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시티를 가다> - 느리게 혹은 자연스럽게

 장정희, <슬로시티를 가다>, 휴먼앤북스, 2010


오늘도 하루를 살았다. 돌아오는 길에 지나간 시간들을 떠올려 본다. 아침에 일어나 직장에서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이 순간까지. 하루 종일 어떤 생각들이 머릿속을 휘저으며 오고가는 사이, 그렇게 또 하루는 갔고, 나는 또 하루를 살았다 되뇐다. 그러다 문득, 어제의 같은 순간을 떠올리고 나면, 몸도 마음도 피곤함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채워진 일상의 서글픔이 새삼스럽게 다시 찾아오곤 한다. “‘바쁘다’는 상대의 말에 상처받는 실업 대란의 시대, 바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과 강박증의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고, 그 시대를 빼곡히 채우는 우리의 하루가 동어반복처럼 지나간 자리에, '느림‘에 대한 바람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슬로시티를 가다>의 저자 장정희는 이 책을 소개하며, “그 (시대) 속에서 일중독자처럼 살아가던 내가 자연과 풍경 속에 가만히 나를 내려놓는 자리이”며, “느리게 걷기, 꿈꾸기, 명상하기를 중심으로 숨 가쁜 일상에 주는 바늘 틈 같은 휴식에 대한 이야기이다.” (10쪽)라고 말한다. 현직교사이기도 한 저자는 입시 경쟁에 치이는 학생들과 함께 오늘 우리사회가 요구하는 속도를 그대로 감당해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입시 지옥과 취업 경쟁을 거쳐 밥벌이의 치열함이라는 새로운 속도전에 매달려야 하는 우리의 삶이 그대로 겹쳐진다. 그러니 마침 ‘숨 가쁜 일상에 주는 바늘 틈 같은 휴식’이 필요했던 내가, 저자의 말과 글을 지도 삼아 슬로시티의 여정에 따라나선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슬로시티는 느림과 빠름, 전통과 현대, 도시와 농촌, 삶의 양과 질의 조화, 그리고 공동체를 추구하는 전 지구적인 운동이다. 1999년에 시작된 이 운동은 2010년 6월 현재 20개국 132개 도시가 가입하였고, 그중 한국도 2007년 이래 6개 슬로시티가 회원도시로 활동 중이다.”

이 책 <슬로시티를 가다>는 그 회원도시에 속해 있는 완도 청산도, 장흥 유치, 하동 악양, 신안 증도, 담양 창평에서,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숨을 고르는 저자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 안에 느리게 걷는 발걸음이 아니고서는 제대로 볼 수조차 없는 슬로시티만의 여유가 오롯이 담겨 있다. 특히 저자의 풍부한 감성과 섬세한 표현력이 만들어낸 글맛은 책을 읽는 내내 가보지 않고도 가 본 것처럼 슬로시티를 느끼게 하는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준다. 그러나 이 책의 가치는 슬로시티의 느긋한 삶이 전해주는 휴식에서 끝나지 않는다.

때로는 과거 삶의 기억과 주민들의 지나온 시간에서, 때로는 누구보다 성실하게 오늘에 이른 그들의 말 속에서, 스스로에게 되물어 봐야 할 진정한 삶에 대한 질문들이 생겨난다. “날이 저물면 밤이 오듯 그만큼의 속도로 살아온 사람들” (35쪽)과 그들의 곁에서 그 각각의 삶들을 보듬고 있는 모든 자연의 모습에서 저자를 포함한 우리는 되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모두 다 빨리빨리, 를 향해 떠나고, 느림은 제어할 수 없는 무한 천지의 외로움으로 남”아 있는지도 모르는 이 시대에 “자신을 돌아볼 최소한의 외로움도 갖지 못한 채 우리는 어디를 향해 그렇게 질주하는 것일까? 질주하다 질주하다 부딪쳐 산산조각이 나버리는 삶을 살다가 가는 것일까?" 라고.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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