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영희 프리즘> - 지식인의 빛

 

고병권 외, <리영희 프리즘>, 사계절, 2010

 


아침에 리영희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돌아가셨구나. 얼마 전 터키 앙카라에 위치한 아나톨리아 박물관에서 본 유물이 떠올랐다. 사람의 해골인데 눈과 귀, 입 모두 금으로 막혀 있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는 건가. 리 선생님은 오래 전 절필을 선언하고, 사회적 발언을 하지 않았다. 그를 지식인, 사상의 은사로 여기는 많은 이들은 그가 다시 발언하길 바랐지만, 기대에 부흥하지 않았다. 하지만 빛이 가는 틈 사이로 퍼지는 것처럼 지식인의 빛 또한 퍼져갔다. <리영희 프리즘>이 그것이다.

<리영희 프리즘>은 리영희 선생님이 직접 쓴 책은 물론 아니다. 또 한 저자가 그의 사상을 기리기 위해 쓴 책도 아니다. 이 책은 다양한 사람들이 지식인의 빛이 현재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쓴 책이다. 연구원, 대학교 교수, 신문 논설위원 등 총 10명의 후배 지식인들이 각각 하나의 주제를 잡고 리 선생님의 사상을 비춰 2010년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을 바라본다. 전쟁, 종교 등 구체적인 문제에서 사상, 책 읽기, 자유 등 추상적인 주제까지, 하나에서 출발한 빛은 프리즘을 거쳐 다양하게 전개된다.

안타까운 건, 각 장의 제목에 쓰인 단어들 중 지금 세상에 버림받은 것들이 많다는 것이다. 생각, 책 읽기, 자유, 지식인 등. 돈 버느라 바쁜데 생각할 시간은 언제 있으며, 과외에 학원에 바쁘기만 한데 책은 언제 읽겠는가. 또 대학 졸업 전부터 취업공부에 매진해 취업전선에 뛰어든 청년들은 자유를 만끽할 시간이 없다. 생각해 보면 지식인이라는 말, 그렇게 낭만적이면서도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 없다.

‘지식인’이라는 말이 낭만적으로 보이는 건 우리가 야만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각기 모양대로 인정받아 마땅한 존재인데, 우리의 사고는 강한 자는 약한 자를 마음대로 주무르고, 돈 있는 자들은 돈 없는 자들을 마음껏 무시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마치 인간이 사슴의 숨통을 끊는 사자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만약 인간이 곰과 사자와 같이 투쟁을 해도 좋다고 모두가 동의한다면, 우리는 본격적인 약육강식의 세계로 들어가도 좋다. 하지만 인간은 동물과 달라, 라고 말하고 싶다면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다시 지식인의 책무를 물을 수밖에 없다. 경향신문 이대근 논설위원은 말한다. “한국에서 지식인이 선지자, 민중의 수호자, 선각자가 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진정 시민들에게 자유를 선물하고 싶다면, 다른 삶, 다른 가치, 다른 세상의 존재를 깨달을 수 있게 해야 한다. 다른 선택이 가능한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새로운 삶을 조직활 능력을 가져야 한다. 그렇게 하자면 한국의 지식 사회, 지식인이 바뀌어야 한다. 지식인의 책무가 여전히 무겁다는 사실을 직시하도록 말이다.”(145쪽) 리영희 선생님이 절필하고 말을 아낀 이유는 이것이다. 지금은 이 물음에 우리 스스로 답할 때다. 스스로 빛이 될 때다.

양으로 태어난 내 자식이 늑대에게 물려 죽지 않았으면 한다. 지식인이 되면 그런 세상이 오지 않는 데, 아니 적어도 시기를 조금 늦추는 데 도움이 되겠지? 어떻게 하면 지식인이 될 수 있을까. 에세이스트 김현진과 나눈 리영희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지식인이라는 것은 대학을 나와서 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하면 지식인이다, 하는 면허를 따는 면허의 문제도 아니고 어떤 기능을 말하는 것도 아니네요. 기술적인 지식, 습득할 수 있는 어떤 기술도 아니고, 개인적 진실에 충실하고 사회적ㆍ보편적 선을 숭상하는, 이런 사람을 인텔리겐치아라고 할 수 있겠지요. 사회와 국가와 인간 더 나아가 인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고 거기에 대해서 깊은 책임감이 수반되는 사색을 하는 이를 나는 인텔리겐치아라고 생각해요. (…) 생존경쟁에서 승자가 되기 위한 그런 지식은 인텔리겐치아의 그것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215쪽)

노력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늘(ak2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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