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 기행> - 국가의 경계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서경식, <디아스포라 기행>, 돌베개, 2006


디아스포라, 낯선 말이다. 이 땅,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라 지금껏 살아온 나에게, 그리고 나와 같이 국가라는 개념적 틀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많은 이들에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이름을 외치며 그저 타인에 불과했던 수많은 이들이 그 이름 앞에 모여 같은 목소리를 내는 지금 같은 때라면 더더욱. 

‘디아스포라’는 원래 ‘이산’離散을 의미하는 그리스어로, 대문자로 쓰인 Diaspora는 팔레스타인 땅을 떠나 세계 각지에 거주하는 이산 유대인과 그 공동체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 많이 사용되고 있는 소문자 보통명사 diaspora는 유대인들뿐 아니라 아르메니아인, 팔레스타인인 등 ‘헤어져 흩어진’ 상태에 놓여 있는 다양한 이산 민족을 일반적으로 지칭한다. 다시 말해, 노예무역, 식민지배, 지역분쟁 및 세계대전 등 근대 역사의 상흔으로 남겨진 많은 이들의 삶 하나하나가 바로 ‘디아스포라’적인 것이며, 이렇게 본래 자기가 속해 있던 공동체와 땅을 떠나도록 강요당한 사람들 모두가 바로 디아스포라인 것이다.

식민지배와 전쟁, 익숙한 말이다. 이 땅이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갖기 전, 아직은 ‘조선’이라는 민족으로 묶여 있던 그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그리고 그 민족의 아픈 과거를 오늘날의 대한민국 역사 교과서에서 배워온 이들에게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이름을 외치지 않고도 같은 마음으로 응원하게 되는 또 다른 ‘우리’를 보게 된 지금 같은 때라면 더더욱.

그렇게 이 책, <디아스포라 기행>을 통해 낯설음과 익숙함 사이에 놓여 있는 코리언 디아스포라를  생각해본다. 재일조선인, 중국의 조선족, 스탈린 시대에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된 구소련의 고려인(카레이스키), 1960년대 당시의 서독 정부가 받아들인 이주노동자의 자손으로 현재 독일에 살고 있는 수만 명의 코리언, 그리고 국제 입양으로 해외 각지에서 살고 있는 코리언 입양자들 등. 이전까지 민족 역사의 바깥에 밀어내 두었던 또 다른 ‘우리’들의 삶을 재일조선인 서경식의 시선을 빌어 바라다본다.

“디아스포라에게는 조국(선조의 출신국), 고국(자기가 태어난 나라), 모국(현재 ‘국민’으로 속해 있는 나라)의 삼자가 분열해 있으며 그와 같은 분열이야말로 디아스포라적 삶의 특징이다. 

재일조선인에게 선조의 출신지(조국)는 조선반도, 그것도 지금과 같인 분단되기 전의 조선반도다. 그러나 재일조선인 2세, 3세가 태어난 장소(고국)는 일본이다. 그들이 ‘국민’으로서 속해 있는 나라(모국)는 한국, 일본, 북한으로 나뉘며 그들 중의 일부는 ‘조선적’이라는 사실상의 무국적 상태에 놓여 있다. 그러나 그들의 고국인 일본은 과거 그들의 조국인 조선을 식민지로 지배했으며 지금도 그 사실을 진심으로 반성하지 않고 있다. 말하자면 조국·고국·모국의 삼자가 분열해 상극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분열과 상극은 자아의 내면에까지 이르게 된다.”
(114-115쪽)

이는 과거 ‘조선’을 식민 지배했던 나라, 일본에서 그 나라의 언어를 모어로 삼아야 하는 피지배자의 민족으로, 한 사회의 소수자로 살았던 저자의 삶을 통해 그가 살면서 끊임없이 부딪혀야 했던 ‘나는 누구인가’라는 불안한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되뇌며 근대가 만들어낸 국민국가의 틀에 온전히 포섭되지 않는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이 책은 국가의 경계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그의 여행길을 따라 그의 시선에 닿은 다양한 예술작품과 사람, 그리고 장소들을 보여주며, 전 세계 수많은 디아스포라의 삶들을 경유해 결국 인간의 삶을 짓누르는 지배와 차별 그리고 억압의 체제인 정치체계를 반추할 수 있도록 만든다. 근대 국민국가의 틀로부터 내던져진 디아스포라의 삶을 통해, 전지구적 세계화의 흐름 속에 각국의 경계를 무화시키며 이곳과 저곳을 오고가는 수많은 이들의 삶과 함께 ‘근대 이후’를 살아갈 인간의 존재형식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는 한국, 북한 그리고 조선 혹은 다른 어떤 국가의 이름에 우리의 온전한 삶이 담길 수 있는가를 질문해본다.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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