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 그들의 비즈니스가 슬프다

 

박범신, <비즈니스>, 자음과모음, 2010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를 잇는 20분간의 그 이동은 공간 이동이라기보다 시간 이동이라고 부르는 게 옳다. 구시가지는 아직도 1960년대나 1970년대, 신시가지는 2000년대의 새 세상이다. 이를테면 구시가지 사람들은 신시가지로 갈 때, 타임머신을 타고 30년이나 40년 후의 미래 사회로 나가는 셈이 되고, 신시가지 사람들 역시 구시가지로 올 때, 타임머신에 실려 그들이 일찍이 버리고 온 전근대적인 과거의 마을로 회귀하는 셈이 된다.” (15쪽)

‘자본’의 칼이 우리의 삶을 가른다

서해안에 위치한 ㅁ시에 대한 이야기다. 수십㎞의 방조제 공사로 매립지가 조성된 도시, 대중국 교역의 전진기지라는 명분으로 엄청난 금액을 투자받아 개발된 그곳에, 인간의 삶을 가르는 자본의 칼부림이 선연하다. 자본의 수혜를 받은 곳이 ‘신시가지’, 그렇지 못한 곳이 ‘구시가지’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성공한 자와 실패한 자의 구분은 신구로 나누어진 그 도시 안에서 상이한 두 개의 풍경으로 여실히 드러난다. 휘황한 불빛으로 온종일 번쩍이는 ‘신시가지’와 쇠락과 가난의 그림자에 짓눌려 어둠 속에 매몰된 ‘구시가지’.

자본이 모여드는 곳에 사람도 모여들기 마련. 자본이 주인인 세상에서, 인간의 삶을 이끄는 방향키는 오로지 한 곳만을 가리킨다. 더, 더, 더 가지기 위해, 돈놀이에 능한 비즈니스맨이 되는 것. 애초에 그런 능력이 없다면? 능력이 있는 이들이 윤택한 삶을 유지하는 데 자신의 생계를 거는 수밖에. 구시가지의 사람들이 “신시가지 사람들의 파출부, 청소원, 짐꾼, 배달부, 미장이, 페인트공, 대리운전사, 용역업체 일용직 노동자, 아파트 경비원 등, 온갖 밑바닥 일을 위해 아침이면 해안도로를 타고 신시가지로 떼 지어 출근”하는 것처럼.

“부의 세습적 구조는 날이 갈수록 오히려 깊어졌다. 그리고 그런 구조는 전선조차 뚜렷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미 세계적이었기 때문에, 뿌리치거나 깨부술 방도가 전무했다. 뿌리치면 실패자로 세상 끝으로 밀려나야 했고, 깨부수려 하면 감옥에 가야 했다. 그러니, 가난한 집의 아이들은 귀족의 전사가 되는 길을 쫓아갈 수밖에 없었다.” (129쪽)

칼에 베인 상처, 그들의 비즈니스가 슬프다

부의 세습적 구조를 뿌리치거나 깨부술 방도가 없는 ‘구시가지’의 한 어미(‘나’)는, 오늘도 자녀의 과외비를 벌기 위해 자신의 몸을 팔러 나간다. 그 ‘비즈니스’의 성공적인 결과로 아이는 학원을 가고 과외를 받아, 외국어고와 명문대를 거쳐 귀족의 전사가 되는 길을 쫓아갈 수 있다. 이것이 가난과 실패의 세습적 고리만이라도 끊어주려는 그 어미의 굳건한 의지이고, 가진 거 없는 이의 악착같은 비즈니스가 ‘윤리’를 잃고 휘청하는 이유다.

그 비즈니스의 현장에, 부의 세습적 구조를 깨부수려는 ‘구시가지’의 또 다른 몸부림이 있다. ‘나’의 고객으로 등장한 그는 시장의 선거운동을 도와준 대가로 구시가지 해안에 횟집을 열지만 구시가지를 버리고 신시가지의 개발로 돌아선 시장의 행보로 인해 큰 타격을 입은 인물이다. 게다가 해안도로를 달리는 쓰레기차에서 뿜어 나오는 유독가스 때문에 아내는 세상을 뜨고 어린 아들의 자폐 증세는 더 깊어졌으니, 그가 바로 ㅁ시의 신시가지 개발에 가장 피해를 본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부정한 방법으로 재력을 쌓아올린 ㅁ 시 부자들의 금고를 털며, 그 일을 ‘비즈니스’라 칭한다. 실패의 울분과 절망이 낳은 그의 처절한 ‘비즈니스’에도 도덕과 윤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다.

그렇게 자본의 횡포와 폭력으로 벼랑 끝에 내몰린 그들이 만났고, 그 자리에 ‘자본주의적 슬픔’이 그득히 서린다. 그 슬픔으로부터 그들은 서로를 알아볼 수 있었고, 일찍이 ‘비즈니스’를 위해 버려두었던 ‘인간’을, 그 순수한 내면과 감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게 설사 또 한 번의 좌절 혹은 완전한 실패로 내달리는 길일지라도, 그들의 또 다른 이야기는 분명 자본이 가리키는 유일한 방향, 그 반대편에서 잊히고 있는 어떤 것으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소설 <비즈니스>의 이야기다. 그리고 바로 여기부터가,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이야기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비즈니스’는 여전히 윤리를 잃으며 슬퍼지고 있을 테니까.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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