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의 시대> - 나는 공감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제러미 리프킨, <공감의 시대>, 민음사, 2010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위한 후보 경선에서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대통령 후보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많은 유권자들이 이구동성으로 "공감"을 선택했다. 그리고 우리의 경우에는, 이보다 좀더 앞선 2002년 대선에서 "공감"의 힘이 무엇인지 만천하에 증명해보이고 공감이라는 거대한 패러다임을 온몸으로 겪고 느꼈으며, 지금도 이는 많은 부분에서 진행 중에 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매일 3조 2000억 달러가 리얼타임으로 자본 시장에서 교환되고 있고 하루에도 4만 9000여 대의 비행기가 하늘을 가르며 불과 몇 시간 내에 사람과 화물을 지구 곳곳에 내려놓고 있다. 2500대가 넘는 인공위성은 지구 주위를 돌면서 40억 이상의 인간에게 정보를 보내주고 있다. GPS가 막다른 골목 구석까지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전달하고 있는 세상, 즉 코스모폴리탄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이는 불과 7만 여 년 전 아프리카의 구석진 곳에서 이동을 시작한 우리 인류에겐 아주 짧은 시간 내(지구의 역사에 비견하면 정말 눈깜짝할 정도의 시간일 것이다)에 이루어진 일이며, 그 끝이 어디인지 모를 약진은 계속 감행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간에도 대략 20억이 넘는 사람들이 겨우 1-2달러만으로 하루를 버텨 가고 있으며 26억 명 이상의 사람들이 기후이상으로 생존의 갈림길에 서 있는 것 역시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면 우리가 살고 있는 풍요롭기 그지없는 지금의 시대가 과연 어디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또한 지속가능한 원동력은 어디에 있을까? 실로 많은 고민거리에 봉착해 있는 현대인들에게, <소유의 종말>, <유러피언 드림>으로 사유의 폭을 한층 넓혀준 제러미 리프킨의 신작 <공감의 시대>은 다소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게 해준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공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공감"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그 실천에 대해선 무지하거나 등한시했다. 또한 인류의 발전과정을 돌이켜 보더라도 공감은 왠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듯 낯설게 다가온다. 하지만 약간만 다른 시각으로 인류사를 되돌아 보면 상당히 다른 결과에 마주하게 된다. 수렵채집의 생활에서 벗어나 지금의 발전된 문명을 누리게 만든 농업혁명, 산업혁명, 디지털혁명 등 굵직한 새로운 패러다임들은 어느날 갑자기 불쑥 나타난게 아니라 상호간 커뮤니케이션의 총합으로 인해 등장했던 것이다. 즉 "공감"이라는 의식이 그 전제에 놓여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수렵채집생활을 청산케 했던 농업혁명은 관개시설이라는 또 다른 혁신을 가져왔고 이러한 혁신은 농업경영이라는 또다른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리고 새로운 관리와 높은 수준의 조직이 필요했고 이를 지휘, 감독, 통제하는 또 다른 매커니즘을 탄생시켰듯이 이런 상호간의 공감을 통해 우리 인류는 역사의 바퀴를 진보시킬 수 있었던 셈이다.

저자는 이렇듯 인류의 역사를 투쟁적이고 경쟁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커뮤니케이션 복합 이라는 다소 생소한 개념을 가지고 전 인류역사에 걸쳐 그 발자취를 재해석하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인류가 겪게 되는 일대 혁명적인 시기를 재조명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패러다임의 근원적인 힘은 당연히 상호간의 공감이 밑바탕에 전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일련의 변혁속에 공감이라는 존재는 주목받지 못했고 주목하지도 않았다. 그저 표면으로 보이는 현상에서 역사적 발전의 근원을 찾았고 해석해왔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시대를 변혁했던 패러다임의 출현과 사멸에 대해서 극히 외관적인 판단을 해왔고 그런 판단의 근거는 사뭇 엉뚱한 방향으로 진행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인류의 발전사에 대한 정확한 시각을 가져할 때에 봉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해마다 증가하는 예측불허의 기상이변과 피크오일의 시대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한 세계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석학들이 저마나 인류의 생존 자체에 대한 경고를 끊임없이 하고 지금도 기아와 전염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 현실에서 향후 인류가 생존해 나가야 하는 올바른 방법론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에 다다른 것이다.

