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이슈와 추천도서] '대~한민국'을 외치는 6월, 그리고 역사의 기억


안녕하세요. 반디앤루니스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입니다

올해 6월은 정말 숨 가쁜 달인 것 같습니다. 역사의 기억을 안고, 오늘과 내일의 변화를 꿈꾸며 6.2 지방선거를 치러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새 온 국민이 기다려온 ‘2010 남아공 월드컵’이 다가와 있었고, 지금은 그 월드컵 열기의 한가운데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의 16강 진출을 기원하며 한여름 한낮보다 더 뜨거운 날들을 보내고 있으니 말이죠. 연일 언론에서는 그리스전에서의 유쾌한 승리와 아르헨티나전의 뼈아픈 패배를 되새기며, 앞으로 있을 나이지리아전에 대한 전망과 또 한 번의 승리를 점쳐 보고 있는데요. 한 방송사의 단독중계와 월드컵 특수를 노리는 대기업 자본의 장이 돼 버린 유쾌하지 않은 현실에도 불구하고, 축구 그 자체의 매력에 바쳐진 열정과 축제의 장으로서 월드컵 응원을 즐기는 많은 이들의 설렘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단순히 국가 간 축구대항전에 머무르지 않는 월드컵이라는 행사는 2002 한일 월드컵의 기억을 경유하며 그때 모두에게 각인되었던 색다른 경험을 오늘로 불러들이고 있습니다. 대한한국 국가대표의 경기가 있는 날, 약속한 듯 약속한 장소에 모여드는, 빨간 옷과 태극기로 무장한 행렬들, 그들이 완성하는 대규모 길거리 응원 풍경, 어디서든 들려오는 응원구호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한산한 길거리와 지하철 내부, 일면식 없는 사람들끼리의 축구와 관련된 거리낌 없는 대화 등. ‘우리가 또 언제 이토록 하나가 된 적이 있었던가.’라는 가슴 벅찬(?) 의구심을 갖게 하는 날들이 지금 이곳의 현실을 채우고 있습니다. 


■ 축구가 뭐길래 

 

따라서 2002년 그때처럼, 축구 그 자체로 향해 있는 궁금증은 8년이 지난 현재에 있어서도 여전히 유효한 물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도대체 축구가 뭐길래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을 열광시킬 수 있는 걸까요?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을 듣기 위해, 우리는 최근 민음인에서 출간한 크리스토프 바우젠바인의 <축구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참고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우선 이 책의 저자 크리스토프 바우젠바인은 역사학과 철학을 전공한 축구전문작가로서 그 자신도 축구의 열성적인 팬이라고 하는데요. 이렇듯 저자가 지니고 있는 축구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은 “축구는 더럽고 프롤레타리아적이고 비지성적이라는” 과거의 편견을 넘어서는 데 그치지 않고, 축구를 둘러싸고 있는 온갖 요소들에 대한 인문학적 통찰들을 통해, “인간 존재의 이야기에 대해 축구만큼 많은 것을 말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는 인식”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은 ‘축구’라는 경기 자체에 대해서, 축구의 역사와 그것이 지니고 있는 의미 각각에 대해서 상세하게 살펴보고 있는 (6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책의 내용을 통해  완성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스타디움, 규칙, 공, 발, 신체 등 축구를 구성하는 실제적 요소들을 설명하는 초반부를 지나, 공간, 템포, 골, 투쟁, 예술, 긴장 등 축구가 파생하는 다양한 무형의 산물들에 대한 논의로 나아가는 저자는 그라운드 밖에 존재하는 계급, 문화, 정치, 신앙, 미디어 등의 요소들까지 폭넓게 아우르며 축구에 대한 인문학적 지식의 테두리를 넓혀나갑니다.

 

 

       

 

 

이와 함께 같은 질문에서 출발하고 있는 또 다른 책, <우리는 왜 축구에 열광하는가?> 또한 해박한 축구 지식과 애정을 바탕으로 한 저자 장원재의 예리한 축구문화론을 들려주는데요. 이 책을 통해 그는 인간본성과 축구가 갖는 문화사적인 함수관계, 즉 이미 축구 자체는 현대인이 잃어버린 축제를 간직한 하나의 제의(祭儀)로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지구상 유일한 인류 공통의 놀이인 축구는 인류와 사회 통합의 마지막 수단이 될 수 있다고까지 말하며, 월드컵을 통한 축구문화사, 2002년의 뜨거운 여름에 대한 이야기를 유쾌하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더불어 이와 같은 2002년 한일 ‘월드컵 신드롬’이라는 현상에 더욱 주목한다면, 한국축구 124년사를 정리하며 한국 사회에서 축구가 갖는 사회사적 의미를 온전히 살펴보고자 하는 강준만의 <축구는 한국이다>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이 책의 제목이 그러한 것처럼, “축구가 한국이라는 건 한국이 축구를 매개로 한 정치사회적 의미 부여에 있어서 가장 뛰어난 나라라는 뜻”이라고 설명하며, 축구의 속성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한국사회의 특징들을 분석해 보여줍니다. 이에 따라 국제·국내적 갈등의 대리전쟁을 통한 카타르시스를 본질로 하는 축구와 과거 한국 축구를 키운 2대 원동력인 한일관계와 남북관계라는 키워드를 연결하여, 한국사회의 축구에 대한 열광은 아직 채워지지 못한 인정욕구(자기 존재 증명 욕구)에 축구를 축제로 즐기려는 놀이 욕망이 결합된 것이라고 파악하는데요. 게다가 이 책의 후반부는 이러한 2002 한일 ‘월드컵 신드롬’에 쏟아진 수많은 평론가들의 의견을 다양하게 제시하고 있어, 우리 스스로가 이에 대한 생각과 입장을 정리하는 데 충분한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 '대~한민국' 그리고 인민 루니

