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호텔> - 고양이를 만나러 오세요

 

김희진, <고양이 호텔>, 민음사, 2010

 


시골에서 막 낳은 강아지를 가지고 올라온 적이 있었다. 고속버스에서 시내버스로 갈아타고 오는 내내, 짐칸에 실려 온 그 아이는 서울 집에 도착하자마자 기다란 기생충을 몇 마리나 토해내며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난생 처음 타보는 자동차에 멀미를 한 것이겠고, 시골 마당에서 아무 것이나 주워 먹은 탓에 뱃속에 우글대던 기생충들이 그 울렁거림을 이기지 못하고 쏟아져 나온 것이리라. 어린 마음에 예뻐서 데려온 그 아이가 죽지나 않을까 털컥 겁이 났다. 사실 동물은 절대 키우지 않겠다는 부모님을 설득해서 두 살 터울인 언니와 고집을 부려 데려온 아이였다.

시골 마당에 있었다면 저렇게 기다란 기생충을 토할 일도 없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데려온 아이를 물신양면으로 돌봤지만 결국 그 아이, 한 달을 견디지 못하고 차가운 거실 한쪽에서 코피를 쏟아가며 떠나 버렸다. 처음으로 만난 죽음이었지만, 어린 마음에는 강아지가 죽었다는 무서움보다 죽어버린 그 아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하는 걱정이 먼저였다. 사실 엄마에게 혼날 일이 더 무서웠던 것이다. 강아지 데려오는 걸 결사적으로 반대한 엄마였으니까.

십년 이상의 시간이 흐른 지금, 그 아이를 어떻게 했는지는 어쩐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어딘가에 묻어줬던 건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처리해 버렸는지. 결국 작은 몸으로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온 버스 여행이 그 아이의 마지막 외출이 돼 버린 것이다.

김희진의 <고양이 호텔>에는 여행을 떠나온 수많은 고양이들이 등장한다. 주인공 '고요다'와 함께 살아가는 고양이들, 버려진 길고양이를 데려다 키운다기에는 어쩐지 기괴한 모습의 그들은 분명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한 문학상 공모에 당첨되어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고요다는 언론에 노출을 극히 꺼리며 그 고양이들과 함께 세 개의 탑이 세워진 현대판 라푼젤의 성에 살고 있다.

그러던 중, 인터뷰를 하러 그녀의 성에 찾아온 '강일한' 기자와의 만남으로 고양이와의 생활을 즐기며 살아가던 그녀의 삶이 변화하기 시작한다. 작가가 묘사하고 있듯, 라푼젤의 긴 머리카락이 내려올 것 같은 난공불락의 성에 강인한이 침입한 것이다. 그는 기자라기보다 라푼젤을 성에서 끌어내려줄 왕자처럼 다가왔다. 인터뷰를 방패삼아 고요다의 삶에 조금씩 침범해 들어간 그는, 그녀가 만들어 놓은 규칙들에 딴지를 걸기 시작한다. 혼자 하는 생일파티에 동의 없이 참석하고, 매주 찾아오는 그녀의 섹스 파트너들, 결정적으로 그녀의 고양이들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고요다의 고양이들은 '생각보다 지조 없는' 이름 대신 번호가 매겨져 있고, 목에 달린 끈의 색으로 그 중함이 표시된다.

외로운 그녀 고요다와 그를 구해 낼 강인한의 만남.

나는 이 둘의 만남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했으나 김희진이 과연 그들을 해피엔드로 이끌 것인가에 대해서는 작품의 끝까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가 이 작품을 만들어 낸 의도가 무엇이든지 간에 이건 라푼젤 동화의 형식을 참고한 것이지 현대판 라푼젤이 아니다. 갑자기 등장한 '거구녀'는 라푼젤을 성에 가둔 마녀의 이미지를 차용한 것일 뿐, 동화 속의 마녀는 아니었던 것이다. 거구녀의 등장으로 강인한과 고요다는 위기를 맡게 되고 고난의 시간을 함께 하면서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 물론 강인한은 인터뷰이로써의 고요다만을 원할 뿐이지만 말이다. 결국 마음이 동한 고요다의 심장은 조금씩 뛰기 시작하면서 마음으로 그들 받아들이게 된다. 그 이면에 강인한의 사기극이 있었을지라도, 외로운 고요다는 그것 역시 순진하게 믿어 버리는 것이다.

"정말로 그의 몸은 수술 자국투성이다. 가슴 한가운데로 뻗어 내려온 자국과 아랫배와 옆구리를 가로지른 자국이 선명하게 돋아나 있다. 그는 어제 저것 때문에 웃통을 벗지 않았던 것이다. 겉은 멀쩡해 보여도 인간이란 모두 저마다의 아픔과 상처를, 고작 단추 몇 개로 숨긴 채 살아가고 있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김희진의 <고양이 호텔>에서 고양이들은 중요한 매개체로써의 역할인 동시에 외로운 고요다의 동반자이다. 고양이와 외로운 젊은 여자, 그리고 그를 찾아온 젊은 남자. 그 둘의 의미심장한 사흘간의 동거, 그리고 나타나는 마녀, 거구녀의 방해. 결국 밝혀지게 되는 고양이들의 정체. 어찌보면 삼류 소설의 레퍼토리를 차용하고 있는 이 작품은 김희진의 힘있는 필력으로 결코 지루하지 않게 흘려간다.

외로움에 지친 일상인들에게는 한번쯤 꿈꿀 수 있는 판타지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큰 위로가 되는 작품일 수도 있을 것이다. 고양이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김희진의 작품 속에서 고양이들은 내내 상처와 위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아무리 고요함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누구도 곁에 없는 적막한 시간을 견디는 것은 두려움의 시작일 수 있다.

외로운 고요다의 곁을 지키고 있는 수많은 고양이들. 고양이와 고요다의 성으로 외로움을 치유하러 떠나 보는 것. 그것이 또 하나의 상처를 남기는 것이라 할지라도 도전해 볼만한 일이다. 김희진의 필력으로 또 다른 희망을 보게 될 것이니...

 

오늘의 책을 리뷰한 '토토실~*'님은?
언젠가 내 이름으로 된 수필집 하나 갖는 게 소원인, 일상에서 만나는 소소한 행복을 즐기는 유쾌한 독서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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