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모른다> - 너는 내가 알고 싶기는 하니?

 

정이현, <너는 모른다>, 문학동네, 2009


너는 모른다는 말,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말 중 하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뭐가 문제인지 물었을 때 상대방이 ‘너는 몰라’라고 하면, 둘 사이엔 건널 수 없는 강이 생긴다. ‘그 어떤 말을 해도 너는 이해할 수 없으니 우린 끝’이라 선언하는 잔인한 말. 이 말을 들으면 해결을 위한 뜨거운 의지도, 지금껏 함께한 시간도, ‘나는 소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심연으로 한없이 처박힌다. 만약 사랑하는 이들 간에 이 말이 오고간다면, 사랑은 거기까지다. 정이현 작가는 무슨 독한 마음을 먹었기에 ‘너는 모른다’는 제목을 택했을까.

강남의 고급 빌라에 사는 혜성의 집은 남들보다 잘 산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를 거 없는 평범한 중산층 가정이다. 아버지 상호는 돈을 잘 벌어다 주고, 화교 출신의 새엄마 옥영은 모나거나 별나지 않게 가정을 돌본다. 배다른 동생 유지는 엄마 옥영을 닮아 조용하고, 문제는 일으키지 않는 초등학생이다. 의대에 합격한 혜성 또한 집안 분위기를 잘 맞출 줄 아는 만 스무 살 성인이자, 상호의 자랑거리이다. 가족 중 문제를 일으키는 이는 혜성의 친누나 은성. 다행히 그녀는 따로 살아 집안에 별 문제는 없어 보인다.

그런데 어느 평범한 일요일, 유지가 사라진다. 상호는 사업 파트너를 만나러 나가고, 옥영은 친정어머니를 만난다는 핑계로 옛 연인을 만나러 대만에 가고, 혜성은 남자친구에게 차이고 난동을 부리는 은성을 진정시키러 간 사이, 유지는 바이올린 과외 선생님에게 줄 레슨비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동안 옥영의 품에 쌓여 바이올린밖에 모르던 아이 유지. 그 아이는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유지가 사라지고 잔잔하던 가정에는 큰 파문이 밀려온다.

당연히 있어야할 곳에 부재가 자리 잡자 가족은 불타듯 불안감에 휩싸인다. 이 불안감은 아이를 잃은 슬픔과 자신들이 어린 유지를 혼자 집에 방치했다는 죄책감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다. 뭔가 뒤가 구린 일을 하는 아버지, 가족들 몰래 옛 연인을 만나는 어머니, 한때 동생을 납치해 상호에게 돈을 뜯어내자고 했던 은성, 뭔지 모를 상실감에 타인과 소통하기를 꺼려하는 혜성까지. 사건을 해결하고, 상처를 치유하는데 각자 다른 생각과 방식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옥영의 눈동자에 피로와 불안, 도탄과 고통의 그림자가 일렁였다. 그럼에도 절망의 깊다란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의지가 느껴졌다. 상호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둔 바짓주머니를 뒤져 답배갑을 찾았다.
“내 얘기 좀 들어요.”
아내가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녀는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경찰을 더 이상 못 믿겠어. 그 사람들은 조그만 아이 하나 없어진 일에는 큰 관심이 없어. 하긴 그 사람들한텐 그게 당연하겠지만.” (…) “딴 방법이 일을 거야. 오늘부터 같이 찾아봐요. 이대로 경찰 손에만 맡겨두었다가는 정말로 어떻게 될지 몰라.”
“에이 썅, 그만하라고 했지!”

(206~207쪽)

사라진 아이를 찾는 과정에서 가족들이 ‘너는 모르는’ 사실들이 하나둘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갈등은 커진다. 네가 알아서는 안 되는 사실들과 또 굳이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사실들은, 판도라의 상자에 봉인됐던 온갖 불행이 되어, 사람의 마음을 긁고 또 할퀸다. 여기서 정이현 작가는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되는 사실과 사실이 밝혀져야만 사건이 해결되는 모순된 상황이라면 우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답을 내리기 쉽지 않다. 더욱이 그것이 가정의 해체와 딸아이의 실종이라는 정면충돌이라면, 답은 진실의 문제가 아닌 선택의 문제로 남겨진다.

작품은 이처럼 ‘앎’과 ‘모름’ 사이에서 갈등해야 하는 우리의 숙명을 드러내는 한편,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민낯을 주저함 없이 까발린다. 돈을 위해서라면 인륜을 저버리는 냉혹한 어른들의 세상, 화교라는 낙인으로 숨 한 번 크게 쉬지 못하는 우리 사회, 애정 결핍으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의 굴곡이 커져버린 젊은이, 지나친 기대와 관심으로 인터넷 공간 속으로 침전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아이들. ‘나’는 ‘너’를 얼마나 알려고 했을까. 아니, 알고 싶기는 한 걸까.

1월 4일, 폭설이 내려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날, 뉴스를 보는데 <너는 모른다>가 떠올랐다. 예상치 못했던 상황 속에서 우왕좌왕하며 갈 길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유지를 잃은 가족의 모습과 같았다. 정이현 작가는 쉽게 벌어지지는 않지만 분명 세상에 존재하는 하나의 사건을 시작으로 불안 가득한 세상을 솜씨 좋게 재구성한다. 사건의 원인을 찾아가는 미스터리 형식 때문인지, 그들의 이야기가 감추고 싶은 우리네 삶을 보여줘서인지, 가슴이 아프면서도 책장은 잘도 넘어간다.

                                                                                                     - 반디(ak2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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