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생태 박물관 2> - 잠시 쉬었다 가세요!

 

박영현 외, <살아 있는 생태 박물관 2>, 채우리, 2009


길 위에서 잠깐 멈춤

저는 지금 길 위에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스쳐지나가요. 저도 똑같이 그들을 지나쳐가죠.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멈추는 일 없이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네요. 그렇지만 이 길이 끝나는 어딘가에서 저는 멈춰 설 거예요. 사람을 마음에 담기 위해서는 멈춰 서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그런데 제가 걷고 있는 길 위에서 잠시 설 수 있는 시간을 만나기는 쉽지 않아요. 있다 해도 그곳이 의미로 남는 일은 일어나기 어렵죠. 쇼윈도의 화려함에 빼앗긴 마음은 아주 잠깐 저를 즐겁게 한 후 미련 없이 떠나가 버리거든요. 그러고 보니 소유를 향한 마음은 금세 변심해버리는 변덕쟁이 같네요. 그래서 오늘은 쉽게 변하지 않는 마음을 담아보려고 해요. 지금 길 위에 멈춰 서 있는 건 제 자신밖에 없는 것 같아서, 제 마음 안으로 들어가 멈춰 있는 시간을 불러내 보려고요.

멈춰있는 시간이 주는 그리움

자꾸만 변하는 마음에 질려버린 저는, 오래 묵혀두었지만 여전히 처음 모습 그대로인 어떤 향기를 떠올려요. 고교시절 봄이 되면 교실 안으로 슬그머니 들어와 자신을 알리던 라일락 향기. 그때 전, 선생님의 말씀 대신 라일락 향기를 마음에 담았나 봐요. 잠깐 동안 멈춰 서 있었던 시간의 향기가 이토록 오래 남아 있는 걸 보면요. <우리 식물 이야기>를 보고 알았는데, 라일락에게는 좋은 향기만큼이나 아름다운 우리말 이름이 있대요. 수수꽃다리. “수수꽃다리는 향기가 아주 풍부해서 동네에 한 그루만 있어도 좋은 향기가 오랫동안 이어” (94쪽)진다고 해요. 그래서 “옛날엔 이 꽃이 피면 따서 말려 방안에 은은한 향기가 나게 했고, 여자들은 몸에 가지고 다니기도 했고, 서양에서는 이 꽃을 개량하여 향수를 만드는 원료로 쓴” (95쪽)다네요. 그래서 제 기억도 이렇게 오래 남아 있는 걸까요?
 


 

잠깐 멈춰 섰을 뿐인데 그 시간 속에서 저는, 어린 날의 어느 순간과 아직 오지 않은 봄날을 함께 만나요. 마치 한 곳에 잠자코 머물러 여러 해의 시간을 보아왔던 식물의 기억이 저에게 온전히 전해진 것처럼요. 악을 쓰고 기억하려던 마음도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고, 서로에게서 지워지는 게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그렇게 지워지지 않은 식물의 기억은 그 자체로 그리움이 되네요. 사람들이 뭔가를 잊어버리는 것은 자꾸 움직이기 때문인가 봐요. 그래서 어느 시절 어떤 기억이 잠자코 머물러 있는 수면의 시간에 찾아오는 거 아닐까요? 잠깐씩은 잠을 자지 않고도 멈춰 서 있는 시간을 즐기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우리 식물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 잠시 쉬었다 가요. 몸도 마음도.

부디 스스로(自) 그러하(然)길

<우리 식물 이야기>는 길 위에 있는 시간들을 고스란히 담아왔어요.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길 위에서 멈춰 선 걸음걸음인 듯 쉬이 눈을 돌릴 수가 없으니까요. 자연의 색과 모양에 매혹된 마음이 쉽사리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려 하지 않아요. 그래서 책의 어느 쪽이든 펴놓고 한참을 바라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네요. 그렇게 머물러 있는 시간이 식물의 이야기를 담고 오면, 오늘의 저는 문득문득 부끄러워져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살아남기 위한 생명에게 남겨져 있는, ‘스스로 그러한’ 삶의 방식이 저와는 많이 다르거든요.

“도시에서는 물이 있는 시내나 연못이 없어서 고마리의 모습을 보기 어려워요. 간혹 하수도 주변에서 보이기도 하니까 더러운 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하지만 여름에 시외로 나가면 시냇가나 연못가에서 뜻밖의 아름다운 관경을 보게 되지요. 작은 도랑이나 개울가에 무리를 지어 피어 있는 고마리꽃들을 볼 수 있거든요. 덩굴성 한해살이풀인데 습기만 있으면 어디서든 잘 자라요. [...] 더러운 물이 고마리가 있는 곳을 지나면 깨끗해진다고 해요. 흰 뿌리가 오염물질을 빨아들여 물을 깨끗하게 해주는 거지요. 중금속도 제거하고 오염돼 죽어가는 물에 산소를 넣어주기도 해요. 물을 깨끗하게 해준다고 고마우리, 고마우리 하다가 ‘고마리’가 되었답니다.” (74-75쪽)
 


 

“애기똥풀은 씨앗을 멀리 퍼트리기 위해 개미를 이용해요. 꽃이 지고 난 후 길쭉한 열매 주머니가 생기는데 그 속에 있는 까만 씨는 하얀 기름주머니를 달고 있어요. 그 기름을 개미들이 좋아하는데 여간해서는 씨에서 떨어지지 않아요. 개미들은 기름을 먹기 위해 씨까지 영차영차 집으로 가지고 간답니다. 집에 가서는 흰 기름주머니만 먹고 씨앗은 버려요. 힘들여 기름주머니를 만들고 부지런한 개미를 통해 멀리 씨앗을 퍼뜨리는 거지요. 도움을 주고받으며 세상을 살아가는 영리한 풀이지요?” (175쪽)
 


애기똥풀꽃을 먹고 있는 호랑나비


이렇듯 길에서 사는 친구들에게 서로의 도움을 주고받으며 사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고도 하고요. “‘자연’스럽다”라는 말은 아마도 이런 삶의 방식을 가리키는 게 아닐까요? 사실 사람도 혼자서는 살 수 없잖아요. 그런데 왜 우리에게 남을 돕는 일은 식물들처럼 자연스럽지 않은 걸까요?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라는 말도 있지만, 그래서 적어도 ‘자연’스럽게 남을 돕지는 못할망정 스스로가 더럽힌 물 때문에 고마리에게 더러운 꽃이라는 오명을 씌어서는 안 될 것 같아요. ‘아름다운 사람은 지나간 자리도 아름답다’는 말은 화장실에서만 필요한 게 아닐 테니까요.

저는 살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만 소박하게 담고 있는 <우리 식물 이야기>를 보면서 필요하지 않은 것들도 너무 많이 가지고 있는 오늘과 움켜쥐고 나누려 하지 않았던 어제를 반성해요. 그리고 고마리처럼 지나간 자리가 아름다운, 애기똥풀처럼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내일의 나를 다짐해 봐요. 부디 스스로(自) 그러하(然)길.

그렇게 잠시 멈췄던 시간이 봄을 향해 다시 걷기 시작해요. 천천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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