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하느님 - 평안하신가요?!

 
권정생, <우리들의 하느님-개정판>, 녹색평론사,2008

권정생 선생님, 안녕하세요. 너구리입니다. ‘왠 너구리가 편지를 보냈나’ 하셨죠?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제 별명은 선생님께서 지어주셨어요. 선생님이 쓰신 동화 <아기너구리네 봄맞이> 기억하시죠? 거기 보면 아빠 너구리, 엄마 너구리, 언니 너구리, 동생 너구리, 그리고 장가 못간 삼촌너구리가 나옵니다. 열심히 책을 보던 네살배기 큰 조카가 “우리 집에도 장가 못간 너구리 삼촌 있는데”라고 했고, 저는 그때부터 너구리가 됐어요. 어느덧 서른 줄에 접어들었어도 조카들은 집에 들어올 때마다, “너구리 집이 있니?”라며 문을 엽니다. 장가는 아직... 흑...

서가를 둘러보던 중에 선생님의 <우리들의 하나님>이 눈에 들어왔어요. 반가운 마음에 책을 들었고, 이렇게 펜을 듭니다. 그러고 보니 어제(5월 17일)가 선생님이 세상을 떠나신지 벌써 2년이 되는 날이네요. 2년 전 소식을 듣고 ‘좋은 곳으로 가시겠지’ 생각했었는데... 선생님 산문집 <우리들의 하느님> 초판이 나오던 1996년, 이 책의 출간이 반갑지 않다고 하셨어요. “바른 눈으로 세상을 보고 씌어졌는지 걱정부터 앞서기 때문”이라고 하셨지요. 하지만 저는 책머리에 있는 선생님의 글과 이름만 보고도 반가웠습니다. 더 이상 같은 땅에 발을 딛고 있지 않아서인지, 반가운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 더 크네요.

그곳, 평안한가요

지금 선생님 계신 그곳은 평안한가요. 누구보다 따뜻한 동화를 쓰고, 희망을 노래했지만 이 땅에서 선생님의 삶은 그리 녹록치 않았어요. 열아홉살 때부터 결핵을 앓으시고, 인생의 가장 밑바닥 생활인 걸식을 하셨지요. 또 6·25 전쟁도 겪으셨지요. “백만명이 넘는 목숨을 잃었고 집과 재산을 잃었다. 천만 이산가족이 생기고 남북은 돌이킬 수 없는 적이 되었다. 온 나라가 쑥밭이 된 것이다.”(p 214. <분단 50년의 양심>) 1세기 전 한국을 살았던 모든 어른들이 힘든 시기를 보냈을 거라 생각하지만, 선생님을 생각하면 남들보다 조금 더 아파하셨을 것 같아요. 선생님은 조금 더 섬세한 감성을 갖고 계셨으니까요.

선생님은 이래저래 고민이 많으셨어요. 날로 생명을 잃어가는 자연을 보며 안타까워하셨고, 피폐해져가는 농촌을 보고 눈물 흘리셨어요. 그중 선생님이 가장 속상하셨던 건 사람이 차별받는 것이었을 테죠. 지도 위의 경계 하나로 사람을 차별하고, 통장의 잔고를 가지고 사람을 차별하는 험한 세상. “기름진 고깃국을 먹은 뱃속과 보리밥을 먹은 뱃속의 차이로 인간의 위아래가 구분지어지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것이다. 약탈과 살인으로 살찐 육체보다 성실하게 거둔 곡식으로 깨끗하게 살아가는 정신이야말로 참다운 인간의 길이 아닐까.”(p 21. <유랑걸식 끝에 교회 문간방으로>)

자신이 내뱉은 말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 선생님은 실천하시고, 끝없이 채찍질 하셨어요. 1975년 ㅅ 선생님에게 선물로 받은 누런 똥색 나일롱 셔츠를 15년 이상 입으시고, 외풍이 심해 겨울엔 귀에 동상이 걸렸다가 봄이 돼야 낫는 예배당 부속건물의 토담집에 사셨죠. 또 선생님이 쓰신 글로 상을 받을 때에는 상패와 상금을 돌려보내기도 하셨어요. 그리고는 말씀하셨죠.

