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감책 No.9] 아름다운 스무 살을 선물한 그(굼실이님)

12월 11일. 나감책 챕터 2의 마지막 날. 연말이 깊어지고 사람들 연락이 많아지고 날도 춥지 않아 더욱 기대가 되는 주말입니다. 오늘, 주말의 손을 꼭 잡고 나감책을 찾아주신 주인공은 굼실이님입니다. 김연수 작가에 대한 사랑 고백이 무척이나 설레게 다가오는데요,(벌써 여기저기서 비명 들려오고~) 그럼 시작할까요? ~~/(^0^)/

*이야기 하나

“사실 나는 그(혹은 그녀)가 아닌 그 문장을 오래도록 사랑해왔던 것이었다.”
지난 밤 떠오른 이 말은 한 작가에 대한 4년간의 이유 모를 애정의 이유를 설명해줬다. 주인공은 다름 아닌 김연수 작가. 

근래작인 <밤은 노래한다> <여행할 권리>를 읽으며 작가에 대한 애정이 식었음을 막연하게나마 느끼던 중이었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김연수 작가 노래를 부르고 다닐 정도로 좋아했는데 왜 변한 걸까? 라고 이 또한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역사 의식이 포함된 그의 글들이 다소 무거운 느낌으로 다가온 건 아니었을까였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그의 초기작도 결코 가볍지는 않다.) 그러던 중 이번엔 분홍빛 달달한 표지의 소설집 <세계의 끝 여자친구>가 출간되었다.

 

 

조금 가벼워진 스토리와 단편이란 점이 어우러져 다시 김연수 읽기의 즐거움에 잠시 빠질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 밤, 드디어 깨달았다. 사실 그 좋아한다던 김연수 작가의 작품을 나는 몇 개 읽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김연수=<스무 살>이란 공식에 얽매여 있었음을. 나는 김연수 작가의 작품들을 사랑했기보다는, 그의 글 중 단 한 문장만을 4년 동안 질리게도 사랑해왔다. 그렇다. 이 글은 바로 한 문장에 대한 사랑의 고백이다. 

“스무 살이 지나고 나면, 스물한 살이 아니라 스무 살 이후가 온다”

지금 다시 소리 내어 읽어도 여전히 몸에 전율이 도는 아름다운 문장이다. 단, 화창한 봄빛 햇살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살얼음 낀 초겨울 날의 서늘한 아름다움이다. 지금은 나도 스무 살이라는 그 마법 같은 시간을 추억 한 줌도 안 되는 시간의 먼지 속에 날려먹었지만, 이 문장을 만난 이후 아직도 스무 살에 대해 이렇게 간결하고 무자비하며 아름답게 서술한 문장을 만난 적이 없다. 

김연수의 말대로 스무 살은 무엇을 하든, 무엇을 하지 않든 지나간다. 의식하지 않은 채 지나고 나면 그런 시간이 있었나 싶게 빨리. 그리고 스무 살 이후가 온다. 스무 살은 아무것도 아니었기에 오히려 미화되어 전설처럼 남는 것이다. 스무 살이란 이름만 덩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나의 스무 살을 그렇게 미화시켜줄 수 있었기에 나는 이 문장에 이토록 오래 매료되어왔던 건 아닐까. 

어쩌면 이때부터 시작했을지 모를, 올해 나의 책읽기의 포인트는 바로 문장 곱씹기다. 전에는 안 그랬는데 불과 몇 달 전부터 책을 읽을 때면 마음에 드는 문장이 담긴 쪽수를 기록해뒀다가 다 읽은 후 다시 책을 되짚어가며 문장을 기록해놓곤 한다. 많을 땐 몇 페이지를 꽉 채울 정도다. 다만 특이한 점은 모두가 공감하는 멋진 문장보다는 나중에 보면 생뚱맞은 문장들을 기록해놓곤 한다는 것. 가령 “막 바다에서 나온 현의 손은, 그러나 뜨거웠다.”라던가. (<세계의 끝 여자친구>중 ) 그래도 역시 아직까지 내 최고의 문장은 “스무 살이 지나고 나면, 스물한 살이 아니라 스무 살 이후가 온다”다. 그런데 김연수 작가는 알까? 자기가 쓴 한 문장 때문에 자기를 4년이나 좋아하고 있는 바보 팬이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 둘(굼실이님의 나감책 5)

