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 가난의 얼굴을 보다

 

조지 오웰,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삼우반, 2008 

 


출근길 지하철, 사람으로 빼곡히 채워진 비좁은 내부를 오가며 경쟁적으로 신문을 모으는 사람들. 한 달만큼의 삶을 보장받기 위해 걸음을 재촉하는 이들의 뒤편에서, 취기에 젖어 나른하게 아침을 맞이하는 길 위의 사람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지하도 구석에서 누추한 잠자리를 펴고, 재빨리 지나쳐 가는 사람들 앞에서 고개를 숙인 채 두 손을 벌리고 있는 사람들.

평범한 이들이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는 ‘가난’의 표정이다. 습관처럼 지나쳐 버리고 마는 타인의 삶이다. 집과 직업이 있고, 그러므로 의식주에 대한 큰 걱정 없이 사는 이들에게, 간혹 짜증과 애처로움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을, 혹은 두려움, 대개는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존재들. 수많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악착스럽게 무가지 수거에 매달리는 모습에서, 더러운 옷차림과 지독한 냄새를 풍기며 거리를 배회하는 이들에게서, 구걸하기 위해 땅으로 향한 그들의 시선만큼 바닥으로 내려앉은 그들의 자존심을 보며, 결국 무관심으로 끝나고 말 몇 가지의 감정만으로 그들의 삶을 소비하며 자신의 현재에 안도하는 우리들.

이것이 가난을 대하는 우리 대부분의 끝이다.

작가 ‘조지 오웰’은 직접 그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이 된다.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은 두 도시에서 접시닦이와 부랑자 생활을 했던 그의 체험이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담겨져 있는 작품이다. “전반부는 1929년 늦가을의 파리 생활을 주로 반영했고, 후반부의 영국 생활은 1928년 겨울에서 1931년 여름 사이에 그가 직접 체험하거나 간접적으로 취재한 내용을 재구성했다”고 한다.

이를 통해 오웰은 부랑자, 하층민들의 삶을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그러한 삶이 자신의 육체와 정신에 미치는 영향을 민감하게 받아들여, ‘배고픔’, ‘잠’, 등의 기본적인 문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전개해나간다. “배고픔에 대한 주된 기억은 완전한 무기력이다.” (50쪽) “잠은 단순한 신체적 필요성이 아니었다. 그것은 관능적인 것이었고, 휴식이기보다 폭식이었다.”고 (120쪽) 더욱이 전반부와 후반부를 마무리하는 22장과 36장에서는 파리의 접시닦이 생활과 영국에서 경험한 부랑인에 대한 “일반적인 소견”을 밝히며, 앞에서 서술한 개인적 체험 수기를 벗어나 가난의 문제에 대한 그 자신의 진지한 사고를 보여준다.

다시 말해, 오웰은 체험자인 동시에 목격자의 위치에서 “하층민의 삶을 취재하고 그것을 다시 중산층의 언어로 증언”하고 있는데, 여기에 영국 식민지 버마에서 제국주의 경찰로 근무했던 그 자신의 (불의한 식민 체제에의 봉사자였다는) 개인적인 죄의식이 더해져, 보다 적극적으로 하층민이 최소한의 인간적 품위를 유재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차원의 노력이 절실하며, 궁극적으로 계층적 차이가 개인의 본질적 차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다만 그들도 평범한 인간이고, 그들이 다른 사람들만 못한 것은 그들의 생활 방식에서 빚어진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 (270쪽)며, “문제는 어떻게 하면 지루하고 생기 없는 부랑인에서 자존심 있는 인간으로 바꿔놓을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274쪽)

하층민의 삶이 여실히 드러나 있는 이 책에서, 아침저녁으로 스쳐 지나갔던 그들의 이야기가 들리는 듯하다. 미처 알지 못했던 가난의 얼굴을 본 듯도 하다. 책의 말미에서 “가난의 언저리까지밖에는 보지 못한 것 같다”고 말하는 오웰이, 그러나 “이것이 시작이다.”라고 글을 마무리 지을 때, 이것이 나와 우리의 시작이진 않을까 생각해본다.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Trackback 0 Comment 0
prev 1 ··· 378 379 380 381 382 383 384 385 386 ··· 507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