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헌영 평전> - 다시 보는 인물, '박헌영'

안재성, <박헌영 평전>, 실천문학사, 2009


얼마 전 안중근 의사의 100주년 기념 행사가 성대하게 열렸다. 우리 민족이라면 안중근 의사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듯 하다. 그의 영웅적인 행동과 이후 독립운동에 미친 영향을 고려할 때, 그는 100년이 아니라 천년만년 동안 우리 역사의 중요한 인물로 기억되어도 지나침이 없다. 그러나 사실상 일제 침략 36년 동안 다양한 방법으로 일제에 저항하고 그로 인해 죽음을 당하거나 긴 세월을 옥살이로 보내야 했던 사람들은 안중근 의사 이외에도 많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몇몇 독립운동가를 제외하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인물들이 더 많다는 점이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은 박헌영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박헌영은 지독한 공산주의자로 남로당의 당수였으며 한국전쟁 당시 미국의 간첩으로 활동하다 전쟁 직후 간첩혐의와 패전의 책임을 추궁당해 김일성에게 숙청당했다는 것 정도이다. 하지만 박헌영이란 인물을 단지 그 정도로만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사실 내가 책을 처음 꺼내 든 것도, 도대체 박헌영이 어떤 인물이기에 남로당의 수장이라는 중요한 직책을 맡았는지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박헌영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공산주의 이념이 들어왔을 때, 우후죽순 난립하던 공산주의 단체를 조선공산당으로 통합하고 공산주의 세력을 결집시킨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일본 총독부의 집중적인 감시를 받기 시작하면서 반복되는 옥살이를 거쳐야 했다. 또한 소련과의 핫라인을 가지고 전국적인 조선공산당을 건립하려 하였으나 늘 쫓기는 신세이다 보니 국내와 상해를 오가며 힘겹게 활동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동지들의 배신과 가족을 잃는 아픔도 겪어야 했다. 해방 후에는 다시 미군정의 탄압을 견뎌야 했고, 스탈린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김일성에게 조선공산당 일인자의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그는 테러리즘에 경도된 모험주의로는 조선의 독립을 쟁취할 수 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닫고, 조선이 일제의 침략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독립운동을 시작해야 한다고 믿었다. 고등교육을 받고 영어에 능해 해외서적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던 그는, 일본의 침략은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세계 제국주의 열강들의 식민지 경영전략에 기인한 것임을 누구보다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조선의 독립을 쟁취하는 길은 결국 세계 제국주의자들과 싸우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필연적으로 반자본주의적이었던 공산주의 이념을 선택하게 된다. 그가 태생적 공산주의자라기보다는 조국의 현실이 그를 공산주의자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에게 있어 적은 막연한 일본이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자들과 자본가들이었다. 그는 상해 임시정부를 감상주의에 빠져있고 전혀 실천적이지 못한 단체로 규정하고, 조선 독립운동을 대표할 수 있는 대표성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실제로 상해 임시정부는 윤봉길 의사와 같은 단발성 테러리즘에 대한 지원은 했지만 우리 민족을 조직화하고 단결시켜 거대 일본 제국주의와 맞설 어떠한 구체적인 활동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 박헌영은 조악하게나마 지역별 소조를 결성하고 대구와 경남 등지의 노동자를 조직해 수차례 파업을 이끄는 등 아래로부터의 독립운동을 차근차근 준비했다.

박헌영에게도 아쉬운 부분은 적지 않았다. 비록 일제 하 극심한 감시를 받고 있는 실정이라고 하더라도, 그의 활동은 다소 소극적이지 않았나 한다. 마지막으로 투옥된 후 감옥에서 나가기 위해 정신병자 행세, 즉 똥을 먹는 등의 극단적인 행동을 보여 결국 출소에 성공하지만, 정작 출소 이후에는 시골의 벽돌공장에서 일하며 총독부의 눈을 피하기에 급급했다. 이 시기가 가장 엄혹한 정세였다고는 하더라도, 해방의 기운을 감지하고 역사적 선견지명으로 건국준비위원회를 만든 여운형의 행보와는 너무나도 대조된다. 또한 지나치게 소련에 의존적인 태도를 보이며 원칙론에 빠져 조선의 상황에 어울리는 유연한 대처들을 해내지 못했다. 해방 이후에는 외세 의존적인 세력을 상대로 진정한 독립을 추구하는 세력과 통 크게 단결하지 못했다. 북한의 김일성 세력을 상대로 적극적으로 투쟁하거나 주도권 경쟁을 하지도 못했고 전쟁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통일을 모색하는 노력이 부족했다.

그런데 이런 한계를 단지 박헌영 개인의 것으로만 돌리기에는 너무 가혹한 면이 있다. 인물의 한계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근대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사회의 한계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전근대적인 잔재가 팽배하던 사회에서 어쩌면 박헌영은 너무 시대를 앞서간 근대인일 수도 있다. 많은 성과와 한계를 남기고 끝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박헌영은 누가 뭐라 해도 우리 독립운동사의 걸출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또 그런 그가 역사적으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는 것에 이견은 없으리라 본다. 21세기에도 여전히 분단되어 있는 한반도에서 피할 수 없는 이념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우리 역사의 위대한 인물들이 잊힌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또한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갉아먹는 불행이기도 하다. 부디 잊힌 인물들이 제대로 발굴되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읽히길 바란다.

저자 안재성은 <이관술 1902~1950>, <이현상 평전>에서 보여줬던 뛰어난 필력과 성실한 자료조사, 방대한 자료를 분석해내는 통찰력으로 또 하나의 작품을 완성했다. 박헌영 평전을 통해 비운의 현대사 인물들을 간간히 살펴볼 수 있는 것도 이 책을 읽는 부수적인 재미이다. <체게바라 평전>, <문익환 평전> 등 30여 권의 시리즈로 이어지고 있는 실천문학사의 역사인물찾기 시리즈도 계속되길 희망한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these18 '님은?

그는 오늘도 열여덟번째 테제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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