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와 추천도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안녕하세요. 반디앤루니스 북에디터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입니다.

지난 11일, 우리는 법정 스님의 갑작스러운 입적 소식과 함께 세상에 남기신 마지막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스님의 말씀은 그간의 글이 전하는 뜻, 그대로였는데요.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어떤 장례의식도 치르지 말고,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게 본인의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그렇게 법정 스님은 이생의 “시간과 공간을 버리”고, 저생의 “우뢰와 같은 침묵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아무것도 갖지 않았던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 내려놓음과 비움이 가져다주는 충만으로 자신을 채우고, 『아름다운 마무리』 그 책이 담고 있는 생각을, 읽지 않아도 볼 수 있게 해주고 가셨습니다. 

아름다운 마무리 숫타니파타 만다라화

“집착 없이 세상을 걸어가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자기를 다스릴 줄 아는 사람/ 모든 속박을 끊고/ 괴로움과 욕망이 없는 사람/ 미움과 잡념과 번뇌를 벗어 던지고/ 맑게 살아가는 사람/ 거짓도 없고 자만심도 없고/ 어떤 것을 내것이라 집착하지도 않는 사람/ 이미 강을 건너 물살에 휩쓸리지 않는 사람/ 이 세상이나 저 세상이나 어떤 세상에 있어서도/ 삶과 죽음에 집착이 없는 사람/ 모든 욕망을 버리고 집 없이 다니며/ 다섯 가지 감각을 안정시켜/ 달이 월식에서 벗어나듯이 붙들리지 않는 사람/ 모든 의심을 넘어선 사람/ 자기를 의지처로 하여 세상을 다니고/ 모든 일로부터 벗어난 사람/ 이것이 마지막 생이고 더 이상 태어남이 없는 사람/ 고요한 마음을 즐기고/ 생각이 깊고/ 언제 어디서나 깨어 있는 사람” (『숫타니파타』, 490-503)

그 사람이 바로 법정스님이셨습니다. 

그러나 저를 포함한 많은 이들은 여전히 ‘보길’ 원하고 '갖길' 갈망합니다. 몸소 보여주신 스님의 생각이 언제나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도록 해줄 것만 같은 그 ‘책’들을 원합니다. 그리하여 결국 우리는 스님의 마지막 말씀을 거스르는 욕망을 갖게 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스님 자신은 훌훌 털어 버리고 떠나신 이생의 ‘시간과 공간’, 그 흔적인 말의 기록을 소유하기 위해, 우리는 너도 나도 할 거 없이 『무소유』를 소유하려고 하니 말입니다. 그래서 법정스님 입적하신 뒤, 스님의 저서들이 ‘품절’, ‘절판’, ‘판매중지’가 되고, 책을 구하지 못한 독자들의 발걸음이 헌책방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이겠죠.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무소유』를 읽는다 하여, 무소유할 수 있는 게 아니며, 『무소유』를 소유한다 해서 진실로 무소유가 내것이 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는 게, 바로 오늘의 우리이니까요.

그러니 우리가 먼저 보아야 하는 것은 ‘무소유’가 아닌 ‘소유’의 맨얼굴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책을 소유하고 싶은 마음, 그 욕망의 얼굴을 제대로 보아야지만 우리가 그토록 소유하고자 하는 ‘무소유의 정신’이 책에 갇혀 있기를 그만두고 인간의 현실인 '여기'로 나올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시인 최기종은 「입산」이라는 시를 통해 온갖 물질욕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산', 그 속에서조차 어쩔 수 없이 드러나고 마는 욕심과 욕망의 얼굴을 보여줍니다.  

「입산」

바랑 메고 흥얼거리면서 산사람처럼 그렇게 승달산에 들었지. 산나물 같은 것 가득이나 뜯어서 이나저나 나눠준다고 반찬거리 장만한다고 욕심이나 부렸지.

욕심이나 부리면서 취나물 뜯으려니 취나물이 안 보이고 드릅이나 따려니 드릅도 안 보이고 고사리나 꺾으려니 고사리도 안 보이고 빈 바랑 그대로 산등성이 올라갔지.

욕심이나 버리면서 취나물 뜯으려니 드릅이나 보이고 드릅이나 따려니 고사리만 보이고 고사리나 꺾으려니 취나물만 보이고 빈 바랑 그대로 산등성이 내려왔지. 

- 최기종, 『만다라화』, 도서출판 화남, 2009, 78쪽  

문득 “색즉시공 공즉시색 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는 문구가 떠오릅니다. 코미디 영화의 제목으로 더 유명한 “색즉시공(色卽是空)”은 《반야바라밀다심경》의 첫 구절에 나오는 말로, 색(色 - 모든 외형을 지닌 사물 혹은 물질적인 대상)은 모두 공(空)에 불과하며, 공(空) 또한 역시 유형(有形)의 사물인 색(色)과 다를 바 없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흔히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유형의 대상은, 기실 이것과 저것 사이의 인과(因果)로 복잡하게 얽혀 있어 그때그때 변하기 마련이며, 그렇기 때문에 고정성 없이 언제나 다른 것으로 변하는 이와 같은 대상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반야바라밀다신경 잡아함경

