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겨울> - 이 겨울을 끝낼 봄은, 그냥 오지 않는다

강제숙 글/이담 그림, <끝나지 않은 겨울>, 보리, 2010  


메마른 가지를 뻗고 있는 오래된 나목 아래,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웅크려 앉아 있는 한 여자가 보입니다. 그 뒤로, 얼굴은 알아볼 수 없으나 그 존재감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사람들의 실루엣이, 그녀를 에워싼 듯 늘어서 있습니다. 거뭇한 형체의 그들이 웅크려 앉은 그녀를 바라보며 서로들 뭐라고 수군거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그녀가 말합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지만 위안소에서 겪은 일은 잊을 수가 없었어요. 누구에게도 말을 못하고 그저 죄인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마을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기만 해도 손가락질하는 것 같았어요. 가슴이 방망이질 치고 꼭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것 같았어요. 나는 더 이상 집에 머물 수가 없었어요.”

열여섯 되던 해, 아무것도 모른 채 일본군에 끌려가 ‘위안부’가 되어야 했던 그녀의 이야기가 지워지지 않은 역사의 상흔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전쟁이 얼마나 잔혹하게 여성들의 삶을 짓밟았는지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전쟁의 폐해, 전쟁의 피해자가 비단 총알이 오고가는 싸움터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경술국치 100년을 맞이한 우리가 끝끝내 감싸 안고 해결해 나가야 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녀의 겨울은, 그러므로 우리의 겨울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를 담은 <끝나지 않은 겨울>은 평화운동가 강제숙 선생님이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할머니들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책은 ‘나눔의 집’에서 그림을 그리며 일본군 ‘위안부’ 증언 활동을 했던 김순덕 할머니, 1970년대 가장 먼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임을 밝혔던 배봉기 할머니를 생각하며 쓰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책이 담고 있는 증언의 목소리는 두 할머니가 겪어온 뼈아픈 과거를 드러내는 데 끝나지 않습니다. 모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더 나아가 아직도 전쟁의 상처로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전쟁피해자, 모두의 목소리를 대신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철저한 고증을 통해서 당시 위안소의 모습이나 할머니들이 탔던 배 같은 것들을 그렸다는 이담 선생님의 그림은 <끝나지 않은 겨울>의 이야기, 그 목소리에 역사성과 사실성을 불어넣어주며, 켜켜이 쌓여 있는 역사의 흔적을 오롯이 담아내고 있습니다. 또한 왁스 페인트를 불에 녹여 종이에 바르고 철필로 긁어내 그린 방식은 그림의 입체감을 살려, 시간과 공간의 깊이와 함께 그 안에 인물의 감정까지도 고스란히 새겨 놓은 듯합니다. 그러므로 이 책을 보는 이들은 한 장의 그림만으로도 많은 것을 느끼며, 그 만큼의 생각을 얻어갈 수 있게 됩니다.

“모두가 알아야 할 이 중요한 일을 우리 아이들에게도 들려주기 위해 이 책을 만들었”
다고 말하는 저자의 말을 읽으며, 기실 그 말의 뜻이, ‘이 겨울을 끝낼 봄은, 그냥 오지 않는다’는 것이었음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봅니다.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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