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이슈와 추천도서] 우리를 ‘슬프게 혹은 술 푸게 하는 세상’

안녕하세요. 반디앤루니스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입니다

“아~, 덥다!”라는 말이 습관처럼 입에서 튀어나오는 요즘, 장마를 앞두고 있는 탓에 숨이 턱 하고 막히는 후덥지근한 공기 속에 축축하고 무거운 습기마저 꽉 들어차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은 그닥 상쾌하게 느껴지지 않고, 하루를 채우는 바깥 세상의 뉴스들 또한 여전히 유쾌하지 않은 것들뿐이네요. 아~, 마음껏 “시원하다!”라고 외쳐볼 수 있었으면. 우리의 겉과 속 모두가 시원해질 수 있었으면. 

문제는 무더운 여름 날씨야 시간이 지나고 계절이 바뀌면 금세 선선해지겠지만, 지금 우리의 속을 답답하게 만들고 있는 바깥 세상은 쉽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는 겁니다. 더욱이 요즘 들어서는 우리에게 그런 세상의 이야기를 전해주어야 할 언론매체가 그 자체로 시끄러운 뉴스거리가 되고 있으니까요. 특히, 지난 6일 개그우먼 김미화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올린 ‘KBS 블랙리스트’ 관련 발언이 KBS의 명예훼손 혐의 고소로 이어지면서 논란은 점점 가열되고 있고, 지난 2년 여 동안 추락한 KBS의 신뢰도와 공정성 회복을 위해 나선 KBS 새노동조합의 총파업(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은 이제 23일째를 맞으며, 노사 간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평행선을 달리고 있습니다. 

‘KBS 블랙리스트’ 문건이 실제로 존재하는지에 대한 진위 여부를 떠나서, 언젠가부터 KBS가 자꾸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는 건 분명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는 현 정부에 들어서면서 좀더 심해지기 시작한 표현의 자유(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결국 우리가 느끼는 답답함의 본질은 침묵을 강요당할 때의 그것과 동일합니다. 하고 싶은 말, 해야 할 말이 있을 때, 그러나 하지 못할 때, 우리에게는 그 답답한 속을 시원하게 해줄 수 있는 대나무숲이 필요합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다~”라고 외칠 수 있는. 
 

지난 19일 기자회견에서 김미화가 했던 말처럼, “코미디언을 슬프게 하는 세상”이 우리 또한 슬프게 혹은 술 푸게 합니다. 틀린 건 틀리다, 잘못된 건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는 세상, ‘시대의 정직한 목격자’들이 자유롭게 증언할 수 있는 사회가 필요합니다. 강요된 침묵 속에 은폐되려는 진실을 말과 글로써 용기있게 드러내는, 그 자체로 하나의 실천을 하고 있는 많은 이들의 신념이 지켜져야 합니다. 밥벌이에 대한 위협으로 그 신념을 꺾어 치욕과 비굴한 삶 속으로 우리를 내몰지 않는 세상이어야 한다는 것이죠.  


 

 

 


우리의 삶 도처에 산재해 있는 수많은 문제들이 하루 아침에 쉽게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말과 글로 기록하고 증언한다고 해서 그에 대한 해결이 담보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문제가 문제라는 것을 말할 수 있고, 이를 다른 이들과 공유하며 고민할 수 있는 창구는 마련되어 있어야 하겠죠. 그래야 곪아가고 있는 상처를 방치해 결국 손 쓸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는 걸 방지할 수 있는 '건강한 사회'가 될 테니까요. 그러지 않고서야, 우리를 슬프게 혹은 술 푸게 하는 이 세상은 변하지 않을 테니까요.  


간(間) 5

  지난밤 술이 과했다

  옆에서 쿨쿨 자고 있는 원숭이를 깨워 몇몇 주의사항을 일러준 뒤 대리 출근시킨다
  도심의 빌딩숲을 정글처럼 헤쳐나가는 그는 상상 외로 빠른 출근을 한다 게다가 평소 냉담한 직장 상사들까지 그의 곡예에 탄복한 나머지 바나나를 자루째 던져주기도 한다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고 후식으로 뒷산에서 산딸기를 따 먹었으며 저녁엔 보신탕을 안주로 폭탄주, 거기에 나도 못해본 연애까지 하는 등, 대리 출근은 성공적이다

  자동차 머플러 소리는 왜 말이 아닐까 이륜차와 사륜차의 차이는 두 발과 네 발 차이 이상일까 차 밑에 새끼를 낳았던 도둑고양이는 여전히 집이 돌아오길 기다릴까
  말똥말똥 잠을 못 이루는 그에게 자장가를 들려준다 잘 자라 내 원숭이, 잘 자라- 해가 솟고 요구르트가 캥거리 주머니 같은 통 속으로 쑤욱 기어들 때까지

