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지만 행복하게> - 가난이 왜 죄냐!

윤구병,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휴머니스트, 2008 
 

‘행복하고 싶으세요?’란 질문에 ‘아니’라고 답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는 행복하고 싶고, 나와 가까운 사람들도 그렇다 하고, 그들과 가까운 사람들도 그럴 테니, 인류 대부분이 행복하고 싶을 거다. 빌딩 하나쯤은 물려받는 세상에서 그렇지 못한 나는 아쉽게도 행복전도사가 말하는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나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책이 있으니, 바로 <가난하지만 행복하게>다.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다고? 부제도 근사하다. ‘자연과 공동체 삶을 실천한 윤구병의 소박하지만 빛나는 지혜’. 슬쩍 들쳐보니 이런 말도 나온다.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지난 5년 동안이 내 삶에서 가장 행복한 때라고.” (69쪽) 와우, 브라보! 

먼저 윤구병이란 사람이 누군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원래 사람 혹하게 하고, 별 대가 없이 좋을 걸 준다고 하는 이들 중에는 사기꾼이 많다. 윤구병, 1943년 생이니 올해로 68세. 서울대학교 철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월간 <뿌리깊은 나무> 초대 편집장을 했다. 1981년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가 돼 15년간 교수 생활을 하다, 1995년 전북 부안군 변산으로 농사를 지으러 갔다. 세계화니 FTA니 해서 쌀값 떨어지고, 농민이 할복해 죽어나가는 판에 농사라니. 대체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이 지긋하신 분이 괜히 거짓말 할 이유 없고, 내가 좋아하는 철학과 교수였다니 일단 한 번 믿어보자.

느긋한 마음으로 ‘소박하고 빛나는 지혜’를 배우고 싶었는데, 책은 느긋한 마음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 내용이 혁명적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도시를 바라보는 시선은 매우 냉정, 아니 냉혹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사회는 결국 죽음의 사회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지나치게 과격하다고 생각하실 분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실이다. 도시사회는 자기 자신이 자급자족할 수 있는 생산 공동체를 그 안에 안고 있지 못하다. 도시 한복판에 논이 있나, 밭이 있나.” (244쪽) 빌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고, 최첨단 자동차가 가득하지만, 도시는 그 자체로 생존할 수 없다. 애석하게도 나는 수십억짜리 타워팰리스를 먹는 재주가 없다.

저자의 생각이 ‘과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책을 주문하면 그날 받을 수 있을 정도로 물류 시스템이 발달한 사회인데, 그것도 땅덩어리가 넓지 않은 한국에서 굳이 그렇게 정색할 필요 있냐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 중요한 건 도시에서 자라난 사람의 마음이다. “도시에서 살다 보면 인간의 심성 속에 자연적인 한계가 없다는 생각이 굳어진다. 주는 만큼 받는 다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체험으로 배우지 못하기 때문에 무한한 욕망이 가능하고, 그 욕망의 충족도 무한히 될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한다.” (250쪽) 자연과 생산의 이치와 별개로 매스미디어가 창출한 욕망의 용광로 속에서 자라난 아이들에게 신은 어떤 미래를 허락할까.

현재 자본주의 사회는 공동체의 마지막 울타리까지 무너져 모든 사람이 사회적 원자로 뿔뿔이 흩어진 사회다. 너를 물어뜯지 않으면 내가 살 수 없다. ‘사람이 사람에게 늑대인(homo homini lupus est) 사회’, 바로 이것이 현대 문명을 이루고 인간들의 상호 관계를 나타내는 적나라한 구호다.(272쪽)

태어나는 순간부터 경쟁하고, 1등을 향해 쉴 새 없이 달려가는 (낙오자는 좌절하는) 사회가 과연 우리가 선택한 사회인가. 만약 우리가 선택하지 않았고, 소수의 가진 자들이 만들어 놓은 허상이라면, 과감히 변화를 꾀해야 한다. 윤구병 선생님이 말하는 변화의 방향은 무소유와 공동소유이다. 그는 이것을 실천하기 위해 정년이 보장된 교수 생활을 때려치우고, 농촌으로 간다. 그곳에 부귀영화는 없다. 대신 땀 흘려 일하는 보람과 지친 자신을 위로하는 따듯한 사람이 있다.

낙향 후 조금만 일해도 편히 먹고 살 수 있고, 모든 이들이 사랑만 한다면 글은 여기서 끝날 거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다. 농약과 기계로 요즘의 농사 방식을 거부하고 예전의 방식으로 짓자니 일은 끝이 없고, 같은 이상을 품은 사람들끼리도 일상에서 벌어지는 생각의 차이는 서로 얼굴을 붉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 속에서 가장 행복하다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농민이 인류 생명의 근원이요, 싸우더라도 함께해야만 결국 서로 껴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그의 삶은 온갖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지키고 싶은 자유로운 선택.

윤구병 선생님은 자연 속에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살아있는 것들은 많은 씨앗을 뿌리는데, 왜 모든 씨앗이 완전히 성장하지 못할까. 답은 많은 씨앗 가운데 한둘 만 빼고 나머지는 다른 생명체에 먹이가 된다는 사실에 있다. 생명은 또 다른 생명의 바탕이 되고, 수많은 생명 가운데 그 생명은 존재 가능하다. 만약 하나가 제 잘났다고 다른 생명들을 다 잡아먹는다면, 결국 외로움이 그 생명을 잡아먹는다. 이는 사람들 사회도 마찬가지다. 내가 세상을 다 갖지 못했다고 슬퍼할 필요 없다. 나의 수고가 나의 것으로 온전히 돌아오지 않았다고 슬퍼할 필요도 없다.

좀 더 가난하게 사는 길, 좀 더 힘들게 사는 길, 좀 더 불편하게 사는 길은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길이기도 하다. 그것은 공생의 길이다. 내가 가난하게 살면 그만큼 이웃이 가난을 던다. 내가 힘들게 일하면 그만큼 이웃의 이마에 흐르는 구슬땀이 걷힌다. 내가 불편하게 사는 만큼 이웃이 편해진다.(69쪽)

가난이 왜 죄인가! 혼자, 자기 식구들만 잘 먹고 잘 살겠다고 특권과 편법을 쓰는 ‘놈’들이 죄인이지. 나눔을 가르쳐주는 가난은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우리 앞에 파란 약과 빨간 약이 놓여 있다. 무엇을 먹을지는 우리 자유다. 선택의 시간이다. 
 

-안늘(ak2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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