미가 있어진 현재의 '활성화'된 미디어 환경도 이 같은 선택의 어려움과 혼란을 피하지는 못할 듯 합니다. 벌써 종편 선정 결과를 바라보는 시각만 해도 너무나 다르잖아요? 홍수처럼 쏟아지는 정보들 중에서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이러한 정보를 매개하는 미디어들 중에서는 또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참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럴 때 필요한 게 바로, 교양인들의 필수품 '비판적 사고 능력'입니다. 누군가의 생각에 지배되지 않고, 스스로가 생각의 주인이 되어 옳고 그름을 판별할 수 있는 능력, "여론 조작, 정치인의 허튼소리, 광고의 속임수, 미디어의 정보 조작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지적인 자기방어법'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는 겁니다. 무조건적인 '지행합일'이 아니라 자신이 알고 있는 걸 끊임없이 되묻고 회의(懷疑)하며 비판에 부쳐져야 하는 시대입니다. 힘있는 선무당이 실제로 사람 잡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상대방의 말 속에 나를 속이려는 의도가 있는지, 통계와 그래프에 어떤 함정이 숨어 있는지, 과학으로 포장된 정보들은 얼마나 믿을 만한 것인지, 미디어는 우리를 어디로 이끌고 가려 하는지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나 자신의 기억은 얼마나 믿을 만한 것인지에 대해서까지 깊이 성찰하는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촘스키처럼 생각하는 법>을 익혀 지적인 무장을 해야 합니다. 온갖 속임수와 거짓에 대항하는 '전쟁'을 준비해야 합니다.

 

"내 아이에게 이 나라를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라고 외치던 '대물' 고현정의 처절함으로, 여기에 살고 있는 우리가 이 나라의 진실을 제대로 보고 설명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합니다.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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