 

 

<영원한 것은 없기에>, 로랑스타르디외

- 날씨가 추워지면 ‘땡기는’ 장르가 있으니, 달달한 사랑 이야기다. 그 중에서도 너무 달콤한 청춘의 사랑 이야기는 보다가 집어던질 우려가 있으니 제외. 여기 읽고 나면 마음 한 켠이 따스하게 녹아드는 느낌이 드는 책이 있다. 로랑스타르디외의 <영원한 것은 없기에>. 사랑의 결실인 아이를 잃고 멀어졌던 부부가 죽음 앞에서 다시 만나 화해하고 사랑하는 모습은 제목과는 달리 영원한 사랑의 감정도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여운이 많이 남는 책이다.

 

 

<나는 여기가 좋다> 한창훈

- 시원하면서 정감 있고, 대단치 않은 보통 사람들 이야기지만 찌질하지 않고. 무엇보다 작가가 가진 생에 대한 긍정적인 어투가 빛을 발하는 책, 한창훈의 <나는 여기가 좋다>. 때론 마음 넉넉한 바다여인의 한 서린 목소리로, 때론 죽지 않은 농어촌 청춘들의 패기서린 목소리로 분하는 한창훈의 이야기 모음집이다. 겨울바람 춥다고 이불 속에만 쳐박혀있을 것이 아니라, 바다사나이가 들려주는 호탕한 이야기 들으며 추위를 물리쳐보는 건 어떨까? 추천이야기는 '올라인네코'.

 

 

<도착하지 않은 삶>, 최영미
- 시에 대해 쥐뿔도 모르는 내가 좋다고 추천하고 다니는 최영미 시인의 최근작 시집 <도착하지 않은 삶>. 상당히 추상적인 제목과는 달리 시의 소재들은 사회적 이슈들, 일상의 작은 이야깃거리들이다. 어느 날의 시청 앞 광장, 귀여운 조카의 모습, 생리의 기쁨…. 어렵지 않은 시어를 골라 이야기하듯 써내려간 시는 솔직하고 담백하다. 온 세상이, 우리의 모든 삶이 다 시라고 말하는 그녀의 당돌한 외침에 슬그머니 웃음이 나는 책이다.

 

 

<벽>, 마를렌 하우스호퍼
기대치 않게 건진 (내 맘대로) 올해 최고의 책.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니 온 세상이 죽어있고 자신은 투명한 벽으로 가로막힌 한 언덕배기에 홀로 남겨졌다는 고백으로 시작하는 소설이다. 평범한 주부가 어느 날 세상에 나 홀로 남아 암소, 개, 고양이와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혀 긴박하지 않고 담담하게 써내려갔다. 한 번 읽을 때보단 두 번 읽을 때, 읽고 난 후 다시 떠올릴수록 좋아지는 책으로, 기억에서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고등어를 금하노라>, 임혜지
이 또한 의외로 건진 괜찮은 책으로 독일에 사는 한국인 아줌마의 유별난 삶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다. 돈보단 가족과의 시간을 소중히 하고, 자연환경 지키는 데 솔선수범하는 가족이다. 그래서! 이 가족의 식탁엔 고등어를 금한다. 내륙국가인 독일에서 고등어를 먹으려면 환경과 자원 낭비가 심하다나 뭐라나. 특별한 건 없지만 사소한 행복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멋진 가족들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추천. 가볍게 읽히지만 배울 게 많은 책이다.

[<고등어를 금하노라> 리뷰 보기(클릭)]

잘 보셨나요? 그럼 이제 굼실이님 집에 놀러가욧! ^0^/ [클릭클릭!]

굼실이님을 끝으로 나감책 챕터 2(2주차)가 끝났네요.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올레!와 낮은 탄식! 그런데 책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재미를 만나는 게 가장 중요하겠죠? 좋은 주말 보내시고요, 다음 주 월요일(14일)에는 나감책 챕터 3을 시작하겠습니다. 그 첫 주인공은 누구일까요?~~~~~~/(^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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