하지만 소중한 사람을 잃은 우리에게 어쩔 수 없이 먼저 찾아오는 것은 ‘사람도 언제고 떠나기 마련’이라는 생각이 아니라 그 이별을 아쉬워하고 슬퍼하는 인간적인 감정입니다. 그렇게 어느 때고 먼저 찾아와 오래도록 머물며 우리를 놓아주지 않는 그 마음과 감정이 우리를 또한 사람답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볼 수 없는 존재(법정스님)의 상실로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에게, '절판'이라는 스님의 다짐은 또 다른 상실의 가능성으로 다가와, 소유의 쾌락보다 상실의 슬픔을 감하고자 하는 이들의 욕망을 건드려 ‘품절’이라는 오늘의 현실을 낳은 게 아닐까 합니다. 그렇게 아쉬움과 슬픔을 피하려는 평범한 우리네의 욕망이 『무소유』에 대한 소유욕으로 줄달음치고, 절판이나 품절로 인해 소유하지 못했다는 박탈감은 다시 아쉬움과 안타까움이라는 고통으로 이어지는 게 아닐 런지요. 

이런 우리에게 부처님(혹은 법정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 같습니다. 

부처님의 죽음이 가까워지자 부처님을 시봉했던 제자 아난이 제일 슬피 울었습니다.
“부처님이 돌아가시면 저희는 누구를 의지하고 살라는 것입니까.”
그러자 부처님은 아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를 의지했더냐? 세상에 의지할 것이란 아무 것도 없다. 무엇에고 의지하는 자는 의지처가 사라지면 자신도 무너지느니라. 앞으로 자기 자신을 의지처로 삼고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아 그 불빛으로 자신의 길을 비추며 가도록 하여라.”   - 불교경전 ≪잡아함경≫

- 빛담이, 『길-10人의 포토에세이·길을 이야기하다』, 라이프플러스, 2010, 26쪽 

또한 불교의 최초 경전인 『숫타니파타』는 “욕망은 실로 그 빛깔이 곱고 감미로우며 우리를 즐겁게 한다. 그러나 한편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 마음을 어지럽힌다. 욕망의 대상에는 이러한 근심 걱정이 있는 것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것이 내게는 재앙이고 종기이고 화이며, 질병이고 화살이고 공포이다. 이렇듯 모든 욕망의 대상에는 그와 같은 두려움이 있는 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고 일러줍니다. (29-30쪽)  

따라서 이 말은 또한, 오늘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욕망, 즉 법정스님의 책에 대한 소유욕으로 향해 갑니다. “만일 그대가 지혜롭고 성실하고 예의 바르고 현명한 동반자를 얻었다면 어떠한 난관도 극복하리니, 기쁜 마음으로 생각을 가다듬고 그와 함께 가라.” (28쪽) 우리는 지혜롭고 현명한 동반자, 법정스님의 책을 얻어 그와 함께 가고자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를 통해 얻어야 하는 있는 것은 고통스럽고 힘겨운 삶의 절대적인 의지처가 아니라, 이로써 진정한 자신을 발견할 힘을 얻어, '여기' 우리가 딛고 서 있는 이 땅의 현실, 그 각각의 삶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는 최근에 출간된 『법정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에서 스님이 말씀하신 “우리가 책을 대할 때는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자신을 읽는 일로 이어져야 하고, 잠든 영혼을 일깨워 보다 값있는 삶으로 눈을 떠야 한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펼쳐 보아도 한 글자 없지만 항상 환한 빛을 발하고 있는 그런 책까지도 읽을 수 있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라는 말의 의미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책은 언제나 우리의 인생길을 밝혀주는 지혜롭고 현명한 동반자이며, 친구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친구를 좋아한 나머지 마음이 거기 얽매이게 되면 본래의 뜻을 잃”게 됩니다. 따라서 “가까이 사귀면 그렇게 될 것을 미리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하는 것이겠지요. 그러니 모든 책을 대해는 우리의 태도 또한 스스로 그렇게 길에 나 있는 들꽃을 보는 것과 같아야 하지 않을까요?  

「들꽃 · 2」 

혹시 아깝다고
소유하려고 꺽지 마라.
꺾으면 빨리 시든다.
탐스런 모란이 식상하다고
네 정원으로 옮기지 마라.
구중궁궐, 호강이 두렵구나.

비바람 맞으면서 이렇게 헐맺은 봉오리
누구에게 눈길 끌려고
피어나지 않는다.
불쌍타고 웃거름 주지 마라.
봄날 꿈자리만 사납구나.

무풍지대 한적한 곳에서
이렇게 찢어지는 아픔으로
홀로 피어나는 것은
나를 위해서도 한 조각
하늘이 있기 때문이다.
나를 위해서도 한 뙤기
땅심이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 어디에서나
이렇게 저렇게 피어나는 꽃이라면
저마다 완성된 얼굴이고
나도 그런 꽃 중의 하나구나.
이름 없는 들녘에서 살다가
흔적 없이 스러지는 것을
안타까워하지 않는다. 

- 최기종, 같은 책, 98-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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