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같은 글쓰기> - 글을 '쓰고' 글을 '살다'

아니 에르노, <칼 같은 글쓰기>, 문학동네, 2005


맨 처음 아니 에르노의 글쓰기를 접했을 때 당황했었던 경험이 있다. 오직 자신의 체험만을 쓴다는 소설가라니. 모든 글에는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녹아있게 마련이라고 생각했으면서도, 그리고 어떤 소설을 읽을 때 나도 모르게 작가의 자전적 경험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나도 모르게 품으면서도, 나는 그러한 글쓰기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어떤 당돌함을 느꼈던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나 자신에게는 가능하지 않은 일을 하는 작가에 대한 존경이었을 수도 있다. 자신의 말하기 힘든 부분까지 글로써 표현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나는 감히 상상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칼 같은 글쓰기>는 아니 에르노의 글쓰기와 그러한 글쓰기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에 대한 대담집이다. 평론가이자 작가인 프레데리크 이브 자네는 이메일을 통해 점진적으로 아니 에르노의 글쓰기에 접근해 나간다.

아니 에르노는 자신의 두 개의 글쓰기 방식이 일기쓰기와 계획된 텍스트라 말한다. 계획된 텍스트는 우리가 그녀의 자전적 이야기로 알고 있는 글들이다. 그녀는 그것들이 자신이 실제로 경험한 것에 토대를 두고 있지만 자전적 이야기에 우리가 흔히 부여하는 이미지, ‘작가 자신의 이야기’라는 어떤 고정된 이미지에 우려를 표시한다. 그녀는 그러한 글들이 자신에 대한 발견이 아니라 보다 일반화되고 보편적인 것에 대한 분석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나는 그녀의 대답들을 읽어 내려가면서 내가 그동안 그녀의 글들에 대해 품은 오해가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동안 그녀의 글들을 단순히 자신의 삶을 폭로하듯 써내려간 일기로 치부해 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세상 모든 사람들처럼 한 가지 독특한 방법으로 사물을 경험한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보편적인 방법으로 그리고 싶다.”
p.57

그녀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글쓰기는 자신의 경험과 생각들을 타인 속에 용해시키는 것이다. 거리두기를 통해 객관화시키거나 가장 정확한 단어와 문장을 찾아냄으로써 그녀는 그러한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열망을 실현하고자 하는 듯이 보인다. 글쓰기의 가장 강렬한 기쁨을 자신이 쓴 글을 읽는 누군가가 바로 자신의 이야기를 읽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녀. 결국 그녀의 글쓰기는 (흔히 그녀에 관해 알고 있는 많은 독자들이 하는 오해처럼)자기 자신의 삶에 대한 은밀한 '기록'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모습에 대한 치열한 '탐구'인 셈이다.

수치심을 불러 일으켰던 출신계층, 그리고 교직 생활을 통한 계층의 이동, 낙태라는 여성적 경험 같은 일련의 일들을 글 속에 담아내면서 그녀는 자신의 글들이 단순히 그녀 개인의 내밀한 것이 될 수 없음을 말한다. 글쓰기는 그녀가 겪었던 그러한 삶의 리얼리티를 드러내는 작업이 되었고 그것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성격을 자연스럽게 표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출신계급을 변절한 데서 오는 죄책감, 여자라는 조건에 주어지는 사회적 무게는 그녀에게 글을 쓰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그 무엇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녀의 글들이 언론과 비평가들을 아주 불편하게 한다는 사실을 얼핏 알고 있었지만 이번 대담집을 통해 그들(대부분 남성)이 그녀에게 들이댄 잣대가 얼마나 폭력적이고 이중적인지를 새삼 알게 되었다. 언론들과 비평가들은 그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소재와 글쓰기의 방식에 ‘여성’이라는 꼬리표를 들이댐으로써 그녀의 말대로 “아주 부당한 이중적 비방”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그녀가 토로하는 것처럼 이런 일들이 남성 작가라면 가능했을까? 문학의 장 내부에서 일어나는 성 투쟁에 대한 그녀의 언급을 그냥 공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이유다.  

“다른 영역과 마찬가지로 문학의 장 내부에서도 성 투쟁이 일어나고 있으며, 나는 일명 ‘여성적 글쓰기’나 여성들의 글쓰기가 가지고 있는 대담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문학에 접근하는 현상에 대한 남성들의 무의식적 전략이자 그동안 있어온 수많은 전략의 연장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자신들이 ‘여성적’이라는 형용사의 수식을 받지 않는 그 자체로서의 ‘문학’을 장악함으로써 여성들을 배제시키려는 것이죠.”
p.137

나는 그들의 대화가 깊어질수록(물론 한 사람은 전적으로 질문만을 하고 있지만) 내가 오해하고 있었던 아니 에르노의 글쓰기와 글쓰기의 방식에 대해 점점 더 깊이 빠져 들어갔다는 것을 말해야겠다. “삶과 글쓰기라는 두 차원을 동시에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그녀. “글쓰기 이전에는 현장에 없던 것을 발견하는 것, 바로 거기에 글쓰기의 희열이 있다.”고 말하는 그녀. 위험하지만 그만둘 수 없는 어떤 일종의 사명처럼 가능한 더 멀리 나아가야 하는 임무를 짊어진 것처럼 글쓰기를 생각한다는 그녀. 그녀는 ‘글을 쓰고’ 그렇게 쓰여진 ‘책들을 살고’ 있다. “오직 삶만이 있는 삶, 그 삶은 충분하지 않기”에.

칼 같은 글쓰기. 그녀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그녀의 글들은 칼 같다. 자신의 삶에서 가차 없이 끄집어내는 그 무엇들에 나는 자꾸만 아프다고 느낀다. 나는 그 칼이 그녀에게로 향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로 향하고 있다는 생각에 아픈 것이다. 내 삶 속의 어떤 조건들을 그녀가 주저 없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그녀의 소설들이 닿아 있는 어떤 진실들 때문에.

오늘의 책을 리뷰한 '아린'님은?

『독서일기』의 저자 알베르토 망구엘처럼 열정적인 독서가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고, 미국의 대표적인 서평가 마이클 더다처럼 그동안 읽어온 책으로 자서전을 쓰고 싶다. 서점에서 새로 나온 책을 처음으로 만나게 될 때나 고요한 도서관 서가를 누비며 알지 못했던 책을 만나는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그렇게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듯, 책 속으로 걸어 들어가 잠시 현실을 잊는 것을 좋아한다. 책을 사거나 읽는 방법 대신, 언젠가 내가 한 권의 책의 주인공이 되는 일을 꿈꾸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가장 멋진 도피처를 제공해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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