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천원 인생> - 우리 시대의 노동일기

안수찬 외, <4천원 인생 -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우리 시대의 노동일기>, 한겨레출판, 2010


80년대 이후 태어난 세대들은 잘 모르겠지만 과거에는 위장취업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노동자들의 권익을 신장시키기 위해 대학생이나 지식인들이 공장 등의 근로현장에 취업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노동자들에게 그들의 권리를 각성시켜 계급을 타파하겠다는 투쟁의 방법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위장취업이라는 말조차 사라졌다. 그리고 이는 그만큼 공장 노동자의 권리나 복지가 신장되어서 그렇다기보다는 공장 노동자들보다도 못한 삶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아져, 더 이상 공장으로 취직해 노조 결성을 하고 투쟁하는 것이 호응을 얻기 어려워졌기 때문인 듯하다. 오히려 요즘의 공장 노동자들은 누군가가 노조를 결성해 자신을 대신해 싸워줄 수 있는 복 받은(?) 직장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니 말이다.

<4천원 인생>은 우리 시대의 '일해도 가난한 자(working poor)'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책이다. 저자들은 어떻게 하면 그들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 대한 답을 의외로 간단하고 우직하게 해결했다. 바로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자"이다. 그들이 실제로 사는 삶을 직접 체험하고 부딪혀서 그 감상을 적자는 것이다. 그런 단순하지만 확실한 논리로 한겨레21의 기자들은 비정규직인 그들의 삶의 현장으로 직접 들어간다. 4명의 저자는 식당, 마트, 가구 공장, 조립 공장에 위장(?) 취업하여 그들의 삶에 대해 체험하고 피부로 느낀 것을 모아 책으로 냈다.

사실 나는 그들의 삶에 대해 책을 읽지 않아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과거 나의 어머니께서는 공장에 나가서 하루 종일 뼈 빠지게 일하시고 집에 돌아와 아무런 불평도 없이 집안일을 모두 해내셨으며, 숫한 야근에도 피곤하다는 내색 한 번 없이 이겨내셨던 노동자였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아르바이트로 공장에서 하루 종일 일하며 노동에 의한 허기가 무엇인지 뼈저리게 느껴봤기 때문에 노동자의 하루가 얼마나 길고, 고단한 것인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때의 어머니와 나에게는 그래도 지금의 노동자들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어머니에게는 그래도 자식 하나 대학에 보내면 자식이 마음 편히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고, 나에게는 힘들어도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학교에 돌아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세대는 어떤가? 내 세대가 사교육 없이도 대학에 입학해서 사회에서 자리 잡을 수 있었다면 지금은 사교육 없이는 어디 변변한 대학에 입학조차 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아니 웬만큼 변변한 대학을 나와서는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에 웬만한 대학 같은 경우 보내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의 시대이다. 그렇기에 제대로 된 사교육을 시킬 수 없는 가난한 노동자들은 영원히 가난할 수밖에 없다. 이제 노동자가 꿈꿀 밝은 미래는 없다.

많은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자들이 교육을 통해 자신과 같은 높은 정신 수준에 오를 수 있기 때문에 사회주의적 유토피아는 이루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계처럼 혹사되는 이들에게 정치와 사상 그리고 이념을 이야기한들 그들이 과연 이해나 할 수 있을까? 항상 자신이 가진 자라고 착각하는 불쌍한 작업 반장이 읊조리는 보수의 이야기가 진리인 양 세뇌되는 이들이 과연 제대로 된 정치관을 가질 수 있을까? 매일 배운 것 없는 노동자들끼리 가진 자들이 주입시켜 놓은 보수 신문 기사에 영향을 받아 서로를 보수화시키고 있지는 않은가? 가진 자들의 부조리에 대해서 논하고, 가난한 자를 위한다는 정치인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면, 오히려 착취당하고 있는 계급에서 엄청난 반발이 튀어나오는 이런 아이러니를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한다는 말인가.

일본의 사회학자 미우라 아츠시가 <하류사회>에서 지적한 것처럼 양극화는 점차로 심해져 과거와 같은 신데렐라 스토리는 더 이상 없다. 하류와 상류는 아예 지역적으로 갈라지기에 이제는 만날 일조차 없는데 어떻게 신데렐라 스토리가 생기겠는가. 양극화된 계층이 만나는 유일한 창구인 서비스 현장에서 상류층 사람들은 하류층 사람들을 마치 투명인간인 것처럼 대한다. 자신과 다른 계층인 사람들에게 상류층은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그것이 작금의 현실인 것이다.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정치가 바뀌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도 노동자를 진정으로 위할 수 있는 정치인에게 표를 주기를 주저한다. 그게 누가되었든 정치인들은 다 똑같다는 이유이거나 뽑혀도 워낙 소수라서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 때문에 말이다. 하지만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고 그 영향이 미약할지라도 시작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 시작마저 주저하고 있는 것이다.

지방 선거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제발 이번에 뽑히는 시장, 구청장, 교육감은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노동자 계층의 현실을 진정성 있게 고민해줬으면 좋겠다. 지지기반의 부재 때문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미루는 과오 없이 "저 사람 꼴통이다. 불도저처럼 밀어붙인다"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노동자들의 권익을 신장시켰으면 한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Twinsen'은?

현실이라는 무덤에 잠든 이상주의자 Twinsen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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