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번영> - 번영하셨습니까? 아니면 불안하십니까

이찬근, <불안한 번영>, 부키, 2009

얼마 전 친구를 만났다. 무슨 낙으로 사냐고 물었다. 주식하는 재미가 쏠쏠하단다. 친구는 수퍼개미가 될 생각도, 일확천금을 거머쥘 욕심도 없다. 다만 주식을 통해 바라본, 유기적으로 돌아가는 세상이 재밌다고 한다. 그리고는 미국발 금융위기가 발생하고 반값으로 뚝 떨어진 주식 얘기를 했다. 순간 그의 얼굴에 고된 시련을 겪고 도를 깨우친 이의 표정이 스쳐지나갔다. “눈앞이 캄캄하더라고.” 재테크와 거리가 멀었던지라 서브프라임 사태가 얼마나 큰일인지 실감이 안 났었다. 하지만 친구의 표정을 보며 많은 사람이 흘렸을 피눈물을 상상할 수 있었다.

이찬근 교수가 쓴 <불안한 번영>은 바로 그 금융위기에서 시작한다. 서브프라임 대출은 무엇이고 이 사태가 왜 발생했는가. 서브프라임 사태는, 매우 간단히 말하자면, 고도로 발전한 금융경제 기술과 ‘부동산 불패신화’가 만들어 낸 괴물이다. 먼저 대출기관은 주택을 담보로 신용등급이 낮은 ‘닌자’(NINJA: No Income, No Job, No Asset)들에게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서브프라임 대출을 해준다. 당시 미국 경제는 호황이었기에 만에 하나 돈을 갚지 못하더라도 집을 차압, 처분해버리면 그만이다. (이때 신용등급이 좋은 사람들도 무리하게 서브프라임 대출을 이용 더 큰 집을 산다.)

이후 대출기관과 투자은행 사이에서 마법이 벌어진다. 대출기관은 대출채권을 투자은행에 팔아 중간 마진을 얻고, 투자은행은 대출채권을 수천, 수만 개 단위로 묶어 패키지를 만들어 세계 시장의 투자자들에게 판매한다. 이렇게 유동화 증권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서브 프라임 대출로 만들어진 대출채권이 어디로 갔는지 행방을 찾기는 힘들다. 2001년 이후 전체 주택자금 대출 중 서브프라임 대출은 15% 안팎으로 낮았고, 또 그게 아주 잘게 쪼개져 숨어버린 탓이다. 그런데 2003년 1%였던 기준금리가 2006년 5.25%까지 상승했고, 이자 폭탄을 맞은 차입자들은 채무불이행 상황에 빠졌다. 대출기관-투자은행-투자자간에는 신용경색이 일어나 돈줄이 막혔고, 결국 실물경제에까지 큰 타격을 주게 됐다.

이번 금융위기는 1930년 세계 경제대공황 이후 가장 큰 자본주의의 위기라 평가된다. 그렇다면 이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금융 규제를 통해 ‘불안한 번영’을 집어 치우고 번영은 아니더라도 덜 불안한 삶을 추구해야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저자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한다. 금융경제가 다시 제 궤도를 찾을 수 있게 틀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지만 그것이 규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세계 경제를 파탄으로 내몰고도 천문학적인 보너스를 받는 사람들의 엉덩짝도 쳐주고 싶지만, 섣부를 규제는 심각한 신용경색을 일으켜 실물경제에 더 큰 위협으로 작용할 수 있다. (얼마 전 오바마 대통령이 대형 은행에 대한 규제에 대한 언급을 했을 때 전 세계 주가가 일제히 하락했다.)

거대한 개인의 시대

이런 주장은 얼핏 신자유주의에 경도된 무책임한 주장으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5대 95’의 부유층과 빈곤층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자본, 주주 우위의 경제가 노동자들에게는 결코 반갑지 않다는 것을…. 그는 1997년 IMF 사태 이후 금융노조 산하 금융경제연구소, 투기자본감시센터에서 신자유주의를 누구보다 비판했던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선택은 시장경제의 활동성이 최고조에 이를 수 있는 세계화와 자유화이다. 역사상 단 한 번도 도달하지 못했던 ‘100% 자유’에 대한 동경 때문일까? 중요한 건, 어느새 자본주의형 인간형으로 변해버린 우리가 그의 논리를 쉽게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 정치의 본분은 바로 여기에 있다. 개인이 스스로 삶의 공간을 개척하고 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법률, 의료, 교육, 금융 등 사회적 공통자본을 정비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획일적인 특성이 강한 교육과 금융을 중층화하고, 다양성이 살아 숨 쉬는 생태계로 바꾸는 것은 자조‧자율‧자립의 개인주의를 고양함으로써 개인 경쟁력으로 승부하는 시대를 여는 데 꼭 필요하다. (…) 이제 정치는 과거 지향적, 국내 지향적, 계급 지향적 권력투쟁이라는 협소한 구도에서 벗어나 시대의 조건을 읽고 새로운 지평을 열어야 한다. 거대한 정부의 시대를 끝내고, 거대한 자본에 대한 향수를 접고, ‘거대한 개인’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362쪽)

<불안한 번영>은 분명, 지극히 개인적으로, 이전에 선호했던 경제학자들의 것과는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전 세계를 아우르는 현상 분석과 다층적인 논리 전개, 그리고 진정성 담긴 논조 등은 책에 푹 빠져들게 만든다. 역시 경제학의 세계는 넓고도 재밌다. 책을 덮으면서 장하준 교수와 이찬근 교수가 ‘한 판’ 붙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두 교수 모두 도서출판 부키에서 책을 냈다. 이 정도 인연이면 한 번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두 경제학자가 펼치는 설전이 무협소설의 고수들이 펼치는 싸움보다 더 재밌을 것 같다. 장풍은 누가 먼저 쏠까?           

                                                                                                                                             -반디(ak2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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