“하나를 얻으면 하나는 돌려줘야 하는 것이 바로 더불어 살아가는 평등의 원칙이며 그게 평화로 이어지는 자연의 질서입니다. 구태여 돈을 잔뜩 벌어 남을 구제한다는 마음보다 내가 좀더 가난하게 덜 차지하기만 해도 그게 바로 이웃을 위하는 일인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이런 물질의 평등에서 시작해야 합니다.”(p 79. <사람다운 마음으로>)

‘사람다운 마음’을 지키기 위해, 선생님께서는 가진 것을 모두 내어 주셨어요. 10억이 넘는 인세를 북녘의 어린이들을 위해 써달라고 유언을 남기셨으니까요. 음,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네요. 애초 그건 내 돈이 아니었다고. 그건 원래 그 아이들의 것이었다고. 문득 걱정이 됩니다. 선생님 계신 그곳은 돈이 필요 없는 곳이지요? 돈을 많이 가지고 있어야만 하느님과 가까이 있는 건 아니지요? 만약 그렇다면 선생님은 이 땅에서처럼 또 찬바람 가득한 곳에서, 남 걱정을 하실 테니까요. 부디 그곳은 돈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곳이 아니길 바라요. 아니 믿어요.

바보 같은 ‘사람’들의 세상

<우리들의 하나님>에 있는 단편소설 <용구 삼촌>이 생각나네요. ‘건넛집 다섯살배기 영미보다도 더 어린애 같은 바보 용구 삼촌’이 어느 날 집에 들어오지 않지요. 삼촌을 데리고 나갔던 소는 혼자 돌아오고, 마을 사람들은 삼촌을 찾느라 온 마을을 뒤지네요. 바보지만, 새처럼 깨끗하고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용구 삼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슬퍼졌고, 결국 울음을 터뜨렸어요. 이게 선생님이 말씀하신 사람에 대한 애정이겠지요. 사람의 능력이 아닌 사람 자체로 사랑 받는 세상.

책을 다 읽고 보니, 책 중간중간에 책갈피가 가득하네요. 세상을 살면서 흔들릴 때마다 다시 보려고 꼽아놓은 것들이에요. 그런데 조금 두려운 마음도 들었어요. 처음 선생님 말씀 들을 때는 그저 ‘맞아, 이렇게 살아야해’라고 감탄했지만, 책을 다 읽을 무렵 ‘내가 이렇게 살 수 있을까’ 걱정이 들었거든요. 행여나 선생님의 말씀을 알고 있다는 것을, 선생님처럼 살고 있다는 걸로 착각하고 싶지는 않아요. 또 선생님 말씀에 감동 받았다고 하면서, 몸으로는 전혀 그렇게 살지 못하는 저를 보게 될까 두렵습니다. 선생님과 너구리.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차이가 있으니, 변화가 생기는 것이겠지요. 가만히 희망을 품어봅니다.

선생님께서는 “징검다리를 위태위태 몸을 가누며 직접 건너온 아이와 자동차를 타고 훌쩍 다리를 건너온 아이 중에 어느 쪽이 진정한 강을 건너왔다고 느낄까?”라고 물으셨죠. (p 144. 쌀 한 톨의 사랑) 아직 뭐라 대답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좁은 길을 위태로이 걷겠습니다. 욕심 부리거나 남의 것을 빼앗지 않겠습니다. 또 지쳐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겠습니다. 선생님이 희망을 끈을 끝까지 놓지 않으셨던 것처럼. 선생님, 제가 하늘나라에 갔을 때 선생님께서 ‘네가 너구리니?’라고 반갑게 맞아주실 거죠? 선생님은 제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를 테니, 제가 먼저 인사드릴께요. 그럼 그날을 기대하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그때까지 좋은 곳에서 평안하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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