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 클라리넷 5중주> - 브람스가 권하는 커피 한잔

알반 베르크 사중주단, <브람스, 클라리넷 5중주>, EMI, 2003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람 

여름이 물러가고 저녁공기가 쌀쌀해질 때, 애호가들의 오디오에는 대개 브람스의 음반이 걸려있는 경우가 많다. 고전주의 시대의 균형과 절제미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그보다 자유로워진 낭만주의적 판타지의 조화, 그리고 브람스의 음악에서만 느낄 수 있는 우수가 조합하며 뿜어내는 그 아스라한 분위기는 ‘가을’이라는 계절을 더욱 아름답게 만든다. 그 감정은 궁상맞고 값싼 슬픔이 아니다. 단순히 ‘청승맞은 중년의 고독’으로 표현되는 정도를 지나 그의 음악은 품격이 넘치고 너무나도 인간적이며, 남녀노소를 초월한 인간내면의 깊은 바닥까지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인도하는 음악이다. 누가 그랬던가? 비극은 희극을 껴안을 수 있지만 희극은 비극을 껴안을 수 없다고. 사람들이 보기에 브람스가 만든 가면(작품)중 대다수는 비극을 위한 가면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애써 희극을 위한 가면을 만들기 위해 어색한 변화를 섣불리 시도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부러 울상 짓는 가면을 만들지도 않는다. 베토벤의 가면이 분노로 가득 찬 무시무시한 아귀나 사천왕상을 연상케 한다면, 브람스의 가면은 우는 듯 웃는 듯, 그 심사를 쉽사리 알 수 없는 표정의 가면이다. 브람스는 베토벤처럼 대놓고 분노를 폭발시킨다거나 끝없이 흘러나오는 광기어린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싫은 소리도 돌려서 말하며, 남의 말에 상처받아도 그 자리에서 받아치지 못하고 나중에서야 은근하게 이야기하는 타입이라면 어떨까. 오늘 소개하게 될「클라리넷 5중주」는 그 가면들 중 정점에 서있는 작품이다.

이젠 뭘 하더라도 그 시절 같을 순 없으리오

1880년대 들어서 브람스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상황을 맞고 있었다. 우선 오랫동안 자신을 지지해주었던 친구들이 하나 둘 세상을 뜨기 시작하자 그로 인한 심리적 압박감이 그를 짓눌러 오기 시작했다. 교향곡 3번과 4번을 비롯한 여러 작품에 본격적으로 고독감이 배어나오기 시작했으며, 음악적 견해에 있어서 대척점에 서 있던 바그너와 브루크너, 볼프 등은 한층 맹렬하게 브람스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브람스는 자신의 맹렬한 지지자인 평론가 에두아르드 한슬릭(Eduard Hanslick)의 반격을 방패삼으며 애써 그들의 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으려 했지만, 이미 정신적으로 외로웠던 그가 이러한 일들로 인해서 인간관계와 음악계에 일종의 환멸을 느끼는 것은 정해진 수순과도 같았다. 결국 브람스는 1890년,「현악 5중주」를 끝으로 더 이상은 곡을 쓰지 않겠다는 절필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절필선언. 어떻게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산전수전을 무던한 성격으로 모두 이겨낸 브람스 같은 베테랑 작곡가가 그 어떤 작품을 쓰더라도 더 이상 젊은 시절에 품었던 열정도, 동기부여도 되지 않는 상황임을 스스로 인정한다는 것은 창작자로서의 생명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얼마 뒤에는 친구이자 출판업자인 짐로크(A.F.Simrock)에게 유언장처럼 보이는 편지를 보내기도 하였고, 출판되지 않은 자신의 작품들 중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은 파기시켜 버리는 정리 작업을 하기도 하였다. (4개의 교향곡을 제외한 또 하나의 교향곡이 이때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누가 보더라도 거장의 음악인생은 여기서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상황은 1891년이 되면서 180도 바뀌게 된다.

울지 말고 일어나 피리를 불어라
 

91년의 어느 날, 친구와 함께 마이닝겐을 방문하게 된 브람스는 그곳 궁정관현악단의 연주를 듣게 되었다. 여느 때와 같이 무심히 연주를 듣던 브람스, 하지만 늘 봐오던 평범한 악기 하나가 그날따라 그의 마음에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게 된다. 오케스트라의 음향 속에서 홀연히 등장하여 저음역과 고음역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풍성하면서도 유연한 다이내믹의 표현으로 단숨에 브람스를 사로잡은 악기, 그것은 바로 클라리넷이었다. 그날의 클라리넷 주자는 리하르트 뮐펠트(Richard Muhlfeld)였고, 그의 연주에 감동한 브람스는 그 이후로도 뮐펠트와 교류하며 클라리넷만이 지닌 특유의 광범위한 표현력이나 테크닉에 대해 한층 폭넓게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절필선언 후 무기력해지고 있던 노대가는 자신의 가슴에 다시 열정의 불씨를 되살려 놓은 클라리넷을 위한 곡들을 쓰기로 마음먹게 되고, 이 시기에 탄생한 작품 중 하나가 바로「클라리넷 5중주 Op.115」였던 것이다. 이 작품의 초연은 대단히 성공적이었고, 지금까지도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작품들과 더불어 클라리넷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보여주는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실제로 이 작품을 들어보면 노년의 브람스가 느꼈을 회한, 추억, 쓸쓸함 같은 복잡한 감정들이 클라리넷의 선율을 타고 자유롭게 날아가는 듯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무려 음악을 그만 두려던 브람스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를 가장 잘 이해하고 곁에서 위로해줄 수 있는 악기였던 클라리넷. 오래된 친구 같았던 클라리넷을 위해 기꺼이 마지막 예술혼을 불태웠던 노대가의 솔직하고 절절한 심정이 담겨있기에, 이 작품이 지금까지도 사랑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Richard Muhlfeld, 1856~1907>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LP시절부터 인정받던 블라하/빈 콘체르트 하우스 콰르텟의 전설적인 녹음이 있긴 하지만 구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라이스터/아마데우스 콰르텟의 연주도 매우 훌륭하며 곡의 심연까지 파고드는 진지함이 매우 인상적이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음반 중 주목할 만한 것으로는 마이어/알반베르크 콰르텟의 연주가 뛰어나다. 비교적 굵직한 느낌을 주는 앞의 두 음반에 비해 섬세한 다이내믹의 표현이 뛰어나며 전체적인 균형 감각을 놓치지 않으려는 구성력도 훌륭하다. 한때 카라얀과 베를린 필하모닉의 사이에서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냈던 자비네 마이어(현재는 아바도가 이끄는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그 명성에 걸맞게 강렬한 감정의 표현을 보여준다. 은은한 갈색을 연상시키는 알반베르크 사중주단의 음색 역시 이 곡에 매우 잘 어울리며 단원들이 들려주는 앙상블의 민첩함이 훌륭하다. 커플링 된 현악5중주 역시 뛰어난 연주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박현준'님은?
 
음악대학에서 작곡을 공부하고 있으며 지금은 공익근무요원으로서 어정쩡한 신분의 삶을 살고 있는 남자입니다. 남의 연주에 대해 끼적이는 걸 좋아하면서도 음악을 공부하며 생긴 어정쩡한 동업자 정신 탓에 나쁜 연주를 나쁜 연주라 쉽사리 말하지 못하는, 암튼 정체가 수상한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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