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력소년생존기> - 지옥 같은 현실, 희망의 꿈꾸기는 가능한가

주원규, <무력소년생존기>, 한겨레출판, 2010


이야기는 한 소년으로부터 시작한다. “크렁크렁 쇳소리를 뿜어내며 쉼 없이 공산품을 쏟아”내는 기계 앞에서, 1초에 하나씩 나오는 주먹 크기만 한 공산품을 개수에 맞춰 골판지 박스에 담아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려놓는 비루한 기술이 전부인 그 소년으로부터. 그의 어미가  그랬던 것처럼, 1년 365일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끊임없이 반복해야 하는 지극히 단순한 노동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사는 유약한 소년이, 매월 말 낮은 생산율을 이유로 구타당하며 ‘폐신 집합소(廢神 集合所)’ 42층 78명의 노동자 중 하나로 무력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왠지 그 소년이 낯설지 않다. 공산품을 쏟아내는 기계, 컨베이어 벨트 그리고 노동자에서 검수원, 감시원, 작업반장 순으로 이어져 결국에는 총지배자인 독재자에 이르는 감시와 지배의 수직적 체계까지. 한국 근현대사의 전면을 장식하고 있는 산업화와 대량생산, 경쟁과 계급 구조가 자연스럽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혹은 거대한 조직 안에서, 권력의 이름으로 부과된 억압적인 지시와 폭력 앞에서 언제나 작아질 수밖에 없는 오늘 우리의 모습도 생각난다.

그러니 이 책, <무력소년생존기>를 읽어가는 과정이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은 게 사실이다. 책을 읽고 있는 독자의 욕망이 ‘힘없는 소년의 생존’이라는 희망적인 서사의 결말을 향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을지라도, ‘힘없는(무력)’과 ‘생존’이라는 단어가 지니고 있는 묵직함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 결국 그 서사를 채울 것이며, 그것이 또한 우리가 어쩔 수 없이 마주해야 하는 현실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로 인한 무한경쟁은 우리 모두를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아수라장 속에 몰아넣고 오직 한 가지 욕망에만 반응하는 괴물로 탈바꿈시키고 말았던 것이지요. 말하자면 맹목적인 인간이 된 셈입니다. 정치는 희망을 잃고 더 이상 대의를 논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맹목이 대세인 사회라면 꿈과 희망이라는 단어보다 지시와 복종이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릴 테니까요.”
(작가의 말, 6쪽)

작가의 말마따나, ‘지금, 이곳’의 현실은 괴물로 가득한 지옥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치열한 경쟁의 삶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우리가 곧 괴물이며, 그런 우리가 부딪혀 깨지며 살고 있는 이곳이 곧 지옥일 테니. 따라서 작가의 자유분방한 상상력이 그려낸, 다소 황당한 서사와 그 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폭력과 욕망의 그림을 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희망을 품게 된다면, 그것은 곧 ‘거대한 고통의 출현’이라는 결말로 단호하게 끝을 맺어버리는 작가의 비관적 시선에 의해 배반당하고 말 것이다.

“거의 완벽하게 건물이 붕괴될 그 시점에 벽을 붙잡고서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하던 칼잡이와 소년은, 목격하고야 말았다. 그들의 어설픔과 잔인함, 근거를 상실한 분노와 해명할 수 없는 모순이 일궈낸 마지막 꿈의 한 조각을 말이다. […] 바닥에서부터 밀고 올라오는 혼들이 토해낸 일그러진 영웅이 거대한 불가항력이 되어 지금 그들의 분노, 꿈, 자유를 짓밟고 유린한 모든 것에 대한 심판으로 정체를 드러내고 만 것이다.”
(365쪽)

그러므로 <무력소년생존기>를 읽는 이유는 그 안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우리가 놓여 있는 바깥의 절망적인 현실을 위로하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현실이 '그러함'을 인정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치기 위함이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희망'은, '희망의 꿈꾸기'는 거세되고 짓밟힌 희망의 흔적, 그 ‘거대한 고통의 출현’을 보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렇게 책 속에 담겨 있지 않았던 희망이 책을 덮고 난 후에야 찾아오는 것, 그 희망을 오늘의 현실로 불러들이는 것이 이 책을 읽는 우리의 이유가 될 것이다.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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