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기가 좋다> - 책 사이로 퍼져나오는 바다 냄새

 

한창훈, <나는 여기가 좋다>, 문학동네, 2009


바다 냄새가 나는 사람이라 했다. 그 이름만 들어도 바다가 떠오르는 사람이라 했다, 한창훈 작가는. 늘 그리움으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바다의 이미지가 있고, 코끝에 스치는 바다 냄새를 좋아하는 나는 그래서 더욱 이 작가의 책을 만나보고 싶었다. 어떤 글을 쓰는 사람이기에 그 글에서 바다 냄새가 날까 궁금했다.

책 표지에서부터 바다를 선사해 준 이 책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가득 바다가 펼쳐져 있다. 이 책을 중간쯤 읽었을 때 강원도로 가족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우리의 목적지는 깊숙한 산 속이었지만 오가는 길에 바다에 들른다 했다. ‘바다’라는 말을 듣자마자 망설임 없이 이 책을 챙겨 들었다. 혼자 가는 여행도 아니고 가족 여행인데, 책 읽을 시간이 있을까 싶었지만 왠지 함께 가고 싶었다. 함께 바다를 보고 싶었다.(결국 여행지에서 책은 몇 장 읽지 못했다.) 그 여행길에서 두 군데의 바다에 들렀다. 그리고 바다를 바라보며 나는 이 책을 떠올렸다. 오합지졸로 밀려오는 파도와 저 멀리 떠있는 섬을 보며 이 책의 표지를 떠올렸고, 이 소설 속 사람들처럼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이 책에는 모두 여덟 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여덟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 한 편 한 편, 모든 글이 거센 해일이 되어 내 마음을 덮쳤다. 표제작인 ‘나는 여기가 좋다’의 첫 장부터 내 가슴은 콩닥콩닥 뛰기 시작하여, 몇 장 읽어나가기도 전에 나는 이미 이 ‘한창훈’이라는 ‘바다’에 풍덩 빠져버렸다.

한 평생 섬 사나이로 살아온 남자와 이제는 그 섬을 떠나려 하는 아내의 갈등을 어두운 밤바다를 배경으로 그려낸 ‘나는 여기가 좋다’, 식당집 여인네의 아련한 사랑 이야기를 엿들을 수 있는 ‘밤눈’, 사랑이 까딱하면 성매매가 될 뻔한 섬마을 다방 아가씨와 섬 총각의 ‘올 라인 네코’, 젊은 시절 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친구의 제사에 일흔이 넘어서야 처음으로 찾아온 노인의 ‘바람이 전하는 말’….

그리고 오랫동안 가슴에 묻어두었던 이야기 털어내고 몸도 마음도 가벼워진 ‘가장 가벼운 생’, 자살을 하러 바다에 찾아온 여인과 그 죽음을 도와주기로 한 섬 사나이의 ‘섬에서 자전거 타기’, 말도 많고 탈도 많고 그만큼 재미도 많았던 ‘삼도노인회 제주 여행기’, 아들을 뭍으로 내보내고 싶은 아버지와 기어이 꾸역꾸역 섬으로 되돌아온 아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아버지와 아들’. 이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었음에 무척이나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책에 가득한 사투리도 일품이다. 책을 읽고 나서 ‘후유증’이 하나 생겼다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사투리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 학창 시절에 10년 가까이 시골에 살면서도 사투리를 제대로 익히지(?) 못했던 나인데, 어째 이 책 한 권으로 그렇게 빨리 사투리를 습득할 수 있었는지! 마누라가 이삐믄 처갓집 말뚝에다 대고도 절을 한다 해싸트만, 책이 좋응께 사투리도 기양 지절로 익혀져뿌리네!(?)

유난히 인상적인 대사가 하나 있었는데(이미 이 책을 읽은 많은 이들이 이 대사를 마음에 담았을 듯!) 바로 이 한 마디.

“올 라인 네코!”


나를 얽어매는 모든 구속을 풀어주는 듯한 이 주문이 나도 모르게 불쑥불쑥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인자 배를 출발할 것잉께 줄을 다 걷어내라’. 이제 나라는 배도 내가 원하는 곳으로 출발할 것이니까 나를 묶고 있는 줄을 다 걷어내자! 올 라인 네코! (주의 : 애인 앞에서 사용하면 순식간에 므흣한 단어로 변하는 수가 있음)

여하튼 결론은,
나는 이 책이 좋다!!

 “난 전생에 뭔가 큰 죄를 졌어라우.”
그녀는 깊은 밤바다를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무슨 말인가.”
“섬에서 태어났응께.”
...

“내 평생 생각한 것이, 내가 왜 섬에서 태어났을까 하는 것이요. 죄를 지어 벌을 받았다는 것 말고는 해답이 안 나왔소.”
“그러면 여기서 죄갚음 한다고 생각하면 되잖어.”
“그 죄가 기억이 나믄 좋겄소. 기억에 없으니 억울하요.”

(‘나는 여기가 좋다’ 중에서.)

오늘의 책을 리뷰한 ‘원주님’은?
책이 좋아 책과 함께 하는 삶을 꿈꾸다가 번역의 길에 들어선 병아리 번역가입니다. 애석하게도 지금은 책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일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꼭 제 손으로 번역한 중국 문학을 국내에 소개하는 게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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