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목소리 - 나만의 미술관을 찾아서

나만의 미술관을 찾아서...

아침 일찍 전철에 오른다. 오늘은 회사가 아닌 미술관을 찾아서. CD 플레이어의 ‘PLAY’ 버튼을 누르고, 가방에서 책 한 권을 꺼낸다. <그림의 목소리>. 이 책이 오늘 찾는 미술관이다. 맞게 찾아왔나 표지를 본다. 한 젊은 남자와 눈이 마주친다.(산드로 보티첼리, ‘젊은이의 초상’) 뚜렷한 이목구비, 갈색 눈에 꾹 다문 입이 인상적인 남자가 말을 건넨다. “‘그림이 들려주는 슬프고 에로틱한 이야기’를 원하세요?” “네” “그럼 책장을 넘기세요. 오늘 당신을 안내할 사람은 ‘사이드’입니다. 저는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책장을 넘기자 젊은 남자는 어디론가 사라진다.

미술관에서 누군가의 안내를 받은 적이 있었던가. 안내자가 보이지 않는다. 주변을 둘러보니, 벽 스피커에서 방송이 나오기 시작한다. “좋은 아침입니다. 미술관을 찾기에는 이른 시간이지만, 그림을 만나는데 정해진 때는 없죠. 좋습니다. 이제 시작하죠.” 목소리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용기를 내서 물어본다. 무지가 죄는 아니니까. “누구시죠?” “아, 저는 시인이자 인권운동가 사이드입니다. 오랜 기간 미술에 대해 글을 써왔죠. 작품을 해석하려고 하지는 않아요. 인물이나 풍경, 색채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을 뿐이죠.” “그게 무슨 말...?” “너무 궁금해 할 필요 없습니다. 당신은 그림을 만나러온 거지, 절 만나러 온건 아니니까요. 먼저 ‘그림이 말하다’쪽으로 가시죠.”

안내자, 사랑에 아픈 여인이 되다

안내자는 상상력이 풍부하다.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에드워드 호퍼), ‘황홀경에 빠진 마리아막달레나’(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십자가 처형’(프랜시스 베이컨), ‘살로메’(파블로 피카소) 등 수많은 작품을 얘기하는데, 일반적인 해석인 아닌, 지극히 주관적이면서도 매혹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안내자는 마리아막달레나가 되어 자신이 느낀 황홀경과 그런 자신을 버린 남자 이야기를 들려주고, 살로메가 되어 발가벗은 자신을 바라보는 헤로데스 왕과 요한의 시선을 즐긴다. 또 얀 페르메이르의 ‘뚜쟁이’ 앞에서는 음탕한 눈빛의 병사에 몸을 맡기는 여인이 되기도 한다.

사랑을 위한 표를 가지고 그 병사는 내게 다가왔다. 사랑하는 연인이나 매춘부에게 어울리는 그런 모습으로. 그래. 난 두 가지 모두를 원한다. 게으른 하인보다는 그게 낫다. 난 음탕한 것 역시 좋아한다. 내가 젖 짜는 소녀라면 어느 누구와도 거칠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돈도 지불하지 않고서도 말이다. 차라리 지붕 꼭대기나 골목길에서.(p 83, '사랑을 위한 표')

얼마의 시간이 지나 앞서 만났던 젊은 남자를 앞에 선다. 이번에도 그가 먼저 말을 건다.  “즐거우신가요?” “네, 즐겁습니다. 안내자가 재밌고, 친절하네요.” 안내자는 작가들의 삶과 그들 작품의 특성도 빼먹지 않고 얘기해준다. “제가 더 재미있게 보는 법을 알려드릴까요?” “네.” “안내자의 얘기를 듣기 전에 먼저 얘기를 직접 만들어보세요.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상관없습니다. 그림을 뚫어져라 쳐다봐도 되고, 거꾸로 뒤집어 봐도 됩니다. 이 미술관은 당신 거니까요.”

속옷 잃은 헐크와 투쟁하는 거인

주위를 둘러보니 정말 아무도 없다. 젊은 남자의 말을 곱씹어 본다. 그래, ‘거인’(프란시프코 데 고야)을 만났을 때 그를 절대 찢어지지 않는 바지를 잃어버린 헐크쯤으로 생각했지. 그런데 안내자는 이 거인이 한 때 ‘자연, 자유, 왕, 심지어 신까지 정복을 하려고 했던 이’라고 귀뜸해준다. 이제는 홀로 쓸쓸히 앉아 자신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속옷을 잃어버린 헐크와 자기와 투쟁을 벌이는 거인, 차이가 좀 있네. 그런데 그 차이가 불쾌하지 않다. 틈이 있어야 빛이 들어오고,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니까. 안내자와의 신경전도 즐겁다. 또 마그리트는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사람은 자신의 선호를 넘어설 수 없다고 하지 않았나.

그림을 코앞까지 당겨, 전후좌우 살펴 보니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또 혼자 이야기를 만들어 보니, 그 재미도 쏠쏠하다. ‘살인자’(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를 보고는 ‘바람핀 아내가 남편한테 걸리는 장면’이라 상상한다. 음, 아무래도 내가 ‘사랑과 전쟁’을 너무 많이 본 모양이다.


반 고흐, 슬픔을 말하다


‘그림의 목소리’에서 ‘화가가 말하다’로 넘어갈 무렵, 종소리가 들려온다. “이건 무슨 소리죠?” “그림 감상을 중단해야 한다는 종입니다.” “무슨 말이에요? 젊은 남자가 이 미술관은 내 것이고, 내가 원하면 얼마든지 볼 수 있다고 했단 말이에요.” “전철 갈아타셔야죠.” “아!” 아침부터 인천 앞바다를 볼 수는 없다. 내려야 한다. 다음 얘기가 궁금하다. 그래서 전철을 내리기 전 묻는다. “‘화가가 말하다’에선 어떤 이야기가 나오나요” “지금까지 제가 그림 속 주인공이었다면, 거기선 화가가 됩니다. 창조자인 셈이죠. 사실, 제가 미술관 관장입니다.” “조금이라도 먼저 보여주시면 안 되나요?” “지금 시간이 허락한다면....” 그렇게 두 정거장을 더 간다. 그리고 빈센트 반 고흐의 ‘슬픔’을 들었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건 어느 카페였다. 그녀는 축 쳐진 가슴을 팔고 있었다. 그 무렵 난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때 그녀가 나타났다. 마치 나의 결심을 증명이라도 해주듯. 그 무렵 난 이미 내 상상 속의 노란 집에 살고 있었다. 이웃 사람들은 날 좋아하지 않았고, 내 색채들을 싫어했고, 그녀도 싫어했다. 그녀는 몹시 시들고 수척했다. 그녀는 못생기고 흉측했지만 나의 일부분처럼 느껴졌다. 그녀와 나는 2년 동안 함께 살았다. 그리고 그녀가 날 떠났다. (p 118, '그녀는 못 생기고 흉측했지만 나에게는 꼭 어울렸다')

고흐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이제는 진짜 내려야할 때다. 미술관을 ‘덮고’, 열심히 달린다. 수많은 사람들을 뒤로하며 달리니 등줄기에 땀이 베어난다. 지상으로 나온다. ‘다행이 버스가 출발하지 않았군.’ 한 시간 남짓한 미술관 여행. 그림이 있고, (상상력이 풍부하고, 친절하며, 에로틱한) 안내자가 있어 유쾌한 시간이다. 미술관을 나온 지금도 ‘그림의 목소리’는 생생하다. 반디(ak2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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