 

얼마 전 국내 언론은 북한과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보였던 인민 루니, 정대세의 눈물을 앞 다퉈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그 언론들 중에는, 천안함 사건과 관련하여 다시금 ‘냉전의 그늘’로 우리사회를 몰아넣던 언론사들도 대거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 자못 흥미롭습니다. 역시 축구는 인류와 사회통합의 마지막 수단이 될 수 있는 걸까요?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정대세의 눈물, 그것은 비단 축구에 대한 열정에 바쳐진 감동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한국 국적으로 북한대표가 된 재일조선인, 정대세라는 존재는 그 자체가 이 사회에 유령처럼 귀환하고 있는 냉전 이데올로기의 기억을 환기시키시는 동시에 그것의 상흔처럼 남겨진 수많은 경계인들, 즉 디아스포라*를 떠올리게 한다는 것입니다.   

* 대문자의 다아스포라 Diaspora라는 말은 본래 “‘이산(離散)’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이자 “팔레스타인 땅을 떠나 세계 각지에 거주하는 이산 유대인과 그 공동체를 가르키”지만 오늘날 ‘디아스포라’라는 말은 유대인뿐 아니라 아르메니아인, 팔레스타인인 등 다양한 ‘이산의 백성’을 좀더 일반적으로 지칭하는 소문자 보통명사diaspora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 서경식, <디아스포라 기행>, 돌베개, 2006, 13쪽

 

이와 관련하여 축구를 매개로 국가적 경계를 넘나드는 재일선수들과 재일축구의 역사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책, <우리가 보지 못했던 우리 선수>에는 이와 같은 디아스포라의 정체성 문제를 시사하고 있는 정대세의 말, “나의 모국은 일본이 아니에요. 일본 속에 또 하나의 나라가 있죠. 바로 ‘재일’이라는 나라예요. 북한도, 한국도, 일본도 아닌 ‘재일’이라는 나라가 나의 모국이고 재일인이라는 존재를 널리 세상을 향해 알리는 것이 제 삶의 주제가 아닐까 싶어요.”이 등장합니다.

 

 

   

 

 

이처럼 “북한도, 한국도, 일본도 아닌 ‘재일’이라는 나라”는 사실상 ‘국가’나 ‘국민’이라는 개념의 틀 바깥(외부)에 존재하는 것으로, 이에 대해서는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디아스포라’라고 명명하며 글을 시작하고 있는 서경식 선생의 책들을 참고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특히 그의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라는 책은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난 저자 자신이 그가 속해 있는 재일 조선인들에 대해, 즉 한국과 일본 어디에서도 국민이 아닌 타자(외부인)로 머무를 수밖에 없는 현실과 그것의 바탕이 되는 국가의 경계와 국민주의에 대한 예리한 분석과 논의들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이를 통해 그는 내부와 외부 사이의 차이 혹은 경계를 넘어, 그러나 “우리”라는 일체성을 무조건의 전제로 하는 곳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살고 있는 한국 사람들과 재일조선인이 서로의 “타자”성을 인정하면서 지난한 대화를 통해서 식민지 지배와 분단이라는 역사를 공유하는 “새로운 우리”, “미래의 우리”를 이루어 갈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도록 그 바탕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재일조선인에 대한 이해와 “새로운 우리”, “미래의 우리”에 대한 사고는 식민지 지배와 분단이라는 지난 역사에 대한 성찰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남북의 긴장관계가 고조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과 머지않은 시점에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이하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더욱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하는 문제의식이기도 합니다. 이에 따라 최근 출간된 역사가 강만길 선생의 자서전 <역사가의 시간>이라는 책은 1933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난 저자의 육체가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일제강점 말기와 해방 정국, 한국전쟁과 군사정권 등, 우리 현대사의 아픈 시간들을 담고 과거 역사에 대한 이해와 성찰에 또 다른 시각의 자리를 제공하고 주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이번에 바움출판사에서 출간된 <존 톨랜드의 6․25전쟁 1, 2>는 전쟁 다큐멘터리 작가인 존 톨랜드를 통해 6․25전쟁의 발발, 전개, 그리고 휴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시기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보여주고, 이를 통해 6․25전쟁의 의미와 그것의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짚어볼 수 있게 해줍니다. 또한 박태균의 <한국전쟁>은 전쟁 이데올로기의 편견을 걷어내고, 1950년부터 1953년까지 계속된 이 전쟁에 대한 객관적인 설명과 의미를 전달하여, 단지 이것이 지나간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을 외치고 있는 6월, 그 이름이 만들어낸 경계의 안과 밖 그 모두를 아우르며,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역사의 기억까지 광장으로 불러내 함께 되새길 수 있기를. 그렇게 ‘대~한민국’이라는 응원 구호가 지나온 시간과 공간의 흔적을 지운 공허한 외침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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