공감한다라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아마도 유교문화권인 우리에겐 맹자의 측은지심이말로 시의 적절한 비유가 되지 않을까 싶다. 단순하게 상대방을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 정도의 편협된 해석이 아닌 확장된 개념의 공감이란 상대에 대한 배려, 이해, 참여 그리고 상대를 제대로 인식하는 일련의 의식일 것이다.   "내가 나 자신에 관해 알아낸 것이 진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너에게서 나의 일부를 확인하고 너는 내 안에서 너의 일부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라는 찬귁번교수의 표현처럼 공감은 내가 상대방를 알아가는 과정이고 상대방을 통해서 나를 알게 되는 의식인 것이다. 여기엔 상호간의 배려와 이해 그리고 참여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공감의식은 결국 내가 아닌 우리라는 단순한 개념보다는 상대방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고유한 존재라는 확장된 개념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제 인류라는 단순한 종적 차원이 아닌 범지구생물권이라는 총합적인 개념의 우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는 지구라는 유기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공감은 자칫 인류만의 파티로 끝날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1914년 세계 1차 대전이 한창이던 때, 비록 크리스마스 단 하루만의 휴전이었지만 인류는 공감의 힘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겪었다. 공감은 인류에게 농업, 산업혁명 등의 엄청난 풍요와 부를 안겨준 패러다임을 선사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하게 퇴장시키는 무지한 사멸 또한 선사했다. 인류가 직면한 가장 불확실한 시대에 범지구적인 공감은 그 어느때보다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그리고 우리는 서서히 그 희망의 불빛을 보고 있다. 공감과는 가장 거리가 먼 경영분야에서도 예전의 경쟁발전 지상주의에서 탈피하여 협력, 협동이라는 콜래보노믹스의 바람이 불고 있고 과학과 종교의 통섭을 통해 상호간의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작지만 일어나고 있는 건 고무적인 일이다. 이렇듯 공감 의식은 자라나는 우리의 자녀 세대들에겐 더욱 더 많은 영향을 줄 것이고, 공감의식의 필요성과 확대를 위한 여건조성은 우리들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시대는 새로운 패러다임인 공감을 요구할 것이고 그 중심엔 바로 호모 엠파티쿠스가 자리매김하고 있을 것이다.

<공감의 시대> 그야말로 책을 읽으면서 저절로 수긍할 수 있는 공감 바로 그 자체였다. 인류사의 발전과정에 감추어진 역설과 그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서 역사발전의 원동력에는 다름아닌 공감이라는 의식이 내재되어 있었다는 저자의 추론에 십분 공감이 간다. 또한 그의 전작에서도 느꼈듯이 다양한 분야의 해박한 지식과 정곡을 찌르는 듯한 논리정연한 서술은 이번 책을 통해서 더욱 더 빛을 발하고 있다. 특히 "진리는 객관적이거나 주관적인 것이 아니라 너와 내가 공통의 경험적 기반을 함께 만들기 위해 모이는 틈새 영역에 존재하는 이해이다. 존재는 관계와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며, 우리가 주변 사람이나 주변 세계와 공유한 경험에 부여하는 의미의 차원이다."에서 볼 수 있듯이 진리, 존재, 자유, 평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지금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동시에 공감의 시대를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아마도 앞으로 공감의 시대를 살아갈 호모 엠파티쿠스들에게 "나는 공감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말이 아프리오리한 명제가 될 것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물잡이'님은?
모든 것에 미혹(迷惑)되지 않는 불혹의 뜻만큼 진실한 독서는 40부터라고 생각하기에 요즘 부쩍 책을 더 가까이 하게 되는것 같다. 사람과의 만남에서 느낄 수 없는 소통을 책과의 만남에서 찾고서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그저 책을 읽어나갈 뿐이다. 행복이 동사이길 바라듯이 독서 또한 타인과의 소통행위로 인식하면서 삶의 새로운 이정표를 향해서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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