오늘 퍽이나 진화론적 실존주의자였던 그의 손에 뭔가 쥐여져 있다 그 뭔가는 원시 조상들이 피로써 술을 담글 때 쓰던 거름종이 같은 것이며, 그것으로 그는 엉덩이의 주홍색을 박박 지우려 했나 보다 

-구광렬, 『불맛』, 실천문학사, 2009, 90-91쪽

 


얼마 전 출간된 『PD수첩 - 진실의 목격자들』은 이와 같은 신념의 20년 세월을 담고 있습니다. 황우석 사건, 광우병 검증, 만민 교회 사건, 검찰 스폰서 그리고 최근의 민간사찰까지 보도하는 이슈들마다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던 PD수첩이 그 신념을 지키기 위해 이제껏 겪어온 갖가지 고난과 위기가 이 책을 통해 드러납니다. 

주요 신문들의 방송 진출을 위한 방송법 개정, 잇다른 방송사 경영진 교체와 인사이동, 주요 프로그램 폐지와 KBS 수신료 인상안 추진, 그리고 최근 사장 인사에 불만을 제기하며 근 1달간 이어진 MBC 파업과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KBS 새노조 파업까지, 현재 한국 언론은 커다란 변화 속에서 갈피를 못잡고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PD수첩은 “그저 언론은 언론이어야 한다는 당연한 상식을 지키기 위해서, 오늘도 권력에 맞서 힘겨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으며, “아직 이 사회에 남아 있는 마지막 입”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진중권이 이 책의 추천사에서 했던 “그동안 우리 사회에 이슈를 던져 왔던 PD수첩이 이제는 스스로가 이슈가 될 차례인 것 같다”는 말을 오늘의 현실에서 볼 수 있는 것이겠죠. 

이러한 언론계의 상황과 관련하여, 지난 19일 경향신문에 게재된 연재기사 [모 피디의 그게 모!] 방송은 계속되어야 하는가? (기사 원문 보러가기)는 PD저널리즘의 밖에 있는 또 다른 방송인의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 그래서 오히려 화가 났어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드라마는 방송이 된다는 사실에. 우리가 하는 일이 치열한 질문도 없이 정해진 상품을 위한 공정을 돌리는데 그친다면, 우리의 의미란 건 결국은 방송사가 돌아갈 수 있도록 돈을 벌어주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그 돈으로 돌아가는 방송사가 그나마 제 역할마저 제대로 못한다면 우리는 도대체 얼마나 허무한 존재일까요. 

[…] 요새 게이트 키핑(기자나 편집자와 같은 뉴스 결정권자가 뉴스를 취사선택하는 일. 또는 그런 과정)이 유행입니다. 드라마도 예외는 아니어서 기획이 꽂혀 내려오고, 힘겹게 쓴 대본과 찍어온 그림은 난도질당하기 일쑤입니다. 상명하복과 불합리가 횡행하는 가운데, 언론사로서도 제작사로서도 방송국은 요즘 낙제점입니다. 그 놈의 게이트 키핑은 이제 상명하복과 불합리를 포장하는 단어가 되어버렸어요.

사실 게이트 키핑을 해야 하는 것은 우리에요, 형. 자본으로부터, 권력으로부터의 음험한 욕망이 시청자에게 여과 없이 나가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아야 합니다. 우리가 헌신해야 하는 패트론(patron, 후원자)은 권력도, 사주도, 광고주도 아닌 시청자이지요. […] 어떤 일이 있어도 방송의 의미를 포기하지 않을 것. 시청자를 향하는 부조리한 욕망을 막아내는 최후 단위의 사람으로서의 책임감을 놓지 않을 것.

요즘 여기저기서 방송 공장들이 종종 멈춥디다. 다들 못 견디겠는 거지요. 부끄럽거든요.” 


이와 관련하여, 최근 인문학 서적으로는 8년만에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의 인기는 출판계 내외의 일반적인 분석처럼, ‘부정의’ 혹은 ‘불의’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국가적·사회적 분위기가 가장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는데요, 이 책에서처럼, 쉽게 정의내리기 어려운 ‘정의가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은 후에, 그런 정의 앞에서 정직할 수 있는 힘, 그 힘을 자본과 권력의 힘으로 제압하지 않고 지켜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적어도 정의로운 사람이 밥 굶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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