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百의 그림자> - 쓸쓸함이 쓸쓸함을 만났을 때

황정은, <百의 그림자>, 민음사, 2010


시간은 무엇에게나 흔적을 남긴다. 짧게는 하루, 길게는 평생 동안 혹은 그 이상으로. 이 순간에서 다음 순간으로 넘어가는 사이, 필시 무언가는 사리지고 또 무언가는 생겨난다. 수많은 밤과 낮을 오고가며 이루어진 생멸(生滅)의 축적이 다름 아닌 시간의 흔적일 것이다. 그렇게 어제를 지나 오늘에 이르는 우리에게 아픈 상처의 기억을 남기는 것도, 그 고통을 이겨낼 또 다른 기억을 심어주는 것도 결국 시간이다.

이 소설, <百의 그림자>은 그 시간의 흔적들을 생각하게 한다. 처음 책을 폈을 때, 우리에게는 숲을 헤매고 있는 ‘은교’와 ‘무재’가 걸어들어 온다. 쓸쓸한 그들의 기억, 그들에게 새겨진 시간의 흔적이 함께 따라 들어온다. 그 안에 집 나간 어머니, 무뚝뚝한 아버지, 왕따와 폭행을 당했던 은재의 학창시절과, 아홉 명의 식구, 개연적으로 혹은 필연적으로 빚을 지게 된 무재의 부모, 아버지의 죽음 등이 들어 있다.

그들의 일상이 이어진다. 은교와 무재를 만나게 했던 장소, 도심에 있는 전자상가가 이야기 속에 들어온다. “가동과 나동과 다동과 라동과 마동으로 구별되는 상가는 본래 분리되어 있었던 다섯 개의 건물이었으나 사십여 년이 흐르는 동안 여기저기 개축되어서 어디가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얼핏 봐서는 알 수 없는 구조로 연결되어 있”는 그곳. (29쪽) 그 자체가 시간의 흔적이고, 그 안에 수많은 이들의 삶을 담아냈을 그곳, 전자상가의 역사가 함께 들어온다. 가족들에게 외면당한 기러기 아빠, 공사장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유곤 씨, 전구를 파는 ‘오무사’ 할아버지가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전자상가 철거가 시작된다. 그렇게 사십여 년의 시간 동안, 수많은 이들의 삶을 품어 주었을, 그 ‘시간의 흔적’을 참 쉽게도 지워버리는 철거가, 또 한 번의 쓸쓸함을 남기며 또 다른 '시간의 흔적'으로 새겨지고 있다.

“이 부근이 슬럼이래요. […] 나는 슬럼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은 있어도, 여기가 슬럼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요. […] 슬럼이라느니, 라는 말을 들으니 뭔가 억울해지는 거예요. 차라리 그냥 가난하다면 모를까. 슬럼이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치 않은 듯해서 생각을 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 언제고 밀어 버려야 할 구역인데, 누군가의 생계나 생활계, 라고 말하면 생각할 것이 너무 많으니까, 슬럼, 이라고 간단하게 정리해 버리는 것이 아닐까.”
(113-115쪽)

전자상가의 가동을 밀어내고 들어선 깔끔한 공원 벤치에 앉아 은교와 무재는 말한다. “다들 어디로 갔을까요. […] …… 어디로 갈까. ……조용하네요. 네. 예쁘네요. 예쁘지만, 이상한 기분이 드네요.” (112-117쪽)

그러나 여기에 한 번의 눈물로 타인(그들)의 불행을 쉽게 지나쳐 가게 하는 상투적 표현은 없다. 그들은 그저 담담하게 ‘자신의 그림자가 일어섰다’고, 말하자면 언제고 우리 옆에 들러붙어 있는 어둠이 결국 일어서고야 말았다고 말할 뿐. 헤어나올 수 없을 것만 같은 어둠 속을 걷고 또 걷는 그들이, 모두에게 남겨진 ‘시간의 흔적’처럼 시간을 걸어 나가고 있다. 그러므로 실컷 울고 난 후, 어렵지 않게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나는 없다. 내 옆에도 그림자(어둠)는 언제든지 달라붙어 있으니까.

그러나 삶의 어느 순간에 “달려온 방향과 가야 할 방향이 모두 어둠에 잠겨 있”을지라도, 은교의 쓸쓸함과 무재의 쓸쓸함이 만나 그랬던 것처럼, “걸어갑시다”라고 말하며 손을 이끌어주는 누군가를 만나 “어둠에 잠겼다가 불빛에 드러났다가 하며 천천히” 시간을 걸어 나가면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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