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찬 9집> - 완만한 근사함


 

조규찬, <조규찬 9집>, WARNER MUSIC KOREA, 2010 

리메이크 앨범과 어쿠스틱 베스트 앨범을 내던 시기, 그의 인터뷰 중 가장 가슴 철렁한 순간은 '정규반을 낸다는 것에 대한 회의'를 표하던 때였다. 조규찬 같은 목소리를 지닌 싱어송라이터가 자신의 이력을 정리하는 베스트 앨범과 리메이크 편곡으로만 자신을 드러낸다는 데 도무지 만족할 수가 없었고, 그가 '사막' 저편으로 서서히 흐릿하게 사라질까봐 겁마저 나던 터였다. 그래서 『9』가 더욱 반갑기도 하다. 한동안 유학을 위해 이 땅을 떠나는 그이기에 잦은 안부를 들을 수는 없겠지만(언제는 자주 들었던가?), 『9』를 비롯한 숱한 정규 디스코그래피와 『무지개』 같은 첫 번째 더블 앨범 베스트반으로 간혹 그를 상기할 수 있을 것이다.

서정적인 면모로 그를 기억하는 이들에겐 낯선 것이겠지만, 실은 그의 지난 이력을 살피다보면, 삐죽 솟은 냉소적인 가사와 예상불허의 시도로(「아담과 이브는 사과를 깨물었다」, 「비둘기야 비둘기야」, 「상어」) 음악팬들의 귀를 쏙 당기기도 했고 일련의 다양한 관심사를 반영한 시도로 자기과시적인 앨범(가령 7집 『Single Note』)들을 내놓기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처럼 들쑥날쑥한 시도보다는 차분한 탐구생활 제출물 같았던 『Guitology』에선 한 뮤지션의 성장치 면에서 뭉클한 만개의 순간을 목도하게도 했었다. 이에 비하면 『9』는 한층 차분해졌고, 정리정돈 에 더욱 만전을 기한 앨범이다. 예측불허성을 기대한 몇몇 이들의 입장에선 입이 삐죽 나올지도 모르겠다.

먼저 도드라지는 것은 해이의 미니 앨범 『Vegetable Love』에서 진작에 예고된 셈이었던, 가족 구성원과 같이 산다는 체험을 기적담 풍으로 토로하는 흥분감이다. 냉소를 말하던 펜은 따스한 이불이 덮인 침대 틈새 속으로 사라졌다.
남녀 관계를 정형화된 공식으로 표현할 법한 단어인 '매뉴얼'은 서로간의 인연과 조율이라는 온화환 시선으로 뒤바꼈다. (「Just married」) 덕분에 이별 후의 회고와 메마른 갈망을 표현하는 「Instead of you」, 「Is this love」등은 절박하게 들리기보다는 안정되고 완만하게 들린다. 건반은 리드미컬하게 굴러가고 기타는 코드를 맛깔나게 짚는다.(「풍선」) 모든 것은 평화롭다.

또한 이 땅을 잠시간 떠나는 그의 입장에서는 동시대의 역량 있는 보컬들을 좀더 소개하고 팠던 모양이다. 가령 「Without you」에서의 박완규는 피처링의 위치가 아닌 거의 주인공 격이다. 그리고 이런 일련의 듀오 넘버들에서 실감하게 된다. '아, 박완규와 박혜경이 정말 괜찮은 싱어들이었구나!'라는 늦은 깨달음들. 어쩌면 정규반을 내는 것에 대한 회의를 간간히 토로하는 조규찬의 입장에서 작은 항변을 하는 것이 아닐까 했다. 좋은 목소리를 지닌 싱어들을 제대로 소비하기보다 다른 방식의 소비를 활성화하는 '이상한 나라'의 시장을 향한 내내 곱씹은 토로들.

좋은 싱어이자 좋은 작곡가라는 것들을 증명하는 넘버들 「WOW」, 「Instead of you」, 「Drive 2」등에도 불구하고, 아슬아슬한 순간도 있다. 내겐 왠지「Suddenly」가 일전에 그가 쓴 「Strawberry days」의 반복 같이 들렸다. 기시감도 이력 정리 앨범에서는 필히 마주할 수밖에 없는 순간인가? 석연찮음에도 불구하고 『9』가 듣기 좋은 앨범이라는 사실에 대해선 앞장서서 동의할 것이다. 대중적인 접근을 앞세운 6집 『해빙』에서 조차도 묘하게 비균질적인 구석을 보이는 몇몇 트랙들이 배치되었는데, 『9』는 평탄한 도로를 타는 기분이다. 이것이 과연 좋기만 한 것인지는 조규찬이라는 이름값에 대한 기대치 덕에 갸우뚱하지만, 전체를 놓고 훗날 다시 살펴보기엔 10집이라는 존재는 한참 기다려야 한다. 지금 당장에 『9』는 몇몇 서운함과 근사한 팝 넘버들 사이에서 한동안 플레이될 것이다. 기다림이 너무 길지 않기만을 소박하게 바라며.

오늘의 책을 리뷰한 '렉스'님은?
사촌누나의 음악 테이프를 몰래 주머니에 넣는 것으로부터 시작된 음악듣기,  이제 그 듣기를 애호와 피력으로 발산하려 하나 여전히 역부족. 웹진 음악취향 Y(http://cafe.naver.com/musicy)에서 렉스라는 필명으로 활동 중. 게으른 직장인이자 숨가쁜 인터넷 서퍼.


Trackback 0 Comment 3
prev 1 ··· 2532 2533 2534 2535 2536 2537 2538 2539 2540 ··· 3094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